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저장 매체들

우리가 맨날 주머니에 넣고 들고 다니고 들여다보는 자그마한 스마트폰은 예전의 다른 휴대용 전자 기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빛의 속도가 달라진 게 없고 전자기파의 특성이 달라진 건 없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중에서 파는 랜 케이블의 재질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어째 인터넷 속도는 캐사기급으로 빨라졌는지? 더구나 유선이 아닌 무선까지도 말이다.

마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난 직관적으로 저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HD 동영상 보기 vs 30년쯤 전 모뎀 PC 통신으로 사진 한 장 다운로드 시켜 놓고 머리 감기/담배 피우고 오기...;;
이건 진짜 1950년대 전쟁 폐허 vs 1980년대 올림픽 개최만큼이나 너무 파격적인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고성능 컴퓨터이다. 기존의 PC와는 발전 배경과 주 용도가 다르다 보니 구조적으로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매우 중요한 차이는 네트워크 연결에 대한 관점이 아닌가 싶다.
PC는 원래 오프라인 상태로 쓰다가 인터넷 연결은 덤으로 추가로 가능한 구도인 반면, 스마트폰은 애초부터 기지국과의 연결을 전제로 깔고 운용된다. 그리고 PC와 달리 스마트폰은 365일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그래서 현재 시각을 표시하는 기능만 해도 PC는 배터리 기반의 자체 시계가 있으며, 요즘 운영체제들이 주기적으로 시각 동기화 정도나 해 준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기지국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현재 시각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 연결을 위해서 데스크톱 PC는 대개 유선 이더넷만 지원하고, 노트북 PC는 유선과 무선 와이파이를 모두 지원한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무선만 지원하고, 노트북 같은 다른 기기가 자신을 통해서 무선 인터넷 연결을 또 할 수 있게 태더링 기능까지 제공한다. 재미있는 차이점이다.

21세기 최신 과학 기술의 산물인 스마트폰을 가능하게 한 근간 기술을 몇 가지 추려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디스플레이: 옛날엔 PC의 모니터는 크고 무거운 CRT(브라운관) 방식이 대세였다. 그리고 반대로 액정이라 하면 지금 같은 천연색 화면이 아니라, 그 시절 전자 계산기처럼 녹두색 배경에다 기껏 7-segment 숫자 내지 도트가 다 보이는 저해상도 비트맵 글꼴 정도나 찍는 허접한 단색 화면이 전부였다.

(2) 플래시 메모리: 하드디스크는 기계적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많으며 진동과 충격에 취약하다. 즉, 근본적으로 모바일에 친화적인 물건이 아니다.
뭐, 그 대신 스마트폰의 메모리가 PC의 하드디스크와 비슷한 가격으로 수백 GB~테라바이트까지 가지는 못한다. 컴퓨터에서 과연 주 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까?

(3) 저전력 저발열 CPU: 난 저 정도로 고성능 CPU가 달린 스마트폰이 어떻게 냉각 팬이 없고 웽 소리를 전혀 안 내며 동작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물론, 오로지 메모리 용량 최적화이지 전력 소모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 x86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그런 스마트폰용 CPU를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대체로 하드웨어 차원에서의 멀티미디어 처리 지원이 PC만치 범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동영상이나 여유롭게 재생하지는 못한다.

(4) 그리고 2차 전지: 스마트폰은 냉장고처럼 24시간 켜져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옛날 휴대용 전자 기기들처럼 1.5V짜리 건전지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우면서 사용해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지금 건전지의 용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것도 나오지 않고, 그냥 예고 없이 픽 꺼져 버리고 안 켜지곤 했다.

철도에서는 전기 기관차가 디젤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괴력을 자랑하면서 수십 량의 화차를 견인하는 차력쑈를 펼치고 있다. 1만 마력이 넘는 힘으로 시속 300으로 달리는 KTX도 전기로 달린다.
하지만 이건 레일을 따라 전차선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배터리만으로 도로의 대형 버스나 트레일러의 동력원이 전기 모터로 대체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배터리는 콘센트를 꽂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기계 중에 인력과 기름을 쓰지 않는 나머지 모든 것들의 동력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기 중의 산소를 조달할 수 없는 곳에서 동작하는 기계는, 연료에 산화제가 같이 동봉된 로켓을 사용할 게 아니라면 전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월면차라든가 심해 잠수함 말이다. 산소는 물론이고 태양 자체로부터 한없이 멀어지는 외행성 탐사선은 아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배터리는 크게 세 계열로 나뉜다.

(1) 납+황산
그 특성상 자동차(+잠수함) 같은 거대한 동력 기계에서 쓰이지, 최소한 사람이 일상적으로 갖고 다니는 전자기기에서는 볼 일이 없는 물건이다.
용량 대비 재료값이 저렴하지만, 무겁고 자연 방전 잘 되고 충전 속도가 더디며, 일정 수준 이상 방전되면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된다. (전압이 약해지는 것을 통해 방전을 간접적으로 유추함)
황산 용액은 인체에 위험하지만 그래도 고열로 인한 폭발 위험 같은 건 없다. 자동차가 안 그래도 교통사고와 화재의 위험에 노출된 물건인 걸 감안하면 이건 자동차 배터리로서 큰 장점이다.

(2) 니켈-카드뮴
일명 메모리 효과로 인해, 지금까지도 '완충 완방'이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편견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주범이다.
한때 노트북 등 여러 전자기기에서 쓰였지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카드뮴보다 재료 단가가 비싸지만 용량과 수명 등에서 더 유리하고 메모리 효과 단점도 없는 니켈-수소로 대체되었다.

(3) 리튬 이온
일단 소형 전자기기 정도 규모에서는 이만 한 가성비가 없는 만능 소재이다. 에너지 밀도가 아주 높고 메모리 효과 없고, 그러면서 아주 가벼우니 좋다. 하지만 수명이 짧은 편이며, 폭발 위험과 재료 고갈로 인한 조달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배터리들은 기온이 매우 낮은 곳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참 안타깝지만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충전과 방전을 수백· 수천 회 반복하며 쓰다 보면 최대 충전 가능 용량이 조금씩 감소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PC의 배터리는 몇 년 주기로 교환해 줘야 된다. 화학 반응이 완전히 가역이 아니기라도 한가 보다.

옛날에는 총에 탄창을 교체하듯이 스마트폰의 뒷구멍(?)을 열어서 배터리를 통째로 교체하는 게 가능했는데, 요즘은 주 배터리는 탈착이 가능하지 않은 형태가 됐다. 그 대신 외장형 보조 배터리를 케이블을 통해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행의 원조는 애플 진영의 아이폰이다. 쟤들은 컴퓨터고 뭐고 온통 일체형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 왔기 때문이다. 모니터고 본체고 배터리고 몽땅 분리 불가능한 일체형..

이런 2차 전지, 일명 배터리들은 재충전 가능한 화학 전지를 말한다. 배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물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축전기(일명 콘덴서)
얘는 화학 반응 없이 찰나의 전기 에너지 자체를 찔끔 저장하고 있다가, 고전압의 전하 형태로 순식간에 찌릿 방출하는 물건이다. 극초소용량에 초고속 충전· 방전되는 배터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전력을 축적하는 용도보다는 다른 전자 기기 내부의 부품으로 쓰이곤 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의 실드 배터리는.. 실드를 전기 에너지처럼 취급해서 마치 축전기처럼 보충하는 형태에서 모티브를 딴 듯하다.

(2) 건전지
2차 전지(배터리)의 반의어로서 충전 불가능한 1회용 1차 전지를 가리킬 때 '건전지'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습전지'의 반의어이기 때문에 충전 가능 여부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다. 둘 다 똑같이 화학 전지인데, 자동차 배터리처럼 황산 용액이 출렁거리는 게 아니라 전해액을 종이 같은 데에 흡수시켜서 곧장 줄줄 흐르지 않게 했다는 뜻일 뿐이다.

망간-아연 전지가 대표적인 건전지요 1차 전지이긴 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2차 전지 중에도 건전지 형태인 물건이 있다.
시계 같은 데에 들어가는 일명 '단추형 소형 건전지'라는 것도 있는데 얘들은 대체로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1차 전지이다. 옛날에는 수은 건전지가 많이 쓰였지만 요즘은 수은이 몸에 안 좋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해 온도계로도, 건전지로도 모두 퇴출된 지 오래다. 유연휘발유, 프레온 가스, 석면처럼 말이다.

건전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난 개인적으로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써야 하는 무선 마우스는 너무 불편하다. 왜 저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평소에 충전 가능하게 마우스 거치함이라도 만들어 놓든가 하지..

(3) 연료 전지
얘는 연료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긴 하는데, 연료를 태워서 운동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학 전지처럼 연료(?)의 화학적인 전위차를 이용해 축적돼 있던 전기를 뱉어 내는 것도 아니니 그 특성을 말하기가 좀 뭣하다.
현재로서는 산소와 수소를 이용해서 전기 분해의 정반대 메커니즘으로 물과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연료의 형태이므로 차에 기름 넣듯이 매우 빠르게 충전을 할 수 있고 자연 방전 걱정이 없다는 점, 시끄러운 엔진 가동 없이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화학 전지 기반의 기존 배터리가 넘볼 수 없는 장점이 있지만 얘 역시 수소의 보관, 백금 촉매의 가격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압도적인 대안 역할은 아직까지 못 하고 있다.
더티한 탄소가 달라붙은 통상적인 탄화수소 계열이 아니라 수소 자체를 곧장 반응시킬 수만 있다면 참 깨끗한 무공해 에너지원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국내에서 현대 자동차가 수소 연료 전지 차량의 연구 개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휘발유 엔진은 배기가스의 정화, 즉 후처리를 위해서 백금 촉매 변환 장치를 사용하는데, 수소 엔진은 산· 수소의 반응이라는 본업의 촉진을 위해서 백금 촉매를 사용하니 촉매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참고로 수소로 달리는 자동차는 수소 연료 전지 기반뿐만 아니라, 수소 자체를 연소시키는 내연기관 기반도 별개로 있다.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물건이다. 비록 반응의 부산물로 둘 다 물이 나오는 건 동일하지만 말이다. 수소는 로켓 엔진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는데 그게 연료 전지 기반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연료를 태워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교통수단들이나 다른 소형· 이동식 발전기들은 말 그대로 내연기관이 장착되어서 엔진의 회전력으로 발전기를 곧장 돌리지만, 거대한 화력 발전소에는 외연기관인 보일러와 증기 터빈이 있다. 화력 발전소는 석유보다도 석탄을 더 많이 활용하니 말이다.
과거의 증기 기관차는 석탄과 물을 주기적으로 보충해야 했던 반면, 화력 발전소에서는 한번 터빈을 통과했던 수증기를 수집· 냉각 후에 계속 재활용한다고 한다.

(4) 원자력 전지
원자력 발전소는 열의 근원이 석탄· 석유가 아니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에너지라는 차이가 있을 뿐,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은 화력 발전과 동일하다. 그에 반해 원자력 전지는 열전 효과(Seebeck effect)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자료를 모아 보니, 통상적인 화학 전지나 교류 발전기, 심지어 광전지 말고도 전기를 비축하거나 생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원자력 발전은 다 20세기 초· 중반에 발견되고 규명된 '핵 분열' 원리를 이용하며, 그것도 그 에너지 자체를 곧장 전기로 바꾸는 게 아니라 열로 물 끓여서 터빈을 돌리는 용도로 간접적으로만 사용한다.

핵 분열을 넘어 태양 같은 항성들의 동력원이기도 한 '핵 융합'을 인간이 직접 제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안전하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mc^2의 형태 그대로 뽕을 뽑을 수 있게 된다. 핵 융합의 원료 자체는 그야말로 주변에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 중수소는 바닷물..) 사실,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이 구조적인 차이도 핵 분열과 핵 융합이다.

하지만 핵 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고온 고압 환경이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건 뭐 초전도 상태를 만들기 위한 극저온과 반대편 극단의 영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 융합, 무선 송전, 직류 고압 송전... 가능하다면 요 세 개가 아마 2020년대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을 과학 기술 떡밥으로 남을 듯하다. 과거의 괴수 전기 공학자 테슬라는 무선 송전을 어느 정도 실현도 했던 것 같지만, 직류 고압 송전은 자기 관심 분야가 아니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17 08:35 2018/09/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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