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착륙의 위험성
비행기는 높게 날고 있는 중이 아니라 다 와서 착륙 직전이 됐다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때가 더 위험하다. 아무리 속도를 줄이고 줄였다 해도 지상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굉장한 고속이며, 착륙 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연료 누출과 지면 마찰로 인해서 화재도 생각보다 잘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행기 조종 시뮬레이터를 짜끄레기 수준으로나마 만져 봤을 때 말이다. 자동차와 다른 모든 특성이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느껴졌었다.
자동차와 달리 양발 페달을 다 쓰고 그것도 페달의 아래쪽(발뒤꿈치)과 위쪽(발가락)도 구분해서 밟고..
상승 하강하거나 좌우로 선회할 때 러더(페달), 조종간(핸들), 엔진 출력 레버(변속기??) 세 개를 아주 절묘하게 같이 움직여 줘야 하고..
단발 경비행기이다 보니, 조종간을 놓고 있으면 기체가 프로펠러 돌아가는 방향의 반대로 roll이 걸린다. 쉽게 말해 옆으로 뒤집힌다. 2발 이상부터는 이런 현상이 없겠지..
자동 변속기 차량이 D에서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 저절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랄까?
그리고 기억에 남는 점이 있었다. 착륙을 앞두고 기체가 고도가 낮고 속도가 낮아져 있으면.. 눈에 띄게 자세 제어가 잘 안 되고 기체가 말을 안 듣더라는 것.. 비행기가 땅에 내려가려면 위험하게도 조종 가능성도 같이 내려놓아야 된다. 착륙 실패 사고가 왜 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날씨가 어지간히 안 좋아도 그냥 이렇게 내려앉아 버리면 될 것 같은데, 때로는 왜 삽질스럽게 복행을 하고 touch & go를 하는지도 얼추 이해가 됐다.
착륙 중에 돌발상황이 발생해서 착륙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뒤늦게 다시 조종해야 하는데.. 이미 때가 늦어서 조종이 안 되면 이는 사고로 이어진다.
물론, 비행기가 양력이 아닌 추력만으로 뜰 수 있을 정도로.. 무슨 로켓이나 전투기 급으로 엔진 성능이 탁월하다면야 어떤 상황에서든 걱정 없이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가득 태운 크고 무거운 여객기에서 그런 괴력을 바랄 수는 없다.
우주 발사체도 역추진이 가능하다면야 지구 대기권 재진입이 그렇게 어렵고 위험하지 않을 텐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이와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그리고 전투기는 중량 대비 엔진 추력이 탁월한 대신, 여객기가 꿈도 꿀 수 없는 전투기만의 온갖 험악한 급선회 급강하 등의 기동 훈련을 하다가 어디 삐끗 하면 추락 사고가 나곤 한다. 전투기는 그쪽만의 그런 고충이 있는 셈이다.
2. 대한 항공 631편 활주로 이탈 사고
지난 2022년 10월 24일엔 대한 항공에서 1999년 이후로 23년 만에 기체 전손 상각 급의 착륙 사고가 났다.
악천후 속에서 두 번이나 착륙에 실패했다가 간신히 내려앉긴 했는데, 이전의 착륙 시도 때 랜딩기어의 브레이크가 망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착륙 후에 제대로 제동을 못 걸어서 활주로를 이탈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인명 피해는 전무했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사고 기체는 1998년에 도입된 노후 기종으로, 2022년 말에 내구연한 경과로 인해 어차피 퇴역 예정이었다고 한다. 대한 항공의 입장에서는 사고로 인한 손해나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듯하다.
저런 사고 상황에서 승무원이 승객들을 신속하게 탈출시키기 위해 "머리 숙여!", "이쪽으로 빨리 나가 / 짐은 버려! 빨리!" 같은 고압적인 반말을 쓰는 건 법으로 보장된 정당행위이다. 승객들은 여권이라든가, 생명과 직결된 의료기기 급이 아닌 한, 거추장스러운 짐도 챙기지 말고 닥치고 비행기를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비상 착륙한 비행기는 거의 수술실 응급실이나 군대 사격· 수류탄 훈련장에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기체가 언제 불이 나거나 폭발할지 모르는데, 자기가 꾸물대다가는 뒤의 다른 사람들까지 탈출을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굉장히 빡센 안전 규정이 적용되며 승무원의 권한도 매우 커진다.
무전에서는 효율을 위해 존칭 생략하고, 반말까지는 아니어도 '-했음, -바람' 음음체로 말을 최대한 짧게 뚝뚝 끊는다.
하물며 저런 상황에서는 반말을 써야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 빨리 파악하고 말귀가 더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음절수가 짧아져서 경제적인 건 덤이고 말이다.
아울러, 여객기에서 착륙을 앞두고서 테이블을 접고 벨트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굳이 창문도 다 열라고(정확히는 창문 덮개) 승무원들이 지시하는 이유는.. 만약에 사고가 났을 때 밖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 과거의 유사 사고들
에어프랑스 358편(2005), 그리고 대한 항공 2033편(1994)은 악천후 속에서 착륙 착지는 했지만, 그 뒤 뭔가 삐끗 해서 활주로를 이탈해서 사고가 났다. 비록 탑승자들은 일부 경상만 입고 전원 생존했지만, 기체는 불까지 나면서 박살 났다.
요게 저 대한 항공 631편과 비슷한 형태의 사고이다. 이러니 비행기는 단순히 땅에만 내려앉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는 안전을 100% 장담할 수 없는가 보다.
대한 항공 801편(괌, 1997)이라든가 그리고 아시아나 항공 214편(샌프란시스코, 2013)은 저 두 사고보다 인지도가 더 높은데, 얘들은 착륙 위치를 잘못 계산해서 난 사고이다. 즉, 땅에 제대로 내려앉지 못한 채 사고가 난 것이다.
대한 항공 801의 경우는 착륙 사고치고는 사상자가 굉장히 많이 발생해서 더욱 끔찍한 비극이 됐으며, 사실은 착륙 사고로 넘어가기도 전 단계인 추락 사고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추락 → 착륙 → 활주로 이탈"의 순인 듯..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불가항적 천재지변이 아니라 조종사 과실로 214편 착륙 사고를 낸 것에 대한 징계 명목으로.. 국토교통부로부터 샌프란시스코 노선 영업을 45일 동안 정지 당했었다. 원래는 90일이었는데 어째어째 이의 제기하고 읍소해서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그 정지가 실제 집행된 건 6년이 넘게 지난 2020년 3월부터 4월 사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차피 항공업이 몽땅 궤멸 당하던 시국이었기 때문에 징계로 인한 추가적인 영업 손실은 별로 없었다. >_<
4. 1980년, 대한 항공 015편 착륙 사고
사실, 대한 항공은 두 차례의(1978년 902편, 1983년 007편) 소련 미사일 격추 사건 때문에 덜 부각될 뿐이지, 그 중간의 1980년 11월에 015편이 김포 공항에서 착륙 중에 자체적인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 아시아나 214편 사고와 아주 비슷하게, 다 와서 활주로보다 먼저 착지해 버린(언더슛) 것이다. 이게 대한 항공이 대형 747기를 날려먹은 최초의 사고이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신속하게 탈출했지만 이때에도 기체에는 화재가 발생했다. 2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들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탈출해서 생존했지만, 2층에 있던 일부 승객은 연기에 질식해서 기내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때 조종사(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들은 생존했고 뻔히 탈출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불타는 기내에서 자결에 가까운 산화? 순직을 선택했다. 이건 우리나라의 항공 사건· 사고 역사를 통틀어 정말 유일한 초유의 사례이다.
다른 승객들을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화마에 휩싸인 것도 아니고,
어느 의로운 전투기 조종사처럼 민가를 덮치지 않으려고 사출을 거부하고 기체를 끝까지 조종한 것도 아니고.. 모든 상황이 끝난 조종실에서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이분들, 연기에 질식해서 의식을 잃어 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ㅠㅠㅠ
저 때는 군사, 해운, 항공 같은 여러 전문직에서 저런 식으로 "전투에서 이기든지 죽든지",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 "이 한 몸 죽어서 속죄한다" 같은 관념이 아직까지 강하게 남아 있었다. 특히 여객기 조종사는 군 출신이 많았을 테니까..
기장의 이름은 '양 창모'였다. 비슷한 시기 1976년 몬트리올에서 한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 '양 정모'와 이름이 비슷하다.
5. 저 시절 여객기 파일럿 출신의 목사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되긴 했지만 말씀 보존 학회의 설립자 이 송오 목사(1938-2022)가..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려 70년대에 그 낡은 구닥다리 여객기인 보잉 707의 조종을 배운 마지막 세대였고, 그 시절 최첨단 기종이던 747을 새로 배운 파일럿이었다고 한다. 그의 개인 간증이 말보회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 보기)
저 때는 우리나라는 외화 절약, 불온사상 침투 방지, 주변에 온통 적성국가(중국 소련. 일본은 이념이 아닌 국민정서상 적성-_-)..;; 이런 명분으로 인해 일반 서민의 외국 여행이 매우 심하게 제약이 걸려 있었다.
유학, 이민, 비즈니스, 대회· 행사 참가, 친지 방문 같은 뚜렷한(?) 목적 없이, 단순 배낭여행 신혼여행 목적으로는 아예 여권을 만들 수 없었다. 일반 서민은 일등석 티켓을 끊을 돈이 있어도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없고 한국을 뜰 수 없었다.
신혼여행은 당연히 부산, 강원도 정도나 다녀오면 평타이고 제주도가 지금의 동남아 같은 급.. 아니면 새나라 자동차 택시 타고 서울 남산이나 난지도 투어만으로도 감지덕지였을 정도였다.
그 까마득하던 시절에 무려 국제선 대형 여객기 조종사라는 건 정말 초 엘리트 중의 엘리트 전문직이었다. 연봉이 도대체 얼마였겠냐;; 747 국제선 기장급이면.. 내가 알기로 30여 년 전 1990년대에 이미 억대였다.
그랬는데 저 사람은 목회와 신학에 꽂혀서 대한항공 직장을 그만두고 1981년경에 홀연히 신학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되고.. 킹 제임스 성경과 피터 럭크만에 미치고 꽂혀서 인생 행로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쉽게 말해 저 사람은 1978년의 902편 피격 사고(707), 1980년의 015편 착륙 사고(747) 당시의 조종사들과 정확하게 같은 연배라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시간대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면서 현타가 온다.;; (새로운 정보가 내가 이미 알던 정보와 연결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
당연히 대한항공 여객기들이 도색도 지금 같은 하늘색으로 바뀌기 전의 까마득한 옛날이다. (since 1983~84)
그 초창기엔 그는 열정과 추진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이 성경과 이 신학 노선은 내 인생을 다 바쳐서 몰두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 실천했던 것이다. 이건 그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은 대한 항공에서 무슨 스튜어디스로 일하다가 결혼 후에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것 같은 평범한 케이스가 전혀 아니다.
물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한 뒤부터 차차 초심을 잃어 간 것, 공과 과를 모두 분명하게 남긴 것은 후세가 평가할 일이다.
근본적으로 이분은 뭔가 성도들을 세워 주고 인자함과 강인함을 모두 갖춘 목자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군 장교 같은 다혈질이 지나치게 강했다. =_=;;
교리 노선이나 진리 때문에 분리되는 것보다 괜히 쓸데없이 적을 만들고 동지들을 떠나가게 만드는 게 컸던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송오 목사는 "주님께서 성경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신다!!"라는 명제가 골수에 박힌 나머지, 기관의 이름도 그대로 '말씀 보존 학회'라고 지었다.
그의 그런 본심 대신, 완전 미치광이 이단 인격파탄자 같은 면모만 대외적으로 자꾸 부각된 것이 참 안타깝다. 천성이 교활하고 위선적이거나 사악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한킹 신자건, 흠정역 신자건.. 밖에서 대충 보면 다 똑같이 킹 제임스 이단-_-;;일 뿐이다. 부디 2세대들은 서로 자기가 잘났네 진영간에 최소한 인격모독 비방은 하지 말고, 이 나라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는 데 각자의 방법으로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 참고로 이 송오 목사의 사인은 췌장암으로, 과거 스티브 잡스의 사인과 동일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