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디오 테입 얘기.
옛날에 VHS 방식 VTR은 어린 본인이 보기에 정말 신기한 물건이었다.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TV 채널을 꼭 4번으로 바꿔야 한다. VTR은 또 자신만의 채널 선택 기능이 있으며, TV 채널이 4번인 상태에서 VTR 전원을 켜면 VTR이 설정해 놓은 채널의 TV 방송이 채널 4번으로 포워딩되어 흘러나왔다. 이것이 VTR이 인식하여 녹화 가능한 TV 채널이다. (그렇다면 VTR은 자체적으로 TV 신호 수신 기능이 있다는 얘기인지?)

좀 고급 VTR은 심지어 예약 녹화 기능까지 있어서,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가 녹화 버튼을 안 누르더라도 지정된 시각에 특정 프로가 시작될 때 자동으로 녹화가 되게 할 수 있었다. 카메라에 간단한 예약 타이머 기능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VTR은 시계 기능도 필수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VTR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보니 화질은 그리 좋지 못하다. 수평 해상도가 240이면 도스 시절 게임 화면인 320*200보다 약~간 나은 수준밖에 안 된다는 소리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TV 신호이든 비디오 카메라 영상이든 녹화가 간편하게 잘 되는 게 좋아서 꽤 오랫동안 시대를 풍미했다.
그랬는데, 비디오와 카세트 테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방송에 대한 녹음· 녹화 풍토도 확 바뀐 것 같다.

지나간 방송 정도야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고, 드라마 같은 건 고화질 동영상 파일을 유료나 무료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실시간 방송은 전문적인 비디오 스트림 캡처 내지 인코딩 프로그램으로 저장하면 된다. 어쨌든 영상 처리를 별도의 가전 기기가 아니라 컴퓨터로 하게 됐다.
방송이 아닌 일반적인 동영상 녹화는 이제 어지간한 디카나 캠코더로 곧바로 가능해졌으니 더 논의할 필요도 없음.

다음은 VHS 비디오 테입 내지 오디오 카세트 테입 관련 추가 잡설들이다.

1. 이 분야로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VHS가 한때 소니 사의 베타맥스 규격과 표준안 채택을 두고 티격태격 싸웠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베타맥스가 더 우수했으나 결국 VHS가 살아남았다.

2. 비디오든 오디오든 카세트 테입 재생기에는 위치 탐색용으로 간단한 카운터가 있었다. 오디오 테입은 보통 세 자리(0~999), 그보다 러닝타임이 긴 비디오는 네 자리까지 있었다. 자동차로 치면 구간 거리계 정도 된다.
카운터에는 reset 버튼이 있고, 카운터를 activate시키는 버튼이 있었는데, activate되어 있는 경우, 테입을 재생하거나 감던 중에 카운터가 0에 도달하면 테입의 주행이 자동으로 멈추었다.

오디오 CD는 모든 트랙이 분초 단위로 정확하게 카운트다운이 되다 보니 저런 아날로그 식 카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테입과는 달리 현 재생 위치가 매체의 외관상으로 전혀 드러나지도 않는다. ^^;;
그래서 되감거나 앞으로 빨리 감는 중에는, 감고 있는 해당 위치의 음향을 작게 잠깐잠깐 들려주는 방식으로 동작하곤 했다.

3. 카세트 테입 플레이어는 버튼이 동작하는 방식이 기계식과 전자식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건 본인이 편의상 붙인 용어이다. 재생되는 동안 '재생' 버튼이 쑥 눌러져 들어가 있는 놈은 기계식이고, 그렇지 않은 건 전자식이다. 좀 덩치 있는 라디오는 기계식이지만 워크맨이나 카오디오는 다 전자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기계식은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한 치의 딜레이도 없이 곧바로 테입 주행과 재생이 시작된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테입과 재생 헤드가 고정되며, 버튼이 완전히 눌러져서 고정이 끝나자마자 모터가 돌아가서 테입 주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식은 그렇지 않고 딜레이가 존재하여 불편하다.
비디오 테입은 전자식 카세트 테입보다도 딜레이가 훨씬 더 길며, 재생을 누르고 나서 거의 3초 가까이 뒤에야 재생이 시작됐다. 뭔가 초기화 작업이 많은 듯. 그 딜레이가 개선된 VTR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4. 플로피 디스크, 카세트 테입, 비디오 테입 등은 모두 쓰기 방지 딱지를 물리적인 형태로 내장하고 있다. 추억의 딱지이다. 다만, 3.5인치 디스켓은 별도의 딱지를 붙이는 게 아니라 스위치 비슷한 조작으로 쓰기 방지 설정을 바꿀 수 있었다.
USB 메모리에도 쓰기 방지 딱지 같은 게 있으면 어떨까? (뭐, USB에다 꽂는다는 특성상, 물리적인 형태로 구현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꽂는 것만으로도 루트 디렉터리에 악성 코드가 주입되는 것 정도는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ㅠ.ㅠ 애초에 저런 일 자체가 어떻게 사용자의 동의 없이 일어날 수 있는지부터가 본인은 이해가 안 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02 09:04 2010/08/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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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2010/08/02 10:21 # M/D Reply Permalink

    그 당시에 비디오 테입을 빌려 오기만 하면 앞부분에 녹화되어 있던 건전 비디오-_- 홍보 동영상이 생각난다. ^^
    "호환, 마마, 전쟁"을 완전 유행어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말이다. ㅋㅋㅋㅋㅋ

  2. 삼각형 2010/08/02 15:22 # M/D Reply Permalink

    실제로 USB메모리에 '쓰기방지 탭'이 있는 녀석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USB메모리에 파일 입출력을 해주는 컨트롤러가 있는데 그녀석이 하드웨어적으로 쓰기를 거부한다더군요.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도 그렇게 처리 하고요. 아마 쓰기방지를 하고 파일 쓰기를 시도하면 쓰기금지된 플로피 드라이브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겁니다.

    또 OS단에서 n드라이브에 쓰기 거부를 할 수 있는 레지스트리 키도 있고요.

  3. 김재주 2010/08/02 20:07 # M/D Reply Permalink

    쓰기 금지 탭이 달린 USB라면 있습니다. 쓰기 기능이 없는 CD롬 드라이브로 인식이 되죠.

  4. 김 기윤 2010/08/02 21:05 # M/D Reply Permalink

    카세트 테입, 비디오 테입 모두 꼼수(..)의 방법으로 다른 내용을 썻던 기억이 새록새록..

  5. 김재주 2010/08/03 01:22 # M/D Reply Permalink

    카세트 테이프는 소니와 삼성에서 디지털화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테이프에 디지털 신호를 기록해서 음질향상을 꾀하는 것이엇죠. 아무래도 에러 검출이 어려운 형태라서 개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완성은 시켰는데, CD랑 MP3에 밀려서 시장 진입은 하지 못했죠.

  6. 사무엘 2010/08/03 09:13 # M/D Reply Permalink

    보충 설명에 감사합니다. 역시 USB 메모리 정도는 write-protect된 녀석이 있군요.
    전자 공학 기술 쪽은.. 역사를 공부하면 재미있는 것도 많지만, 공밀레~공밀레 소리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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