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덜해진 감이 있지만 한때 마소에서는 자사의 운영체제인 Windows에 단순히 기술과 기능뿐만 아니라 감성을 담으려고 애쓰곤 했다. 애플 진영만 감성 마케팅을 한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쪽으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던 때는 크게 세 시즌으로 나뉜다. (1) 95, (2) XP, 그리고 그 다음 (3) Vista 정도 되겠다.

Windows 95는 그야말로 마소의 Windows 개발 역사상 가장 큰 격변을 이룬 작품이었다.
그러니 3.1 시절의 너무 식상했던 tada.wav를 대신하여, 참신하고 세련되고 오픈되고 모던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게, Windows 95 부팅이 마치 미래로 가는 창문을 열어젖히기라도 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그런 시작음을 외주를 줘서 개발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또르릉~ 띵~ 띵.." 95의 시작음을 작곡한 사람은 Brian Eno이다. 파일 이름부터가 참 거창하게 The Microsoft Sound였다.
다만, 정작 그 작곡자는 DOS고 Windows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골수 Mac 유저였다는 것이 훗날 당사자의 회고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Windows 95는 누구나 듣는 시작음뿐만 아니라, 소수의 매니아만이 열어 보는 이스터 에그 화면에다가도 고유한 음악을 집어넣었다. 여기에 들어간 음악이 바로 그 유명한 Clouds이다. 이거 작곡자는 Brian Orr이니 또 다른 Brian이다. 단, 이건 길이와 용량 관계상 wav가 아니라 mid 포맷이다.

저 작곡자가 회고하기를, 작곡을 의뢰받을 때 컨셉으로 받은 키워드가 clouds, floating, peaceful이었다고 한다. Windows 95는 부팅 스플래시 화면부터가 파란 창공과 구름이었으니까..;; 그래서 그 컨셉에 맞게 멜로디를 써 넣은 결과물이 저 음악이라고 한다.
여느 음악 예제들과 마찬가지로 Windows\media 디렉터리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본인은 얘는 Windows 95가 실제로 사용되던 시절에 PC에서 찾아서 들어 보지 못했다.

저거 이후로 마소의 제품에서 이스터 에그 재생 중에 그럴싸한 음악이 나온 경우는 Visual Basic 5~6의 이스터 에그가 유일했던 듯하다. 공교롭게도 저 이스터 에그도 파란 창공을 배경으로 정육면체 상자 4개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그 배경 위로 개발자 명단이 스크롤 되어 올라간다.

물론 이스터 에그라는 것도 2002년 이후로는 마소의 제품에서는 싹 자취를 감춰서 볼 수 없게 됐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지하철에다 비유하자면, 처음에 인테리어가 좀 독특하게 꾸며졌던 역들이 모두 안전을 이유로 스크린도어로 뒤덮이고 불연재 재질로 교체되어 미관이 예전보다 안 좋게 바뀐 것과 비슷해 보인다. 뭐 아무튼..

Windows NT 4라든가 98~ME 사이에서는 전자 악기 기반의 시작음들이 많이 쓰였으며 특히 chimes, chord, ding 같은 메시지 비프음도 다시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이다.

그러다가 Windows XP는 프로그램의 시청각 요소가 완전히 쇄신했다. 이제 PC의 속도와 메모리가 충분해진 덕분에 9x 계열 커널이 수명을 다할 때가 됐고, 그리고 64비트와 멀티코어 CPU도 등장하다 보니 하드웨어가 큰 변화를 겪을 시기였다. 이 시기에 맞춰 마소에서는 OOBE (out-of-box experience)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새 운영체제로 '사용자에게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자'에 목숨을 걸었다. 굳이 Windows 2002 대신 XP라는 브랜드명까지 만들면서 말이다.

일단 피아노 소리 위주인 시작음, 비프음들은 다 Bill Brown이라는 작곡가가 작곡하고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연주했다. 그리고 (1) Tour를 실행했을 때 나오는 고퀄의 배경 음악들도 이 사람의 작품이다. 시퍼런 Luna 테마와 풀밭 사진뿐만 아니라 음악도 Windows XP를 뭔가 종합 예술 작품 같은 인상을 심어 주는 요인이다.

사실, Windows XP는 애초에 설치를 하다가 작업이 마무리되고 비디오/사운드 카드가 자동으로 잡히고 나면 간단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2) 몽환적인 분위기의 intro 음악이 나온다. 길이도 무려 5분 24초나 된다. 이걸 듣고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음악의 작곡자는 의외로 Bill Brown이 아니며,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인터넷 상으로는 Brian Eno가 작곡했다는 말이 많지만 저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Windows 95 로고송 이후로 딱히 마소와 다시 작곡과 관련된 계약을 맺은 내역이 없다.

Susan Ciani라는 미국의 여성 작곡자를 지목하는 곳도 있으나, 이 역시 정확한 출처나 근거가 부족하다. 이 곡은 Windows XP의 정체성 그 자체로서 Tour 음악과 쌍벽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작곡자가 공식적으로 미상인 것이 무척 미심쩍게 여겨진다.

그 뒤, Windows Vista부터 도입된 "따단 따단" 그 4개 음표짜리 전자음 멜로디는 Robert Fripp이라는 사람이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이후로 마소에서는 운영체제의 음악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옛날에는 사용자가 선택한 테마에 따라 GUI의 색상과 글꼴, 각종 사운드가 싹 달라지게 하는 게 유행이었고 애초에 Windows와 Office, Visual Studio 제품들도 버전이 바뀔 때마다 프로그램 외형과 색상도 같이 바뀌던 시절이 있었거늘, 그마저도 2010년대 이후로는 약발이 다한 모양이다.

시작음처럼 운영체제나 프로그램의 구동과 함께 연주되는 음악 말고.. Windows\media 디렉터리에 예제로 제공되는 음악들도 버전별로 바뀌어 왔다.
Windows 3.1 시절에는 canyon과 passport라는 이름의 mid 파일이 있었다. 95와 그 이후까지 존속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다.

98/2000쯤에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포함해 뜬금없이 클래식 음악의 미디 파일이 갑자기 쭈욱 추가되었던 걸로 본인은 기억하는데, 후대 버전에서는 몽땅 다시 사라졌다.
그 대신 ME와 XP에서는 그 당시의 최신 외국 가요 음반에서 발취한 샘플 wma 한두 곡이 잠시 들어갔다. 미디로는 town, flourish, onestop이 들어가서 오늘날 Windows 10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onestop의 경우 마치 음악계의 the quick brown fox jumps over the lazy dog처럼.. 미디에 정의되어 있는 모든 악기들을 일부러 모두 동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구간별로 분위기가 오락가락 하면서 굉장히 괴랄한 흐름과 중독성을 자랑한다.
뭔가 RPG 게임의 BGM 같기도 하고.. "이 음악 들으니 문득 집 앞 편의점까지 희망찬 모험을 떠나고 싶어졌어!" 뭐 이런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31 08:34 2018/03/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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