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인간을 달에 보냈다가 성공적으로 귀환시킨 새턴 V(5호) 로켓은 일체형이 아니라 세 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얘는 높이? 길이?가 110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며, 인간이 역사상 개발한 가장 고출력 고성능 유인 이동 수단이었다.
이 로켓은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되었으며, 사령 본부는 거기서 좀 떨어진 텍사스 주의 휴스턴에 있었다. 둘 다 적도에 최대한 가까운 미국 남부인 것은 동일하다.
- 1단 로켓: 발사 직후 딱 2분 반 동안 2천 톤의 연료를 몽땅 태우고 뿜으면서 기체를 고도 68km, 시속 9921km까지 도달시켰다. 발사 카운트다운이 0으로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건 아니며, 그보다 수 초 전부터 미리 점화된다.
- 2단 로켓: 1단의 뒤를 이어 6분 동안 기체를 고도 176km, 시속 25182(초속 7)km로 가속시켰다.
참고로 우주왕복선의 고체 연료 부스터가 분리되는 때가 마하 4 + 고도 46km정도이고, 다음으로 액체 연료 탱크가 분리되는 때가 마하 23 + 고도 110km쯤이다. 지구 저고도까지만 가는 우주왕복선보다야, 새턴 로켓이 스케일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 정도 크기의 로켓이 발사되면 그야말로 반경 수 km 이내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게 느껴지며, 전쟁이 나거나 유전이 폭발했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화염과 연기가 발사대 주변을 뒤덮는다. 그 거대한 폭발이 철저하게 제어되고 통제된 방향으로만 발생하기 때문에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는 거지, 안 그랬으면 그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그저 불바다+폭죽밖에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자동차든, 비행기든, 로켓이든.. 모든 교통수단들은 처음 출발하기가 제일 어려우며 이때 연료 소모도 많다.
로켓은 자동차처럼 구르면서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는 것은 없지만, 기체가 제일 무거운 상태에서 지구의 중력뿐만 아니라 공기 저항까지 극복해야 하니 고충이 크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연료가 줄어들면서 기체가 가벼워지고, 공기압도 줄어들기 때문에 로켓은 점점 더 힘이 붙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1단 로켓이 출력이 압도적으로 가장 강하다. 1단 로켓으로 제일 강하게 가속을 받을 때는 조종사가 거의 4G까지 경험한다고 한다. 1단만 등유(케로신)를 사용하고, 2단과 3단은 수소(액체) 기반이니 모두 액체 연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1단이 부피 대비 연료가 훨씬 더 무겁다
물론 산화제로는 모두 액체 산소를 사용한다. 연료를 많이 태워서 큰 힘을 내려면 연료를 많이 주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소를 충분히 공급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자동차만 해도 공기를 꾸역꾸역 많이 주입해서 엔진 성능을 향상시키려고 터보차저를 달며, 대형 여객기는 10km 남짓한 순항 고도보다 높이 올라가면 공기가 부족해서 헥헥거리기 시작한다. 하물며 우주를 날아가는 로켓은 산소를 직접 조달해야 한다.
액체 수소에 액체 산소.. 액체 연료 로켓은 내용물이 굉장히 차갑다(...). 한여름에 차가운 음료를 꺼내 놓으면 컵 주변에 이슬이 맺히듯.. 이 로켓도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고 나면 표면에 서리와 얼음덩이 같은 게 송글송글 맺히곤 했다.
2단 로켓이 분리되어 떨어질 때, 지금까지 로켓의 맨 꼭대기에 달려 있던 자그마한 비상 탈출용 로켓(launch escape system)도 같이 떨어져 나간다. 이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얘는 이건 전투기의 사출좌석처럼 비상 상황에서 자기 아래에 승무원이 탄 캡슐(사령선)만 따로 로켓 본체로부터 분리하고 탈출과 낙하를 시켜 준다. (그래도 다행히도 역대 아폴로 계획에서 이 탈출용 로켓이 실제로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데 쓰인 적은 전무했다.)
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며 날아가기 위해서 스스로 뱅글뱅글 돈다. 그리고 총의 총열은 단순히 총알의 진로만 유지해 주는 게 아니라, 총알이 그렇게 회전하면서 나아가게 하려고 안쪽 표면에 나선 모양의 홈이 파져 있다. 이걸 강선이라고 하는데, 그 좁고 긴 총열에 강선을 새겨 넣는 게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로켓은 그렇게 돌면서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발사 중에 진로가 어긋나지 않도록 자세를 제어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처음에 발사될 때는 비교적 느리게 수직 상승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감을 잘 못 하지만, 로켓은 육지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오른 뒤부터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정말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그리고 나중에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달에 가는 로켓이라고 해서 무작정 눈에 보이는 저 달을 향하여 앞? 위?만 보고 직선 지름길(?)로 나아가는 게 아니다. 지구는 자전을 하고 있고 달도 지구를 공전하니, 달이 있는 쪽만 보고 나아가는 건 애초에 직선 운동이 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무데뽀로 지구를 빠져나가는 데에는 연료가 너무 많이 소모된다.
달로 가는 로켓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지구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를 1.5~2바퀴 돈 뒤(3단 로켓의 엔진도 끄고), 거기서 적절한 타이밍에 엔진을 재점화한다. 원 궤도가 긴 타원 궤도가 되게 살짝 가속을 함으로써 지구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러다가 달에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달의 인력에 끌려가는 것이다.
이 과업을 위한 추진력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마지막 3단 로켓이다. 기체는 2단 로켓이 올려 준 고도보다 약간만 더 올라가서 188km 남짓, 일명 parking orbit에 해당하는 고도에서 이제는 수평으로 가속하는 데 힘쓴다. 200km가 채 되지 않고 우주 정거장보다도 낮은 고도이니 여기서 지구를 한없이 많이 돌고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고작 한두 바퀴 남짓만 돌다가 더 가속해서 달로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1단과 2단 로켓은 연료를 다 소모한 뒤에 지구로 추락하지만, 3단 로켓은 다 쓰고 나면 우주 공간에 버려진다. 태양을 도는 궤도로 끌려 가거나, 아니면 달에 충돌하는 등 알아서 잘 사라져 줬으면 좋겠지만, 모든 3단 로켓이 그렇게 처분되지는 않은 듯하다.
2002년에는 지름 수십 m 남짓한 정체불명의 물체가 지구를 도는 것이 어느 아마추어 천문가에 의해 관측되어 J00E2E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 했는데, 이건 알고 보니 1969년에 발사된 아폴로 12호에서 떨어져 나온 3단 로켓 몸체였다. 태양 궤도로 끌려가는가 싶다가 도로 지구의 인력에 이끌려 와서 우주 쓰레기로 전락한 것이다.
아무튼 3단 로켓이 분리됨으로써 로켓은 이제 아무것도 없고 아폴로 우주선만 남게 된다. 로켓이 1~3단 세 파트로 나뉘었던 것처럼 우주선도 역시 사령선, 기계선, 착륙선(달 착륙선)이라는 세 파트로 나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이들 우주선도 추진력이 있으니 소형 로켓이다.
로켓의 진행 방향이 →라고 가정할 때 사령선은 ▷ 요런 원뿔 모양이며, 기계선도 대충 요렇게 분출 노즐이 끝에 달린 원통 ▶□ 모양이다. 문맥에 따라서는 기계선도 사령선의 일부라고 보기도 한다. ▶□▷처럼..
로켓의 발사 당시에 파트들은 "3단 로켓 → 착륙선(◎) → 기계선(▶□) → 사령선(▷) → (2단 로켓과 함께 떨어져 나가고 없는 탈출 로켓)"의 순으로 배열돼 있다. 달 탐사선은 처음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로켓의 내부에 감춰져 있다.
그런데 3단 로켓이 분리되고 아폴로 우주선이 활동을 시작할 때는 기계선과 사령선이 앞으로 나가서 180도 "유턴"을 한 뒤.. 달 착륙선과 사령선을 ◎◁□◀ 이렇게 전방에다 연결한다.
이 상태로 아폴로 우주선은 달을 뱅뱅 돌다가 달 착륙선을 다시 분리시켜서 말 그대로 달에다 착륙시켰다. 승무원 3명 중 2명은 그렇게 달에 발을 디디고, 1명은 사령선에 남았다. 사령선에 남은 사람은 비록 달의 땅을 밟지는 못하지만 혼자서 달 뒷면을 구경하면서, 그 동안(뭐 한 번에 50분 남짓이었다고는 하는데)은 지구와도 통신이 끊기고 세상에서 제일 철저한 고독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달이야 대기가 없으니 지구 같은 대기권 진입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달 표면으로 자유 낙하하다가 연료 역추진으로 추락 속도를 낮춰서 땅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달 착륙선은 또 하부와 상부로 나뉘는데, 하부는 다리가 네 개 달려 있고 다시 달에서 출발할 때의 발사대 역할을 했다. 달을 떠날 때는 착륙선의 상부만이 이륙해서 달을 한두 바퀴 돌다가, 대략 110km 고도에 있는 사령선과 합체(도킹)했다. 달을 떠나서 사령선이 있는 상공까지만 가는 건 아예 모든 준비를 갖추고 지구를 떠나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마지막으로 달에 다녀 왔던 아폴로 17호에서는, 달에다 두고 온 월면차에다가 카메라를 설치한 덕분에 달 착륙선이 이륙하는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17호는 유일하게 밤에 발사된 달 탐사 미션이며, 아프리카 대륙 모습이 나온 '푸른 구슬' 사진을 찍은 그 미션이기도 하다.
달 착륙선이 사령선과 다시 합체하는 건 아폴로 계획 전체를 통틀어서 매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도박이었다. 이걸 실패하면 달에 갔던 승무원 2명은 달에서 질식하고 굶어 죽게 되고, 사령선에 남았던 1명만 혼자 지구로 돌아오는 상상도 하기 끔찍한 비극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승무원을 사령선에 무사히 진입시키고 나면, 달 착륙선은 연료도 떨어졌고 더 쓸 일이 없기 때문에 다시 버려져서 달 표면으로 서서히 추락했다. 사령선은 지구 방향으로 가속을 해서 달의 궤도를 이탈하고, 지구의 인력에 이끌려서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아폴로 미션들 중 13호의 경우, 기계선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때문에 달 착륙은 못 했지만 그래도 달을 멀리서 한 바퀴 돌기만 하고 모든 승무원이 지구로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얘는 달 착륙선을 버리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지구에 도로 갖고 오게 됐다. 허나, 달에 무사히 다녀오고 착륙선을 버리기까지 한 뒤에 그런 사고가 나서 기계선이 무용지물이 됐다면.. 승무원들은 착륙선의 기능을 이용할 수(추력, 산소 공급..) 없었을 것이며 지구로 살아서 돌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끝으로, 이제 우주 여행의 최종 관문인 지구 대기권 재진입이 남아 있다. 아폴로 우주선은 초속 1.2km로 비행하면서 그야말로 쇠가 녹는 2000도 이상의 마찰열을 견뎌야 했다. 비록 각도는 매우 완만하지만 그야말로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재진입 타이밍 때 사령선은 드디어 기계선과도 빠이빠이 한다. 기계선은 사령선과 같은 열차폐막의 보호 없이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진다.
재돌입을 무사히 마친 사령선은 낙하산을 펴고 바다에 떨어진다. 얘는 우주왕복선과 달리 딱딱한 육지에 착륙할 수 없다. 달에 착륙할 때와는 달리 충격 완화를 위한 역추진 장치 같은 게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계선이 없이 사령선은 단독으로 아무 동력이 없으며, 활강 능력도 없다.
사령선이 망망대해의 어디쯤에 떨어질 걸로 예상되는지는 사령선의 모든 궤적을 추적 중인 본부에서 컴퓨터로 다 계산해서 파악해 놓는다. 그래서 그 지점에 군함과 헬기를 대기시켜 놨다가 승무원들을 구조하고 데리고 온다.
이상.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수천 톤에 달하는 로켓을 쏴서 사람 세 명을 달에 보냈는데 이것저것 다 떼어내고 최종적으로 돌아오는 건 저 사령선 캡슐 하나뿐이다. 아래 사진에서 꼭대기의 비상 탈출용 로켓 바로 아래의 흰 원뿔 말이다.
총알만 해도 화약과 탄피를 빼고 실제로 목표물에 박히는 탄두는 총알 전체의 크기에 비해 아주 작긴 하다. 하지만 비율이 저 로켓만치 터무니없이 작지는 않다...;;
참고로 저 높은 로켓의 꼭대기 사령선에 승무원들이 처음 탑승할 때는.. 옆의 발사대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 뒤, 발사대와 로켓 사이에 설치된 탑승교를 건너서 안으로 들어간다. 누워 있던 길다란 로켓을 기립시키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겠다만...
인간이 지구 중력을 탈출했다가 돌아오는 게 얼마나 끔찍하게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오로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그 모든 난간을 뚫고 1960년대의 과학 기술만으로 그 일을 이뤄 낸 미국의 공돌이들이 그저 경이롭게 보일 따름이다.
새턴 로켓과 아폴로 우주선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것저것 부품을 많이 떼내서 버리는데, 3단 로켓과 달 착륙선은 폐기 장소가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초기에는 그냥 해당 궤도(주로 달)에 방치한 뒤에 스스로 서서히 추락하게 했지만, 나중에는 우주 쓰레기를 만들 여지를 없애기 위해 잔여 연료로 확실하게 궤도를 벗어나고 달 표면에 신속하게 추락시키는 쪽으로 처분 방식을 바꿨다.
새턴 V 로켓의 1단 엔진은 미국 내부에서도 기술자의 명맥이 끊기는 바람에, 전해지는 설계도 도면만으로는 후대의 엔지니어들이 동일한 물건을 만들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21세기에 눈부시게 발달한 반도체 내지 전자 공학 기술만으로는 커버가 안 되는 고유한 노하우가 또 있는가 보다. 그래서 자기네 선배 직원(또는 협력업체 직원)이 옛날에 만들었던 부품을 정밀 촬영을 하고 reverse engineering을 해서 기술을 재현해 내려고 애쓰는가 보다.
우주에서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산소, 물 같은 물질을 지속적으로 보급받을 길이 전무하니.. 인간은 지구에서 챙겨 온 보급 물자에만 의존해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뭐, 물이야 수소 연료를 산화시킨 부산물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리고 전세계 최고의 엘리트 공돌이들이 만들어 낸 치밀한 계획이 우주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들어맞지 않거나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틀어졌다면.. 우주에 나갔던 그 사람들은 그대로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우주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공간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달 여행 방법을 그 옛날에 처음으로 생각해 내고 실행에 옮긴 사람도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서 이게 자작극이고 주작이라고 무식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의 적국이요 막강한 경쟁자였고, 대등한 우주 개발 기술이 있던 소련이 tolerant, weak, helpless해서 미국의 달 착륙을 인정하고 축하한 게 아니었다. NASA의 음모론 이러는 사람들치고 소련을 계산에 같이 넣어서 생각하는 사람을 난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995년에 영화 <아폴로 13>이 개봉했던 시절, 미국 본토 내부에서도 영화를 실컷 잘 봐 놓고는 이게 현실과는 전혀 무관한 흔한 SF물인 줄로만 안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 이 링크에서 Silly comments on Apollo 13 검색..) "저게 현실에서 일어났으면 사람들 다 죽었겠지? / 우주에서 저런 일이 일어났으면 우주왕복선을 날려서 승무원들을 구출하지 그래?" 이랬다나 어쨌다나.. orz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