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인터넷 상으로 활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수학계에는 이 재율이라는 정체 불명의 전투종족이 있었다. 인터넷 용어로는 이런 부류를 crackpot이라고도 한다네..
이 사람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n이 3 이상인 자연수일 경우, a^n + b^n = c^n을 만족하는 자연수 a, b, c는 존재하지 않는다1) -- 를 아주 경이로운 방법으로 풀었다고 주장하고 최근에는 4색 문제도 간단하게 풀어냈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 씨의 논리에 오류가 있으며, 증명되지 않은 가정을 참인양 무단 사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일찌감치 퇴짜를 놨다. 수학은 논리에 관한 한 가히 변태적인 수준의 완벽 결벽을 요구할 정도로 의심이 많은 학문이지 않던가.
사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4색 문제는 모두 현대에 와서야 굉장히 어렵게 증명되었다. 전자는 영국의 앤드루 와일즈라는 수학자가 1995년에 현대 수학의 한 분야를 총동원하다시피해서 겨우 풀어 냈다. 1993년에 논문을 냈는데, 그게 논리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개정을 해서 완전히 인정받은 게 1995년이다.
이걸 풀었을 정도의 업적이면 가히 수학계의 노벨 상인 필즈 상을 받기에도 손색이 없으나, 필즈 상은 연령 제한이 있는 상이다. 와일즈는 아슬아슬하게 연령을 초과하여 필즈 상을 받지는 못했으나 다른 특별상은 받았다고 한다. 이 문제는 워낙 어렵게 풀렸기 때문에, 현대의 수학자들은 '이거, 300년 전에 페르마가 제대로 된 풀이를 해내긴 했을까?' 의심을 할 정도이다.
마치 전산학에서 '아무래도 P와 NP는 같아 보이지 않는다' 같은 물증 없는 심증인 셈이다. '저걸 놀라운 방법으로 증명해 냈지만 여백이 부족하여 적지 않는다'라는 떡밥의 진실 여부는 아직도 저 너머에 있다.
한편, 4색 문제는 자세한 디테일은 기억이 안 나지만, 사람의 영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예 컴퓨터로 온갖 방대하고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순수주의 성향이 강한 수학자는 그건 문제를 진정 제대로 푼 게 아니라고 하면서 더 인간다운(?) 증명 방법을 찾고 있기도 한다 “카더라.”
그런데, 이렇게 세계의 수학계가 아직까지 쩔쩔매고 있는 문제를 재야에 있는 어느 개인이 풀어 냈다고라?
이 재율 씨는 논문의 오류를 지적하는 학계의 지적을 무시한 채, 자신의 학설을 안 알아 준다며 대한 수학회를 완전 범죄자 비리 집단이라고 쌍욕을 해 대고, 학회를 상대로 1인 시위까지 하면서 생 난리를 부렸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갖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면서 게시판 분위기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상한 주장을 담은 댓글을 마치 기계처럼 뿌리고 다녔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 있나요?"란 물음에는 오로지 "그건 니가 공부를 안 해서 모르는 거다"로 일관하면서 말이다. ㅡ,.ㅡ;;
자기 이름으로 검색엔진을 돌려서 매일 모니터링이라도 하는지, 게시글에 '이 재율'이 들어가면 며칠 만에 그 글의 댓글로 이 재율의 댓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를 네티즌들은 '이 재율 소환 성공'이라고 불렀다. ㄲㄲㄲㄲㄲ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는 종교계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학계에도 있는 모양이다. 그 분야가 의외로 참 다양해서
영구 기관을 만들었다거나, 삼라만상의 운동 법칙을 한데 기술하는 통일장 같은 이론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발명가 또는 재야 과학자. -_-;;
P=NP를 손쉽게 증명하거나 반증했다고 주장하는 재야 수학자,
아직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환빠 사학자, -_-;;
그리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좀 뭣하지만..
한글 세계화 연구한답시고 우리말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에 유난히도 집착하면서, 국립 국어원과 심지어 한글 학회까지 무진장 헐뜯고 다니는 이상한 분들도 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외래어 표기법을 바꿔 놓겠다고 정치 인맥까지 맺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흠좀무.
기초 언어학 지식부터가 결여되어서, 한 언어의 음운 구조와 정서법에 맞게 만들어진 문자 체계하고, 음성 부호의 차이를 분간 못 한 비극이다. 잘 알다시피 본인은 종사하는 분야가 이런 쪽이다 보니 별 희한한 걸 지금까지 많이 봐 왔다. 그런데 이 분야에 있는 분들은 이 재율이 누군지는 대체로 모르시더라. ㅋㅋ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 잠시 내 근황을 소개하겠다.
얼마 전엔 자기가 무슨 아주 빠르고 효율적인 한글 입력 방식을 만들었다고 너무 단호하고 확실하게 주장하는(그리고 덧붙이자면, “사무엘 님 혹시 시간 있으면 이 입력 방식을 구현도 해 주실 수 있겠음?”) 어떤 분이 있어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만나서 얘기는 들어 보고 왔다.
내가 보기엔 세벌식이라고 볼 수도 없고 저런 글자판으로 도대체 어떻게 빨리 칠 수 있을까 싶은 것이었으며, 역시나 딱 전형적으로 “공 병우 세벌식을 비판하는 사람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 못 봤다” 부류일 뿐이었다. 공 병우 세벌식의 진짜배기 장점과 단점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다만, 저렇게 복잡한 입력 방식은 회사를 차려서 직원 뽑지 않는 한 외주로는 구현체를 못 보지 싶다.
나야 회사와 학교 같이 다니느라 안 그래도 파김치가 될 지경이고, 곳곳에서 들어오는 작업 요청들 거절하느라 더 바쁜데, 저런 것에 관심을 가져 줄 리야 만무했다. (그러게 맨날 바쁘다면서 블로그질 잉여질은 꼬박꼬박 챙겨 하고 있군 ㄲㄲㄲ)
그랬는데 이분은 자기가 공 병우 세벌식보다 더 나은 물건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공 박사의 정신을 계승했고 공 박사도 이걸 봤으면 정말 무릎을 쳤을 거라고... 지금 있는 한글 문화원 관계자들은 마음이 꽉 닫힌 채 공 박사의 한글 기계화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고 고인드립까지 치니 내가 도저히 대화를 더 진행할 수 없었다. 나이가 무려 아버지뻘인 분하고 내가 키배를 뜨겠는가, 뭘 더 할 수 있겠는가? 어이가 없어서 그냥 조용히 연락 중단.
자기 발명품 안 알아 주면 무조건 나쁜놈이다. 그분은 정통(?) 공 병우 세벌식 지지자에 대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저런 감정을 품고 살게 될 듯하다. 난 그나마 진짜 골수들에 비하면 꽤 온건한 편이다.. ㅋㅋㅋㅋㅋ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학문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이런 식의 괴담이 나왔으니 빠뜨릴 수 없는 건 음모 이론 떡밥.
음모론에 너무 심취해 있으면 대한민국 곳곳이 이미 북괴 땅굴로 나이더스 캐널마냥(저그 건물 ㄲㄲ) 연결되어 있으며, 올해 안으로 김 정일은 남침할 것이다. 또한 세계 경제는 유대인과 프리메이슨이 다 잡고 있고, 지구의 내부에는 빈 공간이 존재한다. 911 테러와 아폴로 달 탐사는 자작극이며, 석유 재벌들 때문에 대체 에너지가 도통 개발이 못 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음모론들 중 일부는 좀 그럴싸한 것도 있지만, 어떤 건 정말 기초 역사 지식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며 말도 안 되는 것들이다. 세상 한번 참 복잡하다. -_-
이단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판매 조직, 심지어 도박 같은 데에 도대체 누가 어떻게 왜 빠져들겠는지 궁금하지만 결국 빠져들 사람은 빠져든다. 한번 어떤 사상에 확 홀리고 feel이 꽂히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위와 같은 혹세무민 부류와는 정반대 극단으로, 모든 걸 오로지 회의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내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한다거나 수학·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면 무조건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다. URL 중에 rathinker 이런 문자열이 있었지 싶다. 굉장히 옛날부터 존재한 사이트인데 지금도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다. 난 뭐 관심 없으니 가 볼 생각은 없고.
자기의 지론을 꿋꿋이 유지하더라도 그것만 껴안다 자폭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비극이다. 남과 소통을 할 최소한의 유연하고 열린 마음 자세는 필요하다. 남의 지론에 반대하더라도, 최소한 남의 지론이 뭔지 정확히 알고, 내 지론과 동일선상에서 비교와 평가는 공정하게 하고 나서, 거부하든 반대하든 해야 한다.
본인 역시 성격상 저런 옹고집이 될 위험성이 굉장히 높은 부류라는 걸 스스로 안다. 이념 따지는 거 좋아하지, 괴상한 발명품 만들고 있지... ㅜㅜ 그런 잠재성은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면서 지낸다. 학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객관적인 안목을 키우는 훈련이 매우 중요하다.
끝으로, 창조 과학은 예전에 글로 쓴 적이 있듯이 과학계에서 거의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사이비 취급받고 있으며 -_-;;
킹 제임스 성경은 신학계에서 저런 비슷한 수준의 이단 사이비 취급받는 중이다. ㅋㅋㅋㅋㅋㅋ
본인은 아무리 이성과 합리를 추구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보존 약속을 못 믿을 정도로 합리적이지는 않다(그리고 그건 결국 실제로 이성적이지도 않으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Notes
1) n=1일 경우야 trivial이고 n=2일 때 a, b, c는 피타고라스의 수가 되는데 이 쌍은 3, 4, 5부터 시작해서 자연수쌍이 여전히 무한히 존재하니까..
Posted by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