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코레일이 아주 이색적인 열차를 주말에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일반열차도 아니라 일반 통근형 전동차이고, 운임도 전철 체계 그대로이다.

이름하여 '용문 급행'.
토요일과 일요일에 2왕복으로 운행하는데, 운행 계통은 병점 발(경부선)과 동인천 발(경인선) 둘로 나뉜다.
토요일에는 경부선, 경인선의 순으로 운행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순서를 바꿔서 경인선, 경부선의 순으로 운행한다.
운행 컨셉은 연인-_-들 데이트 코스 내지, 주말 운동과 중앙선 일대의 관광이다.

주말에 혼자 지하철 타고 노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타라고 딱 예비된 열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난 9월 11일, 모든 일정을 제쳐 놓고 당장 시승하러 나갔다.

아침 10시 반에 신길 역에서.. 드디어 용문 급행 전동차를 만났다. 열차를 기다리는 기분은 마치 데이트 상대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코레일이 중앙선과 경부/경인선을 직통 운행하는 전동차를 굴리기 시작했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ㅋㅋ 이제 구로-영등포 구간엔 4량짜리 광명 셔틀 전동차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8량짜리 용문 급행 전동차도 다니게 되겠다.

열차는 텅 비다시피했기 때문에 긴 시트에 그대로 누워 버렸는데, 이런 만행을 본인은 지금까지 공기 수송의 본좌급인 광명 셔틀 전동차에서밖에 저질러 보지 못했다. ^^;;; 뭐, 특이한 공기 수송 열차 하면 과거에 경의선 새마을호(일명 임진강 라이너)도 한 위치 차지했지만 말이다.

용문 급행 전동차의 모든 안내방송은 기관사가 육성으로 직접 하고 있었다. 이 열차는 서울 역 방면으로 가지 않고 심지어 용산 역에도 정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려는 승객은 노량진 역에서 다 내리라고 기관사가 몇 번이고 방송을 해 댔다.

"우리 열차는 용산까지 가지 못하는 열차입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오늘도 함정에 빠지셨습니다." ㄲㄲㄲ

한강 철교를 건넌 후 열차는 선로를 바꾸어, 경부선 하행 방면에서 경원선으로 들어가는 삼각선으로 진입했다. 오오옷! 여기는 일반적으로 승객이 구경할 수 없는 경로이다. (중앙선 전동차가 용산 역에서 이촌 역 사이를 드나드는 길은 경부선 "상행" ↔ 경원선 삼각선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용문 급행은 빨리 가는 급행이 아니라는 것. 단순히 정차역을 줄여서 열차를 탄 사람들이 좀더 쾌적하게 여행을 즐기게 하는 것만이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열차는 이촌에서 무려 청량리 역까지 무정차이고, 그 뒤에는 덕소까지 통과하여 팔당까지 무정차라는 어마어마한 괴력에도 불구하고 표정 속도는 완행 전동차와 별 차이가 없다. 서울에서 양평까지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에, 우리 열차가 앞서 가는 중앙선 전동차를 추월하는 모습을 보질 못했다.

그래도 청량리-팔당까지 2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롱시트가 달린 전철이 그토록 오래 무정차로 달리는 건 공항 철도 이외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경원선 용산-청량리 구간을 무정차로 질주한 건 지난 2009년 말, 서울-청량리 경유 아우라지 행 열차를 아침 일찍 탔을 때 이후로 이번이 처음이다.

경인· 경부선 이외에 현재 경의· 경원· 중앙· 안산선에서 출근 시간대에 제한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정규 급행 전동차는 서울로 가는 상행 방면만 있지 하행은 없으며, 주말에는 운행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용문 급행은 주말에만 하루 2회 운행하고 게다가 서로 다른 정규 운행 계통을 직결 운행까지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참신한 시도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주말에 지하철이나 전동차 운행은 감소하는 반면, 일반열차의 운행은 증가한다. 각 열차의 보편적인 이용 패턴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량진 바로 다음 역인 이촌 역에서 승객이 많이 탔으나, 이 열차는 옥수나 왕십리 등에 정차하지 않고 바로 청량리까지 간다는 말에 상당수의 승객들이 질겁을 하고 도로 내렸다. 용문 급행에 대한 홍보가 시민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다.
관광과 데이트 컨셉으로 운행한다는 전동차가 정작 왜 양 끝칸에 자전거 거치대가 없냐는 질타도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이 보기에도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오랜만에 중앙선 열차를 타 보니, 한창 공사 중인 상봉 역 승강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망우 같은 인근역과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게 딱 티가 난지라, 마치 1호선의 동대문-동묘앞처럼 중앙선의 표정 속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춘선이 선로 용량과 평면교차 지장 문제 때문에 청량리가 아닌 여기서 시종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이 또한 문제이다.
아울러, 아신과 양평 사이에 '오빈'이라는 역이 건설 중인 것도 처음 봤다.

지금까지 한 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 용문 급행은
첫째, 출퇴근이 아닌 여가 컨셉의 급행이라는 것,
둘째, 두 개의 정규 운행 계통을 직통하여 운행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 일반열차가 아닌 기존 전동차 운행 계통을 따른다는 것
에서
무척 이색적인 열차이다. 전에도 가끔 있던 경인선-경원선 직통 부정기 관광 열차 무궁화호 같은 것과도 급이 다르다.

독자 여러분도 주말에 꼭 시승해 보기 바란다.
그나저나, 경인-경부 하행(상행이 아닌) 삼각선을 이용한 직통 열차나 전동차가 다니는 날은 과연 올지 궁금하다.
하지만 경인선은 서울 방면 전동차만 굴려도 수요보다 공급이 미치도록 부족하니 원. ^^;;

Posted by 사무엘

2010/09/16 18:51 2010/09/1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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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이엘 (김 민규) 2010/09/17 00:40 # M/D Reply Permalink

    헐.. 이런 건 또 처음 보네요. 이거 요즘 생긴 거겠죠?
    충분히 주말 하루를 들여 탈 만한 가치가 있는 유니크한 열차네요!

    1. 사무엘 2010/09/17 01:08 # M/D Permalink

      네. 최소한 올해 상반기인 건 확실하구요. 시각표는 아무 검색엔진에다 쳐 봐도 금방 나오니, 꼭 타 보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

  2. 나그네 2010/09/18 05:55 # M/D Reply Permalink

    윗글과 관계없는글이라 죄송합니다만
    이글보시는 분들에게 질문좀 하려고 뎃글을 달아봅니다.
    문제가 되면 삭제 부탁드립니다. 비밀번호 1

    지하철 1호선에서 지하철 들어올때 천안행과 인천행 구분을 쉽고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방송도 잘 못들었고 스크린도어 때문에 가려서 무심코 탔는데 이런...지하철을 탄 후 안에서는 구분할 수 있는 것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저같은 젊은이도 역방송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구분이 힘든상황에 있는 분들, 예를들면 노인분들은 더더욱 못하실듯 합니다.

    1. 사무엘 2010/09/19 00:00 # M/D Permalink

      스크린도어 때문에 열차의 행선지 표지판이 가리는 건 문제라는 것 인정합니다.
      또한 1호선에 다니고 있는 일부 옛날 전동차는 차내에 전광판이 전혀 없어서, 이 차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 또한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승강장에도 전광판이 있고 방송도 충분히 나오고 있는데 그걸로도 정보가 모자란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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