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사모하는 찬양

0.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 내지 영적 노래들의 상당수는 주제가 "거룩하신 하나님 찬양, 우리를 구원하신 주께 감사, 예수님의 보혈~~"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 아니면 그분이 베푸신 위대한 구원 쪽이다.
그런데 드물게 예수님의 재림 내지 내세, 종말을 염원하는 미래 지향적인 곡도 있다. "그 날은 오리라, 예수님 이 땅에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도 과거나 현실 지향적인 기존 교리들과 대등한 핵심 교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건 은사주의 진영에서 "성령님이여 어서 뜨거운 불처럼 내 심령에 임하시옵소서" 이러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이 당연히 임하니 걱정할 필요 없고, 뜨거운 체험을 하고 싶으면 그냥 사우나에 가면 된다.

그 이상으로 오순절 때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표적, 혹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금 일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건 교리적으로 무의미하고 맞지 않는다는 게 본인의 소신이다. 더 자세한 건 이 글의 주제와 벗어나는 얘기이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1992년에 발매되었던 주찬양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 앨범에서는 마지막 트랙이 이런 재림 염원과 관련된 짤막한 찬양곡들의 메들리였다. "누가 아는가 / 마라나타 /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인데.. "누가 아는가"는 송 명희 작사인 국산곡이고 뒤의 두 곡은 외국곡 번역이었다.

1.
그리고 본인도 옛날에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고 청년부 특송용 메들리를 만들어 봤었다. 2014년 10월이었으니 정말 옛날이구나~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생명 -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 보라 그 날이 곧 다가오리라" 이다. 세 곡 다 국산 창작곡이다.

첫 곡은 시 18:1을 염두에 둔 어린이 찬송 스타일의 사랑 고백이다.
둘째 곡은 구 정민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으로, 가사 내용은 열심과 헌신 결단이다. 단, 2절 가사가 '썩어져 죽는' 게 아니라 그냥 떨어져서 죽는다고만 묘사해도 될 것 같다(요 12:24).
그 뒤 마지막 곡이 종말과 재림 소망이다. 가사를 보면 예수님의 지상 재림뿐만 아니라 천년왕국과 영원(새 하늘과 새 땅) 얘기까지 종말 장면이 다 나온다.

세 곡은 가사 내용으로나 멜로디로나 이어서 부르기에 큰 무리가 없다.
또한 첫째 곡과 셋째 곡은 파트가 둘로 나뉘어서 서로 돌림노래 부르듯이 제각기 재잘거리는 효과가 있다. "영원토록 정성 다해 사랑합니다"도 그렇고, "보라 그 날이"는 더 심하게 서로 따로 논다.
이런 건 회중 찬송으로는 살려서 부르기 어려우니 특송으로 실제 효과를 구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메들리를 만들었던 노하우를 살려, 그로부터 3년 반 뒤인 2017년에는 "맑고 밝은 날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메들리를 만들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감미로운 곡들 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2014년작은 맨 첫 곡 "나의 사랑 나의 생명"이 사랑 고백이었는데, 2017년작은 마지막 곡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가 사랑 고백이었다.

2.
그 다음으로 본인 기억에 남는 특송 편성은 "그 날 다가오네"이다. 2018년 10월작. (☞ 링크)
이 곡은 우리 청년부 내부에서 꼭 불러 보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고, 또 이런 작은 교회 여건에서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리마스터링을 해서 부르기에 굉장히 적당한 곡이기도 했다. 그래서 곧장 잘 추진되었다.

이 곡은 가사부터가 "그 날 다가오네"로 시작하니, 히 10:25를 1초 만에 바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씀 낭송을 전주 때 넣었다. 목소리 굵직한 형제를 통해서.. 전주는 원곡 첫 소절의 끝부분을 살짝 변형하는 형태로 본인이 만들어 넣었다.

처음엔 남녀 듀엣으로 시작한 뒤, "얼마나 기쁠까, 구주 예수 만날 때" 후렴에서 합창이 들어간다. 그리고 2절에서는 조를 G에서 A플랫으로 반음 올린다.

2절 뒷부분에서는 잠시 무반주 후렴 반복도 넣었다.
진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스러운 장면을 생각하면서 목놓아 크게 외쳐 부르라고 친구들에게 주문했다.
그 뒤 맨 마지막 소절 "얼마나 영광스런 날일까"도 반복하다가 자매 솔로로 최종 마무리를 짓게 순서를 짰다.
별다른 고민을 안 해도 개조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곡을 보자마자 곧바로 척 들었다.

예배 때 회중 찬송으로 큰 기복 없이 밋밋하게 부르던 곡을 분석해서 각종 파트, 순서 추가, 관련 성구 낭송, 관련곡 메들리로 가공 후 특송 형태로 부르는 것..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꼭 너무 웅장하고 어렵고 화려하고 복잡한 별도의 특송용 곡을 찾을 필요 없이 말이다.

앞서 소개했던 "고개 들어"라든가 "보라 그 날이"는 엄격 진지 근엄 웅장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 날 다가오네"는 막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가 아니며, 좀 삐딱하게 보면 슬프고 한풀이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픈데 어서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 같은 징징거림 말이다.
뭐, 하지만 이런 부류의 곡도 진짜로 슬프고 힘들 때 부르면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그 날 다가오네"는 Jim Hill (full name: James Vaughn Hill 1930-2018)이라는 사람이 1955년에 지은 곡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나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영감을 받아서 저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6 25 사변 때 참전한 적이 있고, 또 빌/글로리아 게이더와도 같이 찬양 사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 1월에 80대 후반의 나이로 소천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14 08:35 2023/05/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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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직접 다녀오는 정말 초유의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정말 세계가 열광했다.
우리나라는 1969년 7월 21일 월요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일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지구 반대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전쟁 중이었는데, 저거 중계방송을 다같이 시청하려고 잠시 휴전을 했을 정도였다.

그 시절 수많은 꼬꼬마들이 저 광경을 보면서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아니라 위대한 과학자/공학자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굳혔다.
그리고 2000년쯤이면 인간이 화성에도 가고 달에 식민지 하나 정도 건설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다리 달린 로봇이 나오는 수많은 SF물들이 만들어졌다.
그런 작품에서는 비행기처럼 날개 달리고 항공역학적으로 아주 새끈하게 만들어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비행체들이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외계인 군단을 때려잡았다. (그에 비해 실제 아폴로 우주선 LM 달 착륙선의 모양은... ㄲㄲㄲㄲㄲ)

허나, 실제로 2020년이 돼 보니 현재 인간의 우주 진출 현황은 어찌 됐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서 묘사됐던 2001년과, 실제 2001년의 차이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난 수십 년 동안 천문학도 발전하고 항공우주 기계공학 기술도 눈부시게 더 발전했지만.. 그것과 유인 달 탐사 내지 우주 식민지 개발은 별개의 문제였다. 우주 개발은 전쟁이나 결혼 생활만큼이나 매체(게임, 영화..)와 현실과의 괴리가 매우 매우 큰 분야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식의 설레발이 세상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도 미래 예언과 관련하여 많이 있었음을 나는 신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을 넓게 영적으로 하는 방법론이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지지한다.
6일이나 7년이나 1000년 같은 기간을 특별한 다른 단서가 없는 한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 당장 이해가 안 되고 실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판단을 보류하고 가만히 묻어 둘지언정, 말을 제멋대로 바꾸고 뜯어고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고,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구분하고, 영과 혼을 가능한 한 구분하고, '채우다'와 '다시 채우다'를 구분하고.. 그러니 세대주의에 대해서도 태생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대외적으로 평이 안 좋은가 했더니.. 시한부 종말론과 얽혀서 오해를 살 짓을 한 게 있긴 했다.

인류의 시작과 과거 역사가 4천 년쯤 전으로 굉장히 구체적인 값이 나오니, 인류의 종말 시기도 지금쯤이면 굉장히 가까워진다.
물론 세대주의 자체가 어디 악성 이단 사이비처럼 몇 월 며칠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니 “직장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가고 재산 다 교회에 갖다바쳐라” 같은 미친 짓을 권장하고 조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런 움직임이 발생할 빌미는 제공했으며, 결정적으로 종말의 징조, 조짐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불발한 설레발을 너무 많이 쳤었다.

  • 이스라엘 건국
  • 유럽 연합 결성
  • 20세기의 아주 카리스마 넘치던 모 교황과 세계적인 에큐메니즘 운동, 세기말 Y2K 문제
  • 그러면서 세계 단일 정부 단일 종교 떡밥..

이런 거 말이다.

아, 20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저런 사건들이 과거에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격변인 건 사실이다.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에 비견될 만도 하다.
그리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지고 빗장 풀리고 타락하고 심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큰 그림’ 역시 사실이다. 뭔가 성경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은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전부 비유 묵시라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갖다붙이고 적용하려고 노력해 보는 게 차라리 더 나은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국제 정세나 과학 기술은 아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요소이다. 언제라도 “아니었나 보네, 아님 말고”를 시전하면서 버릴 수 있게,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서 아주 가볍고 얕게 참고만 하고 있어야 하는 사항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역사와 관련하여 철기 시대, 불의 발견, 바퀴의 발명조차도 나와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하자.

아예 초대 교회 사람들부터가 “이때쯤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지..” 생각하다가 죽었고, 중세 때 스코틀랜드 교회 사람들은 저 교황이 '그' 적그리스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교황이 소속된 집단이 몇백 년 뒤에는 개신교를 상대로 에큐메니즘 운동을 주관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 옛날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컴퓨터만 해도.. 오늘날 같은 극도의 정보화 시대가 순기능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지금 전자, 컴공, 언어 처리, 바이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이공계들이 추구하는 상당수의 목표는 인간을 닮고 인간처럼 생각하면서 인간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할 줄 아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만들기 위한 밑천인 실제 인간 군상들의 동선과 행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기반도 다~~ 갖춰져 있다. 이게 마냥 좋은 의도로만 쓰일 거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 1980년대에 우려했던 것처럼 금수저들만 비싼 컴퓨터를 마음껏 쓰면서 정보와 기술을 독점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무식한 사회 같은 건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 시절 음모론자들은 블랙박스와 CCTV 덕분에 질서와 치안이 상상을 초월하게 개선되는 것, 그리고 오픈소스 진영이 등장해서 정말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양의 정보와 기술들이 무료로 풀릴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성경에서 용이 불을 뿜는 게 미래에 등장하는 탱크나 미사일을 의미하는 거라고 이상하게 갖다붙이는 사람도 있고,
한술 더 떠서 미래엔 석유가 고갈되어서 사람들이 성경의 묘사대로 문자 그대로 다시 말 타고 냉병기를 들고 싸우게 될 거라고.. 아인슈타인이 3차 세계대전 이후 다음 전쟁의 양상을 예측했던 것과 같은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후자조차도 100% 장담은 하기 어렵다. 2010년대부터 셰일 가스가 재발굴되어 지금처럼 다시 기름값이 팍 내려가고 석유 고갈 예상 시기가 한참 늦춰질 거라는 점까지 예상한 사람은 내가 못 봤다.

그러니.. 성경으로 미래 전망은 함부로 설레발 치지 말고 영원까지 길게 보는 안목을 갖고, 한낱 국제 정세나 일개 과학 기술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불가지론에 가까운 냉정한 자세로 판단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성경은 거의 1900년 전의 요한계시록 기록 시점부터 "내(예수)가 속히 오리라(come quickly)"라고 약속해 놓았다. 도대체 어느 기준으로 '속히'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세상 정세와는 아무 상관 없이 “예수님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겠구나”, 핵무기고 스마트폰이고 구글이고 중공 폐렴이고 전부 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 그땐 그랬지” 이렇게 회상할 각오를 하고..
따분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냥 원론적인 지침에 충실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것만이 최후 승자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신의 존재 여부야 불가지론의 대상이 아니지만, 종말 내지 예수님 재림 시기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불가지론인 게 맞다고 성경에서 대놓고 쓰여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으로 살지 않고 어설픈 사회 정세 음모론에다가 믿음의 근간을 두면.. 그 음모론이나 예상이 빗나갔을 때 다른 성경의 건전한 가르침까지 같은 급으로 매도되고 부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초신자가 실족하고 믿음이 파괴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무려 2020년이다. 이제는 근미래에 대해서 과거에 전망했던 것, 그리고 빗나간 예언들에 대한 경험과 데이터도 그럭저럭 쌓이고 있는 중이다. 다미선교회 병크, Y2K 설레발, 2012년 종말 떡밥.. 전부 도대체 몇 년 전의 해프닝이 되고 있나? 이 와중에 아직 바코드, 베리칩 음모론 믿는 사람은 좀 없어야 하지 않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된 실제 대환란기는 언제쯤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 개인적으로는 노무노무 궁금해 죽겠다. 정말 흥미진진한 사건이 될 것이다.

1940년대 말, 우리나라의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조선이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꿈에도 상상 못 하던 시기에 덥석 오실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요)!! /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ㅠㅠㅠ” 이렇게 변명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분명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천국 가면.. 모인 사람들끼리 아마,

  • "라떼는 말이야 성경 몰래 베껴가면서 읽다가 걸리면 화형이었어"
  • "라떼는 말이야 영어 성경이 200종류가 넘게 나왔고 역본 내용의 차이 갖고 키배가 벌어졌어"
  • "흥, 나는 그 세상에서 살아 본 적도 없이 바로 왔거든?" (☜ 이 케이스가 아마 제일 많을 것임..)
  • "웃기시네. 니들이 공중으로 번개같이 들려 올라가는 그 느낌을 알아?"

서로 출신과 배경 갖고 약간의 알력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성품이 변화된 뒤이기 때문에 선 넘는 진흙탕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1/03/10 19:35 2021/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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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성경 관련 생각

1. 소설 <광장>

'광장'이라고, 보통명사 square나 plaza가 아니요, 무슨 법무법인 이름도 아니요, 동명의 한국 현대 소설이 있다(저자: 최 인훈). 본인은 먼 옛날 고딩 시절에 문학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줄거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면, 분단된 나라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여차여차 하다가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남한행이냐 북한행이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제3세계 '중립국' 드립을 치면서 중립국 망명을 고집한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주인공은 이마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중립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버리는 걸로 이야기가 끝난다. 마치 디젤 기관의 발명자가 죽는 것처럼 죽는다.

주인공은 워낙 눈이 높았는지 남북이 다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병맛스럽게 보였으며, 어느 체제에서도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해답을 발견하고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아, 참고로 저 작품은 1960년 가을, 이 승만도 박 정희도 권좌에 없던 짤막한 제2공화국 타이밍을 맞춰서 출간될 수 있었다. 마치 영화 <튜브>가 김포 공항 청사 총격전을 '인천 공항 개항에 따른 김포 공항 청사 리모델링'이라는 천혜의 타이밍에 맞춰 찍을 수 있었듯이 말이다.
"동무, 우리 공화국으로 오라우" 같은 말이 대놓고 나오는 소설이 강력한 반공 독재 정권 시절에 출간됐다면 어찌 됐을까? 검열에 당연히 0순위로 걸렸을 것이고 작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코렁탕 한 사발 들이키게 됐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민감한 이념 분야를 그것도 그 먼 옛날에 벌써 다뤘던 <광장>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굉장히 독특하다. 그 당시 작가는 겨우 20대 중반의 청년이었으나 <광장> 하나로 일약 스타가 됐다(1936년생이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만 패치라는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소설도 판을 거듭하면서 작가가 일부 문장과 표현을 조금씩 계속해서 수정· 변경했다고 한다.)

다만, 그렇다고 2공 시절이 마냥 서울의 봄처럼 모든 것이 자유롭고 좋기만 했을 거라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건 금물이다. 오히려 그렇게 통제가 느슨한 과도기 혼란기를 노려서 김 일성이 6· 25 시즌 2를 또 일으키지 않은 것이나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저 소설이 쓰여지던 시절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살았으며, 북한이 아직은 공산주의 이념에 더 충실(?)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은 남한과 북한의 정치 및 종교 체제를 서로 비교하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분석한다.

'에덴 동산 vs 공산주의가 꿈꾸는 이상향(로동자가 주인, 능력껏 벌어서 필요껏 쓰는, 가난해도 행복한... 등등)'
'스탈린 vs 교황',
'자아비판 vs 고해성사'처럼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핀트가 안 맞거나 해당되지 않는 비교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아이템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공산혁명 이래로 시간이 30년이 넘게 지났건만 그들이 약속하는 지상락원은 여전히 도래할 기미가 안 보인다. vs
예수는 속히 다시 오겠다고 말했건만, 그로부터 2000년이 다 돼 가도록 여전히 오지 않고 있다' (동일한 표현은 아니지만 결국 이런 요지의 내용)

하긴, 예수님 당대에는 제자들조차 길어야 몇십 년 안으로, 자기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생각했다고 여겨진다.
솔직히 생각해 봐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11) 이 주변 문맥만 봐서는 그 예수님이 서기 2000년대 이후에나 다시 오실 거라고 누가 예상하겠는가?

그러나 실상은 제자들 중에 그나마 늘그막에 유배지에서 비슷한 체험을 하며 예수님을 자기 생전에 다시 알현한 사람은 사도 요한이 유일하다(요한계시록).
예수님은 그로부터 진짜 2천여 년 뒤에, 인간이 말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을 발명해 내고, 새처럼 하늘을 날고 달까지 갔다 오고, 인터넷과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만들고 한편으로 인간에게서 믿음이라는 건 밑천이 다 바닥나고 진이 다 빠지고, 영적으로 가히 갈 데까지 다 간 막장에 다다른 뒤에야 오실 것으로 여겨진다.

이거 정말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양상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성경에서 사 61:2와 눅 4:19를 비교해 보면 "{주}의 받아 주시는 해와 우리 하나님의 원수 갚으시는 날을 포고하고" 사이에 실제로는 초림과 재림 간극이 불쑥 끼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자는 그야말로 고구려 백제 신라(주몽, 온조왕, 박 혁거세!)가 건국되던 시절의 얘기인데, 후자는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KTX가 다니는 시절보다도 (아마도) 더 나중에 있을 사건인 것이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한데 싸잡아서 예언해 놓았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이런 개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대적 진리에서 이걸 흔히 '예언의 산봉우리'라고 언급하곤 한다.

물론 성경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라고, 시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를 허용하는 실드가 있다. 그걸 잘못 적용해서 창세기의 6일 창조 사건 자체조차 문자적인 지구 기준 24시간 하루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진영도 있다. 허나, 성경도 정확해야 할 때는 매우 엄밀하고 정확하며,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해석 체계가 막장 엉터리는 아니다.

이것은 나라고 해서 모든 게 다 이해되고 뾰족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거라고 했는데 아담은 왜 안 죽고 930년이나 살 수 있었나요?" 이런 것에도 여러 관점에 따른 답이 있다(영이 죽었다, 수명 자체가 유한해졌다, 짐승이 대신 죽었다 같은..).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성경의 기존 용례들을 분석하면서 하나님의 스케일과 사고방식에 맞추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속히(quickly)' 오신다는 말은(계 22:20), 엄밀히 말해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하는 조건이 충족됐을 때 지체 없이 오겠다는 뜻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while( !should_jesus_come() ) {
   wait(); //척 노리스는 잠들지 않는다. 단지 기다릴 뿐.
   //어쩌구저쩌구
}
go_to_earth();

즉, 이 프로그램이 결코 무한 루프에 빠지거나 뻗는 일 없이 go_to_earth()의 실행이 즉시 될 거라는 것만 보장하지, while문의 예상 소요 시간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노코멘트라는 것이다. 시계의 무브먼트가 빠른 것과, 당장 가리키는 시계 바늘의 위치가 앞서 있는 것은 별개의 개념이듯이 말이다. 기계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조차 실행이 종료될지를 프로그램만 보고서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예수님 행동을 어찌 예측하겠는가?

뭐,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좋다.
여담이지만, 본인은 하나님의 시간 스케일이 이 정도로 워낙 광대하다면, 창세기 1:1과 2 사이에 이전 세상 멸망 간극쯤은 있다 해도 하등~~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같이 든다. 성경은 얼마든지 그렇게 기록되고도 남을 책이다.

<광장>의 주인공은 저렇게 성경을 바르게 나누고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한다는 개념에 대해서 알 리 만무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도 그냥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편견을 넘지 못했다. 천주교와 기독교를 구분 못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좌익들의 흉악한 체제 전복 혁명을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중 왕 예수님의 재림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부터 이미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는 비록 허구 속 인물이긴 하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더구나 자기 죄 가운데 죽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하지만 현실에는 바로 이런 주인공 같은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2. 신앙생활의 본질, 교회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입문하기는 왕창 쉽지만(세상에 구원받는 것만치 쉬운 건..?) 마스터하기는 왕창 어려운(예수님 형상을 이루기란?) 온라인 게임에 입문하는 것과 같다.
신앙생활은 꽤 불확실하고 비결정적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게임 용어에다 비유하면 어떤 컨텐츠가 업데이트 될지 알 수 없다. 혼자 뻘짓 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소통하는 법, 게임 퍼즐을 잘 풀어 나가는 법, 사고방식을 개조하는 일종의 요령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만 얘기하니까 뭔가 잘 만들어진 게임 같다만.. 그래도 국방부 퀘스트가 게임이 아닌 것만큼이나 인생은 실전이지 게임은 아니다. 오래 참음, 기다림, 절제처럼 일반 게임에는 절대로 안 나올 요소들이 많이 나온다. 꾸준히 오래 일관되게 지속하는 지구력이 중요하다. 현질, 오토 같은 거?? 없거나 안 통한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기본적으로 마이너한 독고다이 개인 플레이이다. 구원 여부는 철저히 개인 단위이고, 신앙 생활도 철저히 개인의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근거해야 한다. 신약 기독교회에는 집단 세뇌 그런 거 없으며, 생각을 못 하게 교주를 우상화하고 맨날 쉴 새 없이 신자들을 바쁘게 몰아세우는 거 없다! (있다면 그건 그냥 이상한 이단 사이비인 경우가 99.9%)

그렇게 독고다이 개인 플레이를 기본으로 하되, 그나마 성경이 인정하는 길드가 바로 교회이다. 조직· 단체의 존재로 인한 시너지 효과 순기능을 개인 신앙에도 접목하라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믿음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면 어떻게 사는지 지상락원 모습을 맛보기라도 세상에 보이라고 성경이 가정과 국가에 이어 교회를 만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교회가 처음 태동하던 시절에는 하나님이 언어 장벽조차 초자연적으로 잠시 허물어 주셨을 정도이다.

이거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니들도 니들이 그렇게 배척하는 공산주의랑 다를 게 뭐냐, 인간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고 사기 치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욕 먹게 된다. 조심해야 된다. 그래서 내가 아까 의도적으로 '지상락원'이라는 단어를 쓴 거다. 앞의 저 소설 <광장>만 해도 공산주의와 기독교 모두 지상락원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주인공이 같이 까지 않던가?

물론 교회가 아무리 제 역할 못하고 제아무리 병신짓 한다고 해도 진짜 공산주의만치 나쁘지는 않다. 지금도 공산주의는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의 "수법"이 훨씬 더 악하고 해롭기 때문이다. 교회는 아무리 부패 변질돼도 지들만 돈 밝히고 뱃대지 부르는 걸로 끝나지, 그런 더러운 짓 하면서 무슨 국가 체제 전복을 시도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교회라고 해서 내부에서는 아무 법도 질서도 규율도 없고, 남에게 무작정 사랑만 베풀고 마냥 호구 되라는 얘기도 절대 아니다. 선과 악을 칼같이 분별하고 안에 자꾸 침투하는 이단 교리나 거짓 간첩들을 색출하고, 자체적으로 순수성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성경에 지침이 나와 있다.

어쨌든, 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란을 거쳐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할 껄?"(행 14:22)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구원의 조건이 어렵다는 말이 아니요, 신자들이 무슨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전무후무한 그 끔찍한 대환란.. 아예 취지와 목적 자체가 다른 그 이벤트를 겪는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반적인 신앙 여정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교회가 대환란 겪는다는 소리는 아무리 봐도 자기가 지금 무슨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를 몰라서 없는 십자가나 남의 십자가를 만들어서 지겠다는 얘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상. 교회 신자라면 교회라는 조직이 왜 존재하고 이게 개인의 신앙생활과 어떤 관계가 돼야 할지 논리적인 개연성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3. 동물과 식물의 특성

생명의 신비랄까, 이와 관련된 오래된 생각이다.
뭐, 화학적 성분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똑같은 생명체인데 식물은 죽더라도 악취도 안 나고 손에 묻는 것도 별로 없이 곱게 누렇게 말라 비틀어지기만 하면서, 어째 동물보다 훨씬 덜 흉측하게 분해되고 없어지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건 과학 얘기가 아니라 신념 얘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타락과 창조 세계 저주 이후로 동물, 특히 붉은 혈액의 부패 양상이 더 흉측해진 거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배설물도 그때부터 외형과 냄새가 더 끔찍해졌고 말이다.
옛날에는 사람도 처음 창조되었고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성인의 대변도 태변과 별 차이가 없는 그저 그런 모양이고, 죽는다 해도 시신은 혈액과 내장을 제거하는 등의 처리를 안 해도 미라와 비슷하게 말라 비틀어지고 아주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추측'한다.

성경은 죄의 삯 내지 결과로 인해 사망이 초래되었다고 말한다(롬 6:23, 약 1:15). 성경에서 믿음과 행위라고 관점의 대립을 보인다고 여겨지는 두 책이 그래도 죄가 죽음과 관계 있다고 공통으로 증언하는 것이 흥미롭다.
아 물론 죄가 들어오기 전의 에덴 동산 낙원 상태라 하더라도, 아담이 한 50m 높이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바위 바닥에 떨어졌거나, 깊은 강물에 제 발로 들어가서 폐에 물이 들어가면 죽긴 했을 것이다. 죄 없는 상태가 무슨 물리적인 god mode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단지, 그때는 살고 싶어서 발버둥치는데 오늘날 같은 나쁜 질병과 노화로 인한 죽음은 없었을 것이고, 스스로 바보짓만 안 하면 그 상태로 영원히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설령 사고사한다 해도 시신이 죽은 식물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분해됐을 거라는 얘기다.

그럼 식물에 대해 더 생각해 보자면, 씨앗· 종자라는 건 도대체 뭐가 들어있어서 어떤 작용을 하기에 흙 속에서 적당한 수분과 온도가 주어지면 싹이 돋고 중력을 거슬러 솟아나는지.. 옛날 사람들이 이걸 보고 경이로움을 충분히 느꼈을 것 같다. 동물보다도 반쯤은 무생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식물이 더 대단해 보인다. 광합성은 그냥 경이로움 그 자체이고 말이다.

또한 사람은 제대로 힘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지만, 정작 인간이 먹는 소는 평생 식물만 먹고도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힘을 내며 덩치와 무게도 더 크다. 결국 원래는 식물만 먹어도 기력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뜻인데, 인간이 가축만치 뛰어난 소화 능력이 없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뭐, 인간은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없으며 여느 초식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사료나 풀을 먹을 수 없다. 그리고 육식으로 가도 여느 육식동물들처럼 어지간히 상하거나 썩은 잡고기와 내장을 날로 절대 먹을 수 없다. 너무 깨끗하게 산 현대인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유독 식성에 제약이 많고 각종 기생충 감염에도 더 취약한 것 같다. 이런 것 생각하면 생물학 공부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다 지나가 버린 일이 됐군.. -_-;;

4. 이불교

다음으로 좀 유쾌한 얘기로 주제를 바꾸겠다.
라면교도 아니고.. 이거 뭐 ㅠㅠㅠ
세상에 이불교가 있는데 하물며 철도교가 없으란 법은 없다~!

"하 석자는 1986년의 영생교 집회를 다녀온 뒤 청주 지역에 이불교를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모든 신도들은 이불을 펴놓은 속으로 들어가서 예배를 드린다. 특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한 시간 이상 예배를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병이 치유된다고 믿는다."


"김 용묵은 2004년 새마을호 열차 객실에서 Looking for you 음악을 네 번, 개인적으로 3000번을 들은 뒤 깨달음을 얻어서 철도교를 창시하였다고 전해진다.
철도교 신자는 교통수단과 기계 덕후이며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많다. 수인선과 동해북부선의 전구간 복선전철 부활 재림을 믿는다."

철렐루야 아멘!

* 참고로 라 "멘" 교는 있다. 종교가 아니라 교량의 건설 형태. 우리나라 강원도 정선에 소재한 태백선 조동철교가 라멘교이다.

5. 테이큰

하루는 교회에서 민 32:23을 읽었다.
"... 너희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을 분명히 알지니라. be sure your sin will find you out."
거리 설교 때도 설교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종종 인용되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것도 테이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Your sin will look for you. And it will find you. And it will kill you. (약 1:15; 눅 13:3,5; 롬 6:23)
완전 대박..;; 위의 참고 구절들을 찾아봐라. 싱크로율 99%이다~!! ^_^

'테이큰'이라는 제목과 주제로 강단에서 설교가 한 편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절은 눅 17:34-35가 딱이겠다. the one shall be taken.
영적 전쟁을 치르는 very particular set of skills를 논하고,
딸 킴이 납치되었다가 몸값 받고 팔리고 다시 구출되는 것을 죄인이었다가 구원받은 인간의 영적 상태에다가 대조해서 강해하고,
우리는 예수님과 business 관계가 아니라 he's all personal to me가 나와야 된다고 결론을 내면 되겠다.

테이큰은 좋은 영화이다. 영적 교훈이 가득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1 08:32 2017/08/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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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본인은 과거에 수능을 안 쳤으며 군 자대 생활을 한 적이 없다. 모태신앙인 관계로 딱히 구원 순간에 대한 기억도 없고, 사소한 사항이다만 평생 안경을 쓴 적 역시 없다.
어지간한 사람들이 겪는 코스들을 많이 건너뛰었는데.. 이런 skip의 궁극의 완전체는 나중에 육신의 죽음조차도 경험하지 않고 건너뛰는 것이리라.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가까운 미래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서" 내가 바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다면 그것만 한 꿀잼이 없을 것이다. (살전 5:16-17 등)

성경 스토리를 Doom 2 게임에다 비유하자면 IDDQD 치트키도 있고(무적. 욜 2:8 등), IDNOCLIP도 있고(닫힌 문 통과. 터미네이터 영화에도 나옴. 요 20:26) IDKFA(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 생략)도 있다. 심지어 순간이동 transform도 있다(행 8:39).
무적 모드를 god mode라고 부르는 거.. 일단 상당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결혼까지도 skip한 채로 변화될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결혼도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은 삶이 끝난 뒤부터는 결코 할 수 없게 되는 일이다(마 22:30).

2.
무슨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처럼 음향 차원에서 끔찍한 소리 말고, 사람들이 정서 차원에서 천하에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로는 잠에서 강제로 깨어야 하는 알람, 또는 군대 기상 나팔 소리 같은 부류를 1위로 꼽는다.
또한, 일본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불시에 "띠링띠링~ 띠링띠링~" 하며 튀어나오는 긴급 지진 경보에 거의 트라우마가 있다고 본인은 들었다. 아무 존재감 없는 한국의 민방위 경보 내지, 오동작이 너무 잦아서 신뢰도가 양치기 소년 급이 돼 버린 건물 화재 경보 같은 것과는 급이 완전히 다르다. (저러다 진짜 불 나거나 전쟁 났을 때가 걱정된다)

비행기 조종사 한정으로는 "웽웽~ pull up!" 이러는 GPWS 경보음도 가히 저승사자의 음성이다. 누가 지금 비행기 기수를 올려야 한다는 걸 몰라서 안 올리는 줄 아나..;; 저 소리를 조종실에서 실제로 들은 뒤에 생존한 조종사는 세계를 통틀어도 별로 없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소리처럼 들릴까? (고전 15:51, 살전 5:16-17)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라는 찬송가를 기억해 보라.
이건 그야말로 2천 년에 가깝게 떡밥이었다. 예수님이 언제라도 오실 수 있다는 대비를 제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시한부 종말론'처럼 개막장으로 살지 않는다. 그렇게 건전하게 살았던 사람이라면 하늘의 나팔 소리는 가장 반가운 소리가 될 것이다.
"난 하늘나라에서 예수님 얼굴을 제일 먼저 볼 거니까 이 세상에서는 맹인으로 살아도 괜찮아요" 급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하지만 구원은 받았지만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인드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갑작스러운 재림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가 될 것이고 저런 나팔 소리는 군대 기상 나팔이나 지진 경보음처럼 들리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고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건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리한 정보 접근성이지만 그게 그나마 인간의 삶을 건전하게 유지시켜 준다.

3.
'별'이라고 하면 (1) 지구의 밤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반짝이는 작은 점들을 가리키지만 (2) 그냥 천체를 다 싸잡아 가리키기도 한다. 심지어 지구도 '초록별'이라고 하니까.
그래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항성이라 하며, 그렇지 않은 별은 궤도를 도는 고체덩어리라는 점만 부각시켜서 행성이라고 한다. 일본식 한자어로는 '혹성'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항성과 행성은 철도로 치면 마치 기관차와 객차의 관계와도 비슷해 보인다. 객차는 자기 동력이 없으니 기관차와 연결되어 끌려가기만 한다. 그것처럼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게 아니라 다른 항성의 빛을 반사해서 빛나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비유 대박이다~)

성경은 천체들을 논할 때 해, 달, 별(복수 개의 집합)이라는 세 그룹으로 분류해서 말한다. 이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된 심상이요 진술 방식이다. 특히 해와 달은 서로 나타나는 시기만 다를 뿐 거의 동급의 대등한 관계로 즐겨 묘사된다.
6일 창조의 넷째 날 설명부터 시작해서(창 1:16) 요셉의 꿈에서도 해와 달과 별(창 37:9)이 등장하고, 욜 3:15과 마 24:29 같은 구절을 거쳐서 계 12:1에서도 해와 달과 별이다. 특히 계 12에 나오는 여인의 정체는 다른 듣보잡 이단 교주가 아니라 요셉의 꿈과 연결하여 그냥 유대인/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게 성경을 성경으로 풀고 해석하는 좋은 예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경에는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이라는 개념은 있어도,
태양과 달은 실제 크기와 거리가 넘사벽급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 태양도 10파섹 거리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4.8등성짜리 별이며 우주엔 태양보다 더 크고 밝은 항성도 있다는 것, 태양계에 금성이나 화성 같은 행성도 있다는 것.. 같은 정보는 성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지 않다. 애초에 성경이 인간에게 그런 정보를 주려고 기록된 책도 아니다.

물론 성경은 6일 창조라든가 인류의 역사, 레위기에 나오는 의학· 위생 관련 진술은 같은 건 문자적으로 정확하며 시대를 앞서간 기록이라는 것이 본인의 믿음이다.
허나, 성경 율법에는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라는 보편적인 명령만 있는 게 아니라 오늘날 세속 관점에서는 영적 교훈 말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고 적용 가능하지 않은 계명도 있다. 그런 것처럼 자연과학 쪽에도 성경의 진술이 의도적으로 세속 과학의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부분 역시 응당 존재한다.

가령, 고래는 포유류이지만 요나서에서 '큰 물고기'라고 적어 놓았다(욘 1:17, 마 12:40).
하나님은 새끼를 낳는 고래라는 특이한 생물을 특별히 창조까지 하신 분인데 어류와 포유류를 구분할 줄 몰라서 고래를 '큰 물고기'라고 적어 놓으신 것일까? 그럴 리는 없잖아.
그냥 지느러미 달렸고 인간이 보기에 물고기처럼 생기기도 했으니 쓸데없이 이런 데에서 괜히 '문법 나치'처럼 굴 필요가 없이 저렇게 적어 놓은 것일 뿐이다.
그것처럼 천체에 대한 진술도 그냥 당대 인간이 편하게 읽으라고 해와 달과 별을 보이는 대로 심상과 예표를 부여해서 묘사했을 뿐이다.

성경이 지극히 지구 중심적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우주 개발을 막지는 않지만 적극 권하지도 않는다는 심상이 담긴 것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지구의 이스라엘 땅에 재림하시지 달이나 화성에 재림하시지는 않을 테니까.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지구 외에 다른 공간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으며, 인간의 기술과 비용만으로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해서 살 수 있을 거라고도 믿지 않는다. (뭐, 나와 다른 견해를 갖는 거야 얼마든지 자유이고, 시도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어떻게 지구만이 달 같은 커다란 위성이 존재해서 인력을 주고받고 있으며, 내부에 액체 금속이 있는 채로 비교적 빠르게 자전과 공전을 해서 자기장도 발생하며, 끊임없이 물질이 순환하는 살아 있는 행성이 될 수 있었는지..
다른 행성은 아무리 돈과 시간을 투입해도 왜 테라포밍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지, 지구는 밑에 지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다른 행성과 어떤 다른 특징이 있는지.. 굳이 창조 과학회 같은 단체가 있다면 그런 걸 규명해도 좋을 듯하다. 괜히 지구· 우주 나이 6천 년에만 매달려서 뻘짓 하지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04 08:39 2017/03/0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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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이야기

본인은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분명한 종말론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시한부 종말(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도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말 날짜를 1년 단위 이하로 구체적으로 확정한다거나, 한술 더 떠서 그 종말 날짜에 맞춰 현 사회로부터 이탈을 감행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는 결코, 절대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걸 부추기는 인간들은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지 무조건 성경을 벗어난 이단 사이비이며, 세상에 민폐 끼치는 사회악이다.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 내지 현 사회에 불만 많은 약자들을 현혹하여 가정 파탄내고 사람 인생 망치고, 성경에 입각한 건전한 진짜 종말론까지 죄다 사이비로 매도시킨 해악을 생각하자면, 그들은 가히 “숨쉬지 마라, 산소 아깝다.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급의 암적 존재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종말론이란, 이 인간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지속되지는 않으며, 특히 여러분에게 더 잘 와닿게 말하자면, 21~22세기를 넘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맥락에서이다.

특히,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공중과 지상으로 재림할 것이고(특히 공중 재림의 경우 휴거 포함) 성경에 기록된 것 그대로 세상이 끝날 뿐, 무슨 핵 전쟁이나 태양의 백색왜성화, 온실효과, 외계인 침략 같은 것 때문에 인류가 허무하게 멸망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지구에 재림하실 터인데 달이나 화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걸 생각하면 크리스천은 각종 SF물도 김이 확 빠지고 재미없어서 못 본다. -_-;;

종말에 대해 성경은 무어라 말하는가?
일단 종말 자체는 있으며, 말세엔 재림이고 종말이고 뭐고 다 안드로메다로 보낸 채 사람들의 내세관 자체가 무뎌질 거라는 예언이 성경에 있다. 베드로후서 3장이 다 이런 내용이다. 예수님은 속히 올 거라고 성경의 끝부분에다 약속해 놓으셨다. (계 22:2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종말의 날짜를 결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 (막 13:3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7)

천국, 지옥을 보고 왔다는 얘기가 순도 100% 구라인 것만큼이나, 어느 날 어느 때에 예수가 재림하고 휴거가 일어나고 세상 종말이 온다는 소리도 순도 100% 구라이다.
전자는 장소의 금기이고 후자는 시간의 금기라 하겠다. 우리 착한 크리스천들은 절대로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천국, 지옥 자체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재림과 휴거(흔히 말하는 종말) 역시 절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맥락에서 말이다.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 날짜가 되기 전에 이미 종말이 온다.
개그 만화 일화 종말편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아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때 사람들이 그 애니에 묘사된 대로 곱게 똥이나 처바르고 앉아 있겠는가?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분이 인간을 창조하고 언젠가 세상을 심판하려고 스케줄을 짜 놓고 있는 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인간들이 신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날짜를 잡아서 종말드립을 치고 있으면, 신이 보기엔 이것들이 무신론자 이상으로 얼마나 같잖고 한심하게 보일까? 종말의 사유를 자기들이 제공해 놓고는(자승자박) 또 종말에 대비도 하겠다고 설치는 꼴이다.
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라. 미쳤다고 종말 날짜를 인간들에게 계시해 주겠는가?

윤 성목 목사님의 글 클릭.
...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틀리면 회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변명만 할 뿐입니다)
... 2012년은 정말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많은 종교 단제에서 2012년에 재림, 종말, 심판 등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예언이라면 적중률은 무조건 100%이다. 단 하나라도 틀리면 그건 거짓말이다. 죄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예언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것도 결코 아니다. 수 6:26와 왕상 16:34 (여리고 재건자), 그리고 왕상 13:2와 왕하 23:16 (요시야 왕)정도로 섬뜩할 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오죽했으면 참 계시와 거짓 계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허탈하게도 '그 계시의 성취 여부'라고 성경에 쓰여 있을 정도이며(신 18:22), 거짓 대언자로 판명된 사람은 사형으로 즉결 처분이었다(신 13). -_-;;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서는 그게 마치 위조지폐를 유포하는 것만큼이나 건전한 신앙의 기강을 문란케 하는 악질 중의 악질 중죄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즘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한국이나 미국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만나서 참 좋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_-;;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여러 번 시한부 종말론을 시전했다가 버로우 탄 적이 있다. 그들의 흑역사이다. 종교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설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10년도 더 전의 Y2K 문제는 어땠던가?

특별히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휴거 병크가 한국 교회에서 재림· 종말 신앙의 씨를 완전히 말려 버렸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단 교리들의 원천으로 매도되면서 사 29:11-12와 같은 급의 금기· 봉인의 책이 되고 말았다. 난 성경을 믿는다면서 휴거와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안 믿는 사람을 보면 놀라는데, 그쪽에서는 나를 보고 또 놀라더라.
(참고로, 정말 재미있게도 그 이튿날인 1992년 10월 29일은 연세대 마 광수 교수가 외설 혐의로 체포되었던 날이다. ㄲㄲ 우연의 일치이겠지..)

그런데, 이 많고 많은 거짓 종말론자들이 예언이 빗나간 후에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회개했다는 소리는 난 정말 못 듣고 지냈다. 이것도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빨리 뒤집어 엎어져 버리길 바라는 사회 부적응자,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는 잘못된 욕심쟁이 위주로, 잘못된 종말론에 현혹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 왔다. 그리고 이런 수요(?)에 부합하는 거짓 교사, 거짓 대언자는 앞으로도 없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저런 혹세무민하는 나쁜놈들은 생기는 족족 내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죽여 버리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너희들이 진짜로 재물이 아닌 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저런 낚시꾼들의 출현을 종종 허락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신 13:3).

하나님이 너무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완전히 마음이 삐딱해져 버린 사람에게는 잘못된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고, 그를 심지어 더욱 완악하게 하고(출애굽기의 파라오), 그가 잘못된 생각에 그대로 속아넘어가게(아합 왕) 골탕도 먹이는 다이나믹한 분이다.

폴 워셔(Paul Washer) 목사 같은 분은 한술 더 떠서 “저렇게 이단 교리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업자득이며, 그 마음 상태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결과일 뿐입니다”라고까지 부르짖는다. 그분은 행실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아예 구원도 못 받은 거라는 식으로 너무 또 주권 구원 내지 행위로 가는 경향이 없지는 않는 듯하나, 그래도 잘못된 은사주의와 종말론이 난무하는 오늘날 교계에 오아시스 같은 용기 있고 훌륭한 분인 건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과연 언제쯤 다시 오실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나고 세상은 언제쯤 끝날까?
점점 그때가 임박하고 있다는 막연한 말만 할 수 있을 뿐 그건 정말 나도 모른다.
기름값이 1리터당 얼마가 되고 대학 등록금이 얼마가 됐을 때쯤 끝이 날지, 서민 경제가 얼마나 더 파탄나고 국가의 부채가 얼마까지 치달으며, 이 명박보다 얼마나 더 막장인 대통령이 나올 때쯤 세상이 끝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암울한 예만 드니, 종말이 생각보다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_-;;;;; ㄲㄲㄲㄲㄲㄲ

난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 4년쯤 뒤엔 “차라리 2MB 시절이 나았어” 분명 이런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오래 전부터 예상해 왔다. 하지만 2MB 님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분들은 “그건 아니야. 정말 2MB가 역사상 최악이야. 다음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저놈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_-;;

비록 앞서 예를 들었던 그런 나쁜 시한부 종말론만치 해롭지는 않지만, 성경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도 있다. 세상 정세와 과학 기술을 성경에다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갖다붙인 나머지 베리칩이 666이고 유럽 연합이 요한계시록의 열 뿔이라는 식으로 드립을 많이 쳤다. 의도야 어떠했든, 오류는 오류였다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화과나무 비유를 들면서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목격한 세대가 예수님의 재림도 목격할 거라고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재림은 1950년대로부터 늦어도 7, 80년 안으로 일어나야 한다. 과연?

난 '개인적으로는', 정말 내 추측으로는 우리 부모 세대는 아슬아슬할 수도 있고, 내가 중장년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아마 끝이 올 것 같다. -_-;; 7, 8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0년 안으로. 어쩌면 32비트 유닉스 time이 끝나는 2038년대와 근접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이 예측의 오차가 얼마나 됐나 분석해 볼 생각이다. ㄲㄲㄲ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각종 세상 정세와 전쟁, 재앙을 보고 “말세야 말세. 세상은 곧 끝장 날 거야”라고 탄식했지만 종말은 그리 호락호락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상한 양상을 보이며 막장으로 치닫는 속도를 보면 또 오래 지속은 못 될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을 종합한 타협점을 그 정도로 잡고 있다는 뜻.
이건 내가 전혀 책임지지 않는 추측이므로 그냥 재미로 읽고 잊어버리는 게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좋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난 분명히 이렇게 얘기했다.

어떤 경우든,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빠져나가고 벙커 짓고 농사 짓는다거나 하는 뻘짓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대환란 통과론자들의 공갈에 현혹되지 말라. 그냥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에서의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신실하게 주의 일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종말 대비책이다.

크리스천은 먼 앞날을 내다보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안목도 키울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담 이래로 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인 것만큼이나, 그분의 재림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중요한 날을 그렇게 호락호락 예측 가능한 날에, 그것도 하나님 모르는 죄인들이 만들어 낸 과학 기술이나 국제 정세에 그리도 쉽게 휘둘려 집행하실 리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신줄 놓고서 헛짓 안 하는 건데..-_- 역시나 주님은 너무 빨리 오셨어!” 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될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자마자 하늘로 당장 데려가시지 않고, 왜 이 험악한 세상에 불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놔두고 계신지를 생각해 봐도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Posted by 사무엘

2011/07/25 08:32 2011/07/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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