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발전사

인류가 물 위를 건너기 위해 선박이라는 물건을 만들어서 띄운 지는 수천 년이 됐다. 심지어 그걸로 바다 위에서 전쟁도 치렀다.
하지만 그걸로 사람만 잔뜩 실어 나르는 장거리 전문 여객선이라는 게 등장한 건 역사가 의외로 짧다.

전근대 시절에는 평민들의 경제력과 교통 수요가 그런 걸 받쳐 주지 못했다. 거기에다 그 당시엔 선박 자체가 너무 위험하고 느리고 정시성을 장담 못 하는 물건이었다.
배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는 것의 포스와 리스크가 요즘으로 치면 과장 보태서 무려 우주로 나가는 것에 맞먹었다. 보험 회사의 이름이 'oo 화재, xx 생명'뿐만 아니라 'xx 해상'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낭만적인 여행이 절대 아니고 모험 탐험이었다.

그 시절에 사람을 잔뜩 태운 배가 있다면 그건 지하에 노꾼이 잔뜩 탄 갤리선이거나, 아니면 아예 노예 무역선. 둘 중 하나일 뿐이었다. -_-;; 사람을 살인적인 중노동을 시키거나, 아니면 용변도 제대로 못 볼 정도로 꼼짝달짝 묶어서 짐짝처럼 쌓아 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단, 노예이면서 동시에 노꾼이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호흡 맞춰서 엉킴 없이 노 젓는 건 극심한 중노동일 뿐만 아니라 전문성도 필요했다. 일자무식에다 더 잃을 것도 없는 노예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ㄲㄲㄲ 질 낮은 죄수를 호락호락 총 쥐어 주고 군인으로 부려먹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50미터 남짓한 길이에 엔진이 아니라 돛-_-이 달렸고 배수량도 200톤이 채 안 될 대항해시대 나무 범선 갖고 호화로운 장거리 여객선 영업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근데 그 시절에는 그 가냘프고 열악한 배에 남자들 수십 명이 낑겨 앉아서 신대륙을 개척하러 갔다는 거다. 이 정도면 교도소 복역이랑 선원 생활을 퉁쳐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 우리가 잠수함에 대해서 생각하는 위험함, 갑갑함, 열악함 등등이 그때는 일반 수상 범선에 적용됐고 수위가 더 높았다.

선박을 굴려서 돈을 벌려면 그 비좁은 공간에 화물을 왕창 실어야 했다. 그러니 선원들 복지는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근대 시절에 선박은 화물 수송이 main이었고, 여객은 거기에 꼽사리로 낑겨 타는 정도였다.

자, 그러면 성경의 요나서도 어떤 배경인지가 완벽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요나 역시 여느 상선 화물선에 낑겨 탔기 때문에, 편안한 좌석이나 선실이 아니라 어디 한구석에 짱박혀서 잠들었다. 그리고 배가 위험에 처하자 선원들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무거운 화물들을 바다에 버린 것이다. 그건 승객 개인이 들고 다니던 더플빽이나 캐리어 같은 덩치의 짐이 아니었다.

참고로, 옛날 목선 범선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좀 더 나열하자면 이렇다.

(1) 노아의 방주도 오늘날 기준에서는 그렇게까지 막 큰 배는 아니다. 길이 150미터 남짓한 목선이니 대항해시대 범선보다 좀 큰 정도이고, 20세기에 등장한 여객선이나 군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 크기와 부피이면 배수량은 여러 자료로 추정하건대 1만 톤 안팎쯤 됐을 거라고 여겨진다.
참고로, 현대의 조선공학 관점에서는 목선은 길이가 100미터, 배수량 2000톤 정도가 현실적인 한계로 여겨진댄다. 목재는 금속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용접으로 이어붙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2) 노아, 요나 이상으로 성경에서 바다 항해를 제일 진지하게 다루는 곳은 사도행전 27장이지 싶다. 바울이 죄수 호송선을 타고 이스라엘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장면 말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뱃길로 약 2400km 거리라고 한다.
이건 부담 없는 단거리는 절대 아니고 2000여 년 전의 항해 기술로는 더욱 만만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태평양이나 대서양도 아니고 기껏해야 지중해 횡단일 뿐인데 그걸 한 번에 못 가서 중간 정박을 하고 겨울을 나네 마네 논쟁이 오갔던 것이다.
게다가 배에 사람이 276명이나(행 27:37) 탔었다. 선내에 공간이 절대로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고 승선 환경은 몹시 열악했을 것이다.

(2) 500여 년 전,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는 대장인 마젤란을 비롯해 250명에 달하는 선원을 잃고 배 세 척 중에 한 척만 겨우 귀환하는 개막장 거지꼴 패잔병 상태로 종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 한 척에 실린 외국 향신료만으로도 그들은 항해 비용을 다 뽑고 남는 흑자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 향신료 가격이 지금의 마약 가격 정도라도 됐나 싶다. =_=;; 후추가 아니라 필로폰이었는지.. -_-;; 하긴, 그때는 화약 가격도 그렇게도 비쌌다니까 말이다.

암튼, 이런 열악한 상황은 증기 기관이 발명되면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얘 덕분에 선박이 바람을 거스르는 정시 항해가 가능해지고, 해풍이 불지 않는 육지 한가운데 운하도 주행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배가 더 크고 무거워질 수 있게 됐다.
배의 재질이 나무 대신 철로 바뀌었고, 동력 전달 매체도 처음에 외륜이 쓰이다가 스크루 프로펠러로 바뀌었다. 엔진조차도 왕복이던 게 터빈으로..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좀 뭔가 호텔 같은 배가 등장할 수 있게 됐다. (해상 호텔이라, 옛날 범선 시절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치.. ㄲㄲㄲㄲ) 민간이 아닌 군함은 훨씬 더 강하고 사정거리 긴 함포를 장착해서 적을 압도할 수 있게 됐다.
1906년경에 영국에서 만든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 그리고 드레드노트 전함이 민간과 군함 각 분야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대서양· 태평양을 건너는 장거리 대형 여객선이라는 게 운항을 시작하고, 군에서는 순양함을 넘어 전함이라는 등급이 등장했다. 19세기 말에 서 재필이니 이 승만이니 하는 우리나라 선각자들도 저런 배를 타고 미국을 다녀올 수 있었다. (비행기 1시간이 선박 1일에 맞먹으니, 편도로 2주 이상 걸렸을 듯.)
그 이름도 유명한 타이타닉이 이 바닥의 정점을 찍었다. 인류가 이런 배를 구경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 세계 열강들은 군함만 만들다가 등골 빠지고 공멸하지 말고, 군함을 일정 배수량 이상은 다같이 만들지 말자고 군축 조약을 맺었을 정도였다. 그때는 전함을 더 만들지 말자는 게 지금으로 치면 핵무기를 다같이 만들지 말자고 약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개념이었다.

그 뒤 선박은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 디젤 기관으로 바뀌면서 리즈 시절을 찍었지만, 비행기가 발명되면서 추세가 또 바뀌었다. 비행기는 터빈을 기반으로 한 제트 엔진이 도입되면서 세계의 하늘을 석권하게 됐다.
오늘날 배가 거대한 건 항공모함이나 초대형 유조선/화물선 정도이고, 인명을 태우는 건 말 그대로 해상 호텔인 관광 크루즈선만이 남았다. 100년 전과 같은 ocean liner(대륙 횡단 정기 여객선)라는 개념은 없어졌다.

거함거포주의는 항공모함 때문에 논파됐고, 지금은 미사일 때문에 더욱 확인사살됐다.
요즘은 해군보다도 해병대에서 상륙작전을 벌일 때 정도에나.. 뒤에서 펑펑 쏴 주는 전함의 함포를 그리워하는 지경이 됐다. 포탄이 그래도 비행기나 미사일보다는 화력 대비 훨씬 더 저렴하기도 하지.

20세기 초-중에는 여객선과 비행선이 대륙을 횡단했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부터는 여객기와 미사일이 대륙을 횡단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_=;;
우리나라 기준으로 여객선으로는 부산에서 일본, 인천에서 중국, 동해안에서 러시아 정도만 갈 수 있다. 즉, 아주 단거리 한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3/17 08:35 2024/03/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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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비행기 수준은 아니지만 지면이나 수면을 약간 떠서 다니는 교통수단이 있다.

1. 지면에서는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인 예이다. 얘는 분명 육상의 궤도 교통수단이고 차량을 열차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도의 범주에 드는 물건이 아니다. 당장 차량의 밑에 바퀴가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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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전자기력의 힘으로 아주 미세하게나마(수 cm 남짓) 위로 떠서 달리니 구름 마찰력 따위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조용하고 진동 없고 주행 속도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198, 90년대의 공상 과학 매체에서 진작부터 미래의 교통수단이라고 주목 받아 왔다.

하지만 기존 철도와 전혀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선로, 그것도 첨단 기술의 집약체여서 건설비도 엄청 많이 깨지는 시설을 수백 km씩 새로 건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2020년 현재까지도 자기 부상 열차는 장거리 고속 간선이 아니라 단거리 중저속 도시철도 경전철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국내의 경우 대전 엑스포 공원과 인천 공항의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에는 상하이 시내와 푸동 국제 공항을 잇는 공항 철도가 어째 자기 부상 고속철 형태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츄오 신칸센이 2020년 현재 세계 최초의 유일한 장거리 간선 + 초전도 기반의 자기 부상 열차를 표방하며 건설 중이다. 시속 200km짜리 고속철에 이어 시속 600짜리 자기 부상까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은 놀라운 일이겠지만, 요즘 세계의 경제 시국을 감안하면 저건 경제 대국 일본의 입장에서도 꽤 버거운 과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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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상 열차의 동력원은 linear motor라고 부르는 선형 전동기이다. 하지만 얘 자체는 부상식이 아닌 철차륜 접지식 철도에도 적용 가능하다. 용인 경전철이 ‘선형 전동기’라는 말을 국내에 거의 처음으로 선보인 사례이다.

요즘 자동차가 휘발유에서 전기 같은 대체 에너지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면, 철도는 전철은 진작부터 따 놓은 당상이니, 다음으로 기존 열차의 틀을 깨고 공기 저항이나 구름 마찰력을 차원이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서 초고속을 실현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철도가 아음속기의 속도를 따라잡을 때쯤이면 비행기는 초음속기가 다시 실용화되지 않을지?

2. 다음으로 수면에서는.. 위그선과 수중익선, 공기부양정(호버크래프트)이 있다.

(1) 먼저 위그선은 생긴 것부터가 날개가 달린 게 경비행기 내지 헬리콥터.. 어쨌든 비행기를 짬뽕한 것처럼 생겼으며, 수면 위를 수~수십 m 정도 뜰 수 있다. 덕분에 속도도 시속 수백 km에 달하고 매우 빠르다. 배멀미가 없는 것은 덤.. 그 대신 얘는 평범한 배를 운전하는 감과 노하우만으로는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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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좀 더 발전시켜서 아예 비행정이나 수상기를 만들면 되지 이런 어중간한 물건은 왜 만들까? 위그선은 비행기와의 차이가 무엇일까?
위그선은 아무래도 완전한 비행기보다는 연비가 훨씬 더 좋으며, 조종 난이도도 비행기만치 높지는 않다. 그러면서 비행기의 장점을 바다 위에서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위그선은 초저공 비행 중에 날개가 공기를 아래로 누르면서 발생하는 '지면 효과'로부터 생성된 양력을 활용해서 뜬다.

다만, 위그선은 굉장히 빠르게 날아가는 도중에 아래의 파도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양력 비행이란 건 어떤 형태로든 밀도가 낮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특화돼 있기 때문에 공기보다 훨씬 무거운 물이 기체에 부딪혀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금세 자세가 흐트러지고 속력을 잃고 양력도 잃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상황이 발생한다.

위그선은 선박의 경제성과 비행기의 속도를 적당히 절충한 교통수단으로서 나쁘지 않지만.. 전문적인 선박이나 비행기의 틈새를 뚫고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할 만치 획기적으로 뛰어난 물건은 아니어서 그냥 마이너한 특수 목적 교통수단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이걸 타고 굳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널 필요는 없으니까.. 단지 포항이나 울진에서 울릉도 정도를 갈 때, 인천이나 안산에서 백령도 연평도 정도를 빨리 가고 싶을 때 비싼 헬기를 띄우느니 이런 물건이 가성비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그선은 비행기와 선박 사이의 정체성이 무척 모호한 물건인데,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물론 선박이다. 법적으로 수면 위에서 고도 150m 이하로만 떠 다니는 것들은 다 선박이고 그 이상부터가 비행기라고 한다. 비행기가 이륙을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는 최소 높이가 35피트(약 10.7m), 국내에서 사전 신고 없이 경량 드론을 띄울 수 있는 최대 고도가 150m이다가 최근에 최대 300m로 완화됐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기체 반경 600m 이내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 높이에서 추가적으로 이 높이까지)

(2) 다음으로 수중익선은 선체 아래에 U자 모양의 둥그런 '날개'가 달렸다. 주행을 시작하면 이게 물 속에서 양력을 받아서 선체를 위로 수 m 남짓 띄운다. 양력을 공기 중에서 얻는 게 아님을 유의할 것. 날개(수중익) 부위는 여전히 물에 잠겨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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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배도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워낙 압도적으로 더 높기 때문에 비행기처럼 크게 돌출되지도 않은 저 작은 날개만으로도 그 무거운 선체를 띄울 수 있다고 한다.
수중익선은 모든 부위가 공중에 뜨는 위그선보다야 느리다. 하지만 위그선보다 더 대형화가 가능하고, 같은 출력으로 일반 선박보다 더 빠르고 편안한(= 배멀미 없는) 운항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수중익선은 저렇게 떴을 때는 물이 양력의 매체 역할만 하지 스크루를 돌려서 동력을 전하는 매체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워터제트 엔진을 따로 장착해서 물을 뒤로 뿜어서 나아간다.

(3) 끝으로, 공기부양정은 마치 호치키스처럼 본명보다도 호버크래프트라는 제조사의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얘는 날개가 없고 딱히 항공역학적인 디자인이 아니다. 하체가 공기 쿠션으로 둘러져 있고, 그 공간에다 압축 공기를 불어넣어서 그 공기의 압력으로 뜬다. (양력이 아니라 추력...) 딱 자기 부상 열차가 뜨는 만치만(cm 단위..) 간신히 뜨기 때문에 공중부양(?)을 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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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얘는 위그선보다야 훨씬 더 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을 수 있으며, 물 없는 바닥 위에서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 일반 선박들은 바닥이 지면과 닿으면 곧바로 긁히고 좌초하는 반면, 얘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부양정은 험한 지형의 바닷가에 상륙 작전을 펼치는 군사 용도로 매우 적합하다. 물의 저항을 덜 받는 덕분에 일반 선박보다 훨씬 더 빠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내륙 깊숙히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비행기만치 빠르지는 못해도 승용차 정도는 나온다.

공기부양정은 일반 선박처럼 물에 잠긴 형태의 스크루가 달려 있지 않으며, 옛날 증기선 같은 외륜도 없다. 뒤에 달린 프로펠러가 선체 상부의 공기를 뒤로 내뿜어서 나아간다는 게 특징이다. 물이 아니라 공기를 뒤로 밀어낸다.
사실, 비행기도 프로펠러를 뒤에다 장착해서 추진하고 뜨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단지, 이륙하면서 기수가 위로 들릴 때 뒤의 프로펠러가 땅에 닿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안 할 뿐...

모든 교통수단은 이것저것 겸용으로 만들면 효율이 매우 떨어지고 생산 비용도 비싸진다. 공기부양정 역시 예외가 아닌지라 일반 선박보다 수송량 대비 매우 비싸고 연비도 낮고 엔진 소리가 시끄럽다. 그렇기 때문에 잠수함처럼 민간이 아닌 군용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8 08:35 2020/12/28 08:35

오늘날은 통신 기술이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눈부시게,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전화기만 해도 처음 발명됐던 시절엔 가히 혁신 혁명이었는데 오늘날은 무전기를 넘어 휴대전화와 인터넷까지 일상이 됐으며, 무선 인터넷이 10~15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작은 기기로 글과 음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아날로그도 아닌 디지털 형태로 지구 반대편으로 즉시, 당연한 듯이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국가 차원에서 긴급한 상황을 빨리 알리기 위해 봉화와 파발이 쓰였다. 봉화는 전파 속도가 비교적 빠른 대신, 전할 수 있는 게 불/연기의 on/off 정도이니 정보량으로 치면 겨우 두어 비트 남짓한 정말 최소한의 상태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봉화가 빨라 봤자.. 조선 시대 기준으로 제일 이상적인 상황과 근무 조건을 가정했을 때, 부산에 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이 봉화들을 거쳐서 400km가 넘게 떨어진 한양의 조정까지 전해지는 데 대략 두세 시간 정도 걸렸을 거라고 그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휴대폰 기지국도 없고 전화선도 없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위급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파발은 사람이 말 타고 현장까지 물리적으로 달려가서 문서를 전하는 것이니 정보량은 많지만 속도가 거북이 수준일 수밖에 없다. 길목에는 지친 말을 교체해서 바꿔 타는 곳이 일정 간격으로 갖춰져 있었다.

이런 봉화와 파발은 내륙에서의 통신 수단이다.
교통과 통신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파발마는 통신을 위한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박 같은 업계에는 '교통수단 간의 통신'도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표준 규격이 오래 전부터 제정되고 쓰여 왔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말이다.

철도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 폐색 구간에 둘 이상의 열차가 절대로 동시에 진입하지 않게 하기 위한 통신· 안전 장비가 도입되었다.
선박이야 조향이 가능하므로 철도 같은 그런 경로상의 제약은 없다. 하지만 걔네들은 인간이 환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돌아다닌다!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 없고 무슨 정체불명의 괴선박 유령선과 마주칠지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철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비행기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 착륙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 허용하게 되어 있다. 굳이 기체의 이상이 아니라 기내에 응급 환자라도 발생하면 아까운 연료를 버리기까지 하면서 착륙하게 된다.
그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조난 신호를 보낸 선박이 있으면 신호를 받은 근처의 다른 선박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서 구해 주도록 국제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의무이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이 고의로 그 요청을 외면한 선박은 나중에 처벌 받는다. 어떤 경우건 일단 사람 목숨은 구하고 나서 그 다음에 구조자들이 자기 일을 못 해서 손해 본 비용을 관계자나 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하든가 말든가 한다.
꼭 조난 말고도.. 거대한 선박들이 나눌 만한 질문· 응답 내지 주변에 전파하는 자기 상태 정보는 패턴이 뻔히 정해져 있다.

  • 본선은 후진 중이다.
  • 본선 주변에 사람이 바다에 빠져 있다, 또는 잠수부가 작업 중이다. 그러니 주의하라.
  • 본선은 지금 통제가 안 되고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
  • 당신 즉시 정지하라.
  • 도와달라, 도선사를 보내 달라 등등..

여객기에는 자신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당해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불빛 표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택시도 지붕의 택시등이 평소와 달리 뻘겋게 번쩍거리는 건 기사가 택시 강도를 만났다거나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비언어적인 간편한 수단을 동원하여 잘 보이고 잘 들리게 표현하고, 때로는 간단한 임의의 written language까지 전하는 체계가 선박 쪽은 일찍부터 훨씬 더 정교하게 발달했다. 뭔가 수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선박의 항해사 내지 조타수라면 이 규약은 당연히 달달 외워서 골수에 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1. 가장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호기(signal flag)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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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깃발들은 무슨 국기가 아니라 A~Z까지 알파벳을 의미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백지에다 커다랗게 알파벳을 그려 넣고 펄럭일 법도 해 보이는데, 누가 왜 언제 무슨 계기로 이런 도안을 따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독성· 시안성 면에서 장점이 있으니까 만든 게 아닐까?

알파벳 26자 말고 숫자와 특수 용도 깃발도 더 있어서 신호기 한 세트는 총 40종류의 깃발로 구성된다. 그리고 모든 신호기 도안은 빨노파+흑백 이렇게 5종류의 색만 써서 그려져 있다. 딱 삼원색+무채색.. 한국어에서 용언이 존재하는 기본색들로만 그려졌다는 뜻이다.
아래의 퇴역 군함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깃발들은 만국기가 아니라 다 신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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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깃발들은 알파벳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독 또는 두 종류가 결합되어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A는 "본선 주변에서 잠수부가 작업 중이니 천천히 통과하라"이고, B는 "위험물 운반/하역 중"이다. 예/아니요는 Y/N이 아니라 C/N이다.

이런 것들이 규약이 다 정해져 있다.
또한, 알파벳을 "에이 비 씨"(영국/미국)나 "아 베 체"(독일) 같은 특정 언어대로 읽는 게 아니라 "알파, 브라보, 찰리, ..." 식으로 더 튀게 읽는다. '델타'(D)처럼 비슷한 그리스 문자의 독음에서 따 온 것도 있지만 모든 글자가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에코(E)는 국내에서도 2와 E를 구분하기 위해서 쓰인다. 유니코드 코드값 같은 16진수를 다룬다거나 자연상수가 등장할 때 말이다.

한국어만 해도 굳이 2와 e가 아니어도 숫자 '삼'과 '사' 같은 건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주유소 같은 데서는 '잉이삽산' 식으로 받침 발음을 왜곡해서 clearify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알파벳의 발음도 '엠'과 '엔' 같은 건 시끄러운 곳에서 청각적으로 명확한 분간이 어렵다. 거기에다 언어 중립성 같은 문제가 있기도 해서 저런 국제 명칭이 따로 제정된 듯하다.
한자에는 숫자의 변조를 막기 위해서 갖은자라는 게 존재하는데, 글자 언어가 아닌 말소리 언어에서는 발음의 혼동을 막기 위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2. 그리고 다음으로 수기 신호(flag semaphore)가 있다.

이건 동일한 도안인 깃발이 두 개 있고 그걸 사람이 양팔로, 마치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각각 어느 각도로 들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글자가 달라지는 체계이다. 수기용 깃발은 바다에서는 빨강+노랑, 육지에서는 하양+파랑으로 정해져 있지만, 사실 깃발 자체보다는 사람의 팔이 변별 요소 역할을 한다. 깃발은 신호수의 팔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 주는 역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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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신호는 깃발 두 개만 있으면 되니 전용 신호기보다는 준비물이 단순하다. 하지만 표현 가능한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숫자의 신호와 알파벳의 신호가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호가 문자인지 숫자인지를 나타내는 수기를 먼저 보여준 뒤 다음 글자가 이어진다.

3. 끝으로, 발광 신호와 모스 부호가 있다.

'신호기'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무슨 철도 신호기 같은 물건이 떠오른다만.. 저기서 기는 당연히 旗(banner)이지, 機가 아니다. 그리고 신호기건 수기건 다 깜깜한 밤이나 짙은 안개처럼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때는 커다란 헤드라이트 같은 조명을 상대방 선박에게 비추고 이걸 주기적으로 깜빡여서 신호를 보낸다. 저런 A~Z, 0~9 같은 숫자를 그 이름도 유명한 모스 부호계로 인코딩 하고, 깜빡이는 시간 간격으로 돈(점)/쓰(선)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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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는 잘 알다시피 전신을 보낼 때 사용되지만, 가까이 있는 선박끼리는 저렇게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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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와 점자는 무슨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난 모스 부호는 뭔가 허프만 트라이(trie)처럼 여러 글자들을 쭉 늘어놓아도 모호성이 없는 binary 부호 체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그렇지 않더라. 글자 경계 구분을 따로 해 줘야 한다. 가령, 돈만 4개 늘어놓으면 H가 되기 때문에 E(1개), I(2개), S(3개)는 사이에 구분자를 넣어 줘야 표현 가능하다.

옛날에 울펜슈타인 3D 게임에서도 어떤 레벨의 BGM에는 '띠디디.. 띠 띠디..' 이렇게 히틀러를 제거하라는 지령의 모스 부호가 비프음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월남전 때 베트콩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어느 미군이 말은 위에서 억지로 시킨 대로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걸로 torture(놈들이 포로들에게 고문을..)이라는 단어의 모스 부호를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정도면 교묘하게 숨겨진 모스 부호는 추리 소설에서 다잉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문제의 해결 단서까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재래식 우체통 편지도 간신히 오늘 내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전보 서비스가 아직도 있긴 한가 보다. 본인은 지난 2000년,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교회 어르신에게서 축전을 받았던 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보라는 걸 접한 경험이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유한한 개수의 문자를 어디서나 편리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부호화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동양의 한자라는 문자는 이런 실용성과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다.

끝으로, 본인이 갑자기 이런 재래식 선박 신호 체계를 찾아 본 이유를 얘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 "J.F (너의 국기를 게양하라.)"
  • "N.H.I.J.P.O (너의 국적을 제시하라.)"
  • "I.J.G (언제 어디를 출항하였는가?)"
  • "L.D.O (목적항구가 어디인가?)"
  • "K (정지하라)"
  • "O.L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이런 것들.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 해군이 북괴 선박에게 실시했던 구체적인 검문 절차를 알 수 있다. 그땐 날이 저물어 있었기 때문에 수기 다음으로는 발광 신호로 저 글자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알파벳 이니셜들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저 이니셜들은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 말고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신호용 알파벳과 의미들은 1969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제정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 6· 25 전쟁 당시와는 체계가 다르다.
그럼 옛날 신호 체계는 어떠했는지 검색을 해 보면.. International Code of Signals 1931년판이라는 게 나온다. 하지만 너무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천하의 구글도 이 책을 스캔 뜨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이니셜들이 정말로 그때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신호가 맞는지는 본인은 아직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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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9/02/10 08:33 2019/02/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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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이야기

1. 전근대 시절의 장거리 항해

본인은 초-중딩 시절에 대항해시대 2 게임을 즐겼던 세대이다. 이 게임과 세계 역사 만화책과 학교에서의 세계사 공부를 통해 서양에서는 과거의 중세와 근세 사이에 범선만 달랑 타고 신대륙을 막 개척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배웠다.

현실에서 전쟁은 스타크래프트나 FPS 게임이 아니다. 과거에 양치기 목동은 절대로 낭만적인 전원 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하다못해 결혼 생활조차도 소꿉놀이와는 딴판인 티격태격 전쟁이다.
그리고 그것처럼 배 타고 멀리 떠나는 것도 절대로 편한 일이 아니다. 최첨단 문명의 이기와 통신 장비가 있는 오늘날도 그러한데 하물며 옛날에는.. 선원 생활의 열악함과 비참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영양 문제다. 지금 같은 냉장 냉동 기술이 없으니 모든 식품은 닥치고 소금에 절여서 보관해야 했다. 비타민이라는 걸 몰랐으니 각기병이나 괴혈병 같은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했다. 장거리 항해를 한번 하고 나면 괴혈병 때문에 건장하던 근육질 선원들이 시름시름 앓다 픽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세포들이 형체 유지를 못 하고 몸 곳곳에서 피가 철철 나다가 죽는 건 오늘날로 치면 거의 방사선 피폭에 준하는 끔찍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엔 뱃사람 업계에 미신과 괴담 같은 것도 얼마나 많이 나돌았을지 모를 일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배에서는 온수 목욕 같은 것도 할 수 없었다. 또한 과거의 범선은 폭풍우와 높은 파도만 악재인 게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바람이 오랫동안 너무 안 불고 잔잔한 것도 끔찍한 재앙이었다. 배가 나아가질 못하면서 선원들이 그 안에서 꼼짝없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배 안의 도구와 시설이 원시적일수록 승선 근무는 공동 작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며, 한 명만 잘못하면 다같이 죽는 위험이 더 컸다. 그러니 거기 조직 문화는 반쯤은 군대와 다를 바 없었다. 채찍질과 교수형 등 온갖 전근대적인 규율과 잔혹한 처벌로 선원들을 통제해야 했다.

그러니 선원들의 생활이 얼마나 헬이었을까? 이런 것들이 바로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만 해서는 알 수 없는 레알 대항해시대의 실상이다.
그 시절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양을 누볐다는 배가 덩치가 이렇게 작았다는 사실에 추가적으로 굉장히 놀라게 된다. 배수량이 겨우 몇백 톤이 될까말까인 쪽배 유람선에 10~20여 명의 남정네들이 타고 도대체 어떻게 대륙을 건널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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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엔진도 없이 돛만 달랑 달고, 게다가 금속도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요즘의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같은 덩치일 수는 없다. 건축· 재료공학적으로 따져볼 때 목선은 길이 약 100미터, 배수량 2000톤 정도가 사실상의 한계로 여겨진다고 한다.

목재는 쇳덩이처럼 무슨 용접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금속보다 약한데 이어 붙이는 시점에서부터 강도가 더욱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 덩치를 부분적으로 초과하는 목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목선의 끝물인 19세기 중후반은 가서야 예외적으로 등장한 것들이며, 덩치를 무리해서 키우느라 항해 중엔 펌프로 물을 일일이 빼 줘야 하는 등 태생적으로 지병을 안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같은 거대한 선박을 목재만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허나 그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300큐빗은 1큐빗을 50cm 남짓으로 잡아도 150m 남짓한 길이이다. 방주가 무슨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덩치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얘는 표류만 하지 항해 기능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었으니 어지간한 배들이 갖는 유체역학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다. 항공기에다 비유하자면 비행선이 아니라 그냥 기구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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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목재의 한계 얘기가 기왕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옛날에 황룡사 9층 목탑도 어떻게 존재 가능했을까 싶은 의문이 추가로 든다. 기록대로라면 높이가 거의 80m에 달하는 건물을 나무로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콘크리트 건물처럼 딱 직육면체 형태로 그렇게 높은 목조 건물을 만들 수는 없고, 위로 갈수록 면적이 좁아지긴 해야 할 것이다. 롤러코스터조차도 에버랜드 T 익스프레스 같은 목제는 철제보다 내부 구조물이 훨씬 더 많고 복잡하고, 철제처럼 360도 상하 회전을 구현하지 못하지 않던가.

2. 근대: 기계화가 됐지만 여전히 원시적임

아무튼, 그러다 근대에 와서는 실용적인 수준의 증기 기관이 발명되었고, 땅에서 마차보다 빠른 철도 차량도 만드는 와중에 이 기관을 선박에다가 써먹으려는 시도도 응당 행해졌다. 오늘날처럼 스크류 프로펠러가 정착하기 전의 과도기에는 외륜이나 물갈퀴 같은 다양한 동력 전달 메커니즘이 등장했으며, 이때부터 배의 재질도 목재에서 금속으로 바뀌었다. 불을 때는 연소를 나무로 만든 기계 안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인류 역사상 몇천 년의 짬밥을 먹어 온 목재 범선이 주력 교통수단에서 드디어 퇴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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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선은 증기 기관차와는 달리 왠지 유럽이 아닌 미국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든다. 허클베리 핀, 톰 소여의 모험처럼 말이다.
다만, 증기선의 선구자이던 존 피치 같은 사람은 당대에 성공을 못 하고 빈곤에 허덕이다가 자살로 불운한 생을 마감했다. 훗날 디젤 엔진의 발명자도 자살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런 선구자들의 노력을 거쳐서 1910년대에는 잘 알다시피 초대형 증기 여객선인 타이타닉 호가 건조되기에 이르렀다. 전장 269m, 배수량 52310톤짜리다.

오늘날이야 비행기가 있으니 저런 대륙간 장거리 여객선은 필요가 없어졌고 배는 그냥 라이너나 관광 크루즈 위주로 바뀌었다. 물론, 여객 분야 한정으로만 말이다. 국가와 대륙간의 화물 수송은 타 교통수단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대량 수송 가성비 때문에 선박이 여전히 영원무궁토록 본좌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런 무역선 제조사들과 무역선을 조종하는 상선사관들이 없으면 굶어죽고 말라죽는 거 순식간이다.

타이타닉 호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참 원시적이다 싶은 것은.. 먼저 엔진이다. 20여 개가 넘는 대형 보일러에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로 중무장하고 굴뚝도 4개나 달려 있었던 반면, 요즘의 디젤 엔진은.. 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덩치의 주 엔진 1 + 보조 엔진 1기만으로도 타이타닉과 비슷한 덩치의 배를 비슷한 속도로 굴릴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가벼우면서 방한 보온 효과는 탁월한 요즘 첨단 재질의 패딩 점퍼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2200명이 넘는 타이타닉 탑승 인원 중에서 승객이 아닌 직원이 이미 800명을 훌쩍 넘고 거의 900명에 가까웠다는 점도 날 놀라게 한다.
굳이 항해에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지하의 기계실에서 보일러에다 삽으로 열심히 석탄을 퍼 넣던 화부부터가 이미 170여 명이나 됐다. 갤리선 시절의 노꾼보다는 발전한 작업 형태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매우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었다. 거북선도 1척의 정원이 150명가량이었는데 그 중 무려 과반인 8~90명은 노꾼이었다고 하니...;;

또한 거기 안의 상점에서 일한다거나 승객간 우편· 통신을 담당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타이타닉 배가 자기 직장이고 월급을 받는 터전이었던 사람들의 수가 그만치 됐다. 배 안에서 일종의 '작은 사회'를 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은 비행기에 법적으로 승객 50명당 승무원이 겨우 1명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비행기나 열차를 조종하는 인력도 1인 승무를 하네 마네 싸우는 중인 세상이다. 이걸 감안하면 요즘은 얼마나 사람 수가 줄었는지 알 수 있다.
까놓고 말해 타이타닉 호에 탔던 승객들은 요즘 식으로 치면 보잉 747이나 A380급 여객기 세 대면 다 실어나를 수 있다.
옛날 배의 덩치가 너무 작았던 것에 한번 놀랐고, 덩치가 커졌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하긴, 전투기· 폭격기, 미사일 같은 게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 딱 2차 세계 대전 타이밍 때는 전함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게 돌아다니긴 했다. 요즘은 항공모함이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큰 배를 굴릴 필요가 없다.

3. 해군과 해전의 역사

기왕 배의 역사 얘기가 나왔으니 해전의 역사 얘기도 조금만 더 하자면..
선원 생활도 고되고 군생활도 고된데 둘을 합쳐 놓은 해군 수병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악의 기피 직종이었다. 하지만 내륙국이 아닌 이상 바다를 장악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으니 어떤 나라든 해군을 육성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섬나라의 경우 그 필요성이 더욱 컸다.

해군은 배가 전장 겸 내무반이니 육군 같은 행군이나 숙영, 각개전투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함(배를 버리고 바다로..) 같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당연한 말이지만 수영을 잘해야 한다.
먼 옛날, 로마 제국이 있던 시절에는 인간의 무기들이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큰 배를 단번에 부숴 버릴 수 없었다. 그나마 배가 온통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니 불화살 같은 걸로 화재를 일으키는 것이나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껏해야 배와 배끼리 부딪치거나 다리를 놓고 서로 근접해서 냉병기로 육박전을 벌이는 식으로 싸웠다. 그리고 배 자체는 그냥 나포와 노획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화약이 발명되고, 파편을 날리는 폭탄 대신 볼링공 같은 탄환을 날려서 배를 부수는 재래식 대포가 등장했으며, 이것이 함포가 되어서 성능이 갈수록 향상되었다. 배가 크고 무거워야만 더 크고 반동이 강한 함포를 얹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승무원을 싣고 더 멀리까지 오랫동안 항해할 수 있다.

그러니 제국주의 군국주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20세기 중반까지는 군함의 크기가 갈수록 커졌다. 그러다가 앞서 얘기했듯이 군용기와 미사일의 등장으로 인해 군함의 대형화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군함을 잡는 용도로 같은 군함의 함포만 있는 게 아니라 기뢰, 어뢰, 잠수함 같은 기묘한 물건도 등장했으며, 그런 것들을 퇴치하여 기함을 호위하는 용도로 구축함 같은 배가 또 따로 등장하게 되었다.

바다 위의 비행장인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 같은 전쟁이 또 터진다면 모를까 세계 경찰 우주 방어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면 또 쓸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유지비가 정말 억 소리 나게, 작살나게 깨진다는 것 하나는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2차 세계 대전이 컴퓨터, 핵무기, 미사일이 발명되기 (직)전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래도 한 박자 이전 세대의 전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4. 운하

육상 교통수단에 교량이 있다면, 선박에는 reverse 버전인 운하가 있다.
자동차나 열차가 물 위를 최단거리로 가로질러서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교량을 건설하듯, 반대로 배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최단거리 횡단 가능하도록 육지에다 운하라는 수로를 건설하니 말이다.
선박은 평소에는 끝없이 펼쳐진 2차원 평면에 가까운 망망대해 위를 다니지만, 좁은 운하를 통과하는 중에는 앞뒤로밖에 진행할 수 없는 열차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 흥미로운 면모이다.

운하는 총기가 화살을 도태시키듯이 기선이 범선을 확인사살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자체 동력을 가진 기선은 어느 지형에서나 고정된 속도가 나오니 정시성이 보장되는 반면, 범선은 그런 곳에서 제대로 주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이라는 게 주변이 온통 차가운 바닷물이어서 공기와의 온도 차이가 생겨야만 발생하는데, 온통 땅으로 둘러싸인 좁은 물길에 불과한 운하에서는 그런 바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하로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사이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가 있다. 파나마 운하가 수에즈보다 더 나중에 만들어졌으며 건설 난이도도 훨씬 더 높았다.

수에즈 운하는 그냥 배가 길을 따라 설렁설렁 지나가면 되고 폭도 넉넉하지만, 파나마 운하는 놀랍게도 양 말단의 해수면 높이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물을 채웠다 빼기를 반복하는 여러 도크를 단계적으로 거치면서 고도를 올려야 한다. 철도로 치면 이건 완전 인클라인 내지 스위치백 방식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이런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파나마 운하는 하루에 최대 30여 척 남짓한 배밖에 통과할 수 없다.

비행기에 협동체와 광동체가 있고 철도 궤간에도 광궤· 협궤가 있듯, 운하에는 응당 폭의 제한이 존재한다. 열악한 환경에 만들어진 파나마는 수에즈만치 큰 배는 통과할 수 없다. 그리고 아까 언급한 단계별 진행 특성으로 인해, 폭뿐만 아니라 길이의 한계도 존재한다. 2010년대에는 선박 통행 트래픽 증가와 대형화에 대응하기 위해 두 운하 모두 확장 공사도 거쳤다고 한다.

5. 배의 닻

좀 무식한 얘기이다만 본인은 선박이나 해운 쪽으로는 문외한이다 보니 오랫동안 닻과 돛의 차이도 잘 모르고 있었다. 용도가 서로 완전히 다른 부품이구만.. 돛이야 배의 동력원이 엔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필요 없어졌지만 닻은 자동차로 치면 정말 주차 브레이크 같은 필수품이다.

둥실둥실 물에 떠 있는 배에다가 자동차처럼 바퀴에 굄목을 설치하거나, 접지 마찰을 이용한 브레이크를 장착할 수는 없다. 그러니 배의 중량을 증가시키는 걸 감수하고라도 무거운 갈고리 같은 걸 따로 달았다가 바닥에 내려서 그걸로 배를 정박시켜야 한다. 왕창 큰 배의 경우, 닻만 해도 수 톤~10수 톤에 달하는 육중한 쇳덩어리가 장착된다.

배는 브레이크가 없는 관계로 어지간해서는 그냥 관성과 자연 감속에만 의존해서 정지시키지만.. 만약 불가피하게 급제동을 해야 하면 엔진을 역추진하거나 이 닻을 내려뜨린다(비상투묘). 대형 여객기가 착륙 직후에 여전히 시속 200이 넘게 속도가 붙어 있는데.. 랜딩기어의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엔진 역추진과 플랩· 스포일러까지 총동원해서 필사적으로 감속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다만, 무리하게 투묘했다가는 배가 서는 게 아니라 반대로 랜딩기어를 붙잡고 있던 부품이 저항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고 떨어져나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집채만 한 배를 고정시켜 준다는 우직한 심상으로 인해 배나 해군의 상징에는 닻이 꼭 그려져 있다.
성경에서는 사도행전 27장, 바울이 배 타고 로마로 가는 장면에서 배의 닻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행전 27장은 나 같은 육지 사람이 읽기만 해도 뭔가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하물며 그쪽 업계 종사자 중에 크리스천이신 분이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할 것 같다.

여기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 '소리 내다'가 아니요, '건전한'도 아니요, '수심을 측정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sound가 나오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줄자 같은 걸 내려뜨려서 수심을 측정했겠지만, 동사가 sound이다 보니 그 시절에 마치 초음파 같은 걸 쏘기라도 해서 깊이를 측정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 성경에서 또 닻이 나오는 곳은 그 유명한 히 6: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anchor of the soul)이다. 인생이라는 항해 중에 둥실둥실 불안하게 이리 휩쓸리고 저리 끌려가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반석, rock-solid함을 나타낼 때 닻이라는 물건을 동원해서 비유한 게 인상적이다. 히브리서는 저자에 대해서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배 타고 전도 여행 많이 다닌 바울이 썼다는 것이 유력한데, 이 점을 생각하면 표현에 더욱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12 08:32 2017/06/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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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나 비행기, 열차 같은 모든 교통수단들은 진행 방향이 다른 교통수단과 한 지점에서 교차할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신호 시설의 통제를 받으며 움직여야 한다. 비행기는 이륙이야 그냥 관제탑으로부터 허가가 날 때까지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지만 착륙은.. 신호 대기를 할 수 없고 상시 선회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트래픽 대비 활주로가 부족한 혼잡한 공항에 착륙하는 게 다소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동일 경로의 공유와 교차가 같은 종류의 교통수단끼리만 발생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옛날에 이종간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 교통수단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교통수단들간의 이색적인 교차 양상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사람 vs 자동차

이건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가장 먼저 생긴 갈등(?)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일단 횡단보도가 만들어졌으며, 아주 혼잡한 곳에서는 사람과 자동차를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서 육교와 지하도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높이의 변화는 노약자, 혹은 짐이 많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악재이기 때문에, 귀차니즘에 충실한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들과 차들이 터져 나가는 교차로에서는 그냥 단순무식하게 일정 시간 주기로 빨간불과 파란불을 반복하면 되지만 한적한 시간과 장소에서는 점멸 신호 내지 주문형(보행자가 버튼을 눌러서 요청을 했을 때에만 잠시 후 파란불이 되는) 신호등이 운용되기도 한다.

2. 육상 vs 철도

육상 교통수단들 중 진행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놈은 단연 철도 차량이다. 차량이 무겁고 수송량이 압도적이며, 무엇보다도 너무 둔하고 지면 마찰도 작아서 가감속을 날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얘가 일단 속도가 붙어 버렸으면 아무도 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의 차와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인 교통사고가 나면 무단횡단에 굉장히 관대하고 오로지 운전자에게만 과실을 뒤집어 씌우는 관행이 심하지만, 그래도 철길 주변 보행이나 철길 건널목 교통사고에서까지 보행자에게 무한 관대하지는 않다.

철길 건널목 사고가 나면 철도 당국은 여러 모로 골치아파진다. 2002년 5월에 어느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에서 발생했던 3연속 건널목 사고는 요런 사고의 아주 극단적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꾸준히 전국의 수백, 수천 곳에 달하는 건널목들을 야금야금 모조리 정책적으로 입체화해 왔다. "열차를 급정거시킬 수 없다면 애초에 급정거해야 할 상황 자체를 봉쇄하자"라는 발상에 따른 것이다. 이런 조치 덕분에 오늘날 철도 건널목 사고는 3, 4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이 아닌 서울에도 일부 건널목이 있다. 물론 무려 3복선이 된 경부선이나 2복선짜리 경인선 구간에 건널목이 있는 건 아니며, 그 이북의 경의선과 경원선, 특히 경원선 구간에 한정되어 있다.

먼저 서빙고 역에서 한남 역 방면으로 400미터쯤 전방 반포대교 근처를 보면 건널목이 있다(서울 용산구 서빙고로62길). 새마을· 무궁화 같은 열차도 아니고 전동차가 지상에서 차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널목을 통과해 간다니 참 상상이 안 된다.
서빙고 역 인근에는 자동차 도로를 예각으로 가로질러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단선 철도도 이따금씩 쓰이는가 보다. 이거 유명한 사진이다. 차단기도 없이 이거 정말 안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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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회기 역에서 외대앞 방면으로 얼마 안 간 곳에도 건널목이 있으며(서울 동대문구 휘경로12길), 이웃 외대앞 역은 역 출입구에 대놓고 선로 횡단 건널목이 있다. 육교와 지하도로 대체 경로도 있으니 코레일에서는 여기를 못 없애서 난리이나,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 건널목을 완전히 못 없앤 상태이다.

심지어 육교에다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까지 다 놔 줘도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한다. 아무리 최첨단 액세서리 기능들로 무장한 안경이나 휠체어가 있어도, 그런 게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눈과 건강한 다리보다 나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런가 보다.
경원선 구간은 일반열차가 다니기도 하고 게다가 이렇게 건널목까지 있으니 전동차(운행 계통상으로는 경의중앙선)의 배차간격을 지금보다 더 줄이는 건 도저히 무리일 것이다.

경원선보다 상태가 더 안습한 건널목은 바로 서울 역 이북 경의선 구간에 있는 '서소문 건널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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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수색 기지에서 서울· 용산 역으로 입출고하는 KTX 포함 모든 일반열차들이 이 선로를 지나기 때문에 그야말로 크리티컬 중의 크리티컬이다. 그야말로 몇 분이 멀다 하고 차단기가 내려온다. 애초에 경의선 서울-신촌 통근열차/전동차가 1시간에 1대꼴밖에 못 다니고 지금도 경의중앙선의 지선으로 전락한 이유도 이런 열차들의 트래픽 때문이다.

그러니 이 건널목으로 정상적인 차량 통행은 곤란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완전히 틀어막고 건널목을 없애기에는 지상의 자동차 트래픽도 무시 못 하며(밤에는 열차 운행도 뜸해지거나 중단되니), 이 건널목은 입체화를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로 위로는 서소문 고가차도가 있고, 지하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기 때문이다(시청-충정로 사이. 서울 도시 구간에는 2호선이 별로 깊지도 않음). 여러 모로 진퇴양난이다.

3. 육상 vs 배

배는 물 위를 다니는 교통수단이며, 자동차는 수륙양용이 아닌 이상 다리가 놓여 있어야 물 위를 건널 수 있다. 그러니 자동차와 선박이 교차 가능한 상황이란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바로 다리가 도개교(bascule, 跳開橋) 형태인 것이다. 이게 철도로 치면 차단기가 내려오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하다.

요즘은 건축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애초에 다리를 지을 때 어지간히 큰 선박도 아래로 지나갈 수 있게 왕창 높고 크고 기둥 간격도 넓게 만들곤 한다. 선박의 통과를 위해 다리를 통째로 들어올리게 되면 그 동안 자동차들의 통행이 막히는 큰 불편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요즘은 길거리에 자동차들이 좀 많나..;; 그러니 도개교는 노면 전차만큼이나 좀 과거의 유물이고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돼 있다.
우리나라에는 도개교가 전국을 통틀어 딱 한 군데 있다. 바로 부산의 영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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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도개교 형태로 오리지널이 완공됐다.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항구 도시로서 그 시절부터 대도시였으며, 나룻배만으로 영도와 본토 사이를 오가기에는 트래픽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때엔 선박의 트래픽도 여전히 만만찮은 수준이어서 리즈 시절엔 다리 도개를 하루에 무려 7번이나 했다고 한다. 매회 도개 시간은 약 20분.

이렇게 자동차와 선박 사이의 평면교차가 이뤄졌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영도대교의 도개는 15분씩 하루 2회로 줄었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인 1966년 9월에는 다리 아래로 상수도관을 매달면서 도개가 중단되어 버렸다. 노면 전차(1968) 내지 증기 기관차(1967)와 비슷한 시기에 도개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게 흥미롭다.
뭐, 도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다리를 근 60년 가까이 잘 쓰면서 지냈는데.. 마침 1994년 가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터졌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혹시 성수대교 시즌 2가 벌어질 여지는 없는지 전국의 유명 교량들을 부랴부랴 긴급 점검했다. 이때 서울에서는 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당산철교가 시범 케이스로 제대로 걸렸다. 그야말로 "성수대교가 안 무너졌으면 얘가 무너졌을 것이다. 달리던 지하철이 다리와 함께 나란히 강으로 추락해서 초특급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급의 막장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산철교는 전면 철거 후 새로 만들어졌는데..

부산에서는 지은 지 너무 오래 된 영도대교가 '대대적인 긴급 보수, 혹은 아예 철거 후 재시공 필요' 판정을 받았다. 간이역 건물만큼이나 역사적인 가치가 크고 안전을 위해 여러 번 땜빵도 했지만, 넘쳐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고 근본적인 안전이라는 토끼까지 둘 다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지금 다리는 철거해 버리고 다리를 더 큰 규모로 다시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됐다. 그래도 새 다리는 오리지널 영도대교와 최대한 같은 외형으로 만들고, 먼 옛날에 봉인되어 버렸던 도개 기능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다시 부활시켰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영도대교는 지난 2013년 11월에 개통했다. 하루 한 번(오후 2시) 다리를 15분 동안 들어올린다.
그러고 보니 민방위 대피 훈련도 매달 15일의 이 시간대에 20분 동안 진행한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건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서 벌건 대낮에 하는 게 아무래도 운전자들에게 민폐가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4. 육상+철도의 특수한 경우

음, 그러고 보니 전라남도 무안과 영암 사이에는 호남선의 지선인 대불선이라는 화물 철도가 있다.
얘도 종점 인근에 자동차 도로와 만나는 건널목이 있는데, 여기는 서울처럼 열차나 차량 통행량 자체가 너무 많아서 입체화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건널목에 존재한다.

대불선은 전철화가 돼 있다. 그런데 이게 고성능 전기 기관차를 운용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호재이지만, 화물 수송 능률면에서는 큰 악재이기도 하다.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린 전차선 때문에 크레인으로 컨테이너를 화차에다 선뜻 실을 수가 없으며, 게다가 전차선의 높이보다 더 높게 화물을 쌓은 트레일러가 건널목을 지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교량 때문에 높은 배가 통과할 수 없어 지는 것과 비슷한 양상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여기 건널목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됐고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동식 전차선이 존재한다. 마치 배가 지나가게 다리를 들어올리듯, 아슬아슬 간당간당한 대형 트레일러가 건널목을 통과할 때는 건널목 위를 지나는 전차선을 잠시 치울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치 주문식 횡단보도 신호기처럼.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

5. 육상 vs 비행기

자동차가 비행기의 항로를 침범한다는 건 불가능-_-한 일이고, 그 대신, 과거에 일부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가 비상시에 군용기의 활주로로 쓰이는 경우는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에 신갈, 천안을 비롯해 몇몇 구간이 이상하리만치 곧고 길게 잘 뻗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붙박이 중앙분리대가 없이 페이크 이동식 중앙분리대만 있었다. 그런 곳이 바로 활주로 공용 구간이었다.

옛날에는 물론 자주는 아니었겠지만 공군이 가끔씩 경부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틀어막고 실제로 훈련을 했다.
동아일보 1988년 3월 30일자를 보면, "팀 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하나인 비상 활주로 이착륙 훈련이 30일 경부 고속도로 판교-신갈 구간에서 전투기 F4, F5, F15, F16, 대형 수송기 C123, 폭격기 B52 등이 참가한 가운데 실시됐다." 같은 보도가 있다. TV 뉴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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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지금 8차선, 10차선으로 확장되고 있고 24시간 차들로 터져 나가는 그 경부 고속도로의 일부를 틀어막고, 거기서 전투기 이착륙 훈련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이야 그런 비상 활주로들은 다른 한산한 도로로 옮겨지고 해제되고 있다. 특히 활주로 구간의 중간에 분기점이나 나들목을 만들다 보면 활주로 기능이 자동으로 상실되었다. 성환 활주로에 생긴 북천안 IC처럼 말이다.

그런데, 활주로+고속도로 공용보다 더 엽기적인 사례가 있다.
스페인의 남부에 있는 영국 속령인 '지브롤터'라는 지역에는 지브롤터 국제 공항이 있는데, 얘는 전세계의 공항들 중 유일하게 공항 활주로가 일반 도로와 수직으로 평면교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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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착륙 예정일 때는 마치 철도 건널목처럼 차단기가 내려오며, 운전자들은 눈앞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저렇게 빤히 지켜보게 된다.
활주로에는 이물질 하나 있어서는 안 된다. 일례로 2000년 7월에 발생한 에어프랑스 4590편 콩코드 여객기 추락 사고는 바로 전에 먼저 이륙한 비행기에서 떨어진 부품을 밟는 바람에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 와중에 여객기 활주로가 자동차 도로와 평면교차한다는 건 안전이나 보안 면에서 굉장히 아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활주로를 포함하는 공항 담장 외벽에 철조망이 괜히 쳐진 게 아닌데.;;
캄보디아의 씨엠 립 국제공항은 비행기 착륙 후에 여객 터미널까지 승객이 활주로 바닥을 걸어서 이동하며, 제주 국제공항에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X자 모양으로 평면교차하는 두 활주로를 바꿔 가며 운용하긴 한다. 일본의 나리타 국제공항은 지역 주민들의 알박기 때문에 반쯤 고자처럼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지브롤터 국제 공항은 그런 공항들보다 더 엽기적이다. 비보호 좌회전+평면교차가 있던 옛 88 올림픽 고속도로의 남장수 IC의 공항 버전이라 하겠다.
활주로는 지형과 역사적인 사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만들어졌으며, 딱히 더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01 08:39 2016/08/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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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은 그 형태가 자동차(육상-도로), 열차(육상-철도), 비행기(하늘), 그리고 배(물)라는 네 종류로 크게 나뉜다. 각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다닐 수 있는 형태의 길 위에서만 다닐 수 있는데..
군사 같은 특수한 용도를 목적으로 두 분야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하이브리드 교통수단도 드물게나마 있다.

1. 자동차+열차

도로도 달릴 수 있고 레일 위도 달릴 수 있는 차량이다.
바퀴에다가 밖으로 툭 튀어나온 채 레일에 닿는 특수한 휠캡을 끼우는 방법이 있고, 아예 레일 주행용 대차를 타이어의 전후에 따로 갖추고 있다가 필요할 때 내리는 방법도 있다. 전자는 사람이 휠캡을 착탈하는 게 골치아픈 일이겠으며, 후자는 엔진 구동축 자체가 도로 바퀴용과 철도 바퀴용이 둘 존재해야 하니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더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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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철도 겸용 차량은 군용 내지 선로 시설 보수용 차량으로 일부 존재한다. 우리나라 군용 트럭들은 특수한 휠캡을 끼워서 유사시에 레일 주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은 못 해 봤다.
하긴, 과거에는 굳이 동력 엔진이 없는 인력거나 마차조차도 열차 버전이 없지는 않았다. 오늘날도 관광· 레저용으로 레일바이크가 있고 말이다.

2. 열차+열차

사실은 철도는 길에 대한 제약이 가장 심하기 때문에 도로가 아니라 같은 철도끼리라 해도 궤간이 다르면 차량이 못 다닌다. 우리나라야 육로로 인접하는 나라가 사실상 없는 지형에다가 표준궤 단일 궤간이 잘 정착하여 궤간 혼란이 존재하지 않지만, 당장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만 해도 표준궤가 아닌 광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한 선로에다가 궤간이 다른 궤조를 동시에 여럿 설치하는 것이다. 전차선이 아니라 협궤/광궤용 제3궤조가 생기는 셈이다. 이건 이것대로 몹시 힘든 일이며, 선로가 분기라도 하는 곳에서는 작업 난이도가 답이 없는 수준으로 치솟는 걸 감안해야 한다.

궤간 문제를 선로가 아닌 차량을 바꿔서 해결하는 방법은 가변궤간 대차를 설치하는 것이다. 틸팅열차가 대차 위의 객실의 기울기를 조절해서 원심력을 상쇄한다면, 가변궤간 대차는 양 바퀴 사이의 간격을 궤간 변경 구간 사이에서 조정한다.
튼튼하게 꽉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부품의 유격이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가변궤간 대차는 일반적인 고정형 대차보다 수명이 짧고, 정비불량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이것도 마치 앞의 도로+철도 겸용 차량처럼 그냥 A궤간용 바퀴와 B궤간용 바퀴를 둘 다 들고 다니면서 필요한 것을 들었다 놓았다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둘 다 들고 다니기엔 철도 차량의 대차 부품들은 너무 무겁다는 게 흠일 것이다. 일반적인 화차나 객차를 다 그렇게 만들기에는 경제적이지 못하다.

3. 자동차+비행기

사실, 자동차와 비행기는 한 물건에 다 구겨넣기에는 엔진 구조가 서로 너무 다르고 차체/기체의 외형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이런 이유로 인해 flying car 같은 물건은 SF 창작물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산물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엔진 출력이나 차의 덩치, 연비 같은 실용적인 제약이 없다고 치면.. 고정익기와 회전익기 중 어떤 형태가 자동차와의 융합에 더 어울리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정익기 겸용 자동차가 있다면 미국처럼 땅 넓은 데서 원래부터 자가용 비행기를 굴리고 살던 부자들이 아주 좋아할 것이다. 한 기계만으로 하늘과 땅에서 모두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량은 도로를 달릴 때는 날개를 잘 접어 두는 기능이 있어야 할 것이고 완전한 고정익 비행기처럼 연료를 날개 안에다 집어넣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착륙을 위해서는 온전한 형태의 활주로가 필요하며 타이어 역시 도로 주행뿐만 아니라 랜딩기어 역할도 할 수 있게 아주 튼튼한 고가의 제품을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비행이라는 게.. 단순히 보조용을 더 원한다면.. 다시 말해 차가 꽉 막히고 있을 때 정체 구간이나 사고 지점만 폴짝 뛰어 넘어갈 수 있고 주차장에서도 옆 차를 밀 필요 없이 원하는 지점에 쏙 드나들 수 있는 걸 원한다면.. 헬리콥터 같은 회전익기 형태의 비행 겸용 차량이 더 유용할 것이다. 고정익기는 뜨고 내리기 위해 활주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역할은 할 수 없다.

아니면 아예 자동차용 제트팩이라도? =_=;;
평소에는 제트 가스를 후방으로 분출해서 가속력을 얻는 데 쓰지만 그걸 아래로 분출하면 차를 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수한 용도로 쓰이는 초음속 자동차 같은 건 조금만 개조하면 비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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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행기+비행기

비행기 중에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고정익기의 프로펠러로도 쓸 수 있고, 회전익기의 로터처럼도 쓸 수 있게 한 '틸트로터' 형태의 하이브리드가 있다. 바람개비가 향하는 각도를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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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헬리콥터처럼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면서도 헬리콥터보다 더 많은 중량을 더 빠르게 수송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어렵고 전반적인 가성비는 어느 한쪽에 특화된 비행기보다 열악하다는 단점도 있어서 널리 쓰이지는 않고 있다.

5. 자동차+배

다음으로 배 이야기를 해 보자.
자동차와 선박 사이의 교배는 '수륙양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한 개념이다. 물론 십중팔구 군용차 형태로 말이다. (1) 물에 뜨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방수 처리가 되기 때문에 차체의 대부분이 물에 잠긴 상태에서도 운행 가능한 차, 아니면 아예 (2) 물에서도 뜬 채로 달릴 수 있는 차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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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가 민수용 자가용으로 양산되면 일단 낚시꾼들이 무진장 좋아하겠다. 저 차의 이름은 Python이라고 한다. 전산업계에서는 '파이썬'이라고 명칭이 통일되다시피했는데, 다른 업계에서는 '톤', '손' 등 여러 표기가 혼재하는 듯.)

6. 열차+배/비행기

철도 차량은 그 배타성으로 인해 육지가 아닌 다른 교통수단과의 하이브리드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배는 제끼고 랜딩기어가 철도 차량 형태인 비행기가 있어서 활주로가 철길 형태인 상황만을 한번 가정해 보자.

쇠는 고무보다는 착륙 충격과 마찰열에 더 강하겠지만, 그래도 일반 철길도 매일 유지보수를 해야 하는 판에 레일 활주로가 maintanance-free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활주로 이탈 사고를 크게 예방해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유리한 게 없다. 오히려 쇠로 만들어진 바퀴와 대차는 아무래도 중량면에서 불리할 것이고 착륙 후 제동을 거는 데도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음, 그나저나 하늘을 날 수 있는 열차라니 은하철도 999 생각도 나고 철덕으로서 이색적인 느낌이 든다.

7. 비행기+배

사실, 20세기 이래로 하이브리드가 가장 잘 발달한 조합은 비행기와 배끼리이다.
지금과 같은 잘 닦인 공항과 활주로가 없던 시절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강, 호수, 바다에서 쉽게 뜨고 내릴 수 있는 비행기가 있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에는 엔진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관계로, 장거리 비행기는 비행 중에 엔진이 퍼져서 망망대해로 떨어질 위험이 높았다. 그러니 이걸 감안해서라도 물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었다.

먼저, 다리에 바퀴 대신 뗏목이나 스키처럼 생긴 플로트가 달려서 물에 뜰 수 있는 자그마한 수상기(floatplane)라는 게 있다.
그리고 이것보다는 규모가 크고, 동체 자체가 하부가 둥그렇게 생겨서 물에 뜰 수 있는 비행정(flying boat)이 있다.
A380이나 심지어 An-225보다도 더 커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비행기로 간주되는 휴즈 H-4 허큘리스도 비행정이다. (참고로 '휴즈'의 철자가 Hughes인데.. gh는 알다시피 영어에서 발음이 가장 기괴하게 다양한 걸로 악명 높은 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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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행기 기술이 발달하고 육지에도 공항과 활주로 시설이 구축되면서 배의 기능을 겸하는 비행기는 인기를 잃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수상기든 비행정이든, 물에 뜨는 데 쓰이는 장비들이 일단 기체가 하늘로 뜬 뒤부터는 항공역학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무게만 차지하는 잉여가 되어 비행 가성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물에 착륙(응? 륙?)하면 활주로나 랜딩기어 타이어의 정비는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착수 충격도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이로 인한 기체의 정비가 여전히 불가피했다. 바닷물이라면 염분 부식 문제도 있고 말이다.

오히려 비행 원리가 적용되어 수면을 수~수십m 남짓 떠서 매우 빠르게 달리는 선박으로는 호버크래프트나 위그선 같은 부류가 있다.
고정익기는 "공기를 거슬러 빨리 달린다 → 날개에 양력이 생긴다"의 순인데 이런 선박의 원리를 설명할 때는 "뜬다 → 물의 저항이 없어서 빨리 달린다"로 순서가 바뀌는 것 같다.
성능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조종을 위해 선박과 항공기 면허가 모두 필요하고 안전 같은 문제가 있어서 이쪽 역시 생각만치 실용화는 못 돼 있다.

* 교통수단간의 이종교배 하나만 생각했는데 글 쓸 것,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고 재미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6 08:25 2015/02/1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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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인 자동차

잘 알다시피 핸들 조작을 통해 앞바퀴의 진행 방향을 좌우로 꺾을 수 있다. 앞바퀴의 조향은 직관적이며 조향 중에 전방만 잘 응시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모퉁이에서 너무 서둘러 조향을 시작하는 바람에 회전 방향의 안쪽의 장애물과 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날 가능성을 줄인다는 뜻. 하지만 제일 전방에 있는 바퀴가 돌기 때문에 조향을 위한 회전 반경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방향이 꺾인 앞바퀴는 회전 중에 좌우의 바퀴가 서로 다른 속도로 돌게 된다. 회전반경 안쪽의 바퀴가 더 천천히 돌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륜구동이라면 회전 중에 이런 것까지 감안해서 좌우의 바퀴에 엔진의 동력이 서로 다른 비율로 전달돼야 한다는 점을 혹시 생각해 보셨는지? 자동차 파워트레인의 차동기어가 하는 일이 이것이다.

2. 지게차

좁은 공장 안에서 작업하는 것까지 염두에 둔 이런 차량은 회전 반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바퀴뿐만 아니라 뒷바퀴도 자유자재로 조향 가능하다. 평소에 도로를 직진으로 주행할 때도 조향은 뒷바퀴로 하는 편이라고 한다.

3. 탱크 같은 무한궤도 차량

얘는 모든 바퀴가 무한궤도에 일렬로 매여 있기 때문에 특정 바퀴만 방향을 틀 수가 없다. 그럼 조향을 어떻게 할까?
의외로 간단하다. 왼쪽 궤도와 오른쪽 궤도의 회전 속도만 인위적으로 다르게 하면 된다. 바퀴가 마치 지네처럼 앞, 중간, 뒤 등에 온통 달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차량의 중앙을 축으로 삼고 제자리에서 차체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조차 가능할 정도이다. 즉, 탱크는 조향 능력에 관한 한은 지게차에 필적할 정도로 탁월하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4. 철도 차량

깔끔하게 '노답'이다. 철도 차량은 운전대에 핸들에 대응하는 기기가 없으며, 오로지 전진 아니면 후진만 가능할 뿐 스스로 조향을 전혀 할 수 없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선로 분기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해 줘야 한다.

5. 비행기

비행기는 날고 있을 때는 날개의 배치를 바꿈으로써 공기의 흐름을 바꿔서 좌우 정도가 아니라 상하로도 기수의 진행 방향을 조정한다. 양력을 얻는 주날개뿐만 아니라 수직 꼬리날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비행기의 랜딩기어 바퀴는 자동차 바퀴처럼 조향이 가능하다. 옛날 비행기는 뒷바퀴를 조향하는 형태였지만 요즘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앞바퀴를 쓰는 게 추세라고 한다.

대형 여객기는 복잡한 여객 터미널에서 활주로로 이동할 때 견인차의 도움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바퀴는 어떤 것이든 방향 전환이 가능하긴 해야 한다.
물론 헬리콥터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물건이니 지상에서의 조향은 전혀 필요나 의미가 없다.

6. 선박

선박의 추진력을 책임지는 선미 부분의 스크루를 보면,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방향키라고 불리는 칸막이 같은 게 있다. 조타기를 돌리면 바로 그 칸막이의 각도가 바뀌며, 스크루의 회전에 의해 밀려난 물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이로써 배의 진행 방향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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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배도 개념적으로 뒷바퀴를 조향하는 셈이다. 오늘날의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배를 항구에다 사고 없이 제대로 정박시키는 것은 '도선사'라는 별도의 전문직을 필요로 할 정도로 대단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로 치면 '발렛 파킹'이다.

한편, 옛날의 외륜선은 그럼 조향을 어떻게 했는지가 좀 궁금해진다. 걔네들도 바퀴 바로 뒤에 물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장치가 있었나? 아니면 외륜 자체를 조향하는 장치가 있었는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는 일반적인 동그란 핸들이 달려 있다.
조향 장치가 없는 철도 차량은 가속과 감속을 시키는 레버가 운전의 상징이다.
(자동차만 핸들의 중심이 유난히 두터운 건.. 다들 에어백이 달려 있어서 그런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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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3차원 공간을 떠 다니는 물건이다 보니 조이스틱 같은 조종간이 있다.
그리고 배는.. 물레방아처럼 생긴 동그란 고리인데 고리의 밖에도 일정 간격으로 손잡이가 달린 그 전형적인 조타기가 아무래도 상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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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소속 국가가 좌측/우측 중 어느 방향 통행을 표준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운전대의 위치가 달라진다.
그러나 비행기는 승객은 진행 방향 기준 무조건 왼쪽으로 탑승하고, 화물은 오른쪽으로 탑승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전세계 공통 관행이다. 그러니 여객기에 승객용 탑승교가 연결된 사진을 찾아 보면 10이면 10 모두 왼쪽에 붙어 있다.
철도는 애초에 조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대 방향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고, 선박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4/10/29 08:31 2014/10/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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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교통수단의 동력 메커니즘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듯, 자동차는 내연기관으로 피스톤을 움직이고 그 힘으로 바퀴를 굴린다. 차체는 지면과의 구름 마찰력을 이용해서 나아간다. 엔진이 차체의 하중(과 그로 인한 정지 마찰력)을 직접 상대하는 부담을 덜려면 변속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이 모두 쓰인다.

비행기는 제트엔진으로 움직인다. 연료를 공기와 혼합시킨 후 압축· 폭발시키고 내뿜어서 그 반동으로 나아간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가스 폭발 사고 하나만 나도 주변이 엄청난 파괴력에 얼마나 박살이 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힘을 제어하여 자동차와 비행기를 굴리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 로켓은 아래로 내뿜어서 그 추력 자체로 위로 뜨는 반면, 여타 항공기는 뒤로 내뿜어서 전진만 하고 하늘로 뜨는 건 날개의 양력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항공기의 엔진은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차 엔진보다 연료 소모가 많고 후폭풍과 소음도 막대하다. 하지만 결국 엔진이 밀어내는 건 공기일 뿐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엔진은 출력만 높으면 되지 자동차와는 달리 특별히 높은 토크나 동력비 변환 같은 걸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륙할 때가 비행기에 특별히 힘이 많이 필요하며 순항 중일 때보다 연료가 훨씬 더 많이 소모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릴 때 파일럿이 무슨 1단, 2단 변속을 한다거나 비행기 엔진음이 단계별로 오르내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

항공기의 엔진에 경유-중유 같은 디젤 연료가 쓰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공유는 휘발유와 등유 사이의 등급에 속하며, 액체 연료 로켓에 들어가는 연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단순히 뭔가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연료를 폭발시킨 배기가스 자체를 내뿜어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만은 여타 교통수단과는 달리 '전기 동력화'를 전혀 할 수 없다. (배는 전력 공급 문제 때문에 기름으로 달리지만, 그래도 아예 원자로를 내장하고 전기로 움직이는 원자력 잠수함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배가 나아가는 원리를 자동차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좀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무거운 바닷물 속에서 거대한 스크루를 회전시켜서 추진력을 만들려면 배의 엔진에는 역시 높은 회전수보다는 낮은 회전수에 높은 토크가 필요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는 디젤 엔진이 매우 적합하다. 유원지 가서 보트에서 노를 젓거나 페달 밟아서 오리배라도 몰아 본 분은 아시겠지만, 물에서 배를 움직이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러니 배의 엔진은 자동차 엔진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배에 철도처럼 디젤-전기 기관이 쓰이기도 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배는 자동차와는 역학적 여건이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구름 마찰력에 의해 나아가는 게 아니며(스크루는 바퀴가 아니다!), 엔진에 배의 하중이 그대로 걸리는 형태가 아니다. 무게를 직접 받는다면 최하 수백~수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배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배는 구동축이 수중에 있기 때문에 공기보다야 엔진에 기본적으로 걸리는 부담이 훨씬 더 크겠지만, 갓 출발할 때이든 순항 중일 때이든 그 부담이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동력비 변환 외에 자동차 같은 다이나믹한 변속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배를 탈 일이 있으면 엔진 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좀 더 주의 깊게 들어 봐야겠다.

자동차도 제트 엔진을 장착한 초음속 자동차가 사막에서 시운전을 하는데 배에도 굳이 내연기관이 아니라 제트엔진을 장착해서 가게 할 수도 있다. 어차피 망망대해에서는 뒤로 공기를 뿜으며 후폭풍을 일으켜도 위험할 게 없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이 경우 배는 무척 빨리 움직일 수는 있지만 연비도 크게 감소하는 게 불가피하다. 군함 중에는 경제성과 기동성을 겸비하기 위해 내연기관과 제트 엔진이 모두 달린 배가 있다고 한다.

끝으로, 배가 제동은 어떻게 하겠는지를 생각해 보자. 자동차처럼 브레이크를 밟아서 구동축만 붙잡고 있는다고 서는 게 아니며, 주변은 온통 물뿐인데 땅을 붙잡아서 마찰을 일으켜서 설 수도 없다.
배가 제동을 걸려면 정말 엔진의 동력을 뒤로 향하게 하는 역추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초대형 선박은 그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 때문에 속도를 바꾸기가 대형 트레일러나 열차보다도 훨씬 더 힘들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다음은 관련 추가 잡설들이다.

1. 대형 선박은 자동차처럼 키 꽂고 START만 돌린다고 해서 바로 시동이 걸리는 게 아니며, 시동 걸어서 초기화하는 데만 30분~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무슨 예열 과정이라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엔진이 얼마나 거대하면 컴퓨터 운영체제의 부팅도 아니고 기동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릴 수 있을까?
참고로 디젤 기관차의 시동을 거는 장면은 류 기윤 님 같은 철덕 기관사가 올린 UCC를 통해 본인은 접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 평소에 듣을 수 없는 웽~ 소리가 난다.

2. 전세계의 항구들은 주변 지형과 시설 구조가 완전 제각각이다. 그에 반해 전세계를 누비는 배들은 덩치가 몹시 크고 가감속이 더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배가 항구의 원하는 위치에 제대로 들어오도록 인도하는 일은 매우 몹시 중요하며,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도선사라고 한다.
교통덕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도선사는 교통· 운수업에서는 비행기 조종사에 필적할 정도로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종사자의 수도 적고 고령이며, 그 업종에서는 가히 최강의 연봉을 받는다. 게다가 도선사는 영어로는 조종사와 동일한 파일럿(pilot)이라고 불린다.

3. 군사 목적으로 수륙 양용차라는 게 있다. 그리고 철도계에서는 도로와 레일 위를 동시에 달릴 수 있는 특수 자동차도 있다. 흠, 이들을 통합하면 물과 육지는 전천후로 달릴 수 있는 교통수단이 나올 수 있을 듯.
다만, 비행기와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엔진 구조와 사용 연료가 근본적으로 다르고 날개를 접었다 꺼내는 설비도 필요할 테고... 굳이 무리해서 만든다고 해도 고정익보다는 헬리콥터 같은 회전익 겸용차가 더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자전거를 타고 평지에서 정지 상태에서 처음으로 전진할 때는, 페달을 밟는 것보다 땅을 발로 뒤로 차는 게 힘이 덜 들 때가 있다. 그렇게 한 다음에는 페달 밟는 부담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배가 물을 박차고 나아가는 것에도 이와 비슷한 차원의 역학이 적용되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2/08/18 08:18 2012/08/1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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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도를 한 5년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학창 시절에 지리와 물리 공부를 훨씬 더 열심히 했을 것이고, 지금의 국어 정보학 대신 아예 이 진로를 선택했지 싶다. =_=;; 하지만, 그 경우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태어나진 못했겠지. (한숨)

글을 쓰고 보니 비행기 쪽 얘기가 너무 길어지긴 했다만..

1. 달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돌고 있는 팽이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와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회전하는 모든 물체에는 잘 알다시피 원심력이 발생한다. 팽이는 좌우로 원심력이 발생하고, 돌고 있는 자전거의 바퀴도 상하로(=지면과 수직으로) 원심력이 응당 발생한다. 이는 바퀴 자체나 팽이가 크거나 무거울수록, 그리고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더욱 커지며, 이 상태가 관성에 의해 유지되다 보니, 자전거의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진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바퀴 좌우의 무게 불균형이 상하 원심력으로 극복 가능하고, 균형 보정을 위한 핸들 조작이 가해지는 한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는다.

자전거는 고효율·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인간의 매우 유익한 발명 중의 하나이다.
여담이다만, 꼭 원심력 때문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식으로 의문을 품을 법한 현상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 자전거 페달로는 전진만 가능하고 후진이 되지 않는 이유는?
- 고압선 위에 앉은 새가 감전되지 않는 이유는?
- 종이 그릇으로 물을 끓였는데 종이가 타지 않는 이유는?

2. 철로 만들어진 집채만 한 배가 어떻게 물에 뜰까?

잘 알다시피 그 이름도 유명한 부력(buoyancy) 덕분이다.
물은 공기와는 달리 그렇게 가벼운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물질이나 호락호락 가라앉히지 않는다. 아니, 질량을 가진 모든 유체(fluid)엔 원래 그런 특성이 있다. “너만 중력이 있냐? 나도 있다” 그래서 유체 속의 물체를 밀어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되시겠다.

쇠로 만들어진 배가 물에 뜨는 것은, 그 배의 무게에 해당하는 물의 부피만치 배의 아랫부분이 이미 물에 잠겨서 힘의 평형이 상하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의 밀도도 만만찮으며, 배도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물속에 가려져 있다.

물체 전체의 부피만 한 물의 무게로도 물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야만 물체가 물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을 것이다. 그래서 내부에 공기가 많은 깡통은 물에 뜨지만 찌그러진 깡통은 곧장 가라앉는다. 물이 새기 시작한 배가 침몰하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물이 공기보다 훨씬 더 무겁기 때문.

물에 여러 물질을 녹여서 밀도를 키우면 부력도 응당 증가한다. 그래서 맹물에서는 가라앉을 물체가 소금물에서 뜨며, 최강의 소금 농도를 자랑하는 사해 바닷물은 사람까지 둥둥 띄우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배가 물에 뜨는 것은 어디서나 재연 가능한 과학 법칙일 뿐,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의 기적(마 14:25-26) 같은 현상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

3.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로 뜰 수 있을까?

이건 위의 질문보다 더욱 어렵다. 하긴, 18~19세기엔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니 말이다. 비행기의 발명은 가히 어마어마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A4 용지를 준비해서 직사각형의 네 변 중 짧은(21cm짜리) 변을 이루는 두 꼭짓점을 손으로 잡고 입가로 가져간다. 잡고 있지 않은 맞은편 두 꼭짓점은 아래로 축 늘어질 것이다.
이 상태로 종이의 윗부분(아랫부분 말고)을 힘껏 훅~ 불어서 바람을 만들면...;; 놀랍게도 늘어졌던 종이가 벌떡 위로 펴질 뿐만 아니라 더욱 위로 올라가려 하면서 펄럭거리기까지 할 것이다.

종이의 아랫부분을 훅 불면, 아래로 쳐져 있던 종이가 바람을 직접 받아서 위로 펴지는 게 이해가 되겠다만, 종이가 닿지 않는 윗부분에 바람이 부는데 왜 아래의 종이가 붕 뜨게 될까??

바로 이것이 오늘날 고정익 항공기가 하늘로 뜨는 이론적 배경이라고 한다. 베르누이의 원리라고 불리는데, 비행기의 날개는 폼으로 있는 게 아니라 주변 공기의 흐름을 교묘하게 바꿔 압력차를 만듦으로써, 아까 저 종이와 같은 양력(lift)을 만들어서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존재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뭔가.. 냉장고와 에어컨의 동작 원리만큼이나 신기하다) 날개 표면이 이물질로 인해 조금만 울퉁불퉁해지기만 해도, 생성되는 양력이 크게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공기의 흐름부터 만들어야 이로부터 양력이고 자시고가 생길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 자체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바로 비행기의 엔진이 하는 일이다. 비행기의 엔진은 공기를 뒤로 뿜음으로써 추력을 만들지, 자동차의 엔진처럼 피스톤을 회전시키는 방식은 아니다. 이 메커니즘 때문에 고정익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긴 활주로가 필요하며, 반대로 사뿐히 내려앉기 위해서도 활주로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고급 옵션 중 하나인 ABS 브레이크가 원래는 이런 비행기에서 쓰이던 기술이 자동차에도 덩달아 도입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주변의 컨테이너나 소형 승용차마저 팬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 그래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웽~’하는 엔진 내지 팬 소리보다도 ‘쿠르르릉!’하는 박진감 넘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다.

그럼, 고정익 항공기 말고 다른 비행체는 어떨까?

- 헬리콥터: 가벼운 바람개비를 빠르게 돌려 놓고 손에서 떼면, 이것도 잠시나마 하늘에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고정익 항공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런 부류의 회전익 항공기는 비록 수송력과 경제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초고속 이동을 해야만 양력이 유지된다는 한계에 매여 있지 않다. 그래서 긴 활주로 없이도 손쉽게 이· 착륙을 할 수 있으며, 공중에서 3차원 여섯 방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중에서 정지해 있을 수도 있다.

헬리콥터의 로터는 개념상 날개이지 프로펠러가 아니다. 회전익 항공기라는 개념은 수백 년 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상상을 했을 정도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로터를 회전시킬 수 있는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굉장히 좋은 고성능 엔진이 먼저 발명되어야만 했다.

- 비행선: 물에 적용되는 배, 아니 어찌 보면 잠수함의 원리를 공기에다가 접목-_-한 것이다. 비행체의 밀도가 공기보다도 가벼워지도록 어마어마하게 큰 부피의 수소나 헬륨을 적재한다. 고도 조절은 잠수함이 심도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며, 엔진은 방향과 속도 조절용으로만 쓴다. 매우 저렴한 동력비로 하늘에 조용하고 우아하게 뜰 수가 있고 심지어 엔진이 꺼져도 곧바로 추락하지는 않으나..... 역시 수송력이 열악하고 주행 속도가 매우 느리며(빨라 봤자 100~150km/h대. 자동차급밖에 안 됨), 비행 고도도 오늘날의 항공기보다 훨씬 낮은 데다가 덩치까지 엄청 크다 보니 보안에도 매우 취약한 게 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선은 양력이 아니라 부력-_-으로 뜨기 때문에 날개는 없다.
그런데, 공기보다 밀도를 낮추기 위해 비행선이 얼마나 덩치가 커야 했냐 하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림은 과거의 수소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보잉 747, 그리고 여객선 타이타닉 호) 그래 봤자 저 비행선의 승객 정원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비슷한 겨우 100여 명 안팎으로, 무려 450명 가까이나 탈 수 있는 747의 1/4 수준도 안 됐다.

- 로켓: 다른 항공기들은 하늘로 떠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인 반면, 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하늘 위로 최대한 높이 뜨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다. 유체고 나발이고 없이 오로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만을 이용해서 나아가므로, 날개도 필요 없고 오히려 유체의 저항이 없는 진공이 유리할 것이다. 연료 소모가 매우 심하고 유인 로켓의 승무원은 발사 직후에 어마어마한 압력에 짓눌려야 하지만, 지구의 육중한 중력 가속도를 뚫고 수백 km 이상의 고도로 우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지구 중력의 탈출 속도는 초속 11.2km가량 된다. 지표면에서 이 정도 속도로 공을 던지면 지구로 되돌아오지 않을 경지에 이른다는 뜻. 하지만 이 속도는 음속의 무려 30배를 상회할 뿐만 아니라, 공기와의 저항과 마찰, 그리고 엔진 기술의 한계 때문에 지표면에서 결코 낼 수 없는 속도이다. 성층권에서 겨우 마하 2.x 정도로 비행한 콩코드만 해도 소닉 붐 같은 충격파에, 공기 마찰 때문에 열받아서 수백 도로 벌겋게 달아오른 기체의 유지 보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로켓은 그 탈출 속도보다는 당연히 훨씬 느리게 뜬다. 하지만 발사 후에도 연료 배기 가스를 뿜어서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그 밑천으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 새들-_-: 비행기를 연구하고 설계한 사람들이 새의 날갯짓을 매우 세밀히 관찰하고 벤치마킹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들은 인간이 만든 비행기처럼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이지도 않으며, 헬리콥터처럼 날개에 이물질이 닿는다고 해서 바로 박살이 나지도 않는다. 항공계의 영원한 골칫거리인 조류 충돌(bird strike)이나 연료 폭발 같은 건 더욱 없다. 새의 놀라운 비행 원리에 대해 이런 거야말로 진화의 산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지적 설계와 창조의 증거라고 특히 창조 과학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주장을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11/27 08:26 2011/11/2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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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교통수단은 가벼워야 적은 힘을 들이고도 움직일 수 있고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동하는 방식 자체가 매질과의 마찰에 의존한다는 특성상, 교통수단이 너무 가볍기만 하면 엔진의 힘이 매질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바퀴가 헛돈다거나(skid), 브레이크를 걸어도 바퀴는 멈췄는데 차체는 표면을 미끄러져 나아가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볍고 마찰이 작은 게 진짜 유리하게만 작용하려면 비행기처럼 떠서 공기를 뒤로 밀어내서 달리는 교통수단의 경지에 다다라야 할 것이다. 자기 부상 열차는 레일 위에서 그런 장점을 얻으려는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월 폭설 때 제아무리 호화 고급 외제차라도 구동축이 가벼운 FR 차는 빙판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그대로 뻗었다.
그렇잖아도 마찰이 작은 철도의 경우, 그 고성능 새마을호 전후동력 동차가 중앙선 같은 곳에 투입되지 못하고 그 힘 좋은 8200호대 전기 기관차가 산악에서 애로사항을 겪은 것은 역설적으로 동력부가 기존 디젤 기관차보다 무척 가벼워서였다.
철도 차량은 그 자체가 자동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질량을 자랑하며 자동차 정도하고는 건널목에서 충돌해 봤자 자동차만 개발살이 나고 자기는 아무 탈도 없을 정도로 무겁다. 열차 안에 안전 벨트가 괜히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마찰이 워낙 작아서 바퀴가 헛돌 수가 있는 것이다.

기차는 차체가 워낙 무겁고 안정적이며, 자동차와는 달리 타이어 펑크 걱정이 없다. 승객 체중이 한쪽에 막 실린다고 해서 전복· 탈선된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완전 천하무적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걱정이 다른 교통수단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심지어 이륙 허용 무게와 착륙 허용 무게가 다 정해져 있다.
비행기의 착륙은 랜딩기어와 활주로에 굉장히 큰 열과 충격을 끼치기 때문에, 둘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착륙 가능한 무게는 이륙 가능한 무게보다 더욱 가볍게 설정된다. 비행하면서 연료를 그만큼 써서 비행기를 가볍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비행기는 한번 떠 버린 후에는 내려가기가 더욱 어렵다. 비상 상황이 발생해서 목적지까지 못 가고 회항하더라도, 목적지에 간 것처럼 연료는 다 써 버려야 착륙이 가능하다. 선회 비행을 하면서 시간을 끌든지, 아니면 공중에다 아까운 연료를 버려야 한다(fuel dumping). "기름 섭취는 비행기를 무겁게 할 뿐."
연료는 유체여서 저장 장소의 제약은 덜 받다 보니, 보통 날개 안에다 보관하는 편이다. 전투기들도 그렇고 과거 콩코드 여객기도 그렇고.. 그 대신 날개에 불이 붙으면.. "망했어요.";;;

비행기는 전체 중량뿐만이 아니라 무게 배분도 중요하다.
본인은 2008년에 미국에 가서 그랜드 캐니언 경비행기 관광을 했다. 소형 터보프롭 비행기였는데, 한 줄에 좌석이 3개가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비행기 탑승 전에 관광객들의 체중을 일일이 측정했다. 어지간한 여성의 두 배에 가깝게 무거운 본인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중앙에 자리가 배정됐고, 내 양 옆으로 젊은 아가씨가 한 명씩 앉았다. 여자에게 둘러싸여서 기분이 좋았기보다는... 중앙이다 보니 경치 감상하고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ㅋ

경비행기뿐만이 아니라 747 급의 점보 여객기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는 비록 일일이 승객의 체중을 저렇게 재지는 않더라도, 수하물이라든가 승객의 어지간한 덩치를 감안해서 무게가 균형 있게 배분되도록 좌석이 발권된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팔리지 않은 좌석이라도 승객이 마음대로 자리를 바꿔 앉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항공사마다 기준이 다를 수는 있으나, 개당 한 35~40kg을 넘는 수하물은 추가 요금을 아무리 주더라도 보통은 받아 주지 않는다. 그건 비행기보다는, 수하물이 쿵쿵 떨어지기도 하는 컨베이어 시스템의 안전과, 짐을 수작업으로 수송하는 직원들의 허리 건강-_-을 생각해서이다. ^^;;;

비행기는 높이 날아야 공기 저항이 적으니까 좋긴 한데, 비행기가 나는 방식 자체가 공기를 압축시켜 뒤로 뿜는 것이고, 또 연료를 태우기 위해서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기가 아주 없는 곳에서는 날 수 없다는 역설도 또 지니고 있다. 두 변수의 교점이 성층권 정도 되는 지점인가 보다.

끝으로 배는 어떨까?
배는 부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무거워지면 침몰 위험이 커지지만, 너무 가벼워도 문제이다.
물에 적당히 잠겨 있지 못하고 위로 지나치게 떠 있으면,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져서 전복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스크루가 돌아가는 물속이 너무 얕거나(수압 불충분) 심지어 수면 위로 스크루의 일부가 드러날 정도가 되면, 동력 효율이 크게 떨어져 배가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물선의 경우, 짐이 없이 텅 빈 채로 다닐 때는 바닷물이라도 일부 좀 먹여서 배를 적당히 무겁게 유지되게 하는 물탱크 설비가 있다. 잠수함에만 이런 설비가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진짜 짐을 잔뜩 실을 때가 되면 바닷물을 당연히 방출한다.

그런데 이것이 해양 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왜냐 하면, 빈 화물선은 출발지에서 출발지의 바닷물을 실은 후, 짐을 싣는 도착지에서 출발지의 바닷물을 버리기 때문이다. 그 바닷물엔 소금물뿐만이 아니라 플랑크톤, 작은 미생물 등등 잡다한 것까지 흡입되고 그게 도착지의 바다에 대량 방출된다. 1, 2톤 방출하는 것도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이런 식으로 무역선들이 뒤섞어 놓는 바닷물의 양이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흠좀;;

인간이 지구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직접적으로 들고 다니는 화물뿐만이 아니라, 저런 것도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다. 마치, 원자력 발전소에서 냉각수로 쓰이고 방출되는 더운물이.. 화학적으로 오염된 물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도만으로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듯이 말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로의 냉각을 위해 가히 억소리 나는 양의 찬물을 필요로 하며,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바닷가에 건설된다. 방사능 폐기물만이 side effect는 아닌 셈.)

* 11월 3일, 학생의 날이라고 배운 이 날이 학생 독립 기념일이라고 이름이 바뀌어 있다.
그러고 보니 광주 학생 운동의 발단이 된 곳--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이 싸움이 붙은 곳--이 열차 안이다. 지금은 경전선의 일부 구간이 된 그곳이다.
이제는 더 말이 필요 없다. 역사를 보는 1순위 분야가 철도이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1/03 08:57 2010/11/0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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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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