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북악산 -- 上

한동안 너무 바빴던 나머지, 남한산성 이후 다음 등산 때까지 블로그에 다른 글을 올릴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도 아주 흥미진진한 산행을 다녀왔다. 이번에 간 곳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었다.

북악산은 자명한 이유로 인해, 서울에 있는 산들 중 아마 유일하게 신분증 까고 번호표 목걸이를 해야 입산 가능한 산이지 싶다. 인왕산은 사진 찍는 걸 감시하는 초소만 있던데 북악산은 그에 덧붙여서 저런 절차도 필요하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빨간 날의(일요일 + 공휴일) 다음 날은 입산 금지이다. 감시 초소 직원들도 한 주에 하루 정도는 출근 안 하고 쉬어야 할 테니까. 북악산은 거기에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산 가능 시각도 정해져 있다. 현재 북악산에 있는 사람들의 신원이 모두 파악돼 있어야 하며, 해가 떨어진 뒤에는 산 속에 아무도 없게 마치 민통선에 준하는 수준의 관리를 하는 듯하다.

인왕산은 감시 초소는 있지만 저 정도까지 등산객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통제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지고 나면 어차피 청와대 쪽으로 사진 찍는 것 감시는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사실, 청와대 근처에 있는 산들에 우리가 이 정도라도 접근하여 등산을 할 수 있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21세기 이전엔 그런 거 없었다. 1968년 1월에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바로 근처까지 쳐들어왔던 전대미문의 사건의 여파로 인해, 북악산과 그 일대의 산들은 민간인 접근 절대엄금으로 봉인돼 버렸기 때문이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던 시절에는 난 북한산과 북악산의 차이도 잘 몰랐다. 북악산은 북한산보다 훨씬 서울 중심부 안에 있다. 본인은 북악산을 오르기 위해 무작정 '창의문'으로 향했다. 예전에 인왕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쳤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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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의 바로 옆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의 동상을 가까이에서 다시 접했다.

그는 용감한 정의인으로 종로 경찰서장에 재직 중,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여 오는 공산 유격대와 싸우다가 장렬하게도 전사하므로 정부는 경무관의 계급과 태극 무공 훈장을 내렸다.
비록 한때의 비극 속에서 육신의 생명은 짧았으나 의를 위하는 그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
1969년 1월 21일
조각 및 제작: 이 일영
글: 이 은상
글씨: 김 충현


알고 보니 저 동상은 고인의 순직 1주기를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태극 무공 훈장은 우리나라의 무공 훈장 중 최상위 등급으로, 이 정도 훈장은 6· 25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급의 영웅이 아니면 살아서는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군인이 아닌 경찰에게 이런 훈장이 추서된 사례도 현재까지 저분만이 유일하다.
바로 몇 년 전(1965), 강 재구 소령이 수류탄 투척 훈련 중에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으로 감싸고 산화하여 동일한 태극 무공 훈장이 추서됐다는 것도 기억해 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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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을 오르면서 작년에 갔던 인왕산과 부암동 쪽을 본 모습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모두 산 속에 성곽과 감시 초소가 있고, 아예 군부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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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은 성곽을 따라 대략 이런 형태였다. 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성벽 너머로는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계단을 따라 산을 오를 수 있었는데, 경사가 꽤 가파른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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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주변은 경치가 이러했다.
우리가 평소에 서울 시내 쪽에서 바라보는 북악산의 전면은 바위가 참 인상적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이미 북악산의 뒤쪽으로 가는 것이고, 산을 타면서 딱히 그런 바위를 볼 일은 별로 없었다. 앞쪽은 영구 봉인돼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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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바로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조성된 마을인 평창동이다. 각종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부자· 유명인사들이 사는 단독 주택들이 가득하여 마치 서울 안의 딴 세상 같다. 교통이 왕창 불편하겠지만, 다들 차를 끌고 다닐 테니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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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정상은 생각보다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북악산'이 한때는 '백악산'이라고도 불렸다. 창의문에서 북악산 정상까지는 지도상의 직선 거리가 짧은 만큼 경사가 굉장히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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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1 사태 때 북한군과의 교전 중에 총알이 박힌 소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러 저렇게 표시를 해 놓은 게 좀 징그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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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라 가다가 '청운대'라고 불리는 다른 봉우리에도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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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걷는 길은 성곽 안에 있기도 하다가 성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철조망이 저렇게 있으니 무슨 GOP 철책처럼 보였다.
이거 사진이 도대체 어떻게 찍혔는지 광량 조절이 이상하게 됐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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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도착한 뒤에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저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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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정문'이라고 불리는 대문에 도착했다. 나름 사대문 중 하나이며 '북대문'에 해당하는 대문이다. 얼마 전에 남한산성을 본 적이 있다 보니 모습이 친근했다.
본인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서울 성곽과 '대문'에 대해서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좀 개념이 생겼다.
남대문은 서울 역 근처에 있는 그 숭례문이고, 동대문은 국도 6호선상에 있는 그 흥인지문이다.

서대문(돈의문)은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 역 근처에 있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 때 헐려서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옛날엔 노면 전차가 이 문을 통과했는데, 전차 노선을 복선화하려다 보니 이 성곽이 걸림돌이 됐다고.. 얘는 사대문 중 유일하게 복원이 못 되고 2016년 현재 존재하지 않는 문이다.

마지막으로 북대문이 바로 저 숙정문이지만, 높은 산 속에 있는 관계로 다른 문들만치 유명하거나 사람들이 막 드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존재감이 별로 없다. 남대문하고는 접근성이 가히 넘사벽급으로 차이가 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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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는 창의문에서 숙정문, 와룡 공원까지 북악산을 성벽을 따라 수평으로 횡단하는 코스를 생각하고 왔다.
차를 이용해서 북악산을 오르면 아까 같은 정상으로는 못 가지만, 그래도 성벽 둘레길보다 높은 곳으로 가서 '팔각정'이라고 불리는 정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 도보 등산로와 자동차 길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창의문과 와룡 공원 사이에, 청와대와 더 가까운 지점에 '삼청 공원'이 있고 거기에도 북악산 숙정문을 경유하여 팔각정까지 가는 등산로가 있다. 이건 북악산을 횡단이 아니라 종단하는 코스인 셈이다.

북악산에는 일명 '김 신조 루트'도 있고 북한산 형제봉과 연결되는 '하늘다리'도 있는데 거기로 가려면 숙정문의 밖으로 나가서 서울 성곽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위의 사진은 그 종단 등산로를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찍은 것이다. 이 등산로는 나중에 북악산에 다시 와서 개척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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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이 정도로 보이기 시작하니 이번 등산도 거의 끝이 난 것 같다. 옛날에는 저기도 다 산이었을 텐데 산중턱까지 다 개발되고 도로가 생기고 길이 닦인 것이다.

정작 와룡 공원에는 가 보니 별 거 없었다. 공 병우 박사가 운영하던 한글 문화원의 소재지가 와룡동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서는 마을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성균관 대학교 서울 캠퍼스, 감사원, 통일부 같은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등산을 하면서 서울에 이런 곳도 있다는 걸 알아 가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안국 역과 혜화 역이 지리상으로는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30 08:26 2016/05/3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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