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수능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이제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던 시절에 수능날은, 관공서 출근 시각이 늦춰진 데다 지하철 역시 굉장히 증차된 덕분에 본인 같은 사람에게도 출근하기는 좋았다.
2006년도 수능이 2005년 11월에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 회의 때문에 좀 늦춰졌듯이, 올해의 수능 일정은 G20 정상 회의의 영향을 좀 받았다.
외국 사람들이 보기엔 수능날 아침은 "전쟁이라도 났나? 무슨 계엄령이라도 떨어졌나?" 싶은 흥미진진한 광경으로 비쳐진다더라.
하긴, 우리나라의 수능이 과거의 학력고사보다 더 다이나믹한 시험을 만들어 보려고 미국의 SAT 시험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능과 SAT는 시스템이라든가 위상이 상당히 다른 면모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 SAT는 전적으로 사설 기관이 주관하며 1년에 무려 8회에 가깝게 자주 칠 수 있고 문제은행 방식이다. 한국의 수능은 그렇지 않다.
1. 수능 문제가 출제되기까지
수능을 치르는 학생뿐만 아니라 수능 출제 위원들도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출제 기간 동안 지방 모처에서 감금· 고립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신문 기사들 검색을 해 보면 강원도 속초의 모 콘도라고까지는 나오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일체의 통신 장비를 쓸 수 없고 인터넷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구글링을 하면서 문제 출제를 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상당한 고역일 것이다.
그 대신 수백· 수천 권에 달하는 문헌, 문제집, 참고서를 들고 들어가서 거대한 프로젝트 룸에서 출제 작업을 한다. 조판은 여전히 아래아한글로 하는 것 같다. 최근까지도 문제지 문서 파일이 죄다 HWP 포맷.
출제 기간 중에 심지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보안 요원의 동행하에 빈소에 가서 간단히 예만 올리고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상주 노릇 못 한다는 소리)
수능 시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이 '수능 콘도'에서는 음식 쓰레기 하나도 외부로 반출하지 않는다.
문제를 출제하는 도중에야 바빠 죽겠으니 그나마 나은데 출제를 마치고 문제지를 인쇄하고 테입 제작에 들어간 뒤부터는... 이 사람들은 수능 끝날 때까지 그냥 아무 하는 일 없이, 콘도에 갇힌 채 놀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폐인 모드가 되기 시작한다.
이거 뭐 무슨 말년 병장도 아니고.. 심심해 죽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고 한다. "골프-_- 치고 싶다. 놀러 가게 해 달라, 술 마시게 해 달라.." 물론 그렇게 해 주지 않는다.
(본인이야 노트북에 비주얼 C++만 깔려 있으면 인터넷 없이도 할 게 많은 타입이다만. =_=
내가 만약 출제 위원이라면 얼씨구나 열심히 코딩하거나, 운동만 하다 나올 듯. ^^)
본인이 아는 어느 목사님은 수능이던가 아니면 이렇게 비슷하게 감금 생활을 하는 국가 고시 출제 위원을 한 경력이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출제가 끝나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할 일 없이 허송세월하느니 우리 같이 성경 공부나 합시다. 로마서 강해를 진행하겠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n시에 콘도 xxxx호로 오십시오" 써 붙여 놓고 동료 위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는 무용담이 전해져 온다. 역시 직업 정신 ^^
수능 출제 위원들의 감금 생활 하루 일당은 얼추 30만원대 꼴이라 한다. (출제 끝나고 노는 기간까지 포함해서) 한 달 남짓 감금 당해서 1000 가까이 버는 거라면 액수 자체만으로는 분명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 책임감에 비한다면 좀더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게다가 출제 위원들은 베테랑 현직 교사 아니면 해당 전공 분야의 박사급 전문가들로, 얼마나 고학력 고급 인력인가? 그런 사람들 눈에 수능 출제는 3D 기피 업종처럼 비쳐질 만도 하다. 실제로 출제 위원 위촉은 점차 어려워지는 실정이라고 한다.
2. 기타 & 본인의 잡설
출제 위원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를 경험한 2, 30대라면 수능이라는 게 1994년에 처음 시행되었다는 건 다들 아실 테고, 그때는 수능을 8월과 11월 이렇게 두 번 쳤다. 원큐에 수험생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인 조치였으나, 번거롭고 또 두 시험의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은 한 번만 치는 걸로 바뀐다. 하지만 2014년부터인가 다시 두 번 체계로 회귀하려는 듯.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 체계로 바뀐 1997년도 수능이 역대 극악의 난이도여서 전국 수석이 373점이고 310점만 넘으면 서울대를 그냥 합격할 정도였다고 한다. -_-;; 참고로 역대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도 1997년도 대회가 문제가 다들 휴리스틱 위주에 난이도가 극악이었다.
그러다 본인보다 두 학년 위인 1999년도와 이듬해의 2000년도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기묘하게도 각각 한 명씩 등장했으며,한 학년 위인 2000년도 수능에서 최초로 만점자가 등장했으며(아마 모 과학고의 오 모 씨. 여학생), 본인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어느 천재 선배 누님은 2000년도 수능에서 394점인가를 받아서 나름 경북 수석을 차지했다. 언어 영역에서 꽤 독창적인 문제가 많이 나오고 어려웠다고 회자된 그 수능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수능의 난이도 자체가 꽤 하락해 있었기 때문에 390점대의 점수로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같은 상위권 학과는 떨어지기도 했다.
본인의 학년에 해당하는 2001년도 수능에는 최초로 제2 외국어가 추가되었는데.. 만점자가 60명이 넘게 배출된, 유례가 없는 물수능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특히 지난해와는 반대로 언어 영역이 물이었고, 이는 수학· 과학에 비해 언어 영역이 약한 편인 이공계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아까 그 누님은 1년 전에 그 점수로 당연히 서울대에 간 반면, 이 수능에서 그 점수를 받은 본인의 고등학교 모 동기는 서울대 공대에 떨어졌다. -_-;;;
그러던 수능이 이듬해는 다시 불수능으로 돌변. 교육 과정 평가원은 널뛰기 난이도라고 가루가 되도록 욕 얻어먹게 된다. "앞부분에서 벌써 이런 문제가 나올 리가 없는데" "이건 평상시에 보던 문제가 아닌데" 이 해찬 세대가 겪은 충격과 공포이다. ㄲㄲㄲㄲㄲ
1교시 언어 영역만 마치고서는 시험 포기하고 자-_-살하는 수험생이 뉴스에 보도되고, 성적 비관 자살자가 전국적으로 61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당시 김 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였다. 흉기 안 휘두르고 사람 죽이는 방법. ㄲㄲㄲㄲ
이후 수능부터는 과거의 시행 착오를 토대로 나름 난이도 조절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은 듯하다. 중간에 원점수 표기를 없애고 등급제를 만든다고 생쇼를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삼모사 조치에 불과하다. 대학 수 팍 줄이고, 고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 종사자는 대학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지 않는 이상,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가 근본적으로 해소될 리가 있겠는가?
요즘 수능은 본인 시절보다 과목이 더욱 세분화하고 또 하도 많이 달라져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알 필요도 없지만. 참고로 결정적으로 본인은 수능 안 쳤다. -_-;; 나도 수험표까지 다 만들어 놨지만 나중에 칠 필요가 없어졌으니 결시한 것이다.
수능 전날, 고3을 대상으로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했고 오후엔 시험장 예비 소집에 단체로 참석했다. 그리고 그 날 전교생은 밤 10시 반에 취침 소등했으며(평상시엔 자정에 취침), 다음날 점호도 당연히 없었다.
아울러 우연인지 필연인지, 본인 학년에 해당하는 2001년도 수능이 치러진 2000년 11월 15일은, 비둘기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전날인 2000년 11월 14일에 우리나라의 마지막 비둘기호 노선이던 정선선 열차가 고별 운행을 했고, 이튿날에 퇴역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