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강 위에 교량(다리)을 건설한다고 하면 우리는 강의 양쪽 건너편을 잇는 통상적인 형태의 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다리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강을 따라 그냥 물 위를 지나는 다리도 드물지만 있다. 쉽게 말해 강과 수직이 아니라 평행인 다리 말이다.
작은 개천의 경우 물줄기를 따라 그 위에다 길을 놓아서 개천을 완전히 덮어 버린 '복개 고가 도로'가 있긴 하다. 과거에 서울의 청계천도 그 위에 고가 도로가 닦여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철거된 걸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하지만 일개 도로만으로 복개가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폭이 큰 하천에도 남단이나 북단을 나란히 지나는 교량이 있다.
그런 교량은 아무 이유 없이 만드는 건 아니고.. 강을 따라 닦였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설되곤 한다. 차선수를 늘려야 되는데 한쪽은 강이고 다른쪽은 바위산이거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확장의 여지가 없을 때 말이다. 그럼 다리를 놓음으로써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강을 건너는 다리라면 남단과 북단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당연히 직선 형태로 만들어지는 반면, 강을 따라 지나는 다리는 교량 주제에 커브가 존재하기도 한다.
한강의 서울 시내 구간에서는 북단의 강변북로와 남단의 올림픽대로에 이런 다리가 모두 존재한다.
강변북로는 1970년대에 먼저 4차선이라는 초라한 규모로 건설됐다. 이거 건설과 확장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한때는 용산-왕십리 방면의 경원선 철길을 없애 버리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 철도 관계자가 이를 필사적으로 만류한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며, 경원선은 오히려 용산-성북 복선전철로 거듭났다.
그리고 강변북로의 기존 도로는 서쪽 방면 전용이 되고, 동쪽 방면 도로는 일부 구간이 교량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한편, 올림픽대로는 1980년대의 5공 시절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그 당시 분위기를 반영하여 평범한 '강변남로' 대신 저런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긴 이 도로는 김포 공항과 서울 올림픽 경기장을 직통으로 쭉 잇기도 하니 이름이 88 올림픽 '고속도로'보다는 훨씬 더 타당성과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대로는 노량진동과 동작동 사이의 2km 남짓한 구간이 '노량대교'라고 불리는 교량이다. 강변북로와는 달리 처음 만들어진 1986년 당시부터 상· 하행이 모두 교량이다. 다만, 30년 전 처음부터 지금 같은 광활한 10차선은 아니었으니, 지금 여기를 달려 보면 다리가 덕지덕지 작은 구획으로 나뉘었다가 확장되고 합쳐진 흔적을 볼 수 있다. 교량의 폭을 확장하는 건 터널의 폭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노량대교는 엄연히 이름이 붙어 있는 교량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대로 내부엔 교량 구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다리는 한강을 '건너는' 다른 교량들을 아래로 지나서 입체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운전자가 노량대교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샌가 교량에 진입했다가 어느 샌가 빠져나가 버린다.
다음으로, 서울을 빠져나가서 국도 6호선을 타고 양평 쪽으로 가 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아래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게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원래 거기는 험준한 지형 때문에 좁고 구불구불한 2차선짜리 도로였지만 1990년대에 공사를 통해 4차선으로 확장됐다. 남한강이 북한강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중앙선 철도로 치면 양수-신원 사이 구간)에서는 땅에서 도로를 확장하기가 여의찮은 관계로, 동쪽 방면 도로는 강변북로처럼 강 위에 교량을 나란히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설했다. 이 다리는 이름이 '용담대교'이며 지난 1996년에 개통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남)한강은 서울 시내 구간과는 달리 상수도 보호 구역이라는 것이다. 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일체의 개발· 건축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양평이 괜히 경치가 좋은 게 아니다. 강가는 온통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도 6호선의 교량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굉장히 특수한 공법을 동원해서 건설됐다고 한다.
끝으로, 유사한 사례가 아니라 대조군을 소개하고서 글을 맺겠다.
경부선 철도는 잘 알다시피 밀양의 삼랑진 역 이남부터 낙동강을 나란히 따라 달린다. 그런데 거기도 복선화 공사를 하면서 노반 확보를 어찌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한쪽은 그냥 강이고, 다른 한쪽은 바위산이었던 것이다.
경부선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교량을 만드느니 차라리 산에다 불가피하게 터널을 뚫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삼랑진-원동-물금 일대엔 상행은 그냥 평지인데 하행만 터널을 지나는 기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음 지도 캡처)
철도는 좌측통행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부선은 상행 방면이 먼저 생겼고 복선화 공사 때는 오른쪽에다 하행 선로를 '나중에' 추가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터널까지 뚫지는 않아도 되는 쉬운 곳에다가 선로를 먼저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상. 본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 교량 중에는 강을 수직으로 건너는 놈만 있는 게 강을 나란히 따라가는 놈도 제한적이나마 있다.
- 그런 교량은 대체로 산과 강 사이에 낀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곤 한다.
- 다만, 경부선 철도의 경우 낙동강 구간에서 그 흔적이 편도 교량이 아니라 편도 터널로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