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애굽기의 강한 손
성경에서 출애굽기의 앞부분은 모세라는 인물이 태어나고 광야로 도피 중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동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서 나오라는 소명을 받는 내용이다. 모세는 자기는 인간적으로는 이집트 왕가를 맞닥뜨릴 면목이 없는 상태라고 변명하면서 뒤로 빼지만, 하나님은 겁먹지 말라고 다그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파라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내 백성을 놓아 주라고 얘기해라. 하지만 파라오는 처음에는 네 말을 절대로 호락호락 듣지 않을 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걔는 강한 손이라는 초월적인 파워로 쳐맞기 전까지는 절대로 너희를 놓아 주지 않을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 출 3:19의 핵심이다. 즉, 하나님이라는 강한 손이 개입해야만 놓아 준다는 뜻이다.
이게 언뜻 보기엔 문맥상 굉장히 자연스러운 서사인 것 같다.
게다가 뒤의 6:1에서 '강한 손'이 다시 나온다. 이때는 모세가 파라오에게 겁먹어서 선포가 아니라 애원· 당부· 네고와 비슷하게 얘기를 하다가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완전히 의기소침해 있을 때이다.
"파라오는 강한 손한테 혼쭐이 단단히 난 뒤에 네 백성을 거의 추방하다시피 진절머리를 내며 내보낼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3:19도 '강한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놓아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워딩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런데... KJV의 출 3:19는 not let you go, no, not by a might hand이다. '강한 손이 있어야 풀어 준다'가 아니라 '강한 손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풀어 주지 않는다'라는 반대의 뜻이다.
no, not은... 로마서 3장에서 "의인은 없나니, 단 한 명도 없다", 시 14와 시 53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 백부장의 믿음에서 "이와 같음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단 한 건도 못 봤다" 등.. 의심의 여지 없이 시종일관 전체 부정을 뜻한다.
이런 점이 감안되어 킹제임스 흠정역의 경우, 작년 여름에 출간된 6판 마제스티 판에서야 "강한 손으로도 가게 하지 않는다"라고 번역이 수정되었다. 딱히 변개 이슈와 관련된 구절이 아니다 보니, 흠정역도 얘는 오랫동안 별 생각 없이 타 성경의 번역을 그대로 따랐던 것 같다.
그 반면, 말보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오래 전부터 저렇게 번역되어 있었다. 그쪽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다시 채우다 replenish' 등, 진작부터 KJV의 튀는 번역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성향이어서 그런 듯하다.
2. 삼손이 빡친 이유
사사기 15장에는 이스라엘의 천하장사 재판관이었던 삼손이 적국 여자와의 사랑에 실패해서 사고뭉치로 흑화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우선 3절.. "선 넘네.. 이제는 내가 승질대로 깽판 쳐도 니들은 할 말 없을 줄 아쇼~~" 이거는 성경에서 제일 빡친 사람의 대사이지 싶다. 삼손이 빡친 구체적인 이유는 이 글에서 설명하지 않을 것이므로 관심 있는 분은 성경을 직접 찾아 보시길..
블레셋 사람들은 앵그리 삼손으로부터 불여우 테러를 당한 뒤, 맨 처음엔 의외로 삼손이 아니라 원인 제공자인 저 여자네 가족을 보복하고 응징했다. 집을 불질러서 그 집안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6절)
그랬는데.. 삼손은 화를 푼 게 아니라 여자네 가족을 죽인 블레셋 사람들에게도 양학을 벌였다. 그 이유가 뭘까..??
어지간한 다른 성경들에 따르면, 삼손은 그래도 여자 집안에 대한 연민이 있어서 그들을 죽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복을 했다. "이런 잔인한 살인극을 벌이다니 내가 보복을 하겠다" (because, since) (7절)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의 묘사는 다르며, 싸이코패스 급으로 더 잔혹하다. "니들이 이렇게 하더라도 내 성에 안 찬다. 나는 더 보복하고 말겠다" (though)라는 도발이다~!!!
즉, 7절이나 앞의 3절이나 동일하게 '-하더라도' though가 나란히 쓰인 것이다. 이것 말고 다른 해석의 여지는 없다.
성경엔.. 특히 구약을 보면 사건의 묘사가 동심파괴스럽고 잔혹한 경우가 가끔 있다. "입다의 딸이 궁극적으로 어찌 됐는가?", "피지배민들을 톱으로 잘랐는가, 아니면 톱으로 노동을 시켰는가?" 같은 것 말이다. 성경 자체가 그러한데, 내 경험상 킹 제임스 성경은 그런 강도가 조금 더 높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만, 아무리 당장 이해가 안 되고 수긍이 안 된다 해도 말을 뜯어고치고 성경을 변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3. 욥기의 영과 독
욥 6:4를 보자. "전능자의 화살이 내 안에 들어와서(박혀서/있어서)" 보통은 '내 영이 그 독을 마셨다' 인데,
킹 제임스 성경만 혼자 '그 독이 내 영을 마셨다' 라고 돼 있다.
우와.. 러시아식 도치 유머가 성경 역본에도 존재하는구나.;;;
이거 뭐
- 미국에서는 시민이 대통령을 암살합니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대통령이 시민을 암살합니다~!!
- 미국에서는 당신이 파티를 찾아 다닙니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당원(party)이 당신을 찾아 다닙니다!!
- 개역/NIV에서는 당신의 영이 독을 마십니다. 하지만 KJV에서는 독이 당신의 영을 마십니다~!
일각에서는 "도치됐을 뿐 KJV도 영이 독을 마신다는 뜻이다, 이건 한국어 번역 문제일 뿐이다"라고 실드 치기도 하는데..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도치를 하더라도 "the poison whereof MY SPIRIT drinketh up" 정도가 돼야 주어가 '영'이 되지, 저건 누가 봐도 평이하게 독이 영을 마신다는 뜻이다.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KJV 특유의 그 복잡하게 꼬인 도치 문장을 파헤쳤던 경험으로는, 저 문장은 통사론적(= 문법)으로 영이 독을 마신다고는 절대로 읽히지 않는다.
해석은 독자 마음대로.
의미상으로는.. 영이 독을 마시든 독이 영을 쭉쭉 흡입해 버리든 어쨌든 털리고 X된다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_+
얘는 의외로 흠정역이 영어대로 번역돼 있고 한킹은 '내 영이 독을 마셨나니'라고 non-KJV 스타일로 번역돼 있다. 아까 출애굽기의 강한 손과는 좀 반대의 면모이다.
4. 물리 치료
사람을 두들겨 패서 질병이나 못된 심보를 고치는 걸 시쳇말로 참교육 내지 '물리 치료'라고 부른다. 뭐, 참교육은.. 엄밀히는 패는 것뿐만 아니라 경찰서 정모나 소송, 금융 치료까지 포함 가능한 더 큰 용어이지만 말이다.
성경에도 물리 치료라는 게 나온다. 그런데 KJV와 non-KJV가 사용한 방식이 서로 정반대인 곳이 있다.
바울의 비장한 심정이 담겨 있는 고전 9:27에서 KJV는 "억제하여 keep".. 단순히 욕구 절제, 자제.. 이런 뉘앙스가 강한 반면, 타 역본들은 beat, discipline, 심지어 punish라고.. '쳐서 복종하게 한다'라고 돼 있다. 기독교 외의 타 종교에서 행하는 고행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왕하 5:11에서 나아만 장군이 빡쳐서 내뱉는 말을 보자. "이야, 엘리사가 직접 날 찾아와서 썩은 부위를 팍팍 치고(strike) 신나게 푸닥거리를 벌이면서 나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꼴랑 강에 가서 목욕을 하라고? 이거 뭐야..?"
이건 반대로 KJV는 '치다, 때리다'인데 다른 역본들은 몽땅 다 '손을 흔들다'(wave)라고 수위가 약화됐다. 참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오늘날 2020년대까지도 이상한 데서 신앙 치료 한답시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KJV는 이를 정확하게 통찰한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5. 이익이 경건인가, 경건이 이익인가??
딤전 6:5는 킹 제임스 성경과 타 성경 간의 차이점이 두 가지 존재한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진"이라는 수식은 동일한데, 그 다음.. 대개는 "경건을 이익의 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말이 저렇게 쓰여 있으면 십중팔구 삯꾼 목자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영적인 거, 종교심 이런 걸 갖고 돈벌이나 하려는 사람.. 목회를 비즈니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 범주에 들지 않겠는가? 나도 이전 성경을 보던 시절엔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킹의 번역은 단어의 배치가 타 성경과는 반대다. (1) "이익을 경건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이건 쉽게 풀이하자면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이 세상에서 일 잘 풀리고 잘 살게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신자 수가 늘고 헌금 많이 걷히고 교회 팽창하고 이익 많이 남기는 것이 '곧'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것이 경건이다.. 이렇게 실용주의를 적극적으로 접목한 사고방식이다. 더 뼈때리게 비유를 들자면 발람의 사고방식.
그냥 삯꾼 목자이기만 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잘못된 사고방식임이 명백하다. 아니, 저건 삯꾼 목자의 사상을 본질적으로 저격한 게 아니겠는가?
킹은 이익이 경건인 게 아니라, 반대로 '만족함이 있는 경건에 큰 이익'이 있다고 바로 다음 6절에서 말한다. 둘의 차이를 명심하시길 바란다.
빌 1:21 '죽는 것이 이익'과 더불어 신약 성경에서 예수쟁이의 '이익'에 대해 언급하는 둘뿐인 구절이다.
(참고로: 성경은 말씀 사역자가 물질적으로 보상받는 것 자체는 지극히 정당하다고 몇 번이나 말한다. 비현실적으로 물질 자체를 부정하고 죄악시하면서 무소유 위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사 해서 이익 남기는 것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는걸... 하지만 이 딤전6은 그와는 다른 문맥을 말하고 있으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그리고 킹은..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쓰잘데기없는 논쟁이 발생하니까, 독자 여러분은 (2) 저런 자들로부터 떠나고(withdraw 발 빼라) 쟤들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고, 분리되라고 추가로 명령한다!!! 살후 3:6처럼 말이다.
그러나 킹 말고 다른 성경들은 '쓰잘데기없는 논쟁이 발생한다'까지만 말하고 5절이 끝난다. 왜 이렇게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난 모르겠고, 어쨌든 그렇다는 거.
요즘 안 그래도 킹을 우리말로 번역했다는 역본들이 여럿 난립해서 정신 시끄러운 상태다. 근데 어떤 역본은 차이가 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이 간단명료한 구절의 (1) 파트의 번역이 갑자기 뜬금없이 달라져서 독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야기했는가 보다. 킹의 번역본을 표방했다면서 non킹 스타일로 돌아간 거다.
난 그렇게 달라진 줄도 몰랐는데 최근에야 얘기를 듣고는 놀랐다. 도대체 왜 바꿨지? 딤전 6:5가 무슨 아세라/grove도 아니고, replenish도 아니고, baptize for the dead도 아니고, 해산함으로 구원도 아니고.. 하나도 어려운 구절이 아닌데 말이다.
부디 착오였길 바라며, 다음 판이나 쇄에서는 도로 원복 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