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인왕산

본인은 이번엔 2년 전 등산 초창기 시절에 별 기록을 안 남기고 올랐던 인왕산을 다시 찾아갔다. 찾아가는 거리, 산의 높이와 규모, 등산 시간은 이 정도가 다시 생각해 봐도 입문용으로 딱 적당하긴 하다.

산행을 하던 당시엔 날씨도 아주 맑고 한편으로는 추워서 등산에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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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주 능선과 정상이 한양도성 성곽으로 쫙 이어져 있다. 이 길만 따라가면 정상을 지나서 창의문 방면으로 하산하게 되며, 창의문에서 북악산 등산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본인은 2년 전에는 지하철 3호선 독립문 역에서 내려서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 뒤쪽으로 인왕사를 거쳐서 성곽길로 나중에 합류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저렇게 성곽길과 함께 정식 등산로 입구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리로 갔다.

등산로 입구 근처엔 '한국 사회 과학 자료원'이라는 난생 처음 듣는 기관이 있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종로 05 마을 버스가 입구 바로 코앞까지 가 줬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서대문 일대 나들이도 했는데, 얘는 마침 5호선 서대문 역 3번 출구에서 출발한 뒤 독립문 역에서 골목 비탈길로 들어가는 단방향 순환 버스였다.
서울 종로구는 지하철이 다니고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 종로와, 그 북쪽의 산기슭 종로가 그야말로 완전히 따로 노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이다. 그래서 도심과 산기슭을 오가는 역할을 이런 마을 버스들이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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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번 산행은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오른쪽 계단이 순간 철길처럼 보이긴 한다만.. (계단이 침목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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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철조망이 보이시는가?
행정 내지 보안 측면에서 보자면, 인왕산은 무슨 국립공원 같은 감투는 없다. 북악산처럼 입산을 위해 신분증 까고 목걸이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복궁과 청와대가 옆에서 딱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정상을 포함한 주요 전망대에는 경찰 소속의 보안 요원이 2명 1조로 등산객을 감시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은 입산이 금지된다.

이건 전국의 산들 중에서 인왕산에만 존재하는 특징이지 싶다. 정작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에서도 청와대는 거의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감지덕지이지, 먼 옛날에는 인왕산 정도면 산 전체가 그냥 민간인 출입 금지였었다. 그러던 것이 1993년 2월 말, 김 영삼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인왕산이 해금되고 거기 주요 등산로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인왕산은 주요 봉우리들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느 산들의 꼭대기에 있는 군부대처럼 공군 소속의 방공 부대가 아니라 육군 소속이다. 여기는 청와대와 아주 가까우며 애초에 엄격한 비행 금지 구역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 정도로 군부대가 많이 있는 산치고 인왕산에는 헬리패드가 없다. 적어도 주 등산로 근처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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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보안 요원 초소를 지나고 계속 산을 오르는 중이다.
2년 전에 갔을 때는 이런 전망대들마다 "청와대 방면으로 사진 촬영 금지" 이런 경고문 표지판이 대놓고 놓여 있었는데.. 시대가 바뀌었는지 지금은 그런 표지판을 없앤 모양이다.
표지판은 없지만 보안 요원은 여전히 상주하고 있다. 뭐,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진다" 심리를 조장하지 않으려고 없앤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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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등산은 상당수가 그냥 성곽 따라 고개를 오르는 것이다. 남한산과 비슷하다. 성벽이라는 게 그 특성상 산의 가장 높은 부위를 따라 만들어지니까 말이다.
물론 그 아래에도 생태 공원이 있고 약수터도 있긴 하지만, 본인은 거기는 이번에도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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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몇 장 찍지도 않았는데 슬금슬금 걷다 보니 정상에 이내 도달했다. 정상 표지석은 없고, 바닥에 서대문구· 종로구 경계 표시와 위치 측량 인증이 놓인 게 전부이다.
정상은 정규 등산로에 놓인 게 아니라 거기서 벗어난 곳에 일종의 '지선'처럼 놓여 있다. 내 기억으로 북악산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 지점에서 더 진행은 할 수 없고 앞이 막혀 있다. 왔던 곳으로 잠시 되돌아가야 산행을 계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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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와 하산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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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삐죽 솟은 다른 봉우리인 '기차바위'로 건너갈 수 있고, 아니면 지금 가던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서 그냥 창의문· 북악산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건너편 기차바위의 모습이다.

인왕산을 최대한 경험하려면 기차바위로 가서 부암동 내지 상명대 방면으로 하산하는 게 좋다. 본인은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성곽 같은 거 없이 평범한 산행이 시작됐다.
본인은 2년 전에도 기차바위 쪽으로 갔었다. 그랬는데 일부 기억이 소실되어서 정상에서 기차바위가 바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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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아주 작은 산이다. 기차바위에도 단 몇 분 만에 정말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는 청와대는 딱히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기에도 보안 요원이 있었다. 이게 이번 산행에서 만난 마지막 보안 요원 일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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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에서 구경할 건 다 봤으며, 산을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인왕산은 별로 높지도 않은데 보다시피 정말 철저하게 돌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을 벗어난 뒤에도 흙을 밟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어지간한 나무들이 다 낙엽이 지다못해 잎이 다 떨어진 추운 계절인데도, 산의 나무가 소나무 같은 침엽· 상록수 위주인 덕분에 초록색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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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의 최북단에 있는 마지막 군부대를 지났다. 이정표에 그냥 "이쪽은 군부대. 등산로 더 없음"이라는 안내가 돼 있어서 홍지문· 상명대 방면만 선택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인왕산에서 내부순환로를 타넘어 그 이북에 속하는 구간에 도달했다. 이제 산이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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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상명 대학교가 드디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소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이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이 종로가 그 종로는 아니다. 캠퍼스가 어지간히도 가파른 산기슭에 있구나..;;
옛날에는 저기가 여대였다고 그러던데 본인은 그에 대해 듣거나 아는 바가 없다.
전방에는 한양도성도, 북한산성도 아닌 이상한 성벽이 나타났다. 상명대 쪽으로 더 가면 북한산 구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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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완료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홍지문 및 탕춘대성'이라는 완전 처음 듣는 유물이었다. 경주의 '동궁과 월지'처럼 둘을 한 명칭으로 묶어서 부르는 듯하다.
그리고 '세검정'이라는 정자도 여기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난 상명대만 기대하고 왔는데 뜻밖의 구경을 더 하게 됐다. 등산 과정에서 이런 역사· 지리 지식을 늘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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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 대학교는 뒤에는 산이고 앞에는 홍제천이 지나는 친자연적인 곳에 있구나.
로고가 내 한글 입력기의 아이콘처럼 한글 자모를 세로로 풀어쓴 형태인 것이 예전부터 인상적이었다. 물론 날개셋의 아이콘은 본인이 상명 대학교를 모르던 시절에 만든 것이니 둘은 형태가 그냥 우연히 일치하는 것이다.

창의문, 자하문, 북소문이 전부 같은 문을 가리킨다는 게 개인적으로 무척 헷갈렸다. 실물 근처에서는 다들 '창의문'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근처의 터널은 '자하문 터널'이고 도로명도 '자하문로'이니까 다른 문이 또 있는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때는 역시 경복궁 역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으며, 창의문과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을 지나쳐 갔다. 그런데 차창 밖을 보니, 어둡고 칙칙한 갈색이던 동상이 번쩍이는 황토색/구리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 내가 뭘 잘못 봤나?

검색을 해 보니 역시나 내가 몰랐던 이벤트가 있었다. 세워진 지 반세기가 다 돼 가던 낡은 동상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한 뒤, 바로 작년 가을(2017년 10월 20일경)에 경찰 관계자들과 고인 유족을 초청한 제막식까지 열었다고 한다. 이것도 인왕산 등산을 안 했으면 알지 못했을 일이다.
요 근래 들어 경찰에서는 자기네 순직자들을 기리는 일에 열심인 것 같다. 서대문 소공원을 경찰 기념 공원으로 개조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에도 이렇게 산행 한번 하면서 좋은 경치 구경하고 여러 정보들을 업데이트 하고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23 08:33 2018/02/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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