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 일대 나들이

서울 서대문 새문안로 일대는 중구와 종로구의 경계이면서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지나며, 한양 겸 경성의 중심지로서 근현대 역사 유물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일본인들은 여기보다 더 남쪽으로 남산· 남대문 일대에 많이 살았고, 조선인은 서대문 부근에 살았다고 한다.

지난번엔 각종 고궁과 서울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 주변에 각종 박물관을 포함해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래서 본인은 하루 시간을 내어 순회 답사를 했다.

1. 경찰 박물관

<청년경찰>, <범죄도시> 같은 영화만 볼 게 아니라 이런 곳도 가 보면 좋을 것 같다.
경희궁의 동쪽으로는(광화문 역 방면) 서울 역사 박물관이 있고, 서쪽으로는 경찰 박물관이 있다(서대문 역 방면).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 있으며, 도심 접근성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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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박물관은 다층 건물 형태이다. 들어간 뒤에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6층으로 간 뒤, 한 층씩 내려가면서 방을 관람한다. 중간에 3층인가는 예외적으로 직원 사무 공간이기 때문에 관람객이 입장할 수 없고, 건너뛰어야 한다.

입장료가 없으며 무료이다. 경찰이 뭘 하는 사람인지 소개하고 경찰 코스프레· 경찰 체험 코너가 있는 건 아무래도 애들 눈높이에 맞춰진 컨텐츠이지만, 맨 처음 관람하는 꼭대기 층에 마련된 한국 경찰의 역사 코너는 유일하게 애들한테 좀 어려운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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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태극 무공 훈장이 추서된 최 규식 경무관에 대해서는 당연히 큰 비중을 두고 소개했으며, 그 외에도 순직한 경찰들 소개와 묵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하긴, 6· 25 전쟁 중에 최전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북진하고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북괴와 직접적으로 싸운 사람들은 군인이지만.. 남한 영토 내부에서 북괴 빨치산과 간첩들을 소탕한 사람은 경찰이었을 것이다.

내 머리에 편견으로 형성돼 있는 경찰에 대한 외형적인 이미지는..

  1. 평소에 교통정리와 범죄 “예방” 업무를 하면서 구역을 순찰하는 제복 차림의 경찰. 이건 일상생활에서 제일 자주 본다. 내근직도 제복 차림이긴 하지만 일반인이 경찰서를 방문할 일은 별로 없으니..
  2. 강력 범죄가 터져서 사복 차림으로 현장에서 잠복하고 피의자를 격투 끝에 검거하는 경찰. ‘형사’라고 종종 불리며, 이건 영화 같은 매체에서 제일 자주 본다.
  3. 투명한 방패와 검은 방망이 들고 있는 전경들. 시위· 집회 현장에서만 본다.

이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게 근거 없는 분류가 아닌 것 같다.
나 초딩 시절 286 AT에서 재미있게 했던 블루스 형제 게임에서도 세 캐릭터가 딱 정확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ㅋ (물론 주인공을 죽이는 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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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경찰을 컴퓨터에다 비유하면, 정규 경찰 공무원들이 CPU라면 전경들은 GPU뻘 되겠다고 본인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GPU는 전문성과 범용성이 정식 CPU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픽 연산이라는 특정 작업만을 압도적인 코어 수로 보조해 주니까..

어느 나라건 경찰과 군대, 첩보기관은 서로 사이가 좋은 적이 별로 없었다. (실적 다툼 때문..?) 심지어 이들과 검사도 사이가 안 좋다.
원래는 이들은 서로 전문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일개 조폭을 넘어서는 군벌, 테러리스트와 싸워야 할 정도로 나라 사정이 막장이라면 특수부대나 아예 정규군의 도움이 필요하다.

용공사범, 마약이나 산업 스파이처럼 심각하고 교묘한 범죄를 정확한 증거를 잡아내서 겨우 말단 조직원이 아닌 근원지까지 일망타진하려면, 위장 침투가 전문인 첩보기관으로부터 첩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영화 아저씨..!!)

군대가 아예 전문적인 대형 DBMS이고, 첩보기관이 심벌과 임의 정밀도 연산까지 지원하는 수학 패키지라면, 경찰은 그 중간에 속하는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가 아닐까 한다. 일반인이 컴퓨터에서 이 셋 중 가장 즐겨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엑셀이기도 하니 말이다.

얘네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는다거나, 정치와 야합해서 나라에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가장 비열 사악한 본성을 자극하면서 세력을 키우는 공산주의는 정말 불가피하게 경찰, 군대, 첩보기관에 대한 필요· 수요를 자꾸 만들어 내고 그쪽이 타락할 빌미를 주기도 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하늘에서 정의가 빗발친다, 야 이 짭새야!”
청년경찰 각본 쓴 사람이 오버워치를 좋아하는 취향이었군.. ㅡ,.ㅡ;;

2. 경교장

경찰 얘기가 갑자기 좀 길어졌네..
경찰 박물관에서 더 서쪽으로 걸으면 강북 삼성 병원이 나온다. 그런데 그 안에 그 이름도 유명한 경교장이라는 근대 유적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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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은 원래 1938년에 지어진 부잣집 건물인데, 백범 김 구가 여기서 몇 년간 지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여기서 회의를 열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로 유명해졌다. 잘 알다시피 김 구는 아예 여기서 안 두희의 흉탄에 맞아 암살당하기도 했다.
이 건물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에 1· 2층과 지하를 원형대로 복원해서 전시관으로 공개되었다...고 입구의 안내판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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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가구로 응접실과 집무실이 있는 건 부산에서 본 임시수도 청사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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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는 마치 애니매트릭스의 첫 에피소드(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에서 테디우스와 주에가 칼싸움을 한 장소와 비슷하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사진은 생략하지만 김 구가 암살당하던 당시의 2층 집무실 방, 그리고 고인이 입고 있던 피로 물든 겉옷도 어떻게 복원과 보존을 했는지 전시되어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역사가 실제로 이 장소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 구를 암살한 안 두희는 먼 훗날 1996년, 박 기서 씨에게 몽둥이로 난타 당해 죽었다. 그 당시 박 씨가 버스 기사였던 관계로, 안 두희가 버스를 타다가 잘못 걸려서 죽었다는 식의 낭설이 전해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 씨는 인천에 소재한 안 두희의 집 주소를 알아내어 거기로 직접 찾아간 뒤, 문이 열릴 때까지 오랫동안 잠복했다. 내연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부터 포박해서 제압한 뒤, 집으로 침입해 들어가서 안 두희를 살해했다. 그 뒤에는 곧장 고해성사를 받고 경찰서에 자수했다.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고의적 살인범이기 때문에 그는 일단 구속되고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이렇게까지 전국적으로 칭송받은 살인범은 없었을 것이다. 그를 변호하겠다는 변호인이 줄을 섰고, 전국 각지에서 박 기서의 집으로 익명 성금과 지원 물자가 도달했댄다. 그의 아들이 다니던 태권도장에서는 관장 선생이 수업료를 면제해 줬다. 김 구가 먼 옛날에 일본인 민간인 상인을 죽인 것보다, 차라리 박 기서가 김 구의 암살범을 죽인 게 더 훌륭한 일처럼 보일 정도이다.

본인은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독립 운동가 겸 건국의 주역으로서는 김 구보다는 미국물 먹은 할배를 훨씬 더 존경한다. 이화장도 복원해서 재개장할 거라고 소식을 들었는데, 완공된다면 거기도 당연히 0순위로 가 볼 것이다.

3. 4· 19 혁명 기념 도서관

북한산 기슭에 4· 19 묘지가 있는 건 본인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만.., 경교장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엔 4· 19 혁명 기념 도서관이라는 것도 있다. 저건 도대체 뭐지?
(사실, 상암동에 있는 박 정희 기념관도 정확한 명칭은 '박 정희 기념 도서관', 더 세부적으로는 '기념관 및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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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여기는 자유당 시절에 잘나가던 이 기붕· 박 마리아 부부의 자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그들은 가족 전체가 동반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서 주인을 잃은 집과 부지를 국가가 환수하여 꽤 오래 전부터 4· 19 혁명 도서관이 이 자리에 조성됐다고 한다. 경교장과는 달리, 집 건물 자체는 문화재로 보존할 가치가 없으니 철거하고 도서관 형태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건 마치 프랑스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를 보는 것 같다. 기독교를 맹렬히 증오해서 "성경 같은 쓰레기는 앞으로 100년 안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사멸해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랬는데.. 그가 죽고 나서는 그의 생가 부지에 성경 인쇄소가 들어섰다나 어쨌다나..

잠시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4· 19 혁명 관련 자료의 보관과 열람에 특화된 도서관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4· 19까지는 인정하지만, 5· 18은.. 너무 이상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 폄하하는 쪽, 맹목적으로 신성시하는 쪽 모두 마음에 안 든다. 저건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재평가한다 해도 쌍방과실일 뿐이고 여파가 4· 19만치 크지도 않았으며, 지금 해 주는 것만치 그렇게 예우할 급도 못 된다.

사실은 4· 19조차도 대통령이 자격지심에 과오를 저질렀을지언정, 한편으로는 너무 착했고 진작부터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쳤기 때문에 저런 항거가 일어나고 성공한 것이다. 진짜 악질적인 독재자 치하였으면 민중 항거· 항쟁으로 정권 교체? 택도 없는 일이다. (북괴 내부의 8월 종파 사건, 황해 제철소 사건 등..)

4. 농업 박물관, 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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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걸어가면 서대문 역이 나온다. 그 뒤 길 건너편 서대문 역 5· 6번 출구 방향을 보면 농협 은행 본점과 함께 농업 박물관과 쌀 박물관 이렇게 박물관이 두 곳 있다. 여기도 무료 입장 가능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도시와는 정반대 심상의 박물관이 있는 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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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봉길 의사는 폭탄 의거를 벌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생전에는 농촌 계몽 운동에도 크게 앞장선 이력이 있다.
지금처럼 국제 교역이 활발해진 시대에 농업 내지 식량 자급자족이라는 이념을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치 목숨 걸고 붙들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6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여전히 땅에서 나는 소산물에 의존해서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건 변함없다. 식량은 공산품이 아니다. 또한, 하늘의 기상 현상에 의존하지 않고는 땅의 소산물을 제대로 생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항공업계는 20세기에 비행기의 발명으로 인해 등장한 최첨단 산업이지만.. 역시 하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봤고 심지어 새들을 쫓아야 하는 게 어찌 보면 그 원시적인(?) 농업과 비슷하다.

시간과 지면 관계상 더 자세한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인간이 농사를 지어 온 역사, 그리고 각종 논밭 개간 기술의 개발, 이앙법, 직파법 이런 얘기들이 나와 있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우 장춘 박사가 이룩한 영농 과학화 얘기는 전혀 없는 게 아쉽다.

박물관의 1층과 2층은 저런 농업 얘기이고, 지하에는 농협 자체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더라.

5. 서대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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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동대문(흥인지문), 남대문(숭례문), 북대문(북악산 숙정문)과 달리 서대문(돈의문)만이 유일하게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되었으며, 그 뒤 재건· 복원되지 못했다. 그래서 신길온천 역 주변에 온천이 없듯이 서대문 역 주변에 실제로 서대문이 있지는 않다.
여기는 주변에 이미 건물들이 많이 지어져 버린 관계로, 서대문의 부지 확보와 재건 복원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여기 근처에 있는 경희궁도 사정이 비슷한지라, 인제 와서 원형 복원은 난감한 상태이다.

참고로, 한양도성에는 사 '대문'(동 흥인지, 서 돈의, 남 숭례, 북 숙정) 말고, 사 '소문'도 있다. 창의문 또는 자하문은 북소문에 속한다.
동소문에 속하는 혜화문, 그리고 남소문에 속하는 광희문은 복원된 것이 남아 있긴 하지만 원래 있던 곳에 있지는 않다. 이미 도로나 건물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북소문만이 유일하게 원형이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다.

그리고 서소문에 해당하는 소의문은 흔적도 없이 완전히 소실되어 있다. 대문과 소문 모두 '서'쪽만이 현재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소· 지명에만 '서대문, 서소문'이 전해질 뿐이다.

6. 경찰 기념 공원과 서대문 역 터

여기 근처에는 서대문이라는 조선 시대 유적 말고, 서대문이라는 이름의 '철도역'도 있었다. 경부선이 만들어졌던 초창기에는 지금 있는 서울 역은 '남대문 역'이었으며, 살짝 더(지하철 한두 정거장 남짓) 북쪽으로 가서 '서대문 역'이 실질적인 경성 역이요 경부선의 북쪽 종점이었다.

그랬는데.. 1920년대 초에 서대문 역은 폐지되고, 남대문 역에서 경의선으로 분기하는 신촌· 가좌 방면 드리프트 선로가 부설됐다. 어차피 일본인들이 주로 사는 곳은 남대문 쪽이었으니, 철길이 그쪽까지만 있어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서대문 역 6번 출구로 나와서 경찰청이 마주 보이는 정도까지 좀 걸어가면.. 인도 옆으로 아주 작은 풀밭 공원이 있으며, 거기에 "옛날에 이 자리에 옛 경성, 서대문 역이 있었음"이라는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유 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 학당도 바로 이 근처(현재의 이화여고)이니, 그 학교는 가히 엎어지면 코앞인 역세권이었던 셈이다.

지난 2016년 여름에는 그 소공원이 '경찰 기념 공원'으로 리모델링됐다. 안 그래도 경찰청이 코앞이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경찰 박물관도 있으니, 내친 김에 순직 경찰을 기리는 공간을 더 만든 듯하다. 경복궁 역 근처에서 학교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보던 건물은 경찰청 본청이고, 여기서 보는 건 서울 '지방 경찰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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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 자리에 있던 서대문 역 표지석 역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름 경찰청장 출신이 코레일 사장을 역임한 적도 있는데(허 준영)..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서대문 역 일대에서 여러 뜻깊은 장소들을 잘 구경하고 돌아왔다.
표지석은 너무 아쉬웠던지라 집에서 검색을 좀 더 해 봤는데, 사진들의 구도를 보니 소공원에 있던 그 표지석은 이화여고 정문 바로 옆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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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2/14 08:35 2018/0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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