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박물관 입구에서 본관까지 쫙 펼쳐진 풍경이다. 본관으로 가는 중간 길목에서 "물과 환경 전시관"에 들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시관에 전시된 것은 애들 눈높이에 맞춰서 그냥 물의 소중함, 숲과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 같은 것들이어서 따로 사진을 소개하지 않겠다. 상수도 시설보다는 더 포괄적인 주제이다. 그렇다고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급의 황당한 낭설이 버젓이 소개된 건 아니었다. ㅎㅎ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을 때도 계곡에 어떻게 물이 흐를 수 있을까?"는 성인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의문인 것 같다. 짐작하다시피 숲에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들어 내는데, 이 산소의 출처조차도 물 분자를 구성하던 산소 원자라는 것을 이과 출신이라면 익히 잘 알 것이다.

다만,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는 얘기는 1990년대에 어디선가 UN 통계를 인용하면서 언론에서 한창 떠들어댔었던 이슈인데, 지금은 그게 상당수 근거 없는 루머일 뿐이라는 반박도 나와 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난리였었는데 말이다. 특히 폭염과 가뭄을 몇 번 겪고 나서는 도시에서도 제한급수 운운했었으며, 공중 목욕탕에서는 물이 훨씬 더 빨리 끊기고 매번 수동 재조작을 해야 물이 나오는 불편한 "절수기"가 장착된 샤워기를 의무적으로 운용해야 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수도 정수장 내부에 위치한 수도 박물관답게.. 서울 아리수를 직접 시음해 보라고 음수대가 실외에 비치되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것이 수도 박물관 본관이다.
하수도 과학관은 시설들을 지하화해서 확보한 지상 부지에다가 최신 스타일로 지은 새 건물인 반면, 수도 박물관 본관은 문화재급의 옛날 건물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저건 구한말에 우리나라 서울? 한양에 처음으로 상수도 시설이 구축될 때 지어졌던 바로 그 건물 원판이며, 실제로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1899년 9월이 한국의 철도 원년이라면 1908년 9월은 한국의 상수도 원년이다. 그리고 여기가 한반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상수도 정수장이었으며, 박물관이 개관한 2008년은 상수도 개통 100주년이었던 셈이다.
'송수실'이라는 단어 자체가 친근하고 자주 쓰이는 게 아니다 보니, 구글에서는 이 단어로만 검색해도 곧장 수도 박물관 본관이 바로 검색되고 사진이 쭈루룩 걸려 나오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본관에서는 드디어 우리나라 수도 시설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많이 열람할 수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언제 어디서나 맑은 물이 콸콸 흘러 나오는 게 그냥 된 일이 절대 아니다.

옛날에는 '물장수'라고 신문이나 우유, 연탄을 배달하듯이 마시는 물과 씻는 물을 배달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가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서울처럼 인구가 많은 곳은 겨우 우물 몇 곳만으로는 물 수요가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 시절엔 가뭄이나 환경 오염이 없어도 맹물조차도 얼마나 단가가 높고 귀했을지 상상이 된다. 지금은 그나마 저런 물장수와 제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은 정수기 위쪽에다 꽂는 그 물탱크에 담긴 생수를 나르는 인부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처럼 합성 세제나 공장 폐수에 의한 물 오염만이 없을 뿐이지, 당장 인간의 배설물이나 기생충에 의한 오염과 수인성 전염병(콜레라 같은..)은 오히려 더 만연해 있었다. 무식하게 친환경 친자연만 추구한다고 인체 건강에 좋은 게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에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업을 겸사겸사 들어 놓은 게 평생 교양(?)의 밑천으로 쓰이는 것 같다. 서울 지리 쥐뿔도 모르던 시절에 접했던 <성북동 비둘기>만큼이나.. <북청 물장수>라는 시도 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드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굉장히 고된 직업 내지 알바를 굉장히 시원하고 낭만적인 느낌으로 묘사했지만.. 물장수에게서 물을 사야 하는 세상이라면 정말 갑갑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등 양쪽으로 물동이를 이고 낑낑대는 게.. 영화에서는 <킬 빌>에서 키도 누님이 파이 메이 밑에서 수련 받을 때...
그리고 아예 엄 복동에서도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기 전에 물장수 일을 하는 장면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그림을 시작으로 수도 박물관 본관 내부는 구획 구분 없이 커다란 방 하나에 이런 게 전시되어 있는 게 전부였다.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기존 마차 사업자들이 반발했듯이, 상수도가 개통하면서 물장수들도 많이 반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1908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동시에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물장수라는 직업 자체가 신속하게 없어진 것 역시 아니다. 그러니 <북청 물장수> 같은 시가 무려 1924년에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이지 싶다.

지금은 한강에서 수돗물 공급을 위한 취수는 저 멀리 팔당댐부터 시작해서 잠실대교(정확히는 잠실 수중보) 이북까지의 상류 구간 몇 군데에서 한다. 하지만 정수장은 이런 뚝도를 포함해 하류에도 존재하며, 지금의 선유도 공원도 과거에는 수돗물 정수장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의 그림은 2000년대 중반의 옛날 보도 자료이긴 하지만, 취수장과 정수장의 관계를 보여준다. 수도 박물관이 있는 곳이 바로 '뚝도 정수장'이다.
취수장이건 정수장이건 상수도와 관련된 시설은 군부대 내지 발전소에 준하는 보안 시설로 간주되어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허나, 한강에 상수도가 처음으로 건설됐던 시절에는 취수 시설도 지금만치 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박물관 내부의 설명을 보면 "취수정은 송수실로부터 166m(고작!!) 떨어진 한강 중류 2.4m 수심 강바닥을 3m 정도 판 후 ..... 이런 크기의 콘크리트 정수정을 설치하고, 바닥에서 높이 30cm 되는 곳에 개구부를 설치하였다"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지금처럼 저 멀리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그냥 정수장 근처에서 적당히 물을 끌어다 썼던 것이다.

수돗물은 "취수 → 침전 → 여과(필터링..) → 정수"의 순으로 세균과 불순물을 걸러낸 뒤, 수도관을 타고 최종 수요지에 도달했다. 후대 절차로 갈수록 걸러내는 불순물의 규모가 더 작아진다. 흔히 알려져 있는 염소 소독은 정수 단계에 속한다.
상수도 정수장에서는 그럭저럭 깨끗하거나 약간 더러운 물을 음용 가능할 정도의 깨끗한 물로 바꾸는 반면(90점을 97점 정도?), 하수 처리 시설에서는 최악의 더러운 물을 그래도 적당히 더럽고 자연 회복 가능할 정도의 수질로 바꾼다는 차이가 있다(0~10점을 4, 50점대로?).

아무튼, 물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나면 옛날에는 펌프를 돌려서 여기서 3km 남짓 떨어진 중랑천 건너편의 '대현산'이라는 언덕 꼭대기의 배수지로 끌어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꼭대기까지 온통 건물이 지어져서 별 존재감이 없는.. 신금호-행당 일대의 그 해발 80m짜리 언덕 말이다. 거기까지 올라간 물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사대문 안과 용산까지 공급됐다. 오오...

지금도 거기에 송수· 배수 관련 시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다 지하화됐기 때문에 기존 시설과 부지는 '응봉 공원'이라는 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신금호 역 2번 출구와도 아주 가깝기 때문에 찾아가기 쉽다. 여담이지만, 아차산-광나루 사이에도 '아차산 배수지'가 있다.

이렇듯, 서울 상수도의 원리와 역사를 소개해 놓은 본관이 제일 흥미로웠다. 옆의 별관은 기획 전시용인 모양이었으나,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컨텐츠가 없었다.
근처에는 과거에 수돗물을 지금에 비해서 느리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여과하던 거대한 지하실(?)이 개방되어 있었다. 일명 '완속여과지'이다. 여기서 지는 池, basin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에는 '완속 여과'라고 해서 물을 깨끗한 모래에다 투과시켜서 불순물을 걸러냈다고 한다. 모래 자체도 주기적으로 청소하거나(주 1회) 교체(연 1회 이상)하고 말이다.
여과 진행 속도는 하루에 4m에 불과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완속'이다. 다만, 지금은 그렇게 여과하기에는 공급해야 할 물이 너무 많고, 또 취수한 원수의 수질도 예전보다 좋지 않기 때문에 화학 약품을 동원한 급속 여과 방식이 쓰인다. 급속 여과가 완속 여과보다 30배 이상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진행 속도가 120~150m/일)

완속 여과지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이 모래 위로 물이 출렁출렁 넘쳐 흘렀던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물 뒷쪽은 휴식 공간 위주였다. 현대식 상수도가 등장하기 전에 쓰였던 물레방아, 공동 수도, 우물, 펌프가 전시되어 있었고, 테이블과 평상도 놓여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런 인공 폭포도 구경하면서.. 여기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

Posted by 사무엘

2019/10/01 08:33 2019/10/01 08:33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668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19/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2620081
Today:
3080
Yesterday: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