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구독자라면 이미 다 아시겠지만..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을 얻고 교회 생활을 오래 해 온 크리스천, 예수쟁이이다. 그래서 블로그에다가도 성경 관련, 기독교 교리 관련 글을 지금까지 엄청 많이 써 왔다.
장기적으로는(한 10년 안?).. 그 글 내용들 일부를 정제하고 분야별로 나눠서--구원 복음, 성경 난제, 신앙 생활, 성경 번역 등등등-- 유튜브를 한다든지, 아니면 종이책을 출간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뭐, 이것도 마치 컴퓨터 분야에서 github 계정 파는 것처럼 그냥 구상만 하는 거고 적극적으로 실행까지는 아닌 상태이다. 현실적으로는 직장이나 한글 입력기 개발이 더 급해서 말이다.;;

본인은 2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진영에 입문함으로써 신앙 노선이 크게 바뀌었다. 대외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고 이단 편견도 많은 곳을 굳이 선택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다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 같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말씀 보존 학회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 초판 발간된 지도 벌써 30주년=_=이 임박했다. 그거 기념으로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실, 본인은 신앙 노선이 바뀌었다거나 달라졌다는 말도 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KJV 진영으로 오면서.. 원래 막연하게 믿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강화된 것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둘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 행위가 아닌 믿음만으로 구원이라고 말은 하는데,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건지.. 죄 짓고 회개 안 하면 도로 취소되는 건지는 긴가민가했다. ==>> 당연히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고, 죄 짓고 회개가 없으면 보상 등 딴 걸 잔뜩 잃는다고 알게 됐다.
  • 성경 말씀은 완전하고 무오류하다고 배웠지만.. 최초의 자필원본만 그렇다고 들었다.. ==>> 그렇지 않고 번역과 보존도 완벽하게 무오류하며, 그 실체가 지금 이 시간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건 맞는데 창세기 1장의 6일이나 계시록의 1천 년은 많이 애매했다. ==>> 문자적 해석과 영적 적용의 관계를 명확하게 깨우쳤다.
  • 신약 시대 은혜의 복음에 대해 배웠다. ==>> 응 그건 당연한 건데, 대환란 때는 왕국복음이 등장하고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무조건 다 구원받는다. 유아세례 안 받아도 된다. 그 대신 살아 있는 동안은 부모가 꼭 의로 양육해야 된다. 체벌은 악을 훈계하고 바로잡는 용도로는 필요하다.

이런 식이다.

한편으로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고 배웠지만 "자살하면 구원 상실인가?", "끝까지 신실하지 않으면 대환란 때 남겨지나? 666 안 받으려고 버텨야 되나?" 갖고 고민하던 거.
성경 역시 여느 고문서와 다름없으니 현대의 학자들이 옛날 텍스트와 의미를 새로 복원해 줘야 하냐고 생각했던 거.
어린아기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뭐는 자유의지이고 뭐는 예정인지 이런 간단한 문제들에 대한 답도 모르고 있다가 속 시원하게 논리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해 준 진영을 선택한 것이다.

킹진영이건 기성 교회건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를 믿는 게 아닌가? 원래는 성경도 같은 성경을 보지 않는가?
그런데 세부 방법론이 다르다고 서로 이 정도로 적대하고 이단시하고 대립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절대 없다고 말하는 배타적인 종교(?)가 있다면 그렇게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쓰여 있는 경전, 말씀도 당연히 하나만 맞지 이와 일치하지 않는 건 다 잘못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이지 않은가?

"예수..?? 응 훌륭한 사대성인 도덕 선생이지. 근데 예수만 믿어야 구원이라고? 그건 사이비 광신이지~"와
"킹 제임스 성경..?? 응 훌륭한 영문학 고전이지. 근데 성경 번역이 그것만 맞다고? (통상적인 이역 수준은 논외) 그 본문 계보만 맞다고? 그건 이단이지~"가
내가 보기엔 둘 다 거의 같은 영, 같은 분별에서 유래됐다.

"기존 개역성경(개역개정)은 사탄 마귀에 의해 변개되고 부패된 성경이다"
이 말은 매우 극단적이고 사람 감정을 상하게 하기 좋다. 개역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구원받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누가 감히 저런 무엄한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저 말은 "제아무리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도 육신 모드가 극에 당해서 마귀 들린 듯이 깽판칠 수 있고, 마귀에게 실컷 쓰임받을 수 있다"와 같은 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역성경에도 변개되지 않은 말씀이 많이 있고 그거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 것과 별개로..
소량의 변개 삭제된 부분은 누가 뭐래도 마귀 영향을 받은 게 맞다. 그게 불편한 진실이다.

사람이 무인도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야 벌레나 풀뿌리라도 먹어야겠지만.. 멀쩡히 좋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그런 저질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 먹을 필요는 추호도 없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사도 하자나 결함이 전혀 없고, 남이 만진 흔적이 없는 깔끔한 걸 고르려 애쓴다.

맛집 찾아가서 밥 먹는데 음식에 머리카락이 한 가닥이라도 나왔다? 어디 곰팡이 슬고 상한 부위가 있다? 그러면 찝찝해서 그 음식은 통째로 교환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무시하고 그냥 먹어도 어지간해서는 탈 날 일 없더라도 말이다.
당신에게 성경이 정말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성경 역본을 고를 때도 이런 잣대가 자연스럽게 적용될 것이다! 아멘~

KJV 유일주의를 반박하고 빠져나가는 논리는 대부분이 "그건 후대에 첨가된 거고 원본에 없던 구절이다", "여기에는 빠졌어도 다른 책에는 있어서 괜찮다(마태-마가, 에베소서-골로새서 따위)", "오히려 KJV의 오역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반대자도.. 말이 완전히 다른 벧전 2:2 구절이 KJV가 틀렸고 다른 현대 역본들이 맞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걸 지난 20년 동안 본 적 없다. 약 5:16의 '잘못/허물'이 틀렸고 변개됐고 '죄'가 맞다고 양심을 걸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본 적 없다.

그 발달된 성서고고학 사본학과 헬라어 원어 지식으로 나온 결과물이 고작 그거라면.. 미안한데 나는 그게 맞는 하나님 말씀이라고는 동의 못 하겠다. KJV 유일주의 소신을 버릴 생각이 없다. 내가 수학이나 과학 등 다른 학문에서는 인간의 지성을 동원한 논리와 합리주의, 과학적 방법론을 다 존중하지만, 이 바닥만은 쪼금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 애초에 종교나 신학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와 진영논리"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원본 원문이 없지만 온전히 번역되고 보존된 필사본이 original과 동급이다. 행정에서 말하는 '원본대조필' 도장이 찍힌 거나 마찬가지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안 그럴 거면 진짜로 하나님이 지옥을 전하기 위해서 지옥 구경을 진짜로 하고 온 사람을 살려 보내셔야 할 것이고, 성경 시대의 헬라어 히브리어를 구사하던 사람을 살려 보내서 뜻풀이를 시켜 주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하시지 않고 후세를 모두 기록된 말씀을 통한 간접 체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처분하셨다. 오히려 "예수님의 변화산 변모 목격보다도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되다"라고 인증까지 해 주셨다. 그 약속은 성경의 온전한 보장을 당연히 전제로 깔아야만 성립 가능하다. 이런 원리를 알면 특정 성경 번역본만 우상화.. 이런 무식하고 민망하고 저열한 소리는 할래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 물론 KJV와 타 성경들은 거시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 구절보다 일치하는 구절이 훨씬 더 많다. KJV 진영 교회라고 해서 24시간 365일 내내 '변개된 구절 차이점'만 파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일상적인 교리 쪽에서 KJV 계열 교회가 기존 개신교회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경 해석 방식이라든가 교회사· 경륜에 관한 인식이다.

(1) 개신교 쪽에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공인받은 게 기독교가 세상을 상대로 큰 승리를 쟁취한 거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세상 요직에 진출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킹 진영의 관점은 다르다. 세상적인 성공은 자기가 재능과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성공하면 하는 거고, 그 자체가 교회의 세력이나 개인의 영적 성장과는 별개라고 여긴다. 박해보다도 왜곡과 변질, 배도, 순수성 상실이 기독교계에 훨씬 더 해로운 현상이라고 분명하게 인지한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은 당장은 기독교 박해를 멈추게 했지만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으며, 그 뒤로 훨씬 더 큰 비극을 불렀다고 본다. 그냥 일제 시대 문화 통치의 로마 제국 버전이나 마찬가지이다.

(2) 종교 개혁자들을 좋아하는 개신교 쪽에서는 에라스무스, 칼빈 같은 그 선조들이 성경 본문의 편찬과 성경 번역에도 신경 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가 보다. 그렇게도 제네바, 제네바 그러는데 KJV의 전신인 제네바 성경은 모름..;;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점을 특별히 공략해서 개신교들을 대상으로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하기도 한다.

(3) 이 킹 제임스 진영은 대체로 '온건한 세대주의' 성향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나 침례나 구원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다 똑같지는 않다고 본다. 계시록 예언은 대부분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예수님 재림 때 이뤄진다면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뤄진다고 본다. 함부로 비유나 묵시 따위로 치부하지 않는다. 과거에 이미 이뤄진 예언들 사례를 보니 아주 문자적으로 이뤄졌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게 건전한 관점 아닌가..?? 도대체 왜 세대주의가 막연하게 이단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종말 자체는 있지만 당연히 특정 날짜 정해 놓고 깽판 치는 시한부 종말론이 절대 아니다.

아무쪼록 나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내 양심에 따라 정확하게 전하기는 하고서 거절 거부 당하거나 이단 소리 듣는 것에는 아무 두려움이 없다.
시한부 종말론, 구약 무용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문자적인 예수님 재림과 천년왕국 통치를 믿기 때문에 이단.
자기네 성경 안 보면 구원 못 받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13구절이 삭제됐고 6만여 단어가 변개됐다고 팩트폭격을 하기 때문에 이단.

이러면 진짜로 예수님이나 바울이 이단 소리 들었던 것과 똑같은 취급이고, 하늘나라 보험에서 보상 사유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성경 교리를 풀어 주는 신학 노선이 있다면 나도 들어는 보고 싶다.

※ 여담: 이단 중의 이단 안식교

아니 무슨,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도 안식교에서 유래됐고.

"벤자민 G. 윌킨슨(1872-1968)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제7일안식일워싱턴재림대학교 신학부 학장이었다. 킹제임스성경의 유일주의는 윌킨슨이 1930년에 출간한 『입증된 우리의 흠정역 성경』이란 제목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그는 시편 12:6~7을 잘못 적용하여, 그 말씀이 마치 킹제임스성경 보존에 대한 약속인 것처럼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윌킨슨이 KJV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1881년 개정된 성경RV이 KJV보다 자신이 믿고 지지하고 있는 안식교 교리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권 동우,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CLC, 2016), pp. 41-42


젊은 지구 창조론/창조과학도 안식교에서 유래됐다니..

1938년 제7일 안식교인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1870-1963)가 홍수 지질학을 주장하며 홍수 지질학회(Deluge Geology Society)를 설립한 것이 근대 창조설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사이비 과학적인 설명을 더해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젊은 지구 창조설, 혹은 창조과학이다.
-- 로널드 L. 넘버스, 『창조론자들』(2016). 새물결플러스, pp. 295


만만하면 다 호구 안식교 탓이냐..?? 1930년대에 안식교라는 곳은 아주 대단한 곳이었구나. -_-;; ㄲㄲㄲㄲㄲㄲㄲ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론 와이어트'(1933-1999)라는 아마추어 성서고고학자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논란 많은 이 아저씨가 안식교인이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흔적은 말할 것도 없고, 홍해 밑바닥을 탐사해서 모세 시절의 병거 바퀴를 발견하고 심지어 골고다 언덕에서 부계 염색체가 없이 모계 염색체만 있는 예수의 진짜 혈흔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 말이다. =_=;; 물론 이건 안식교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사실, 내가 알기로 정작 안식교는 크리스천도 안식일 지켜야 된다는 요지의 이상한 소리 하는 것 말고 다른 건 별로 이단기가 없다. 교리 측면에서만 이단일 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것도 없다고 들었다.
하물며 성경 말씀이 번역 과정에서도 온전히 보존되었고 그 실체가 지금까지 있다고 믿는 것,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믿는 것 그 자체는 아주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다. 문제될 게 전혀 없다. =_=;;

아무쪼록 누구든지 "이단들이 성경을 엄청 파고든댄다, 요한계시록 공부 열심히 한댄다. 6일과 1천 년을 문자적으로 믿는댄다. 이단들이 재림을 사모한다고 하니 우리는 성경 공부하지 말자, 재림 사모하지 말자." 이런 무식한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다음은 진짜 마지막 여담.

  • the Holy Bible '성경'이라고 해도 충분할 텐데 '성경전서'라는 말이 왜 붙었을까? 신구약 66권이 모두 들어있다는 걸 굳이 강조하고 싶었는가 보다.
  • 한킹이 출간된 1994년 4월 12일은 KBS 박 지원 아나운서의 생년월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5일은 서울 2기 지하철을 관할했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날이다.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4/04/11 08:35 2024/04/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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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권

말보회 한킹에는 영어 KJV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민권' citizenship이라는 단어가 두 군데 나온다.
하지만 1600년대에 그런 직접적인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그 문맥에서 그 단어의 실질적인 의미는 시민권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 로켓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에 로켓을 'NASA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 개발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먼저 빌 3:20이다.
conversation은 단순히 '소통/대화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행실이라는 뜻으로 신약에서 쓰였다. 베드로전/후서에서 타인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의 사례로 특별히 자주 쓰였다.
쉽게 말해 찬송가 가사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에서 저 '행실'이 conversation과 개념적으로 정확하게 대응한다.

그런데 딱 하나 빌 3:20 "우리의 conversation은 in heaven 하늘에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건 우리의 영적 지위 얘기이다. 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행실 문맥이 절~~대로 아니다. 아무리 "conversation = 행실" 영어 직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래서 한킹을 제외한 나머지.. 먼 옛날의 권위역부터 시작해 흠, 근, 표.. 모두 이 단어를 "생활 방식"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방식'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는 거의 다 manner에 대응한다. 즉 저 말을 영어로 역번역하면 오히려 manner of conversation이 된다.

그럼 어차피 빌 3:20의 conversation은 벧후 3:11이나 벧전 1:15 같은 행실이 아닌데.. 여기서만 예외적으로 '생활 방식'이라고 새로운 말을 만들 바에야 '시민권'이 뭐가 대수인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에 90일 관광비자만 받고 놀러 와 있는 사람이랑.. 아예 미국 영주권· "시민권"이 있고 거기 정착해서 직업도 갖고 있는 사람은 미국 땅에서의 "생활 방식"이 당연히 서로 완전히 다르다. 이런 관계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빌 3:20 말고 또 시민권이 등장하는 곳은 바로... 행 22:28이다. 성경 스토리 좀 들어 본 분이라면 다들 아실 스토리 되시겠다.

-- 로마군 사령관: 난 돈 왕창 많이 갖다바쳐서 로마 시민권을 간신히 취득했는데..
-- 바울: 난 모태 로마인이오.

영킹은 이 부분이 시민권이 아니라 '자유' freedom이라고 돼 있다.
이건 그냥 옛날 성경과 현대 성경의 용어 차이이지, 변개 이슈가 아니며 KJV만의 교리적으로 우수한 번역이라고 간주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KJV 이전 계보의 영어 성경들도 다 freedom이라고 옮겼기 때문이다.

왜냐고? 이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근대적인 시민 계층, 민주주의, 상비군, 국가 체계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로마인이면 로마인이지, 로마 시민권자??? 이런 개념이나 용어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천적 로마인"으로서의 권한과 혜택을 freedom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영어 freedom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거잖아~~" ㅇㅇ 그렇긴 하다.
그런데 이 본문이 교리적으로 무슨 갈라디아서 4장 같은 문맥인가? free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한 종 노예인가? 저 사람은 무슨 땅거지 노예였다가 극적으로 해방된 걸까?
그 당시에 로마 시민이 아닌 유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은 사회적 신분이 전부 창세기의 하갈 같은 처지였을까? 그렇지 않다.

로마 시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고, 당장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지 않았으며.. 재판 받다가 억울하면 항소해서 로마에 직접 가서 재판 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중죄 반역죄를 지어도 십자가형으로 처형 당하지는 않았다.

로마인이 아닌 사람은 저 정도의 권한이 없고 생활이 다른 제약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로마 제국 내에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비참한 사람은 아니다. 그게 아니어서 저 사령관이 밑바닥 노예에서 해방된 거라면, 평민이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과연 어떻게 요즘으로 치면 대령~준장 급의 고위급 군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1600년대 당시에 영킹으로 행 22:28을 읽었던 영어권 화자나, 지금 우리가 한킹으로 행 22:28을 읽으나 결국 그 말이 그 말, 로마 시민권을 떠올리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절 1600년대 영어 언어 문화에서는 freedom이 최선의 번역이었고, 지금 우리 언어 문화에서는 시민권도 전혀 문제 없는 번역이다. 이걸 최소한 오역이나 변개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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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ice Guarantees Citizenship "군복무 하시면 시민권 무조건 드립니다~!!" (옛날 공상과학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에 나오는 유명한 선전 문구 ㄲㄲㄲㄲㄲ)

세상에서는 어느 강대국의 Citizenship을 얻으려면 행 22:28처럼 돈을 왕창 내거나, 아니면 저 영화에서처럼 군복무라도 하면서 나라에 기여하고 왕창 고생해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순서가 반대다. 먼저 하늘나라 Citizenship부터 얻고 나서 롬 12:1처럼 Service, 아니 reasonable service를 실천한다.
'시민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유일한 우리말 킹 제임스 성경을 보시는 분이라면 이 점을 잘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계시록 4:11에 나오는 스물네 장로들의 찬송을 보면.. 여느 성경들은 "주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피조물들은 주의 '뜻'에 따라/의해/뜻대로 창조되었다"고 나와 있다. by your will, because of your will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은 특이하게도 이 부분을 주의 '기쁨을 위하여/인하여' for thy pleasure 라고 번역했다. 말보회 한킹은 도로 '뜻'이라고 옮겼다.

그리스어 '델레마'는 다른 모든 구절에서는 그냥 '뜻, 의지, 의도'를 의미한다. (논리 용어 딜레마와는 무관한 단어)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에서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요한복음 "나를 보내신 분의 뜻", 살전 5:18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내가 찾아본 바로는 전부 이 단어이다!

(1) KJV 이전에 계 4:11을 thy will 대신 thy pleasure라고 옮긴 역본은 내가 아는 한 비숍밖에 없다. KJV는 이 구절에서 비숍과 제네바 중, 비숍의 번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일단 본문 자체 변개 문제는 아니고, 그 다음의 번역의 차이점 문제이다.
(비숍은 바른 본문 기반이긴 하지만 전 11:1 "빵을 젖은 얼굴 wet faces 위에 놔둬라"처럼 자신만의 튀는 오역이 존재하기도 했던 역본이다. ㅎㅎ)

(2) '뜻'과 '기쁨'이 모두 나오는 엡 1:5 같은 구절도 있다.
여기 말고도 여러 구절을 찾아보니, 기쁨을 뜻하는 원어는 원래 당연히 따로 있다.

(3) 계 4:11이 혹시 히 12:10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걸 비교해 봤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가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했거니와" 이거야말로 '자기 마음대로/뜻대로'와 '자기 기분 좋을 대로'가 상호 교차 가능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구약에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셨음이니이다" (욘 1:14) 같은 표현이 있으며, 이 역시 '자기 마음대로, 뜻대로'와 다를 바 없는 의미라 하겠다.

하지만 히 12:10에서 쓰인 원어는 계 4:11과의 접점이 의외로 전혀 없었다.
물론, "기뻐하는 대로(= 멋대로 마음대로라는 뉘앙스) 징계"와 "숭고하고 심오한 기쁨을 위해 창조"는 어감과 심상 자체가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건 감안할 점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사람마다 어떤 언어관 성경관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판정이 달라진다.

(1) 그냥 평범하게 원어 원문이나 헬라어 사전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KJV가 혼자 특이하게 번역했거나 심지어 오역을 했네~ 헬라어로 보니 '뜻' will이 맞네?"라고 말하고 코웃음 치며 간단하게 넘어간다.

(2) 그게 아니라 킹의 번역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는 그냥 뜻이 아니라 기쁨이 수반된 뜻이기 때문에 킹이 일부러 다르게 번역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영킹은 어린 시절부터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일상적으로 팠던 미친 석학들 47명이 각자가 성경을 전부 번역한 뒤, 그걸 서로 대조하고 14번이나 검토하는 식으로 왕창 빡세게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 보시길..)
마치 빌 4:1 '나의 기쁨'처럼 피조물들이 창조되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창조를 하셨고 실제로 기쁨을 얻으셨다.

(3) 그런데 '뜻'이라는 원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짜 오로지 영어 KJV의 표현 for thy pleasure만 보면..
좀 의역 내지 확장된 해석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사명.. 아니 하나님 기쁨조의 사명을 띠고 창조되었다"처럼 된다.
빌 4:1이 아니라 군인은 자기 상관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딤후 2:4 같은 논리가 된다. 이쯤 되면 원래 '뜻'이라던 그리스어하고는 꽤 멀어지는 것 같다. ^^

당연히 교리적으로야 우리는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아기가 갓 태어나서 부모가 기쁜 것하고, 그 애가 커서 효도해서 부모가 기쁜 건 조금 다른 차원인 것도 사실이리라. 계 4:11은 무슨 기쁨을 말하는 걸까?

계 4에서 장로들의 찬송은 그렇잖아도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얘기하는 문맥이다. 그러니 "뜻대로 창조" 1, 2번이 일면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정말 원어를 생까고 영어 킹에서만 발견되는 계시와 교훈을 찾자면 3까지도 확장 가능하다. 영어 전치사 for, in, of 따위는 무진장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단어이니까.

킹 빌리버들의 믿음에 따르면, 성경엔 문맥에 벗어난 말도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 있다. 시편 12편에서 온통 경건한 자, 가난한 자, 학대받는 자, 이스라엘 백성 얘기를 하다가도 끝에 갑자기 말씀을 영원히 온전히 보존한다는 얘기가 뜬금없이 나올 수도 있을 정도니까.

이런 구절에서 킹을 단순히 잘 번역된 성경,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성경 정도로만 아는 사람과.. 아예 원어를 초월하는 계시가 담긴 더 뛰어난 성경(!!!)이라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_=;;

3. 기뻐하라 / 세굿빠

고린도후서의 끝부분인 13:11 말이다. "끝으로 형제들아.. finally, brethren" 다음에..
어떤 성경은 "안녕히 계세요, 바이바이, 잘 있으라"(farewell, goodbye)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성경은 "기뻐하라"(rejoice)라고 되어 있다. 영어 KJV는 전자인데, 한킹은 후자를 택했다.;; 어찌 된 일일까?

이 역시 원어로 '카이로'.. '기뻐하라'와 같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살전 5:16의 그 유명한 "항상 기뻐하라", 그리고 기쁨이 넘치는 옥중서신 빌 4:4의 "기뻐하라"..
심지어 같은 고린도후서 13장의 바로 앞 9절의 "기뻐하라"와도 같은 단어이다. 하지만 KJV는 거기서 이미 '기뻐하라'가 나왔으니 또 '기뻐하라'일 것 같지는 않아서 작별인사를 선택한 것 같다.

이건 역사적인 근거도 아까 계 4:11보다는 더 갖추고 있다. KJV 이전의 틴데일, 그레이트, 비숍이 다 farewell이었다.
심지어 NIV, NRSV 같은 일부 변개된 계보의 성서도 farewell이고 우리말 공동번역 성서도 아마 의역하다 보니 작별인사로 옮겼다. 그러니 이건 변개나 오역 문제가 아니다.

다만, 9절과 11절에는 perfection(온전함)이라는 말이 공통으로 나온다. 그래서 11절에서도 '기뻐하라'를 써 주면 9절과 11절이 모두 '기뻐하다'와 '온전함/온전하라'가 나와서 뭔가 호응이 이뤄진다.
그리고 11절은 어차피 live in peace.. 말 그대로 "평안히 지내라"라는 작별인사 의미가 따로 들어있기도 하다는 점 역시 참고할 사항이다. ㄲㄲㄲㄲㄲ

(1) 여담으로.. 행 23:30은 편지를 인용하는 부분의 결말부인데.. 여기서도 킹 제임스 성경만이 끝인사 farewell이 붙어 있다.
고후 13:11과 행 23:30을 보면.. KJV 번역자들은 farewell이라는 작별인사를 좀 좋아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사도행전 구절은 그냥 원문 계보의 차이라고 한다. 변개된 본문에서는 그리스어에서부터 기뻐하라고 나발이고 끝인사 자체가 빠져 있다. 그러니 고후 13:11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이런 걸 강경 영킹주의자가 발견하면 farewell과 관련하여 원어가 아니라 영킹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진리~ KJV의 우수성~ 어쩌구 하면서 얼마든지 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야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지만 그 바닥을 오래 경험해 봤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식으로 주장을 하는지 패턴을 안다.

(2) 끝으로 NIV의 경우, 1984년판 NIV 첫판은 "형제들아, good-bye"였다. 그러다가 2011년판 개정 NIV는 "형제 자매님들, 기뻐하십쇼~!"로 바뀌었다. 형제가 '형제 자매'라고 바뀌고, 저 단어를 '기뻐하라'라고 옮기는 게 요즘 번역 트렌드이기는 한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3/11/05 08:35 2023/11/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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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의 원천

우리나라엔 그 이름도 유명한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라는 출판사가 있어서 한글 킹 제임스(이하 한킹)라는 이름의 성경을 출간· 판매하고 있다. 내년이면 발간 30주년이 된다. 이 단체는 전국 각지에 '성경 침례 교회'라고 자기네 성경을 사용하는 침례 교회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성경을 번역했다면 자기네 성경을 써 줄 기존 교회· 교단을 물색하거나, 아니면 자기들이 직접 교회· 교단을 개척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네 성경을 인용해서 독자적인 내용의 책도 많이 내면서 세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그 성경 역본은 현실의 기독교계에서 쓰이지 못하고 그냥 듣보잡 군소 번역으로 전락한 채 사라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말보회는 딱 이 전략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성경은 한킹을 밀고, 이를 기반으로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를 잔뜩 출간한 것이다.

말보회는 대외적으로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고, 이 때문에 이상한 이단 소리를 들었다. 물론 순수하게 성경관 신념 때문에만 이단 소리를 들은 건 아니고, 그들 고유의 간증 상실 삽질과 흑역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진짜 중요한 논란거리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말보회에서 내놓은 한킹은 정작 같은 킹 진영 내부에서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KJV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왜 그렇냐 하면 한킹은 언뜻 보기에 KJV의 영단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듯한 표현과 어휘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허나, 한킹 측의 입장을 변호해 보자면 걔들도 할 말은 있다. 기계적인 직역을 안 했을지언정,

  • grave 무덤 // 음부 (문자적인 무덤 묫자리가 아니라 구약 시대의 지하 사후세계 자체를 나타낼 때. 낙원+지옥 통틀어)
  • 환난 (일상적인 역경 고난) // 환란 (미래의 유대인 대환란)
  • 나라 // 왕국
  • 위하여 (for sinner) // 인하여 (for sin)
  • 육체 안에 // 육신으로
  • 심지어 그리스(Greece) // 헬라(Greek) 등등

이런 걸 나름 자기 원칙대로 임의로 구분을 많이 해 놨다. 영어로는 같은 단어인데. ㅎㅎ
저런 거 말고 루시퍼, 갈보리, 이스터, 다시 채우다(창 1:28), 순교자, 말씀의 젖으로 자라라(벧전 2:2),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창 22:8).. 이런 건 한킹도 당연히 영어 KJV의 번역을 그대로 따랐다. 애초에 한킹의 존재 의의가 저런 걸 공론화하고 한국어로 반영한 거의 최초의 우리말 성경이니까 말이다.

한킹의 번역 방침 내지 스타일에 공감되지 않아서 한킹을 안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변개 오역이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어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게, 최소한 아무 이유 없이 제멋대로 의역을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영킹이 아니라 영킹의 번역 원천인 원어를 좀 참고한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점을 알면 한킹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한킹은 이름과 실체의 관계가 웹툰 '교도소 일기', (작가가 실제로는 구치소에만 갇혀 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구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사건 (실제로는 애들이 도롱뇽을 잡으러 갔다가 실종되고 살해당한 거지만)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구치소나 도롱뇽 대신 더 친숙한 교도소나 개구리를 썼다고 해서 저 타이틀이 독자를 심각하게 악의적으로 기만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타이틀이 무엇이건 간에 "범죄자가 수용되는 국립호텔은 이런 험악한 시궁창이다" 내지 "초딩 꼬마들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러 나갔다가 안타깝게 실종되고 살해당했다"라는 게 본질이고 핵심이니까 말이다.

마치 C++ 이후로 얘처럼 무식한(?) #include #define 전처리기나 다중 상속을 몽땅 구현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결코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한킹 이후의 소위 KJV 계열 역본 중에 한킹의 저런 독자적인 용어와 번역 스타일을 답습한 역본은 결코 다시 등장하지 않지 싶다.

게다가 한킹은 재판관기(사사기)처럼 일부 책 이름을 통째로 바꾸기도 했으며, 인명과 지명 표기도 ㅋㅌㅍ 음운을 첨가해서 자기 스타일로 많이 바꿨다. (스카랴, 스테판, 카나안 등)
이런 걸 한킹 말고 후대의 어느 진영이 수용하겠는가? 말보회는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서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역사에 한 획을 긋긴 했다.

글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영킹은 변개되지 않은 원문에서 번역을 가장 잘한 역본 정도가 아니다. 원어 원문 성경보다도 더 뛰어난 계시이다~!!! 히브리어 그리스어의 중의성을 해소하고, 원어에 없던 미세한 뜻 변별과 운율까지 다 살려 줬다~!!" 이런 급이라면 한킹의 번역 스타일은 의미가 다소 퇴색할 것이다.

이 정도로 영킹을 극도로 지지하는 영어 순수주의자(?)가 보기에는 한킹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나온 흠정역조차도 순수(?) 영킹 번역이 아니며 100% 만족스럽지 못하다. 2020년대에 출간된 표준역은 그런 순수주의자 성향을 더 반영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 대신 다른 쪽으로 논란거리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한쪽에서는 상대방을 보고 "맨날 수시로 잠수함 패치되어 온 성경이 무슨 놈의 최종 권위냐"라고 까고, 거기서는 이쪽을 향해 "한번 주어진 영감이 쭉 전수되고 보존되는 거지, 번역본에 무슨 영감이 이중 삼중으로 임하냐" 이러면서 맞받아치는 일이 되풀이된다.

이건 내가 보기엔 그냥 영감이나 최종 권위라는 단어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정의가 달라서 벌어지는 말장난이다. 자기네가 번역한 우리말 성경에다가 차마 최종 권위라는 말은 못 붙이니, 거기서도 그래도 이게 perfect 하고 온전 완전하다면서 같은 용도의 다른 수식어를 붙일 뿐..
내 공식 입장은 "아무나 이겨라"다. -_-;; 그럼 다음으로 최종 권위라는 개념에 더 자세히 얘기해 보고자 한다.

2. 최종 권위

옛날에.. 과학계에서는 1킬로그램의 정의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을 그대로 1kg이라고 한다" 이러던 시절이 있었다.

진짜배기 원기는 세계에 단 하나만 존재해야 했고, 워낙 귀하신 몸이니 함부로 여기저기 움직이고 활약할 수 없었다. 평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화학적으로 극도로 안정한 금고 안에 짱박혀 있는다.
취급 부주의로 인해서 원기에 이물질이 묻거나 생채기가 생겼다간 얘의 질량이 0.1 마이크로그램이나마 달라지게 되고, 그랬다간 전세계 과학계에서 참조하는 킬로그램의 정의가 달라져 버릴 테니 말이다... 그러면 정밀 실험의 결과값이 달라질 것이고, 같은 금의 거래 가격이 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원기를 아주 정교하게 복제한 레플리카가 수십, 수백 개 만들어져서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다.
세계 각국엔 자기들의 표준 과학 연구원에 상당하는 기관이 있고, 걔들은 그 레플리카를 기준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저울, 무게추의 품질을 측정하고 실험의 정확도를 판정해 왔다.

그리고 그 기관에서는 수 년 간격으로 그 레플리카 원기가 질량이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오리지날' 원기와 대조해서 보정· 시정 조치를 취했다.
지금이야 1kg의 정의가 플랑크 상수 어쩌구 하면서 어렵긴 하지만 자연 실험으로 재현 가능한 객관적인 방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게 옛날 일이 됐다. 허나, SI 단위 중에서 질량 단위가 원기 의존 정의를 제일 늦게 벗어났다. 이 질량이라는 게 생각보다 난해하고 오묘한 물리량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의 권위라는 것을 말할 때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 우리가 영어알못이고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KJV만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건.. 영킹이 바로 저 "오리지날 킬로그램 원기"와 같다는 차원에서이다.

평소에 일상적으로 영킹 읽어서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성경은 지금도 계속 교열하느라 난리인 반면, 영어 성경 본문은 불변 고정된 지 400년이 넘었다.
한국어 성경들을 교열 보고 비교할 때 기준이 영킹인 거다. 이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영킹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보회에서 말하는 "자기네 한킹이 최종 권위"라는 건.. 실제로 개인이 읽고 묵상하고 교회에서 낭독하고 설교하고 믿고 실천하는 그런 권위라는 얘기이다. 실생활에서 다른 저울과 무게추를 판정할 때 쓰이는 레플리카 원기가 킹왕짱이라는 말과 같다. 뭐, 그냥 최종 권위도 아니고 '믿음과 실행에서의 최종 권위'라고 말하니 그쪽 논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허나 오리지날 원기가 평소에 맨날 금고에 짱박혀 있는다고 해서 아무 짝에 쓸모없는 무용지물인 게 아니고, 레플리카들이 오리지날 대비 믿을 게 못 되고 아무 권위가 없는 게 절대 아니다. 각자 역할과 쓸모가 있을 뿐이다.
kg원기의 경우, 저런 물리적인 여건의 한계가 있는 거고, 영어 성경의 경우 언어 장벽으로 인한 접근성 한계가 있는 거지.
그래서 내가 양측이 생각하는 '최종 권위'의 정의가 서로 다른 거라고 진단한 것이다.

C 코드로 비유하자면
const BIBLE my_final_authority = 한킹;
이 아니라

BIBLE *const my_final_authority = &한킹;
인 거라고 생각하자. =_=;; (가리키는 위치만 불변이고 거기에 들어있는 값이 바뀌어도 무관)
그러고 보니 Java는 키워드의 이름부터가 const가 아니라 final이긴 하다. 그리고 '값 변경 불가'뿐만 아니라 '더 상속 불가, 오버라이드 불가' 같은 다양한 봉인 용도로 이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 ㄲㄲㄲㄲㄲㄲ

이상이다.
본인은 20여 년 전에 흠정역을 통해 처음으로 KJV 유일주의에 입문했다.
그러나 짬이 좀 찬 지금은 흠정역 쪽의 약점도 그럭저럭 파악해서 알고 있고, 반대로 한킹이 더 잘 번역한 부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특히 한킹은 지금까지 출간된 우리말 성경들 중에 서문이 제일 고퀄-_-인 것 같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읽어보면 그야말로 피가 끓을 것 같다. 영적 전쟁에서 성경이란 게 어떤 존재이며 아군과 적군이 무엇인지를 딱 칼같이 정의한 뒤, 이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한 이유, 목적, 배경, 번역 방법론과 기대되는 효과를 일목요연하게.. 논문에 가까운 스타일로 잘 써 놓았기 때문이다.

첫 시작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했는데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뒤, 우리나라 킹 진영은 너무 찢어져 있다. -_-;;
너도 나도 성경 번역하겠다고 나서서 인구 1억도 안 되는 고립어인 한국어에 영킹을 번역했다는 역본이 과장 좀 보태면 10종 가까이 난립해 있다. (군소 마이너까지 포함해서)
물론 역본이 수백 종에 달하는 영어 성경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영어는 세계에서의 인지도가 한국어 따위와 비교를 불허하는 넘사벽이니 처지가 다르다.

이렇게 성경 역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더 나은 성경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냥 분열과 혼란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0년, 50년 뒤에 우리나라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KJV 계열 역본 원조라 할 수 있는 말보회 한킹을 다시 살펴보니 감회가 새롭다. ㄲㄲㄲㄲ 다음 시간에는 한킹의 특이한 번역 내지 표현에 대해 조금 논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11/02 08:35 2023/11/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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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륙의 위험성

비행기는 높게 날고 있는 중이 아니라 다 와서 착륙 직전이 됐다고 해도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때가 더 위험하다. 아무리 속도를 줄이고 줄였다 해도 지상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굉장한 고속이며, 착륙 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연료 누출과 지면 마찰로 인해서 화재도 생각보다 잘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행기 조종 시뮬레이터를 짜끄레기 수준으로나마 만져 봤을 때 말이다. 자동차와 다른 모든 특성이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느껴졌었다.
자동차와 달리 양발 페달을 다 쓰고 그것도 페달의 아래쪽(발뒤꿈치)과 위쪽(발가락)도 구분해서 밟고..
상승 하강하거나 좌우로 선회할 때 러더(페달), 조종간(핸들), 엔진 출력 레버(변속기??) 세 개를 아주 절묘하게 같이 움직여 줘야 하고..

단발 경비행기이다 보니, 조종간을 놓고 있으면 기체가 프로펠러 돌아가는 방향의 반대로 roll이 걸린다. 쉽게 말해 옆으로 뒤집힌다. 2발 이상부터는 이런 현상이 없겠지..
자동 변속기 차량이 D에서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 저절로 나아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랄까?

그리고 기억에 남는 점이 있었다. 착륙을 앞두고 기체가 고도가 낮고 속도가 낮아져 있으면.. 눈에 띄게 자세 제어가 잘 안 되고 기체가 말을 안 듣더라는 것.. 비행기가 땅에 내려가려면 위험하게도 조종 가능성도 같이 내려놓아야 된다. 착륙 실패 사고가 왜 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날씨가 어지간히 안 좋아도 그냥 이렇게 내려앉아 버리면 될 것 같은데, 때로는 왜 삽질스럽게 복행을 하고 touch & go를 하는지도 얼추 이해가 됐다.
착륙 중에 돌발상황이 발생해서 착륙을 포기하고 비행기를 뒤늦게 다시 조종해야 하는데.. 이미 때가 늦어서 조종이 안 되면 이는 사고로 이어진다.

물론, 비행기가 양력이 아닌 추력만으로 뜰 수 있을 정도로.. 무슨 로켓이나 전투기 급으로 엔진 성능이 탁월하다면야 어떤 상황에서든 걱정 없이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가득 태운 크고 무거운 여객기에서 그런 괴력을 바랄 수는 없다.

우주 발사체도 역추진이 가능하다면야 지구 대기권 재진입이 그렇게 어렵고 위험하지 않을 텐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이와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그리고 전투기는 중량 대비 엔진 추력이 탁월한 대신, 여객기가 꿈도 꿀 수 없는 전투기만의 온갖 험악한 급선회 급강하 등의 기동 훈련을 하다가 어디 삐끗 하면 추락 사고가 나곤 한다. 전투기는 그쪽만의 그런 고충이 있는 셈이다.

2. 대한 항공 631편 활주로 이탈 사고

지난 2022년 10월 24일엔 대한 항공에서 1999년 이후로 23년 만에 기체 전손 상각 급의 착륙 사고가 났다.
악천후 속에서 두 번이나 착륙에 실패했다가 간신히 내려앉긴 했는데, 이전의 착륙 시도 때 랜딩기어의 브레이크가 망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착륙 후에 제대로 제동을 못 걸어서 활주로를 이탈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인명 피해는 전무했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사고 기체는 1998년에 도입된 노후 기종으로, 2022년 말에 내구연한 경과로 인해 어차피 퇴역 예정이었다고 한다. 대한 항공의 입장에서는 사고로 인한 손해나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듯하다.

저런 사고 상황에서 승무원이 승객들을 신속하게 탈출시키기 위해 "머리 숙여!", "이쪽으로 빨리 나가 / 짐은 버려! 빨리!" 같은 고압적인 반말을 쓰는 건 법으로 보장된 정당행위이다. 승객들은 여권이라든가, 생명과 직결된 의료기기 급이 아닌 한, 거추장스러운 짐도 챙기지 말고 닥치고 비행기를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비상 착륙한 비행기는 거의 수술실 응급실이나 군대 사격· 수류탄 훈련장에 맞먹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기체가 언제 불이 나거나 폭발할지 모르는데, 자기가 꾸물대다가는 뒤의 다른 사람들까지 탈출을 못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굉장히 빡센 안전 규정이 적용되며 승무원의 권한도 매우 커진다.

무전에서는 효율을 위해 존칭 생략하고, 반말까지는 아니어도 '-했음, -바람' 음음체로 말을 최대한 짧게 뚝뚝 끊는다.
하물며 저런 상황에서는 반말을 써야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 빨리 파악하고 말귀가 더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음절수가 짧아져서 경제적인 건 덤이고 말이다.

아울러, 여객기에서 착륙을 앞두고서 테이블을 접고 벨트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굳이 창문도 다 열라고(정확히는 창문 덮개) 승무원들이 지시하는 이유는.. 만약에 사고가 났을 때 밖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 과거의 유사 사고들

에어프랑스 358편(2005), 그리고 대한 항공 2033편(1994)은 악천후 속에서 착륙 착지는 했지만, 그 뒤 뭔가 삐끗 해서 활주로를 이탈해서 사고가 났다. 비록 탑승자들은 일부 경상만 입고 전원 생존했지만, 기체는 불까지 나면서 박살 났다.
요게 저 대한 항공 631편과 비슷한 형태의 사고이다. 이러니 비행기는 단순히 땅에만 내려앉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는 안전을 100% 장담할 수 없는가 보다.

대한 항공 801편(괌, 1997)이라든가 그리고 아시아나 항공 214편(샌프란시스코, 2013)은 저 두 사고보다 인지도가 더 높은데, 얘들은 착륙 위치를 잘못 계산해서 난 사고이다. 즉, 땅에 제대로 내려앉지 못한 채 사고가 난 것이다.
대한 항공 801의 경우는 착륙 사고치고는 사상자가 굉장히 많이 발생해서 더욱 끔찍한 비극이 됐으며, 사실은 착륙 사고로 넘어가기도 전 단계인 추락 사고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추락 → 착륙 → 활주로 이탈"의 순인 듯..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불가항적 천재지변이 아니라 조종사 과실로 214편 착륙 사고를 낸 것에 대한 징계 명목으로.. 국토교통부로부터 샌프란시스코 노선 영업을 45일 동안 정지 당했었다. 원래는 90일이었는데 어째어째 이의 제기하고 읍소해서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그 정지가 실제 집행된 건 6년이 넘게 지난 2020년 3월부터 4월 사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차피 항공업이 몽땅 궤멸 당하던 시국이었기 때문에 징계로 인한 추가적인 영업 손실은 별로 없었다. >_<

4. 1980년, 대한 항공 015편 착륙 사고

사실, 대한 항공은 두 차례의(1978년 902편, 1983년 007편) 소련 미사일 격추 사건 때문에 덜 부각될 뿐이지, 그 중간의 1980년 11월에 015편이 김포 공항에서 착륙 중에 자체적인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 아시아나 214편 사고와 아주 비슷하게, 다 와서 활주로보다 먼저 착지해 버린(언더슛) 것이다. 이게 대한 항공이 대형 747기를 날려먹은 최초의 사고이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신속하게 탈출했지만 이때에도 기체에는 화재가 발생했다. 2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들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탈출해서 생존했지만, 2층에 있던 일부 승객은 연기에 질식해서 기내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이때 조종사(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들은 생존했고 뻔히 탈출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불타는 기내에서 자결에 가까운 산화? 순직을 선택했다. 이건 우리나라의 항공 사건· 사고 역사를 통틀어 정말 유일한 초유의 사례이다.

다른 승객들을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화마에 휩싸인 것도 아니고,
어느 의로운 전투기 조종사처럼 민가를 덮치지 않으려고 사출을 거부하고 기체를 끝까지 조종한 것도 아니고.. 모든 상황이 끝난 조종실에서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이분들, 연기에 질식해서 의식을 잃어 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ㅠㅠㅠ

저 때는 군사, 해운, 항공 같은 여러 전문직에서 저런 식으로 "전투에서 이기든지 죽든지",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 "이 한 몸 죽어서 속죄한다" 같은 관념이 아직까지 강하게 남아 있었다. 특히 여객기 조종사는 군 출신이 많았을 테니까..
기장의 이름은 '양 창모'였다. 비슷한 시기 1976년 몬트리올에서 한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 '양 정모'와 이름이 비슷하다.

5. 저 시절 여객기 파일럿 출신의 목사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되긴 했지만 말씀 보존 학회의 설립자 이 송오 목사(1938-2022)가..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려 70년대에 그 낡은 구닥다리 여객기인 보잉 707의 조종을 배운 마지막 세대였고, 그 시절 최첨단 기종이던 747을 새로 배운 파일럿이었다고 한다. 그의 개인 간증이 말보회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 보기)

저 때는 우리나라는 외화 절약, 불온사상 침투 방지, 주변에 온통 적성국가(중국 소련. 일본은 이념이 아닌 국민정서상 적성-_-)..;; 이런 명분으로 인해 일반 서민의 외국 여행이 매우 심하게 제약이 걸려 있었다.
유학, 이민, 비즈니스, 대회· 행사 참가, 친지 방문 같은 뚜렷한(?) 목적 없이, 단순 배낭여행 신혼여행 목적으로는 아예 여권을 만들 수 없었다. 일반 서민은 일등석 티켓을 끊을 돈이 있어도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없고 한국을 뜰 수 없었다.

신혼여행은 당연히 부산, 강원도 정도나 다녀오면 평타이고 제주도가 지금의 동남아 같은 급.. 아니면 새나라 자동차 택시 타고 서울 남산이나 난지도 투어만으로도 감지덕지였을 정도였다.

그 까마득하던 시절에 무려 국제선 대형 여객기 조종사라는 건 정말 초 엘리트 중의 엘리트 전문직이었다. 연봉이 도대체 얼마였겠냐;; 747 국제선 기장급이면.. 내가 알기로 30여 년 전 1990년대에 이미 억대였다.
그랬는데 저 사람은 목회와 신학에 꽂혀서 대한항공 직장을 그만두고 1981년경에 홀연히 신학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되고.. 킹 제임스 성경과 피터 럭크만에 미치고 꽂혀서 인생 행로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쉽게 말해 저 사람은 1978년의 902편 피격 사고(707), 1980년의 015편 착륙 사고(747) 당시의 조종사들과 정확하게 같은 연배라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시간대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면서 현타가 온다.;; (새로운 정보가 내가 이미 알던 정보와 연결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
당연히 대한항공 여객기들이 도색도 지금 같은 하늘색으로 바뀌기 전의 까마득한 옛날이다. (since 1983~84)

그 초창기엔 그는 열정과 추진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다. 이 성경과 이 신학 노선은 내 인생을 다 바쳐서 몰두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 실천했던 것이다. 이건 그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은 대한 항공에서 무슨 스튜어디스로 일하다가 결혼 후에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것 같은 평범한 케이스가 전혀 아니다.

물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한 뒤부터 차차 초심을 잃어 간 것, 공과 과를 모두 분명하게 남긴 것은 후세가 평가할 일이다.
근본적으로 이분은 뭔가 성도들을 세워 주고 인자함과 강인함을 모두 갖춘 목자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군 장교 같은 다혈질이 지나치게 강했다. =_=;;
교리 노선이나 진리 때문에 분리되는 것보다 괜히 쓸데없이 적을 만들고 동지들을 떠나가게 만드는 게 컸던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송오 목사는 "주님께서 성경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신다!!"라는 명제가 골수에 박힌 나머지, 기관의 이름도 그대로 '말씀 보존 학회'라고 지었다.
그의 그런 본심 대신, 완전 미치광이 이단 인격파탄자 같은 면모만 대외적으로 자꾸 부각된 것이 참 안타깝다. 천성이 교활하고 위선적이거나 사악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한킹 신자건, 흠정역 신자건.. 밖에서 대충 보면 다 똑같이 킹 제임스 이단-_-;;일 뿐이다. 부디 2세대들은 서로 자기가 잘났네 진영간에 최소한 인격모독 비방은 하지 말고, 이 나라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는 데 각자의 방법으로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 참고로 이 송오 목사의 사인은 췌장암으로, 과거 스티브 잡스의 사인과 동일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15 08:35 2023/07/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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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 그리고 '창조 과학회'(창조회)라는 기독교 단체가 있다.
둘 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무식하게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열성 지지자와 골수 안티를 모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말보회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하면서 기성 교계와 신학계를 몽땅 적으로 만들었다.
창조회는 젊은 지구/우주를 주장하면서 기성 고생물학, 지질학, 천문학계와 몽땅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에는 명백하게 옳은 것· 건전한 것, 선한 것이 많이 있다. 먼저 말보회의 경우, 독특한 성경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 교회 교파로서의 노선은 평범한 침례교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다. 유아세례 부정, 주의 만찬과 침례, 스스로 자기 믿음 고백 후 물침례는 본인이 보기에 성경적으로 100% 아멘이고 옳다.
  • 창조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6일 창조(창세기)와 1000년 통치(계시록)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다.
  • 피터 럭크만 스타일로 성경을 성경으로 나누어 풀이하는 세대주의. 일곱 부활, 일곱 침례 등등~
  • 성경의 문자적 해석도 잡고 세상 과학과도 충돌하지 않는 솔루션인 간극 재창조
  •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바로 하늘나라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칼같이 단호한 신약 은혜의 복음 교리. 거리 설교
  • 구원의 영원한 보장, 전천년주의 환란 전 휴거
  • 예수님의 문자적인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 교회와 유대인의 구분
  • 아기· 어린이의 특례 구원 (죽으면 무조건 다 하늘로 간다~! 그러니 유아세례 같은 거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옳소! 아멘~!)
  •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님.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의 구분. '미리 아심'이 곧 답정너 예정은 아님.
  • 비성경적인 이상한 은사주의 거부, 이상한 종교 통합 거부
  • 본질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각종 절기나 예배 절차 폐지

우와, 써 놓고 보니 아이템이 적지 않다. 말보회의 이런 교리 노선은.. 성경에도 논리와 체계라는 게 있다는 걸 내게 알려 줬다. 이런 걸 한국에 처음으로 알리고 이슈화하고 퍼뜨린 공로는 응당 말보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체계가 있으니 교회가 일부 인간들의 병신같은 짓 때문에 욕 먹더라도 내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오프라인으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회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내가 이 진영에 대해서 유익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말보회하고는 분야와 방식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경을 설화나 비유 짬뽕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한다는 것, 성경이 레알 사실임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두 진영은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는 관점이 별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 따위를 믿지 않고 24시간 6일 창조를 믿는 건 동일하지만, 말보회는 그보다 위에 더 오래된 이전 세상이 있었다는 걸 믿는다. 창조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으면서 말보회나 럭크만은 싫어하는 사람, 간극 재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창조회도 지지하는 편이다.

자, 좋은 점 얘기를 이 정도로 했으니 그 다음으로는 내가 말보회와 창조회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 동의하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 털어놓도록 하겠다.

내가 쟤들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저 두 진영은 공통으로..
발전이 없이 너무 정체돼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이다.

뭔가 마이너한 걸 주장하고 자기 반대편을 비판하고 공격하긴 하는데.. 반대편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알지도 못하고 너무 무식한 방식으로, 케케묵은 쌍팔년도 방식과 저질 음모론을 고수하며 공격한다. 그러니 털리고 비웃음만 당한다.
까놓고 말해 럭크만과 같은 실력은(원어 원문 및 KJV 변증..) 없으면서 럭크만의 싸움닭 기질만 잔뜩 배워 왔다.

가령, 로마 가톨릭이 화체설, 교황, 마리아 평생 동정, 연옥 등 비성경적인 교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비판하는 거랑.. 아예 교황이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세계의 기독교/개신교회를 말살시키고 세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선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근거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와야 된다.

그리고 쟤들은 흠정역이 자기네 한킹을 도둑질 해서 만든 짝퉁 성경이라는 욕과 비방을 도대체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려나 모르겠다. 흠정역은 지난 20여 년의 노력 끝에 무려 6판이 나왔고, 맞춤법과 각종 표현이 정말 많이 정제되었다. 번역 스타일이나 신념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예배용 성경으로서 영어 KJV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역본 중에서는 흠정역의 완성도를 따라갈 물건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한킹을 도둑질한 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쟤들은 1세대 설립자도 소천했는데.. 맨날 네거티브만 할 게 아니라 자기네 한킹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걸 팩트와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그럴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

이미 다 늙은 1세대 목회자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말보회의 후계자뻘 되는 젊은 목회자들..?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흠정역 진영과 교류(!!!)도 하면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팩트와 데이터를 흡수하고, 국내의 킹진영이 다같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창조회는 말이다.. 설마 아직도 1990년대의 긴가민가한 노아의 방주 항해 실험이나 1970년대에 바다에서 공룡(사경룡) 사체 끌어올린 사진을 우려먹고 있는 걸까..?? 아직도 “진화론에서는 인류의 먼 조상이 원숭이라고 주장한대~ ㅋㅋㅋㅋㅋ” 이러는 걸까?
세상 학계는 1990년대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의 내용조차도 일부는 부정되고 수정돼서 지금과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제발 "이게 다 창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세상 학계의 텃새 음모" 핑계 따위 대지 말길..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아도 철저하게 과학만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쟤들은 과학 쪽으로 무리수를 둘 게 아니라 지질 시대가 이전 세상의 흔적이라는 것만 알면 연구 방향이 훨씬 더 깔끔해질 텐데 아쉽다.

요컨대 말보회나 창조회가 잘하는 것도 있고 병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병크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옳은 방향까지 다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로 내 노선은 말보회와 90~95% 정도는 싱크로가 되는 것 같다. 차이점은 얼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한킹보다는 흠정역을 더 선호
  • 세대주의와 재창조 간극까지는 믿지만 말보회만치 무조건 "마태복음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용이 아님~!!"을 너무 강박관념적으로 따지지 않음
  • 구약 유대인들이 율법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단정은 짓지 않음
  • 기성 교단을 쟤들만치 무작정 다 적대시하지는 않음. 하나님이 기성 교회들도 사용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것 인정.

말씀 보존 학회,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세대주의니 럭크만이니 하는 물을 먹은 진영은 딤후 2:15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라"의 덕후· 신봉자이다. 여기서 '나누다'라는 말은 공유 share이 아니라 분별· 구분· 분할한다는 뜻인 divide이다. 성경이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방법론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 용어들을 기존 일반 교단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걸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고(영혼몸 삼분법),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구분한다.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한다. 말씀에 대해 시대와 적용 대상을 구분한다.
침례도 다 같은 침례가 아니어서 일곱 종류나 있고, 부활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복음조차 왕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으로 나뉜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이런 성경 공부 방식에 동의하면서 그 유익을 인정한다. 이 패러다임 덕분에 여러 성경 난제들이 풀렸고 불신자에게 복음 변증이 가능해졌고 황당한 이단 교리들을 명쾌하게 걸러내게 됐다.
개나 소나 다 비유로 영해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대상에게는 문자적인 건데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 교훈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게 훨씬 더 논리적이고 깔끔하고 합리적이지 않냐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성경이 무슨 과학 교재나 논문 같은 스타일로 100% 딱딱 분석 가능한 책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혼이나 영이나 그렇게까지 다른 개념이 아니고 심지어 ‘혼=그냥 사람’, ‘영=그냥 마음’처럼 쓰이기도 했다.

마 19:23-24 같은 구절에서는 예수님조차 대놓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별 구분 없이 섞어 쓰셨다. 제아무리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니 왕국 복음이니 하지만, 바로 그 책의 중반부에서 웬 뜬금없이 신약 교회에 대한 예언과 지침이 나오기도 한다.

또, 워딩으로 가면.. 그렇게도 단어 단위로 성경을 보면서 우리말 KJV 번역본들은 it came to pass는 왜 번역을 안/못 했을까? word와 oracle의 차이는 무엇일까? damnation과 condemnation의 차이는?

그러니 구분할 건 구분하더라도 거기에만 묻혀서 시야를 너무 좁히지 말고, 성경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시각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자체가 잘못된 비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게도 칼같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분석 가능했으면 이미 수백 년 전에 분석이 다 끝났고, 기독교계에 이렇게 다양하게 찢어진 교파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여담

1.
난 먼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초보였던 시절에 베이직 다음으로 파스칼 언어를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파스칼은 베이직과 C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C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것처럼 본인은 KJV를 모르던 시절에 NIV를 읽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움이 됐다. 그때는 제네시스, 엑소더스, 리비티쿠스 등, 성경의 각종 영어 명칭과 atonement, passover 같은 신학 용어들부터 전혀 까맣게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게다가 NIV의 변개(!!) 구절들이 내 신앙에 대놓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내가 성경을 깊고 긴밀하게 많이 알던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컸을 수밖에 없다.

2.
나는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이다 보니 세벌식 자판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390과 최종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킹 제임스 진영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한킹과 흠정역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도 받는다. 아유~ 이런 것도 통합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세벌식 글쇠배열이야 이미 둘을 절충한 3-2012 같은 솔루션이 있으니.. 세벌식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어서 적당한 것을 채택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킹과 흠정역은.. 이건 종교 쪽이어서 통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한킹은 다른 어휘나 표현을 떠나서.. TR을 번역했지 영어 KJV를 번역하지 않은 표현을 도대체 언제까지 그냥 놔 두려나 궁금하다.

3.
말보회 한킹은 '환난'과 '환란'을 자의로 구분해서 번역했구나. 굉장히 신기하다.
이 바닥에서는 저런 식으로 비공식적인 용어 구분이 나도는 게 있다. 가령, '성경'과 '성서'.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성서들에서는 이 구절이 '(구원부터 받은 뒤에) 말씀의 젖 먹으면서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개되었습니다." 같은 식이다.

사실 벧전 2:2 같은 경우는 애초에 번역의 차이가 아니지..
번역의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아예 원문 오리진, 쏘스가 다르고, 둘 다 옳을 수 없다는 걸 먼저 논해야 된다.
행 12:4 '이스터/유월절' 이런 게 동일한 그리스어 '파스카'에 대한 번역의 차이이고 '원어'를 논할 일이다. 그 반면, 벧전 2:2는 '원문'의 차이이다.

4.
일본은 뭔가 학술적인 건 어지간한 건 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이다. 그런데 쟤네들 내부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이슈가 거론된 적이 없는지? 일본의 말보회 같은 단체는 없는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일본어 역본이 민간 차원에서 혹시 존재하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8 08:36 2022/08/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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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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