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동차와 비행기의 기술적인 차이
(1) 육상 교통수단에 '차-자동차'의 구분이 있는 것처럼, 공중에도 '항공기-비행기'라는 구분이 있다.
자동차는 일정 배기량/출력 이상의 기계 동력으로 일정 속도 이상을 내는 차량을 말한다. 비행기도 글라이더나 기구가 아니라 기계 동력으로 양력을 생성해서 뜨는 항공기를 말한다.
(2) 자동차는 시동 중에 주유 금지가 권장되는 정도이지만, 여객기는 승객이 탑승한 채로 연료 주입이 금지이다.
(3) 비행기는 자동차와 달리, 납이 들어간 유연 휘발유도 여전히 항공 연료 중 하나로 쓰이고 있다. 비록 가까운 미래에 규제가 걸릴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리고 이쪽 업계는 아무래도 디젤 엔진의 존재감이 아주 희박하다.
(4) 자동차의 타이어 안에는 그냥 일반 공기가 주입되며, 펑크가 났을 때 지렁이 땜빵만 해도 된다.
그러나 비행기의 랜딩기어 안에는 산소가 절대 없는 질소 100%만이 주입되며, 저런 부분적인 땜빵이 허용되지 않고 전면 교체를 해야 한다.
(5) 자동차는 한 엔진 안에서 실린더가 몇 개(3~8?)인지, 몇 기통인지를 따지지만 비행기는 엔진 수가 몇인지(1~4개)를 따진다. 엔진은 프로세스, 실린더는 스레드인 것 같다. -_-;; 플라이휠은 스레드를 동기화시켜 주는 장치인 건가..?
(6) 자동차는 주행 중에 야생 동물과 충돌하는 '로드킬' 사고가 날 수 있고, 비행기는 비행 중에 '버드 스트라이크'라는 충돌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런데 투명한 도로 방음벽에 새가 부딪혀서 죽는 건.. 위의 두 사고의 중간 유형으로 분류해야 하려나 모르겠다.;;
(7) 자동차에 운전석 에어백이 있다면, 비행기에는 전투기 한정으로 사출 좌석이 있는 듯.. 전자는 화약을 터뜨려서 팽창하고, 후자는 아예 초소형 로켓이 달려 있다고 들었다.
(8)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 때문에 돌멩이나 각종 이물질이 밟혔다가 튀어오르는 것은.. 선박이 지나가면서 남긴 물결이나 비행기의 후폭풍, 심지어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우주 쓰레기와 비교할 수 있겠다. 평소에 차가 부드럽게 나아가는 것 같아도, 엔진이 내는 힘은 이 정도로 정말 무지막지하다는 뜻이다.
(9) 육상 교통수단은 외연 기관에서 시작해서 내연으로 바뀐 반면, 비행기는 처음부터 내연으로 시작했는데 왕복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바뀌었다. 가스 터빈은 증기 터빈이나 왕복 내연기관보다 만들기 더 어려운 물건이었다.
(참고로 선박은 증기선에서 내연기관으로 바뀐 것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덜해 보인다. 그 대신 목재에서 철제로 바뀐 것, 범선에서 기선으로 바뀐 것, 외륜에서 스크루로 바뀐 것의 존재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10) 자동차는 정지나 저속 상태에서는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는 데 힘이 많이 들고, 고속에서는 공기 저항과 엔진의 과부하 때문에 가속이 힘들어진다.
비행기는 저고도에서는 짙은 공기 저항 때문에 빨리 못 날고, 고고도에서는 연소에 필요한 공기가 너무 희박해서 엔진이 출력이 안 나오고 빌빌대니.. 둘 다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짐을 많이 실은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처음 출발할 때 페달을 밟는 것보다 땅을 차서 나아가는 게 더 편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정지 마찰 때문..).
(11) 자동차는 바퀴를 굴려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비행기는 주변 공기를 뒤로 밀어내고 연소 배기가스를 내뿜어서 나아간다. 지상에 있을 때는 바퀴는 기체를 따라 저절로 굴러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는 역주행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맞바람만 어떻게든 충분히 강하게 받을 수 있다면 물리적으로 수평이동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이륙할 수도 있다.
프로펠러가 비행기의 앞이 아닌 뒤에 달려 있어도 이륙 가능하다. 단지, 이런 디자인은 기수가 들릴 때 프로펠러가 땅을 긁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뿐..
(12) 단, 주변이 폭염 급으로 너무 더우면 비행기의 이륙이 힘들어져서 활주거리가 길어진다. 엔진 과열 문제 때문이 아니라 공기가 열팽창해서 밀도가 낮아지고, 이는 양력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한겨울에 기체에 눈이 쌓여 있으면 반드시 깔끔하게 다 치워야 된다. 이 역시 양력의 생성 효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변수가 비행기에는 아주 민감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2. 탑승하는 절차
대중교통 중 육상 버전인 버스나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구입하고 제시하는 차표를 우리는 '승차권'이라고 한다. 선박은 '승선권'이라고 부르는데.. 비행기는 '승기권'이라고 부르지 않고 '탑승권'이라고 부른다. 글쎄, 영어로는 비행기와 선박 모두 boarding pass라고 부르기는 한다만 말이다.
지금 같은 만능 교통 카드라는 게 없던 옛날엔 시내버스의 경우, 잔돈을 취급하느라 걸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무슨 식권이나 동전 같은 버스 토큰이라는 게 쓰였다. 철도 쪽은 '에드몬슨 승차권' 내지 그에 준하는 마분지 승차권이 오랫동안 쓰였다.
그러다가 오늘날은 육상에서는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가 시스템이 점차 통합되고, 교통 카드로도 운임을 결제할 수 있게 돼 간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런 통합과는 딱히 접점이 없다. 아직은 말이다.
항공 쪽이 꽤 특이한 점은.. '항공권'과 '탑승권'이 구분돼 있다는 점이다. 먼저 무슨 증서처럼 생긴 항공권부터 발급받은 뒤, 공항에 가서 체크인을 하면서 그걸 실제 탑승권으로 바꿔야 한다. 이걸 제시해야 면세 구역으로 들어가고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이거 무슨 수표-현금의 관계처럼 느껴진다.
- 좌석 번호 지정인가?
- 운임이 거리와 등급별 편차가 큰가?
- 유기명인가?
부담 없이 빨랑 타서 단거리를 잠시 이용하고 내리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이야 위의 속성이 모두 XXX이다. 그러나 시외버스/일반열차 이상급이 되면 OOX이고..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행기나 선박 정도가 돼야 티켓에 탑승자의 신원 정보가 기재된다.
아..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사고가 날 확률이라기보다는, 일단 사고가 났을 때 시체를 못 찾을 확률이 육상 교통수단보다 높기 때문에 탑승자의 신상을 매번 확인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운임 제도가 굉장히 복잡하며, 수하물의 무게를 재고 탑승자를 일일이 대면 확인도 해야 한다. 그래서 좌석 위치도 비행기의 실제 탑승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결정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항공권과 탑승권이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 더.. 공항은 보안도 더 엄격하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구역 구분이 더 엄격한 편이다. 단, 이건 공항이기 때문이 아니라 출입국이 수반되는 절차이기 때문에 적용되는 것도 있다.
3. 영공 통과료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톨비(통행료)를 내는 것처럼 국제선 비행기들은 타국의 영공, 정확히는 타국의 관제 영역에 들어갈 때 영공 통과료를 낸다.
이건 "남의 나와바리에 들어왔으니 돈 내!!" 같은 무역 장벽이나 삥뜯기 같은 개념이라기보다는.. 일단 남의 나라를 상대로 우리는 UFO(미확인..)나 심지어 적국 군용기가 아니라는 걸 당당히 알리고, 그쪽으로부터 관제 서비스를 받는 비용이다. "근처에 다른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고 충돌 위험이 있음. 고도를 변경하시오" 같은 교통 제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영공 통과료라는 개념이 최초로 제기된 건 1928년, 독일에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엔 Popular Science라고.. 우리로 치면 뉴턴이나 과학동아 같은 장르의 교양 과학 잡지가 있었다. 이건 무려 1872년에 창간된 ㅎㄷㄷㄷ한 물건인데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인 2021년 4월부로 드디어 종이 잡지의 출판을 완전히 중단하고 100% 온라인 웹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PopSci의 1928년 9월호 65페이지의 한 토막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체덴(현재 폴란드 서부 체디니아) 지방의 자무엘 슈바르츠라는 사람이 루프트한자 항공사를 상대로 "내 집 위를 타넘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내게 비행료를 내시오~!!"라고.. 약간의 생떼 부리는 듯한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는 루프트한자라는 항공사 자체가 생긴(1926) 초창기였고, 지금 같은 대형 여객기와 서민들의 대규모 외국 여행이 존재하던 시절도 아니었다. 아니, 찰스 린드버그가 최초의 무착륙 단독 대서양 횡단을 한 때가 바로 전 1927년이었다.
그런 시절에 이런 요구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건 정말 기발하고 대단하긴 하나.. 루프트한자 항공은 현행법상 그래야 할 근거가 없다면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긴, 저건 인터넷 초창기에 좋은 단어로 된 도메인 주소명을 자기가 쓰지도 않을 거면서 알박기 한다거나, 아니면 심지어 달 표면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뜬금없게 들렸을 것이다.;;
그랬는데 말이 씨가 되어 1944년 12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가는 시기가 돼서야 미국의 주도로 국제 민간 항공 협약이란 게 맺어졌다.
선박은 최소한 신고만으로 남의 나라 영해를 지나다닐 수 있는 반면, 비행기는 돈 내고 허가를 받아야 외국 영공을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법이 이때 본격적으로 정착됐다. 선박보다 훨씬 더 빠르고 내륙까지 순식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위험한 특성이 고려됐지 싶다.
영공 통과료가 부과되는 영역은 항공 관제가 제공되는 영역과 대응한다.
태평양 한가운데는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공해이니, 선박이라면 통행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런 곳을 비행할 때도 세계 경찰 미국으로부터 항공 관제를 받는다면 미국에다 영공 통과료를 내야 한다. 이건 '영공 통과료'가 아니라 진짜 그냥 '관제 수수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레이더도 발명됐겠다, 오늘날은 아무도 모르게 몰래 슬쩍 비행하는 게 가능한 시대가 아닌 셈이다. 그리고 현재의 국제 항공법에 따르면, 여객기는 언제라도 n분 안으로 근처의 제일 가까운 공항에 비상 착륙 가능한 항로만 골라서 비행하게 돼 있다. 엔진 수가 적고 출력이 작은 비행기일수록 그 제약이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지름길이라 해도 무작정 육지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를 대놓고 횡단하지도 못한다.
끝으로.. 국제 우주 정거장 같은 인공위성이야, 비행기나 항공 관제 시설이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대기권 너머 높은 우주에서 훨씬 더 빠르게 지구를 도니.. 저런 항공법에서는 당연히 열외돼 있다. 영공 통과료 따위 없다.
비행기의 고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피트이지만, 우주 발사체의 고도는 엄연히 SI 단위인 킬로미터로 나타낸다. 서로 물이 완전히 다르다~!
4. 면세점
비행기의 영공 통과료는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등장한 곳에 규제와 세금이 따라 부과된 것에 가깝다.
그런데 여객기를 이용한 자유로운 외국 여행은 반대로 납세 의무가 '면제'된 새로운 장소를 개척했다. 바로 면세점..
이건 꽤 재미있는 계기로 등장했다. 1947년, 아일랜드의 섀넌 공항에서 Brendan O'Regan이라는 직원이 합리적인 제안을 한 게 시초라고 한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직전인 승객들은 법적으로 이제 이 나라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 쇼핑 때 여전히 이 나라의 세금이 부과된 물건을 사야 하는 건 부당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런 승객들을 상대로 간접세가 붙지 않은 저렴한 물건을 팔아서 이윤을 남겨 보는 게 어떨까요?"
이 관행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의 공항들은 면세점을 갖추는 게 관행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완전 자그마한 나라의 듣보잡 공항인데..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큰일을 했다..;;
요즘은 국제 공항뿐만 아니라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도 면세점이 있다. 하지만 옛날에 여객선을 타고 대양 횡단하고 외국으로 가던 시절에는 이런 면세점이 아직 없었는가 보다. 면세점은 세계 대전이 끝나고 UN이 생기고 비행기를 이용한 외국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등장했으며, 그걸 선박 쪽에서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