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흑역사 -- 무장 탈영

1993년 4월 19일. 구포 역 무궁화호 전복 사고가 터진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서울 한복판에서는 한 무장 탈영병 때문에 무려 총격전이 벌어지고 시민들은 잠시나마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 한 일이 있었다. 그 탈영병의 똘끼는 그야말로 북한 무장 공비를 능가하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탈영 역사에 관한 한, 아마 창군 이래로 전무후무한 흑역사로 남지 않을까 싶다.

사건의 주인공은 철원의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임 채성 일병. 그는 이 대형 사고를 치기 전에도 이미 탈영으로 구속된 적이 있는 군 생활 부적격자 관심 사병 단계였다고 한다.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기라도 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괜히 부적격자였던 것 같다. 불만이 쌓인 끝에 그는 결국 K1 기관단총에다가 무려 130여 발에 달하는 실탄과 수류탄 22발을 갖고 탈영했는데... 이 정도면 가히 터미네이터 내지 듀크 뉴켐 수준이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4426_6127.html

탈영은 굉장한 중범죄이다. 특히 무장 탈영병은 현장에서 사살 당하는 수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헌병대는 탈영병 잡는 건 전문가이며, 탈영병의 인맥과 연줄까지 다 동원해서 정말 잘 잡는다. 군인은 아무리 옷 갈아입고 가발까지 써도 딱 보면 군인이라나? 얼마 전에 이 재진이 잡힌 걸 생각해 보라. 거기에다 탈영은 매해 내려지고 ‘갱신’되는 3군 참모 총장들의 “탈영병 복귀 명령” 덕분에, 사실상 공소 시효가 없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화나 게임 같은 매체에서는 탈영을 무슨 철없고 혈기 만연한 20대 청년이 한 번쯤 해볼 만한 탈선 정도로 아주 가볍게 다루는 듯. 군대가 없어서 총 쏴 보려고 우리나라 부산까지 원정 오는 애들이, 병역 의무 여부가 대통령까지 바꿔 놓은 이웃 나라의 정서를 이해할 리가 없다. (이상, 탈영에 대한 엔젤하이로 위키 설명을 재구성)

군부대를 빠져나간 임 일병은 민폐를 정말 많이 끼쳤다. 근처의 민간인을 위협하여 옷을 뺏고 차를 얻어 탔으며, 덕분에... 무려 7군데에 달하는 검문소를 유유히 통과하여 서울로 진입했다!

탈영 후, 밀항해서 곧장 해외로 뜨거나 첩첩산중에서 은둔해도 시원찮을 판에 서울 시내를 누비고 있었으니, 그의 행적은 곧 헌병대에 발각됐다. 그런데 그를 처음으로 발견한 헌병이 상부에다 보고를 하면서 개삽질을 하는 바람에 그를 놓치고 만다. 그때 임 일병을 신속하게 체포 내지 사살하는 데 성공했으면 차후의 유혈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여기 헌병들은 나중에 가루가 되도록 깨지고 까였다고 한다. “선조치 후보고라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을 위해 존재하지 않느냐 이 ㅂㅅ아!” 같은 식이었을 것이다. -_-;;

왜 그거 있지 않은가? “시꺼 임마, 난 간부다” 한 마디에 기가 눌려서, 나중엔 그거 훼이크를 구사하는 북한군까지 밤에 통과시켜 줘 버린 초병처럼 말이다.

본격적으로 뮌헨 올림픽 참극이 벌어진 건, 임 일병이 자기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됐음을 스스로 직감하고부터였다. 어느 30대 여성을 포함해 주위 사람을 닥치는 대로 인질로 잡고, 주변에 움직이는 차나 사람을 향해 총질을 했다. 소이탄과 살상용 수류탄까지 막 던졌다. 겨우 리볼버 권총으로나 무장한 경찰은 무려 기관총을 소지한 임 일병의 전투력을 제압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 1명이 총상을 당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결국 임 일병은 화이바가 아니라 베레모를 쓴 저격수의 총을 복부에 두 방이나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고를 내는 또라이들은 보통 자기도 자살하는 걸로 끝을 내는데 그는 그러지는 않았던 듯. 이로써 희대의 무장 탈영병 총격전은 끝이 났다. 그는 중상을 입었지만 즉사하지는 않았으며, 아직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송된 병원에서는 가히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통했다고 한다. 뭐, 치료가 끝나 봤자 남은 건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 인증 받고 다시 총살형-_-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일개 병사가 무장 탈영하여 서울 한복판에서 멀쩡한 시민들을 인질로 붙잡거나 살상하고, 총과 수류탄까지 난사했으니... 이 친구가 군대에 끼친 후폭풍은 가히 엄청났다. 소속 군부대에서는 줄초상이 났다. 사단장이 경질되었고, 대대장부터 일직하사까지 간부들은 죄다 군복 벗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속크리를 먹었다고 한다. 그가 통과한 검문소를 관할하던 헌병대장도 응당 짤렸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민간인의 사형 집행은 교수형--뭐, 이제 집행 안 한 지 10년도 더 됐으나--이지만, 군인의 사형 집행은 여전히 총살형을 쓰고 있다. 군인이 총으로 적군을 안 죽이고 도리어 아군을 죽이거나 심지어 이적 행위를 한다면, 그 총으로 자기가 죽는다는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 총살형 집행도 헌병이 한다고 하니 흠좀무스럽다.

지난 2005년 6월엔 역시 전방에서 군 복무 부적격 티가 농후하던 김 모 일병이, 자살이나 탈영은 아니고 고참들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총기 난사+수류탄으로 대량 팀킬을 저질렀었다. 이 참극으로 무려 8명이나 목숨을 잃고 김 일병 역시 응당 군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그건 집행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 유족들은 그저 “저 나쁜 쌍노무 새키 어서 사형에 처해라”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군이 온갖 의혹들을 해소해 주지는 않고 김 일병만 희생양으로 뒤집어씌워 자기네 실수와 비리를 슬쩍 덮으려 한다면서 관계자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물론 군대에서 이따금씩 일어나는 이런 불상사들은 아주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경우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유능하던 인재가 군대에서 그 능력을 썩히고 도리어 캐 고문관 취급이나 당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북한과 싸우지도 않고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나가고 군대에서 그 원인에 대한 해명과 재발 방지조차 약속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안보와 기강은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에서 병사가 저렇게 나쁜 사고를 큼직하게 치면 위의 간부들은 이제 진급에 애로사항이 꽃피게 되며, 심하면 줄줄이 짤린다. 하지만 병사가 전투 중에 북한군(무장 공비)을 사살한다면? 상황은 완전 그 반대가 된다. 1 kill만 달성해도 당사자는 최소한 천만원 대 단위의 포상금부터 시작해서 훈장에, 계급 특진에, 정말 헬기 타고 금의환향 포상 휴가까지 주어진다. kills수가 많으면 바로 전역도 가능할 것이다. 그 병사의 관할 간부들은 승진길이 확 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병사한테 엄청 잘 해 주게 된다.

아무리 남북 화해 분위기가 만연하다 해도, 또 국방백서에 주적 표기가 있든 없든,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휴전선에서 북한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며, 우리나라 국군은 북한군의 목숨을 노리고 거기에 목말라하는 집단임을 부정할 수가 없는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26 08:39 2010/06/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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