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지금까지 블로그에다 자동차에 대해 올린 글들의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기차에 호의적이며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와 동향 자체를 현기차 중심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액센트-아반떼-쏘나타-그랜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승용차 계보 말고, i30이니 i40이니 심지어 벨로스터니 하는 승용차는 길거리에서 별로 보지도 못했고 개인적인 관심 역시 없다시피했다.

우리나라의 승용차 정서랄까 문화는 "(1) 국토와 경제력에 비해 너무 큰 차를 밝힌다, (2) 세계 평균 이상으로 너무 무채색+세단만 일률적으로 선호한다" 정도로 요약되는 듯하다.
(1)에다가 배기량 비례 자동차세 문제도 얽히다 보니, 이 반도에서는 제조사들이 이미 1990년대부터 차체만 큼직하고 엔진은 그에 어울리지 앉는 너무 작은 걸 얹어야 했다(배기량 후려치기).
(2)는... 한국에서 유독 흰 달걀이 전멸해 버린 것과도 비슷한 맥락의 관행 같다. 아무튼..

현대차에서는 지난 2007년에 맨 먼저 i30부터 내놓았다. 한국이 아닌 유럽 시장을 겨냥한 아반떼 급의 준중형 해치백 승용차로, 앞좌석과 뒷좌석 문이 있고 그 다음에 트렁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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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2011년에 좀 더 큰 쏘나타 체급의 '왜건형' 승용차인 i40가 나왔다. i30보다 뒷좌석 뒤의 공간이 좀 더 길다. 체격과 외형이 SUV와 비슷하지만, 승용차이기 때문에 SUV보다 차체가 낮으며 바퀴 크기도 더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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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벨로스터도 나왔다. 얘는 소-준중형 사이인 '쿠페형' 승용차로, 뒷좌석 쪽엔 문이 없다. i30, i40보다 더 아담하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너무 동글동글 귀여운 경차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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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 모델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벨로스터는 뒷좌석 쪽엔 오른쪽(진행 방향 기준) 조수석 방면만 문이 두 짝인 비대칭 도어라고 한다. 기아 레이가 뒷좌석 왼쪽은 일반 도어이고 오른쪽은 미닫이인 비대칭형인데.. 이와 비슷한 사례라 하겠다.

이 세 차들은 해치백· 왜건· 쿠페로 체급과 외형이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트렁크가 돌출돼 있지 않고 뒷유리에 와이퍼가 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얘들은 유럽이 아닌 국내에서는 정서상 생소한 외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에서는 얘들을 국내에서 팔기 위해 역사상 유례가 없던 파격· 개성· 감성 마케팅을 시작했다. 2, 30대 젊은 계층을 집중 공략했다.

이때 마케팅을 도대체 누가 담당하고 승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현대차 역사상 약을 최고로 거하게 빤 CF가 만들어지고 송출되었다. 국적도, 출처도 일체 노출하지 않은 PYL 브랜드 말이다. 지금 제네시스처럼 PYL이 브랜드인 셈이다.

저게 자동차 CF였다니..
내가 알기로 현대에서는 자기 차가 포르셰를 추월한다던가(엘란트라, 티뷰론)..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람보르기니로 대답했습니다. ㄲㄲㄲㄲ)" 같은 캐 오글거리는 CF를 잘 만드는데.. 저건 1993~4년경에 데미소다 CF를 봤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자우림 김 윤아의 생글생글 발랄 돋는 노랫소리가 워낙 강렬하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놈의 유니크..;; 영화 테이큰 대사를 들어 보자.

This is a business. This is a very UNIQUE business with very UNIQUE clientele. (패트리스 상클레어. 동영상 링크에서는 46~50초 지점)


인신매매업이 아주 독특 특이한 업종이랜다. =_=;;
하긴 이건 성경에도 미래에 흥왕할 산업이라고 언급돼 있긴 하지. (계 18:13 끝부분)
자기도 자녀가 셋이나 있으면서 남의 딸을 매정하게 팔아넘기는 걸 보면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눅 11:13)도 떠오른다. 뭐 그건 그렇고..

패트리스 상클레어의 발음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유니크'는 원래 2음절에 강세가 있다.
그런데 저 PYL CF에서는 리듬을 맞추기 위해 "유~ 유니크~!" 라고 노래 아주 대놓고 1음절에다 강세가 들어간다. 그것도 참 특이하게 들렸다.

우리는 그냥 어색한 '유니크' 정도로 알아듣는 반면, 영어 토박이들은 강세 위치 때문에 이걸 영락없이 내시(eunuch)처럼 알아듣는가 보다. 정확히는 이건 '유니크'가 아니라 '유너크'에 더 가깝지만.
여담이지만 더 옛날, 월트 디즈니 알라딘에서는 쟈파가 princess를 2음절에다 강세를 준 게 복선 클리셰처럼 나온 적이 있다. 저건 원래 1음절 강세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현대차에서는 지난 2012~13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상당히 기발한 CF를 만들어서 뿌렸으며, 홍대 클럽에서 유명 가수와 연예인들을 초청해서 PYL 콘서트를 열고 젊은 감성 마케팅을 벌였었다. 20~25년쯤 전의 X세대 마케팅 이런 거랑 비슷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i30, i40, 벨로스타의 판매는 영 시원찮았으며, 투자한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다.
디자인이 특이한 것에 비해 가격이나 성능 메리트가 별로 없었으며, 그리고 이 마케팅이 제일 근본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요인으로는..
그 젊음 젊음 하는 애들은 경제 여건상 애초에 차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상대적 빈곤감이네 뭐네 하면서.. "열악한 곳에 취업하느니 아예 취업을 안 하고 말겠다" 심보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은 갈수록 늦어지고, 결혼도 출산도 안 하는 지경인데..
차 자체야 지방에서 이동을 위해 꼭 필요한데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싸구려 중고차를 지르면 된다. 하지만 20대들은 차값은 둘째치고 보험료 때문에라도 차를 못 굴린다. 이런 연령대는 운전 경력과 실력은 부족한 주제에 철딱서니 없이 사고를 잘 내는 블랙리스트 고객으로 팍 찍혀 있어서 보험료가 굉장히(몇 배로)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계층을 상대로 너무 이색적인 컨셉의 차를 팔려다 보니 잘 안 팔려서 결국 현대차는 큰 손해를 보게 됐고, PYL 브랜드는 몇 년 못 가 조용히 폐기됐다.
i30, i40, 벨로스터라는 차 자체는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지경이다.

글쎄, 과거에 비슷하게 파격 젊음 감성 스포티를 표방했던 스쿠프는 그래도 세단 파생형 쿠페이고 스포츠카를 표방해서 그런지 PYL 꼴은 안 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스쿠프는 그 기술과 엔진 성능으로는 껍데기만 스포츠이지, 진짜 스포츠카를 자처하기에는 택도 없긴 했다. 그리고 기아 엘란은 나름 외제차를 기반으로 진짜 스포츠카를 표방이긴 했다만 고객을 너무 잘못 설정하고 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망했었다.

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물건이며 주 고객이 최하 40대 이상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너무 튀는 모험은 여전히 위험해 보인다. 보수적인 아재 취향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12~13년을 풍미했던 PYL 얘기가 좀 길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으로 현대는 그런 아재 취향의 준대형 고급차 체급에서도 큰 삽질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아슬란이다(2014-17) =_=;;

제네시스가 명목상 현대가 아닌 자체 브랜드의 차종으로 이동하고 에쿠스도 저기로 흡수됨으로써 현대 엠블럼을 걸고 나오는 승용차 중에서 제일 고급은 그랜저가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랜저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굉장히 흔해졌으며 예전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도 덜해졌다. 이에, 현대에서는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틈새 차급을 겨냥하여 전륜구동 형태로 그랜저보다 더 큰 차를 그것도 내수 전용으로만 내놓았지만...

역시나 가성비 시원찮고, "이거 살 돈이면 더 보태서 제네시스나 다른 외제차를 사고 말지"가 되면서 이 차는 시원하게 망했다. 이름이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이라는데, '어슬렁'이라는 적절한 멸칭으로 까였다. 그리고 지금은 마지막 재고가 아주 저렴하게 떨이 처분된 뒤 단종됐다. 차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국내 고객들의 정서와 수요에 잘 안 맞아서 "다른 대안이 넘쳐나는 와중에 굳이 그 돈 주고 살 정도까지는 아닌 차" 신세가 되어 망한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미 2016년에 이들을 싸잡아서 "현대차, 아슬란-PYL 어쩌나"라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으니, 역시 이번에도 내가 뒷북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이제 승용차에서 틈새 차급을 공략한 게 초대박을 치는 건 준중형 엘란트라/아반떼 이후로 더는 없는 것 같다.
아반떼는 작년 가을(2018. 9.)에 무슨 일본 차와 비슷하게 생긴 삼각형 헤드라이트 모양으로 페이스리프트가 됐는데.. 이게 호불호가 갈리는 중이다.

에쿠스는 잘 알다시피 지난 2015년 말을 끝으로 단종되었고 EQ900이라는 제네시스 차급으로 흡수됐다.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가 휴간된 때와 비슷한 시기여서 본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02 08:31 2019/03/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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