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 내가 좀체 다루지 않던 경제 쪽 주제에 대해서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그래서, 뒷부분에 성경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분류도 기독교 쪽이 아닌 그냥 보통명사로 했다.

세상의 모든 물건들은 담보로 맡기는 게 아닌 이상, 그 자체만을 남에게 안심하고 맡기려면 맡아 주는 사람에게 보관료를 내야 한다. 교통수단을 세워 둘 때 드는 주차료· 주기료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아기나 애완동물을 맡길 때도 말이다. 이게 세상의 보편적인 이치이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바로 돈 그 자체이다. 돈을 맡기면 맡은 사람이 오히려 반대로 맡긴 사람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준다. 그렇게 주어지는 돈을 우리는 이자라고 부른다. 생각을 해 보시라.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맡는 쪽에서 막대한 경비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맡은 사람이 맡긴 사람에게 돈을 준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게 자본주의 원칙과 경제 원리를 이해하는 첫걸음임이 틀림없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다음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법한 제2의 핵심 원리이다.

그리고 은행들 역시 예금을 곱게 꿍쳐 놓고만 있지 않는다. 대부분의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거나 대출을 줘서 돈을 불리는 일을 한다. 그러니 모든 예금자가 불시에 자신의 예금을 전부 인출하려 들면 은행은 못 버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의 달란트/므나 비유에 나오는 게으르고 악한 종은 선악을 따지기에 앞서 정말 최소한의 경제 관념조차 없던 멍청한 친구였다. (마 25:27, 눅 19:23)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먹고 살 만하니까 쏙 들어갔지만, 옛날에는 나라에서 국민들 보고 그렇게도 저축을 많이 하라고 홍보하고 과소비 추방하자고 캠페인을 벌였던 게.. 단순히 근검절약(?) 정신을 함양하고 외화 유출을 방지하려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건 부수적인 효과다.
저축을 많이 함으로써 은행이 돈을 많이 보유하게 하고, 이로써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기업에다 투자를 많이 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무슨 유머 중에, 학교에서 "지금 손에 100만 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하겠는가?"를 상상해서 작문을 시키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애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교사가 이상하게 여겨서 "세계일주를 한다, 여자를 꼬신다" 등 왜 뭐라도 안 쓰냐고 물었더니 아이 왈, "네, 저는 100만 달러가 있으면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거예요(모든 걸 남에게 시키고)" 이랬다는데..
그 애도 알고 보면 굉장히 천진난만 순진한 타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을 일찌감치 깨달은 영악한 애라면, 그 돈으로 지금 당장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는 게 아니라, 어딜 투자를 하든지 해서 100만 달러를 1000만 달러 이상으로 불릴 궁리를 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 살 때는 돈 욕심 없이 자급자족으로 만족할 것처럼 지내던 사람이라도 처자식이 생기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상관없지만 내 자식에게 남들만치 밥 사주고 용돈 주고 비싼 학교에 옷 등등을 차려 주지 못한다면..?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돈독 오르게 된다. 그게 현실이다.

자 그럼, 돈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할까?
일단 구약 율법에서 내가 느끼는 뉘앙스는.. 정말 천하의 개쌍놈 급의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몹쓸 짓까지는 아니지만, 어지간해서는 그러지 마라. “이방인들을 상대로라면 몰라도 동족간에는 최대한 아량을 베풀어라. 이자 따지지 말고, 못 돌려받을 걸 감수하고라도 관대하게 꿔 줘라. 손해분은 내가 친히 갚아 주겠다” 정도인 것 같다.

이건 십일조만큼이나 “신정국가+유대 민족의 믿음 테스트+이 땅에서의 복” 문맥이다. 그러니 신약 시대엔 자선행위 차원에서, 혹은 교회 지체들끼리 적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이 될지 몰라도, 굳이 이방인 세상 정부에서 행정법 수준의 강제 사항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달란트/므나 비유에서 “하다못해 이자라도 받아 왔어야지?” 같은 주인의 책망이 있는 걸 보면, 성경도 돈 자체가 악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돈으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악이라고는 안 하는 듯하다.

성경은 명백히 사유재산과 free market, 빈부격차를 인정한다. 사실, 돈으로 돈을 불리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다면 투자라는 게 생길 수 없고 경제가 성장할 수가 없어진다. 절대적인 빈부격차 자체는 더 커질지 몰라도, 그래도 입에 풀칠도 못 하던 가난뱅이를 중산층으로, 그리고 지금 부자는 훨씬 더 큰 부자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은가?

부자가 가진 돈이 고용과 일자리를 더 만드는 발전적인 쪽에도 부분적이나마 쓰이는 게 더 나은가, 아니면 걍 오로지 부자들의 유흥과 사치에만 돈이 쓰이는 게 더 나은가?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부자들 돈을 강제로 뺏어서 분배해야 된다” 이건 영락없이 빨갱이 생각이 되는 거고.)

또한 생각해 볼 점은, 성경에는 이자에 대해서 정확한 가이드라인도 안 나온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금리나 사채 이율 한도는 최대 몇 %이고 그 이상은 악.. 뭐 그딴 얘기는 없다. 음악이나 옷차림에 대해서도 추상적인 원칙만 있을 뿐 디테일한 적용 방법은 안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 숫자놀음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게 얼마이든 전혀 무관하게 인간의 불완전한 경제 제도가 인간의 죄성과 맞물리면 문제와 폐단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 “급히 부자가 되려 하는 자는 악한 눈을 가졌으므로...”, “탐욕은 우상 숭배”처럼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유재산은 존중하되, 경제와 관련된 인간의 죄악을 제어하는 말씀은 성경에 이미 충분히 있다.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각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집단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공멸로 가는 경우도 있으니, 비효율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최저임금이니 무슨 비율이니 하는 걸 강제로 정하고 복지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꽤 많이 걷어 가는 일도 생기는 걸로 보인다. 참 절대적인 답이 없는 문제 같다.

NOTES:

1. 은행이 불안하다 싶으면 개인 예금주들은 전부 몰려와서 자기 돈을 빼려고 몰려올 것이고, 이러면 아까 말했듯이 그 어떤 은행도 버티지 못한다. 은행은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다.
하지만 각 개인이 자기 예금을 전부 인출하려는 행위 자체는 법적으로 하나도 전혀 문제될 게 없는 행동이다. 마치 기업이 생존을 위해 구조 조정을 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하는 것만큼이나, 그리고 전쟁터에서 군인이 무장한 다른 적군(포로나 항복한 군인, 민간인이 아니라)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합법이다.

2. 흔히 "올림픽 메달리스트 운동 선수의 자녀가 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확률하고, 재벌의 자녀가 계속 재벌로 있을 확률이 동일한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이런 말이 나도는 듯하다.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하겠으나 거기에 마냥 100% 공감할 수는 없다. 재능과 재화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액수로나 혹은 비율로나 어쨌든 더 많은 액수의 세금을 매긴다.
그러나 시험 쳐서 100점 맞고 올림픽 같은 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게 재능이 뛰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 세금을 부과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재능의 발휘에 도무지 동기 부여가 되겠는가? 세금을 부과하더라도 그건 상금에서 세금을 일부 공제하는 형태일 뿐이다.

굳이 돈이 아니라 소위 '열정페이, 재능기부' 같은 것도 철저하게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그것이 세금을 걷는 것처럼 법적으로 강제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재능과 재화의 차이인 것이다.
부모가 똑똑해서 자녀를 좀 더 편하게 살게 해 주려고 재산을 많이 물려 주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자녀였으면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물론 자녀가 인격도 의사결정권도 일체 없이 부모의 소유물과 다를 바 없이 취급하는 생각은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부모와 자녀는 법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 부모의 재산은 한 푼도 안 남기고 몽땅, 마치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마냥 국고로 환수해 버린다면 그것도 올바른 처사이겠느냐 말이다.

또한 부모가 재벌이라고 해서 그 자녀 세대까지 재벌인 게 마냥 100%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치열한 세계 시장에서 언제 도태될 지 모르니, 경영진은 수많은 종업원들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주기 위해 맨날 이대로는 안 된다며 위기 드립을 치고, 때로는 좀 더러운 짓도 하고 여론 관리도 하고, 미래에 뜨는 아이템을 예측하고 사업 방향을 구상해야 한다. 재벌이 유지될 확률이 대대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올 확률과 그렇게까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나야 일개 학생 겸 월급쟁이일 뿐이고 무슨 대기업 재벌 재계 인사하고는 하등 아무 관계도 없는 처지이지만, 나중에 내가 무슨 있는 돈 없는 돈 꼬라박아서 사업을 해서 종업원을 고용하는 처지가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지금 사회 구조가 마냥 근로자만이 약자이고 모든 기업주가 그저 갑질을 일삼는 악당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3. 난 지금까지 정치관이나 역사관 관점에서 우리나라 체제를 방어하는 글을 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관을 부정하는 불순세력의 공격도 많다. 자기들도 입고 있는 큰 혜택에 대해서는 입 싹 씻고 작은 부작용과 폐해만 자꾸 부각시키면서 우리나라를 점점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계로 바꾸려고 하는 시도들.

여기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조금씩 공부하고 무장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나마 그걸 모두가 잘살고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쪽으로 유도하는 경제 체제를 지지한다. 인간을 감히 성선설적으로 보면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선동하는 속임수에 속지 않는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세상은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세상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천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22 08:34 2015/05/22 08:34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096

Trackback URL : http://moogi.new21.org/tc/trackback/1096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240 : 1241 : 1242 : 1243 : 1244 : 1245 : 1246 : 1247 : 1248 : ... 220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992813
Today:
1824
Yesterday:
2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