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자동차 도로가 한 지점에서 평면 교차하면 거기는 대체로 신호등에 의한 시분할 통제가 시행된다(로터리가 아닌 이상..). 그런 곳에서 자동차가 아무 때나 아무 방향으로 진행하면 서로 부딪히는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마다 모든 진행 방향을 몽땅 신호등으로 도배하는 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적신호에서는 서고 청신호에서는 가니까 단순하고 속은 편하지만, 지나가는 차가 없는데도 무작정 강제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상황별로 '재량껏, 자율적으로 알아서 조심해서 지나가라' 같은 시스템이 시행되는 경우도 있다.
1. 좌회전
자신과 반대편이 모두 직진 신호를 받아서 상· 하행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없으면 눈치껏 반대편 차로를 밟으면서 좌회전하는 걸 허용한다.
이건 상시 유턴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개념이다. 조건부 유턴은 보통 적신호나 보행자 신호 때만 유턴이 허용되는 형태인 반면, 상시 유턴은 직진일 때도 반대편에 차가 없으면 유턴 허용이기 때문이다.
비보호 좌회전은 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해야 한다. 비보호 좌회전에 대해서 rule of thumb 급의 철칙이 있는데, 바로 “At your own risk”, 그리고 “너의 존재감을 반대편 차에게 절대로 드러내지 말라”이다.
비보호 좌회전하는 차는 알아서 조용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세우기는커녕 브레이크를 밟는 일조차 만들지 말고 존재감 없이 쓰윽 좌회전해서 사라져야 된다! 반대편 차로는 현재 직진 ‘청신호’라는 걸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운전자가 굉장히 빠지기 쉬운 착각이 하나 있다. 바로 “앞차가 이미 비보호 좌회전 중이니 나도 바싹 뒤따라가면 되겠지. 그러면 마주오는 차는 알아서 속도를 줄이겠지”이다.
반대편의 1차로에서 그 비보호 좌회전 앞차를 본 반대편 차는 물론 속도를 줄일 것이다. 그러나 도로의 폭이 편도 2차로 이상이라면, 그 옆의 n차로에서 그 앞차를 따라가던 뒷차는 시야가 가려져서 당신을 못 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미 뒤따라 좌회전 중인 당신과 충돌하게 된다.
앞차는 무단횡단자 때문에 속도를 줄였는데 옆 차로에 있던 당신은 앞차 때문에 그걸 못 보고 무단횡단자와 충돌.. 딱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로가 많은 큰길일수록 비보호 좌회전은 위험성이 커진다. 차량의 통과 속도와 교통량이 매우 높은 확률로 덩달아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편의 모든 차로에 대해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달려오는 차가 전혀 없다는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비보호 좌회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걸 왜 운전 면허 교육 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생각 같아서는 비보호 좌회전 요령은 운전 면허 도로 주행 시험 때 FM대로 직접 실습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아니면 최소한 필기 시험 문제로라도 내든가..
"뒷차 따라 나도 들이대면서 비보호 좌회전한다"가 오답이 되게 말이다.
그~~저 닥치고 비현실적인 멈춤, 서행만 조선 유교 꼰대마냥 세뇌시키고. 노란불 딜레마 때문에 운 나빠서 시험 떨어지는 애들이나 만들어서 돈 시간 낭비시키니.. 면허 시험 체계가 혼란스럽고 미개하기 그지없다.
한 문철 변호사는 비보호 좌회전이 만악의 근원이니 좀 없애라는 소신인 모양이다. 아니면 사고 나면 옛날처럼 다시 12대 중과실 신호위반으로 되돌리기라도 하라고..
하긴, 평생 교통사고 분석만 업으로 삼으면서 이 바닥은 이골이 났을 텐데, 저런 애매한 시스템 때문에 사고가 한두 건 난 게 아니었지 싶다. 어지간한 드라마/영화에 나오는 뻔~한 주인공 사망 플래그 클리셰 급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적으로 비보호를 싸그리 다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등신같은 과속 단속 카메라 만들 예산으로, 애매한 비보호 교차로에 안전한 감응식 신호기나 더 장착했으면 좋겠다. 좌회전 자리에서 차가 대기하고 있으면 알아서 안전한 좌회전 청신호를 주는 거 말이다. (반대편 차로는 물론 적신호)
그리고 기왕 시내 교차로에서 속도와 신호 단속을 동시에 한다면.. 교차로 통과 결심 지점 표시 같은 거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이 지점을 시속 50/60으로 지났다면, 신호등이 노란불이 되더라도 고민 말고 직진해서 교차로를 통과하세요” 이런 표식 말이다. 이보다 느린 상태이거나 이 지점을 아직 못 지났다면 브레이크 밟고 서는 거다.
요즘 전국의 고속도로/고속화도로에는 진출 방향을 헷갈리지 말라고 분홍색/초록색 색깔띠가 곳곳에 깔렸는데(10여 년 전부터) 교차로 통과 결심 지점 표시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2. 우회전
우측통행 기준으로 우회전은 도로에 끼치는 여파가 가장 작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구조가 아주 특이한 삼거리 같은 예외적인 곳이 아닌 한, 우회전 신호가 별도로 있지는 않다.
직진 청신호이고 우회전 쪽 횡단보도가 적신호라면 우회전은 제일 속 편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 상황에서는 우회전을 비보호로 재량껏 할 수 있다. 즉, 이때는 좀 조심하면서 해야 한다.
비보호 우회전의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직진 청신호에다 우회전 쪽 "횡단보도가 청신호"인 때이다. 이때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없을 때에만 눈치껏 우회전을 할 수 있다. 요 근래에는 횡단보도 내부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횡단을 위해 대기 중인 사람이 보이기만 해도 차가 서야 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즉, 비보호 좌회전은 차와 차의 충돌의 위험이 있다면, 비보호 우회전은 차와 보행자의 충돌 위험이 있다.
직진이 적신호일 때도 비보호 우회전이 가능하다. 물론, 직진 쪽 횡단보도가 청신호가 아닐 때에 한해서다. 그때는 우회전 차량이라도 당연히 무조건 서야 한다.
다음으로, 서로 좌회전 신호만 받은 상태라면, 내가 우회전하는 방향으로 맞은편 차로의 좌회전 차량도 같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럴 때는 우회전 차량은 좌회전 차량에게 방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슬금슬금 해야 한다. 우회전은 비보호이지만 좌회전은 정식 신호이기 때문이다.
어디 비보호 우회전하는 차가 건방지게 크게 꺾어서 1차로로 쓰윽 들어가는지? 그러지 말아야 한다. 비보호 우회전은 비보호 좌회전만치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일탈이 좀 묵인되는 것일 뿐이다.
3. 직진/기타
교차로에서 직진이 금지되어 있는 곳은 대체로 고가나 지하도 같은 입체교차 경로가 따로 있어서 “직진은 저기로 하셈~! 여기서는 직진 금지” 형태이다.
그런 금지 말고 직진에 대해서 정규 청/적이 아닌 신호가 존재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OX/XO, OXO/XOX 형태로 교차하는 황색 불빛: 교차로는 아니지만 커브나 빙판이 있으니 너무 과속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권고 사항이다.
(2) 황색/적색 점멸: 적/청 정규 신호를 적용하기에는 교통량이 굉장히 적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약간 작은 길에서는 평소에 정규 신호가 사용되다가도 0시 이후의 심야· 새벽 시간대에는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 이런 형태의 비보호 신호가 시행되는 경우가 있다.
황색 점멸의 경우, 옆에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오더라도 부딪히지 않고 즉시 정지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천천히 통과한다(진행 방향 무관). 요즘 운전자들을 속천불 나게 하는 어린이 보호 구역 시속 30 단속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황색이 아닌 적색 점멸이라면 아예 일시정지까지 해서 주위를 살핀 뒤에 지나가야 한다. 큰길과 작은길이 만나는 곳에서는 큰길은 황색 점멸이고 작은길은 적색 점멸이 되곤 한다.
(3) 무신호: 좁은 골목길에서 신호가 없고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교차로를 지난다면, 반드시 일시정지를 해서 주위를 살핀 뒤에 가야 된다. 즉, 적색 점멸에 준하는 상태로 통과하는 게 안전하다. 그리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왕이니 비보호 우회전 횡단보도를 생각하면서 통과하도록 한다.
이상이다.
점멸 신호 교차로에서 서행(황색) 또는 일시정지(적색)를 하지 않아서 사고가 크게 나면.. 이건 엄연히 12대 중과실 신호위반으로 간주된다.
그것처럼 비보호 좌회전 사고도 예전에 그러던 것처럼 신호위반으로 처리해서 가해 차량에게 책임과 경각심을 더 부과하는 게 이치에 맞으리라 여겨진다. 피해 차량의 입장에서는 멀쩡한 청신호 진행 중에 정말 날벼락을 맞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