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과 구룡산은 서울의 동남부에 있는 최대 높이 300m대의 산으로, 산중턱에 서울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산 남쪽 건너편도 여전히 미묘하게 인서울이기 때문에 등산로가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나들지는 않는다. 아차산이나 인릉산· 우면산 같은 산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남쪽에 울타리로 둘러진 헌인릉과 코렁 시설이 있기 때문에 산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것은 좌우 말단의 일부 등산로를 빼면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이 이 산과 관련된 역사· 군사상 특이 사항의 전부이다.
본인은 서울· 수도권 일대의 산들을 운동 삼아 틈틈이 답사하기로 마음먹은 게 2015년 초의 일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그 많은 산들 중에 제일 먼저 찾아갔던 산이 바로 이 산이었다. 지금처럼 미주알고주알 사진 기록을 남겨서 여행기를 블로그에다가 올리기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말로만 듣던 타워팰리스를 이렇게 산에서 내려다보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때는 대모산입구 역에서 내려서 일원 터널 근처에서 산을 오른 뒤, 대모산과 구룡산의 정상을 구경하고 구룡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그로부터 거의 3년 가까이 뒤, 지금은 산을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완전히 횡단했다. 수서 역 6번 출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예 KOTRA, 현대· 기아 사옥, 양재 IC 근처까지 도달했다. 과거에는 가장 돋보였던 고층 건물이 타워팰리스였지만 지금은 단연 롯데 타워이다.
대모산· 구룡산은 진지한 등산용 산보다는 낮고, 그냥 공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높아 보인다. 역사 유물 같은 거 없고(헌릉은 등산로에서 구경할 수는 없으니) 사실상 북부밖에 접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곳곳에 이정표와 쉬어 가는 의자 같은 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사용자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인상이 좋았다.
그럼 구체적인 여행 기록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수서 역 6번 출구는 아마 등산로와 가장 가까이 연결돼 있는 지하철역 출입구가 아닌가 싶다. 뭐, 처음에는 서울 둘레길로 시작하다가 '산 정상으로 계속 올라가기 vs 이쪽 지대만 둘레길 계속 걷기'라고 갈림길이 나오긴 한다.
단순히 대모산 정상까지 더 빨리 가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먼 수서에서 시작할 필요 없이 옆에 있는 일원 역 일대의 아파트 뒤쪽에서 산을 올라도 된다. 하지만 대모· 구룡산은 안 그래도 작은 산인데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대신, 정상까지 최장거리인 산책로 내지 등산로를 선택해 걷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산 속 풍경은 뭐 저렇게 흔한 가을 숲 속 모습과 별 다를 바 없었다.
1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걷고 나니, 공터와 함께 이 산에서 유일한 듯한 지붕 달린 정자가 나타났다.
대모산의 정상을 앞두고 드디어 산을 남북으로 분단시키는 철망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헌릉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대모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LH 강남 힐스테이트 아파트라든가 헌릉 근처의 비닐하우스 농장도 형체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무들에 가려져서 전망이 썩 좋지 않기 때문에 사진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 알림 표지가 관할 행정구역 표시와 함께 저런 식으로 만들어진 산은 대모산 말고는 없지 싶다.
정상이 암반으로 이뤄지지 않은 흙산의 경우, 정상 지점이 공터 겸 헬리패드인 편이다. 하지만 이 산은 그렇지 않고 헬리패드가 정상 근처에 따로 있었다.
헬리패드 근처에서는 이렇게 산 아래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산 높이가 정말 낮긴 하다.
여기는 헌인릉의 철망과 코렁 시설의 철망이 동시에 등장하고 바뀌는 지점이다. 후자 철망은 잿빛이며, 약간 더 높고 꼭대기에 날카로운 철조망도 달려 있어서 더 위압적이다.
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가는 길은 철망을 따라서 계속 이어졌다. 중간에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수직 이동도 많았다. 비록 낮은 산이긴 해도 무슨 '껌' 수준으로 만만하지는 않고, 다리의 압박이 적당히 느껴졌다.
구룡산의 정상에는 딱히 돌출된 표지석이 없고 이렇게 바닥에 발판 형태로 정상 안내가 돼 있었다. 그리고 헬리패드와 전망대가 같이 놓여 있었다.
본인이 산을 오를 때부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흐린 상태였다. 본인이 대모산을 넘어 구룡산의 정상으로 접근하고 있을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정상에 도달한 뒤부터는 우산이나 비옷이 필요할 정도로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산에서 비를 만난 건 2016년의 용마산· 망우산을 오를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럴 때 아까처럼 지붕 달린 정자라도 하나 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비를 피할 만한 시설은 아쉽게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등산 과정에서 날씨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는 풍경 사진이다.
구룡산 정상을 지난 지점부터 철조망은 드디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강남구와 서초구 경계 이정표가 나타났으며..
대모산이 정상 인근에 헬리패드와 보조 전망대(?)가 있던 것처럼, 구룡산은 정상 근처에 '국수봉'이라는 또 다른 작은 산봉우리와 전망대가 있었다. 본인의 방문 당시에는 비가 오고 안개도 뿌옇게 껴서 경치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하산하는 길은 평범한 산행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본인도 비를 피해 허겁지겁 내려가느라 정신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딱히 소개하지 않겠다. 철조망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군사 시설 보호 구역' 팻말은 산 속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수서에서 출발해서 산행 도보만으로 무려 여기까지 도달하다니.. 나름 성공적인 산행을 했다. 청계산· 인릉산 등산 후에 4432 버스를 타고 여기 일대를 지난 적이 있었는데 여기를 내 발로 걸어다닌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