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TX 근황

말도 많고 탈도 많던 KTX 산천 차량이 어느 샌가 경부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보기 힘들어져 있다.
심지어 하루 단 한 번 있는 서울-부산 무정차 KTX도 처음에는 산천이 다니던 게 다시 떼제베 차량으로 복귀했다. 타는 승객이 많을 리가 없고, 또 과거의 구특전 새마을호 #1~#4 컨셉인 특급 열차엔 최신형 내장재로 무장한 산천만치 적합한 편성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의외의 결과이다.

이렇게 된 일차적인 원인은, 코레일이 이놈의 산천 차량이 하도 고장이 잦아서 차량 품질을 믿을 수 없다고 차량 제조사를 디스했기 때문이다. 안습한 현실이다.
그럼 이 산천 차량이 다 어디 갔느냐 하면, 호남· 전라· 경전선 같은 마이너 노선으로 갔다. 일종의 좌천 발령인가. ㄲㄲㄲㄲ

사실, 2010년 초에 KTX 산천이 처음 도입됐을 때도 새 차량은 호남선에서 집중적으로 베타테스트를 거치곤 했다. 경부선보다 수요가 적고 차량 운행도 뜸하니 위험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옛날에 국산 인버터 전동차(일명 609 편성)를 왜 5~8호선 중 6호선에다가 시범 투입했었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호남선은 열차의 운행 횟수는 변함없는데 차량이 다 산천으로 바뀜으로써 좌석수가 크게 감소했다. 그래서 승객들이 평일 낮에도 자리를 못 구해 아우성인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18량 고정 편성인 떼제베는 한 편성에 무려 900명이 넘는 승객을 실어 나르지만, 산천은 8량 1편성이 기본이고 좌석도 더 커서, 수송량이 떼제베의 절반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중련을 해도 700명 남짓.

경부선은 2010년에 2단계 공사까지 끝남으로써 광명 이남의 전구간에 전용 고속신선이 부설되었고, 이제 대전과 대구의 시내 구간에만 전용선이 깔리면 된다. 승객 수요도, 선로의 품질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그 반면 호남선은 아직 대전 이남은 느린 기존선이다. 거기에다 광주-서울, 전주-서울 고속버스가 가히 시내버스를 능가하는 배차간격으로 다니고, 천안-논산 고속도로라는 지름길까지 있어서 철도의 강력한 경쟁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선 KTX도 장사가 그렇게까지 아주 안 되는 건 아닌 게 현실이다.

2010년 말에 경전선 KTX가 개통한데 이어, 이제 전라선도 복선 전철화와 선형 개량이 끝난 관계로 드디어 KTX가 2011년에 소리 소문 없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하루 편도 5회이지만 전주· 남원· 순천도 서울에서 KTX 타고 환승 없이 한번에 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수 엑스포를 염두에 둔 개통이다. 투입된 건 모두 산천 차량이다.

전라선은 한때는 동일 구간을 경유하는 고속도로가 없어서 전통적으로 철도 수요가 많기도 했다. 광주 쪽으로 확 꺾는 호남 고속도로(25)와, 아예 진주· 통영 쪽으로 가는 통영-대전 고속도로(35)의 넓은 공간 사이에 고속도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게 지금은 전주-광양 고속도로(27)가 전라선과 거의 같은 선형으로 생겨서 사정이 나아졌다.

그러나 이런 호남 지방의 수요를 월등히 압도하는 건 역시 영남 지방의 수요임이 드러났다.
말이 경전선이지 사실 '경남선'이라 해야 맞겠다.
경전선 KTX가 개통한 후, 창원· 마산의 여객 수요는 코레일의 예상을 넘어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 역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은 가히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야말로 자리가 없어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부랴부랴 열차를 증편해 주고, 산천이던 차량을 떼제베로 바꾸고, 산천 중련의 경우 동대구에서 한 편성 떼어내던 걸 안 떼고 끝까지 가게 했다.

경전선은 어차피 고속신선은 1차 개통 당시의 구간과 동일한 서울-대구까지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1차 개통 시절에 진작에 개통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직 산천도 없던 시절에 거기까지 투입하기엔 차량이 부족하고, 호남과의 공급 균형(?)과 수요 예측 문제로 인해 아직 개통을 안 했던 것 같다.

2차 개통 후에 영등포와 수원 정차 KTX는 승객이 어떻게 됐나 모르겠다. 듣기로는 영등포보다 수원에서 이용객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울산은 신경주에서 그리 멀지 않고 당초 계획에도 없었고, 게다가 울산 시내에서 굉장히 멀다는 여러 악조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예상 이상의 이용객 대박을 내 주고 있다. “교통 불편하고, 비행기를 타느니 KTX 타지” 라는 비즈니스맨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리라 예상한다. 이는 앞으로 포항으로 가는 KTX에 대한 수요도 희망적일 것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경우, 신경주 역은 손님 많이 뺏길 듯.

요컨대 KTX의 흥행 성적은 접근성이 너무 불편한 구미김천(아무리 구미에 공업 단지가 있다 해도 너무 불편..)이나, 병크에 가까운 ㅇㅅ 역을 빼면 전반적으로 최소 중박 이상인 것 같다. 요즘 KTX는 코레일에게 돈 잘 벌어다 주고 있는 cash cow임이 분명하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본인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가 있는 철덕이라면 의견 남겨 주기 바란다.

TRIVIA:

1. KTX 고속신선이나 요즘 복선 전철로 개량되는 철도야 고가와 터널이 정말 밥먹듯이 나오지만, 그야말로 20세기 초에 개통하고 복선화까지 되었으며 지형적으로 원래 평지이기까지 한 경부선 대전 이북 구간은 정말 터널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서울울 출발한 경부선 열차가 처음으로 터널을 만나는 곳은 대전까지 거의 다 와서 내판-부강 역 사이 지점이며, 나중에 부강-매포 사이에도 터널이 나온다. 겨우 몇 초 만에 다 통과해 버리지만, 그래도 열차 내부가 다 깜깜해지고 귀에 이명 현상까지 느껴질 정도이니 엄연한 터널이다.

2. 경부선 기존선에서 KTX 고속신선을 올려다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대전 이북에서 고속신선은 기존 경부선과 딱 두 번 마주치고 그나마 대전 북부에서 기존선과 고속신선이 좀 나란히 달린다. 김천 근처에서는 두 선이 자주 마주치는 편.

그런데 양 열차가 비슷한 시간대에 나란히 달려서 서로 상대방 열차를 볼 수 있게 되는 일은 얼마나 발생할까? 이를 예측하고 관측하는 건 마치 특별한 천체 현상의 관측하는 것 같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끔 본 적이 있다.
혜성의 출현이나 일식· 월식 같은 건 시뮬레이션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다 예측하는데, 이것도 열차 시각표와 지리 데이터를 주면 계산에 의한 예측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3 08:19 2012/02/0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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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2/04/23 10:29 # M/D Reply Permalink

    울산역을 종종 이용하는 ktx이용자입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울산역을 몇번 이용해보니..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이 아쉬운데

    제가 알고있기로는 신경주역을 환승역으로 해 포항-신경주-태화강(구울산역) 간 동해남부선 이설 및

    복선전철화사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포항-신경주간 사업은 이미 착공에 들어갔는데

    신경주-태화강은 아직 착공소식이 없어 아쉽네요.

    울산역이 있어서 그런지 사업속도가 포항에 비해 더디지않나 싶은데

    개통된 후 현재 경전선처럼 서울-대전-동대구-신경주-태화강(-가능하면 해운대까지도) 으로 ktx가 운행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주인장께서는 어떻게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1. 사무엘 2012/04/23 19:46 # M/D Permalink

      현장에서 KTX를 직접 이용하시는 분이라니 반갑습니다. ^^

      말씀하신 게 맞습니다. 신경주 역은 신설 KTX 역 중에서는 최초로 일반열차와 고속철을 동시에 같이 취급하는 환승역이 됩니다. 경주 이남으로는 고속선과 신설 동해남부선으로 노선이 갈라지는 셈이죠.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선로가 따로 건설된 이상, 동해남부선으로 굳이 KTX가 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차라리 해운대-태화강에서 일반열차를 탄 뒤 신경주에서 KTX로 갈아타는 구도가 되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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