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지나고 2018년의 봄이 찾아왔다.
낮 기온은 영상 한 자릿수 정도이다. 한겨울 중무장 급의 두꺼운 옷은 이제 필요 없어졌으며, 낮에 격렬하게 활동하면 땀도 날 정도이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여전히 외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딱 이런 날씨가 정말 좋다. 이보다 더 더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봄과 가을처럼 날씨가 좋을 때 등산을 자주 가려 한다.
서울 근거리에서 새로 개척할 만한 산은 거의 남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가까운 시간 간격으로 서울의 북쪽 근교에 있는 명산 세 곳.. 북한-북악-인왕산을 예전과 살짝 다른 경로로 예전에 들르지 못했던 곳을 보충하는 형태로 다녀왔다.
한번 다녀오고서 기억이 희미해져 가던 곳을 다시 다녀오니, 이제는 각각의 산 속 지리와 등산로 구조가 더 분명하게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저 세 산을 또 찾아갈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1. 북한산 --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 대서문, 원효봉
예전에 하산 지점이었던 진관사는 은평구의 거의 끝자락이기라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서울이었다. 이번에는 서울을 확실하게 벗어나서 북한산 초등학교 근처의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그래서 북한산성 대서문을 지나고 원효봉까지 오르고 돌아왔다.
똑같이 북한산 등산로여도 정릉이나 우이 탐방 지원 센터 근처는 공영 주차장도 있고 등산용품 매장, 식당, 카페들이 즐비해서 반쯤 유원지 같다. 옆으로 계곡이 있어서 시냇물이라도 흐르고 있으면 경치가 좋으니 그런 시설들이 더욱 많아진다.
하지만 국민대 근처의 북악 공원 지킴터라든가 평창동 내부의 평창 공원 지킴터, 구기 탐방 지원 센터 같은 곳은 산기슭에도 그냥 평범한 주택 건물밖에 없는 마이너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등산로인 듯하다. 주차장도 두 곳이나 있고 등산객들로 정말 북적거렸다.
여기는 집에서 꽤 먼 관계로 본인도 차를 가져갔기 때문에, 등산을 막 멀리까지 하지는 못하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차를 세워 놓기 위해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불안하게 불법 주차를 하지도 않았다. 기왕 주차비가 들 거면 카페를 하나 이용하고서 고객 전용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고 등산을 다녀왔다.
북한산성의 대동문과 보국문, 대남문은 한참을 낑낑대며 산을 중턱까지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반면, 대서문은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달할 수 있었다.
북한산의 서쪽 기슭에는 절(사찰)이 정말 많았다. 상운사, 대동사, 국녕사, 중흥사 등.. 이 때문에 제법 높은 고도까지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게 닦여 있었으며, 대서문은 그 길목에 있었다. 북한산에서 아마 가장 깊숙하게 차도가 닦인 구간이 여기가 아닐까 한다.
물론 여기까지 실제로 차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공무원이나 사찰 관계자나 방문객 불자로서 허가를 받은 사람뿐이다. 아무나 등산로에서 차를 굴리고 다닐 수는 없으며, 부득이하게 운전을 하더라도 타 등산객과 사고를 내지 않게 비상등을 켜면서 아주 천천히 달려야 한다.
산에서 차도를 필요하게 만드는 존재는 군부대와 사찰 이렇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그나마 사찰은 산중턱에 있는 게 대부분이지만 군부대는 공군 방공부대 같은 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된다.
지난번에 비봉에서 북한산을 올랐을 때는 북한 무장공비의 동선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 등산로에서는 과거에 여기 주변에 조성돼 있었던 '북한동 마을'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하게 됐다.
원래 여기 주변에도 다 민간인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가 2000년대 초에 국가에서 북한산의 생태 복원과 환경 보전을 위해 주민들을 보상과 함께 타지로 이주시켰으며, 마을을 철거했다고 한다.
아무리 보상을 해 준다 해도 대대로 여기서 살던 사람들을 갑자기 이주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경치 좋은 관광지에서 요식업에만 종사하며 살면 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타지로 쫓겨나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사진은 지독한 역광 구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런 모양으로 찍혔다.
여기는 드디어 넓은 차도가 끝나고 가파른 계단식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원효봉에 도달할 수 있다.
단, 돌로 된 북한산의 봉우리들은 마지막 300~500m를 남겨두고 더욱 가팔라지면서 등정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여기는 백운대 정상 같은 급의 막장 난이도는 아니었다.
북한산성 등산로 시작점에서 1km를 조금 넘는 구간은 대서문을 지나는 차도만 있는 게 아니라 계곡을 구경하면서 더 짧고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등산로도 있었다. 본인은 하산할 때는 이쪽 경로를 선택했다.
옛날에는 저 사진의 공터에 다 집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계곡은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으며, 아직 눈과 얼음이 녹지 않은 곳도 많이 보였다. 나중에 곧 방문한 인왕산 수성 계곡도 딱 이런 분위기였다.
2. 북악산 -- 삼청각, 팔각정
본인은 2016년에 북악산을 1차로 올랐을 때는 한양도성을 따라 철저하게 남쪽 봉우리만 지났다. 그 뒤 2차로는 북쪽 봉우리로 가되, 김 신조 루트를 따라 북동쪽으로 가서 국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했다. 둘 다 시작은 종로구였다(각각 창의문 안내소와 삼청 공원),
그 뒤 이번 3차 산행에서는 1차 등산의 하산 지점과 얼추 비슷한 성북구의 삼청각 근처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2차 산행과 비슷한 경로로 북쪽 봉우리로 건너갔는데, 김 신조 루트 대신 꾸준히 봉우리만 올라서 북악 팔각정을 최단거리로 찍었다. 그 뒤 북서쪽의 평창동 방면으로 하산했다.
이번 북악산 등산로를 찾아가기 위해 2112 녹색 버스의 종점에서 내렸다. 그 뒤 산을 향하여 비탈길을 계속해서 쭉 올라갔다.
위의 사진에 나온 집은 1차 등산 때 내려다봤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2년 전 블로그 포스트의 마지막 사진을 보시길..).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사무실인지, 아니면 갑부들 저택인지 모를 특이한 건물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 건물을 드디어 가까이에서 보게 됐다. (검색을 해 보니.. 분양가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갑부용 단독주택이라고 한다..)
이 산책로의 옆에는 계곡이 있어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건 근처의 북악산에서 발원한 성북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 주변엔 공터가 생각보다 있는 덕분에 주차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본인은 여기는 북한산을 갈 때와는 달리 어차피 버스를 타고 갔지, 차를 가져가지 않은 상태였다.
쭉 올라가니까 자동차 도로(도로명: 대사관로)가 나오고, 근처엔 지금까지 말로만 들어 온 '삼청각'이라는 한옥 단지(?)의 입구가 나타났다.
무슨 역사적 유래가 있는 옛날 문화재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더라. 의외로 1972년에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북악산 동쪽 기슭에 일부러 전통 한옥 스타일로 만든 '요정(料亭)'이라고 한다. 단체 손님들이 자기만의 방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고급 한식당이라는 뜻이다. 여종업원이 서빙을 하는 건 덤이고..
삼청각은 높으신 분들의 회식· 회의, 거래 미팅, 친교 공간으로 쓰였으며, 실제로 만들어지자마자 남북 적십자 회담과 한일 회담의 협상이 거기서 이뤄졌다. 그때는 1. 21 사태의 트라우마가 쩔었었기 때문에 일반 양민들은 삼청각이 위치해 있는 북악산 쪽으로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삼청각은 1970년대 요정 정치의 산실로서 그야말로 정· 재계 VIP들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궁정동 안가(安家)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군사 정권이 끝나면서 삼청각은 예전 같은 넘사벽급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부유층 민간인을 상대로 고급 레스토랑· 카페 겸, 돈지랄 좀 한 결혼식과 돌잔치 장소로 쓰이게 됐다. 지금은 2001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서 문화 행사 공연 장소로도 쓰이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저기는 돌아가는 방식이 공영인지 민영인지가 좀 궁금해진다.
말이 좀 길어졌다만,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도 있다는 걸 본인은 이번 기회에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됐다.
다만, 2018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삼청각이 무려 17년 만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그래서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이곳이 영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삼청각 안으로 들어가 봤다. 내부 수리 상태이지만 각각의 건물만이 폐쇄되었지,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는 여전히 가능했다.
삼청각을 구성하는 각각의 한옥 건물들은 누가 지었는지 모를 한자어 이름이 붙어 있었으며, 북쪽 끝에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편운정'(片雲亭), '떠다니는 구름 한 조각'이라는 뜻의 정자가 놓여 있었다.
삼청각은 산 쪽으로 울타리가 아주 빡세게 둘러져 있지는 않았으며, 그 안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억지로 찾아서 북악산 등산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면 동쪽의 군부대로 가는 계단으로 합류하여 국민 대학교와 북한산 방면으로만 진행 가능하지, 팔각정으로 갈 수는 없었다. 팔각정으로 가려면 삼청각의 서쪽에 따로 나 있는 등산로를 이용해야 했다.
삼청각의 편운정 근처에서 전방의 정식 등산로를 보고 찍은 사진이다. 저 등산로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성북천 발원지와 김 신조 루트 갈림길은 2년 전에 봤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사진 첨부는 생략하겠다.
30분 남짓 근성으로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북악산 팔각정에 도달했다. 차를 몰고 가던 곳을 처음으로 도보로 완주하게 됐다.
북악 스카이웨이의 길 좌우에는 보안상의 이유로 인해 살벌한 철조망까지는 아니어도 다들 담장이 둘러져 있는 편인데, 그래도 등산로와 연결되는 곳은 담장이 개방돼 있다.
본인은 그 등산로를 통해서 북악 스카이웨이 구간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에 했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렇게 이뤘다.
팔각정에서 차도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커브와 함께 평창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도보 등산로가 나왔다. 본인은 이 경로를 이용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악산 북쪽 봉우리를 종단하며 하산했다.
이 등산로에는 최소한의 오솔길 말고는 아무런 표지판도, 계단도, 보안 시설도 없었다. 북악산도 남쪽으로 청와대 부근만이 요새화돼 있고 등산객에게 목걸이를 배부할 뿐이지, 반대편의 평창동 주민에게는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듯하다.
3. 인왕산 -- 수성동 계곡, 석굴암
끝으로 인왕산이다. 얘는 그렇게 높고 큰 산이 아니고 등산로가 딱히 많이 존재하지 않으며, 바로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오른 적도 있는 산이다. 하지만 굳이 또 찾아간 이유는, 본인이 답사한 적이 없는 곳에 있는 수성동 계곡이 그렇게도 경치가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성동 계곡 바로 앞까지 가는 유일한 대중교통으로는 종로 09 마을 버스가 있었다. 저기가 버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우와.. 실제로 보니 장관이 꽤 미려했다. 아차산 생태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원래 아파트(옥인동 시범 아파트)까지 지어져 있던 걸 다 철거하고, 옛날 조선 시대에 그려진 풍경화에 묘사된 대로 나무를 심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복원한 뒤에 2010년대에야 개방한 거라고 한다. 북한산 마을과 비슷한 사연이 있는 셈이다.
수성동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북악 스카이웨이의 인왕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왕산로라는 찻길이 나타나고, 길 건너편으로 등산을 계속해서 몇몇 약수터와 석굴암(?)으로 갈 수 있었다. 거기서도 계속 산을 오르면 결국 한양도성과 합류하고 기존 정규 등산로를 따라 결국 정상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래도 한양도성이 아닌 좁은 오솔길을 따라, 감시 요원도 없는 경로로 인왕산을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을 오르고 나니 본인이 등산을 시작했던 지점인 수성동 계곡 방면을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보니까 수성동 계곡이 전혀 별것 아니어 보인다..;;
아무튼, 이렇게 산행을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