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호박 근황

1. 실내에서 얻은 마지막 1세대 호박

지난 2월 중순쯤에 인공수분 시켜서 착과됐던 호박 열매 중, 제일 크고 2개월 가까이 제일 오래 남겨 놨던 호박을 드디어 땄다. 언제부턴가 줄기가 부러진 게 보여서 그대로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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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딴 다른 호박들은 애호박 상태로 따서 껍질째로 국수 고명을 만들어 먹은 반면, 얘는 최대한 오래 남겨서 누렇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실내는 일조량이 부족하니 야외에 비해서는 익는 속도가 훨씬 더 느리긴 했다. 봄이 되어서 실내가 더워지고 햇볕이 강해진 뒤에야 호박이 뭔가 익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꼭지가 초록색 기운이 싹 없어지고 말라 비틀어졌으며, 호박 껍질도 노랑을 넘어 꼭지 주변 한정으로 붉은색까지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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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정도 놔둔 뒤에도 호박을 따 보니 껍질은 말랑말랑하고, 과육은 늙은 호박보다는 여전히 애호박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과육 부위는 국? 조림?을 만들어서 먹었다. 과육이 그래도 초록색보다 노란색에 더 가까워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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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호박은 최대 길이 17cm, 무게 1.5kg 남짓이었다. 줄기의 굵기에 비해서 호박이 막 크고 무겁게 맺히지는 못했다. 야외에서 잘 키워서 호박의 컨디션이 더 좋았으면 열매도 저것보다 얼마든지 더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써 작년 11월 중순쯤에 심어서 올해 2월경에 착과한 1세대 호박들의 열매를 모두 자가소비 처분했다.

2. 최후의 새순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만.. 저렇게 올해 2월경에 착과해서 열매를 하나씩 배출했던 호박 덩굴들은 그 뒤에는 착과 이전 시절만치 왕성하게 자라지 못했다.
무성하던 큼직한 잎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슨 곰보처럼 누런 반점으로 뒤덮이면서 시들었다. 이건 평범하게 수명이 다해서 시드는 게 아니라 병에 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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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물 주고 거름 주고 돌보고 있으니 얘들은 완전히 죽지는 않고 여기저기 새순이 돋으면서 살려고 몸부림 발버둥은 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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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걸로도 모자라서 번식까지 또 하려고 잎뿐만 아니라 꽃대도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심지어 암꽃 씨방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것들은 콩알 크기보다 더 커지지는 못하고 시들고 떨어져 버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물과 영양이 분산돼서 그런가? 순을 더 쳐 줘야 되는지? 좀 궁금하다.

3. 2세대 호박

한쪽에서 저렇게 1세대 호박을 놔두고 있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지난 3월쯤에 실내에 심은 2세대 호박도 재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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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호박을 보소~ 상태가 제일 좋은 이 녀석은 열매가 아닌 잎의 최대 길이가 거의 30cm까지 치솟았다. 표면이 동물로 치면 무슨 근육 핏줄이 울끈불끈 하는 것 같다.
하긴, 열매는 세제곱으로 커지지만 잎은 그냥 제곱으로 커지니 길이가 늘어나는 게 더 부담없을 것 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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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충분히 따뜻해지니 노외 재배도 시작했다. 실내에서 먼저 모종을 키워 놓은 것을 옮겨 심기도 했다. 하지만 4월 중순까지도 밤에는 10도 아래로 기온이 내려가서 호박이 견디기에는 추운 것 같았다. 호박이 밖에서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기간은 거의 4~10월 사이의 반 년 남짓이라고 봐야 할 듯?

예전에는 호박이 냉해를 입어서 잎이 시커멓게 변하고 죽더니만.. 어린 잎은 허옇게 변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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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식물을 잘 키우려면

(1) 지난 반 년 동안의 개인적인 호박 재배 경험에 따르면,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은 흙이나 물, 영양, 일조량뿐만 아니라 통풍도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저렇게 잎이 큼직하고 상태가 아주 좋은 2세대 호박은 열린 창문에 제일 가까이 있는 녀석이었다.
바람 하나 안 부는 실내에서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는 식물은 광합성이 잘 안 되고 에너지 축적이 안 되어 약해지고 병충해에도 더 취약해진다고 한다. 영양이 부족해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건 동물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굳이 물 반 고기 반의 양식이 아니라 어항에 금붕어 두세 마리를 달랑 키우더라도 수조 안에 펌프를 가동해서 공기를 퐁퐁퐁 계속 쏴 줘야 한다. 동물만 그런 게 필요한 게 아닌 듯하다.
비닐하우스 농사라면 대형 환풍기를 돌려서 공기를 강제 순환시키며, 심지어 이산화탄소를 일부러 쏴 주기도 한댄다.

이러니 기후에 구애받지 않는 실내 공장형 농업은 구현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물과 비료와 광원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공기도 순환시켜 주고, 꽃가루받이도 곤충 없이 사람이나 기계가 해 줘야 하고, 실내 화분이라면 수조 물갈이를 하듯이 분갈이도 해 줘야 하고..
공짜로 공급되고 있는 자연 환경을 인공적으로 저렴하게 재현하고 대체하는 길은 멀고도 힘들다.

(2) 아마 호박에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니어 보인다만..
식물에게 주는 거름(퇴비? 두엄?)은 처음 심을 때 미리 넣어 주는 밑거름이 있고, 나중에 식물이 성장할 때 지면에서 또 보충해 주는 윗거름이 따로 있는가 보다.
전자는 식물 자신이 자라기 위한 영양성장에 필요한 질소 위주이고, 후자는 꽃과 열매를 맺는 생식성장을 위한 칼륨과 인 위주로 주면 좋다고 한다.

영양성장에 특화된 비료만 너무 많이 주면 호박이 좋은 물과 온도 여건을 이용해서 옳다구나 자기 덩굴과 잎만 잔뜩 무성하게 자랄 뿐.. 열매를 별로 맺지 않게 된댄다.
그런데, 이런 호박이라 해도 가을이 되고 밤 공기가 차가워지면.. 자기 명이 얼마 안 남은 걸 인지하고 성장 알고리즘을 바꾼댄다. 뒤늦게 번식하려고 무리해서라도 씨방을 만들고 암꽃을 피운다.

난 그래서 10월쯤에 호박들이.. 동그란 씨방 달린 암꽃을 뜬금없이 잔뜩 피운 것을 작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고, 인제 수분이 된다고 해도 어느 세월에 씨가 제대로 달린 열매를 맺으려고..?? 그 전에 서리가 내리고 다 얼어 죽을 텐데?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로도 작게나마 과육이 있고 통째로 먹을 수는 있기 때문에 방울토마토 먹는 기분으로 방울애호박을 요리해 먹긴 했었다.

하긴, 호박은 주변 성장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더위, 물 부족, 순이 자꾸 잘려 나감) 스트레스를 받아도 자기 몸통을 키우는 건 포기하고, 무리해서 꽃을 더 피운다고 한다. 다만, 이러면 잎도 작고 꽃도 작고 꽃가루도 빈약하고.. 수분해 봤자 열매가 못 맺히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 다들 어떻게든 생존하고 번식하려고 눈물겹게 투쟁한다..

말 못 하는 짐승을 넘어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이라 해도 생명체는 기계류와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고 이런 섬세하고 이타적인 면모가 있다. 동식물을 하나 직접 키워 보는 건 게임에서 이상한 몬스터를 죽이고 부수기만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향을 사람 정서에 끼치는 것 같다. ㅠㅠㅠ

5. 나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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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본인은 지난 3월 말에 봤던 길거리 호박을 다시 찾아가 봤다.
이제야 비닐은 벗겨졌으며, 호박이 담벼락에 많이 자라서 잎이 무성해져 있었다.
호박은 굳이 밭 만들 필요 없이 아무 시골 자투리 땅에서나 덩굴을 늘어뜨리는 식으로 재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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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을 찾아가서 지난 2월에 들렀던 같은 가게에서 늙은 호박 두 덩이를 또 장만했다. ^^ 두 주 남짓 동안 갖고 놀다가 죽을 쑤어 먹었다.
역시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그때보다는 늙은 호박 재고가 훨씬 더 줄어들었고 찾기 힘들어져 있었다.
작년 여름~가을에 딴 늙은 호박은 이론적으로 얼마나 오래, 언제까지 보관 가능할까? 정말 궁금하다.
이제 올여름만 지나고 8~9월쯤이면 새로 수확한 늙은 호박이 나오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12 08:35 2022/05/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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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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