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태 이상

자동차는 오랫동안 정비를 받지 않으면 주행 중에 여러 형태로 외형적인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 방향지시등 램프가 일부 고장 나면 릴레이들에 걸리는 전기 저항이 줄면서 깜빡거리는 주기가 몹시 짧아진다. 일부 버스나 트럭이 그런 상태가 된 것을 본인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 급브레이크가 아닌데 제동 중에 하이톤의 ‘끼익~’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건 브레이크 패드가 오늘 내일 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저런 소리가 안 나야 정상이다.
  • 엔진 공회전 중에 ‘두두두두.. 드드드드~’ 소리가 깊고 강렬하게 들리는 것은 노킹 현상이며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조속히 엔진 정비를 받아야 한다.
  • 엔진 작동 중에 주기적으로 하이톤의 ‘휙휙휙.. 끌끌끌..’ 소리가 들리는 것은 팬 벨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 바퀴 말고도 엔진의 동력에 의지해서 동작하는 발전기, 에어컨 공기 압축기, 냉각 라디에이터 등의 동작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본인이 지난 10여 년 동안 내 차를 기준으로 겪었던 상태 이상과 조치 내역은 다음과 같다.

(1) 언제부턴가 시동이 되게 힘겹게 끼룩~끼룩끼룩 간신히 걸렸음. 그로부터 며칠 뒤, 아예 시동 안 걸림.
==> 배터리 교환. 3~4년 정도 썼는데, 긴급출동 기사의 말에 의하면 전압이 이미 위험 수준으로 팍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2) 핸들을 놓고 가만히 주행하고 있으면 핸들이 좌우로 덜덜 떨렸음. 차가 대놓고 삐딱하게 치우쳐서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 타이어 교환. =_=;;;
저 증상만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었으면 휠 얼라인먼트 정도만 해도 충분했을 듯하다. 하지만 그 당시 차 구매 이래로 타이어를 한 번도 교환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가게 아저씨의 말대로 좀 호구짓에 응해 줬다. 어쨌든, 타이어를 다 교환했더니 문제도 해결됐다.

(3) 처음 출발하면서 기어가 차차 고단으로 올라갈 때 꿀럭꿀럭 변속 충격
==> 큰맘 먹고 변속기 오일을 최초로 교환하고 나니 증상이 싹 없어졌다.
참고로 엔진 오일을 교환해도 처음에 잠깐 동안은 이런 현상이 없어졌다. 하지만 곧 재발함.

(4) 시동이 걸린 직후에 엔진 회전수가 불안정하고 부들부들 떨림. 조금 지나면 안정화됨
==> 점화 플러그를 교체하니 문제 해결.

(5) 날씨 더울 때 차 시동 건 직후에 에어컨이 찬바람이 너무 안 나옴. 한참 주행을 많이 해야 나옴
==> 찬바람이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니니 냉매 쪽 문제는 아니고.. 그냥 압축기의 노후 고장 문제였다. 이것도 차를 구매하고 나서 처음으로 전면 교체를 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본인은 직접 몰았거나 탑승했던 자동차에서 엔진 과열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겪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

2. 배터리 방전

개인적으로는 자동차 빳데리의 방전도 화상처럼 경미한 거, 중대한 거 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빳데리의 출력 부족 때문에 스타터 모터가 시동 유지 속도를 만족할 만치 돌지 못하는 건 1도. (끼룩끼룩끼룩끼룩..)
  • 출력이 더 약해져서 스타터 모터가 아예 돌지 못하고 까탁까탁 더 거칠고 기분 나쁜 소리만 내는 건 2도..
  • 아예 전기가 완전히 나가서 차내의 모든 전기 공급이 끊기고 차의 이모빌라이저도 동작하지 않고, start로 돌려도 아무 반응이 없는 건 3도.

본인은 내 차에서 저 세 현상을 모두 겪어 봤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모든 화학 배터리들은 실제 사용 여부와 별개로 저온에 취약하다. 전기차는 -10도 이하의 혹한에서 과연 잘 켜진다는 보장이 있을까?
마치 수도관이 혹한 속에서 동파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평소에 수돗물을 약하게 틀어 놓듯, 배터리가 혹한 속에서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평소에 전기를 써서 열선 같은 걸로 배터리를 보호해야 하지 싶다.

3. 제동 이상

(1) 브레이크 계통이 너무 열받으면 베이퍼 락(vapor lock) 또는 페이드(fade)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자는 브레이크액이 과열된 나머지 기화해 버려서 사람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게 브레이크로 전해지지 않는 현상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기계적으로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페달이 쑤욱 깊게 밟히는데.. 제동이 발생하지를 않는 거다.

대형 버스나 트럭은 브레이크액이 아니라 압축 공기를 매체로 사용하기 때문에 베이퍼 락 현상으로부터 자유롭다. 그 대신 브레이크 페달을 너무 자주 밟아서 압축 공기의 소모량이 충전량을 상회하게 되면 언젠가 제동력이 고갈되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량들은 계기판에 브레이크의 압축 공기 게이지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게 엔진 냉각수 온도계에 맞먹는 매우 크리티컬한 정보이다.

(2) 페이드 현상은 그냥 브레이크 패드 등의 제반 부품들이 달궈져서 마찰이 작아지고 제동력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이건 디스크 브레이크건 드럼 브레이크건, 액압식이건 압축 공기이건 보편적으로 발생 가능한 현상이다. 압축 공기의 고갈이나 베이퍼 락 같은 더 심각한 현상의 전조 증상으로 먼저 발생하는 편이다.

4. 주행 이상

여기서 말하는 주행 이상이라는 건 엔진이나 전동기의 기계적인 고장과는 전혀 무관한 별개의 얘기이다. 그냥 차가 주행하는 것만으로 핸들과 브레이크로 통제가 안 되어 위험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빙판에서는 차가 미끄러지기 쉽고, 블랙아이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아주 위험하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위험 요인이 더 있다.

(1) 비행기는 활주로를 고속으로 질주할 때 양력을 받아서 하늘로 뜨라고 옆구리에 날개가 달려 있다. 그러나 자동차, 특히 스포츠카 같은 건 정반대.. 시속 200~300의 고속으로 달리더라도 양력이 절대로 생기지 말라고 뒷쪽에 '스포일러'라는 공기 흐름 제어 장치가 달려 있다. 자동차가 떠 버리면 조향력과 접지력을 상실해서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 핸들 조작 중에 차량의 뒤쪽이 접지력을 상실해서 좌우로 요동치는 것.. 일명 fish tail (피시테일) 현상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도로의 상태와 무관하게 발생할 수 있다.
사태를 극복하려고 핸들을 좌우로 요리조리 꺾다 보면 진동이 상쇄되는 게 아니라 더 커지고, 결국은 차가 전복돼 버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브레이크를 밟을 게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해서 뒤쪽에다가 무게를 실어 줘야 하기도 한다.

피시테일의 철도 버전은 바로 사행동(snake)이다. 그 무거운 철도 차량이 고속 주행 중에 좌우로 구불구불 요동치면 선로나 대차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며, 심하면 탈선 사고까지 날 수 있다.
자동차도 단독으로 달릴 때보다 캠핑카나 트레일러 같은 걸 끌고 다닐 때 피시테일 현상에 더 취약해진다.

(3) 흔히 빗길 운전이 위험하다고 다들 그런다.
도로에 비가 많이 내려서 물이 고이면 시야가 흐려지며, 특히 밤에는 차선이 잘 안 보여서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얼음도 아니고 그냥 물이 특별히 길의 마찰을 줄이고 길을 더 미끄럽게 만드는 게 있을까?? 비가 내린다고 딱히 스노 타이어나 체인을 장착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물이 고인 딱딱한 도로 위를 차가 쌩~ 달리면 그 물 위로 차가 얇게나마 떠 버릴 수 있다. 일명 수막 현상. 앞서 말한 공기 양력이나 빙판과는 다른 별개의 현상이다.
글쎄, 물이 살짝 고인 밥상 위에서 가끔씩 밥그릇이 정지 마찰이 없어진 채 쓰윽 움직이는 것도 수막 현상의 일종인 건지? 부력이 어떻게 작용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5. 급발진

개인적으로 자동차 급발진의 존재 가능성은 UFO의 존재 여부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가능성이 0은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UFO 신고가 99.99%는 전부 착각이나 불빛 오인 신고인 것처럼.. 자동차 급발진 주장의 신빙성도 거의 그런 급인 것 같다. 인간이 악셀과 브레이크를 저렇게 헷갈릴 수 있구나..!

전국민이 주머니에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오늘날이.. 198~90년대 가정마다 필름 카메라 한 대씩 겨우 들고 다니던 시절보다도 UFO 주장 사진이 더 없다니 매우 신기한 노릇이다. 초능력이나 외계인 같은 게 유행이 한물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처럼 요즘은 차의 전자 장비들이 운전자의 성별도 아니고 나이를 너무 가리면서 편파적으로 맛이 가는 것 같다. 내가 현실을 알고 나니까 옛날처럼 마냥 대기업 악덕기업(?) 욕만 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만에 하나 차가 폭주하면서 브레이크만으로 통제가 도저히 안 된다면 시동 강제로 끄기, 옆을 긁으면서(가드레일, 담벼락 등) 강제로 세우기, 앞차 들이받기 등 파괴적인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그것마저도 도저히 시전할 수 없으면 최후에 최후의 마지막 극단적인 수단으로 핸들을 확 돌려서 내 차를 강제로 전복시키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극약 처방이지만.. 차라리 저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바퀴를 지면에서 떼어내는 거니까. 차가 데굴데굴 구르느라 안의 탑승자가 경상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에어백과 벨트의 도움으로 대미지를 줄일 수 있는 사항이다.
최소한 어설프게 요리조리 피하다가 시속 150으로 인도로 돌진해 버린다든가, 산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것보다는 전복 자폭이 더 나을 거라고 본다.

수동 변속기 시절에는 운전자가 실수로 시동 꺼뜨리는 일이 잦았는데 요즘은 차가 정반대로 시동이 안 꺼지고 브레이크도 안 밟히고 엔진이 폭주한다고 그런다. 참 격세지감이다.

요즘 고령 운전자에게 면허 반납을 장려한다고 하는데, "페달 블랙박스 의무 장착"을 조건으로 내걸고 허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실수로 사고 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거짓 급발진 호소는 못 하게 말이다.
25살 이하 젊은 애들은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차를 못 모는데,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노인들 대상으로도 자동차 보험료가 지금보다 크게 오를 것 같다.

지난번에 서울 시청 부근에서 큰 사고를 친 그 아저씨는 정말로 통제 불가능한 급발진이었다 하더라도 대처를 너무 못 했다. 오죽했으면 나도 "에라이 너 죽고 나 죽자!!" 흥분해서 인도로 일부러 돌진한 부부싸움설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니까.
아무리 고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9명이나 죽은 건 사고를 너무 크게 쳤다. 하물며 급발진 주장조차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으니.. 이건 몇 년 감방에 가는 건 감내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07 08:35 2024/09/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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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엔진 브레이크

엔진 브레이크라는 건 감속· 제동을 위해 자동차에 따로 장착되는 기계 장치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이미 있는 엔진의 특성을 이용해서 차의 속력을 슬금슬금 줄이는 일종의 운전 테크닉에 가깝다.
자동차에서 엔진이 돌아가는 것과 바퀴가 돌아가는 것 사이의 관계는 뭐랄까 참 미묘하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엔진이 돌아가는 것에 비례해서 바퀴가 돌아가지만, 반대로 바퀴가 관성을 따라 계속 굴러가는 것이 엔진을 덩달아 회전시켜 주기도 한다.

엔진 브레이크의 본질은 강제로 기어를 저단으로 바꿔서 바퀴가 굴러갈 때 엔진을 덩달아 회전시키는 것을 굉장히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내리막이라 해도 차가 호락호락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게 된다. 1단으로 고정이라도 시키면 차가 조금만 가속되어도 엔진 회전수가 팍 치솟으면서 굉장히 큰 저항 같은 게 걸린다. 물론 엔진 브레이크를 오· 남용하면 변속기를 포함한 파워트레인 계통이 퍼질 위험이 있지만, 그건 무슨 시속 100에서 1~2단 고정을 시켜서 엔진 회전수가 레드존 이상으로 치솟았을 때에나 걱정할 사항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변속기를 D로 놓고 주행하던 중에 가속 페달에서 발을 잠시 뗀 상황은 정말 순수하게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고 관성만으로 달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관성 주행을 하려면 변속기를 N으로 옮기든가, 수동 변속기라면 클러치를 밟고 있어야 한다. 엔진이 바퀴와 연결되어 있는 한 고단 상태라도 아주 약하게나마 엔진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셈이다.

관성만으로 자동차 바퀴를 굴리고 바퀴와 연결된 엔진까지 돌리는 상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자동차는 지금 설정된 단의 기준으로 아이들링 rpm에 해당하는 최저 속도까지 서서히 감속될 것이고 엔진 rpm도 비례해서 줄어들 것이다. 액셀을 안 밟고 계속 방치하면 힘이 부족해서 현재의 '단'도 공기 저항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자동 변속기는 알아서 더 저단으로 변속을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동차는 최저단인 1단에서 그냥 슬슬 기어가는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단순히 공기 저항 같은 요인 때문에 감속되는 게 아니라 엔진 브레이크가 걸려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엔진 브레이크는 브레이크 페달의 부담을 일부 분담해 줄 뿐, 얘 단독으로 차를 완전히 세우지는 못한다. 토크가 작고 회전수 편차가 큰 휘발유 엔진이 엔진 브레이크의 성능이 더 좋은데, 정작 드럼 방식 브레이크 기반이고 엔진 브레이크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차량들은 디젤 엔진 대형 차량이라는 게 역설적이다.

6. 접지력

브레이크라는 건 동작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바퀴가 제대로 된 접지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바퀴가 접지력을 상실하면 굳이 급발진처럼 엔진에 의해 속도가 더 붙지는 않을지 몰라도, 핸들과 브레이크가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차가 미끄러지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밥을 먹고 있는데, 식탁 표면에 물이 흘려져 있으면 그 위의 밥그릇이나 반찬 그릇이 가끔 케바케로 미끄러지고 저절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 얇은 수면 위로 설마 부력이 작용했을 리는 없지만 지면 정지 마찰력이 극도로 작아지긴 한 것 같다. 그걸 보고서는 "아! 빗길에서 그 무거운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것도 바로 이런 원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딱히 난폭운전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빗길에서는 차가 물의 저항 때문에 더 잘 안 나아가면 안 나아가지, 딱히 미끄러지거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뭔가 도구 차원에서 접지력을 향상시켜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스노우 타이어와 체인(자동차), 아이젠(등산) 같은 게 쓰인다. 그러고 보니 유리병 뚜껑 같은 게 너무 조여져 있어서 안 따지고 손으로 돌려도 손만 미끄러질 때도, 옷이나 헝겊류를 씌우고 그걸 돌리면 뚜껑이 돌아가서 열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건 병따개나 손톱깎이처럼 지레의 원리로 토크를 키운 게 아니라, 순전히 접지력을 올리는 좋은 예이다. 회전력만 세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다.

자동차는 밥그릇과 비교했을 때 다소 길쭉한(?) 외형이고, 스스로 굉장한 고속으로 움직이기도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행 방향 기준으로 앞뒤의 무게 분배의 균형도 꽤 중요하다.
핸들을 꺾었는데 미끄러져서 차체가 운전자의 기대보다 더 큰 반경으로 돌게 됐다. 그래도 차가 앞뒤 방향이 유지라도 되면 그건 '언더스티어' 성향이다. 그 반면, 조향 과정에서 차의 뒷부분이 원심력을 감당 못 해 드리프트 하듯이 홱 도는 것은 '오버스티어' 성향이다.

묘기· 곡예 운전을 하려면 이런 차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을 피하러 핸들을 갑자기 꺾다가 차의 뒷부분이 덜렁덜렁 요동치는 걸 피시테일(fish tail)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건 일종의 언더스티어 성향으로 봐야 하나 모르겠다. 흔한 통념과는 달리, 딱히 전륜구동이냐 후륜구동이냐를 가리지는 않는다. 엔진이 실린 앞부분이 더 무거운 자동차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피시테일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마치 급발진에 대처할 때와 마찬가지로 당장의 직감과는 어긋나는 방식으로 자동차를 조작해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게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차량의 뒷부분이 무게를 얻고 불안정한 진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커브를 돌 때 감속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하듯이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의 주행에는 연료를 연소시켜서 그 폭발력으로 바퀴를 굴리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이 비선형적이고 정량적으로 기술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무슨 우주 공간처럼 마찰이고 공기 저항이고 다 없고, 그저 연료를 뒤로 분사해서 곧이곧대로 작용· 반작용대로만 나아가는 거라면 기술하기 참 쉽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이다. 타이어의 접지력이라든가, 공기 저항 같은 건 최하 대학에서 기계공학 학부나 대학원 수준이 돼야 다뤄질 것이다.

단적인 예로, 자전거만 해도 차체가 너무 무거우면 처음에 출발할 때 페달을 밟는 게 아니라 그냥 발로 땅을 뒤로 차고 나아가는 게 덜 힘들지 않은가? 그런 게 무슨 원리로 왜 발생하는 차이인지가 단순 경험적인 직감이 아니라 수식으로 아직 좀 알쏭달쏭하다. 완전히 이해를 못 했다.

타이어가 평소에 그렇게도 좋은 승차감을 선사하지만, 바람이 빠지면 완전히 다른 물질로 바뀐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체를 안 나아가게 만든다. 공기의 있고 없고 차이가 무슨 역학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걸까?
더 나아가 차체의 무게와 엔진 종류, 배기량, 기어비가 주어졌을 때 그 차의 경제 속도나 최적 연비,  등판능력 한계를 구하는 근거도 내가 이해 가능한 한도까지 알아 가고 싶다.

7. ABS

자동차가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A)와 차체가 움직이는 속도(B)가 일치하지 않게 돼서 좋을 건 전혀 없다. A>B인 건 바퀴가 헛도는 것이고, A<B인 건(심지어 A=0일 수도..) 미끄러지는 것이다. 미끄러지는 현상을 차량 전체의 관점에서는 skid라고 표현하고, 타이어의 관점에서는 잠김(lock)이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ABS란 제동력 자체가 아니라 접지력 향상을 위해서 고안된 안전 장치이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급차에만 존재하던 값비싼 선택사양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부터는 경차에도 의무적으로 달리는 모든 차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이다.

얘는 브레이크를 기계의 힘으로 넣었다 끊기를 반복함으로써 접지력의 향상을 도모한다. 즉, 시속 100km 상태에서 150m를 더 나아가야 멈춰설 것을 120m 만에 멈추게 해 주는 게 아니다. 미끄러운 빗길· 빙판길 커브에서 브레이크를 꾸욱 깊게 밟았을 때 차가 전방을 향해 쫘악 미끄러져서 길을 이탈하는 게 아니라, 제동 거리가 얼마가 나오건 커브 틀면서 원래 성능대로 곱게 멈춰서는 것 자체를 도와준다는 뜻이다. 먼저 바퀴가 땅에 제대로 붙어 있어야 그 다음에 핸들이고 브레이크고가 말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ABS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말 센스 대박이다~!! ㅋㅋㅋㅋㅋ 한눈에 바로 이해된다.
노면이 미끄러워서 바퀴가 잠기는 현상이 감지되면, ABS는 운전자의 브레이크 동작을 기계적으로 수 차례의 브레이크 밟기+떼기 트레몰로로 구현해 준다. ABS는 anti-lock brake system의 약자이다만,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절대값을 구하는 함수의 명칭으로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굳이 빗길이나 빙판이 아니어도, 고속 주행 중에 그야말로 강한 관성이 느껴지고 타이어의 스키드 자국이 생길 정도로 브레이크를 강하고 깊게 밟으면 ABS가 발동된다. 스키드 자국이라는 게 타이어가 멈춘 채로 차체가 움직여서 타이어가 길바닥에 질질 긁혔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때 브레이크를 밟는 발에서 부르르르~ 떨림이 느껴질 것이다. 트레몰로가 연주되었다는 흔적이다. 브레이크를 사뿐히 즈려밟고 부드럽게 정지하는 평상시에는 ABS의 존재를 체험할 일이 없다.
사실, 오늘날은 ABS는 차체 자세 제어 장치(현대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VDC)라는 최첨단 주행 안전 시스템의 일원, 구성원이 되어 있다. 자동차가 운전자가 의도했던 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미끄러지는 중인지, 어느 방향으로 무슨 가속도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몽땅 파악해서 타이어별로 서로 다르게 구동력/제동력을 공급해 주는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

본인도 옛날에 눈이 내리고 얼어서 빙판이 된 '오르막' 비탈길을 차를 몰고 오른 적이 있었는데... 뭔가 미끄러지겠다 싶은 상황에서 차가 미끄러지지는 않고 그 대신 부르르르~ 떨면서 계기판에는 생전에 본 적이 없는 경고등이 잠깐 켜졌다가 꺼지는 걸 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VDC가 동작한 것이었고, 떨림은 VDC의 명령을 따라 ABS가 발동된 흔적이었다.

8. 맺음말: 타 교통수단의 제동 장치

(1) 지금까지 자동차 내지 자전거 위주로 브레이크 얘기를 늘어놓았다만.. 비행기의 랜딩기어 바퀴에도 브레이크가 달려 있다. 애초에 저 ABS도 맨 처음에는 젖은 활주로에 착륙할 때 미끄러지지 말라고 비행기용으로 개발되었다가 나중에 자동차와 철도 차량에도 전해진 것이다.
(여담이지만 안전벨트도 맨 처음엔 비행기를 위해서 개발된 거다. 이건 철도에는 필요 없어서 도입되지 않고 자동차에만 추가로 전해졌지만.. 처음부터 자동차를 위해서 발명된 대표적인 안전 장치로는, 금만 가지 와장창 박살나지 않는 '안전유리'가 있다.)

다만, 비행기는 지상 주행의 비중이 자동차보다 훨씬 작으며, 몇백 명이 타는 대형 여객기라 할지라도 접지 형태는 고작 '삼륜차'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이크도 뒷쪽 바퀴들에만 달려 있다. 착륙 직후에는 플랩, 스포일러, 엔진 역추진처럼 공기를 직접 맞닥뜨리는 방법으로 속도를 줄이고 또 줄인 뒤에, 바퀴 제동은 기체를 완전히 세우는 결정타로만 사용된다.

비행기 조종석의 페달은 자동차의 액셀/브레이크와는 달리 양발로 조작하며 앞쪽과 뒤쪽의 부위 구분까지 있다. 발꿈치(뒤) 쪽은 비행기가 떠 있을 때 사용하는 방향타이고, 발가락(앞) 쪽은 비행기가 지상 주행 중일 때 사용하는 브레이크이다. 즉, 이륜차처럼 브레이크가 앞뒤 구분이 있는 게 아니라 좌우 구분이 있는 셈인데, 양쪽 바퀴의 제동 정도를 달리함으로써 '조향'을 할 수 있다. 무한궤도 탱크가 방향을 전환하는 것처럼 조향하긴 하지만 추력· 동력 조절이 아니라 제동력 조절이라는 차이가 있다.

(2) 전기로 달리는 차량은 차축을 발전기에다 연결해서 "기왕 제동을 걸 거면 이미 가진 운동량으로 에너지 생산이나 덤으로 하면서 서자"라는 발상을 실현한다. 이것도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어서 '발전 제동'과 '회생 제동'이라는 메커니즘이 있다.

역에 정차할 때 전동기 인버터에서 나는 소리가 가속 구동음의 역순으로 주파수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이건 개념적으로 자동차의 단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거나 다름없는데, 일종의 엔진 브레이크이기라도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1세대 KTX(떼제베)는 내부적으로 제동을 어떻게 하는지, 역에 정차할 때 여느 절도 차량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시끄러운 굉음이 나는 걸로 악명 높다. 좀 개선이 필요한 점으로 보인다.

(3) 엘리베이터 중에도 한 30층 정도 되는 고층 건물에서 운행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브레이크가 있다. 도착층의 3~4층 전부터 이미 감속하는 게 느껴질 정도인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흔히 탈 수 있지는 않아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04 19:32 2018/04/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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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하여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자전거의 브레이크부터

육해공의 모든 교통수단들은 가속 장치만 있는 게 아니라 제동 장치도 어떤 형태로든 갖추고 있다. 어찌 보면 잘 가는 것보다도 제때에 잘 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일 간단한 교통수단인 자전거의 경우, 19세기쯤에 자전거가 단순히 앞뒤로 배치된 바퀴 둘에다 안장 달린 수레에 불과했던 시절에는 페달이나 체인뿐만 아니라 브레이크도 없었다. 땅을 발로 차서 가속하고, 제동도 발바닥으로 땅을 끌어서 했다. 굉장히 원시적이었고 신발에 무리를 많이 줬을-_-;; 것 같은데, 페달이 발명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브레이크도 응당 도입되었다.

이륜차의 브레이크는 잘 알다시피 양손 핸들에 두 개가 달려 있어서 각각 앞바퀴와 뒷바퀴에 대응한다. 자전거 정도야 림(rim) 방식이라고 타이어의 금속 테 부분에다가 브레이크 패드를 압박해서 제동을 거는 간단한 방식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접촉 부위가 물이나 흙먼지 등으로 오염되면 제동력이 쉽게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림 브레이크는 앞바퀴에서 주로 쓰이는 듯하다. 뒷바퀴는 다른 부분이 꽉 조여지면서 제동이 걸리는데 이건 무슨 방식이라 불리는지 잘 모르겠다.
고속 주행용 고급 자전거에는 크기만 더 작을 뿐 자동차의 것과 별 차이 없는 정교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달려 있기도 하나, 너무 고퀄인 브레이크는 비싸고 무엇보다도 차체를 무겁게 한다는 단점도 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만큼,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평소에 서서히 멈춰설 때에야 취향대로 쥐기 편한 쪽의 브레이크만 편파적으로 써도 된다. 하지만 급제동을 걸 때는 편파적인 제동이 위험하다. 특히 자전거 같은 가벼운 이륜차는 뒷바퀴보다도 앞바퀴 급제동이 더 위험하다. 뒤쪽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확 들려 올라가면서 운전자를 앞으로 패대기(...)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전거는 오른손 브레이크가 앞바퀴이고 왼손이 뒷바퀴이던 것이, 2010년경부터는 방향이 바뀌어 오른손이 뒷바퀴와 연결되게 되었다.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왼손보다 오른손 브레이크를 반사적으로 꽉 잡는 편인데, 그걸로 앞바퀴를 붙잡으니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인 2009년쯤에 보행자의 통행 방향이 오랜 좌측통행 관행을 깨고 우측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륜차에도 단절적인 변화가 추가된 셈이다.

2. 자동차의 브레이크 -- 제동력 전달: 브레이크액(소형차) 방식과 공기압(대형차)

다음으로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사람의 누르거나 밟는 힘으로 감당하기란 택도 안 되게 무거우면서 또 넘사벽급으로 빠르게 운동하는 기계를 신속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가 더 복잡하다.

자동차에 가속 구동축은 일반적으로 앞바퀴나 뒷바퀴 중 한 곳에만 있다. 모든 바퀴가 구동축인 차량은 오르막과 험지 주행 성능을 매우 중요시한 군용차나 일부 SUV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브레이크는 어떤 자동차라도 반드시 모든 바퀴에 달려 있다. 급제동을 편파적으로만 했다간 사륜 자동차도 옆으로 홱 돌아가는 등 이륜차만큼이나 큰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한 페달만 밟아도 이 모든 바퀴가 동등(일단은..)하게 제동이 걸리는 게 일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건 브레이크액(소형차의 유압-배력 방식)이나 압축 공기(대형 트럭· 버스의 에어 방식) 같은 유체의 유압을 이용해 (1) 페달 밟는 힘을 각 바퀴의 모든 브레이크에 동시에 분산해서 전하기 때문이다. 엔진의 동력을 두 바퀴에 분산 전달하는 용도로는 차동 기어 같은 톱니바퀴가 쓰이는 반면, 브레이크에서는 저런 메커니즘이 쓰인다.

그리고 차량용 브레이크에는 어떤 형태로든 '엔진의 출력'을 동원하여 (2) 사람이 페달을 밟은 힘을 증폭시켜서 더 큰 제동력이 전해지게 하는 장치가 있다. 핸들의 파워스티어링에만 증폭 장치가 있는 게 아니며, 사실은 브레이크의 증폭 장치가 더 중요하다. 유압-배력 브레이크에는 엔진 압축 행정 과정에서 생기는 진공을 이용한 브레이크 부스터가 있고, 에어 브레이크는 아예 엔진 출력을 바탕으로 동작하는 압축 공기 챔버가 따로 있다.

그러니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시동이 꺼지고 나면 마치 오르간 악기처럼 진공압 또는 공기압이 남아 있는 동안만 동작한다. 그게 다 빠진 뒤에는 브레이크 페달이 아예 밟히지 않는다. 급발진 폭주가 시작됐다고 해서 무작정 시동을 꺼 버렸다면 그 뒤부터는 핸들 잠기지, 브레이크도 동작 원천이 더 보충되지 않아서 일회용 시한부 인생이 되었음을 알고 유의해야 한다.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자전거 브레이크 같은 걸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엔진 동력에 의존하는 브레이크 말고, 차 시동이 꺼진 뒤에 멈춰 선 차를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하는 브레이크는 주차 브레이크라고 따로 있다. 요건 보통 뒷바퀴에만 달려 있는 편인데, 주행 중에 얘를 급하게 당겨서 차를 감속하거나 세우면 역시나 편파적인 제동으로 인해 차가 돌아가 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도 차라리 뒷바퀴를 붙잡지 앞바퀴를 붙잡는 건 더 위험한 듯하다.

3. 베이퍼 락과 페이드

자동차의 엔진은 연료의 연소와 폭발로 인해 지속적으로 열을 받으며, 이거 조절을 위해서는 라디에이터와 냉각수 같은 냉각 계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으로 브레이크는 제동 과정에서 자기 패드와 로터 사이의 마찰로 인해 열을 받는다.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마찰열은 또 별개의 문제) 두 손바닥만 살살 비벼도 열이 나는데, 그 무겁고 빠른 자동차를 세우는 과정에서 열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급커브 내리막에서 짧은 시간 동안 브레이크를 수십 회 이상 너무 자주 깊게 오래 밟으면 브레이크 패드가 달아오르고 과열된다. 그래서 접촉면의 마찰이 작아지고 미끌미끌해져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왜 서지를 못하니" 상태가 돼 버린다. 이것을 페이드(fade) 현상이라고 한다.

이보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유압-배력식 브레이크의 경우, 브레이크액 자체가 섭씨 300도를 넘나드는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글부글 거품이 일고 기화해 버린다. 그래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도 기화된 브레이크액이 스스로 압축되어 운동량을 흡수하고, 지시가 브레이크로 가지 않는다.
브레이크 페달은 밟는 대로 쑤욱 밟혀 들어가는데, 제동은 전혀 걸리지 않게 된다! 이것을 베이퍼 락(vapor lock) 현상이라고 한다.

베이퍼 락과 페이드는 원인은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페이드는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했는데도 제동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베이퍼 락은 애초에 밟아도 제동 명령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브레이크액은 꼭 저렇게 혹사당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변질되고, 수분이 섞이면서 끓는점이 점점 낮아진다(= 베이퍼 락이 더 쉽게 발생하게 됨). 그렇기 때문에 엔진 오일만치 자주는 아니어도 일정 주기로 교환이 필요하다.
냉각수는 혹한기에도 얼지 않아야 하며 브레이크액은 끓지 않아야 하니, 자동차에 들어가는 액체는 어떤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가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어 브레이크 기반인 대형 차량들은 베이퍼 락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디젤 엔진에 점화 플러그가 없듯, 에어 브레이크에는 브레이크액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에어 브레이크는 베이퍼 락 없고 제동력을 전하는 성능도 탁월하지만, 더 비싸고 큰 부품이 필요하고 압축 공기의 비축을 위해서도 엔진 출력이 상시 소모되기 때문에 천상 대형 차량용이다. (에어컨도 냉매 컴프레셔에서 전기든 엔진 출력이든 에너지 소모가 제일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버스를 타 보면, 신호대기로 인해 정지했을 때 기사 아저씨가 무슨 스위치를 조작하고 차에서는 "축~ / 취익!" 이렇게 공기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걸 볼 수 있다. (문을 여닫을 때도 비슷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지만, 아직 문도 열리기 전이고 멈춘 직후에)
그건 그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는 소리이다. 버스는 주차 브레이크도 공기압 방식이기 때문이다.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대형 버스· 트럭의 계기판을 보면 승용차에는 없는 '공기압' 계기가 있다. 이건 타이어의 공기압이 아니라 에어 브레이크에 비축된 공기압을 나타낸다. 주행을 하다 보면 압력이 올라가고, 엔진 회전수가 높을수록 더 빠르게 올라간다. 그 반면, 빡세게 브레이크를 자주 밟다 보면 압력이 감소하여 바늘이 왼쪽으로 돌아간다.

쉽게 말해 이건 이 차량의 제동력의 비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속도계· 연료계· 냉각수 온도계에 준하는 매우 크리티컬한 계기이다. 타코미터가 오른쪽 끝(지나친 고회전)에 레드존이 있다면, 공기압계는 마치 연료계처럼 왼쪽(고갈..)이 레드존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특성으로 보인다.

4. 자동차의 브레이크 -- 제동 방식: 디스크와 드럼

브레이크는 제동력 전달과 증폭 방식에서는 저렇게 유압-배력 방식과 에어 방식으로 나뉘고, 실제로 바퀴를 붙들어 물리적인 제동을 거는 방식에서는 디스크 방식과 드럼 방식이 나뉜다. 차축 주변에 크고 반들반들 윤기 나는 금속 원판이 보이고 타이어 휠의 비주얼도 그걸 다 노출하는 형태이면 디스크 브레이크이고, 그냥 꽹과리 내지 솥뚜껑 같은 작고 납작한 금속판만 보이면 드럼 브레이크이다. 그래서 옛날 차들과 요즘 차들은 휠의 디자인 트렌드도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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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앞바퀴는 디스크, 뒷바퀴는 드럼 방식 브레이크를 썼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지간한 승용차들은 100% 디스크이고, 경차 또는 반대로 트럭· 버스 같은 대형차들은 뒷바퀴 드럼을 고수하는 중이다. 드럼 방식은 디스크보다 가격 대 제동성능이 더 좋지만,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과열 위험(= 페이드 현상)이 더 높다는 단점이 있다.

유독 대형차들이 언덕길에서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사고를 내는 빈도가 더 잦은 건 (1) 근본적으로 차가 워낙 크고 무거워서, (2) 워낙 저렴하게 혹사당하는 상용차이다 보니 주행 거리가 매우 길고 과적· 차량 노후· 정비 불량 등의 위험이 있어서 외에도 (3) 드럼 브레이크라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그러니 한여름에 긴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주행할 때에는 자꾸 페달만 밟지 말고 엔진 브레이크 같은 다른 보조 제동 방법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02 08:32 2018/04/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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