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

1. 말모이

독자 여러분은 '말모이'라는 단어를 혹시 들어 보셨는가?
이건 word + collection을 직역한 합성어로, 구한말-일제 시대 급의 과거에 일부 국어학자들이 사전(dictionary)을 순우리말로 옮겨서 표현했던 단어이다.

코퍼스를 뜻하는 '말뭉치'도 어쩌면 ‘말모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연세대인지 고려대인지 어디 교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용어이다. 그 최초 제안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물론 현대에 만들어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업계에서 활발히 쓰이는 용어이다.

다만, 명사로만 이뤄진 합성어인 말뭉치와 달리, 말모이에서 '모이'는 '먹다'(eat)로부터 '먹이'(food)를 만들듯이 '모으다'의 어간에다가 명사화 접미사 '-이'를 붙인 파생어이다.
결합 과정에서 모음 음운이 하나 탈락하긴 했지만(모으다 ≠ 모다) 그건 별로 어색하지 않으며, 저건 ‘해돋이’, ‘한살이’만큼이나 아무 문제 없는 조어이다. 하지만 어감이 이상하다고 까는 사람도 있다. horse + food (for birds to peck up)가 떠오른다고 말이다. =_=;;

뭐, 그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동음이의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옛날에는 ‘시발’이라는 자동차도 있었다. 어감이라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옛날과 지금이 서로 같지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2. 동명의 최근 영화

세월이 흘러서 조선어 학회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말모이’라는 단어가 영화 제목이 되는 날이 왔다. 그놈의 좌편향 반일 프레임이 지긋지긋하다고 싫어하는 분들의 심정을 본인 역시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언어와 신앙 분야(과거에 일사각오..)는 내가 특별 관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요런 영화는 찾아서.. ‘혼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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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얘는 여느 전쟁 영화 같은 본격적인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일제 말기에 저런 단체가 있어서 국어사전을 만들려고 했고, 그러다가 왜놈들에게 잡혀서 회원들이 고초를 겪었다. 원고를 빼앗기기까지 했지만 다행히 해방 후에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았고, 사전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출간돼 나왔다.”
라는 기본 배경만이 팩트이다. 아, 그 당시에 저기서 ‘한글’이라는 제목의 기관지를 발간했다는 것도 추가적인 팩트이고..

허나, 그것 이후로 세부적인 주인공, 조선어 학회 구성원, 중간에 일어난 사건 등등등은 순도 99%에 가까운 허구 창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도록 하자. 세상에, 조선어 학회의 대표가 친일파로 변절한 중학교 이사장의 아들 부잣집 도련님이라니, 완전 충격이다. ㅡ,.ㅡ;; ㅠ_ㅠ

더구나 영화에는 어설픈 첩보전까지 나온다. 조선어 학회가 일제의 어용 학술단체로 변절한 듯이 간판을 바꿔 달고, 조선총독부가 허가해 준 합법 집회에서는 대표가 일제 부역 독려 연설까지 하며 페이크를 친다. 그 뒤 그들은 야밤에 극장에서 진짜 동지들을 몰래 모아서 지방 방언을 수집한다.;;;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런 건 그냥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려고 일부러 만든 설정이다. 이 영화의 등장 인물 중에는 조선어 학회 대표는 물론이고 일반 회원 중에서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딴 인물이 없다. 그러니 <말모이>는 어찌 보면 과거의 <밀정>이나 <암살> 같은 부류보다도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3. 실제 조선어 학회의 대표

그 당시에 조선어 학회 ‘대표’의 직함명은 ‘간사장(간사+장)’이었다. 193, 40년대에 조선어 학회의 간사장을 역임한 핵심 간부로는 이 극로, 신 명균 같은 사람이 있다.
이 극로는 이 미륵(압록강은 흐른다)처럼 그 시절에 극소수이던 독일 유학 박사이고, 독일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걸출한 학자로서 조선어 학회에서는 최 현배보다도 중요도가 더 높은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남긴 매우 긍정적인 행적이 하나 전해진다. 근무 중에 눈병을 앓아서 근처 병원을 찾아갔는데(1938년경) 거기가 바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됐던 공안과였다. 그는 거기서 자기를 치료해 준 원장 선생에게 대뜸 한글뽕(?)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그 의사양반은 거기서 큰 감화를 받은 나머지, 훗날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뭐, 말모이 같은 영화에는 들어갈 만한 문맥이 없었겠지만, 이런 일화가 영화 같은 매체에서 소개될 기회가 없는 건 아쉬운 점이다.

다만, 이 극로는 해방 후에는 월북을 하는 바람에 남한에서 존재감이 묻혀 버렸다. (사후에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됨) 오죽했으면 해방 후에 조선어 학회가 한글 학회로 이름을 바꾼 이유(1949) 중 하나도.. 대표의 월북으로 인한 빨갱이 누명을 조금이라도 벗기 위해서였다.

다음으로 신 명균은 나도 대학 시절 내내 전혀 몰랐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인데.. 1941년쯤에 일제의 한국어 탄압과 민족 말살 정책에 항의하여 ‘자결’을 해 버렸다. 그러니, 조선어 학회 사건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투옥 기록도 없고.. 존재도 한참 뒤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런 분들과 달리, 해방 이후 남한에서 그럭저럭 오래 살았던 최 현배 선생은 조선어 학회 간사이긴 했지만 간사장까지 맡은 적은 없었다.

4. 조선어 학회 사건이 발생한 진짜 이유

사실, 조선어 학회는 조선어 국어사전 편찬과 출간 자체는 조선총독부로부터 1940년에 허가를 받았다. 총칼 무장 독립 운동이 아닌 학술 활동일 뿐인데, 일제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탄압할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국어사전의 편찬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인물이라면 항일 성향도 강하다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으니, 놈들이 예의주시하고 감시를 하긴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어 학회가 1942년에 뒤늦게 조선 시대 사화를 당하듯이 화를 입은 이유는.. 잘 알다시피 여학생 일기장 사건 때문이다. “국어(=일본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선생이 혼내 줬다” → 어라? 국가 정책을 무시하고 왜 일본어 쓰는 애를 혼내지? → 그 교사를 뒷조사 해 보니 전교조.. 아니 조선어 학회 소속 → 이거 알고 보니 골수 불령선인 악질 반동이구만? → 안 그래도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그럼 그렇지, 요놈 잘 걸렸다.

일제의 고등 경찰인지 특별 고등 경찰인지 거기서 실적 껀수 하나 올리려고 요렇게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학자들을 잡아들이고 투옥시킨 것이다. 그리고 만들던 사전 원고도 빼앗겼다. 다만, 이건 피의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참고하려고 증거물 차원에서 압수한 것이지, 그게 무슨 일제의 입장에서 나쁜.. 이를테면 일본의 국가기밀 누설, 조선총독부 폭파 음모, 총독 내지 덴노 암살 음모, 본토 테러 지령 같은 것이어서 압수당한 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조선어의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선어 사전 원고를 작성한 것 자체까지 법적으로 죄는 아니었다. 애초에 조선어 학회도 무슨 광복군 의열단 같은 단체가 아니니까 말이다. 굳이 그 사전 편찬자들을 해코지 하려면 명목상으로 다른 정치적이고 더 큰 죄를 뒤집어씌워야 했다.

애매한 학자들을 골수 반동분자로 조작하기 위해 잔인한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가 되풀이되었으며, 거기에다 춥고 비위생적인 형무소 수감이 장기화되면서 이 윤재, 한 징 선생 두 분이 결국 옥사했다.
그때 그 일기를 썼던 여학생은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를 졸업했는데, 자기 일기로 인해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을 뒤늦게 전해 듣고는 큰 충격을 받고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저분은 1982년 여름,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에 전국적인 반일 정서가 강해졌던 시절에 환갑을 앞둔 나이가 돼서야 “내가 그때의 영생여고보 학생 박 영희였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중앙일보 인터뷰를 했다. “그때 일기장을 빼앗기고 은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는 협박과 함께 온갖 불법 감금과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바로 본인이고 아직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을 오리발 내밀고 발뺌하고 부정한다니, 왜놈들은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라고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인터뷰 내용은 한국일보에도 실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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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에 옛날엔 “내가 소설과 영화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이고 최 용신의 옛 약혼자인 김 학준이오!” 커밍아웃이 나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쯤 뒤 1990년대 초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으니.. 이런 식으로 옛날 역사의 증인들이 하나 둘 나타난 듯하다.

그러니 <말모이> 같은 소재의 영화가 좀 더 진지하게 역사 고증과 사실성을 추구한다면, 저런 사람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액자식 구성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 대신, 그랬으면 또 월북한 빨갱이 학자를 미화한다는 색깔 논란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극로는 깨끗이 잊고 최 현배를 대신 부각시키거나..

5. 그들은 왜 그렇게 사전 편찬에 목숨을 걸었는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국어에 이런 단어가 있었나 싶은 듣보잡 어휘가 의외로 많이 잠들어 있다. 가령, 미혼 해녀를 '비바리'라고 하고, 돌싱 여성을 '되모시'라고 한다.
한자어 합성이긴 하지만, 1/n 더치페이를 나타내는 '각추렴'이라는 말도 있다.

호칭과 높임법이 너무 불편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거, 정말 어휘가 없어서 외래어 쓰는 것을 뭐라할 수는 없다. 그런 걸 어설프게 순화어 만드는 건 별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당장 멀쩡하게 이미 있는 말부터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 쓰여서 사어가 됐다면 그걸 고유명사화해서 브랜드명으로 써먹는 방법도 있을 테고 말이다.

더구나 한국어는 체언보다 용언을, 형용사보다 부사를 훨씬 더 좋아하는 언어이지 않던가. 순우리말도 저런 지엽적인 명사보다는 동사 같은 용언을 더 많이 찾아서 살려 써야 된다.
본인의 오래된 생각이긴 하다만.. 영어로는 reliable이라고 한 단어로 간단하게 표현하는 걸 우리는 맨날 '믿을 만한, 신뢰할 수 있는'이라고 길게 풀어서 번역해야 한다면 몹시 불편하고 비경제적이다. 이런 예가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난다면 한국어의 사고 체계는 영어의 사고 체계와 비교했을 때 결코 편리하다고 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걸 '미덥다'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믿음직하다'보다도 더 짧다. 한국어에 원래 그런 어휘가 있다는 증언을 바로 국어사전이 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faithful에는 '신실하다'뿐만 아니라 '미쁘다'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 throw는 그냥 '던지다'이지만, hurl에는 '내박치다'라는 뜻풀이가 실려 있어야 한다.

영일 사전을 그대로 베끼기만 해서는 진짜 우리말다운 표현이 반영된 영한 사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국어 사전과의 적절한 연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어 최초의 사전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어 학회 큰사전의 존재 의의였다.

6. Aftermath

이렇듯, 조선어 학회는 일제 시대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내놓고 사전 편찬 작업을 했다. 영화에서는 맞춤법이라기보다는 방언 수집· 분류와 표준어 제정처럼 묘사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전을 편찬하려면 실제로 저런 식으로 온갖 어휘들을 수집하기도 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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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에는 이 학회 출신의 학자들이 미군정 하에서 거의 즉시 한국어 교과서를 편찬하고 사전을 실제로 출간하는 과업까지 이뤘다.
한글 학회 큰사전 이후로 나중에는 신 기철· 신 용철이 편찬한 '새우리말 큰사전'도 민간 국어사전의 양대 산맥을 구성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부터는 국립 국어원의 '표준 국어 대사전'이 나오면서 민간에서 국어사전을 또 편찬할 일은 사실상 없어졌다.

그런데 이때는 대세가 이미 인터넷으로 기울고 있었던지라, 국가 기관에서 편찬한 국어사전조차도 초판 종이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가 적자를 봤다고 한다. 그 뒤로 사전이 수차례 개정되고 증보되었지만 종이책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참 격세지감이다.

이상이다.
영화가 배경 말고 이야기의 주 뼈대가 거의 다 허구인 것은 아쉬운 점이다. 햄· 소시지 같은 가공육인 것을 처음부터 감안하고 먹긴 했지만, 성분 분포를 보니 싸구려 잡육과 밀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도 맨날 뻔한 무장 항일 투쟁 말고 조선어 학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온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아저씨>의 오 명규 사장과 <범죄도시>의 장 첸을 한데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국내에 있는 영화 소품용 1930년대 올드카 대여 업체들은 다 좌핸들 차량만 보유 중인가 보다. 그 시절 배경 드라마나 영화들을 봐도 다 그런 것 같다. 진짜 일제 시대에는 일본을 따라 다 좌측통행 우핸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 이 글은 한글 학회 홈페이지에 공식 기재된 학회 연혁을 상당수 참고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 기억에만 의지해서 쓴 게 아니다.
아울러, 관심 있으신 분은 조선어 학회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잘 소개해 놓은 다음 사이트의 자료도 추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1 / #2

Posted by 사무엘

2019/01/19 08:33 2019/01/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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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이곳 학교 이야기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에 해당하는 20세기 말에는 국어와 관련된 사건이 주변에 유난히 많이 일어났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감수성 예민하던(?) 본인의 진로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1999년에는 웬 뜬금없는 한자 병용 정책이 내려져서 한글 전용 지지 진영과 반대편 진영이 극심한 키배를 벌였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격렬하게 싸웠다. (그때 나도 혈기 넘치는 키보드 워리어 중 하나였다 ㄲㄲㄲㄲ) 지금 도로 표지판과 지하철 역명판에 한자가 병기된 건 이 시절의 산물이다.
사실, 소위 '한자파'들은 1998년에 전국 한자 교육 추진 총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그때부터 이미 의기투합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1998년에는 복 거일 씨의 영어 공용화 드립 때문에 시끄러웠다. 이 때가 뭐가 씌인 해이기라도 했는지?

그래도 1999년 3월 1일에는 그 보수적인 조선일보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따라 전면적으로 가로쓰기를 시행하고, 예전에 비해 한자를 크게 줄이기도 했다.
2000년에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운동 단체들만 시끌벅적했던 게 아니다.
1998년부터는 21세기 세종 계획이라는 게 정부 차원에서 10년간 추진되어, 한국어의 말뭉치 데이터를 구축하고 가공하고 이것으로부터 뭔가 의미 있는 실험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출판사가 아닌 학술 연구소와 정부에서 각각 대형 국어 사전을 내놓았다. 전자는 바로 연세 한국어 사전(1998)이요, 후자는 그 이름도 유명한 국립 국어원의 표준 국어 대사전(1999)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첫 종이 사전은 둘 모두 두산동아에서 출판했다. 현재는 다들 개정판을 인터넷으로만 제공하고 종이 사전을 내지는 않는 듯.

연세대는 국어학에 관한 한 서울대와는 다른 독자적인 학풍을 형성하고 있다. 옛날에는 최 현배 파, 이 희승 파로 갈려서 교과서 용어조차 다를 정도로 서로 이질적이었지만 지금은 물론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래도 연세대가 좀 말뭉치 기반 언어 연구라든가 사전학, 비교 언어학처럼 언어학 중에서도 응용 분야를 더 좋아한다.

이런 맥락에서 연세대에서는 국문과 교수들과 관련 인사를 주축으로, 이미 1980년대 중반에 국어사전을 자체적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다. 옛날 조선어 학회 시절에 천신만고 끝에 발간된 <큰사전>의 정신과 사명감을 계승하겠다고 말이다. (당장 정신적 지주인 故 최 현배 박사가 연세대 교수!)

10년에 가까운 시간과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동원된 끝에, 1998년 한글날에 처음으로 연세 한국어 사전 초판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2000년 한글날에는 웹 기반 사전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 컨텐츠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증보와 개정을 거듭하고 있다.;;

본인이 재학 중인 연세 대학교의 '언어 정보학' 협동 과정은 1990년대 말에 바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개설된 상당히 독보적인 학과이다. 사전 편찬실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마침 국가에서도 세종 계획이다 뭐다 하면서 국어 정보학 분야에 종사할 인력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특히, 국어학과 컴퓨터 기술을 잘 융합할 수 있는 사람을!

나도 옛날에는 사전을 만든 국어학자들이 민족주의 정신이 투철한 독립 운동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공부를 좀 해 보니, 저분들이 정말 똑똑한 수재였으며 이런 험난한 길을 안 갔으면 훨씬 더 돈 많이 벌고 성공했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내 홈페이지에 있는 석인 정 태진 선생의 일화를 읽어 보기 바란다.

그래서 이 학과에는 말뭉치 언어학 내지 사전 편찬과 관련된 수업이 필수로 등재되어 있다. 사전 편찬학 수업을 들으면서 사전 편찬과 성경 번역도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걸 느꼈다. 사전을 잘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어렴풋이 느꼈으며, 사전 원고를 검증하는 도구(컴퓨터 프로그램)가 조금만 더 똑똑하면 지금보다 상당수의 번거로운 노가다 수작업을 줄이고 사전의 오류도 줄일 수 있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사전 뜻풀이에 정작 이 사전에 없는 어려운 어휘가 쓰인다거나, A라는 뜻풀이에 B 단어가 등장하고 B의 뜻풀이에 A 단어가 등장하는 순환 뜻풀이 같은 것. 일명 순환 참조가 되시겠다.

요즘은 사전 편찬자가 자기 언어 직감에 의지하여 뜻풀이와 예문을 작성하기보다는, 다량의 말뭉치를 분석하여 거기서 도출된 통계대로 용례와 뜻풀이를 추출하는 방법이 일반화되고 있다. 편찬자의 주관이 안 들어가고 객관적이라는 장점 하나는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연세 한국어 사전은 철저하게 이 방법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게 특징이며 여타 사전들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행 표준어 규범까지 무시할 정도로 독자 노선을 간 줄은 몰랐다.

지금이야 드디어 '짜장면'이 복수 표준어가 되었다지만, 10년도 더 전에 나온 연세 한국어 사전은 '자장면'의 풀이가 “짜장면의 잘못”이라고 되어 있었다! 덜덜덜;;; 미래를 내다본 것일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랐다.
당연히 국민 중에 '자장면'을 쓰는 사람은 전혀에 가깝게 없었을 것이고, 그 추세가 밑천인 말뭉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서 그런 풀이가 나왔지 싶다.

이런 식으로 연세 사전은 라이벌(?)인 표준 국어 대사전과는 정반대의 뜻풀이를 한 게 여럿 있었다.
'흉내 내다' 대신 '흉내내다'를 한 단어로 풀이하고, '-측(one's side)'을 의존명사로 보아 붙이는 용법을 지지하였다.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검사기만 돌려 봐도 빨간 줄이 쳐질 단어이지만, 솔직히 '흉내 내다'는 무의식적으로 붙여서 써지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옛날에 문법 용어를 두고 동사 vs 움직씨 같은 기싸움을 한 것을, 사전으로 무대를 옮겨서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국어 정보학 쪽으로 식견이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이런 파격적인 시도를 한 연세 사전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이에 반해 표준 국어 대사전은 정부 기관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편찬했으니, 성경으로 치면 한국의 유일한 공역이라 할 수 있으며 여타 사전들과는 그 위상이 다르다.

하지만 이 사전은 이것대로 표제어 수 늘리느라 중국· 일본에서도 안 쓰는 이상한 한자어들을 잔뜩 덧붙였다고 비판 받고, 잘못된 풀이와 틀린 용법까지 무분별하게 다 실어서 책 두께를 부풀렸다고 욕 많이 얻어먹긴 마찬가지였다. 여기 국문과 대학원 재학생들 중에서도 표준 국어 대사전 좋아하는 분 별로 못 봤다. -_- 그래도 국립 국어원에서 만든 만큼 이건 표준어/맞춤법 규범을 어기지는 않는다.

21세기 세종 계획이 만료된 뒤, 이곳 언어 정보학 협동 과정은 한국어 교육 쪽과의 접목을 통해 경쟁력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쪽이 수요가 많고(한류 열풍 약빨이 오래 가야 할 텐데!), 사전 편찬은 언어 교육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말뭉치 같은 걸 접목할 수 있는 응용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보다 '언어'에 비해 '정보'의 비중이 덜해진 건 사실이며 그건 나로서는 약간 아쉬운 점이다.

이런 와중에 본인은 진짜 두 분야를 완벽하게 섞은 연구를 하려고 이곳에 진학해 있다. 교수나 랩이 주도적으로 뭔가를 push해 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개인플레이 위주이고 혼자 알아서 덕질을 찾아서 할 수 있는 곳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난 그런 곳이 낫다.
나는 더 빠른 하드웨어를 만들거나, 수학적으로 더 엄밀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이를 이용해서 한국어와 한글 다루는 걸 더 멋있고 편리하게 만드는 응용 쪽이 아무래도 훨씬 더 잘 어울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18 19:31 2011/10/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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