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C++ 관련 잡설

1. 비주얼 C++ 한글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한글화한 프로그램의 UI에서 이런 저런 오역이 발견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뭐,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수준의 막장 발번역-_-은 아니지만, 이런 오역이 간간히 발견되는 주된 이유는, 번역자가 해당 소프트웨어가 다루는 분야의 용어를 잘 알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장이나 단어가 실제로 프로그램의 어느 부분에서 등장하는지를 모르는 채, 그냥 번역 리스트만 쭉 보면서 아무 문맥 정보가 없이 기계적으로 번역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개발툴 중 비주얼 베이직은 5던가 6 시절부터 이미 한글화가 되었다. 그 반면, 가장 어렵고 하드코어한 개발툴인 비주얼 C++ 6은 한글화되지 않았으며 닷넷에서부터 통합 IDE가 제공되는 과정에서 드디어 한글화가 됐다. 그러나 베테랑 개발자 중에 한글판 IDE를 선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 점에서는 본인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 유니코드라는 것도 없고 PC의 환경이 극도로 열악하던 시절에는 한글판이 대놓고 영문판보다 성능이 열등했다. 텍스트 모드에서 한글 바이오스를 띄웠을 때와 띄우지 않았을 때의 성능 차이는 말할 나위도 없고, 도스 시절에 한글 QuickBasic은 성능은 둘째치고라도 그야말로 퀵라이브러리(qlb) 파일 포맷이 영문판과 호환조차 되지 않던 쓰레기-_-였다.

영문 윈도우 95는 4MB 램에서 그럭저럭 돌리는 게 가능했던 반면, 각종 무거운 한글· 한자 글꼴을 얹어야 했던 한글 윈도우 95는 최하 6~8MB 램이 필요했다. 그것도 어지간한 PC의 메모리가 4~8MB 사이이던 시절에!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게, 펜티엄급 노트북에서 IE4를 띄웠는데 빽빽한 영문으로 된 사이트는 비교적 매끄럽게 스크롤된 반면, 빽빽한 한글이 적힌 사이트(그냥 굴림체 비트맵 글꼴 크기)는 스크롤이 상당히 굼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윈도우 세계에서는 '한글'이 그것만 특별 취급해 줘야 하는 문자가 아니었으니, 당시의 도스용 프로그램들처럼 효율적인 조합형 한글 입출력 메커니즘이 쓰이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서 완성형이 주류 표준이다 보니 다국적 소프트웨어라면 한글을 2350자 내지 11172자의 그림문자처럼 취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언어에 따른 성능 격차는 없기에 앞서서 측정 자체가 무의미해진 건 사실이다. 지금은 성능 격차 때문에 일부러 영문 원판 소프트웨어를 찾아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비주얼 C++ 같은 프로그램은 어차피 아무나 쓰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핵심 용어들에 대한 어설픈 번역에 이질감과 거부감이 들어서 한글판을 안 쓴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아래 스크린샷을 보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먼저, output 창에 있는 컴파일 에러 로그를 보자. Illegal case를 '대/소문자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오역한 건, 비주얼 C++이 처음으로 한글화된 200x 이래로 지금의 무려 2010에서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번역자가 C++ 프로그래밍에 전혀 무지하거나, 이 문장이 어느 문맥에서 쓰이는지를 하나도 알지 못한 채 번역했음이 분명하다. 세상에 C++이 컴파일러 차원에서 코드의 대소문자 오류를 분간해 주는 언어였던가. ㄲㄲ

비주얼 스튜디오 2010은 C#에 이어 C++까지도 코드의 오류가 있는 부분에 빨간 점선을 그어 준다. 물론 C++ 코드는 C# 코드보다 분석하기 훨씬 더 힘들기 때문에, 이는 내부적으로 완전한 형태의 컴파일러를 백그라운드로 돌림으로써 상당한 양의 CPU 오버헤드와 디스크 용량을 대가로 치른 끝에 구현된 편의 기능이다.

마우스를 case문 에러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 보면, 에러 메시지가 뜻밖에도 컴파일러가 뱉은 것과는 표현이 다르다. 그런데 '스위치'라고? 이건 case를 대소문자라고 옮긴 것보다는 덜 심각한 오역이지만, 이 역시 번역자가 문장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번역한 것 같다. 혹시 기능을 켜고 끄는 물리적인 스위치를 생각한 건 아닐까? 스위치를 음역하지 말고 그냥 'switch문'이라고 옮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2. 비주얼 스튜디오 2010의 GUI customization

비주얼 스튜디오와 MS 오피스 제품(지금처럼 리본 UI가 도입되기 전)은 그야말로 자신만의 화려하고 강력한 GUI를 갖추고 있었다. 메뉴와 도구모음줄은 운영체제가 자체 제공하는 녀석이 아닌 독자 구현 버전을 썼으며, 정말 과잉 투자 잉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GUI 구성 요소를 사용자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었다. 도구모음줄의 배치는 두말 할 나위도 없고, 등록해 놓을 명령, 그리고 심지어 아이콘 그림과 기능 명칭까지도!

내 기억이 맞다면 이거 원조는 MS 오피스 97이다. BCG나 Xtreme toolkit처럼 이런 GUI 엔진만 짝퉁으로 구현하여 미들웨어 형태로 파는 업체도 응당 있을 정도였다.

이런 GUI 엔진이 탑재된 프로그램은 메뉴에 Tool(도구) - Customize(사용자 지정)라는 명령이 있었고, 이 대화상자는 약간 특이하게 동작을 했다.
보통 modal 대화상자가 떠 있는 동안은, 상위의 응용 프로그램 윈도우는 그 대화상자를 닫을 때까지 전혀 반응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 Customize 대화상자는 비록 modal 형태이지만, 그게 떠 있는 상태에서 마우스로 도구모음줄을 클릭하거나 메뉴를 누르면 도구모음줄이 반응을 했다. 도구모음줄 아이콘을 드래그하여 배치를 바꾸거나 없애거나, 콤보 상자의 경우 폭을 조절할 수 있고 우클릭하여 아이콘이나 설명문을 고칠 수 있었다.

즉, 평소에 도구모음줄을 우클릭하면, 나타내거나 감출 도구모음줄을 선택하는 메뉴만 뜨지만, Customize 중에 도구모음줄을 우클릭하면 해당 도구모음줄 아이콘을 고치는 더 세부적인 명령이 떴던 것이다.
메뉴에서 자주 쓰는 기능을 도구모음줄에다가도 좀 올려 놓으려면, 메뉴를 연 뒤에 해당 기능을 원하는 도구모음줄에다가 Ctrl+드래그만 하면 끝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런데... 비주얼 스튜디오 2010은 GUI 엔진이 싹 바뀌면서 저런 예외적이고 특이한 기능을 다시 구현하기가 대략 곤란했는지..
Customize 대화상자와 도구모음줄이 자연스럽게 연동하는 기능이 완전히 없어졌다.
대화상자가 떠 있는 동안은 도구모음줄을 전혀 건드릴 수 없다.

도구모음줄을 고치는 걸 전적으로 대화상자 안에서만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명령을 도구모음줄에다가 좀 추가하려고 했는데, 내가 원하는 도구모음줄과 내가 원하는 명령을 일일이 복잡한 리스트에서 찾으면서 정말 불편하고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콤보 상자(빠른 찾기, 솔루션 플랫폼, 빌드 configuration 바꾸는 것 등)의 폭을 좀 바꾸려고 했는데 세상에나...
폭을 픽셀 단위 숫자로 입력해야 한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에는 마우스 드래그로 간편하게 됐던 것이 상당히 퇴보한 게 아닐 수 없다..;;
난 개인적으로 GUI 운영체제에서, 화면으로 결과를 당장 볼 수 있는 값을 숫자 하나 달랑 입력받게 해 놓은 UI를 싫어한다. 가령, 객체를 회전하는 것만 해도 MS 오피스는 회전축을 잡고 마우스로 드래그함으로써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쉽게 할 수 있는데, 아래아한글 2007은 각도를 숫자로 입력해야 하고, 만족스러운 각도가 나올 때까지 사용자가 시행 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불편한 방식을 비주얼 스튜디오 2010이 답습한 셈이다.
Customize 기능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그냥 이런 형태로 대충 대체 UI를 집어넣은 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딱 하나 좋아진 게 있다면,
예전의 customize 방식은 편리한 대신, 편법 UI인 만큼 오로지 마우스로만 접근 가능하고 키보드로는 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대화상자를 다루는 것이니 키보드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는 것.
사실, 가장 이상적인 건 둘을 모두 갖추는 것이긴 한데 이건 비주얼 스튜디오 2010에서 아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덧붙이자면, VS 2010도 Alt+F11을 눌러서 매크로 편집기를 열어 보면 그건 하나도 안 바뀌었고 예전의 VS 2008 IDE가 거의 그대로 뜬다.

Posted by 사무엘

2011/11/21 08:32 2011/11/2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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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1/11/21 09:58 # M/D Reply Permalink

    1. 사용자 지정 도구 모움을 전혀 안 쓰는지라 그런 불편함이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2. 저는 MSDN 한글로는 잘 못 읽겠습니다. 이상하게 이해가 안 됩니다. 한글로 읽으면.

    3. 보다 보면, 참 이상한 번역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만큼 국제화 잘 하는 회사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
    듣기로는 국제화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시간 날짜 숫자 표시하는 것이며, 아랍어 같은 경우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버리니...

    1. 사무엘 2011/11/21 15:40 # M/D Permalink

      저도 어지간한 소프트웨어들은 그냥 주는 대로 쓰는 취향입니다만,
      비주얼 스튜디오만은 설치 직후에 곧바로 toolbar의 버튼을 몇 개 추가하고, 콤보 박스의 폭을 조절하는 등 몇 가지 고치는 게 있습니다. (일례로, Win32 / x64밖에 표시할 일이 없는 Solution Platform 콤보 박스는 폭이 너무 길죠?)
      그걸 예전 버전에서 하던 것처럼 마우스로 곧장 편하게 하질 못해서 좀 불편하더군요.
      VS 2010의 인텔리센스나 C++0x 기능을 칭찬하는 글은 많아도 이런 거 불편하다는 글은 거의 없는 걸 보면, UI Customization은 쓰는 사람이 꽤 드물긴 한가 봅니다. ^^

      물론, 소프트웨어의 국제화는 전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와 문화에서 공통 요소만을 뽑아내서 부품화와 대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인 만큼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MS 정도면 그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노하우 덕분에 충분히 잘 하는 수준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지요.

  2. 삼각형 2011/11/21 12:04 # M/D Reply Permalink

    1.그런 의미에서 포토샵, 오토케드 등의 프로그램은 전통적으로 영문판을 선호합니다. 지금와서 성능 비교는 의미가 없고,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은 원어를 즐겨쓰는지라 익숙해서 그럴겁니다. 예들 들면 '크기 조절'이라고 한하고 'resize'리고 하는 것 정도. 프로그래밍에서도 'runtime error'를 '실행 중 오류'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2. 비주얼 2010은 개발툴이라는 특성상 사용자 커스마이징 기능이 강력한 모양이군요. 커스마이징에는 별로 관심 없이 그냥 주는대로 써온지라. 하긴, 프로그래머는 길게는 수십년동안 매일 7~10시간씩 붙들고 있어야 하는 녀석이니까요. 다만, 이런 것도 좋지만 gcc 수준까진 아니라도 C/C++표준에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뭐, 그래서 비주얼 C++이 성공한 거긴 하겠지만요.

    1. 사무엘 2011/11/21 15:40 # M/D Permalink

      1. 우리말로 번역하면 표현이 장황하고 길어지는 표현, 엄밀하지 못하고 부정확해지는 개념, 그리고 딱 일대일로 번역되지 않아 혼동되는 용어 때문에 번역이란 게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2. 굳이 비주얼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MS 오피스 제품이 전통적으로 아주 대인배적인 customization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히려 리본 UI로 오면서 그런 자유도가 크게 낮아졌죠.

  3. 김재주 2011/11/26 11:17 # M/D Reply Permalink

    화면으로 결과를 당장 볼 수 있는 값을 숫자 하나 달랑 입력받게 해 놓은 UI...

    스티브 잡스도 이런 거를 엄청나게 혐오.. 아니 증오했던 걸로 유명하죠
    저도 싫어합니다 ㄲㄲ 사실 좋아하는 개발자도 없을 걸요. MS 내부에서도 싸울 듯

    1. 사무엘 2011/11/26 18:16 # M/D Permalink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군요. 후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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