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텔레비전이 1983년에 정전(휴전) 30주년 기념으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해서 우리나라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다면, MBC는 창사 30주년 기념으로 1991~92년 사이에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를 만든 게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으로 남았지 싶다.

원래 KBS는 예전부터 역사 대하드라마를 쭉 만들어 오고 있었고 1990년을 전후해서는 <역사는 흐른다>, <여명의 그 날>처럼 일제강점기 내지 해방 초기를 다룬 드라마가 나간 적이 있다.
그에 반해 MBC는 전통적으로 역사+정치 장르인 "제N공화국"을 방영했으며, 90년경엔 제2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그랬는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루는 동명의 소설을 극화한 <여명의 눈동자>는 MBC에서 야심차게 중국과 필리핀 현지 촬영과 더불어 전체 분량의 1/3가까이를 사전제작+후시녹음한 퀄리티로 만들어서 초대박을 쳤다. 그것도 중국과 정식 수교를 하기도 전에 말이다.
비슷한 시기(1990년 즈음)에 비슷한 시기(일제~해방 초)를 다룬 타 KBS 드라마들은 지금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여명의 눈동자만 아직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으며, 특히 주제가 음악을 너무 잘 만든 것도 작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현재도 유튜브에서 "여명의 눈동자" 검색하면 오프닝곡 피아노 연주 동영상이 많이 굴러다닌다.
그리고 2017년 지금 오프닝곡 들어 보면 전율이.. 작곡자분이 무슨 약을 빨고 이런 선율을 만들어 냈나 싶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무슨 영상음악 공모전 같은 데서 입상은 당연히 하지 않을까..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필름 역회전" 음주운전 공익광고도 국제 공모전 입상을 했는데.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HD 디지털, 유튜브가 없던 시절에 이런 영상물과 이런 음악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그래도 저게 방영되었던 시절이 내가 초딩 수준으로나마 기억과 의식이 있던 시기였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전체 분량의 1/3을 사전제작하고 시작했다지만 마지막 회는 결국 방영 전날에 촬영을 다 마치고, 방영 10분 전에야 편집까지 간신히 다 끝냈다고 한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식 3시간 전에 차선 도색을 간신히 다 마쳤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천하의 <여명의 눈동자>도 같은 MBC에서 거의 동일한 시기에 같이 방영했던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에 팀킬 당해서 전체 시청률은 2위였다고 한다. 그때 MBC 드라마가 정말 잘나갔었네..!!
너무 진지하고 슬픈 분위기인 <여명..>과는 달리 <사랑이...>는 완전 반대의 유쾌 컨셉의 가정 드라마였으니 서로 참 강렬하게 비교된다. <사랑이...>는 그 인기에 힘입어 '-기에' 대신, 그 당시 비표준어이던 '-길래'라는 연결어미를 전국에 대대적으로 퍼뜨리는 효과도 냈다. (지금이야 2011년부터 복수 표준어가 돼 있음)

본인 역시 저걸 본 기억이 있으며, 특히 오프닝곡은 멜로디를 다 기억하고 있다. '대발이'가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었구나. 오프닝곡 말고 <타타타>라는 가사 있는 OST도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난다.

오프닝은 그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로 만든 듯하다. 실사 사진에다가 만화 애니메이션 합성은 쉽지 않았을 텐데. (who framed Roger rabbit이 1989년작이던가?)
그 시절에는 저렇게 정교한 손글씨 디지털 서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명조 고딕 둥근고딕 일색..) 타이틀과 배우 이름은... 일일이 다 손으로 쓴 캘리그래피이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다른 TV프로의 오프닝을 봐도 그땐 그게 관행이었다. 1990년대 초였으니 광고 목록은 무려 세로쓰기로 나오고 말이다.

다음으로, 음악 역시 드라마의 성격을 대변할 만한 명랑한 분위기로 참 잘 만들었다. 지금 다시 들어 보니 음색이 정말 대놓고 미디스럽다~~!! 저 때는 저런 미디 기반의 전자음향이 최신 기술이었을 것이다.
톡톡~ 치는 전자드럼이나 '훡~'(쿠이카) 요런 효과음, 호루라기 소리.. 다 미디에 정의돼 있는 타악기들이다. 모스크바 관현악단에서 직접 연주했다는 <여명의 눈동자> OST (오프닝곡 포함)와는 완전 대조적이다.

주선율을 연주한 악기는 무려 '팬 플룻'이다.
물론 저건 미디가 합성해 준 팬 플룻이니, <킬 빌>의 The Lonely Shepherd 같은 곡에서 나오는 레알 팬 플룻의 퀄리티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건 뭐랄까, 레알 육개장과 라면 스프로 재연한 육개장의 차이와 비슷한 듯하다.

시간만 좀 있으면 저 오프닝곡을 미디로 채보해 보고 싶을 정도다.
그 시절에는 제대로 된 미디 신시사이저 반주를 듣는 방법이 노래방에 가는 것밖에 없었지만 2000년대부터는 PC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원로 여성 배우 중에 김 혜자야 최 불암 시리즈에도 나오고 워낙 유명하니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옛날에 농심 라면 CF에서 "허허허허~ 라면의 맛은 스프에 있습니다"라고 맨날 단골로 출연했던 아줌마가 강 부자였구나.. 2017년이 돼서야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14 08:33 2017/07/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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