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지역에 시내버스가 다니는데 정시성, 속도, 편의성 어느 것 하나 승객을 만족시켜 주는 게 없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주민들은 콩나물 시루 같은 만원 버스 안에서 매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참다못해 너도 나도 다들 자가용을 끌고 나오는 바람에 도로는 아침과 저녁마다 체증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니 시민들은 관공서를 상대로 끊임없이 버스 증차를 요구하며, 정치인들 역시 이를 공약으로 즐겨 내세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증차라는 건 만만하게 선뜻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버스를 한 대 구입하는 데는 1억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며, 기사를 추가로 고용해야 하므로 인건비까지 증가한다. 게다가 기껏 추가한 차량은 교통량이 적은 낮 시간엔 그저 놀고만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 이러하니, 버스 회사는 지금도 적자 때문에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형편인데 버스를 늘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 증차보다 교통 공학적으로 월등히 더 좋은 접근 방식은 바로 버스 ‘증속’이다. 속도를 올림으로써 동일 대수의 차량으로 더 높은 회전율을 내는 것이다.

버스 한 대가 20km짜리 노선을 시속 20km로 완주하면, 그 노선의 버스 배차간격은 1시간이 된다. 여기에다가 동일 속도의 버스를 한 대 더 추가하면 배차 간격을 30분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버스의 속도를 40km/h로 올리면 버스 한 대의 운영 비용만으로도 30분 배차를 달성할 수 있다. 더구나 승객은 예전에 비해 절반의 시간만으로도 목적지에 갈 수 있으며, 승객이 빠른 버스로 몰리는 덕분에 자가용이 줄어든다면 가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결국 버스가 빨라지면 대중교통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운임 인상 요인이 줄어들며, 대중교통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흑자 경영의 토대가 마련되는 효과가 생긴다. 대도시 간선 도로에 버스 전용 차선이 바로 이 효과를 의도하고 만들어져 있다.
(한 우진의 교통 평론 http://blog.naver.com/ianhan/120005191675 참고)

2.

흔히,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고 그런다.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것보다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더 좋은 일이라고 그런다. 그런 것처럼, 경제에서도 사실 가장 좋은 복지는 성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마치 지금 사형 제도가 오· 남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져 있듯, 지금은 무슨 산업혁명 초창기도 아니고 대부분의 기업주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선동하는 것 같은 그런 악마가 아니다. 자기가 먹고 살 만하고 사업을 마음껏 해서 돈 많이 벌 수 있겠다 싶으면 투자와 고용에 '복지'까지도 저절로 이뤄지게 돼 있다. (노동자와 기업주 사이의 균형 있는 시각을 원한다면 송 현 선생님의 이 글도 일독을 권한다.)

또한, 복지라는 건 도덕 해이를 야기할 정도로 그냥 공짜로 퍼 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복지 수혜자라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일을 하고,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복지가 이뤄져야 한다. 기회의 평등일 뿐이지, 결과물의 일방적인 평등이어서는 안 된다. 성경도 율법을 보면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를 그렇게도 강조하면서도, 신체 멀쩡한 사람에게 공짜 퍼주기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허용 안 한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먼저 돈을 빼앗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이다. 그저 표나 더 얻으려고, 어차피 내 돈이 아닌 쌈짓돈이니까, 뒤의 결과를 생각도 안 하고 밑 빠진 독 메우듯이 세금을 탕진하는 정치인에게 정부를 맡겨서는 안 된다. 자기가 더 잃을 게 없는 처지라고, “에라이 이 더러운 세상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지지하는 것..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랬다간 안 그래도 더러운 세상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더 망가지게 된다.

도대체 무슨 돈으로 시행할지 대책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무료 급식, 반값 등록금, 그리고 앞서 말한 ‘버스 증차’ 같은 것보다는.. 차라리 굳이 고학력이 필요 없는 직종에는 무리하게 대학을 안 간 사람도 충분히 대우받게 사회 구조를 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리고 버스 회사의 적자만 한없이 세금으로 때울 바에야, 차라리 과감하게 혼잡한 도로의 차선 하나를 버스 전용 차선으로 떼어내서 버스 회사가 스스로 버스의 경쟁력을 올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심지어 당장은 자가용 운전자들로부터 반발과 욕 얻어먹는 것까지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어느 분야든 이런 일을 추진해 줄 지도자는 없는 걸까?

3.

솔직히 모든 사람이 이유를 막론하고 똑같은 부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며 성경적으로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저런 불가능한 일을 선동하면서 사회 계급을 갈아엎으려다 다같이 쫄딱 망해서 똑같이 가난해지기는 아주 쉽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가 실패했듯이 말이다. 공산주의의 폐해는 대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팀플(조별 과제) 하나만 해 봐도 실감할 수 있다고 그런다. “능력껏 벌어서 필요한 만큼 쓴다”가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발상인지를 말이다.

그러니, 파이의 절대적인 크기를 어떻게든 키워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부자는 훨씬 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접근 방식이 현실에서는 그나마 더 나은 발상인 것이다. 오늘날 다뤄지는 수정 자본주의라는 것은 그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의 비례상수 정도만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자, 이제 결론을 말하겠다.나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덕후이다. 그런데, 나의 성장 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었다. 철도에만 완전 미치고 빠져 있느라 나의 자폐 외곬 기질이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건 아주 큰 오해이다.

오히려 철도 덕분에 나는 자폐(?) 기질이 그나마 해소되었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식견까지 전무후무한 정도로 올라갔다. 내가 늘 말하지만 대표적으로 음악부터 시작해서 과학, 공학, 역사, 지리 등~ 심지어 신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경제에다 비유하자면 철도는 김 용묵이라는 국가 안에 존재하는 공룡 대기업이다. 그런데 철도에 100만큼 몰두하는 덕분에 다른 인문계, 이공계, 예체능 등까지 최대 20~30 정도는 혜택을 입었다는 뜻이다. 철도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철도가 창출한 각종 고용과 투자 덕분에 다른 분야도 부자가 되었다.

철도마저도 없었으면 이런 효과는 있을 수 없었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빈부격차 양극화를 해결한답시고, 철도 오덕질 해 대는 게 보기 안 좋다고 철도에다가만 각종 규제를 넣고 세금을 때리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했다면, 철도는 물론 그나마 좀 살아나던 여타 분야 관심사까지 죽게 됐을 것이다.

흔히 박 정희 좋아하는 사람들은 40여 년 전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옛날을 회상하는데, 나의 경제의 대동맥은 바로 Looking for you의 리듬과 박자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나는 철도가 내 인생에 지금까지 끼친 선한 간증을 언제든지 누구에게라도 증언할 수 있다..

1부터 3까지 서로 비슷하면서도 문맥이 다른 여러 비유들을 동원하여 글을 썼다. 요컨대 어느 분야든, 즉 개인이든 국가든, 발전을 위해서는 인위적인 규제나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시너지 효과와 선순환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경영을 해야 함을 느낀다.

덧붙이는 말)

어떤 유명인사는 “대통령 마음껏 욕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아주 충분하며 그 사람 역시 그 자유를 이용해, 지금까지 신변의 위협 없이 대통령 욕을 실컷 해 왔을 텐데, 도대체 또 뭐가 부족해서 겨우 그런 소박한 소원과 목표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와 대조적으로, 투스타 출신의 유명한 모 전직 대통령의 동상과 사진 앞에서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노인들이 아예 합장과 분향까지 하면서 “님은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이러기까지 한단다. 물론, 정치 성향이 그와 다른 젊은이들은 아주 꼴깝이라고 그런 모습을 보기를 역겨워한다.

난 똑같이 찌질하게, 반대편의 '슨상님'이나 거론하면서 네거티브로 나가지는 않겠다. 오히려 반대로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결론을 내려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그 대통령을 숭배(?)하지 않으면 체포, 구금, 고문하는 나라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은 북한의 무력 도발과 악행에 얼마나 이골이 나 있었고 얼마나 뼈저린 가난에 한이 사무쳐 있었을까? 난 “인간이 배가 고프면 인간성이고 이념이고 나발이고 그런 거 없다.”를 아주 굳게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난 이렇게 선언한다. “대통령 마음껏 욕해도 되는 세상”을 바랄 바에야 차라리, “저 투스타보다 더 존경받고 빠돌이 빠순이가 더 많은 대통령”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 때 의로운 훌륭한 통치자가 반드시 인기가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 말은, 문제의 말단 결과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지도자, 재임 중이 아니라 재임 후에 정말 진심으로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는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런 지도자라면 장기 집권 내지 독재 좀 해도 된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겨우 5년 단임 만에 쇼부를 볼 수 있겠는가. 사실, 지금의 1987년 헌법 자체도 20년이 넘게 장수했고 좀 업데이트 할 때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12 08:32 2012/12/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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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ul Sohn 2012/12/13 12:24 # M/D Reply Permalink

    철도는 geek한 정도와 nerd한 정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1. 사무엘 2012/12/14 09:34 # M/D Permalink

      뭐, 지금까지 가까이서 다 봐 왔으면서 굳이 또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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