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을 종합해 보면, 크기, 무게, 폭, 속도를 감안했을 때 차와 보행자가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4등급으로 나뉘는 듯하다.

1. 보행자

말 그대로 뚜벅이부터 시작해서 유모차, 리어카, 휠체어(전동도 포함), 체인과 브레이크가 없는 느린 세발자전거는 보행자에 속한다. 인도로 다닌다.
요구르트 아줌마가 타고 다니는 전동 리어카도 약간 크긴 하지만 전동 휠체어에 준하는 보행자로 볼 수 있겠다.

2. 차

고속 주행 가능한 무동력 자전거, 전동 킥보드, 페달 보조 기능만 하는 일정 출력 이하의 전동 자전거 정도가 해당된다.
이런 것들은 자동차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차'이다. 사람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슬슬 빨라지며 부딪치면 다칠 위험도 커지는 관계로.. 원래는 도로에서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하지만 얘들은 자동차보다는 여전히 훨씬 느리기 때문에 차도에만 다니기에는 좀 애로사항이 있다.

그 대신 이 등급에 속하는 교통수단들은 한강 공원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주행 가능하다.
평범한 스케이트보드나 킥보도는 잘 모르겠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는 잘 타는 사람은 평지에서 정말 자전거에 준할 정도로 빨리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2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차도를 통행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인력거는 속도를 생각하면 1에 속하겠지만 크기와 무게를 생각하면 2에 속할 듯하다.

이륜차가 인도로 주행하거나 운전자가 탑승한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일단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인도나 횡단보도에 별도의 이륜차 주행선이 그어진 경우는 예외) 하지만 이와 반대로 차도를 다녀서는 안 되는 느린 보행자가 차도로 다니는 경우도 있다.

  • 눈이 많이 왔을 때: 길 상태가 차도가 인도보다 더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도는 눈이 쌓였거나 빙판이 됐지만 차도는 그렇지 않음)
  • 전동 휠체어: 안 그래도 바퀴도 작은데 평평한 차도가 인도보다 당장 다니기 더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 짐을 잔뜩 실은 리어카: 혼잡한 인도를 다니기에는 리어카가 차지하는 폭이 너무 커서 행인들에게 끼치는 민폐도 크기 때문이다. 주로 폐품 수집하는 노인분들이 이러시는 것 같다.

3. 준자동차

페달질을 하지 않아도 가속 가능한 전동· 엔진 자전거, 오토바이, 사륜 오토바이(일명 ATV), 소형 전기차, 고속 주행을 할 수 없는 중장비(굴삭기· 지게차), 농기계(경운기, 트랙터..)
여기서부터는 운전자는 면허가, 차량은 등록과 보험이 필요해진다. 인도 주행은 진짜로 절대 금지이며, 자전거 전용 도로에 진입할 수도 없다. 오토바이는 같은 이륜차인 자전거와 달리, 맨 구석 차선에서 차들의 틈새로 다니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옛날에 있었던 삼륜차는 엔진 성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3일 것이고,
말의 경우는 단독으로 말 타고 달리는 건 속도 때문에, 마차를 끄는 건 크기 때문에 역시 3에 속할 것이다.

4. 자동차

이제 최종 단계이다. 고속도로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도 진입하여 고속 주행이 가능한 사륜 이상의 차량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분류를 해 보니 교통수단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며 1과 2, 2와 3, 그리고 3과 4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처지인 물건들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무동력으로 인간의 이동을 보조해 주는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건 무기로 치면 냉병기이고, 항공기에다 비유하면 기구· 비행선이나 글라이더 정도 된다.

자전거는 (1) 둥근 fender에 매끄러운 바퀴가 달렸고 여성분들이 탈 만한 제일 평범한 모델이 있는가 하면 (2) 바퀴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산악용 자전거 비스무리하게 생긴 일명 '유사 MTB'도 있다. 그리고 (3) 바퀴가 아주 가늘고 핸들이 뭔가 산양의 뿔처럼 생긴 경주용 자전거도 있는데, 이것들은 용도와 역할이 제각기 다르다. 똑같이 성인용 자전거라 해서 다 같은 자전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아· 어린이용 자전거는 세벌뿐만 아니라 이륜이지만 보조 바퀴 달렸고 여전히 느린 것도 있다.

21세기 이래로는 못 봤지만, 본인 어렸을 때만 해도 검고 커다란 일명 '쌀집 자전거'에다 초소형 가솔린 엔진을 얹어서 반쯤 스쿠터 내지 오토바이로 개조한 자전거가 가끔 보였다. 글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자그마한 엔진 출력으로 쇠로 된 무거운 자전거의 큰 바퀴를 굴리려면 변속기도 신경 써야 할 텐데 싶다. 옛날에는 영운기 트럭도 뚝딱 개조했는데 자전거를 저 정도 개조쯤이야 못 할 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오토바이 중에는 '스쿠터'라는 물건도 있다. 얘는 여느 오토바이와는 달리 바퀴가 작고 엔진 소리가 유난히 앵앵거리는 편이며, 이륜차이지만 아래에 운전자의 두 발을 한데 모을 공간이 있다는 외형상의 큰 차이가 존재한다.
오토바이나 말의 뒷자리를 일컫는 영어 단어가 pillion이라고 따로 있는 게 흥미롭다. 전투기 후방석도 그렇게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담 1: 간단한 자동차의 역사

(1) 옛날에는 나름 2000~3000cc급의 준대형 승용차로 여겨진 그랜저조차 초기 모델은 타이어의 휠너트가 4개였다. 그러다가 1992년에 나온 뉴 그랜저부터 곧장 5개로 올라갔다.
그랜저보다 더 작은 차종인 쏘나타는 한동안 4개이다가 2004년의 NF 쏘나타부터 5개가 됐다.
그보다 더 작은 준중형급 아반떼는 2006년에 나온 HD 모델부터 5개가 됐다. 그래서 이제 현대차 중에는 액센트 같은 소형차만이 4개가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의 휠너트가 4개에서 5개로 는 동안.. 대형 버스도 나는 타이어의 휠너트가 당연히 8톤 트럭에 준하는 8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0개짜리도 있는 게 케바케인 것 같다.

(2) 옛날, 1980년대 초까지는 겨우 2000cc짜리 차도 6기통으로 만들기도 했다(그라나다). 비록 휘발유 엔진이 실린더 당 최대 배기량이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겨우 그 배기량에 그런 엔진 설계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기통수가 많아서 부드러운 것보다 저출력으로 인한 저연비와 환경 오염 문제가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차를 그런 식으로 만들지 않게 됐다.

(3) 또 무슨 예가 더 있을까? 어지간한 승용차에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하는 게 유행이 되면서, 옛날처럼 자동차 타이어 휠이 가장자리에만 구멍이 숭숭 난 은색 쟁반 같은 모양을 하지 않게 됐다. 그 대신 최소한(보통 휠너트 개수만큼)의 굵직한 스포크(spoke)만 있으며, 안쪽의 반들반들한 디스크 원반이 드러나 보이는 형태가 됐다. 이런 것들이 다 알게 모르게 변한 점이다.

(4) 옛날 자동차들은 자동차의 방향 지시등이 정말 곧이곧대로 주황색(amber; 호박색)이었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들은 켜져 있지 않은 동안은 깜빡이도 전조등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의 흰색인 것이 유행이다. 황색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또한 미국 자동차의 경우, 후방은 깜빡이도 브레이크등과 동일하게 빨간색이고 그 대신 방향 애니메이션 같은 걸로 방향 지시를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5) 옛날 자동차는 바깥 백미러가 지금처럼 운전석 앞 A 필러 근처가 아니라, 아예 엔진룸 앞의 최전방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어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런 디자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운전을 오래 한 어르신들 중에는 백미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시야 확보 측면에서 좋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리고 현대와 미쓰비시가 제휴해서 만들었던 그랜저/데보네어 같은 차종도 일본판은 백미러가 그렇게 배치되어 출시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미러가 어디에 있건, 운전석 자리에서 곧장 각도 조절을 할 수 없다면 참 불편할 것 같다. 특히 조수석 것까지 말이다. 우회전 내지 오른쪽으로 차로를 변경할 때 우측 바깥 백미러의 중요성은 더 말이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일 불편한 건 무식하게 창문이나 문을 열고 유리를 손바닥으로 직접 만져야 하는 타입이고, 조금 발전하면 차 안에서 별도의 레버로 각도 조작이 가능하다.
제일 편리해진 건 운전석의 버튼만으로 조수석의 백미러까지 각도 조절이 가능한 전동형이다. ABS야 경차에도 다 달려 나오는 필수가 됐지만, 전동 백미러는 단순 편의 기능이다 보니 여전히 쏘나타급 중형차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렌트를 해서 몰아 봤던 아반떼에도 그런 기능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담 2: 크고 아름다운 자동차

대형 버스는 여느 승용차와는 특성이 다른 게 생각보다 많다.

  • 자동문 기반인 문 여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승객은 운전사가 열어 놓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지만 차에 제일 먼저 타는 운전사는 그렇지 않다.
  • 조향륜인 앞바퀴가 운전석의 앞이 아니라 뒤쪽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차(수직, 평행)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 엔진 위치의 특성상 핸들이 뉘인 각도가 승용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 그리고 같은 각도로 회전하려면 소형 승용차보다 핸들을 두 배쯤 더 많이 돌려야 한다.

변속

  • 이 바닥은 여전히 수동 변속기가 주류이다. 평지에서는 1단이 아니라 그냥 2단에서 출발한다.
  • 소수의 자동 변속기 모델도 P가 따로 없다. 변속기의 구동축 고정 기능만으로는 그 무거운 차 바퀴를 붙잡아 둘 수 없고 오히려 자기가 파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 대형 디젤 차량의 일상적인 엔진 회전수는 승용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

제동

  • 브레이크액이 아니라 압축 공기로 제동력을 전한다. 일단 제동력 하나는 정말 강한 덕분에 대형차 용도로 적합하다. 매개체가 처음부터 기체이니, 브레이크액이 열받아서 기화하는 vapor lock 현상 걱정도 전무하다.
  • 주차 브레이크도 압축 공기를 사용해서 건다. 얘는 제동을 걸고 있는 동안 공기가 소모되지는 않지만, 제동을 걸었다가 풀 때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푹~ 취익 소리가 난다. 역시 압축 공기로 평소에 문이 열리지 않게 꽉 붙잡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의 자동문을 생각하면 된다.
  • 또한, 이런 차들은 엔진 브레이크에 대한 개념도 승용차와는 좀 다르다. 디젤 엔진은 워낙 고토크+저회전이기 때문에 승용차처럼 무작정 저단으로만 바꾼다고 엔진 브레이크가 강하게 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엔진 rpm도 바퀴를 따라 같이 높아져서 탈이 나기 쉽다. 이런 차들은 배기구를 틀어막는다거나 리타더/제이크 같은 다른 형태의 엔진 브레이크가 쓰인다.

예전에 브레이크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에어 브레이크는 브레이크를 사용할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소모되고 압력이 감소한다. 이 때문에 엔진 힘으로 상시 압축기를 가동해서 무슨 에어컨 냉매도 아닌 공기를 압축해서 탱크에다 비축해 둬야 한다. 압축 공기의 비축량은 냉각수 온도나 배터리 전하량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아주 긴 내리막이 계속돼서 엔진 rpm은 올라갈 일이 없는데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일만 계속해서 생기면 차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물론, 브레이크액 기반인 승용차도 제동력의 '증대'를 위해 엔진 힘을 일부 사용하긴 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무슨 자전거 브레이크 같은 단순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들은 '공기압 배력'이 아니라 반대로 '진공 배력' 방식이며, 별도의 게이지나 공기 탱크 같은 물건까지 필요한 구조는 아니다.

버스의 특성은 대형 트럭과 동일한 것도 일부 있다. 그리고 1종 보통 면허로도 사람이 아니라 짐을 많이 싣는 트럭은 대형 버스만치 긴 무려 11.5톤까지 몰 수 있으며, 그 정도면 트럭은 차축이 하나 더 달려 있다. (국내에 버스가 차축이 2개보다 더 많은 건 2층, 굴절, 에버랜드 셔틀 같은 것밖에 없다.)

뭐, 트럭은 자동문이나 자동 변속기 같은 건 없을 것이고 운전대가 버스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대형 트럭의 운전석에 올라타는 건 반쯤 등산 수준이지 않던가.
대형 버스는 와이퍼가 좌우+수직 형태로 2개인 반면, 대형 트럭은 와이퍼가 승용차와 동일한 수평 형태이지만 2개가 아니라 3개가 달려 있다.
버스는 운전대가 더 낮고 앞유리가 세로로 더 넓기 때문에 와이퍼가 저렇게 비치된 것 같다.

만약에 내가 뭘 잘못해서(...) 운전 면허가 취소돼 버리고 다시 따야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난 그때는 꼭 대형으로 딸 것이다.
6000, 8000cc짜리 초호화 승용차나 스포츠카를 몰면서 시속 200으로 밟는 거.. 참 좋긴 한데,
8000, 10000cc짜리 엔진이 달린 대형 버스도 만만찮게 몰아 보고 싶다.
그리고 대형 트럭이나 트레일러 몰다가 밤에 운전석 뒷좌석에서 자는 건 생각만 해도 꿀잼이어 보인다.

크고 아름다운 기계를 굴리는 건 남자의 로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버스, 트럭, 비행기, 열차, 선박까지 교통수단들을 조금씩 다 몰아 보려면.. 특전사나 공작원 같은 군인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려나..?

Posted by 사무엘

2018/06/01 08:31 2018/06/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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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2 경인 고속도로의 동쪽 연장

우리나라의 서울과 인천 사이에 처음에는 경인선 철도가 건설되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엔 철길의 북쪽에 경인 고속도로가 생겼고, 또 한참 뒤에 1990년대에는 철길의 남쪽으로 제2 경인 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제2 경인은 동쪽이 삼성산을 앞두고 끝나면서 행정구역상 서울을 경유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선의 상징성 때문에 '경인'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제2경인은 오리지널 경인이나 외곽순환처럼...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가 아니라 그냥 수도권의 단거리 도시 고속화도로와 비슷한 위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도로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이 연장되면서 그 위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서쪽은 인천대교와 연결되면서 사실상 공항 고속도로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경인 고속도로의 북쪽으로 공항 고속도로가 따로 지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동쪽은 삼성산과 청계산 아래를 몽땅 터널을 뚫어서 근성으로 돌파한 뒤, 안양과 의왕을 지나 성남의 여수대로까지 연장되었다! 이 민자 구간은 따로 '안양-성남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2017년 9월에 개통했다.

의왕과 성남 사이에는 이 고속도로가 기존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매우 가까이 나란히 달리지만 새 길은 대부분 터널이기 때문에 서로 지상에서 마주볼 수는 없다. 지도를 보면 판교 운종동에서 아주 잠깐 지상으로 나올 뿐이다.
나중에 판교 분기점을 지나지만 지하로 통과하며, 기존 경부 내지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는 없다.
용인-서울 고속도로(171)와도 갈아타는 거 없다. 단지, 종점을 앞두고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와는 갈아타는 연결로가 생기는 듯하다.

이 고속도로는 성남 시청 바로 근처에서 국도 3호선으로 바뀌면서 끝난다. 여기서 한참을 동남쪽으로 진행하면 광주시 초월읍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는 중부 고속도로(35)와 만남과 동시에 광주-원주 고속도로(52)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갈 수 있다.

여기 사이 거리가 20km에 달하니 짧지는 않지만.. 수틀리면 고속도로 110과 52가 한데 만나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인다. 흥미로운 일이다.
철도 분당선이 겨우 분당-서울 전철이 아니라 이제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거대한 순환형 광역전철이 됐듯, 110번 고속도로는 겨우 서울-인천이 아니라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6. 하이패스 차단기, 코레일 개집표기

오늘날 전국의 고속도로 IC들의 하이패스 진입로에 딱히 차단봉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하여 통행료를 상습적으로 안 내고 튀는 악질 운전자 때문에 도로 공사가 골머리를 썩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에 하이패스라는 게 처음 도입됐던 시절에는 진입로에 여느 건물 주차장 입구처럼 차단봉이 있었다. 평소에는 내려가 있다가 차량의 하이패스 단말기가 본부와 통신이 정상 처리됐을 때에만 올라가곤 했다.

그런데 건물 주차장 출입구야 차들이 워낙 느리게 움직이니 그런 식으로 차량 진입을 통제하면 되지만, 고속도로는 그렇게 하기에는 차량이 너무 빠르게 달리는 중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말 악의 없이 기계 오류 때문에 인식이 안 된 건데도 차단봉이 안 올라가면 차가 차단봉과 부딪치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단봉만 부수고 차량 앞부분만 좀 긁히면 차라리 다행인데, 운전자가 당황해서 차단봉을 피하느라 핸들을 옆으로 꺾으면 주변 시설물까지 다 부수는 더 큰 사고로 도지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공사에서 1차로 취한 조치는 부딪치더라도 차량에 상처를 주지 않고, 휠지언정 부서지지 않는 부드러운 훼이크 재질로 차단봉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마치 도로에 색만 칠해진 훼이크 과속방지턱만큼이나 초행 운전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은 여전히 준다. 오동작+회피 사고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관계 당국의 오랜 고민 끝에 하이패스 진출입로에서 차단봉은 모두 철거되고 사라지게 됐다. 설치하는 데도 돈 들고, 철거하는 데도 돈 들고.. 결국 예산 낭비라고 언론에서 까였다. 전국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얌체 운전자를 어떻게 잡아낼지는 따로 생각할 일이고, 일단은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현장 보존, 증거 확보, 과실 비율보다도 당장 차를 갓길로 옮기고 2차 사고를 예방하는 게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듯이 말이다.

하이패스 차단봉 같은 지위와 운명을 지녔던 물건이 과거에 철도계에도 있었다. 바로 고속철 개통과 함께 주요역에 도입했던 지하철 스타일의 자동 개집표기이다.
이것도 나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도입한 것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집어넣은 승차권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걸림 현상이 잦았고, 또 승차권 자체도 항공권 같은 영수증 모양 내지 SMS· 홈티켓 등으로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저런 자동 개집표기가 무의미한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자동 개집표기는 개집표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봉인되거나 아예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이것도 언론에 보도되어 많아 까였었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차단봉과 정말 비슷한 처지로 보이지 않는가?

7. 버스 전용 차선 등~

경부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인해 1990년대 중반에 국내 최초로 버스 전용 차선이 시행된 것으로 유명하다. 난 신탄진 IC 이북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팩트의 전부는 아니다. 평일에는 오산 IC부터이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신탄진 IC부터이다. 그래서 신탄진과 오산 사이에는 파란색 버스 전용 차선이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2017년 7월 말부터는 영동 고속도로도 신갈-여주 사이에 버스 전용 차선이 주말 한정으로 시행되었다. 시행 시간대는 여러 차례 변경을 거친 끝에 현재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남산 터널들의 혼잡 통행료 징수 시간대와 동일하다.

비슷한 시기인 1996년 초에는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도 중앙 버스 전용 차선이 첫 시행되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과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중앙 1차로를 버스 전용으로 떼어 줬다는 점 외에 취지와 이념은 서로 차이가 있다.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은 보다시피 심야에는 시행되지 않으며, 9인승 이상 소형 승합차라도 6명 이상이 타면 통행이 허용될 정도로 유도리가 있고 관대하다. 그러나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노선 버스들만 통행 가능하며, 심지어 그런 버스들이 끊긴 심야까지 포함해서 365일 24시간 시행이다. 긴급자동차 정도가 아닌 한,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저 차선을 꿈에도 넘볼 생각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이크로버스라도 정규 노선 버스라면 버스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마을버스들이 버스 전용 차선이 있을 정도의 큰 도로를 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 차선은 사실상 대형 버스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을 보면 이 전용 차선을 다닐 수 있는 버스는 그냥 버스가 아니라 '노선버스'이다. 그러니 단순 학원· 교회 버스나 관광· 전세 버스, 사기업의 통근 버스는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소· 중형이 아닌 대형 버스라면 다 들어가는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경기도 구간부터는 차들이 워낙 많고 혼잡하니 평소에는 갓길까지도 차량 통행용으로 개방해 주고 그 대신 대피소를 일정 간격으로 추가로 설치하곤 한다. 지금이 갓길 주행이 가능한지 여부는 마치 상하행 가변 차선 도로의 O X 표시 램프처럼 전광판이 별도로 해 준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의 일부 지점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고속· 시외버스가 정차하곤 했다. 지금은 휴게소 환승이 있지 그런 관행은 없어진 지 오래다.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비상용 활주로로 사용하던 관행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옛날에 쓰이던 버스 정류장이 개조되어 졸음 쉼터 내지 비상 대피소로 탈바꿈하곤 한다. 고속도로의 내부 구조가 이런 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8. 그 밖에 고속도로 주행하면서 들었던 생각들

(1) 하이패스는 버스· 전철에서 환승 할인 교통 카드만큼이나 정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필수가 됐다. 고속도로는 폐쇄식과 개방식, 도로공사 구간과 민자 구간이 뒤섞이면서 요금 체계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있으니 하이패스 같은 거 없이는 이제 버틸 수가 없다. 이제는 하이패스 전용 IC도 등장하고 있으며, 현금 통행료 무인 징수기는 통과 시간이 정말 길고 불편하다.

돈 거래에 관한 한 현금은 동전이든 지폐든 절대로 기계 친화적인 매체가 아니다. 이건 동물의 다리는 바퀴와 달리 기계로 구현하기 아주 어려운 파트인 것과 같으며, 페이지를 넘기도록 제본된 책이 사람에게는 읽기 편한 형태이지만 스캔 뜨는 데는 아주 안 좋은 형태인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금 수납이 기계로 대체되고 나면 사람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불편해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든, 고속도로 톨게이트든, 지하철역 1회용 승차권 구입이든.. 예외가 없다.

(2) 난 옛날에는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칼치기 추월을 하는 스피드광 폭주족들만 미친놈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1차로를 떡 버티고 정속· 저속 주행하면서 우측 추월을 강요하는 애들이 그보다 더 무개념 나쁜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체 상황이 아닌 이상, 추월 차로는 필요할 때 잠시만 이용하도록 하자~!
추월 차선을 딱 비워 놓고 언제나 좌측으로 예측 가능하게만 추월하면 독일 아우토반처럼 시속 200을 넘게 달려도 사고 잘 안 난다. 요즘 차들은 성능도 좋은데, 괜히 비현실적인 과속 단속 감시나 하지 말고 차로 분리를 더 적극적으로 계도· 계몽했으면 좋겠다.

(3) 휴게소의 주유소가 기름값이 생각보다 저렴한 게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미리 환전을 안 하고 공항에 가서야 환전하면 바가지를 잔뜩 쓰며, 열차 안이나 산 같은 현장에서 구매한 도시락은 비싸고 가성비가 안 맞게 마련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도 준비물을 미리 챙겨야지 거기 가서 잡상인을 이용하면 역시 바가지 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기름도 시내에서 미리 넣어 가야 저렴할 텐데, 고속도로 휴게소의 기름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공사가 ex-oil이라고 자체적으로 거품 없는 석유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덕분에 그렇다고 한다.

(4) 고속도로는 그러고 보니 유조차· 특대형 트레일러 같은 크고 아름다운 차, 위험물을 실은 차가 주행 가능하구나!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같은 시내의 여느 자동차 전용 도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인데 이를 지금까지 별로 의식 안 하고 있었다. 하긴, 고속도로는 그렇게 나라 먹여 살리는 자동차들을 당연히 통행시켜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4.5톤을 초과하는 대형 트럭들은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이패스 단말기 장착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걸 본인은 지금까지 몰랐다. 고속버스가 하이패스 달고 잘만 달리고 있는데 의외다. 그러니 이런 트럭 운전자는 하이패스 카드를 제시해서 현금 취급 없는 통행료 결제까지만 가능하지, 톨게이트 무정차 통과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하이패스를 달더라도 톨게이트는 거의 기다시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기술적인 제약 때문은 아니고, 과적 단속을 위해서라고 함..

(5) 그나저나 영천-경주 구간 확장은 언제쯤 끝나려나.. 공사 때문에 갓길도 없고 하도 위험하고 사고가 나서 그런지 최고 속도 한계가 100에서 80으로 낮춰졌으며, 아예 예전에 없던 구간 속도 단속이 시행되고 "시속 80으로 달리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표어까지 붙었다. "이렇게 빌 테니 제발 과속하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거의 이런 급이다..;;
고속도로의 상태가 주변의 국도(20, 4)보다도 못해진 상태이니 공사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려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7 19:37 2018/01/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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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개통 관련 에피소드

중부내륙 고속도로(45)가 주요 구간이 개통해서 서울-경주 갈 때 대전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진 게 10몇 년 전 일인데..
2017년 6월 말엔 상주-영천 고속도로(301)가 추가로 개통한 덕분에 이제는 서울-경주 갈 때 대구· 구미를 들를 필요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거의 같은 시기에 저 301뿐만 아니라 제2경부 고속도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종-포천 고속도로(29)도 포천-구리 구간이 개통했다! 이 좁은 땅에 알게 모르게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저때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서울-양양 고속도로(60)의 전구간 개통에만 몰려 있었다. 그래서 29와 301은 존재감 없이 진짜 깔끔하게 묻힌 것 같다. 뭐, 저건 우리나라 최북단 고속도로인 데다 서울· 수도권 주민들의 휴가철 교통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니 임팩트가 더 클 수밖에 없긴 하다.

나 같은 자동차· 지리· 교통덕에게는 새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무슨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어느 지방에 무슨 맛집이나 카페가 생겼다고 하면 여자분들은 초점은 그 목적지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본인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중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으음.. 뜬금없는 사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 고속도로(120)가 서울-인천간의 주요 구간이 개통한 건 1968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서쪽 끝의 가좌동에서 인천항까지 6km 남짓한 구간이 마저 100% 완공된 건 이듬해(69년) 7월 21일이었는데..
이건 일개 고속도로 개통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구급 경축 이벤트와 날짜가 정확하게 겹쳤다는 걸 지금까지 전혀 생각 못 했다.
바로 아폴로 11호, 인간 최초의 달 착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아예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학교와 관공서가 놀았다.

한국은 인제 군사정권 하에서 산업화 찔끔 하고 짤막한 고속도로 '하나' 만들어서 좋아라 하고 있었지만 천조국은 이미 그로부터 거의 3, 40년 전부터 전국에 하이웨이가 거미줄처럼 깔렸으며 진작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돼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엔 비행기를 넘어 아예 우주선을 만들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공산주의 진영과 싸우는 스케일이 가히 넘사벽이었던 셈이다.
이때 국내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으며, 이튿날 1면은 큼지막한 제목이 전부 '인간 달 착륙, 우주 시대 개막' 이랬었다. 그러니 경인 고속도로 전구간 완공 소식 따위는 그냥 싹 묻혔고 찾을 수 없었다.

2. 용인-서울 고속도로

2009년에 개통한 용인-서울 고속도로(171)는 위상이 꽤 독특한 물건이다.
얘는 2017년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들 중 유일하게 전구간이 다른 어떤 고속도로와도 직통하지 않고 고립돼 있다. 양 말단이 연결된 것이 없고, 중간에 타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지도 않다. 얘는 무슨 바다를 건넌다거나 경북의 BYC처럼 지금까지 고속도로가 전무하던 오지를 개척한 게 아니며, 나름 수도권에 다른 고속도로들과 교차하거나 근처를 지나는 게 있는데도 말이다. (뭐 수도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오지에 속하는 그린벨트 지대 위주로 지나기는 하지만..)

얘는 안 그래도 민자이기까지 하니 뭔가 고속도로계의 유아독존 같은 느낌이 들며, 바다처럼 매우 넓긴 하지만 세계 다른 대양들과 통하지 않는 '카스피 해' 같은 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하긴, '민자 고속도로'라는 개념도 영종도 다리를 경유하는 공항 고속도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대구-부산, 그리고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슬금슬금 도입된 개념이다.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혼자만 뻗어 있는 게 좋지 않았는지(창 2:18), 현재는 경부 고속도로와 교차하지만 분기점 없이 그냥 지나치던 곳에 '성남 JC'라고 일종의 '환승 통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판교 JC와 대왕판교 IC보다 약간 더 북쪽 지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헌릉까지 안 가고 경부 고속도로 라인에서 용인-서울 고속도로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얘는 사통팔달이 아니라 반쪽짜리로만 만들어진다. 용인(171)에서 서울(1) 방면으로(북쪽), 아니면 서울(1)에서 용인(171) 방면으로(남쪽) 동일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만 가능하지, 용인에서 다시 대전으로 가거나 대전에서 방향을 꺾어서 다시 용인으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얘는 북쪽 서울 방면은 그렇다 쳐도 남쪽은 왜 기존 고속도로와의 연결을 못 시킨 걸까? 동탄이나 오산 정도에서 경부 고속도로와의 분기점을 만들면 연계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기까지는 아마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신경을 못 쓴 것이지 싶다. 저기는 안 그래도 휴게소도 전무한데 거대한 입체 교차로를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 대신, 하이패스도 있겠다, 앞으로는 이거 뭐 고속도로도 간접· 소프트 환승이란 게 도입될 것 같다.

3. 남해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지선

지난 추석 때 본인은 가족 여행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해 고속도로 일대를 운전할 일이 있었다. 서울· 수도권이 전혀 아닌 곳에 종축도 아닌 횡축으로 8~10차선급의 넓은 고속도로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뭐 부산을 포함해 그 일대의 창원· 마산도 수도권에 준하는 대도시이니 수긍이 갔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함안-마산 구간은 길이 정말 많이 막히고 정체가 심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원래 아주 악명 높은 구간이라고 한다. 교통 수요에 비해 길이 마땅찮아서 차들이 전부 여기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그 안습한 철도라는 경전선도 동부 한정으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KTX가 지나고 그것도 승객 수요가 아주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니 말이다. 슬금슬금 복선 전철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요즘 고속도로도 전국 곳곳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번호들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지선을 나타내는 세 자리 번호가 많이 눈에 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지선인 151처럼 말이다.
철도가 경전철이 트렌드가 되었듯, 이 좁은 땅에 고속도로도 굵직한 간선은 다 건설되고 이제는 촘촘한 지선을 만드는 게 트렌드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남해 고속도로는 그 짧은 구간에 그런 지선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철도에 동일 구간을 서로 다른 길로 진행하는 태백선과 함백선이 있듯, 고속도로 중에는 중부 고속도로의 경기도 구간(35)과 제2중부 고속도로(37) 쌍이 있다.
그런데 남해 고속도로에도 마산 시내를 경유하는 제1지선(102)과, 마산 외곽을 더 짧은 거리로 지나는 본선(10)이 이렇게 잠시 분기했다가 다시 만난다. 원래는 지금의 지선이(시내 경유) 먼저 남해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설돼 있었지만, 그게 지선으로 바뀌고 나중에 건설된 외곽 지름길이 본선으로 편입된 것이다.

남해 고속도로의 제2지선(104)은 부산 서쪽 외곽의 김해 공항으로 빠진다. 그리고 제3지선(105)은 항구로 빠지기 때문에 일반 민간인이 여행 목적으로 이용할 일은 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37이 아닌 351이라는 지선 번호가 붙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서해안 고속도로(15) 주변도 어느 건 둘째 자리수만 변화시킨 17이고 어느 건 아예 지선 번호를 붙인 153인지 좀 헷갈릴 지경이다.

4. 고속도로의 통행료 부과 방식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가장 북쪽의 서울 시내 구간에 속하는 한남-반포-서초-양재 IC 사이는 엄밀히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가 아니다. 입체 교차로와 방음벽이 쳐져 있고 도로 표지판에도 고속도로를 뜻하는 붉은 왕관 모양과 함께 고속국도 1호선이라고 안내는 돼 있지만, 거기는 그냥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의 여러 시내 자동차 전용 도로 중 하나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이다. 고속도로가 아니므로 여기만 통행하는 것은 아무 제약 없이 무료이다.

진짜로 경부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은 양재 IC 이남부터이다. 달래내고개 일대의 그린벨트를 지나고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게 되는데, 여기는 일명 '개방식' 구간이다. 특정 구간이나 IC를 통과할 때만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가 부과된다. 주변의 경인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IC가 조밀한 간격으로 굉장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의 구간별로 톨게이트가 있다(전자).

그러나 경부 고속도로는 폐쇄식 거리 비례제로 요금제가 바뀌는 서울 톨게이트가 따로 있기 때문에 위와 갈은 형태의 톨게이트는 없다. 다만, 서울 톨게이트의 이북이고 그렇다고 무료 서울 시내 구간에도 속하지 않은 대왕판교 IC와 판교 IC는 서울 방면으로부터 진출할 때에 한해서 소액의 고정 통행료를 징수한다.

부산 방면으로부터 와서 판교로 나가는 거라면, 이미 서울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낸 상태이기 때문에 판교 IC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또한 판교 IC를 통해 부산 방면으로 진입하는 거라면 역시 서울 톨게이트를 곧 통과하게 될 것이므로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판교 IC의 통행료 징수는 전적으로 서울-판교 단거리 왕래를 대상으로만 적용되는 셈이다.

판교 IC 말고 판교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얘를 통해서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도 판교 IC로 나갈 수가 있는데, 이때는 비록 부산이 아닌 서울 방면으로부터의 진출이지만 청계나 성남 톨게이트처럼 인근의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판교 IC에서 돈을 또 내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건 대중교통으로 치면 일종의 환승 할인이나 마찬가지인 개념이다. 복잡한 규칙이지만 이것도 하이패스만 달고 있으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나가든 다 알아서 자동 처리된다.

판교 JC 역시 사통팔달 뚫린 길이 아니다.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는 경부 고속도로의 부산 방면으로만 나갈 수 있지, 서울 방면(양재, 한남)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서울 방면 차량만 외곽순환으로 나갈 수 있지, 서울에서 부산 방면으로 향하던 차량이 외곽순환으로 갈아탈 수는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판교 IC도 외곽순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 가능할 뿐, 판교 IC에서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 수는 없다. 서울(여기서 통행료 내고) 또는 부산으로 경부 고속도로만 탈 수 있을 뿐.
저기 일대는 굳이 사통팔달 안 뚫어도 차들로 넘쳐나는 곳이니, 서울 일대에서 외곽순환이나 잠깐 타는 차들은 경부 말고 다른 대체 도로를 이용하라고 저렇게 막아 놓은 것 같다.

요렇게 개방식 요금제 구간에서 반쪽짜리 톨게이트를 굴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경부 고속도로의 판교 IC(서울 톨게이트 이전) 말고도 중부 고속도로의 하남 IC(동서울 톨게이트), 그리고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덕소삼패 IC(남양주 톨게이트)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그런 특이한 IC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하이패스가 없는 차량은 통행권을 받으며, 진출하는 IC에서 통행권을 반납함과 동시에 이용 거리에 비례한 통행료를 낸다. 모든 차량이 하이패스가 장착되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실시간으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거리 비례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픈 개방식· 폐쇄식 같은 구분이 사라지고 통행권 발급과 현금 취급 같은 번거로운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넓은 톨게이트 부지도 필요 없어지니 거기는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8/01/25 08:29 2018/01/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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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이야기

1. 전근대 시절의 장거리 항해

본인은 초-중딩 시절에 대항해시대 2 게임을 즐겼던 세대이다. 이 게임과 세계 역사 만화책과 학교에서의 세계사 공부를 통해 서양에서는 과거의 중세와 근세 사이에 범선만 달랑 타고 신대륙을 막 개척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배웠다.

현실에서 전쟁은 스타크래프트나 FPS 게임이 아니다. 과거에 양치기 목동은 절대로 낭만적인 전원 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하다못해 결혼 생활조차도 소꿉놀이와는 딴판인 티격태격 전쟁이다.
그리고 그것처럼 배 타고 멀리 떠나는 것도 절대로 편한 일이 아니다. 최첨단 문명의 이기와 통신 장비가 있는 오늘날도 그러한데 하물며 옛날에는.. 선원 생활의 열악함과 비참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영양 문제다. 지금 같은 냉장 냉동 기술이 없으니 모든 식품은 닥치고 소금에 절여서 보관해야 했다. 비타민이라는 걸 몰랐으니 각기병이나 괴혈병 같은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했다. 장거리 항해를 한번 하고 나면 괴혈병 때문에 건장하던 근육질 선원들이 시름시름 앓다 픽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세포들이 형체 유지를 못 하고 몸 곳곳에서 피가 철철 나다가 죽는 건 오늘날로 치면 거의 방사선 피폭에 준하는 끔찍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엔 뱃사람 업계에 미신과 괴담 같은 것도 얼마나 많이 나돌았을지 모를 일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배에서는 온수 목욕 같은 것도 할 수 없었다. 또한 과거의 범선은 폭풍우와 높은 파도만 악재인 게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바람이 오랫동안 너무 안 불고 잔잔한 것도 끔찍한 재앙이었다. 배가 나아가질 못하면서 선원들이 그 안에서 꼼짝없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배 안의 도구와 시설이 원시적일수록 승선 근무는 공동 작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며, 한 명만 잘못하면 다같이 죽는 위험이 더 컸다. 그러니 거기 조직 문화는 반쯤은 군대와 다를 바 없었다. 채찍질과 교수형 등 온갖 전근대적인 규율과 잔혹한 처벌로 선원들을 통제해야 했다.

그러니 선원들의 생활이 얼마나 헬이었을까? 이런 것들이 바로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만 해서는 알 수 없는 레알 대항해시대의 실상이다.
그 시절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양을 누볐다는 배가 덩치가 이렇게 작았다는 사실에 추가적으로 굉장히 놀라게 된다. 배수량이 겨우 몇백 톤이 될까말까인 쪽배 유람선에 10~20여 명의 남정네들이 타고 도대체 어떻게 대륙을 건널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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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엔진도 없이 돛만 달랑 달고, 게다가 금속도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요즘의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같은 덩치일 수는 없다. 건축· 재료공학적으로 따져볼 때 목선은 길이 약 100미터, 배수량 2000톤 정도가 사실상의 한계로 여겨진다고 한다.

목재는 쇳덩이처럼 무슨 용접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금속보다 약한데 이어 붙이는 시점에서부터 강도가 더욱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 덩치를 부분적으로 초과하는 목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목선의 끝물인 19세기 중후반은 가서야 예외적으로 등장한 것들이며, 덩치를 무리해서 키우느라 항해 중엔 펌프로 물을 일일이 빼 줘야 하는 등 태생적으로 지병을 안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같은 거대한 선박을 목재만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허나 그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300큐빗은 1큐빗을 50cm 남짓으로 잡아도 150m 남짓한 길이이다. 방주가 무슨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덩치였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얘는 표류만 하지 항해 기능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었으니 어지간한 배들이 갖는 유체역학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다. 항공기에다 비유하자면 비행선이 아니라 그냥 기구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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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목재의 한계 얘기가 기왕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옛날에 황룡사 9층 목탑도 어떻게 존재 가능했을까 싶은 의문이 추가로 든다. 기록대로라면 높이가 거의 80m에 달하는 건물을 나무로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콘크리트 건물처럼 딱 직육면체 형태로 그렇게 높은 목조 건물을 만들 수는 없고, 위로 갈수록 면적이 좁아지긴 해야 할 것이다. 롤러코스터조차도 에버랜드 T 익스프레스 같은 목제는 철제보다 내부 구조물이 훨씬 더 많고 복잡하고, 철제처럼 360도 상하 회전을 구현하지 못하지 않던가.

2. 근대: 기계화가 됐지만 여전히 원시적임

아무튼, 그러다 근대에 와서는 실용적인 수준의 증기 기관이 발명되었고, 땅에서 마차보다 빠른 철도 차량도 만드는 와중에 이 기관을 선박에다가 써먹으려는 시도도 응당 행해졌다. 오늘날처럼 스크류 프로펠러가 정착하기 전의 과도기에는 외륜이나 물갈퀴 같은 다양한 동력 전달 메커니즘이 등장했으며, 이때부터 배의 재질도 목재에서 금속으로 바뀌었다. 불을 때는 연소를 나무로 만든 기계 안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인류 역사상 몇천 년의 짬밥을 먹어 온 목재 범선이 주력 교통수단에서 드디어 퇴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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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선은 증기 기관차와는 달리 왠지 유럽이 아닌 미국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든다. 허클베리 핀, 톰 소여의 모험처럼 말이다.
다만, 증기선의 선구자이던 존 피치 같은 사람은 당대에 성공을 못 하고 빈곤에 허덕이다가 자살로 불운한 생을 마감했다. 훗날 디젤 엔진의 발명자도 자살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런 선구자들의 노력을 거쳐서 1910년대에는 잘 알다시피 초대형 증기 여객선인 타이타닉 호가 건조되기에 이르렀다. 전장 269m, 배수량 52310톤짜리다.

오늘날이야 비행기가 있으니 저런 대륙간 장거리 여객선은 필요가 없어졌고 배는 그냥 라이너나 관광 크루즈 위주로 바뀌었다. 물론, 여객 분야 한정으로만 말이다. 국가와 대륙간의 화물 수송은 타 교통수단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대량 수송 가성비 때문에 선박이 여전히 영원무궁토록 본좌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런 무역선 제조사들과 무역선을 조종하는 상선사관들이 없으면 굶어죽고 말라죽는 거 순식간이다.

타이타닉 호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참 원시적이다 싶은 것은.. 먼저 엔진이다. 20여 개가 넘는 대형 보일러에 엔진 2기, 증기터빈 1기로 중무장하고 굴뚝도 4개나 달려 있었던 반면, 요즘의 디젤 엔진은.. 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덩치의 주 엔진 1 + 보조 엔진 1기만으로도 타이타닉과 비슷한 덩치의 배를 비슷한 속도로 굴릴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가벼우면서 방한 보온 효과는 탁월한 요즘 첨단 재질의 패딩 점퍼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2200명이 넘는 타이타닉 탑승 인원 중에서 승객이 아닌 직원이 이미 800명을 훌쩍 넘고 거의 900명에 가까웠다는 점도 날 놀라게 한다.
굳이 항해에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지하의 기계실에서 보일러에다 삽으로 열심히 석탄을 퍼 넣던 화부부터가 이미 170여 명이나 됐다. 갤리선 시절의 노꾼보다는 발전한 작업 형태인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매우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이었다. 거북선도 1척의 정원이 150명가량이었는데 그 중 무려 과반인 8~90명은 노꾼이었다고 하니...;;

또한 거기 안의 상점에서 일한다거나 승객간 우편· 통신을 담당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타이타닉 배가 자기 직장이고 월급을 받는 터전이었던 사람들의 수가 그만치 됐다. 배 안에서 일종의 '작은 사회'를 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은 비행기에 법적으로 승객 50명당 승무원이 겨우 1명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비행기나 열차를 조종하는 인력도 1인 승무를 하네 마네 싸우는 중인 세상이다. 이걸 감안하면 요즘은 얼마나 사람 수가 줄었는지 알 수 있다.
까놓고 말해 타이타닉 호에 탔던 승객들은 요즘 식으로 치면 보잉 747이나 A380급 여객기 세 대면 다 실어나를 수 있다.
옛날 배의 덩치가 너무 작았던 것에 한번 놀랐고, 덩치가 커졌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하긴, 전투기· 폭격기, 미사일 같은 게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에 딱 2차 세계 대전 타이밍 때는 전함도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게 돌아다니긴 했다. 요즘은 항공모함이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큰 배를 굴릴 필요가 없다.

3. 해군과 해전의 역사

기왕 배의 역사 얘기가 나왔으니 해전의 역사 얘기도 조금만 더 하자면..
선원 생활도 고되고 군생활도 고된데 둘을 합쳐 놓은 해군 수병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악의 기피 직종이었다. 하지만 내륙국이 아닌 이상 바다를 장악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으니 어떤 나라든 해군을 육성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섬나라의 경우 그 필요성이 더욱 컸다.

해군은 배가 전장 겸 내무반이니 육군 같은 행군이나 숙영, 각개전투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함(배를 버리고 바다로..) 같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당연한 말이지만 수영을 잘해야 한다.
먼 옛날, 로마 제국이 있던 시절에는 인간의 무기들이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큰 배를 단번에 부숴 버릴 수 없었다. 그나마 배가 온통 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니 불화살 같은 걸로 화재를 일으키는 것이나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껏해야 배와 배끼리 부딪치거나 다리를 놓고 서로 근접해서 냉병기로 육박전을 벌이는 식으로 싸웠다. 그리고 배 자체는 그냥 나포와 노획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화약이 발명되고, 파편을 날리는 폭탄 대신 볼링공 같은 탄환을 날려서 배를 부수는 재래식 대포가 등장했으며, 이것이 함포가 되어서 성능이 갈수록 향상되었다. 배가 크고 무거워야만 더 크고 반동이 강한 함포를 얹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승무원을 싣고 더 멀리까지 오랫동안 항해할 수 있다.

그러니 제국주의 군국주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20세기 중반까지는 군함의 크기가 갈수록 커졌다. 그러다가 앞서 얘기했듯이 군용기와 미사일의 등장으로 인해 군함의 대형화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군함을 잡는 용도로 같은 군함의 함포만 있는 게 아니라 기뢰, 어뢰, 잠수함 같은 기묘한 물건도 등장했으며, 그런 것들을 퇴치하여 기함을 호위하는 용도로 구축함 같은 배가 또 따로 등장하게 되었다.

바다 위의 비행장인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 같은 전쟁이 또 터진다면 모를까 세계 경찰 우주 방어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면 또 쓸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유지비가 정말 억 소리 나게, 작살나게 깨진다는 것 하나는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2차 세계 대전이 컴퓨터, 핵무기, 미사일이 발명되기 (직)전에 벌어진 전쟁이라는 점에서 그래도 한 박자 이전 세대의 전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4. 운하

육상 교통수단에 교량이 있다면, 선박에는 reverse 버전인 운하가 있다.
자동차나 열차가 물 위를 최단거리로 가로질러서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교량을 건설하듯, 반대로 배도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최단거리 횡단 가능하도록 육지에다 운하라는 수로를 건설하니 말이다.
선박은 평소에는 끝없이 펼쳐진 2차원 평면에 가까운 망망대해 위를 다니지만, 좁은 운하를 통과하는 중에는 앞뒤로밖에 진행할 수 없는 열차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 흥미로운 면모이다.

운하는 총기가 화살을 도태시키듯이 기선이 범선을 확인사살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자체 동력을 가진 기선은 어느 지형에서나 고정된 속도가 나오니 정시성이 보장되는 반면, 범선은 그런 곳에서 제대로 주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이라는 게 주변이 온통 차가운 바닷물이어서 공기와의 온도 차이가 생겨야만 발생하는데, 온통 땅으로 둘러싸인 좁은 물길에 불과한 운하에서는 그런 바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하로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사이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가 있다. 파나마 운하가 수에즈보다 더 나중에 만들어졌으며 건설 난이도도 훨씬 더 높았다.

수에즈 운하는 그냥 배가 길을 따라 설렁설렁 지나가면 되고 폭도 넉넉하지만, 파나마 운하는 놀랍게도 양 말단의 해수면 높이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물을 채웠다 빼기를 반복하는 여러 도크를 단계적으로 거치면서 고도를 올려야 한다. 철도로 치면 이건 완전 인클라인 내지 스위치백 방식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이런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파나마 운하는 하루에 최대 30여 척 남짓한 배밖에 통과할 수 없다.

비행기에 협동체와 광동체가 있고 철도 궤간에도 광궤· 협궤가 있듯, 운하에는 응당 폭의 제한이 존재한다. 열악한 환경에 만들어진 파나마는 수에즈만치 큰 배는 통과할 수 없다. 그리고 아까 언급한 단계별 진행 특성으로 인해, 폭뿐만 아니라 길이의 한계도 존재한다. 2010년대에는 선박 통행 트래픽 증가와 대형화에 대응하기 위해 두 운하 모두 확장 공사도 거쳤다고 한다.

5. 배의 닻

좀 무식한 얘기이다만 본인은 선박이나 해운 쪽으로는 문외한이다 보니 오랫동안 닻과 돛의 차이도 잘 모르고 있었다. 용도가 서로 완전히 다른 부품이구만.. 돛이야 배의 동력원이 엔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필요 없어졌지만 닻은 자동차로 치면 정말 주차 브레이크 같은 필수품이다.

둥실둥실 물에 떠 있는 배에다가 자동차처럼 바퀴에 굄목을 설치하거나, 접지 마찰을 이용한 브레이크를 장착할 수는 없다. 그러니 배의 중량을 증가시키는 걸 감수하고라도 무거운 갈고리 같은 걸 따로 달았다가 바닥에 내려서 그걸로 배를 정박시켜야 한다. 왕창 큰 배의 경우, 닻만 해도 수 톤~10수 톤에 달하는 육중한 쇳덩어리가 장착된다.

배는 브레이크가 없는 관계로 어지간해서는 그냥 관성과 자연 감속에만 의존해서 정지시키지만.. 만약 불가피하게 급제동을 해야 하면 엔진을 역추진하거나 이 닻을 내려뜨린다(비상투묘). 대형 여객기가 착륙 직후에 여전히 시속 200이 넘게 속도가 붙어 있는데.. 랜딩기어의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엔진 역추진과 플랩· 스포일러까지 총동원해서 필사적으로 감속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다만, 무리하게 투묘했다가는 배가 서는 게 아니라 반대로 랜딩기어를 붙잡고 있던 부품이 저항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고 떨어져나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집채만 한 배를 고정시켜 준다는 우직한 심상으로 인해 배나 해군의 상징에는 닻이 꼭 그려져 있다.
성경에서는 사도행전 27장, 바울이 배 타고 로마로 가는 장면에서 배의 닻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사도행전 27장은 나 같은 육지 사람이 읽기만 해도 뭔가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하물며 그쪽 업계 종사자 중에 크리스천이신 분이 읽으면 더욱 의미심장할 것 같다.

여기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 '소리 내다'가 아니요, '건전한'도 아니요, '수심을 측정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sound가 나오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줄자 같은 걸 내려뜨려서 수심을 측정했겠지만, 동사가 sound이다 보니 그 시절에 마치 초음파 같은 걸 쏘기라도 해서 깊이를 측정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으로 성경에서 또 닻이 나오는 곳은 그 유명한 히 6: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anchor of the soul)이다. 인생이라는 항해 중에 둥실둥실 불안하게 이리 휩쓸리고 저리 끌려가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반석, rock-solid함을 나타낼 때 닻이라는 물건을 동원해서 비유한 게 인상적이다. 히브리서는 저자에 대해서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배 타고 전도 여행 많이 다닌 바울이 썼다는 것이 유력한데, 이 점을 생각하면 표현에 더욱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12 08:32 2017/06/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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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각

1. 첫인상

우리나라의 바다 건너 이웃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예로부터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불리고 있다. 무작정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고, 존재감을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복잡한 나라이다. 정치적으로 하도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 이런 책이 나온 것도 벌써 20년 가까이 전의 일이다. 본인이 블로그에서 이 나라 자체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럼 비정치적인 얘기부터 가볍고 부담 없게 먼저 시작하겠다. 본인은 일본이라 하면 떠오르는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무순)

  • 벚꽃이 만발한 오사카 성
  • 후지 산 아래로 달리는 신칸센
  • 지멘스 옥타브를 울리면서 달리는 게이큐 쾌특 전철
  • 앞발 들고 있는 복고양이
  • 게다짝, 기모노, 일본도, 정수리를 민 그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사무라이 (조선 선비들은 머리를 기르는 편이었는데 여기는 정반대)
  • 어두운 복장에 표창 던지는 닌자 (뭐, 후대에 만들어진 컨셉에 가까우며, 정작 옛날에 일본엔 저런 차림의 자객이 없었다고 하던데)
  • 스시, 일본 돈까스와 라멘, 심야식당
  • 학교 수영복 (저기에는 공립 학교에 수영장도 있으니)
  • 도라에몽, 슈퍼마리오, 짱구는 못 말려, 드래곤볼 캐릭터와 그와 비슷한 화풍의 일본 애니들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킬 빌, 자토이치 같은 평범하거나 병맛· 개그스러운 영상물. 토스트 소녀-_- 게임
  • 파이널 판타지 같은 너무 심오하고 도무지 배경이고 스토리고 설정을 이해할 수 없는 안드로메다 영상물
  • 감각의 제국, 쇼군의 사디즘 같은 개막장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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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난 일본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일본어는 열차 안내방송 외운 것밖에 모른다. 글자만이라도 작정하고 읽는 법을 틈틈이 외워 놓고 싶지만, 잘 안 된다.

하긴, 작년에 브라질 올림픽 폐막식 때 그 유명한 2020 도쿄 올림픽 홍보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그거 정말 강렬했다. 반도에서 병맛스러운 김치 전사 내지 허접한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 영상이나 만들던 동안, 재패니메이션의 원조인 저 동네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자기 나라의 발전된 면모를 저렇게 쭉 소개하면서 아베 총리까지 슈퍼마리오로 변장시켜서 찬조 출연시켰다니.. 쟤네들의 저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교통

일본은 근대화 산업화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섰으며 경제, 산업, 과학· 기술, 예능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고, 현대 사회의 각종 시행착오들도 먼저 겪은 선진국이다. 그 중 교통 분야만 살펴보더라도, 일본은 세계구급 자동차 제조사를 보유한 자동차 왕국인 동시에 신칸센 고속철까지 개발한 철도 왕국이다.

그런데 얘들은 자동차와 철도뿐만 아니라 '자전거 왕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륜차는 보행자와 자동차 사이에 껴서 만년 콩나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중인 반면, 일본은 이륜차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도로나 주차 시설이 자전거를 더욱 배려하는 형태로 갖춰져 있다.

이건 일면 수긍이 가는 얘기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소득 높고 잘 사는 국력· 경제력에 '비해서' 서민이 자동차 굴리기는 훨씬 더 힘들게 돼 있다. 고배기량에 덩치 큰 차는 더욱 제약이 심하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배려와 혜택을 받는 경차의 배기량이 1000cc 이하로 정해져 있지만 저기는 800도 아니고 겨우 660cc이다. 그것도 21세기에..;; 일본도 한국 만만찮게 산과 험지가 많은 동네인데 저건 세계 자동차들 평균 덩치를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제약이 아닌가 싶다.

또한 저기는 불법주차 단속이 이곳 반도보다 넘사벽급으로 더 자비심이 없으며, 애초에 1960년대에 마이카 시대가 시작되던 시절부터 차고지 증명제가 딱 시행되어 잘 정착된 걸로 유명하다. 차고든 유료 공영 주차장이든 주차 공간이 법적으로 확보돼 있지 않으면 자가용 구입을 아예 못 한다.
마치 컴퓨터에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돈 주고 사야 하며, 눈에 보이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 지원과 서비스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듯.. 차를 샀으면 굴리는 것뿐만 아니라 세워 놓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도 주거비만큼이나 돈이 든다는 관념이 박힌 것이다.

우리나라야 지금처럼 건물과 주차장들이 완공돼 버린 와중에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하기에는 대략 곤란한 지경이 됐다. 자동차의 판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니 자동차 회사 영업 사원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 치면 총기 규제 정책 vs 총기 제작사들의 로비와도 얼추 비슷한 구도처럼 됐다.
할 거면 1980년대에부터 했어야지. 옛날 석유 파동 때 외화 아끼려고 차량의 배기량과 엔진 기통수에다는 온갖 규제를 걸었으면서, 정작 차고지 확보 관련 규제는 시행을 왜 안 했나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전기는 1970년대부터 승압을 잘 끝낸 반면에 자동차 쪽으로는 정치인들이 상대적으로 선견지명 안목이 없었던 셈이다. 반대로 일본은 철도 궤간과 전기 규격은 낭패 봤지만 자동차 주차 문화는 잘 정착시킨 경우에 속한다.

아무튼 일본은 경제력 대비 한국이나 미국보다 차 굴리기가 더 비싸고 빡센 나라이다.
그럼 자가용 말고 대중교통은? 대도시엔 물론 잘 구축돼 있고 속도 빠르고 정시성도 높다.

일본은 철도 왕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지하철 역마다 온통 스크린도어들이 갖춰져 있지는 않다. 허나, 누군가가 선로에 투신 자살이라도 하면 고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심한 민폐를 끼쳤다고 국가에서 유족에게 도리어 벌금을 매긴다.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 탓 국가 탓? 힐링힐링?" 그런 거 없다.
과거에 중국에서는 총살형을 집행하고 나서 총알값을 사형수 유족에게서 받아 챙기기까지 했는데, 마치 그와 비슷한 급으로 잔인하다면 잔인한 조치 같기도 하다.

허나 일본은 국민성이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며, 거기는 철도 업계가 분초 단위로 열차 정시성에 목숨을 걸고 기관사까지 죽도록 갈구고 압박하는 곳이다. 평범한 전철도 몇 분 지연되면 역 직원들이 지연 증명서를 알아서 뿌리면서 승객들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굽신거린다. 그런 와중에 누가 자살해서 열차가 줄줄이 지연을 먹었다면 이거 얼마나 큰 민폐이고 피해인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5년 4월에 JR서일본 관할의 후쿠치야마 선에서 전철이 과속 탈선 사고가 나서 기관사 포함 107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는데, JR서일본에서는 그로부터 무려 1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홈페이지 첫 화면에 그 날 사고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해 놓고 있다. 그걸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다시는 그런 사고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게 정상적인 추모이고 이성적인 재발 방지 다짐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세월호 노란 리본 타령은 가해자 당사자의 사죄도 아니고 시스템적인 안전 개선과도 상관 없이 그저 감성팔이 반정부 광기 폭동일 뿐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일본의 대중교통은 서비스 좋고 시간 관념도 투철하고 다 좋은데.. 비싸다.
우리나라 식 운임과 임률을 생각했다가는 놀라서 턱 빠질 거다. 정말 왕창 비싸며, 사철 간에 통합 환승 할인 같은 것도 없다. 하물며 장거리 간선인 신칸센 운임은 국내선 비행기보다도 더 비쌀 정도이다.

그러니 일본이 비록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나라는 아니겠지만 미국 같은 나라도 아니니, 가까운 거리는 그냥 걷거나 자전거 타는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북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도 자전거는 등록하고 번호를 받아야 될 정도라고 한다. 굉장히 뜻밖이다. 물론 북한처럼 주민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질서 유지가 필요할 정도로 자전거가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저기서는 학생들, 특히 여자애들도 등하교나 알바 하러 출퇴근 할 때 자전거 많이 타는 거 같다.
어쩐지 일본의 사건사고 같은 이야기들을 봐도 가해자나 피해자들이 그 당시나 직전에 자전거 탔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극단적인 예로는 콘크리트 살인 사건(1989)에서도 그렇다.
또한 철권 시리즈에 나오는 '카자마 아스카'자전거 끌고 다니는 여고생 컨셉이다.
이제야 그 바닥 문화가 좀 이해가 되고 퍼즐 조각이 짜맞춰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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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권위주의

그럼 이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조금씩 논해 보겠다.
일본에는 덴노라는 국가 상징 겸 정치· 종교 복합체 중심 구심점이 있으며, 여기 한국보다 뭔가 전체주의스러운 분위기가 더 강하다. 일제의 패망 후에야 덴노가 인간 선언을 하고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자유분방 개인주의스러워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일본의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정치계나 법조계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보다 권위주의가 훨씬 더 심하고 경직돼 있다. 실수나 잘못· 착오가 생겨도, 누굴 억울하게 누명 씌워서 몇십 년 옥살이 시키고 나서도 그걸 시인해서 직접적인 표현으로 사죄 따위는 거의 안 하다시피한다.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 자기 권위와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한다. '엔자이'(원죄) 사건이라고 검색해 보면 이런 예가 여럿 나온다.

사고방식이 원래부터 저렇고 '자국민'한테조차 저러는데, 하물며 쟤들이 자기보다 (엄밀히 말해) 국력이 딸리는 외국을 상대로 위안부 피해 문제 같은 거는 절대로 대놓고 사죄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만치 간접적으로나마 유감 표현했고 돈 이만치 줬고, 이 주제 얘기 더 안 꺼내기로 지도자들끼리 서로 퉁쳤으면 나름 "걔네 입장"에서는 많이 양보하고 챙겨 준 것에 가깝다. -_-;;

뭐, 일본이 저 따구로 나오는 건 이스라엘 앞에서 가히 '도게자' 급으로 굽신굽신 사죄하는 독일과는 참 비교되는 모습이며 본인이라고 해서 보기 좋을 리 없다. 그럼 쟤네들은 원래 저런 놈들인가 보다 하고 우리로서는 과학 기술과 경제와 힘으로 극일을 이루는 것밖에 현실적인 답이 없다. 그 신사적인 독일조차도 이스라엘 급의 국력과 국제 위상이 있는 나라 앞에서나 굽신굽신이지, 다른 듣보잡 소수 민족이 나치에게 피해를 입은 건 상대적으로 모르쇠인 걸로 비판받는 건 변함없다.

이런 넓은 맥락에서의 이해 없이 그저 소녀상에다 반일 반일거리고, 일본하고는 뭘 하고 오든지간에 무조건 굴욕 매국 협상이라고 헛소리 하는 애들.. 정말 지겹다. 백 날 그렇게 설쳐 봐라, 일본의 태도가 바뀌는 게 있겠나?
그리고 또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북괴와 중국한테 그만치 부당하게 당해 온 걸 반의 반만치라도 따지고서 일본에 집착하는 거라면 또 내가 말도 안 한다. 북괴 김 정은이 6· 25 전쟁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 남조선을 향해 사죄를 할 것 같아 보이냐? 그와 똑같은 맥락이다.

4. 그나마 중국· 북한보다는 더 가까이해야 할 대상

동북아시아 한중일 CJK 국가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로서는 일본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사의 앙금 트라우마 때문에, 중국은 지금 당장 국가 프레임과 이념 차이 때문에 현실에서는 서로 마냥 손잡고 친하게 뭉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북괴? 걔들은 국가 프레임· 이념 차이를 넘어서 그냥 묻지 마 남조선을 체제 전복+적화시키려고 눈에 시뻘겋게 불 켠 쌩 양아치에 광신도+노예 집단일 뿐이고. 통상적인 경제력 군사력으로는 그걸 이룰 수 없으니 역사왜곡, 간첩질, 사이버전 선동질 등 방법도 갈수록 교묘하고 추잡해지고 있다.

통일 후에도 김돼지 동상이랑 주체사상 같이 껴안고 살 게 아니라면, 화해네 경제 협력이네 하는 개수작에 절대 응하지 말고 그냥 왕따 고립만이 답이고 진리이다. 굳이 먼저 북폭 하고 쳐들어갈 필요도 없으니, 굶겨 죽이기만 하면 된다.
일부 미사일 발사체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우리보다 앞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예외를 빼면 배울 것 선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동북아 이웃 나라들 중에 남조선이 제일 가깝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상대는..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이다.
그리고 제일 본받고 배워야 할 상대를 꼽자면 그건 친하게 지낼 대상보다도 더욱 단호하게 일본이다.

물론 구 일본군의 흉악한 전쟁 범죄라든가 그 스타일의 병신 같은 조직 문화와 똥군기 따위를 본받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걔네들은 그런 지랄맞은 시스템 하에서도, 우리의 입장에서는 척결해야 할 소위 '일제 잔재'라는 것들의 본거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 관심 분야도 보태자면 한자 같은 불편한 문자를 쓰고도 어쨌든 근대화를 이루고 과학 기술 강국 선진국이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도 컴플랙스를 갖고 있는 과학 분야 노벨 상도 도대체 몇 개를 탔냐 말이다.

일본이 겉으로는 화해 유감 사죄 운운하면서 한편으로는 윗선에서는 모르는 척 망언 씨부리고 독도는 일본땅이다 교육을 해?
괘씸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래 봤자 군사적으로 같은 친미 동맹이고 동일한 자유 진영 이념 프레임을 공유하는 국가끼리 대놓고 군사 충돌이 일어날 확률은 중국· 북한보다야 훨씬 낮다.

저 정도 앙금과 마찰이 있으면 우리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얻어낼 거 얻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일부" 극렬 민간단체를 모르는 척 묵인하면서 소녀상 한두 개쯤 놓고 시위든 하면서 맞불 놓으면 된다.
딱 그 정도까지만. 그건 나도 전략상 인정한다. 뭐 아무 티 안 내고 묵묵히 실력만으로.. 현대차· 삼성 전자가 일본 기업들 쳐발랐던 것 같은 방식으로 일본 이기는 게 제일 좋고 이상적이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고 현실에서는 감정상의 카타르시스도 약간은 필요하지.

필요 이상으로 반일 반일 거리는 애들이 진짜로 애국심? 민족 정기? 그런 순진한 이유로 일본 비판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매우 드물다. 오로지 자국 비하와 북괴의 범죄 물타기라는 매우 불순한 목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비굴한 사고방식으로 일제의 식민사관 내지 조센징 엽전 비하는 어째 비판하고, 무장 항일 독립투사는 어째 칭송할 수 있는지 내 판단력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 무슨 몇백 개씩 소녀상 세우자고 유세를 떨거나, 특히 아직까지도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을 못 했네 웃기는 소리 하는 애들은 우리나라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된다. 누구 때문에 왜 친일 부역자 군경을 활용해야 했는지만이라도 정확하게 가르치면 아무 문제될 거 없고 거짓을 팩트로 격퇴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20년 전부터 본인을 봐 온 분들은 잘 알 거다. 난 예나 지금이나 주된 연구 개발 분야가 한글 입력이고, 전통적으로 얼마나 열혈 반일 민족주의자였는지를 말이다.
그랬는데 내가 이렇게 돌아섰을 정도면, 저쪽에 있는 애들이 정말 일관성 없고 주적 구분을 못 하고 필요악과 절대악을 분간 못 하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어 저건 아닌데..;; 왜 중국 북한에다가는 단 한 마디도 말이 없지?" 하는 거부감이 들면서 갈라서게 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구든 일본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13 08:34 2017/05/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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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7/05/24 02:59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7/05/17 14:24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좋은 의견과 보충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과 저는 이 분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는 말기에 민족 말살 정책과 전쟁 수탈로 이어지지만 않았으면 1920년대까지는 막 그렇게까지 헬은 아니었지요. 일제만 욕하기엔 그 전의 조선 말기와 지금의 북괴도 객관적으로 너무 나쁘거나 나빴다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옛날엔 심지어 구한말 항일 의병 대장조차도 부친 삼년상 치르러 전선을 무단 이탈해 버리기도 했죠. 이름이 뭐더라..? 그 시절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당시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 군 위안부 자체는 운용했지만 발정 난 군인들이 멀쩡한 처녀를 무슨 테이큰 찍듯이 강제 납치한 건 아니었겠죠. 단지 중간 알선업자(같은 조선인도 포함)가 실적 많이 빨리 채우려고 취업알선을 빙자한 사기 공갈 같은 걸 많이 쳤을 겁니다.

      이건 마치 이 승만 대통령이 6· 25 전쟁 때 항전을 주장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피난 갔지만, 핀트가 안 맞아서 이상한 방송이 울려퍼지고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이고 혼자 튄 것처럼 보이게 된 것과 비슷한 정황 같습니다.

      아무쪼록 반도 사람들이 선동에 더 강해지고, 부분적인 팩트와 부분적인 거짓이 뒤섞인 정보 속에서 큰 맥락을 짚을 줄 알고 논리 판단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 시모다테 2017/06/21 02:01 # M/D Reply Permalink

    일본 철도의 정시성이라... 그거 지킬려고 회사 내에서 갈구는게 꽤 심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3. 시모다테 2017/06/21 02:05 # M/D Reply Permalink

    그 정시성에 대한 압박이 후쿠치야마 탈선사고 같은 참극을 부른 원인이라고도 하죠... 지연 회복한다고 무작정 마스콘 땡기다가 결국 사고쳤으니까...

    1. 사무엘 2017/06/21 09:16 # M/D Permalink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후쿠치야마 탈선 사고 역시 좀 서투른 기관사가 지나친 정시성 압박(다른 회사로 치면 실적 압박 같은 거겠죠)과 가혹한 사내 징계를 견디다 못해 무작정 밟아대다가 난 거 맞지요.
      그래서 본문에서 "물론 구 일본군의 흉악한 전쟁 범죄라든가 그 스타일의 병신 같은 조직 문화와 똥군기 따위를 본받자는 얘기는 아니다." 라고 썼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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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교통수단에는 도로나 철도 같은 길이 있다. 열차는 레일을 벗어나면 끝장이고, 자동차도 열차보다야 자유도가 높지만 평평한 길이 없는 곳은 못 다닌다.
그에 반해 비행기나 선박은 광활한 창공 아니면 바다 한가운데를 다니니, 딱히 길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얘들도 눈에 당장 보이지 않고 민간 지도에 표시돼 있지만 않을 뿐, 가상의 경로를 설정하고 항상 정해진 길만 다닌다.

배야 물 위만 다닐 수 있지만 비행기는 무엇이든 위로 타넘을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움직임의 자유도가 가장 높다. 그러나 자동차만 해도 소유와 운전을 위해서 각종 등록에, 보험에 면허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까다로운 규제와 제약들이 존재하듯.. 비행기도 마찬가지이다. 일정 중량 이상의 비행체가 일정 고도 이상을 비행하기 위해서는 미리 근처의 항공 관제 시설 내지 군부대에 비행 스케줄과 경로를 신고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허가받은 대로만 다녀야 한다. 이걸 어기면 생각보다 꽤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우리나라 영공에는 사전 신고만 하면 트래픽이 허용하는 한 그럭저럭 OK가 나오는 구역이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비행 제한/금지 구역'도 있다. 금지 구역은 국방부 장관 차원에서의 아주 예외적인 승인이 나지 않는 한, 싸제 비행기가 절대로 얼씬거릴 수 없는 곳이다. 이거 뭐, 하늘 위도 사실 온통 민통선 지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물론 인간은 새가 아니며 자기 힘만으로 하늘을 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제약을 하든 말든 이쪽 업계의 사정은 공항이나 군 관계자가 아니면 민간인이 신경을 쓸 일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이런 규정이 갑자기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일명 '드론'이라고 불리는 장난감 무인기를 취미로 날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드론'이라고 하면 한때는 저그의 일꾼 말벌 유닛이 1순위로 쓰였지만 이제는 무인기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듯.

옛날에는 하늘로 뭔가 장난감을 띄우고 싶은 사람은 연을 날렸다. 혹은 자기가 직접 하늘로 뜨고 싶으면 기구를 띄우거나 멀리 언덕으로 가서 글라이더 정도는 탔던 것 같다. 그 반면, 자체 동력을 갖춘 초소형 비행체를 띄우는 건 확실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격추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으면서 그래도 스스로 자세와 방향 조절이 가능할 정도로 동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불순한 용도로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도촬이나 폭탄 투하 같은..)

이런 특성을 이용해 요즘은 북한조차도 심심하면 무인기를 날려서 남조선을 정찰하는 게 심심찮게 보도된다. 옛날의 땅굴과 무장공비에 이어 트렌드가 바뀌었다. 그래서 무인기 비행은 결국 안보상의 이유로 인해, 무조건 전면 금지까지는 아니어도 규제· 제약이 크게 걸릴 수밖에 없는 행위가 됐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행기 관련 취미는 무선 전파나 총기 관련 취미하고도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한쪽은 교통, 한쪽은 통신. 한편, 총기는.. 더 말이 필요하지 않고.).

국내의 비행 금지 구역들은 내부적으로 이름 내지 식별자가 부여되어 있다고 한다. 일단 휴전선 근처는 동· 서부를 막론하고 0순위로 비행 금지이며, 평지의 민통선보다도 영역이 더 넓다.
서울 강북에는 청와대로부터 반경 3.8km까지가 P-73A이라고 명명된 금지 구역이고, 거기에서 추가로 반경 4.6km까지가 P-73B라는 완충 지대이다. 여기는 드론은 물론이고 민항기조차도 못 다닌다.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하늘 위로 비행기가 다니는 걸 구경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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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덕이라면 친숙할 그림이 드디어 나왔다.
P-73을 벗어나서 강북에 노원· 중랑, 강남에 영등포· 강남· 서초구는 금지보다는 수위가 좀 덜한 R-75 '제한 구역'이다. 비행을 위해서는 하루 전에 신고해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강동· 송파 정도의 외곽은 돼야 서울에서 그럭저럭 드론을 띄울 수 있다.
용산구는 강북이고 P-73B의 반경에 포함되는데도 저기만 예외적으로 금지가 아닌 제한 등급인 이유는.. 미군 기지인 관계로 국군의 통제를 덜 받기 때문이지 싶다.

지난 2013년엔 김포 공항을 출발한 한 헬리콥터가 안개 때문에 서울 강남 삼성동에서 아파트와 충돌하여 추락한 사고가 났었다. 이때 헬리콥터는 마치 한강 수상 택시처럼 한강 위로만 다니면서 서울을 횡단했다. 규정상 거기로만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포 공항에서 잠실까지 서울 동서를 횡단하는 예상 소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자동차밖에 안 타는 땅개의 입장에서는 가히 시공간 워프 수준이긴 했다. 그냥 지하철 두세 정거장 지나듯이 강서구에서 송파구로 슈욱~

청와대나 인구 밀집 지대 말고 드론을 띄울 수 없는 곳은 전국의 민간 및 군 공항의 반경 9.3km 이내이다. 기존 비행기들과 충돌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구로구· 금천구 같은 서울 남서쪽 외곽은 경부선 철도가 지나며 하늘로도 R-75에도 속하지 않는 관계로 김포와 인천 공항을 드나드는 민항기의 항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차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수시로 드나드는 걸 볼 수 있다.
내 기억으로는 용인 고기리 유원지에서도 하늘에 비행기를 지나다녔으며, 관악산 중턱의 서울대 공대 인근에서도 비행기가 보였다. IT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판교 테크노 밸리에는 민항기는 없고 군 수송기가 수시로 날아다닌다.

고양시에 있는 한국 항공 대학교는 수도권이라는 위치는 괜찮지만 R-75를 포함한 온갖 제약들 때문에 정작 본캠에서는 비행 실습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조금만 삐끗하면 민항기 항로 침범에다 청와대 근처, 군부대 근처, 휴전선 근처 등의 태클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수로 거기를 침범했다간 곧장 경고 방송에 갈굼과 욕이 쏟아진다. 그래서 비행 실습장은 멀긴 해도 공간 제약이 없는 지방으로(울진이라든가..) 옮겼다.

자, 항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서 국내에서 특별히 비행이 추가로 금지된 곳은.. 바로 원자력 관련 시설 주변이다.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들 인근은 엄격한 비행 금지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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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을 벗어나 전국 단위의 비행 금지 구역 지도를 보면 대전 일대가 수도권 이상으로 꽤 넓게 비행 금지 구역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중심지가 세종시도 아니고 정부 청사도 아니고 군 본부가 있는 계룡시도 아니고 대전 북부인데...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 원자력 연구원'이다. 건물 한두 채가 아니라 대학 캠퍼스 급의 거대한 단지이며 고속도로 나들목과도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지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최고급 보안 시설이다. 똑같이 민간 지도에 안 나와 있지만 국방 과학 연구소, 국정원 등에 비해서도 굉장히 인지도가 없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얘 때문에 대전에서는 하늘에 비행기를 볼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객의 입장에서도 서울에서 부산(혹은 그 반대)을 비행기로 가면 육로로 갈 때와는 달리 대전을 구경할 일이 없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사실, 서울에서 부산의 직선 경로 자체도 대전이 아니라 충북 중앙을 관통하는 과거의 영남대로가 더 지름길이기도 하고 말이다.

지방으로 나가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제낀 명시적인 비행 허용 구간에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 개인이 싸제 무인기를 띄울 수 있다. 단, 이것도 고도 150m 이내 한정이기 때문에 건물로 치면 4, 50층 정도 높이까지만 가능하다. 더 높이 띄우려면 여전히 허가를 받아야 함. 그리고 시간대 제약도 있는지라 해가 떨어진 뒤에는 비행을 할 수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락없이 민통선 출입 제약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비행체들은 땅으로 뭘 떨어뜨린다거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추락하는 초대형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인기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원격 조종자가 자기가 조종하는 비행체를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거리까지만 비행체를 보낼 수 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은 밤에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같은 비행기를 향해 장난으로라도 레이저 포인터를 쏘지 말아야 하듯(조종사의 시력과 비행기의 안전을 크게 해치는 범죄임), 싸제 무인기를 띄우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자동차야 반드시 등록시키고 번호판을 달게 해서 통제한다지만, 비행체들은 일일이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더 강력한 규제가 불가피한 것이다. 꼭 무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 여행 갈 일이 있으면 여기는 비행기 항로 근처인지 아닌지를 본인은 더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 비행 관련 여담:

1. 과거 항공의 선구자들은 참 엄청난 자유를 개척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 린드버그 같은 사람은 기술적으로는 참 미약하고 허접했겠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대공 레이더, 비행 신고와 허가, 영공 통과료 같은 복잡한 물건이나 제도가 없던 시절에 자작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너서 다른 나라로 가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겨우 KTX 비슷한 속도밖에 못 내는 프로펠러기로 30몇 시간을 잠을 안 자고 혼자 비행기를 조종했댄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해서 환영 인파들에게 최소한의 인사만 한 뒤 곧장 호텔로 돌아가서 잠부터 잠..;;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군함을 타고 왔다.

2. 영어로 fly는 '날다' 이상으로 날아서 '이동하다'의 뜻이 더 많이 담긴 단어 같다. 그래서 fly to New York 같은 말도 쓰이고 비행기 운항편을 일컬을 때도 저 단어 자체를 명사화해서 flight라고 부른다.
무하마드 알리의 명대사 "나비처럼 날아가서 벌처럼 쏜다"의 영어 동사는 fly가 아니라 의외로 float이다. 굳이 물에만 뜨는 게 아니라 공중에 붕 뜬다는 뜻.
본인은 개인적으로 저 문장을 FPS Quake의 매뉴얼에서 처음 봤다. Scrag라는 몬스터에 대해서 무하마드 알리의 말을 인용해서 설명해 놓았는데 저게 딱 정확한 묘사이다. 공중에 둥둥 떠 있기만 한 놈이므로.

Posted by 사무엘

2016/03/31 08:30 2016/03/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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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호등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보행자용 신호등, 자동차용 신호등, 심지어 철도 차량용 신호등이 다 있다. 신호등은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이고, 지금과 같은 전기식 신호등에 지금과 같은 색깔 관행이 정착한 건 20세기 초쯤이다. 처음에는 정지 신호가 빨강이 아니던 시절도 있었는데, 철도던가 자동차던가 어디서 한번 신호 오인 때문에 대판 사고가 난 뒤에 빨강으로 변경됐다는 걸 읽은 기억이 있다.

다른 신호등은 그냥 별 특징 없는 색깔등에 불과하지만 보행자용 신호등은 색깔뿐만 아니라 사람이 선 모양과 걷는 모양이 추가적으로 그려져 있다. 모든 나라에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나라는 그렇다. 색깔뿐만 아니라 정말 motion으로도 이때는 건너도 되거나 반드시 서야 한다는 걸 표시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단순히 X나 O 모양도 아니고 굳이 사람 모양을 그렸다.

그런데 이것 아시는지? 우리나라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처음에는 색깔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고 사람 형상은 검정 고정이었다. 그랬는데 나중에 신호등이 쫙 교체되면서 검은 배경에 사람 형상이 빨강 내지 초록인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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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특별한 이유는 없고, 신호등이 단순한 전등에서 전기를 덜 잡아먹는 LED 소자 기반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구 하나를 켜는 게 아니라 사람 그림 모양의 픽셀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신호등의 점등 모양도 지금처럼 바뀌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보행자 신호등에는 남은 시간도 게이지 내지 숫자로 표시되게 UI가 개선되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신호등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 샌가 다 교체되었다.

신호등은 전국의 교차로와 횡단보도에 이거 뭐 한두 개가 있는 게 아니며, 마치 냉장고처럼 사실상 24시간 반영구적으로 가동되는 물건이다 보니 거시적으로 볼 때 전력 소모가 엄청나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전기를 덜 먹는 방식으로 교체하면 투자 비용을 생각보다 짧은 시간 만에 회수할 수 있다.
백열등도 효율이 너무 안 좋다고 국가에서 나서서 퇴출시키는 마당에 하물며 신호등이겠는가. (그나저나 처음 켤 때 깜빡거리는 형광등도 마지막으로 본 지 굉장히 오래 됐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보행자에 이어 자동차용 신호등에도 빨간불이나 파란불에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면 어떨까?
악명 높은 노란불 딜레마를 예측하고 대처하는 데 유리해지는 면이 분명 있겠지만, 운전자들이 저걸 보고는 더 조급해져서 사고가 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고 있으라고 도입을 안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경상북도 봉화군은 얼마나 차량 통행이 없고 한적했으면, 대부분의 도로 교차로가 그냥 황색 점멸일 뿐이라고 한다. 그 지경이라면 차라리 로터리를 만들면 신호등을 운영할 필요가 없고 좋을 텐데. 단, 로터리는 공간 소모가 더 크다는 단점이 있다.

빠른 교통수단은 단위 시간 동안 더 긴 거리를 이동하며 더 많은 공간을 점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얘가 차지하는 트래픽 때문에 느린 교통수단은 신호 대기 때문에 표정속도가 더 떨어지는 효과가 난다. 이것도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자동차 신호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보행자는 교차로에서의 신호 대기 때문에 동일 구간에서의 통행 소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철도만 해도 KTX 때문에 기존선 구간에서는 일반열차들의 통행 시간이 더 길어진다. 영등포 역에서 KTX를 먼저 보내 주고 출발하느라 하위 열차들은 몇 분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통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다.

2. 자동차의 국제화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국제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각 나라의 언어마다 달라지는 GUI 요소들을 별도의 파일로 분리하곤 한다. 소스 코드를 고쳐서 재빌드를 하지 않고도 이 데이터만 추가하거나 교체하면 새로운 언어에 대한 지원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말이다. 그나마 문자 코드 하나는 유니코드 덕분에 천하통일이 이뤄진 관계로 일이 예전보다 많이 수월해졌다.

그런데 자동차에도 이렇게 각 국가별로 따로 세팅을 해야 하는 요소가 있다. 물론 자동차 내부에서 동작하는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같은 건 프로그램 차원에서 다국어 UI를 갖춰야겠지만, 그런 것 말고 대시보드나 계기판에 있는 간단한 표현들은 그냥 영어 원어 표현을 냅두지 그런 걸 일일이 다 현지 언어로 바꾸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1) 운전대의 위치와 (2) 속도계 숫자의 단위이다.

세계적으로는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좌측통행을 하는 소수의 나라들이 영국과 영연방, 과거에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 그리고 영국식으로 근대화를 한 일본처럼... 존재감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러니 좌측통행용 우핸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건 마치 글자를 쓰는 방향이 L2R이냐 R2L이냐 하는 문제 같다. 아랍권에서는 프로그램의 세로 스크롤 막대가 창의 오른쪽 구석이 아니라 왼쪽 구석에 있다.

요즘 자동차 중에는 운전석 쪽 대시보드와 조수석 쪽 대시보드의 외형이 대칭이 되게 해서 좌핸들과 우핸들을 동일 생산 라인에서 최대한 저렴하게 동시 처리 가능하게 설계된 경우가 있다. 이건 마치 양손잡이용 가위 내지 마우스 같은 컨셉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가 더 오래 지속되고 일제 치하에서 도로 시설이 확충되고 자동차가 대중화됐다면, 한반도까지 좌측통행 지역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해방 당시까지 한반도에는 등록된 자동차 수가 1만 대가 채 되지 않았으며, 서울을 제외하면 압도다수의 길이 여전히 차선이고 신호등이고 뭐고 없는 비포장이다 보니 여전히 자동차의 통행 방향은 그냥 정하기 나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군정이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었던 1946년 4월에 한반도에서 자동차의 통행 방향은 우측으로 개정되었다. 그래야 우측통행을 하는 미국에서 들여온 좌핸들 차량들이 별다른 불편 없이 한반도에서 곧장 다닐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철도는 사정이 어떨까? 철도야 조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대가 어디에 있든지 별 의미가 없다. 국내에는 수도권 전철 4호선처럼 한 전동차가 좌측통행 구간(국철 과천· 안산선)과 우측통행 구간(서울 지하철 4호선)을 아예 직통 운행까지 한다. 자동차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또한 해방 당시엔 통행 방향의 구분이 필요한 복선 철도 자체가 경부· 경의선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때 마음만 먹고 좀 매몰비용을 감수했다면 철도의 통행 방향도 우측으로 과감하게 확 뜯어고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철도는 여전히 좌측통행으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자동차처럼 차량의 운전대 방향을 꼭 맞춰야 할 필요가 없었고, 또 기존 철도역들의 시설을 고치는 게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또한 이건 정말로 그냥 하나로 정하기 나름일 뿐, 무슨 협궤-표준궤 개궤라든가 100-220V 승압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꼭 바꿔야 할 과업까지는 아니기도 하니까.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근대화· 산업화가 한 박자 늦었던 대신, 그래도 전압이나 철도 궤간 같은 건 깔끔하게 통일이 잘 됐고 승압 같은 것도 너무 늦어지기 전에 잘 해냈으니 이건 다행스러운 점이다.

좌측 우측 얘기가 길어졌고, 다음으로 속도계 단위이다. 이건 잘 알다시피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터법을 안/못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세계 최강대국이다 보니.. 빼도 박도 못하고 생긴 고려 사항이다.
미국의 자동차 속도계를 보면 바깥에 큰 숫자로 마일이 적혀 있고, 안쪽에 작은 숫자로 킬로미터가 적혀 있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다니는 자동차에다가는 굳이 그렇게 안 해 줘도 된다. 미국의 프리웨이는 속도 제한도 시속 55~65마일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얼추 시속 100km에 대응한다.

3. 차선의 색깔, 가변 차로 등

외국의 자동차 주행 동영상을 보면서 본인이 굉장히 놀란 점이 있는데..
중앙선 차선이 우리나라처럼 황색 실선이 아니라 그냥 흰색 실선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북한도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거기는 아예 차선이 안 그려지고 길만 덩그러니 놓여 있거나, 그냥 중앙분리대가 따로 있는 경우가 더 많지만)

흰색 실선은 같은 방향인데 차선 변경을 할 수는 없는 터널 같은 구간에서 쓰는 게 아닌가?
하나만 그은 것과 두 줄을 그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 같은 사람은 좀 혼동할 것 같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차를 외국으로 수출할 때, 고급차에 들어가는 중앙선 침범 감지 장치의 알고리즘까지 고쳐야 한 사례가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중앙선이 아니라 도로의 가장자리에 그어진 황색 실선은 이 도로가 주· 정차 금지 구간임을 뜻하고, 황색 점선은 잠시 정차만 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흰색 선이거나 가장자리에 선이 없으면 그런 제약이 없다는 뜻이고.
차선 색깔의 구분이 없으면 그런 것도 표현을 못 할 텐데 말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만한 사항은 가변차로이다.
가변차로는 양쪽의 방향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것이 있다. 전자는 고속도로에서 시간대별로 갓길과 차로를 병행하는 구간으로, 점선이든 실선이든 흰색 선이 그어져 있다. 예전에 고속도로에 간간이 있었던 버스 정류장 부지가 지금은 진짜 갓길 내지 졸음 쉼터로 재활용되는 추세이다. 갓길이 차로 모드가 아니라 갓길 모드일 때 무단으로 통행했다가는 나중에 피본다.

한편, 후자는 시간대별로 상· 하행의 교통량의 편차가 큰 시내 구간에서 중앙의 몇 개 차선을 방향별로 가변적으로 운행하는 구간이다. 차선으로는 황색 점선이 그어져 있다. 전체 차선 수가 애매하게 홀수 개가 됐다거나 할 때도 가변차로를 검토할 만하다.

후자 가변차로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볼 수 있지는 않다. 서울에서 대표적인 곳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상왕십리-왕십리 구간의 지상 도로 정도이다.
여기는 운전자가 헷갈리면 차선을 잘못 진입해서 자동차끼리 정면충돌 사고가 날 수 있어 88 올림픽 고속도로 뺨치게 대단히 위험하다. 위에 지금 진입 가능 방향과 금지 방향이 전광판으로 표시되어 있으니 그걸 잘 봐야 한다. 오거리· 육거리에서 어느 신호등이 우리 방향 것인지를 헷갈려서 잘못 진입하는 식의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가변차로라고 해서 대책 없는 막장으로만 운영되는 건 아닌지라, 한 차로의 통행 방향이 바뀔 예정이라면 그로부터 한참 전부터(거의 10분 가까이) 완충 타이밍을 둔다. 모든 방향으로부터 차들의 통행을 금지시키 시작하여, 해당 구간 전체가 텅 비었을 때 비로소 방향을 반대로 바꾼다. 재미있지 않은가?

지하철만 해도 승강장이 섬식이면 한 승강장을 양방향 승객이 모두 공유하는 관계로, 출퇴근 때처럼 방향별 이용객 수의 편차가 클 때 공간 활용 효율이 더 올라간다. 그리고 선로가 단순히 복선이 아니라 3선이라면, 한 선로를 무정차 회송 선로로 활용하여 몰리는 방향의 열차를 반대 방향 열차보다 더 자주 투입시키는 게 가능하다.

가변차로는 자동차의 통행에서 비슷한 효과를 노린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설을 구축하는 데 든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고 심리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껴지는지라 요즘은 더 만들지 않고 기피되는 추세이다. 마치 옛날에 산업화·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서울 시내 고가도로들이 요즘은 반대로 철거되는 추세이듯이 말이다.

아이고, 차선 하나만 갖고도 색깔부터 시작해서 할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자동차가 어느 정도 신호 대기 없이 쭉쭉 달리는 곳이라면 어지간한 4차선짜리 국도에도 요즘은 단순 중앙선 대신 중앙분리대가 설치되곤 한다.

졸음운전 내지 빗길에 미끄러진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멈춰선 경우가 지금까지 한둘이었던가. 중앙분리대는 중앙선 침범 정면충돌 교통사고를 예방해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중앙분리대는 밤에 반대 방향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가려 주는 역할도 해서 더욱 좋다.
양방향 사이에 화단을 조성하거나 아예 방향별로 도로를 따로 만든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흔치 않다.

실선 차선 구간이라 하더라도 자동차 운전 중에 차선을 변경하려면 C/C++에서 서로 다른 타입의 포인터끼리 대입할 때처럼 깜빡이라는 형변환 연산자를 꼭 넣어 줘야 할 것이다. 안 하면 최소한 쌍라이트+쌍욕+경적이라는 warning과, 최악의 경우 사고라는 에러가 날 가능성이 커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08 08:25 2015/02/0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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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진 2015/02/09 01:54 # M/D Reply Permalink

    차선 색깔 하니 생각나는 게, 미국에서는 보도 경계석에 빨간색을 칠해 주정차금지 표시를 하더군요. 다른 색깔로 주차금지나 주차 가능이나 그런 것을 표시하고요.

    1. 사무엘 2015/02/09 20:24 # M/D Permalink

      오옷~ 빨간색 차선이라.. 저는 미국에서 딱히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상상이 잘 안 되네요. ^^
      횡단보도 신호등과 자동차 교차로 신호등이 서로 꽤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2. Lyn 2015/02/09 21:12 # M/D Reply Permalink

    이 글을 보고서야 요즘 형광등은 깜빡이지 않는다는걸 알았습니다.

    1. 사무엘 2015/02/10 10:32 # M/D Permalink

      그건 원래 형광등의 상징적인 특징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신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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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러가지 교통 관련 썰을 좀 풀어 나가도록 하겠다.

1.
지난 추석 때, 고향을 왕래하는 고속버스 차창 밖으로.. "고속국도 제1호선 언양-영천간 확장 공사" 라고 표지판이 붙고 터가 닦여 있는 걸 봤다.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 이래로 지난 40여 년간 최후까지 오리지널 4차선 그대로 남아 있었던 마지막 구간까지도 드디어 확장된다니 감회가 새롭다.
이 고속도로에 대해서는 3년 남짓 전에도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경부 고속도로의 옛날 사진을 보면 중앙 분리대가 화단 형태로 된 모습이 있어서 무척 신기하게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한 옛날에는 일부 직선 구간(성환, 신갈)은 아예 물통 같은 임시 중앙 분리대만 만들어 놓고 유사시에 활주로로 쓸 수 있게 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해당 구간을 잠시 폐쇄하고서 전투기 이착륙 훈련을 한 적도 있다.
아래 사진은 신갈 활주로에서 실제로 훈련을 하던 모습이다. 신갈 일대 고속도로 좌우 모습이 저랬을 정도이면, 아니 경부 고속도로의 수도권 구간을 폐쇄하는 게 가능했을 정도이면 지금으로부터 엄청, 굉장히 먼 옛날의 일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단 형태든 임시 형태든.. 경부 고속도로의 중앙 분리대가 모습이 저랬다는 것은 오늘날로서는 참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처음에는 전구간 4차선으로 건설되었다.
지금이야 88 올림픽만이 전국 유일의 겨우 2차선짜리 고속도로라고 까이지만, 옛날에는 반대로 경인과 경부 정도만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다차선이었다. 2차선 고속도로는 여럿 있었다. 당장 호남이나 영동 등.
그런데 옛날에야 그렇다 치더라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높으신 분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고속도로를 마치 88 올림픽처럼 겨우 2차선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중앙 고속도로인데.. 이건 마치 21세기에 개통 예정인 철도를 표준궤가 아닌 협궤 크기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막장 행위였다. 이것은 다행히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끝에 뒤늦게 4차선으로 허겁지겁 개조되었다.

감사원? 철도에서 일산선 건설도 서울 지하철 3호선처럼 우측 직류 규격으로 임의로 바꿔서 과천-안산선처럼 꽈배기굴 시즌 2가 생길 뻔한 것을 막은 그 기관 말이다. 철도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만들 때도 그나마 세금값을 했다.

2.
철도 경부선은 영업거리표 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공식 거리가 441.7km이다.
옛날처럼 지금의 서울 역(그 당시엔 남대문) 이북으로 레알 서울 역이 있고, 지금의 부산 역(그 당시엔 초량) 이남으로 진짜 부산 역이 또 있었다면 거리는 지금보다 2km 남짓 더 길어졌을 것이다.
한편, 경부선 철도에 상응하는 경부 고속도로의 전체 거리는 416.4km이다. 개통 당시엔 428km가량이다가 선형 개량을 통해 더 짧아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경부 고속도로는 경주와 울산을 거쳐서 크게 우회하는데 어떻게 유사 노선의 철도보다 거리가 이렇게 짧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경부선도 서울 구간에서는 서쪽 영등포 방면으로 우회를 좀 해서 동선이 안 좋지만, 그래도 고속도로에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바로 시내 구간의 포함 여부이다.
철도는 서울 역이라는 서울 도심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부산 역도 부산 시내를 다 관통한 후 완전 최남단에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양재 IC라는 서울 남쪽 외곽에서 끝나고, 부산도 시점인 구서 IC는 부산의 북쪽 끝자락이다.
양재IC - 서울 역 내지 구서-부산 역만 쳐도 각각 직선 거리만 거의 15km에 달한다.

이걸 퉁쳐 주면 고속도로나 철도나 거리는 서로 비슷해진다.
경부선 기존선이 아니라 서울-대구 구간을 고속선으로 달리는 KTX는 서울-부산 전체 주행 거리가 408km대로 크게 감소한다. 경부고속선이 기존 선로의 구불구불하던 주름을 얼마나 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대구 이남 구간은 고속선이 경주와 울산을 경유하기 때문에 KTX의 거리는 423.8km로 15km 남짓 증가한다.

3.
교통· 운수 업계에서는 경사로의 기울기나 차량의 등판능력을 말할 때 각도가 아니라 언제나 기울기(탄젠트)를 쓴다. 고정된 X축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높이 Y가 바뀌는 비율인 것이다.
요즘은 자동차 제원표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보통 등판능력이 0.3xx가 나오는데, 그것도 탄젠트이기 때문에 실제 각도는 10몇 도 정도이다. 도로 표지판에서 볼 수 있는 5% 경사, 10% 경사 이런 것도 당연히 탄젠트 값임.

우리나라 K2 전차의 홍보 영상을 보니 무슨 60도 경사를 오른다고 자랑을 하던데.. 이건 오류이다.
45도보다도 높은 60도 경사를 오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사실은 탄젠트 0.6에 해당하는 거의 30도대의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그 정도 경사를 오르려면.. 엔진 힘뿐만이 아니라 무한궤도를 이용한 접지력이 정말 살인적인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철도 차량은 일반 육상 차량보다 등판능력이 훨씬 뒤떨어지기 때문에 백분율도 아니고 천분율을 써서 '퍼밀' 단위로 표기한다. 각도로는 2도가 채 안 되는 30 퍼밀 정도의 경사도 철도 차량에게는 우리나라의 태백선 같은 산악 철도에서나 볼 수 있는 굉장한 급경사이다. 견인 중량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 쇠 바퀴와 쇠 선로는 마찰도 작으니 등판능력이 쥐약일 수밖에 없다.

육상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상승/하강률도 기울기로 표기된다. 1000m를 이동하는 동안 고도가 몇 m 바뀌는지가 기준이다. 우주왕복선은 엔진이 없이 글라이더 활강을 하기 때문에 일반 여객기보다 하강률이 훨씬 더 높다. 정확한 숫자를 본 적이 있었는데 또 찾기는 귀찮..;;

이렇게 업계에서 각도 대신 탄젠트가 즐겨 쓰이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는 고저차를 무시한 이동 거리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며, 또 경사각이 올라갈수록 차량에게 필요해지는 동력 같은 각종 물리량도 각도가 아니라 탄젠트에 비례해서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탄젠트가 현실적인 의미가 더 크고 유용하다는 뜻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11 08:29 2014/12/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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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여 년 전,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자동차 화보를 만들던 때까지만 해도 자동 변속기는 상당한 고급 사양이었다. 운전을 매우 편리하게 해 주는 대신 더 무겁고 비싸고, 연비도 좀 더 낮고, 수동이 5단까지 변속되던 반면 자동은 그 당시에 4단이 한계였으니..

효율이 떨어지는 건 엔진 성능이 받쳐 줘야 했으므로 자동 변속기는 더욱 더 고배기량 고급 승용차하고나 어울리는 사치품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차의 앞이나 옆에 AUTOMATIC이라는 표식이 붙어서 자기가 자동 변속기 차량임을 따로 티를 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승용차 중에서는 오히려 재래식 수동 변속기 차량을 거의 볼 수가 없게 됐다. 정말 격세지감이다. 수동은 수요가 적어서 중고로 팔기 어렵고 덩달아 감가상각도 크다 보니 더욱 기피된다. 급발진 사고 트라우마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일부러 수동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동을 운전한 경험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 당장 나도 이제 수동을 몰아 보라고 하면 막막할 것 같다. 면허는 1종 보통을 땄지만 면허를 딴 이래로 수동을 운전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르막에서 시동 안 꺼트리고 부드럽게 출발하라면 할 수 있을까? ㅎㅎ

1종 보통 면허를 딸 때 연습용으로 쓰는 차량은 1톤 트럭으로, 앞에 보닛이 없고 후륜구동에 수동 변속기인지라 승용차하고는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물건이다. 그러니 더욱 빨리 잊혀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서는 심지어 차 도둑이 차를 훔쳤는데 차가 수동이어서 운전을 못 하는 바람에 절도를 실패하는 촌극까지 실제로 벌어졌을 정도라고 한다. 자동 몰듯이 수동을 몰면 차는 십중팔구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털털거리다 시동이 꺼져 버릴 것이다. 브레이크만 밟고 있으면 차가 부드럽게 시동이 유지된 채로 서 있는 것부터가 수동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니 뭐...
억울하면 차도둑들은 수동 면허를 따든가, 아니면 문 따기 전에 차의 변속기 모양부터 좀 살펴봐야 할 듯하다..

기사 1 / 기사 2

그리고 다음은 이런 추세와 관련하여 뭔가 <방망이 깎던 노인>스러운 회상을 한 글이다. 나는 수동변속기가 싫어요? 아~ 섭섭한 세상
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기계 다루기가 편리해진 대신에, 무슨 인간미가 사라지고 애정이 사라지고 각박해지고 어쩌구 하는 것에 대한 한탄· 아쉬움이 담겨 있다.

소개하는 링크의 글에 대해 모든 사람이 논조에 100% 공감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는 모름지기 왼발로 클러치를 확 밟았다가 서서히 떼고 속도대별로 스틱을 일일이 조작하면서 양손과 양발로 온몸으로 차와 교감을 나누며 몰아야 진정한 운전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저 D에만 맞춰 놓고 액셀만 밟으면서 시속 100이 될 때까지 일방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자동변속기가 무슨 놈의 자동차 운전이냐? 그건 걍 카트 조작일 뿐이지? ㄲㄲㄲㄲ” 식이다. ^^

게다가 어떤 대학생들이 차를 렌트해서 여행을 떠나는데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애가 벌칙으로.. 송충이 씹은 표정을 지으며 운전석에 앉더란다. 이걸 보고는 글쓴이는 완전 경악한다. “세상에.. 우리 때만 해도 저런 상황에서는 서로 운전을 앞다퉈 '하고 싶어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이게 뭐냐. 말세다 말세.. ㅠ.ㅠ”

이런 식으로 생각하자면, 컴퓨터에 대해서도 컴덕들이 세상 한탄할 거리는 아주 많을 것 같다.
차 자체에 대한 대중의 평균적인 관심과 애정, 교감이 줄어들어 가는 게 차덕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온갖 분야에서 공부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게 많은 복잡한 이 시대에 모든 사람이 차덕일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 아니겠는가.

이런 글을 읽을수록 나도 정말 수동을 다시 몰아 보고 싶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트럭 몰고 배추 장사라도 하는 날이 오지 않는 한, 이런 추세에 수동은 이젠 몰고 싶어도 못 몰 거 같다. ^^
단, 오르막에서 정지 상태에서 뒤로 안 밀리고 시동 안 꺼뜨리고 부드럽게 출발하는 건.. 제아무리 수동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1종 보통 면허를 딴 본인도 그 뒤로 장롱면허 기간이 장기화되고, 운전을 시작한 뒤에도 수동을 몰 일이 없어지면서, 운전 학원을 다니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운전 습관이 정착했다.
어느 샌가 독실한 양발 운전자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내가 '교정'한 오른손잡이이고,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축구공을 왼발로 차는 게 더 자연스러운 개인적인 성장 배경도 한몫 했다.
또한, 오른발로 일일이 브레이크/액셀 위치 이동을 0.n초간 하는 게 귀찮게 느껴져서이다. 그거 불편한 게, 왼발을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치게 배치하느라 불편한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양발 상태에서는 액셀이건 브레이크건 상시 얹어져 있는 쪽의 발에다 바로 힘만 주면 되니까.

비상 상황이 아닌 이상 브레이크는 최대한 부드럽고 살살 천천히 밟아야 하는데, 액셀에서 브레이크로 발을 옮기는 건 신속하게 해야 하면서 그 뒤에 페달을 밟는 건 천천히 해야 하니, 이런 것에 심리적으로 부담을 좀 느꼈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양발 운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굉장히 위험하니 자세를 당장 교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지만 위급 상황에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잘못 밟을 수 있다는 식의 얘기는 괜한 편견인 것 같다. 액셀/브레이크를 분간 못 한 사고는 오로지 오른발만 쓰는 한발 운전으로도 실수로 얼마든지 낼 수 있다.

그리고 자세가 안 좋다는 건 당장은 일리가 있는 지적일지 모르나, 지금 같은 오른발 한발 위주로 맞춰진 액셀/브레이크 페달 배치에서나 성립한다. 아예 양발운전에 최적화되어 브레이크가 왼쪽에 딱 맞춰 달려 나온 차가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박 진규'라는 분이 양발 운전 계몽가로 활동하고 있는 듯. 우려와는 달리 위험하지 않으며, 발을 움직이는 찰나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으니, 오히려 자연스럽고 좋다고 열심히 알리고 다닌다. 이런 민간 차원에서의 운동 외에, 양발 운전의 능률/안전성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고찰이 이뤄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저런 사람을 보면 마치 오토바이도 고속도로와 자동차 전용 도로 진입을 허용해 줘야 한다고 운동하는 어떤 사람과 비슷한 인상이 느껴진다.

아무튼 한발이냐 양발이냐 하는 건 타자를 독수리 타법으로 치냐 열 손가락으로 치느냐 같은 차원은 아니며, 단순히 세벌식에서 ㅋ을 약손가락(4)으로 치냐, 새끼손가락(5)으로 치냐 같은 차원의 단순 취향 문제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잘 알다시피, 액셀과 브레이크를 오른발로 번갈아가며 밟는 관행은 전적으로 수동 변속기에서 유래되었다.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양발이 동시에 밟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액셀과 브레이크는 한 발이 한데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다가 자동 변속기로 오면서 클러치 페달이 없어졌지만, 왼발은 그대로 무보직(?) 잉여로 전락하고 나머지 두 페달은 여전히 수동 시절과의 호환성(?) 차원에서 오른발만의 전유물로 남게 되었다.

수동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면 굳이 이 구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수동이라 해도, 가속+변속 중엔 클러치만 따로 밟을 수 있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언제나 클러치도 같이 밟는다. 그러니 브레이크 하나만 밟을 때에도 클러치가 자동으로 밟아져서 엔진 동력이 끊어지게 만들면..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을 일이 없으니 양발운전이 이론적으로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드나.. 클러치라는 건 그렇게 동시에 밟았다가 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그리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건 흥미로운 논쟁거리 같다.
그나저나, 지난 2010년부터는 자전거의 핸들에 연결되는 브레이크의 방향도 옛날에는 오른손이 앞바퀴, 왼손이 뒷바퀴였는데 왼손이 앞바퀴, 오른손이 뒷바퀴로 바뀌었다.
위급할 때 오른손/오른발이 먼저 동작하기 때문에 오른손에 뒷바퀴 브레이크를 연결하여 자전거가 헛도는 현상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글쎄, 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넘어지거나 자빠질 때 본인은 의도적으로 왼손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게 스스로 철저하게 훈련하고 지내며,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대처해서 왼손을 다치고 다른 신체 부위나 물건을 지킨 적도 있었다.
내가 왼손잡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왼손이 덜 중요한 손이니 왼손을 위험에 먼저 노출시키겠다는 의도에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1/22 08:41 2014/11/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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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록 2014/11/23 21:36 # M/D Reply Permalink

    용묵님의 날개셋 입력기와 편집기를 매일 사용하는 유저 1人 입니다. 좋은 도구를 만들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저도 한때는 양발 운전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출장을 가서 제가 운전을 하고 다니는데 부장님께 많이 혼나서 한발로 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용묵님과 마찬가지로 차를 몰 일은 별로 없지만 양발 운전을 하고 싶긴 합니다.

    세벌식도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입력 속도와 타수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누가 제 노트북 만질 때는 이게 뭐냐고 할 때도 있구요. vm이나 teamviewer작업 할 때 다소 불편한 점 등 아쉬운 상황도 더러 있습니다.

    제 마이너한 성향이 타고난 것이고 나름의 재미와 자부심(?)도 있지만 가끔은 이런 성향 때문에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흑흑....ㅜㅜ

    1. 사무엘 2014/11/23 22:28 # M/D Permalink

      저도 마이너라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성향인 거 아시죠? ㅎㅎ
      옆자리에서 운전석의 다리 부위까지 보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이것도 젓가락질처럼.. 똑바로 안 하면 윗사람에게 지적 받을 만은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동 변속기 클러치를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고 동력비 변환 쪽으로 기술적인 제약이 없다면 굳이 꼭 오른발만으로 두 페달을 모두 밟게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타자에서 오른손/왼손 교대를 하는 것처럼요.
      마치 수동 변속기가 글자판 논쟁에서 기계식 타자기 같은 legacy 신세가 된 느낌이네요. ^^

  2. 김재주 2014/11/23 21:43 # M/D Reply Permalink

    전 애초에 왜 발로 운전해야 하는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

    생각해보면 다리를 쓰기 힘든 사람들은 손으로 차를 가속시킬 수 있도록 한 차도 쓰는데요.

    오히려 가속/제동 같이 운전 중에 항상 써야 하는 기능에 손을 쓰도록 하고
    발으로 깜빡이 같은 거 넣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1. 사무엘 2014/11/23 22:28 # M/D Permalink

      실제로 그런 이유로 인해 철도 차량은 가속/제동을 손으로 마스콘이라는 레버를 밀고 당김으로써 합니다. 하지만 이건 철도 차량에는 조향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자동차의 핸들은 아무래도 배의 방향타로부터 유래된 물건일 테고, 이 때문에 가속과 제동은 페달 형태로 밀려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3. 빡션 2015/06/26 03:46 # M/D Reply Permalink

    저는 수동 덕후이면서 얌전히 운전하는 편이라 왼발이 브레이크 페달을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보통 세단 차들은 수동이든 자동이든 브레이크 페달 위치가 오른발로 밟기 좋게 나와 있는데 전에 한 번 친구 차 마쓰다 미아타를 타 보니까 수동인데 브레이크 페달이 가운데 있더군요. 클러치랑 아주 가까워서 브레이크에 왼발 오른발 둘 다 써도 될 듯했습니다.

    1. 사무엘 2015/06/26 10:22 # M/D Permalink

      이 글을 게시한 뒤 개인적으로 자가교정을 좀 해서 요즘은 저도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그럭저럭 밟고 있습니다.
      하지만 (1) 제가 스스로 밟는 게 아니라 돌발상황에서 갑자기 밟을 때, 혹은 (2) 주차하느라 전· 후진 변속을 자주 해야 할 때, (3) 오르막에서 바로 출발해야 할 때는 여전히 왼발이 편하더군요.
      제 차도 브레이크가 오른쪽에 확 치우쳐 있다기보다는 그래도 가운데-오른쪽에 가까운 쪽이어서 왼발이 자연스럽게 닿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가위로 치면 딱 오른손 파지 최적화라기보다는 양손잡이 형태여서 그런 거겠지요~

      그나저나 저도 수동을 다시 좀 몰아 보고 싶은데 트럭· 버스가 아닌 이상 앞으로는 몰고 싶어도 못 몰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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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 중에 수시로: 눈치껏 차선 바꾸고 잘 끼어들고 들이대기 (배짱과 순발력)
2. 운전하는 전체 시간 내내: 한눈팔지 말고 앞차가 갑자기 서 버리거나 길 옆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상황에 대비하기 (멘탈의 지구력이 뛰어나야 함)
3. 목적지에 도착한 후: 이 차가 차지하는 공간과 최소 회전반경을 숙지하여, 좁은 곳에서도 차 안 긁고 주차 잘 하기 (공간 감각)

(0. 운전하기 전 평소에 최소한의 자동차 점검 내지 정비 능력, 그리고 차량 고장이나 사고 발생시 멘붕·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는 능력)

이들이 서로 완전히 별도의 독립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게 틀림없다.
운전 학원에서 교육하고 면허 시험을 치는 내용도 이런 분야에 맞춰서 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각종 운전 잡설.
승용차는 내 몸뿐만 아니라 나만의 자그마한 개인 공간을 함께 이동시켜 주는 물건이며, 대중교통과는 달리 차를 타러 가고 기다리고 갈아타는 과정에서 까먹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굉장히 아껴 준다.

또한 이동 과정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나 온도 변화를 야기시키지 않아서 더욱 좋다. 그런 외부 요인으로 인해 몸에 피곤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업무 능률과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가령, 밖에서는 추워서 옷을 껴입고 있다가 지하철 안에서는 더워서 옷을 벗는 식으로 온도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밖에 비가 내리고 있으면 대중교통에 비해 자가용의 아늑함, 안락함과 편리함이 크게 증가한다. 비록 도로 사정 때문에 신속함(속도)은 별로 증가하지 않을지 모르더라도 말이다.

본인도 비 내리는 밤에 차에서 야영을 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비는 차의 외형을 매우 더럽힌다는 점에서는 악재이다. 그 빗물이 흐르다가 마르면 물방울 모양으로 온갖 더러운 흙먼지 자국이 차의 표면에 남기 때문이다.

본인은 처음에는 “어제 세차했는데 오늘 비 오네”라는 푸념이, 굳이 세차를 할 필요가 없는데 해 버렸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저 말은 어제 기껏 세차를 해 놓은 게 또 아무 소용 없어지게(=차가 더러워지게) 생겼다는 뜻이다.

비 오는 날 밤의 운전은 비와 야간이라는 두 변수가 합쳐져서 매우 까다롭다. 빗물 때문에 도로가 미끄럽고 더 위험하니 평상시보다 감속이 필수인데, 시야 확보도 잘 안 된다. 단순히 전방 시야뿐만 아니라 본인이 현실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애로사항은.. 도로의 차선이나 횡단보도 정지선조차도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 에어컨
요즘 날씨가 날씨인지라 요 근래부터는 드디어 전구간 에어컨을 켠 채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정체 없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경제 속도로 원활히 주행하고 나면, 평소에 연비는 12km/l대는 거뜬히 나오는 편이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주 원활하게 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찍힌 주행 연비는 10.xkm대.

에어컨이 연비를 10~20% 가까이 깎아먹는다는 말은 사실인 듯했다. 실험으로 입증됐다.
에어컨을 켰다고 해서 차가 딱히 더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연비는 슬그머니 떨어져 있었다.

힘 좋은 디젤보다는 휘발유 차량이, 그리고 대형차보다는 저배기량의 소형차· 경차일수록 에어컨 틀 때 차가 타격을 받고 휘청이는 정도가 더 커진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엔진룸 쪽에서 무슨 기계가 추가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옛날에 만들어진 소형차의 경우 차 엔진 회전수가 대놓고 살짝 더 올라가기까지 한다.

자전거를 몰아 보면, 헤드라이트를 켜기 위해 바퀴에다 소형 회전 발전기만 좀 연결시켜도 그 발전기의 오버헤드 때문에 자전거 페달 밟는 게 약간이나마 더 힘들어진다. 하물며 자동차의 엔진에는 발전기가 상시 연결되어 있는데, 거기에다 에어컨 실외기뻘 되는 공기 압축기까지 연결되니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에어컨의 전력 소비량은 자동차에서 최상급으로 전기 많이 잡아먹는 부품인 헤드라이트보다도 수 배 이상 더 많다고 한다.
그러니 헤드라이트에 에어컨을 다 켜고 와이퍼까지 켜는 비 내리는 여름 밤에는, 성능이 시원찮은 소형차의 경우 주행 중에도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고 한다.

단, 이 에어컨의 전력 소비량이라는 게 안 그래도 엔진 힘까지 쭉쭉 빼 쓰고서 그것도 모자라서 또 전기까지 추가로 그렇게 별도로 쓴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설마?
추운 겨울에 히터는 엔진열을 이용해서 송풍기만 가동하여 거의 공짜로 가동할 수 있지만, 반대로 열을 밖으로 빼내는 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온도 말고 단순히 송풍기의 세기만을 바꾸는 건 어차피 연비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걸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앗싸리 에어컨 트는 게 나은지, 아니면 창문만 열어서 차라리 공기 저항으로 인해 연비가 떨어지는 게 더 나은지는... 이렇다 할 답이 없는 듯하다. 둘이 어차피 비슷하게 비효율적이니, 차라리 에어컨 틀어서 정숙하게 주행하는 게 대체로 더 낫다는 게 중론인 듯. (물론 당장 차의 동력 효율뿐만이 아니라 지구와 환경까지 거시적으로 생각한다면, 에어컨이 치르는 대가가 더 크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건 바꿔 말하자면, 공기 저항이 에어컨에 필적할 정도로 차의 성능을 깎아먹는 주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07 08:24 2014/06/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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