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하여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자전거의 브레이크부터
육해공의 모든 교통수단들은 가속 장치만 있는 게 아니라 제동 장치도 어떤 형태로든 갖추고 있다. 어찌 보면 잘 가는 것보다도 제때에 잘 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일 간단한 교통수단인 자전거의 경우, 19세기쯤에 자전거가 단순히 앞뒤로 배치된 바퀴 둘에다 안장 달린 수레에 불과했던 시절에는 페달이나 체인뿐만 아니라 브레이크도 없었다. 땅을 발로 차서 가속하고, 제동도 발바닥으로 땅을 끌어서 했다. 굉장히 원시적이었고 신발에 무리를 많이 줬을-_-;; 것 같은데, 페달이 발명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브레이크도 응당 도입되었다.
이륜차의 브레이크는 잘 알다시피 양손 핸들에 두 개가 달려 있어서 각각 앞바퀴와 뒷바퀴에 대응한다. 자전거 정도야 림(rim) 방식이라고 타이어의 금속 테 부분에다가 브레이크 패드를 압박해서 제동을 거는 간단한 방식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접촉 부위가 물이나 흙먼지 등으로 오염되면 제동력이 쉽게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림 브레이크는 앞바퀴에서 주로 쓰이는 듯하다. 뒷바퀴는 다른 부분이 꽉 조여지면서 제동이 걸리는데 이건 무슨 방식이라 불리는지 잘 모르겠다.
고속 주행용 고급 자전거에는 크기만 더 작을 뿐 자동차의 것과 별 차이 없는 정교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달려 있기도 하나, 너무 고퀄인 브레이크는 비싸고 무엇보다도 차체를 무겁게 한다는 단점도 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만큼,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평소에 서서히 멈춰설 때에야 취향대로 쥐기 편한 쪽의 브레이크만 편파적으로 써도 된다. 하지만 급제동을 걸 때는 편파적인 제동이 위험하다. 특히 자전거 같은 가벼운 이륜차는 뒷바퀴보다도 앞바퀴 급제동이 더 위험하다. 뒤쪽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확 들려 올라가면서 운전자를 앞으로 패대기(...)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전거는 오른손 브레이크가 앞바퀴이고 왼손이 뒷바퀴이던 것이, 2010년경부터는 방향이 바뀌어 오른손이 뒷바퀴와 연결되게 되었다.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왼손보다 오른손 브레이크를 반사적으로 꽉 잡는 편인데, 그걸로 앞바퀴를 붙잡으니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인 2009년쯤에 보행자의 통행 방향이 오랜 좌측통행 관행을 깨고 우측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륜차에도 단절적인 변화가 추가된 셈이다.
2. 자동차의 브레이크 -- 제동력 전달: 브레이크액(소형차) 방식과 공기압(대형차)
다음으로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사람의 누르거나 밟는 힘으로 감당하기란 택도 안 되게 무거우면서 또 넘사벽급으로 빠르게 운동하는 기계를 신속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가 더 복잡하다.
자동차에 가속 구동축은 일반적으로 앞바퀴나 뒷바퀴 중 한 곳에만 있다. 모든 바퀴가 구동축인 차량은 오르막과 험지 주행 성능을 매우 중요시한 군용차나 일부 SUV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브레이크는 어떤 자동차라도 반드시 모든 바퀴에 달려 있다. 급제동을 편파적으로만 했다간 사륜 자동차도 옆으로 홱 돌아가는 등 이륜차만큼이나 큰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한 페달만 밟아도 이 모든 바퀴가 동등(일단은..)하게 제동이 걸리는 게 일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건 브레이크액(소형차의 유압-배력 방식)이나 압축 공기(대형 트럭· 버스의 에어 방식) 같은 유체의 유압을 이용해 (1) 페달 밟는 힘을 각 바퀴의 모든 브레이크에 동시에 분산해서 전하기 때문이다. 엔진의 동력을 두 바퀴에 분산 전달하는 용도로는 차동 기어 같은 톱니바퀴가 쓰이는 반면, 브레이크에서는 저런 메커니즘이 쓰인다.
그리고 차량용 브레이크에는 어떤 형태로든 '엔진의 출력'을 동원하여 (2) 사람이 페달을 밟은 힘을 증폭시켜서 더 큰 제동력이 전해지게 하는 장치가 있다. 핸들의 파워스티어링에만 증폭 장치가 있는 게 아니며, 사실은 브레이크의 증폭 장치가 더 중요하다. 유압-배력 브레이크에는 엔진 압축 행정 과정에서 생기는 진공을 이용한 브레이크 부스터가 있고, 에어 브레이크는 아예 엔진 출력을 바탕으로 동작하는 압축 공기 챔버가 따로 있다.
그러니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시동이 꺼지고 나면 마치 오르간 악기처럼 진공압 또는 공기압이 남아 있는 동안만 동작한다. 그게 다 빠진 뒤에는 브레이크 페달이 아예 밟히지 않는다. 급발진 폭주가 시작됐다고 해서 무작정 시동을 꺼 버렸다면 그 뒤부터는 핸들 잠기지, 브레이크도 동작 원천이 더 보충되지 않아서 일회용 시한부 인생이 되었음을 알고 유의해야 한다.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자전거 브레이크 같은 걸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엔진 동력에 의존하는 브레이크 말고, 차 시동이 꺼진 뒤에 멈춰 선 차를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하는 브레이크는 주차 브레이크라고 따로 있다. 요건 보통 뒷바퀴에만 달려 있는 편인데, 주행 중에 얘를 급하게 당겨서 차를 감속하거나 세우면 역시나 편파적인 제동으로 인해 차가 돌아가 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도 차라리 뒷바퀴를 붙잡지 앞바퀴를 붙잡는 건 더 위험한 듯하다.
3. 베이퍼 락과 페이드
자동차의 엔진은 연료의 연소와 폭발로 인해 지속적으로 열을 받으며, 이거 조절을 위해서는 라디에이터와 냉각수 같은 냉각 계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으로 브레이크는 제동 과정에서 자기 패드와 로터 사이의 마찰로 인해 열을 받는다.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마찰열은 또 별개의 문제) 두 손바닥만 살살 비벼도 열이 나는데, 그 무겁고 빠른 자동차를 세우는 과정에서 열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급커브 내리막에서 짧은 시간 동안 브레이크를 수십 회 이상 너무 자주 깊게 오래 밟으면 브레이크 패드가 달아오르고 과열된다. 그래서 접촉면의 마찰이 작아지고 미끌미끌해져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왜 서지를 못하니" 상태가 돼 버린다. 이것을 페이드(fade) 현상이라고 한다.
이보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유압-배력식 브레이크의 경우, 브레이크액 자체가 섭씨 300도를 넘나드는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글부글 거품이 일고 기화해 버린다. 그래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도 기화된 브레이크액이 스스로 압축되어 운동량을 흡수하고, 지시가 브레이크로 가지 않는다.
브레이크 페달은 밟는 대로 쑤욱 밟혀 들어가는데, 제동은 전혀 걸리지 않게 된다! 이것을 베이퍼 락(vapor lock) 현상이라고 한다.
베이퍼 락과 페이드는 원인은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페이드는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했는데도 제동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베이퍼 락은 애초에 밟아도 제동 명령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브레이크액은 꼭 저렇게 혹사당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변질되고, 수분이 섞이면서 끓는점이 점점 낮아진다(= 베이퍼 락이 더 쉽게 발생하게 됨). 그렇기 때문에 엔진 오일만치 자주는 아니어도 일정 주기로 교환이 필요하다.
냉각수는 혹한기에도 얼지 않아야 하며 브레이크액은 끓지 않아야 하니, 자동차에 들어가는 액체는 어떤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가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어 브레이크 기반인 대형 차량들은 베이퍼 락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디젤 엔진에 점화 플러그가 없듯, 에어 브레이크에는 브레이크액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에어 브레이크는 베이퍼 락 없고 제동력을 전하는 성능도 탁월하지만, 더 비싸고 큰 부품이 필요하고 압축 공기의 비축을 위해서도 엔진 출력이 상시 소모되기 때문에 천상 대형 차량용이다. (에어컨도 냉매 컴프레셔에서 전기든 엔진 출력이든 에너지 소모가 제일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버스를 타 보면, 신호대기로 인해 정지했을 때 기사 아저씨가 무슨 스위치를 조작하고 차에서는 "축~ / 취익!" 이렇게 공기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걸 볼 수 있다. (문을 여닫을 때도 비슷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지만, 아직 문도 열리기 전이고 멈춘 직후에)
그건 그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는 소리이다. 버스는 주차 브레이크도 공기압 방식이기 때문이다.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대형 버스· 트럭의 계기판을 보면 승용차에는 없는 '공기압' 계기가 있다. 이건 타이어의 공기압이 아니라 에어 브레이크에 비축된 공기압을 나타낸다. 주행을 하다 보면 압력이 올라가고, 엔진 회전수가 높을수록 더 빠르게 올라간다. 그 반면, 빡세게 브레이크를 자주 밟다 보면 압력이 감소하여 바늘이 왼쪽으로 돌아간다.
쉽게 말해 이건 이 차량의 제동력의 비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속도계· 연료계· 냉각수 온도계에 준하는 매우 크리티컬한 계기이다. 타코미터가 오른쪽 끝(지나친 고회전)에 레드존이 있다면, 공기압계는 마치 연료계처럼 왼쪽(고갈..)이 레드존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특성으로 보인다.
4. 자동차의 브레이크 -- 제동 방식: 디스크와 드럼
브레이크는 제동력 전달과 증폭 방식에서는 저렇게 유압-배력 방식과 에어 방식으로 나뉘고, 실제로 바퀴를 붙들어 물리적인 제동을 거는 방식에서는 디스크 방식과 드럼 방식이 나뉜다. 차축 주변에 크고 반들반들 윤기 나는 금속 원판이 보이고 타이어 휠의 비주얼도 그걸 다 노출하는 형태이면 디스크 브레이크이고, 그냥 꽹과리 내지 솥뚜껑 같은 작고 납작한 금속판만 보이면 드럼 브레이크이다. 그래서 옛날 차들과 요즘 차들은 휠의 디자인 트렌드도 차이가 난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앞바퀴는 디스크, 뒷바퀴는 드럼 방식 브레이크를 썼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지간한 승용차들은 100% 디스크이고, 경차 또는 반대로 트럭· 버스 같은 대형차들은 뒷바퀴 드럼을 고수하는 중이다. 드럼 방식은 디스크보다 가격 대 제동성능이 더 좋지만,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과열 위험(= 페이드 현상)이 더 높다는 단점이 있다.
유독 대형차들이 언덕길에서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사고를 내는 빈도가 더 잦은 건 (1) 근본적으로 차가 워낙 크고 무거워서, (2) 워낙 저렴하게 혹사당하는 상용차이다 보니 주행 거리가 매우 길고 과적· 차량 노후· 정비 불량 등의 위험이 있어서 외에도 (3) 드럼 브레이크라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그러니 한여름에 긴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주행할 때에는 자꾸 페달만 밟지 말고 엔진 브레이크 같은 다른 보조 제동 방법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