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95 이전에 전세계를 석권하며 가장 성공한 운영체제(?)로 평가받았던 최후의 16비트 버전 윈도우는 바로 1992년에 출시된 3.1이다. 물음표가 붙은 이유는 물론 이 물건이 홀로 부팅 가능한 완전한 형태의 운영체제는 아니었기 때문.
그런데 그 3.1이 있기 전에는 3.0 버전이 있었다. 3.1이 너무 히트를 쳤기 때문에 존재감이 무척 덜해졌지만, 영미권에서는 1990년에 출시된 윈도우 3.0이 먼저 대박을 터뜨렸다. 시스템 폰트가 밋밋한 불변폭 Fixedsys이다가 가변폭으로 최초로 바뀌었으며, 흰 바탕 윈도우에다가 버튼에 최초로 은색 3D 효과가 추가되었다.
윈도우 3.0은 한글화가 된 최초의 버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2.0이던가 2.x는 한국 지사를 통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버전이고, 3.0은 한글화까지 된 버전 되시겠다.
한글 윈도우 3.0과 한글 윈도우 3.1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영문 윈도우 오리지널 3.0과 3.1 사이의 차이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서 글을 좀 남겨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윈도우도 3.1이 아니라 3.0이다. 20여 년 전, 우리집 컴은 겨우 286 AT인데 이웃집 형의 컴퓨터는 386이고 아래아한글 2.0 전문용으로 화려한 윤곽선 글꼴을 찍어 내고 있었으며, Windows라는 꿈의 GUI 환경도 구동하고 있었다니, 초등학생 꼬마이던 본인은 감수성이 자극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록달록한 아이콘과 컬러 그림들!
그때 처음 본 것은 3.1이 아니라 분명 3.0이었다.
파란 배색 때문에 나는 윈도우 3.0의 부팅 화면과, 한메 타자 교사의 시작 화면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여러분도 동감하시는가?
윈도우 3.0을 구동한 화면이다. 한글판은 한옥 문 무늬를 연상케 하는 mun.bmp가 설치 직후에 기본 배경 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문판은 당연히 그렇지 않음. 3.1은 프로그램 제목 표시줄의 배경색이 그냥 어두운 군청색인 반면, 3.0은 옅은 파랑이고 무엇보다도 solid color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프로그램 아이콘은 완전히 모노크롬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회색 톤이 짙어서 채도가 낮다. 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가라앉은 느낌을 주고, 나쁘게 말하면 칙칙하다. 오로지 그래픽 에디터인 그림판만이 3.1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 고채도 색상의 아이콘인 듯.
3.1은 메뉴의 배경색이 프로그램 제목 표시줄의 배경색과 동일하게 군청색이지만, 3.0은 검정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걸 떠나서, 3.0 한글판의 한글 서체는 3.1 한글판의 한글 서체보다 훨씬 더 못생기고 허접해 보인다는 걸 알 수 있다.
뭐, 한글뿐만 아니라 영문 서체도 엄청 엉성하다. 영문 윈도우 3.0의 영문 서체는 3.1의 그것과 동일하지만 한글 윈도우 3.0의 영문 서체는 그렇지 않다. 3.1에 가서야 일치가 이뤄졌다.
메뉴 단축키가 영문이 아니라 한글인 게 인상적인데, 이건 제어판에서 설정을 바꾸면 된다. 한글 윈도우 3.0과 3.1은 메뉴 단축키를 한글로 바꾸는 특이한 옵션이 존재했었다. 파일 메뉴가 ㅍ에 배당되어 있으니, 두벌식 기준으로 Alt+V를 누르면 되는 식이다. 이런 옵션은 윈도우 95 이후부터는 물론 완전히 사라졌으며, 결코 다시 도입되지 않았다. 일종의 흑역사.
윈도우 3.0은 아직 트루타입 글꼴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New가 붙은 Courier New나 Times New Roman 같은 서체도 없었고, 글꼴 대화상자에 보다시피 볼드/이탤릭 옵션 같은 것도 없다.
한글 윈도우 3.0은 트루타입 글꼴 기술이 영문 윈도우 3.1보다 먼저 도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운영체제가 기본 제공하는 글꼴이 윤곽선 트루타입 글꼴은 아니었다. 여전히 비트맵이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드디어 한글 IME 도구모음줄이 보이시는가? 이것이 한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최초로 개발한 윈도우용 한글 IME이다. 저 도구모음줄은 드래그로 위치 이동이 되지 않았다.
한글 윈도우 3.1과 한글 윈도우 95 초창기 제품들은 도움말이 해라체, 즉 반말이다. 그러나 한글 윈도우 3.0의 프로그램들의 도움말은 합쇼체, 즉 존댓말이다!
반말 도움말이 다시 존댓말로 복귀한 건 IE 4.0이 나오던 시기인 1997년쯤부터이다.
게다가 저 도트 노가다 이미지로 급조해 넣은 색인, 뒤로, 훑어보기 등의 버튼들은 도대체 뭐냐! 하긴, 영문 원판도 3.0은 저 버튼들이 이미지이긴 했다.
윈도우 3.1 이래로 지금까지 운영체제의 기본 게임 중에서는 지뢰찾기가 지존의 폐인 양성 게임에 등극해 있지만, 1.0부터 3.0까지는 일명 오델로라고도 불리는 리버시 게임이 내장되어 있었다.
윈도우 운영체제가 기본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은 About 대화상자가 원래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 동일한 ShellAbout 함수에다가 아이콘과 프로그램명만 달리해서 호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영체제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About 대화상자는 프로그램의 이름, 운영체제의 이름과 버전, 남은 메모리와 리소스, 사용자와 제품 번호 같은 걸 보여준다.
하지만 윈도우 3.0은 프로그램 관리자, 파일 관리자, 제어판 같은 관리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만이 공용 About을 쓰고, 메모장이나 문서작성기 같은 보조 프로그램들은 자기네 약식 About 대화상자를 출력하고 있다.
윈도우 3.0과 3.1 사이에는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