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덩치와 스케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탱크, 가장 큰 비행체(비행선), 가장 큰 육상 대포는 나치 독일에서 만들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자력 이동 기계인 Bager 288도 독일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은 태평양 전쟁 시절에 일제가 만들었고, 그때 이후로 전함은 미사일에 밀려서 유행이 끝났다. 그 대신,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은 현재까지 미국이 타이틀을 쥐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핵폭탄은 냉전 시절에 소련이 만들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도 지금은 파괴되고 없지만 구소련의 작품인 An-225이었다.
허나, 세계에서 가장 큰 우주 발사 로켓은 역시 냉전 시절에 미국이 개발했던 새턴 V이며.. 얘가 인간을 달로 보내는 용도로 쓰였다.
2. 거리
아폴로 8호 이전까지 인간은 지표면으로부터 겨우(?) 200~300km 떨어진 가까운 우주에서 지구를 빙빙 돌며 우주 유영이나 우주선의 도킹 같은 것만 테스트 했다.
그러나 1968년 12월 말에 발사되었던 아폴로 8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을 태우고 단순히 지구 대기권만 벗어난 우주가 아니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아득히 먼 우주까지 나가서 달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지표면으로부터의 거리 킬로수가 갑자기 1000배가 넘게 뻥튀기된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반드시 달에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인부터 보내면서 차근차근 테스트했어야 할 여러 위험한 사항들을 한 미션 때 몰아서 수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미션들도 지구를 돌기만 했을지언정, 비행 속도 자체는 비행기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상태였다. 아폴로 8호가 추가로 한 일은 거기에다 몇 분 동안 약간만 더 가속을 해서 그 속도로 달에 가게 한 것이었다. 나머지 3~4일에 달하는 시간 동안은 그냥 우주 글라이더 같은 관성 활강이다. 우주 비행은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게 우주에서 달로 가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아폴로 8호는 승무원들을 태운 관짝이 된 채 우주 저 멀리 날아가 버리거나, 지구로 영원히 못 돌아오고 달을 돌게 됐을 수도 있는데.. 위험한 도박이 성공해서 승무원들이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사람이 탔을 때야 달에 무조건 최대한 빨리 가야겠지만.. 그런 제약이 없는 무인 탐사선은 겨우 그 거리(?)도 다른 행성들의 중력 평형점을 이용해서 연료를 최대한 아끼면서 달에 천천히 가기도 한다. 지난 8월에 우리나라에서 발사된 '다누리'처럼 말이다.
3. 아폴로 11호 이전의 10호
1969년 7월의 아폴로 11호는 뭐 인간이 역사상 최초로 지구 외의 다른 천체에 발을 딛는 데 성공한 과업이었다. 정말 전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서로 전쟁 중이던 나라들이(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일명 축구 전쟁) 월드컵 축구 경기도 아니고 달 착륙을 관람하려고 잠시 휴전을 했을 정도였다.
그럼 11호의 영광에 가려진 앞뒤의 콩라인 은메달 미션들은 어땠을까?
10호는 8호 때와 달리 달 착륙선이 준비돼 있었다. 착륙선이 달에 내려가는 시늉만 살짝 하다가 도로 상승해서 사령선과 합체하고 돌아왔다. 요 최종 절차만 빼면 그 전까지는 이제 달에 다녀올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생각 같아서는 이때 바로 달에 착륙까지 하고 싶었겠지만, 이때는 달 착륙선이 땅의 맨땅에서 다시 발사되어 귀환할 준비가 다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달 표면과 착륙 예정지의 상태에 대한 조사도 다 돼 있지 않았다.
달에다 내 뼈를 묻어 버리고 싶다면야 어째 무리해서 착륙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지구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ㄲㄲㄲㄲ
10호 발사 당시에 NASA 관계자들은 승무원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혀서 통제를 무시하고 달 착륙을 감행하는 객기를 부리면 어떡하나 약간 불안한 기색이었다고 한다.
4. 아폴로 11호 다음의 12호
초대박을 쳤던 아폴로 11호의 바로 다음에 달에 갔던 12호 승무원의 심정은 10호 승무원의 심정과는 사뭇 달랐을 것 같다. 달나라에 간다니 정말 가슴이 벅찼겠지만 하필 인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는 2등이니까 말이다.
아폴로 계획 중에서는 큰 사고가 터져서 승무원들이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생환한 13호가 유명하다. 그러나 자잘한 사고나 돌발상황은 이때 말고 늘 있었으며, 특히 12호는 발사 거의 직후에 지구상에서 벼락을 맞았다..;;; 타이밍 한번 참.. ㄲㄲㄲㄲㄲ
이 대미지 때문에 사령선 안의 컴퓨터가 상당수 다운되고 손상이 발생해서 미션이 거의 실패 직전까지 갔다. 로켓의 맨 꼭대기에 있는 비상 탈출 로켓이 실제로 사용될 뻔했지만 어째어째 대미지를 수습하고 달에 잘 다녀왔다. 달에 최초로 가는 것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다녀오는 것도 충분히 감격스럽기는 했을 것 같다.
이 12호는 미국이 1967년에 먼저 달에 보냈던 자국의 '무인 탐사선'인 서베이어 3호의 착륙 지점과 거의 같은 곳에 착륙했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지점을 거기로 맞춘 것이다. 그런데 유인에 비해 무인 달 탐사 내력은 정말 존재감이 없긴 한 것 같다.;;
그 외에, 12호는 달 탐사 장면을 컬러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하려 했지만.. 승무원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실수로 렌즈를 태양 쪽으로 들이대 버렸고.. 맹렬한 열과 빛 때문에 카메라가 망가져 버려서 생중계는 행해지지 못했다.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벼락을 맞은 직후, 지상 기지에서는 발사체들의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파트별로 꼼꼼히 질문하고 지시를 해서 점검과 보수를 마쳤다. 그러나 다 마치고 지구 재진입 때 펼쳐야 하는 낙하산은 지금 이 상태로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낙하산에 이상이 생겼다면 승무원들은 달 탐사를 마치고 지구에 다 와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기지에서는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미리 알고 죽으나, 아니면 그때가 다 돼서야 뒤늦게 알게 되나 상황이 달라지는 건 전혀 없으니.. 기왕이면 임무 수행 중에 승무원들의 사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12호의 낙하산은 이상 없이 잘 펼쳐졌다.
5. 13호 승무원의 대사
- "어 휴스턴, 이거 문제가 생겼다"의 대사가 we've had인지 혹은 we have인지에 논란이 많은가 보다. "이제 막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아니면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던 문제가 쭉 있었다"로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 안 그래도 똥줄 타는 상황이었는데 사령선이 재진입 중에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이유는?? 아무래도 수십~수백 kg에 달하는 월석을 가져오지 않아서 사령선이 예상보다 더 가벼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 대신 13호는 달 착륙선도 예기치 않게 지구에 도로 가져오게 됐다. 달 착륙선은 바다로 풍덩..
- 재진입 성공 후 이들의 첫 교신은 옛날 영화 "에어 포스 원" 결말부의 "Liberty 24 is chainging the call sign.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와 같은 느낌을 준다.
6. 과학 탐사
아폴로 계획은 전반부 11~14호, 그리고 후반부 15~17호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를 넘기고 후반부에 가서야.. 달에 다녀오는 과정은 그럭저럭 익숙해지고 안정화가 됐으니(?) 승무원도 무작정 극기훈련 생존왕 군인 파일럿이 아니라 민간인 과학자 중에서도 선발할 여유가 조금씩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달에 갔다가 살아서 돌아오는 것 자체가 아니라, 달에서 뭔가 의미 있는 채취와 탐사를 하는 것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긴 것이다. 15호는 최초로 월면차를 투입됐으며, 역대급으로 월석을 많이 캐어 오기도 했다.
하긴, 1910년대에 남극 탐사 경쟁이 벌어졌을 때도 아문센 팀은 역대급 오지로 모험을 떠나는 만큼, 전원 생존 전문가 위주로 팀원을 뽑았다. 개썰매를 타고 다니고 개고기도 서슴지 않고 먹었다.
그러나 스콧 팀은 자금빨 기계빨만 믿고 남극을 너무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민간인 과학자도 끼워 넣었으며, 가면서 수시로 남극 생태 관찰을 하고 돌 같은 거 수집도 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스콧 팀은 1등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전원 남극에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7. 마지막 17호
끝으로, 1972년 말에 마지막으로 발사된 아폴로 17호야.. 어찌된 일인지 전 미션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깜깜한 밤에 발사됐다(왜?). 그리고 달에서 달 착륙선이 발사되어 달 지면을 이륙하는 광경이 촬영된.. 유일한 미션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15, 16호 때도 촬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이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월면차와 함께 달에 남겨진 카메라를 지구 기지에서 1.4초가 넘는 랙을 감내하면서 원격으로 어렵게 조종했다는 게 신통방통하기 그지없다. 달 착륙 승무원이 조종한 게 아니다..!
요 아프리카 대륙이 나와 있는 지구 사진이 바로 아폴로 17호 때 달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폴로 17호 승무원은 이게 사실상 마지막 유인 달 미션이라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확인사살까지 한 이상, 제아무리 천조국이라도 이 정도로 등골이 휘는 미션에 계속 자금을 대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애초에 11호 때부터 "달에 가겠다고 돈지랄 하지 말고 당장 도탄에 빠진 민생부터 챙겨라~!!" 이런 발사 반대 시위가 있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유진 서넌 선장은 지구로 귀환할 타이밍이 되자 달 착륙선에 오르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겨서 방송으로 내보냈다고 한다.
이건 뭐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을 떠나면서 "나는 되돌아올 것이다" 이러고, 리 승만 할배가 휴전을 수락하면서 "지금은 비록 휴전하지만 우리는 북녘의 동포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통일 과업을 꼭 이루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말한 것과 비슷한 비장함이 느껴진다.
달에 최초로 착륙했을 때 11호 승무원이 한 말, 일명 "작은 발자국과 위대한 도약" 드립과도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
8. 소스 공개
여담이지만, 지난 2010년대쯤부터는 github에 온갖 옛날 골동품 소프트웨어들의 소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오픈소스니 카피레프트니 하는 이념에 충실하던 존 카맥 같은 몇몇 매니아들이나 유행이 지난 Doom, Quake 같은 자사 게임의 C 코드 소스를 공개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저 때부터는 페르시아의 왕자(Apple-II 원본)나 MS-DOS 1.x 같은 까마득한 유물의 어셈블리어 소스도 올리는 게 유행이 됐다. 물론 걔네들은 지금 환경에서 빌드는 못 한다. -_-
그 와중에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총괄 제어 시스템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조차도 NASA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마가렛 해밀턴 선생과 그 동료/부하들의 손길이 깃든 그 코드 말이다.
달 표면 사진이나 각종 로켓 설계도뿐만 아니라 이런 것까지 공개되다니, 컴덕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이나 서구권에서는 이런 것도 다 보존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서울 올림픽 총괄 전산 제어 시스템인 GIONS의 소스가 전해지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몹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고는 일회용으로만 써먹고 끝났기 때문이다. 유지보수? 노하우 전수? 수출? 아무것도 안 되고 개발팀이 공중분해되어 흩어졌다.
우주선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라면 임베디드에 어셈블리어이겠지만, 얘는 IBM 메인프레임에서 돌아가는 물건이고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내가 듣기로는 말로만 듣던 그 코볼(!!) 언어로 작성됐다.
얘를 시험한 이전 미션인 전국체전은 제미니나 아폴로 초기 미션이고, 86년 아시안게임은 아폴로 8이나 10 정도에 대응하고, 서울 올림픽은 대망의 아폴로 11.. 이러면 싱크로가 잘 맞는데..
사실, 전국체전이나 아시안게임은 실패했을 때의 쪽팔림과 사고 여파가 올림픽보다 작을 뿐이지, 세부 종목이나 처리할 것들의 복잡도는 오히려 올림픽보다 더 높았다. 그러니 베타테스트 용도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