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의 예빈산과 더불어 본인이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등산 코스는 청계산에서 아직 미개척(?) 지역으로 남아 있는 남쪽 구간이었다. 거기는 상수도 보호 구역은 아니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온통 개발 제한 구역이다. 그래서 경치가 좋으며 뭔가 오지 탐험을 한다는 느낌이 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남양주와 성남 중 어디부터 먼저 갈지도 꽤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둘 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예빈산을 먼저 가게 됐고, 청계산은 그 다음 주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완만한 등산로(능안골)를 생각했다. 그러나 청계산을 갔다가 근처 길 건너편 남쪽의 발화산도 오랜만에 다시 가 보기 위해.. 계획을 변경했다.

남북으로는 청계산과 발화산 사이에, 그리고 동서로는 성남과 의왕 사이에는 외곽순환 고속도로,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제2경인 고속도로의 연장 구간(안양-성남 고속도로.. 터널로 지나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음), 지방도 57호선이 지난다. 이것들 말고 아마 가장 먼저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은 '하오개로'라고 불리는 2차로짜리 꼬불꼬불 산길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달리면 자연스럽게 이 길로 진입할 수 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은 속세와 기막히게 단절된 곳에 자리잡은 것 같다. 여기서 더 동쪽으로 가면 학교 주변에 들어선 온갖 식당들과, 그리고 서판교의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 단지 때문에 전원적인 느낌은 없어진다.
본인이야 전공이 다르니 딱히 인연이 없지만, 한국학 중앙 연구원은 나름 인문계의 카이스트 같은 급의 국립 특성화 연구소 겸 대학원대학교이다. 학부 과정이 없고 석· 박사 대학원만 있는데, 카이스트도 1970년대에 처음 설립됐을 때는 학부 과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본인은 바로 저 길을 따라 '하오 고개'의 꼭대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성남과 광주 사이에 이배재 고개가 있다면, 성남과 의왕 사이에는 하오 고개라는 게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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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중앙 연구원을 지나서 고개를 오르는 길이다. 단, 담장의 방향을 보면 알 수 있듯, 이건 고개 쪽이 아닌 연구원 쪽을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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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곧고 넓게 잘 뚫린 고속도로나 57번 지방도와는 너무 대조되는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그 대신 차량 통행이 매우 뜸하며, 종종 갓길 공터가 나오기 때문에 중간에 차를 세우는 것에도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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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 고개의 정상에는 이렇게 발화산과 청계산을 잇는 육교가 설치돼 있다. 이 육교를 통해 보행자는 하오개로와 지방도와 고속도로를 몽땅 횡단하여 두 산을 왕래할 수 있다.
이배재 고개의 정상에도 망덕산과 고불산(+영장산)을 잇는 육교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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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를 올라서 청계산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금토동 등산로보다 수평 이동이 적기 때문에 등산로가 가파를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

길은 좁은 편이지만 성남 누비길 구간이다 보니 울타리로 안내가 잘 돼 있었다. 여기는 안양 시민 묘지의 근처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덤도 종종 보였다. 그리고 송전선 철탑과 두 번 마주쳤다.
산은 역시 잎이 초록색일 때 오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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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오른 끝에 현 산등성이의 능선에 도달했다. 약간 넓은 공터와 의자가 있었는데, 여기서 국사봉으로 가려면 약간 하강해서 산등성이를 옮겨야 했다. 하지만 수직 이동이 막 심한 삽질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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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이런 좁은 길 아니면 울타리 계단의 순으로 계속되었으며, 정상과 가까워지니까 바위도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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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정상에 거의 다 오니 갈림길이 있었다. 그 갈림길에서 국사봉이 아닌 쪽의 바위를 오르니 이렇게 자그마한 바위 꼭대기가 나왔다.
여기는 아무 표지석이 없고 바깥 전망도 썩 좋지 않았지만.. 의외로 건너편 발화산의 능선 바깥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름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시설의 산 속 잔디밭 부지가 눈에 들어오니 놀랍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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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사봉 정상에도 도달했다. 여기도 막 썩 경치 좋은 전망대가 있는 건 아니어서 고속도로 말고는 딱히 내려다볼 만한 게 없었다.
성남시 운중동 주변에는 보안 시설이 의외로 좀 있기 때문이다. 괜히 개발 제한 구역인 게 아니다. 아까 그 모종의 바위 꼭대기에서 봤던 것들은 이 정상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로써 본인은 청계산의 망경대, 서울(성남?) 매봉, 과천 매봉, 이수봉에 이어서 국사봉까지 정상을 모두 올라 보게 됐다.

예봉산이야 주변의 예빈산, 운길산, 갑산 따위가 몽땅 깔끔하게 남양주 소속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청계산은 지역 파편화가 꽤 심한 산에 속한다. 시계에 걸친 산들도 기껏해야 서울-구리(아차산), 성남-광주 같은 둘 정도가 보통인 반면, 청계산은 뭐 각 사분면별로 서울-과천-성남-의왕 4개로 찢어졌으니까..
경부 고속도로가 관할 구간이 달라지고(양재 IC 이남 이북으로 도로 공사 vs 서울시), 지하철의 관할 구간(서울역-청량리 서울 메트로 vs 코레일)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개념이 산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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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후에는 운종 저수지 근처의 어느 경치 좋은 카페에서 음료와 전기 보급을 받으며 쉬고 컴퓨터 작업을 했다. 그 뒤, 오후에는 다시 육교로 돌아와서 발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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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에서는 이렇게 57번 지방도(왼쪽), 하오개로(오른쪽), 그리고 외곽순환 고속도로까지(저 앞쪽.. 청계 톨게이트 근처) 세 도로를 한데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매우 흥미로운 경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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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 왔던 육교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제는 육교의 저쪽 건너편이 청계산이다.
이 발화산도 성남 누비길 구간이다. 하지만 표지판을 보니 발화산이 아닌 '태봉산' 구간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이 언덕은 사실 발화산 정상의 주봉이 아니며, 발화산 정상은 행정구역상 성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비길은 더 동남쪽으로 응달산을 거쳐서 태봉산 쪽으로 이어진다. 그쪽은 본인이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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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비좁고 가파르며 딱히 볼 것이 없었다. 다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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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다 올라서 능선에 도달하니 드디어 재작년에 봤던 그 송신탑이 나왔다.
재작년에는 여기보다 더 서쪽인 청계 톨게이트 쪽에서 길 없는 곳에 잘못 들어가서 밀림을 헤치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어째 이쪽으로 합류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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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탑을 지나가면 약간의 내리막이 이런 식으로 펼쳐지며.. 길을 따라 더 진행하면 코렁탕 제조 시설, 응달산, 대장동 등으로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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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하오고개 쪽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한없이 더 진행하지는 않았다. 중간 길목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여기는 청계산보다는 덜 유명하고 교통 불편한 곳이다 보니 사람 한 명 얼씬하지 않아서 좋았다.

깜깜한 밤에 높은 산 깊은 숲 속에 혼자 있으면 일면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디라도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면.. 이 얇고 연약한 텐트가 나를 바깥과 격리시켜 주고 추위와 바람과 각종 야생 벌레들을 차단해 준다. 넓은 산 속에 나를 위한 호텔 방이 짠~ 생기는 듯한 느낌?

그냥 돗자리나 침낭만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제는 텐트까지 들고 이동하는 수고를 감내하고라도 등산에다 야영을 겸하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21 08:35 2019/10/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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