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으로부터 이어짐)

왕년에 게임 개발자였던 Bill Williams가 진로를 바꾼 것에는 그의 기구한 성장 내력도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는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라는 희소 유전병을 지니고 있었다(몇백· 몇천 명 중에 한 명꼴로 걸리는 병이고 아시아· 아프리카계 사람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음. 열성 유전자.). 인체 장기 내부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점액이 선천적으로 이상하게 만들어져서 각종 물질대사와 질병 면역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이 때문에 보균자는 몸의 이곳저곳에서 탈이 나면서 오래 못 살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한다. 무슨 에이즈도 아니고..?

애초에 그는 13세까지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지만 예상의 3배에 가까운 기간을 산 상태였다.
그가 신학교를 다닌 지역인 시카고는 공기가 그리 안 좋은 곳이었고, 거기서 지낸 2년간의 시간이 그의 지병을 악화시켰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고통과 고뇌 가운데서 Naked Before God: The Return of a Broken Disciple이라는 책을 썼다. 예수님 시대에 ‘나다니엘’이라는 어느 소심하고 병약한 젊은이가 몰래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의 질병과 슬픔, 고통에 대한 의문의 해결책을 얻는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작가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서전적 소설이다. 교리보다는 영성 분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성경의 욥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요한복음 2~3장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주인공을 설정한 첫 모티브는 막 14:51-52이라고 한다.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그 유명한 사건! 책 제목에 괜히 naked란 말이 들어간 게 아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못 가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마존 서평을 보니 책에 대한 독자 리뷰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구글 도서 서비스는 완전히 엉뚱한 동명이인을 책의 저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아니므로 착오 없기 바란다.)
15년 전의 그의 대표작인 Alley Cat이라는 게임과는 너무나 딴판인 분위기이지 않은지?

그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IT계에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 가장 널리 퍼진 압축 알고리즘인 zip을 고안한 사람은 Phil Katz (1962-2000)라는 천재 프로그래머이다. 도스 시절에 쓰이던 pkzip, pkunzip에서 pk는 당연히 그의 이름의 이니셜이며, 사실 모든 zip 파일은 첫 부분이 PK라는 문자로 시작한다.

jar이나 안드로이드 apk, 그리고 MS 오피스 2007 문서들도 다 zip을 컨테이너 파일 포맷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 인지도는 얼마나 압도적인가?
도스 EXE의 식별자인 MZ (고안자인 Mark Zbikowski에서 유래)와 더불어 그는 가장 유명한 파일 포맷을 만든 거장 중 하나이다.

Phil Katz는 Bill Williams와 딱 두 살 차이이고, pkzip의 전신인 pkarc를 만든 게 1986년으로 역시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작품을 남긴 사람이다. 게다가 30대 후반의 나이로 요절한 것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빌의 생년과 몰년에다가 2만 더하면 된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 pkzip의 개발자는 Bill Williams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급사하여 그 당시 IT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갑자기 늘어난 부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재산 탕진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호텔에서 객사했다 -_-)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IT계라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가을엔 세상 언론들이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는 완전 애도하고 자서전까지 만들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에 잡스보다 컴퓨터의 발전에 월등히 더 기여한 어느 전산학자가 죽었을 때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유닉스 운영체제의 개발에 참여하고 C언어를 발명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영문학의 기반을 다 닦은 셰익스피어를 문학의 천재로 칭송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아예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에 참여한 천재 언어학자인 랜설롯 앤드류스 같은 사람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런 것처럼, 개인적인 재능과는 무관하게 인생의 정확한 행로와 목표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달라지는 게 자명하며, 그리고 사람의 어떤 행적에 대해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하고는 웬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임계에도 저런 사연을 남긴 개발자가 있었다는 게 무척 애착이 간다. 그리고 그 Alley Cat 게임도 보통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다시 보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2/09 08:24 2012/02/0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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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성 2012/02/09 11:34 # M/D Reply Permalink

    뭐 예전 게임은 그냥 흥미 위주였으니까 저런 독실한 크리스천 프로그래머도 참여하고 그랬겠죠.

    현재(특히 온라인)는 죄다 공포스러운 요소, 폭-_-력, 퀘스트 도배 때문에 할게 없어요.

    ※예전에 접었던 테**런*이라는 게임을 얼마 전에 재시작했습니다만, 이것도 컴퓨터 사정 때문에 잘 안됩니다. ㅋ

    1. 소범준 2012/02/09 16:13 # M/D Permalink

      그런 사례만 늘어놓아도 세상 풍진은 다 본거죠.

      *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2. 소범준 2012/02/09 16:32 # M/D Reply Permalink

    상, 하편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1. 읽어 본 즉 결국에는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는군요.
    남들보다 훨씬 불우한 환경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신실하게 찾은 자(히11:6) VS 남들보다 풍족하면서도 허무하게 죽은 자 / 가장 고귀했으나 사람들에게 많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은 자 VS 사람들에게 촉망받고 인정을 많이 받은 전형적인 자 ...등.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이런 Repatory가 줄곧 떠오르는 이유가 자못 궁금합니다...
    그리스도인이건 일반 세상 사람들이건 다 똑같이 고민이 되는 문제이지 싶은데요,
    결국에는 영원의 관점에서(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정받는 자가 역설적으로 외면을 당하면서도 그 빛이 더욱 영롱한 것 같습니다.(단12:3; 고후10:18) 비록 그렇게 되기란 쉽지는 않고, 또한 그런 사례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있었기 때문이겠지만요.

    2. 동시에 저 자신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 다른 사람들 앞에.. 어떤 인생이 될까.. 라는 주제의 질문은 답하기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심오하고 어려운 인생 본질에 대한 질문과도 직결되겠지만요.

    오직 하나님께서 추천하시는 자가 되도록(고후10:18) 힘써야 겠습니다.

  3. 사무엘 2012/02/09 21:49 # M/D Reply Permalink

    백성: 아무래도 30년 전보다 지금의 게임계가 크리스천 개발자가 주도적으로 개발과 기획에 관여하기가 더욱 어렵고 영적으로 껄끄러워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소범준: 하지만 반대로 세상적으로도 엄청 성공하고 영적으로도 성공하여 두 토끼를 다 잡은 사람도 있고요(욥처럼?), 세상적으로도 불쌍하고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서까지 지옥 간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는 전도지 같은 데에는 잘 등장하지 않죠.
    성경은 참으로 인생의 좌표를 제시하는 귀한 책임이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 Naked before God ... 책을 한번 보고 싶긴 합니다. 정 목사님께서 그렇잖아도 얼마 전에 미국 출장 가셨는데, 가능하면 구해 달라고 부탁이라도 드려 볼 걸 그랬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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