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텔레비전의 변천사, 라디오와의 차이

요즘 전화기가 유선, 무선, 위성, 인터넷이라는 네 방식이 있는 것처럼 텔레비전 방송에도 개념적으로 유선, 무선, 위성, 인터넷 방식이 모두 존재한다.
단, 전화는 처음에 유선(전화선)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무선 휴대전화(기지국..)가 개발된 반면, 텔레비전은 처음에 무선(지상파)부터 시작했다가 난시청 지역의 방송 접근성 개선을 위해 유선(케이블) 방송이 나중에 개발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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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수신을 위한 텔레비전 안테나. 뭔가 기하학적인 직선 모양이다. 텔레비전 본체에 달린 더듬이 모양의 작대기 두 개만이 전부가 아니고, 이런 실외 안테나도 필요했던가 보다.)

텔레비전의 무선 신호는 처음에는 NTSC 내지 PAL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동시대의 비디오 테이프에 VHS와 베타멕스라는 두 방식이 있었던 것처럼 텔레비전용 아날로그 신호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라 NTSC 방식을 사용했었다.

처음에는 흑백만 지원하다가 1980년대부터 국내에도 컬러 방송이 시작됐는데, NTSC는 신호 구조에 하위 호환이 잘 지켜졌던 모양이다. 흑백 수상기는 여전히 흑백 영상이 나오면서 컬러 수상기에서는 컬러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21세기에 와서는 신호가 통째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 화질이 놀라울 정도로 크게 향상됨과 동시에, 화면의 종횡비도 바뀌어서 가로로 더 납작해졌다(4:3에서 16:9로).
이렇게 신호의 내부 구조가 달라진 한편으로 TV의 디스플레이 소자도 너무 크고 무겁던 브라운관이 퇴출되고, LCD 같은 얇은 물건이 등장했다. 2000년대 말~2010년대 초에 싹 물갈이가 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아날로그 방송 송출이 중단된 것은 2012년 말부터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상파 방송이 평일에도 상시 24시간 방송을 하기 시작한 것도 2012년 하반기쯤으로 비슷하다.
물론 평일 낮 시간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업에 바쁘니, TV를 보는 일이 잘 없다. 그래서 24시간 방송을 하더라도 저 때는 새 컨텐츠보다는 그냥 기존 방송의 재방송 위주로 편성되는 편이다.

그래도 24시간 방송 덕분에 텔레비전에서 화면조정 컬러바를 볼 일이 옛날에 비해 훨씬 더 없어진 것은 신통한 노릇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인 관계로 타 노선에 비해 종점에서 멈추는 열차를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이런 텔레비전에 비해 라디오는.. 디지털이건 아날로그건 음질이 크게 달라질 게 없으며, 전쟁· 천재지변 같은 상황에서도 아주 가볍고 저렴하고 단순한 장비만으로 수신이 가능한 게 좋다는 특성상 오늘날까지도 재래식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라디오는 TV와 달리 딴 일을 하면서도 청취가 가능하다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다. 특히 하루 종일 귀가 심심한 수많은 영업용 자동차(버스, 트럭, 택시) 운전사들의 고정 수요도 있기 때문에 망할 일이 절대 없다.
그러니 새벽 심야는 몰라도 평일 낮 시간에 라디오 방송이 끊겼던 적은 전무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은 TV 방송보다 생방송의 비중이 더 크기도 한 것 같다. 이 바닥은 텔레비전과는 분위기 내지 물이 근본적으로 많이 다른 셈이다.

2. 위성 방송

무선 신호 얘기를 하다가 라디오 얘기도 나오면서 얘기가 옆길로 많이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유선, 무선 다음으로 위성은 기존 무선의 스케일을 확 키운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통상적인 텔레비전 송신탑이나 휴대전화 기지국은 제아무리 높아 봤자 지상에 존재하며, 감당 가능 영역이 국내의 일정 지역까지로 한정된다. 그러나 정지 궤도 위성은 그야말로 지구 반대편으로 전파를 보낼 수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의 위성 방송은 위성으로 쏘는 외국의 방송을 시청 가능하게 했으며, 위성 전화는 선박이나 남극 기지처럼 지상의 통신 인프라와 고립된 오지 외지에서 통신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물론 위성 서비스는 통상적인 지상 기반 무선 서비스보다 단가가 훨씬 더 비싼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무궁화 인공위성이 발사된 뒤부터 자체적인 위성 방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외국의 통신 위성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외국 위성 방송 자체는 있었다.
내 기억으로 1990년대 중반, 그 시절에 국내에 수신된 대표적인 외국 위성 방송은 홍콩 StarTV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금빛 별 모양이 그려진 방송국 엠블럼이 나오고.. 정체 모를 팝송의 뮤직비디오와 운동 경기 중계가 많이 나오는 예능 채널 같았다.

본인은 스타TV 장면을 그 시절에 다니던 학원의 텔레비전에서 보고, 그리고 노래방 기계 화면의 배경 동영상으로도 많이 봤다! 그래, 그땐 그랬다. 이 TV에서는 어째 우리집에서는 볼 수 없는 외국 텔레비전 방송이 나오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했는데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어디 친구 집에서 웬 일본 NHK 방송이 나오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무슨 브랜드명이기라도 한지 화면에서 BS라는 이니셜이 자꾸 눈에 띄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그 이니셜 자체가 위성(S) 방송(B)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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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방송 수신용 안테나. 접시 모양이다.)

위성 방송은 워낙 능력이 출중하니 통상적인 지상파 방송의 시청이 안 되는 문제를 해소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외국 방송 내지 위성 방송 사업자가 제공하는 고유한 컨텐츠를 시청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위성 방송 사업자가 2000년대에 개척한 영역은 바로 교통수단 내부에서의 이동 방송이다.

그래서 그 무렵에 고속버스에서는 ‘스카이라이프’ 위성 방송이 개시되었으며.. 새마을호 열차에서는 ‘코모넷’이라는 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위성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교통수단에다가도 전기 공급해 주고 안테나만 잘 꽂으면 그냥 지상파 TV를 수신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그 시절에 버스가 아닌 승용차용 자그마한 흑백 TV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교통수단용 별도의 이동 방송이 존재했던 건 신호 수신 때문이 아니라 고유한 방송 컨텐츠 때문이었다.

위성 방송은 다 좋지만 날씨의 영향을 받는 편이며, 특히 차량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터널..)에 진입하면 신호가 끊어지고 방송이 중단되는 단점이 있었다. 고속버스 말고 새마을호의 영상 서비스는 위성 방송이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새마을호 열차에 위성 방송 기반의 영상 서비스를 제공했던 업체가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코모넷’이다. 새마을호의 시종착 때 Looking for you라는 마의 음악을 선곡해서 집어넣은 장본인도 코모넷인데.. 그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본인으로서는 너무나 궁금할 따름이다. 그 코모넷은 2000년대 후반에 소리소문 없이 망하고 폐업해 버렸으며, 이후에 창업주의 근황이 보도된 것도 전무하다. 그에 따라 새마을호의 영상 서비스는 2006년경에 연합뉴스로 바뀌었다가.. 얼마 못 가 완전히 폐지됐다.

3. 인터넷 TV (IPTV)

여기서 인터넷이란 유선 무선 같은 물리적인 기술 계층이 아니라, 그런 기술을 활용하고 해석하는 프로토콜 계층에서의 차이를 가리킨다. 인터넷의 물리적인 통신 방식이야 동축 케이블이나 유리 섬유 케이블 같은 유선으로 구현될 수도 있고, 수 GHz대의 와이파이 무선 통신으로 구현될 수도 있다.
단지, 영상과 음성 정보를 IP라는 인터넷 프로토콜에 근거한 패킷 형태로 주고받으며, 인터넷 자체가 양방향 소통 체계이다 보니 재방송, VOD 서비스 같은 인터랙티브한 서비스 제공도 덤으로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즉, 인터넷 TV에서 인터넷이란 컴퓨터 웹브라우저를 통해 사용자에게 친숙한 WWW(월드 와이드 웹)는 아니고, 그보다 저수준에서 인터넷의 범주에 드는 기술인 것이다. 개인이 마음대로 진행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 기반의 인터넷 방송하고도 당연히 다른 얘기이다.
인터넷 TV를 시청하려면 해당 서비스에 가입하고 거기서 받은 셋톱박스와 전용 안테나를 설치해야 한다. 아니, 지상파 외에 위성이나 유선 같은 다른 기술 계층의 TV를 시청하려면 저런 추가적인 장비가 필요하다.

인터넷 TV로는 지상파뿐만 아니라 기존 케이블 TV까지도 시청 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케이블 TV와 사업 영역이 겹친다. 그래서 두 업종 간에 티격태격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서로 완전히 동치는 아니기 때문에 IPTV 전용 채널이라든가 케이블 방송 전용 채널도 있다.

4. 유선(케이블) 방송

텔레비전은 원래 전파를 수신해서 동영상을 보여주는 물건인데 유선이라니..?? 그렇다고 CCTV도 아니고? 일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헷갈릴 필요가 없다.
그 '케이블'이라는 건 방송국에서 유선 방송 사업자 사이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방송사와 소비자 사이에 계층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으니 소비자는 이 정도 양질의 신호는 셋톱박스 하나만 장착함으로써 수신할 수 있다. 물론 이 전파는 암호화도 돼 있어서 지상파 방송처럼 간단하게 시청할 수는 없다.

무선이 아니라 유선인 덕분에 이 방송은 기존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지상파보다 훨씬 더 많은 채널도 제공할 수 있다. KBS, MBC, EBS, SBS가 뭔가 1군 지상파라면.. 그 다음으로 YTN, 아리랑 TV라든가 국회방송, 법률방송, 기독교 방송, 온게임넷 같은 건 유선· IPTV· 위성 형태로만 시청 가능한 2군 정도 되겠다. 물론 위성 방송처럼 외국 방송을 쏴 주는 건 아니고, 국내 한정이다.

이런 2군 방송들은 특정 장르와 분야의 방송으로만 한정되곤 했는데 얘들도 지상파 방송처럼 일반적이고 범용적인 분야로 방송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그 이름도 유명한 종편, 종합 편성 채널이다. 채널A, JTBC, TV조선 같은 것 말이다.

유선, 무선, 위성, 인터넷 이런 것들이 자동차로 치면 수소 연료전지, 순수 전기, 하이브리드, CNG 개조, LPG 개조 같은 온갖 연료 바리에이션을 보는 느낌이다. 또는 택시, 렌트, 카셰어링, 타다 등의 서비스 바리에이션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얘기가 나왔던 것을 한데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 태초에 제일 단순한 KBS MBC 같은 지상파 방송이란 게 있었으며, TV는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 그런데 지상파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선 방송이란 게 개발되었고 유선 방송 전용 채널도 많이 생겨났다. 즉, 얘는 지상파의 상위 호환이다.
  • 위성 방송은 유선 방송의 상위 호환이다. 덤으로 외국 위성 방송의 수신이 가능하고 교통수단 내부에서 쓰인 바 있다. 지상파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긴 했지만 얘만의 고유한 약점(날씨와 지형 제약)도 있다.
  • 인터넷 TV도 유선 방송의 상위 호환이며 오늘날의 대세이다. 뭔가 파일 기반인 게 DB 기반으로 바뀐 듯한 느낌인데(전문적인 계층 추가).. 인터넷 전화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서비스가 불통되면 얘 역시 몽땅 먹통이 돼 버린다. (와이파이 전파 상태 내지 해저 케이블..)

그리고..

(1) 지상파 방송이 접근성이 제일 좋긴 하지만.. 지상파 방송이 곧 전국구 방송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SBS는 엄연한 지상파 방송이지만 20세기까지는 서울· 수도권에서만 시청 가능했다. 지금도 경기방송, OBS경인TV 같은 건 지상파이지만 지방 방송이다.

(2) YTN의 경우 뉴스 보도 전문이니 종편은 아니다. 그런데 연합뉴스 TV는 YTN과 어떤 관계인지 난 잘 모르겠다.

(3) DMB는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한 기술 규격인데, 기존 TV 신호 기술과 비교했을 때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인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뭔가 더 좋은 구석이 있겠지..

(4) 엄청 옛날에는 전화기가 동그란 다이얼이 달려 있었듯이, 텔레비전도 옛날에는 채널을 변경하는 인터페이스가 - + 버튼이 아니라 다이얼 두 개였다. 한 다이얼은 2부터 13 정도까지 VHF라 하여 좁은 영역을 건드리고, 다른 다이얼은 UHF라고 두 자리수의 훨씬 더 넓은 영역을 촘촘하게 다뤘다.
대부분의 채널은 그냥 비어 있어서 지정해 봤자 치지직 잡음밖에 안 들렸는데.. 여기에다가 유선 방송 셋톱박스를 설치해야 그 채널들이 방송으로 채워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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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옛날에는 매일 아침 지상파 방송에 CNN, NHK 등의 세계 외신의 주요 보도를 짤막하게 보여주는 '세계 뉴스'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요즘이야 그것 말고도 외신 보도를 접하는 방법이 차고 널렸기 때문에 남사스럽게 그런 걸 하지 않는다. 정보를 접하는 게 이렇게 쉽고 간편해진 건 정말 전율에 가까운 모습이다.

(6) 덕분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도 의미가 참 무색해져 있다. 이제는 참신한 컨텐츠와 끼만 있으면 누구라도 개인 방송을 개설해서 언제든지 전세계에 자기 얼굴을 얼마든지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메이저 지상파 방송'에 어떤 형태로든 출연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며 아무나 할 수 있지 않다. 본인조차도 지상파 방송 출연 경력은 현재까지도 지난 2005년 초의 스펀지 타자 실험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7) 컴퓨터에 TV 수신 카드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역시 격세지감이다. 국내에서는 두인 전자라는 기업에서 만들곤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0 08:35 2020/07/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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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텔레비전이 1983년에 정전(휴전) 30주년 기념으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영해서 우리나라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겼다면, MBC는 창사 30주년 기념으로 1991~92년 사이에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를 만든 게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으로 남았지 싶다.

원래 KBS는 예전부터 역사 대하드라마를 쭉 만들어 오고 있었고 1990년을 전후해서는 <역사는 흐른다>, <여명의 그 날>처럼 일제강점기 내지 해방 초기를 다룬 드라마가 나간 적이 있다.
그에 반해 MBC는 전통적으로 역사+정치 장르인 "제N공화국"을 방영했으며, 90년경엔 제2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그랬는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루는 동명의 소설을 극화한 <여명의 눈동자>는 MBC에서 야심차게 중국과 필리핀 현지 촬영과 더불어 전체 분량의 1/3가까이를 사전제작+후시녹음한 퀄리티로 만들어서 초대박을 쳤다. 그것도 중국과 정식 수교를 하기도 전에 말이다.
비슷한 시기(1990년 즈음)에 비슷한 시기(일제~해방 초)를 다룬 타 KBS 드라마들은 지금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여명의 눈동자만 아직까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으며, 특히 주제가 음악을 너무 잘 만든 것도 작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현재도 유튜브에서 "여명의 눈동자" 검색하면 오프닝곡 피아노 연주 동영상이 많이 굴러다닌다.
그리고 2017년 지금 오프닝곡 들어 보면 전율이.. 작곡자분이 무슨 약을 빨고 이런 선율을 만들어 냈나 싶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무슨 영상음악 공모전 같은 데서 입상은 당연히 하지 않을까..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필름 역회전" 음주운전 공익광고도 국제 공모전 입상을 했는데.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HD 디지털, 유튜브가 없던 시절에 이런 영상물과 이런 음악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그래도 저게 방영되었던 시절이 내가 초딩 수준으로나마 기억과 의식이 있던 시기였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전체 분량의 1/3을 사전제작하고 시작했다지만 마지막 회는 결국 방영 전날에 촬영을 다 마치고, 방영 10분 전에야 편집까지 간신히 다 끝냈다고 한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식 3시간 전에 차선 도색을 간신히 다 마쳤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천하의 <여명의 눈동자>도 같은 MBC에서 거의 동일한 시기에 같이 방영했던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에 팀킬 당해서 전체 시청률은 2위였다고 한다. 그때 MBC 드라마가 정말 잘나갔었네..!!
너무 진지하고 슬픈 분위기인 <여명..>과는 달리 <사랑이...>는 완전 반대의 유쾌 컨셉의 가정 드라마였으니 서로 참 강렬하게 비교된다. <사랑이...>는 그 인기에 힘입어 '-기에' 대신, 그 당시 비표준어이던 '-길래'라는 연결어미를 전국에 대대적으로 퍼뜨리는 효과도 냈다. (지금이야 2011년부터 복수 표준어가 돼 있음)

본인 역시 저걸 본 기억이 있으며, 특히 오프닝곡은 멜로디를 다 기억하고 있다. '대발이'가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었구나. 오프닝곡 말고 <타타타>라는 가사 있는 OST도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난다.

오프닝은 그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로 만든 듯하다. 실사 사진에다가 만화 애니메이션 합성은 쉽지 않았을 텐데. (who framed Roger rabbit이 1989년작이던가?)
그 시절에는 저렇게 정교한 손글씨 디지털 서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명조 고딕 둥근고딕 일색..) 타이틀과 배우 이름은... 일일이 다 손으로 쓴 캘리그래피이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다른 TV프로의 오프닝을 봐도 그땐 그게 관행이었다. 1990년대 초였으니 광고 목록은 무려 세로쓰기로 나오고 말이다.

다음으로, 음악 역시 드라마의 성격을 대변할 만한 명랑한 분위기로 참 잘 만들었다. 지금 다시 들어 보니 음색이 정말 대놓고 미디스럽다~~!! 저 때는 저런 미디 기반의 전자음향이 최신 기술이었을 것이다.
톡톡~ 치는 전자드럼이나 '훡~'(쿠이카) 요런 효과음, 호루라기 소리.. 다 미디에 정의돼 있는 타악기들이다. 모스크바 관현악단에서 직접 연주했다는 <여명의 눈동자> OST (오프닝곡 포함)와는 완전 대조적이다.

주선율을 연주한 악기는 무려 '팬 플룻'이다.
물론 저건 미디가 합성해 준 팬 플룻이니, <킬 빌>의 The Lonely Shepherd 같은 곡에서 나오는 레알 팬 플룻의 퀄리티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건 뭐랄까, 레알 육개장과 라면 스프로 재연한 육개장의 차이와 비슷한 듯하다.

시간만 좀 있으면 저 오프닝곡을 미디로 채보해 보고 싶을 정도다.
그 시절에는 제대로 된 미디 신시사이저 반주를 듣는 방법이 노래방에 가는 것밖에 없었지만 2000년대부터는 PC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원로 여성 배우 중에 김 혜자야 최 불암 시리즈에도 나오고 워낙 유명하니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옛날에 농심 라면 CF에서 "허허허허~ 라면의 맛은 스프에 있습니다"라고 맨날 단골로 출연했던 아줌마가 강 부자였구나.. 2017년이 돼서야 처음 알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14 08:33 2017/07/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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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텔레비전 수상기

자동차, 컴퓨터, 전화기만큼이나 텔레비전이 기술적으로 무섭게 발전한 것도 보면 굉장히 경이롭다.

  • 디지털: 노이즈라는 게 없어졌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잘 안 믿긴다. 옛날 아날로그 특유의 무신호 치지직 화면(white noise)도 없어지고 화면조정용 색깔막대 영상도 볼 일이 없어졌다. 같은 전파를 주고받는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바꿔서 이런 게 실현된 걸까? 디지털에서는 오류가 너무 심해서 화면이 아예 안 나오면 안 나왔지, 치직거리면서 나오지는 않는다.
  • 고화질: 두 말하면 잔소리. 화질이 정말 엄청나게 좋아졌다. 단, 디지털과 고화질이 동치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엔 아날로그 기반으로 HD 규격이 나온 게 있기도 하다.
  • 왕창 크고 평평하고 납작한 수상기: 과거의 브라운관 TV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브라운관은 화면 크기에 정비례해서 두께까지 왕창 두꺼워지기 때문에(공간 복잡도 O(n^3)!) 일정 수준 이상으로 대형화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차피 영상 신호의 화질도 요즘 같은 대화면을 받쳐줄 만치 좋지 않았다.

TV를 흔히 '바보 상자'라고 부르는데.. 요즘 텔레비전은 차라리 패널(panel)에 가깝지 이제 상자 모양이 아니다. 옛날에(2006년)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텔레비전에 중독된 현대인을 풍자하는 black box라는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입상한 바 있다. 텔레비전 안에 온갖 희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허나, 요즘 텔레비전의 모양으로는 그런 소재를 설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보 상자'라는 개념은 영어권에도 있어서 fool's tube라고 하는데.. 튜브 역시 브라운관의 잔재가 담긴 별명인 건 동일하다. 그래도 '유튜브'가 이 별명을 잘 활용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또한 요즘 텔레비전은 무슨 형광등 켜지듯이 켠 직후에 서서히 밝아지면서 화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밝기와 색감 등 잡다한 요소들을 조절하는 다이얼 같은 것도 다 사라졌으며, 정 조절이 필요하면 모니터 자체에 내장된 프로그램 UI를 통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절한다. 그래서 모니터에 다이얼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상하좌우 화살표와 Enter, ESC에 해당하는 key가 있으며, 화살표 key가 트랙패드 같은 걸로 대체된 물건도 있다.

한때 TV는 평범한 월급쟁이 가정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고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잣집이나 공공장소에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해야 했다. 그리고 잠금 장치가 달린 TV 전용 케이스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뭐 개인용 스마트폰으로 TV 방송을 시청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니 텔레비전 케이스도 '컴퓨터 책상'만큼이나 아련한 옛날 추억이 돼 간다. 하지만 지금 당연한 것이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2. 대한뉴스

요 근래부터 옛날 대한뉴스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있어서 재미있게 본다. 경부 고속도로 개통이나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같은 유명한 사건도 있지만 본인의 주 관심 분야는 철도 개통 쪽이다. 화면 중앙에 태극 마크 워터마크가 엷게 첨가됐지만 전반적인 화질은 괜찮다.

대한뉴스는 무려 1953년부터 1994년 말까지 국립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었던 '나라 안팎 사정 기록 영상'이다. 만드는 곳의 특성상 뭔가 국방일보스럽고 정책 및 프로파간다 홍보(긍정적인 것만)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잘 보존된 역사 기록이며 영상 실록 역할을 한다.
그 시절엔 이게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의무적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두 주 간격으로 교체되었다고. 국산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강제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라든가.. 과거에 음반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한 곡 넣어야 했던 것과 비슷한 관행이다.

하지만 대한뉴스가 그저 정권의 나팔수 이상으로 오늘날 귀중한 영상 자료인 이유는 이것 말고 딱히 대안이 없는 시기도 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도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물론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박통 말고 이 승만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온 걸 기억하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본 분 계시는가? 없을 거다. 그 시절에 방송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는 TV를 갖고 있는 집이 극소수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시청자 말고 방송국의 입장에서도 물자 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영상 기록을 지금처럼 몽땅 저장(아카이빙)할 여건이 못 됐다. 하물며 그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방송 장비나 저장 매체는 얼마나 비쌌겠는가? 게다가 외제 수입 일색이기까지 했지 않겠는가?

녹화라는 건 꼭 필요한 것만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해야 했으며, 또한 한 테이프를 계속해서 덮어써서 녹화하면서 우려먹어야 했다. 그러니 그 시절의 방송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의 영상 기록은 외국인 선교사나 종군기자의 촬영분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국가가 알아서 고이 보관해 놓은 대한뉴스로 가야 한다. "새로운 특급열차는 우리 이 대통령 각하께서 무궁화호라고 명명해 주셨는데.."(1960년 2월) 이렇게 전해지는 보도 자료는 출처가 무슨 KBS 같은 전파 타는 뉴스 방송이 아니라 대한뉴스라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긴, 저 때는 아직 "KBS"라는 이름의 방송사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대한뉴스를 아무 거나 골라서 틀어 보면 건전가요나 행진곡 풍의 촌티 풀풀 나는 BGM에, 감정이라고는 싹 빠진 국어책 읽기 같은 건조한 남자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정책 홍보가 아니라 뭔가 초등학생 선생님이 애들 가르치는 듯한 설명충 스타일이다. "그럼 태백선 열차를 타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멘트 생산지인 어디어디로 가 보시겠습니다." 같은 식. 무지한 백성들을 선진조국 창조 건설의 역군으로 계몽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_=;;

정말 격세지감 그 자체이다만, 196, 70년대에 농촌 깡촌 오지에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저런 거라도 필요했다. 옛날에는 깜깜한 방에서 무성 영화를 틀어 놓고 "우리나라 바깥에는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답니다"라고 변사가 따로 설명해 주면 사람들이 입 헤 벌리고 구경했으며, 소파 방 정환은 영사기도 아니고 영사기 내지 프로젝터의 전신인 환등기만 갖고도 온갖 덕질을 했지 않던가. 게다가 국내에서 영화는 텔레비전보다 더 일찍부터 컬러로 바뀌기도 했다.

개나 소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게 순식간에 인터넷 상으로 퍼져나가고 1인 방송 미디어까지 등장한 오늘날의 잣대로 그 시절을 그저 꼬질꼬질하다고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당시의 최첨단을 달리던 영화· 방송의 분위기가 저렇게 꼬질꼬질할 정도였으면 오프라인 사회 분위기는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거 기억 나시지 않는가?

허나, 집집마다 전화와 신문, 올컬러 TV가 싸게 보급되고 지식과 소식의 소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한뉴스는 존재 의의와 가성비가 급격히 떨어졌다. TV 뉴스로 진작부터 접한 나라 안팎 소식을 한참 뒤에 극장에서 대한뉴스로 뒷북으로 접하는 지경이 됐다. 그러니 대한뉴스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진작부터 거론되었으며, 얘는 그래도 1994년 말까지 꿋꿋이 만들어지고 상영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 어찌 보면 PC 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사라진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시기를 따지자면 방위병이 폐지된 때와 동일하며, 수인선 협궤 철도가 없어지기 딱 1년 전의 일이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은 방송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24시간 방송이 시작된 것 자체가 21세기부터..). 그리고 기술과 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생방송이 많았고, 영화는 후시녹음이 많았다. 아니면 똑같이 후시녹음을 하더라도 후시녹음을 한 어설픈 티가 요즘 영상물보다 훨씬 더 났다. 배경은 너무 조용하고 배우 목소리는 울리고 입 모양 씽크가 안 맞는 등.

철도 분야의 대한뉴스를 몇 편 보니, 열차 달리는 장면에 같이 삽입된 열차 소리는 십중팔구 화면 속의 그 열차가 실제로 달리는 소리가 아니다. 화면엔 디젤 기관차 내지 지하철 전동차가 달리는데 소리는 증기 기관차 달리는 '쉭 씩'인 식이다. 이런 것도 당연히 화면 따로 소리 따로인 후시녹음이다.
베테랑 기관사가 역을 저속으로 통과하면서 통표를 확 낚아채거나 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끝으로.. 옛날에 영상물에다 자막은 어떻게 만들어 넣었을지가 궁금해진다. 텔레비전 화면에 넣는 방법과 영화 화면에 넣는 방법이 서로 달랐을 텐데.
옛날에는 그냥 닥치고 어설픈 흰색 손글씨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체는 활자로 바뀌고 흰 글씨 주변에 검은 테두리가 추가되었다.

요즘은 자막도 흰 별도의 배경에다가 검은 글씨 형태로 넣는 추세이다. 그래서 배경이 없이 고딕· 둥근고딕· 엑스포체 같은 옛날 서체로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딱 보면 1990년대 영상인 게 느껴진다. 아래의 자막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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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7/03/16 08:35 2017/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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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색소폰 연주

아시다시피 본인은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들었다.
성경의 사무엘이 '사무엘아' 음성을 두 번 듣고 나서 세 번째 들은 뒤엔 출처를 공부한 뒤 들을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네 번째 '사무엘아' 음성을 들은 뒤에야 하나님의 음성에 제대로 응답하게 됐다.

그것처럼 나도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를 두 번 듣고 나서 세 번째 들은 뒤엔 출처를 인터넷으로 검색했고, 다음엔 들을 준비를 하고 새마을호를 탔다. 네 번째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철도 안에서 거듭났고 철도를 내 개인의 교통수단으로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뒤로 나는 Looking for you를 주선율, 주요 화음, 대략의 비트까지 다 청음 채보했다.
콩나물 대가리를 한땀 한땀 입력해 넣고 원곡과 대조하면서, 어느 기보가 원음에 더 근접한 정확한 기보인지를 고민하면서..
Looking for you 작곡자의 마음과 심정을 이해하는 자가훈련을 했다.

이 음악의 어느 부분이 나를 감화시켜서 나를 철덕으로 만들었는지, 왜 이런 결과가 야기될 수밖에 없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Looking for you의 주선율을 만든 악기 공부를 (잠깐 동안이지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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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성탄절, 우리 교회 복음 전도 집회에서.
아, 교회에서 Looking for you 연주했다는 얘기는 아님. 오해 마시길..

2. 나의 등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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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서식이 있으니 올랐던 산들의 높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매우 좋다.
이것도 중복 정보 없이 정규화가 잘된 구조로 구축하려면 산에 대한 테이블과 등산 세션과 관련된 테이블을 분리하긴 해야 하는데, 엑셀로 그것까지 하기에는 많이 귀찮지.

입산 지점에 최종적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서 어디로 하산했는지,
산 속에서 주로 본 게 무엇인지, 바깥 경치로 주로 무엇을 봤는지,
정상에는 무엇이 있었고 어떤 형태였는지, 산이 행정적으로 어떤 관리를 받고 있는지 같은 것을 일목요연하게 조회 가능하게 했다.

3. 코딩

그럼 이제 일상생활 얘기로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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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화면을 비추느라 명암차 때문에 주변이 어두워진 거지, 촬영 당시에 책상 주변은 실제로는 저 사진만치 어둡지 않았음)
화면이 미치도록 광활한 데스크톱 컴과,
눕든지 앉든지 편한 자세로 침대, 책상, 자동차 등 아무 데서나 사용 가능한 놋붉 컴 중
뭘로 코딩을 할지가 매우 고민된다. 일종의 행복한 고민.

참고로 노트북의 화면 전체와, 데스크톱 모니터의 오른쪽에 떠 있는 작은 프로그램 창하고 화면 크기(화소 수)가 동일하다. ㄲㄲㄲㄲㄲㄲㄲㄲ 미래의 리드미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날개셋 편집기의 화면임.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그림과 동영상들이 화질이 얼마나 구린지를 까발리고 정죄하는 마법의 모니터다.

역시 프로그래머에게 화면이 큰 건 컴퓨터에게 램이 많은 것과 같다~! 정말 다다익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꾸 창 전환이나 스크롤 하는 게(개발툴, 웹브라우저, 에디터, msdn 등등) 컴터로 치면 메모리 부족해서 하드디스크 스와핑 하는 것과 개념적으로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혼자 3~5K급으로 해상도가 너무 높은 모니터 하나냐, 혹은 걍 2K 해상도급 모니터 듀얼/트리플 중 어느 게 더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어 보인다.
참고로 배(선박)와 DLL(Windows 파일..;; )은 작은 놈 여럿보다는 큰 놈 하나가 성능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일체형 PC는 간지나고 공간 덜 차지하고 지저분한 선 없이 콘센트 하나만 꽂으면 모니터 본체 스피커가 전부 OK이니 정말 좋긴 하다.
다만, 이렇게 한번 세팅된 이후로 부품 업그레이드가 어려울 것이고 발열 제어도 곤란하니 엔드급 게임은 무리일 것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철도 차량의 동력분산 / 동력집중의 차이와 비슷해 보인다. 일체형 PC가 동력집중이 아니라 분산식에 대응한다. 그리고 트렁크· 캐빈· 엔진룸 따위의 구분이 없는 원박스 형태의 자동차도 일체형 PC와 비슷한 컨셉이라 볼 수 있겠다. (공간 활용 최대, 그러나 정비가 어렵다는 점에서 비슷)

4. 시간 부족과 일정 압박

CPU 클럭 속도 향상의 병목은 발열이고, 자동차 속도 향상의 병목은 공기 저항이다. 스마트폰 성능 향상의 병목은 배터리 용량이다.
그리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에서 최악의 병목은 잠으로 인한 시간 부족 되시겠다.
난 오랜 경험상 매일 6시간이 정말 마지노선이고 그 이하로는 도저히 못 줄이겠다. 결국은 낮에 졸음과 집중력 저하로 인해 밤에 안 잔 것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 -_-;;

어지간한 고시 준비생만치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며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이래 가지고 날개셋 9.0은 언제 완성할 것이며 박사 졸업은 도대체 언제 하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보다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선호함. 눈 감았다 뜨면 그냥 6시간이 싹 워프되고 개운 가뿐하게 일어나긴 한다. 천성적으로 남 눈치 안 보고 앞날 걱정을 미리 안 하는 체질이어서 그런지 스트레스는 적게 받는 편. 불면증 같은 게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

단지 잠을 더 줄일 수가 없을 뿐임.
이것도 기초체력 문제인가..? 잠 적으신 분이 굉장히 부럽다.

5. 덕질

논문 쓸 '꺼리, 아이템'들을 만들어내는 활동은 재미있지만 (코딩, 시스템 구현, 실험 등등)
그걸로 온갖 형식 갖춰서 실제로 논문을 쓰는 건 꽤 성가시고 번거롭다. =_=;;
그래도.. 잔인한 주인이 무자비하게 내린 온갖 복잡한 재귀호출 뺑뺑이와 자질구레한 메모리 할당· 해제 요청들을 컴퓨터는 진짜 순식간에 전광석화처럼 해낸다.

소프트웨어의 추상화 계층이 올라가면 코드를 유지보수하고 확장하기는 편해지지만 컴퓨터의 입장에서는 뭘 하나 하려 해도 포인터가 가리키는 대로 메모리를 여러 단계 요리조리 따라가야 하고, 캐시 미스가 나면 더 느린 메모리에 갔다가 와야 된다.

사용자가 '확인'을 누르거나 키보드를 하나 눌러서 화면에 글자 한 자가 찍힐 때까지 컴퓨터가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일의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물며 실존하지 않는 종이, 실존하지 않는 음악과 영상이 존재하는 것 같은 경험을 사람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컴퓨터는 얼마나 많은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있을까?
프로그래머로서 이런 컴퓨터가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글자를 온통 배배 틀고 배경과 뒤섞어 놓은 일명 '캡챠'는 사람은 곧바로 알아보지만 컴퓨터가 알아보지 못하는 (걸 지향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사람이 도무지 판독할 수 없는 랜덤 노이즈로 보이는 QR 코드 같은 건 컴퓨터가 곧바로 판독해 낸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주석과 들여쓰기가 잘 된 코드와, IOCCC용 난독화 코드는 컴퓨터가 해석하는 데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걸 생각해 봐도 사람과 기계는 근본적으로 특성이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6. 컴퓨터 세팅

개인용 컴퓨터를 새로 지르거나 회사 같은 데서 내 업무용 컴터를 받았을 때 내가 기종을 불문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 키보드 속도를 최고속으로 맞춘다. 보통 디폴트 값은 반복 속도가 늘 최고속에서 한 단계 낮은 걸로 돼 있는데.. 난 이게 최고속으로 돼 있지 않으면 답답하고 불편해서 못 쓴다. 키를 이 정도 시간 동안 눌렀으면 cursor나 선택 막대가 어느 정도로 이동해 있을 거라는 예상치와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재입력/반복 키보드 속도 조절 체계'는 IBM PC AT 시절 이래로 변함없이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이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설치한다. 내 홈페이지에 대외적으로 공개돼 있는 최신 버전이 아니라,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개발 중"인 진짜 최신 버전이다. 한글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입력 가능하고 그 구닥다리 16*16 비트맵 폰트를 화면으로 좀 봐야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 Looking for you.mp3 복사해 넣는다. 음악 파일 중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무조건 제일 먼저 집어넣는 파일, 특히 사운드 테스트용으로 쓰는 파일은 답정너 looking for you이다. 이게 흘러나와야 내 개인용 컴퓨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노트북 내지 미니키보드들의 왼쪽 아래를 보면 Ctrl의 오른쪽에 Alt가 있는 것은 보장되지만 이것 말고 Fn, Win, 한자 키 같은 것은 생각보다 배치가 제멋대로이고 파편화가 심하다. 규격이 통일돼 있지 않다. 이것 때문에 한 키보드에 적응되고 나면 다른 키보드에서 modifier 키를 잘못 누르기 쉬워서 몹시 불편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더.. 요즘 Windows 10은 사용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안 주고 시도 때도 없이 강제 업데이트를 해서 꺼져야 할 때 바로 안 꺼지고, 켜져야 할 때 바로 안 켜지는 게 굉장히 싫다. 대규모 업데이트가 너무 잦고, 심지어 업데이트 후에 컴퓨터가 맛이 가는 것도 몇 번 겪어서 하기가 더욱 싫어진다. 그리고 컴퓨터를 오래 쓰고 나면 언제부턴가 시작 메뉴에서 앱들 검색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기 시작한다. 나만 이러는 거 아니지?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서 이더넷 유선 랜도 데이터 요금이 부과되는 네트워크라고 속이는 레지스트리 패치를 적용시켰다. 그래야 운영체제가 제멋대로 깽판을 안 부린다. 제아무리 보안 업데이트도 인터넷 패킷 종량제 앞에서는 깨갱 할 수밖에 없으니까.

7. 삼각형의 오심을 그리는 프로그램

작년이니 엄청 옛날에 이미 작업된 사항이긴 한데, 막 중요한 건 아니어서 이제야 여기서 공지를 하게 됐다. 홈페이지의 '옛날 자료실'에 올라와 있는 '삼각형 오심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거의 10여 년 만에 기능이 크게 추가되고 보강됐다. 수학 강사인 교회 지인의 제안으로 행해진 작업이다.

삼각형의 오심이야 간단한 기하 알고리즘으로 (1) 두 직선의 교점과 (2) 두 변이 이루는 각을 이등분하는 변만 구할 줄 알면 컴퓨터로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삼각형은 2차원 평면도형 중 가장 간단한 물건인데 얘의 모양에다 중심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도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구체적인 개선 사항은 해당 웹페이지에도 나와 있지만, '구점원'이라는 걸 그리는 걸 추가했다. 삼각형 세 변들에 대해 변의 중점으로만 이뤄진 작은 삼각형의 외심원을 구한 것인데, 이게 또 방점과 접하고 수심을 지나기도 하는 등 기하학적인 의미가 장난이 아니다. 이걸 제6심이라고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심을 제외한 수심, 구점원 중심, 무게중심, 외심 이렇게 네 점은 언제나 한 직선상에 있다는 게 보장된다..;; 이 오일러 직선을 그리는 기능도 추가했다.
또한 삼각형의 꼭지점만 마우스로 끌어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삼각형 내부를 끌면 삼각형이 통째로 움직이게 했다. 한 점이 삼각형의 내부에 있는지 판별하는 건 세 점의 방향성 판별 공식을 이용해서 구현 가능하다.

웹브라우저에서 윤곽선 폰트 에디터까지 구동하는 세상인데 이런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쯤은 이제 플래시조차 필요 없고 HTML+(JS)로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엔드 유저의 관점에서는 EXE 형태의 프로그램이 점점 필요 없어지고 있긴 한데, 일단 내가 아는 skill은 C++과 Windows API이니 저렇게 간다. GDI 말고 다른 API를 동원해서 선들을 안티앨리어싱도 좀 시킬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완벽하게 만들려고 욕심 부리면 뭐 한도 끝도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26 19:33 2017/02/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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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빨고 영상물 만드는 실력은 일본이 무척 탁월한 편이니 먼저 일본 얘기부터 좀 하겠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 환타 CF 시리즈가 떠오른다.
A반 가죽점퍼(록커) 선생부터 시작해서 아침 멜로 드라마 여선생까지 골고루 나오고, 별난 선생 때문에 학교 생활이 참 고달픈데 그래도 결론은 기승전..환타이다. 나중에 번외편으로 교장 선생편도 있었다.
DJ 선생은 학생에게 문제 풀이를 시킬 때도, 그리고 풀이의 정오 여부를 알려 주기 전에도, 심지어 교장 선생이 훈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완전 음악에 심취해서 지내더라.

뭐, 그래 봤자 환타는 인공 색소와 설탕이 가득하고 마치 콜라만큼이나, 스팸 가공육만큼이나 몸에는 별로 좋을 게 없는 탄산음료일 뿐이겠지만, CF에서는 한자 선생이던가? '트로피칼 후르츠'를 강조하면서 열대 과일을 표방한다는 선전을 잔뜩 했다.

그리고 공익 광고 중에 이런 게 있었다.
학교에서 동물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어떤 애는 도대체 뭐가 씌였는지 흰 도화지 몇 장째를 온통 새까맣게 도배할 뿐이다. 장난 깽판을 친다고 보기에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눈이 초롱초롱하니, 차마 대놓고 혼내지도 못하겠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는 그 아이에 대해 정신 감정을 의뢰한다.
그런데, 각각의 종이들을 가로 x칸 세로 y칸으로 연결하니까 아이는 무진장 큰 시꺼먼 고래를 그리고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 아이의 잠재성과 창의성을 어른의 잣대로 단정짓지 말라는 뭔가 의미심장한 광고였다.

다음으로, 토요타보다는 아니고 '혼다'라는 일본 자동차 회사에서 2000년대에 창의성과 근성이 돋보이는 2분짜리 CF를 두 편 선보였다.
혼다 시빅(Civic)이라는 아반떼급 준중형차 CF는 무슨 합창단이 자동차의 엔진음과 주행음, 바깥 소음을 사람의 발성 기관만으로 흉내 내는 궁극의 비트박스를 시전했다. 컴퓨터에서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아스키 아트 텍스트 파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심지어 씨디를 집어넣어서 카오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까지도 비트박스로 재현했다.

그리고 혼다 어코드(Accord)라는 쏘나타급 중형차 CF는.. 근성 도미노 스타일이다. 자동차 부품을 일렬로 쭈욱 늘어놓고 하나만 툭 건드려 주니까 나사가 돌아가고 나사 하나의 무게 차이 때문에, 기름 몇 방울의 무게 때문에 시소가 기울고 뭐가 툭 굴러 떨어지는 장치가 열몇 개씩 이어진다. CG가 아니라 진짜 다 실제로 세팅해서 촬영한 것이며, 세팅을 처음부터 전부 갖추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을 정도의 극도의 근성의 산물이라고 한다.

옛날에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뮬란>에서 황제의 대사 중에는 "A single grain of rice can tip the scale. (쌀 한 톨의 무게 차이만로도 저울이 기울어질 수가 있는 법일세)"가 있었다. 영화에서 그 대사는 뮬란이 바로 전쟁이라는 저울의 승패를 가르는 그 쌀알이 될 거라는 복선이다만, 저 CF는 황제의 그 대사의 물리적인 실사판이나 다름없었다. ㄲㄲㄲ 다만, 타이어가 관성만으로 오르막을 저렇게 오른다거나 기름통이 너무 잘 굴러가는 건 현실성 개연성이 좀 떨어져 보여서 어색하다.

저것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근성 도미노의 원조가 있었다. 바로 지금은 KCC로 바뀐 고려 화학의 '고려 페인트' CF다. 고려 페인트 광고는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참신함과 기발함 덕분에 굉장한 호평을 받으며 회사 이미지의 제고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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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페인트의 도미노 CF는 원조가 첫 등장한 게 1989년이고 2차가 1992년, 마지막 3차가 1996년으로, 총 세 종류의 버전이 있다. 저 엄청난 양의 도미노는 CG가 아니며 실물을 직접 만들어서 쓰러뜨리며 찍은 거라고 한다. 세팅 하느라 굉장히 고생 많았을 듯. 1992년 당시의 신문 기사를 보면, 2차분 CF의 경우 8만 개에 달하는 도미노 칩을 사용해서 제작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도미노는 개념상 카드섹션 매스게임의 무인 버전뻘 되지 않을까 싶다. =_=;;

사실, 1990년대 초는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애니메이션 업계에서조차 CG가 이제 막 슬금슬금 도입되던 과도기 단계였다. 가령, 월트 디즈니를 예로 들자면, 1989년에 나온 <인어 공주>가 CG가 전혀 없이 100% 셀 애니메이션만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작품이고, 그 뒤 <미녀와 야수>, <알라딘>에서는 배경부터 시작해 CG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그 시절의 CF는 아직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실사 제작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19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기술 격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우리나라 역시 기상천외한 CG 합성 CF들이 곧 등장했다. 당장 떠오르는 건 하이칼스(1993) Alias라는 워크스테이션급 CG가 온통 도배가 돼 있다.

비주얼 다음으로 청각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고려 페인트의 1차 CF에서는 도미노가 쫙 넘어지는 동안의 BGM은 그냥 피아노 건반으로 음이 또르르르르르 올라가는 소리 위주이다. 마치 보글보글에서 잔기가 하나 늘었을 때 나는 소리(점수가 일정 숫자 돌파, 혹은 EXTEND 보너스)와 비슷하게 들린다.
2차에서는 '도도 도 솔파미레도'로 시작하는 C장조 전자음 BGM이 추가되어서 음향이 더 미려해졌으며,
3차에서는 도미노가 실사 사진으로 바뀌는 효과가 더 부각되고 BGM은 뭔가 코러스가 곁들어진 명랑한 외국 팝송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3차 CF에서 나오는 A플랫 장조의 짤막한 BGM을 무척 좋아했다. 저런 음악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이 역이 고려 페인트 CF의 일부인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도미노 CF에 대해 검색하던 과정에서 지금까지 끊어져 있었던 연결 고리를 되찾았다.
고려 페인트 CF에는 클래식 음악이 쓰였고 출처가 뭐냐 하면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 솔베이그의 노래>라고 각종 지식인, 개인 블로그, 음악 음원 사이트에 잔뜩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1996년도의 신문 기사에도 올라 있다.

그런데... 저건 도대체 고려 페인트의 어느 CF에 들어간 음악이지?? 아시는 분?
내가 듣기에는 2차 버전, 3차 버전 그 어느 것도 여자 솔로인 "솔베이그의 노래"하고는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는데?

딱 들어 봐도 CF에 들어간 음악은 명랑한 장조이지만 저 원조 클래식은 단조풍이다.
원곡을 리메이크 했다고도 볼 수 없고 그냥 완전히 다른 음악이다. 저 세 편의 고려 페인트 도미노 CF에는 클래식이 들어간 적이 없다. 3차 CF에 들어간 그 명랑한 BGM의 정확한 출처를 알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 전에 한번 다루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역대 공익 광고들을 또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내가 인생에 대한 기억이 본격적으로 생겨서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바뀐 게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이다. 그래서 그 시기에 텔레비전 화면을 본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시절엔 환경 오염, 반공, 마약 등을 소재로 하는 공익 광고는 강한 훈계조에 섬뜩하고 무섭기로 악명 높았다.

시꺼먼 감방 같은 배경에서 "마약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가 흘러나온다든가(1989) 올가미가 휙휙 던져지기도 하고..(1991) 국민 소득 4천$, 소비 수준은 2만$. 풍선이 뻥 터지는 과소비 추방 광고(1989)까지. 어린애들은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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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초딩 시절, "두껍아 두껍아..."로 시작하는 요 1990년작 CF를 직접 본 기억이 있다. 음산한 BGM과 함께 흰 바닥에서 시꺼먼 얼룩이 불어나는 게 공포 그 자체였다. 마약 광고보다도 더 무서웠다. ㅠ.ㅠ 하물며 저 얼룩이 블랙이 아니라 핏자국을 표방하는 레드였다면 아마 최악의 안구 테러가 됐을 것이다.

사실은 고려 페인트 이전에도 도미노를 소재로 한 광고가 있었다. 바로 도미노 블럭이 쓰러지는 걸 범죄자들이 소탕되는 것에다 비유한 1989년도 공익 광고이다. 본인은 이걸 직접 본 기억이 있다.
20년 남짓한 세월 동안에도 영상 문화의 흐름이라는 게 정말 확 달라졌다.

그 중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고퀄의 공익 광고는 "필름 역주행"(1991, 1분)이다. 처참한 정면 충돌 교통사고가 난 동영상을 뒤로 돌려 보니 결국 발단은 질펀한 술자리. "필름은 되돌릴 수 있어도 생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와 함께 영상이 끝난다. 이건 당시 무슨 국제 광고 공모전에서도 입상했다고 한다.
시대 정황상 역시 CG의 도움을 그다지 받지는 못했을 텐데 설마 자동차 두 대를 진짜로 충돌시켰을까? 어떻게 만들었까 싶은 생각도 든다. 8만 개짜리 도미노 블럭이야 그래도 생명의 위협이 없으니 근성으로 만들었다 치더라도. 아니면 충돌해서 운전자가 튕겨 나가는 부분만 실제 배우 대신 정교한 마네킹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만들어진 음주운전 추방 광고는.. 아주 경쾌한 BGM과 함께 맥주잔이 출렁거리면서 도로를 질주하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걸로 끝난다. 묘사가 훨씬 덜 간접적인 형태로 바뀌었으며, 앞부분만 봐서는 오히려 맥주 상업 광고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결말부에는 역시 "즐거우셨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운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나온다.

이렇게 내 기억에 남는 CF들을 좀 늘어놓아 보았다.
작곡가, 기자, 작가(글/사진), 영화 감독처럼 뭔가 창의력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인 '명작운', '특종운'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난 영상이나 음악은 아니고 아시다시피 글과 코드를 주로 창조해 왔다. 하지만 음악 쪽도 언젠가 내가 만든 곡에 내가 꺼뻑 가는 작곡을 하는 순간이 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프로그램 쪽이야 난 날개셋을 계속 만들지 않았으면 진작에 철도로 전공과 직업을 바꿨을 수도 있다. -_-;; 어쩌다가 약을 단단히 빨고서 이렇게 아무도 관심 안 갖는 분야의 엽기적인 프로그램의 창조자가 됐는지 모르겠다.
여러 분야의 글 중에서 기독교/성경 쪽만 예를 들자면, <음란한 성경은 가라>에 아마 평생의 명작운이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투입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정말 독보적인 대박을 쳤으며 킹 제임스 옹호 진영과 반대 진영 모두에 내 이름을 알렸다.

페인트 광고에 근성 도미노가 나오고, 자동차 광고에 궁극의 부품 도미노와 합창단 비트박스가 나오는.. 그런 급의 명CF가 앞으로 또 국내외에서 얼마나 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본인 역시, 30여 년 평생에 뭔가 똑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암기해서 치는 시험에서 남보다 앞서고 뭔가 재미를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남 안 하는 짓, 창의적인 분야에서 뭔가를 기여하고 명성을 얻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게 꼭 부귀영화를 가져오는 분야는 아니어서 문제이긴 하다만=_=, 난 앞으로도 계속 그 방면을 파면서 살게 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9 08:35 2016/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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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을 검색해 보니 5년도 더 전, 굉장히 옛날에 한번 텔레비전 방송 사고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말 그대로 출연자가 저지른 실수 위주로 유명한 국내 사건들을 나열했었다.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류를 해 보고자 한다. 이유와 원인이야 어쨌든 최종 시청자들이 방송사에서 의도하지 않은 화면을 보게 된 일체의 사건들을 일컫는다.

다음 카테고리들은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며, 사건의 심각성도 그에 비례해서 더 커진다. 실수가 아니라 범죄에 더 가까워진다.

1. 출연자의 실수

생방송 중에 갑자기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출연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터져 버리는 귀여운 유형이 많다.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파리가 앉았습니다"(2001)가 이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예다. 한번 웃음병이 도져 버리면 마치 비행기가 실속에 빠져 버린 것처럼 출연자들이 헤어나오기가 어려운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MC가 나름 재치와 센스를 발휘해서 애드립을 구사한 것이었을 텐데, 오히려 그게 게스트 출연자의 웃음 고문을 더욱 가속해 버렸다. =_=;

다만,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뉴스 기자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하는 방송사고도 있었다. 이건 재미있는 사고라고 볼 수는 없다.
출연자의 실수로 인한 방송 사고는 관계자가 자기 방송사 내부에서 징계를 당하는 결과는 야기할 수 있는 반면, 그래도 대외적으로 누가 경찰서 정모를 한다거나 공권력의 철퇴를 받지는 않는다. 사안이 제일 가볍다.

2. 출연자의 고의 난동

국내에서는 카우치 성기 노출(2005)이 이 카테고리에서는 아마 제일 충격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방송에 나오지도 못하고 고생 많이 해야 했다. 그리고 쇼 프로는 무조건 생방송이 아니라 최소한의 사전 검열은 가능하게 5분 지연 전송을 하게 제도가 바뀌었다.
이건 스샷을 올리기가 좀 민망하니 그냥 링크로 대체하겠다. 오죽했으면 이 장면을 북한 방송 화면에다 합성하여 "천하의 개쌍놈들" 짤방이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또 외국에서는 생방송 중에 리포터가 갑자기 권총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건 실수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3. 외부인의 난입

여기서부터는 일단 해당 TV 프로의 제작과 출연에 관여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다. 방송 중 외부인의 난입은 비행기 사고로 치면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와 비슷한 격이다.
이 분야에서 지존으로 꼽히는 국내 방송 사고는 두 건이 있다. 먼저 "귓속에 도청장치" 사건(1988). 이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엽기적인 사고인지라 외국에서도 소개되었다. 어떻게 겁대가리를 상실하고서 생방송 중인 뉴스 스튜디오로 침입을..? 하지만 그래도 심하게 악의적이지는 않은 정신병자의 난동일 뿐이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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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보면 화들짝 놀란 스탭이 괴청년을 제압하여 바닥에 철퍼덕! 패대기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또한, 괴청년은 끌려 나가서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다시 한 번 "도청장~~!@#!@"이라고 단말마의 비명을 처절하게 외친다.

이 사건과는 달리, 만민 중앙 교회 MBC 침입 난동(1999)은 사안이 더 심각하다. 일개 종교 집단의 시위로 인해 공중파 방송국이 털리고 정규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해프닝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외부인의 물리적인 난입보다 더 ㅎㄷㄷ한 단계가 있으니 바로 그것은..

4. 전파 납치

컴퓨터에 해킹이나 패킷 스니핑이 있듯이, 이건.. 방송국이 멀쩡하게 송신해 준 신호를 가로채서 다른 것으로 대체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테크닉이다. 이것은 방송계의 위조지폐 내지 비행기 하이잭이나 마찬가지이며, 통상적인 방송 사고를 아득히 초월하는 범죄 행위이다. 특히 북한과 대처 중인 우리나라에서는 전파를 갖고 장난 치는 짓을 더욱 무겁고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단순히 기존 신호를 교란시키고 수신을 방해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신호로 대체하는 것은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고 기술적으로도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음성은 그렇다 쳐도 영상은 바꿔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전파 납치는 국내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에서 벌어진 '맥스 헤드룸' 전파 납치 사건(1987)이다. 영화가 방영되던 텔레비전에서 몇 분 동안 갑자기 기괴한 배경에 가면을 쓴 웬 정신병자의 기괴한 엽기 퍼포먼스가 흘러나왔으니 시청자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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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괴전파가 대략 어느 지역에서 발신되었는지 정도만이 어렴풋이 파악됐을 뿐, 누가 왜 저질렀는지 범인은 끝내 잡히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저 정체 모를 아저씨는 방송국에 가지 않고, 방송국 기자를 만나지 않고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그럭저럭 실현했다. 하지만 어렵게 기껏 집어넣은 화면엔 동요 가사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따위는 없었다. 가면을 쓴 얼굴에 알아듣기 힘든 기괴한 음성, 그리고 끝에는 웬 SM스러운 스팽킹+신음 장면만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방송· 통신 내지 전파 공학이라고 해야 하나.. 저런 것도 특히 처음 개발되고 등장하던 당시엔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이긴 했겠다. 난 저런 건 진짜 새까맣게 모른다.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근원을 파헤치려면 물리학의 전자기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이건 뉴턴 고전 역학도 아니고 손에 잡히지 않는 물질 세계의 특성에 대해 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어서 GG를 쳐 버렸다.

라디오에 FM과 AM이 왜 존재하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중파· 단파 방송은 무엇이고 케이블 TV, 위성 TV, DMB는 무엇인지, 옛날에 무전기는 어떤 원리로 동작했고 지금의 휴대전화와는 기술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지금의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과는 차이가 무엇인지, UHF/VHF는 무엇인지...
터널 안에서도 음성· 영상 신호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자동차 내비는 터널 주행 중일 때 보정을 어떻게 하나?) 그러고 보니 옛날에 무전기는 송· 수신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면 실시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턴 방식!) 말을 하는 쪽이 내 말이 끝났음을 알리기 위해 '오버'라고 해 줘야 했다. 그거랑 지금 무선 전화의 기술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등..;;

그래도 이런 분야에도 괴수 천재는 분명 있을 것이다. 옛날엔 정말 전파를 갖고 노는 사람은 자동차 기술자만큼이나 가히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했을 것 같다.
신호 상태가 안 좋거나 수신되는 신호가 아예 없을 때는 옛날에는 수상기를 통해 그저 랜덤한 아날로그 white noise와 치지지직 소리만을 접할 수 있었던 반면, 요즘은 JPG artifact를 본다. 과연 디지털 시대를  실감한다.

*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본인은 11년쯤 전에 공중파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 있음. ^^;;

Posted by 사무엘

2016/01/18 08:25 2016/01/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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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BC 뉴스데스크

나무위키를 돌아다니다가 거의 성지순례 급의 진귀한 동영상을 발견했다. 바로, 역대 MBC 뉴스데스크 오프닝 화면의 역사이다.

본인은 1981년에 제정되어서 87년까지 쓰였다고 하는 BGM을 기억한다.
현란한 신시사이저 소리를 배경으로 굵직한 "시~솔 ... !@#!!@# .. (옥타브 up) 솔 솔라 시~솔~" 쿠우우웅~~ 멜로디가 깔리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30년 전 그 옛날에는 고전과 현대 음악을 두루 섭렵한 방송 기획자가 심혈을 기울여 선곡한, 아주 참신한 음향 효과였지 싶다. 곡명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의 도입부를 또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곡이라고 한다.

물론, 본인이 TV에서 저걸 직접 본 건 거의 유치원을 갈까말까 하던 꼬마 시절이었으며, 선사시대(내가 직접 남긴 기록이나 기억이 없는)에서 역사시대로 옮겨간 직후였다. 1988년부터 음악이 딴 걸로 바뀌었다고 하니 올림픽을 하기도 전에 교체됐다. 난 그렇게 일찍 바뀐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 그래도 1987년 7월에 새마을호 전후동력 디젤 동차가 투입됐던 시절엔 아직 이 시그널송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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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바뀐 지 10년이 넘었지만, 저 MBC 영문 서체는 아직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영문 서체는 Banco라는 기성 서체이지만 '뉴스데스크'라는 한글은 영문 서체의 느낌을 보고 손으로 획을 그려 만든 일종의 캘리그래피?로고타입?에 가까워 보인다. 한글까지 포함된 완전한 문화방송체 서체는 90년대에 가서야 나중에 개발된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뉴스의 시그널송이 끝난 뒤에 광고 리스트가 뜨는 동안은.. 웬일인지 무슨 기계가 탈탈탈탈~ 돌아가는 소리가 나왔다. 윤전기를 돌리는 소리라고 하는데 그땐 왜 그런 소리를 넣었을까? 1990년대가 넘어서야 탈탈탈 소리 대신에 그때도 BGM이 나오게 바뀌었다. 그리고 광고 리스트도 세로쓰기가 아닌 가로쓰기 형태로 바뀌었다.

1980년대 아니랄까봐, 그때는 반드시 대머리 대통령의 근황부터 먼저 전하는 땡전뉴스 관행이 KBS와 MBC에 공히 있었던 듯하다. 그것도 모자라서 하도 '한편 이 순자 여사께서는...'이 관용구로 많이 등장하다 보니, 대통령 영부인의 호가 '한편'이라는 개드립도 나돌았다.

그때는 강 성구 앵커도 종종 보이는데... 맞다. 1988년 8월에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는 희대의 엽기적인 방송 사고를 경험한 그 앵커이다. 그 사람은 훗날 MBC 사장에 국회의원까지 역임하면서 굉장히 승승장구하고 성공했으나.. 2013년엔 음주운전과 식당 주인 폭행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2. 만화영화 주제가들

다음으로 만화 주제가도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는 성우에 대해서 글을 썼었는데 내용을 더 보강하겠다. 먼저, 요술 공주 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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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작곡하고 딸이 불렀구나(당시 10~11살).;;; 과연 음악 가문이다.
하긴, 아버지는 억만장자 수학 교재 저자이고 딸은 서울대 수학과 교수인 집안도 있고,
아들은 로토스코핑으로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고 아버지는 거기 들어갈 음악을 만든 집안도 있지. =_=;;

저건 내가 태어나기 거의 직전에 방영된 만화영화인지라, 본방을 직접 보는 건 불가능-_-했고 다른 경로로 주제가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듣자하니 엔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는데.. (제작사에서 주인공인 밍키를 어이없게 죽여 버렸다고..)
주제가는 가수의 목소리가 참 곱고 노래 잘 부른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을 했다. 곡도 동요스럽게 잘 만들었고.
그리고 밍키 주제가 같은 경우, 화음이 최하 3부 정도 있다. 가장 높은 화음은 원래 파트하고 같은 목소리가 아닌데 누가 같이 불렀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랜다이저 역시 본방을 보지는 못한 엄청 옛날 작품이긴 하다만.. 이거 주제가도 남자 목소리에 같이 곁들어져 있는 여자아이 목소리는 역시 동일한 정 여진이다.
명랑하고 경쾌하고.. 가사를 좀 바꾸면 거의 군가로 불러도 될 것 같다.
가사가 "빠~ 빠빠빠. ... 태양을 향해라 용기를 마셔라" 이렇게 시작하는데.. '용기'(courage) 다음에 '마시다'(drink)라니, 참 독특 희한한 연어 관계이다. 저게 뭔 말인지 궁금해진다.

다음으로, 세월이 흘러 본인이 직접 본방을 본 적이 있는 만화영화를 몇 개 소개하겠다. 말괄량이 뱁스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는 가수가 모두 조 갑경이다.
전자는 동영상의 화질은 좀 개판이다만, 별로 신경쓸 것 없고 노래만 들으면 된다. 어차피 그 당시의 영상 자체를 보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tiny toon adventures라고 영어 원판을 시청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노래는 정말 귀엽고 깜찍하고, 동심을 마음껏 자극하는 창법으로 부른 게 느껴진다.
후자의 경우, 당시 KBS2 텔레비전에서 금요일 저녁에만 방영한 국산 애니 시리즈였는데, 덕분에 본인의 불금 엔터테인먼트를 책임지곤 했다. 노래 자체는 남녀 듀엣이기 때문에 남자 가수도 포함돼 있다.

미국 만화영화 중에는 미키마우스에다가 슈퍼맨을 합친 컨셉인 듯한 마이티마우스도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MBC에서 1992년에 수입· 번역해서 방영을 했었다. 단선 선로에서 마주 보며 달려오는 열차를 마이티마우스가 양팔로 충돌을 막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열차의 속도와 무게를 생각한다면.. 정말 불가능 중의 불가능임. 미국 애니 특유의 극도의 과장 연출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저건 주제가를 익명의 어린이 제창으로 불렀다.

그리고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까지만 얘기를 하고 글을 맺겠다. 나디아는 일본 문화 개방도 하기 전에 이례적으로 세계관이 좀 심오하고 스케일이 크고 매니악한 일본 애니가 방영된 경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거 주제가를 부른 가수는 윤 익희이다.

텔레비전에 UHF와 VHF 채널 다이얼 두 개가 있고, 화면과 소리로 white noise를 볼 수 있던 아날로그 시절, 광고 리스트가 무려 세로쓰기로 뜨던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 다. ^^ 옛날에는 컴퓨터까지 갈 것도 없이 텔레비전만으로도 정말 최첨단 전자 기술이긴 했겠다.
아아~ 그리고 나도 작곡 스킬 좀!!! ㅜ.ㅜ 이런 음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고 부럽다. 이미 있는 곡을 편곡만 하는 건 자동차로 치면 그냥 정비나 튜닝에 불과하지만, 작곡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급일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12/07 19:35 2015/12/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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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국산화

1975년 12월에 현대 자동차에서 최초로 고유 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만들어 낸 건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말고 가전 분야에서 이에 필적하는 발전을 선도하던 기업은 바로 지금 LG 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였다.
라디오를 생산해 낸 노하우를 바탕으로 1966년 8월에 최초로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개발· 생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부품을 국산화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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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TV 한 대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물가로 6만 원이었다. 이건 자료를 찾아 보면 엥겔 지수 자체가 더 높던 그 시절에 쌀 무려 20여 가마니의 가치를 상회하는 엄청난 가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당시의 서민 경제력으로는 TV를 집집마다 장만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마을 이장님 집에서나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했다는 걸.. 개개인이 전화기와 DMB를 들고 다니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금성사는 그로부터 11년 뒤인 1977년에야 컬러 TV를 만들어 냈다. 그 당시에 국내 최고의 전자공학 공돌이들이 머리를 짜내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컬러 TV가 대세가 된 뒤에도 휴대용 소형 텔레비전이나 아파트 현관 인터폰 같은 CCTV는 가격이나 기술 문제 때문인지 여전히 흑백이 많이 쓰이곤 했다.

한 점에서 평면 화면을 표현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으니 초창기의 텔레비전은 아주 그냥 동그란 구면이었다. 컬러화를 이루고 채널 다이얼을 버튼으로 바꾸고 리모콘도 추가하고.. 이 모든 것 이상으로 텔레비전 관련 기술자들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당연히 이 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엔 완전평면 슈퍼플랫 브라운관 어쩌구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크기도 30~40인치까지 커졌다. 한편, 컴퓨터 모니터는 큰 게 20몇 인치대.

하지만 공간 복잡도가 무려 O(n^3)에 달하는 크고 무거운 브라운관으로는 그 이상 대형화는 도저히 무리였다. 아울러 재래식 아날로그 TV 규격의 해상도만으로는 화질도 대형 화면에 적합하지 않았을 테고.
오늘날의 스마트폰 같은 초소형 컴퓨터가 출현 가능해진 데엔 단순히 집적도가 높은 고성능 CPU뿐만이 아니라 얇은 디스플레이 소자도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거 발전을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옛날에 21세기를 상상했던 공상 과학 매체를 보면, 사람들이 첨단 기술이랍시고 텔레비전 전화로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하는데, 화면은 둥~그런 브라운관 화면인... 지금으로서는 참 웃지 못할 장면이 남아 있는 것이다. ㅎㅎ

이제 전세계에서 브라운관 모니터의 생산 중단이 임박했다.
브라운관 모니터에 떠 있는 운영체제로 어울리는 물건은 Windows XP 정도가 마지막이지, 2000년대 중반인 Vista와 그 이후부터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플로피 디스크도 새로 만들어지는 PC에서는 이때쯤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한때 한창 유행했던 컴퓨터 모니터의 '보안경', 그리고 전원을 켜면 화면이 서서히 fade in으로 화면이 나타나던 장면 따위도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 돼 간다.
그리고 컴퓨터에서는 VGA D-sub 단자도 점점 쓸 일이 없어지는 중이다. 한때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영상 신호를 디지털 대신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냈지만 지금은 다시 DVI 같은 디지털 규격으로 회귀한 지 오래이다. LCD는 브라운관보다 근본적으로 더 디지털 친화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2. 테스트 패턴

옛날엔 그래픽 모드로 진입하는 도스용 프로그램들은 실행 전에 비디오 모드를 묻거나 "이 글자가 잘 보이면 F5를 누르세요" 요청을 하는 게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 아날로그 영상물에서 이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물건은 바로 테스트 패턴이다. 현재 텔레비전이 신호를 잘 잡았고 색상을 옳게 표시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나타내는 색깔띠들이다. 흑백 명암과 RGB 각 축의 극단에 해당하는 고채도 색상들 조합이 쭈욱 나열돼 있다. 이것들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 규격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과 같은 단순한 색깔띠는 텔레비전보다는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을 때 맨 앞부분에서 잠깐 보였을 것이다. SMPTE Color bar (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s)라고 불린다.

오른쪽의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색깔띠는 필립스 전자에서 만들었는지 PM5544라는 코드명이라고 불린다. 옛날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정규 방송을 시작하기 15~20분쯤 전부터 '화면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송출하곤 했다. 배경 위로는 현재 시각과 금일 방송 순서 같은 것도 떴다.
화면 조정 중일 때는 BGM이 흘러나오는 편이지만, 정규 방송이 끝난 뒤에는 그냥 무음이나 단순 싸인파 소리만 들어있기도 했다.

디지털 통신에 온갖 복잡한 규격과 프로토콜이 존재하고, 아날로그 비디오 테이프에도 VHS나 베타맥스 같은 상반된 규격이 있었듯이..
아날로그 영상 신호 송신 방식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크게 NTSC와 PAL이라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NTSC를 쓰지만 북한은 우리와 다른 PAL을 사용하며, 이는 아마 의도적으로 일부러 다르게 정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에 흑백 TV를 기준으로 신호 체계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컬러 방식이 개발되었을 때는.. 기존의 흑백 TV는 여전히 자기가 인식하는 흑백 신호만 수신이 가능하게.. 즉 하위 호환성이 유지되게 흑백 TV가 사용하지 않는 주파수대에 컬러 신호가 교묘하게 추가되었다고 한다.
컬러 TV의 입장에서는 걍 RGB가 더 직관적이겠지만, 흑백 신호의 strict superset을 구성할 수 있는 HSL 방식으로 색을 표현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JPG 압축 과정에도 색깔을 RGB에서 HSL로 바꾸는 게 있었지 싶은데?

뭐, 본인은 전자공학 쪽은 문외한에 가까우며 지금은 구닥다리 아날로그 TV 송신이 진작에 중단됐을 정도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 이런 쪽 이야기가 은근히 흥미롭게 들린다. 디지털 고화질 TV의 등장과 함께 화면의 종횡비가 와이드로 바뀌었다. 아울러 컴퓨터 모니터도 이 추세를 따랐는지 16:9 와이드가 대세가 된 지 오래이다.

3. 옛날 방송과 지금 방송의 차이

지금은 TV 뉴스에서 볼 일이 없어진 코너가 최소한 둘 있는데, 하나는 아침 7시 뉴스를 하기 전에 나오던 편인 "세계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에 나오는 편이던 "주식 시세"이다. 이유는 당연히 정보의 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에서 굳이 그걸 선별해서 틀어 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날씨처럼 범국민적인 정보라면 모를까, 그런 건 그냥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찾는 게 더 빠르다.

온갖 기업들의 주식 시세와 함께 상하 ▲▼ 삼각형들이 뜨고 있을 때는 꽤 다양한 고퀄의 BGM들이 많이 흘러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밤 9시 뉴스를 하기 전에 흘러나오던 시보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해 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옛날에는 파란 배경의 추레한 아날로그 시계 CG에다가 PC 스피커 스타일의 기계음 일색이었다.
당장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방송사고 동영상을 찾아 보시기 바란다. 그 시절에 9시 시보가 어떠했는지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시계 그림은 점점 휘황찬란한 보석 CG로 바뀌었고, 광고의 비중이 커졌으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그냥 아날로그 시계 그림과 긴 차임벨 음향 자체가 삭제되었다. 영상 컨텐츠의 90% 이상은 광고이고.. 딱 정각 3초 전에 시각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형태가 됐다. 이것이 시보 영상의 변천사이다.

4. 대기업에서 옛날에 개발한 소프트웨어

이제 좀 더 보편적인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옛날에는 금성과 삼성(!!)뿐만 아니라 대우와 현대도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을 생산했고 심지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금성사의 경우 '하나'라는 텍스트 모드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어서 한때 관공서 표준으로 쓰이기도 했고 '하나 스프레드시트'를 만든 적도 있다. 나중에 Windows용으로는 '윈워드'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었지만 그건 망한 듯하고.

전자 제품도 함께 만드는 대기업에서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팀에서는 요즘 뭘 만드는지 모르겠다. 쟤들은 일단은 그래도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독립적인 패키지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게임 같은 걸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분야는 이미 시장이 다 포화했으며, 대기업이라고 해서 기성 IT 특화 업체들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나마 삼성 전자의 훈민정음만이 좀 오래 간 정도이다.

5. 옛날의 경제 구도

끝으로, 우리나라의 옛날 상황에 대해서 단순히 못 살고 못 먹던 시대라는 막연한 편견 이상으로 진지하게 고려할 점이 하나 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지금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었다. 돈 되는 건 뭐든지 닥치고 수출하고, 그렇게 어렵게 번 외화를 아끼려고 국가적으로 완전 목숨을 걸고 있었다.

자동차 산업을 육성은 해야 하지만 국내에 석유 소비(=외화 유출)가 너무 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동차의 내수 보급을 어느 정도 통제를 해야 했다. 듣보잡 신생 자동차 브랜드이다 보니 외국으로 수출은 아주 싸게 하고 반대로 손해분을 비싼 내수 가격으로 때우는 전략은 우리 같은 서민에게야 불리하지만 그 시절에 국가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전략이었다. 국제적으로 석유 파동이 벌어지니 저걸로도 모자라서 국가에서 자동차 산업 합리화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해야 했으니,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도 인위적인 규제가 있는 셈이었다.

또한 전에도 말했지만 겨우 신혼여행이나 배낭여행 명목으로 외국 나가는 건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유로는 자기 사비가 아무리 많다 해도 나라에서 여권을 만들어 주질 않았다. 양담배 추방하고 과소비 추방하고 국산품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잔뜩 벌였으며, 기업에서의 외제품 수입은 정말로 연구 개발에 도움이 되는 것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기업들은 자동차나 전자 기기를 만들 때 국가에서 밀어붙인 "x년 안으로 국산화율 y% 이상 진입" 같은 할당량을 반드시 달성하며 연구 개발을 해야 했다. 하물며 다른 외제품도 아니고 외제차에다가는.. 당연히 세금 왕창 때렸다.

지금이야 우리가 그렇게 폐쇄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OECD와 WTO 회원까지 된 주제에 그래서는 안 된다. 기술· 경제 방면에서 외국과 대등한 경쟁력이 있다면야 다 개방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불가피한 시장 왜곡과 보호도 해야 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외국에 나가고 외래 문물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정말 우리나라가 그만큼 잘살고 세계적인 경제력을 갖춘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1/08 08:32 2015/01/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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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월 30일, 5공 시절에 KBS 텔레비전에서는 6·25가 발발한 지 33주년과 휴전 30주년을 기념하여 소박한(?) 이벤트를 하나 편성했다.
남북 이산가족까지는 못 하더라도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라도(domestic) 원치 않게 헤어지고 연락이 끊어진 이산가족을 매스컴의 힘을 동원해서 찾아 보자는 1시간 반 남짓한 길이의 생방송 이벤트 프로그램이었다.

그랬는데..
이 프로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영된 이후,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상상도 못 한 이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막혀 있던 봇물이 터졌다.

KBS 사무국은 전화통이 불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일 밤과 새벽까지, 출연 신청도 없이 수천 명의 이산가족이 여의도로 찾아왔으며, 1회로 기획되었던 생방송은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 동안 연달아 방영되는 기염을 토했다.
쉽게 말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고(그 해 9월)와 아웅산 폭탄 테러(그 해 10월)가 벌어진 동안에도 저 프로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여기에라도 내 모습을 내보내서 어떻게든 가족을 찾으려고 여의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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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은 외신으로도 특종을 타고 보도됐으며 기네스북에 당당히 등재되었다.
TV에서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는 건 십중팔구 범죄자 수배밖에 없을 텐데 TV가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을 찾는 역할을 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태어난 해에 있었던 옛날 일이다. 그러니 난 당연히 직접 체험한 적은 없고,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편린 정도만 머릿속에 지니고 있다.
인터넷, 휴대전화, SNS 없고 전화 보급률도 더딘데 마침 5공 시절에 컬러 텔레비전은 딱 집집마다 보급되던 시절이었으니 기술적으로 시기가 적절했다.

어느 중년의 남매가 서로 다른 지방에서 전화로 연결이 됐다. 혈육 인증을 위해 이름과 가족, 가족사, 신체 특징 같은 걸 물었는데 그게 일치하자..
그냥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자지러지게 펑펑 울음을 터뜨린 장면이 내 기억에 남는다. 이건 그 어떤 연기로도 제대로 재연할 수 없을 것이다. 방청객도, 아나운서도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이 스튜디오에서 만나게 됐을 때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성경을 아는 분이라면 이쯤에서 요셉 이야기를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창 43:30, 45:1-3 등)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산천도 울어 버린 인간 드라마, 1983년 KBS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그때 TV 출연 신청이 총 10만 건 정도가 들어와서 그 중 절반인 5만 건 정도가 실제 접수되어 방송을 탔으며, 거기서 또 20% 정도 되는 1만여 가족이 상봉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혈육을 끝끝내 찾지 못한 이산가족도 굉장히 많았다는 뜻이다. 6·25가 가져온 분단의 비극은 이렇게 처참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 프로가 방영된 때로부터 또 무려 30년이 지나 있다.
참고로 국내 이산가족이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행사는 대한 적십자사가 민간 차원에서 1971년에 실태를 조사하고 1985년에 한번 추진했던 것 이후로는, 김 대중· 노 무현 정권이 돼서야 성사되었다. 규모는 아무래도 저 국내 이산가족 상봉에 비할 바가 못 되며, 상봉 후 재결합은 당연히 안 되고 이 사람들은 잠깐 만났다가 도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했다. =_=;;.

그 당시 북한에서는 남한 사람과 만나는 이산가족들을 행사 몇 달 전부터 평양으로 불러서 밥 잘 먹이고 잘 재워서 굶주린 티, 험하게 산 티를 최대한 감추고 내보냈다. 또한 남한 사람과 만났을 때는 “우리는 수령님, 장군님의 은혜로 잘 지내고 있다”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라고 세뇌 교육도 당연히 시켰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런데 님 달러 좀”이라고 뒷돈까지 삥뜯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런 궁색한 이벤트도 이산가족의 입장에서는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은지 모르겠다만, 겨우 저런 식의 상봉은 바람직한 통일을 정말로 염두에 둔 조치라고는 볼 수 없다. 남과 북이 정말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개방과 평화 통일을 할 의향이 있다면 상식적으로 그 전에 서신 왕래와 관광 여행부터라도 성사시켜야 하지 않겠나?

구원받은 지체들은 이 세상에서 헤어지더라도 다시 부활하고 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소망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4/03/13 08:26 2014/03/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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