서해대교 29중 추돌 참사

우리나라는 서해를 건너는 두 개의 대형 교량 위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에 초대형 연쇄 추돌 교통사고를 한 건씩 경험하게 됐다. (2006. 10. 서해, 2015. 2. 영종)

두 다리는 각각 2000년 11월 10일과 20일에 개통해서 개통 시기도 참 묘하게 비슷하다. 딱 그 중간인 11월 14일이 2001학년도 수능 전날인 동시에 비둘기호 열차가 마지막 운행을 마친 날이긴 했는데, 그건 일단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고.

서해대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이 다리는 내게 소설 <상록수>와 소설가 심 훈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서해대교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없었으니, 당진에서 안산 샘골을 찾아갈 때 저 작가가 훨씬 더 고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 반면, 오늘날은 교통이 참 편리해졌다.

2006년 개천절은 북한이 핵실험 예고 선언을 했으며, 반 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하네 마네 하던 날이었다.
그랬는데 그 날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대형 트럭이 앞서가던 1톤 트럭을 추돌했으며, 최초 사고 유발 차량들이 차를 갓길로 안 빼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뒤따라 오던 차들이 연쇄적으로 앞 차를 들이받았다.

영종대교 때와는 달리 서해대교 사고에서는 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고 현장은 정말 헬게이트로 바뀌고 피해 규모가 더욱 커졌다. 공장에서 갓 출고된 새 승용차 여러 대를 싣고 가던 트레일러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그래서 거기 실려 있던 승용차들은 미처 팔려 나가기도 전에 깡그리 잿더미가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물적 손실보다 더 심각한 건 인명 피해이다. 초기에는 사망자가 총 11명이라고 집계되었지만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남성 1명이 치료 3개월 만에 결국 사망하면서 사망자는 최종적으로 12명으로 늘었다. 현장에서 혹은 구조된 후에 사망한 사람이 7명, 스스로 대피하던 도중에 2차 사고를 당해 사망한 사람이 5명이었다고 한다.

다른 차량에서는 보통 1대당 운전자 1명꼴로 사망자가 나왔지만, 유일하게 탑승자 일가족 3인이 전원 사망한 차량이 있었다. 이건 대형 차량들 사이에 끼여서 처참하게 으스러지고 완전히 박살이 난 소형 승용차였다. 그 상태로 불까지 붙어 활활 탔으니 탑승자는 도저히 살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저 차에서 운전자의 아내와 아들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당사자만이 목숨만 겨우 건졌지만 나중에는 그도 사망했다. 화상이 워낙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와 아들도 역시 생존해서 자신과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차 사고의 희생자 중에서도 기가 막힌 경우가 있다. 바로, 차량과 다리 난간 방호벽 사이에 끼인 채로 탈출을 못 하고 그대로 화마에 휩쓸린 사망자가 2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 현장 사진을 보니, 벽이 딱 그 지점만 사람 모양으로 검게 그을려 있어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은 사고 직후에 현장에서 즉사나 기절을 한 게 아니라, 제 발로 대피하던 중에 변을 당했다.
그냥 사고 현장 주변만 배회하고 있었을 뿐인데 뒤에서 오는 차들로 인해 추가 추돌 사고가 나면서 근처의 차들이 앞으로 밀려나고, 이 때문에 정말 운이 나쁘게도 방호벽과 차량 사이에 몸이 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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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 사고에 대해서는 2007년에 KBS 스페셜에서 사건을 CG로 잘 재현하고 분석한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그게 유튜브와 각종 동영상 포털 사이트에서 나돌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사망자 관련 정보의 출처도 여기이다. 대형차에 끼여서 사망한 3명(빨강), 그리고 트럭과 방호벽 사이에 끼인 채 사망한 2명(파랑)을 모두 확인 가능하다.

이런 사고 장면을 보면, 안개, 특히 해무는 살얼음 빙판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이고 한 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너무 짙을 때는 애초에 고속도로 같은 데에 차를 끌고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그렇게 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저런 데서 사고가 났다면.. 니가 10% 더 잘못했네 마네 같은 거 안 따져도 좋으니, 차량이 아직 운행 가능한 상태라면 걍 닥치고 차부터 가장자리로 빼야겠다 싶다. 100미터, 200미터 뒤로 거슬러 가서 삼각대를 놓고 올 배짱 같은 게 없다면 말이다. 또한, 초기의 단순 접촉/추돌 사고 정도라면 차가 운행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서해대교와 영종대교에서 9년 간격으로 사고가 한 번씩 났는데, 다음에는 이들보다 훨씬 더 긴 다리인 인천대교에서 시즌 3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13 08:28 2015/05/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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