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삼성맨들은 다루고 지내는지 모르겠다만.. 우리나라에는 아래아한글과 MS 워드 다음으로 훈민정음이라는 워드 프로세서가 있다.
아래아한글이 대한민국의 도스용 워드 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하기 전,
도스 시절엔 보석글, 하나-_-, 신사임당, 심지어 21세기 같은 전설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이런 건 컴퓨터 old timer라면 다들 기억할 것이다.
허나 Windows로 가면 어떨까? 윈도우용 아래아한글이 출시되기 전인 1990년대 초중반엔 아리랑, 글사랑, 파피루스 등 다양한 윈도우 3.x용 국산 워드 프로세서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삼성 전자에서 개발한 훈민정음도 그 중 하나였다.
아리랑: IT 벤처 핸디소프트에서 개발. 사장이 아마 카이스트 출신이었을 거다.
글사랑: (김사랑이 아님 ㄲㄲㄲ) 글꼴 개발로 유명한 휴먼컴퓨터에서 개발. 문방사우라는 DTP 프로그램을 개발한 기술도 있는 곳이니까..
파피루스: 한메 타자 교사와 한메 한글을 만든 한메소프트에서 개발. 나름 한글 처리 쪽 기술이 있는 업체이다.
훈민정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야, 우리나라에 그런 제품도 있었어요?” / “네, 있었습니다.”
물론 얘네들은 윈도우 95와 윈도우용 아래아한글 3.0의 등장을 전후하여 제대로 망하고 진정한 흑역사로 전락했다.. -_-;; 훈민정음을 제외하면 32비트 버전조차 개발되지 못했지 싶다.
심지어 금성(현 LG) 전자도 '윈워드'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는 걸 아시는가? WinWord.. MS 워드의 실행 파일 이름과 동일하다. 하긴, 동일 회사에서 도스용으로 개발한 '하나 워드 프로세서'는, 학교와 관공서에서 정식 채택된 덕분에, 후진 기능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살아남았다만, 윈워드는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특히 경쟁사의 제품인 훈민정음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_-;;
자, 그럼 훈민정음 워드 프로세서 얘기를 더 하겠다.
얘는 나름 1992년부터 개발돼 왔고, 윈도우용 아래아한글 3.0이 나올 무렵엔 4.0대 버전으로 올라갔다.
본인이 가장 가깝게 접한 버전은 바로 4.5이다.
삼성에서 후원이라도 했는지, 1996년도 PC 경진대회 지역(경상북도) 예선 참가자들에게 훈민정음 패키지가 확장팩(각종 글꼴, 클립아트들)까지 통째로 경품 차원에서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득템~
이때는 잘 알다시피 시기적으로 윈도우 95 과도기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16비트용과 32비트용으로 따로 배포되었다. 기능은 거의 동일하지만 16비트용은 4.5 버전이었고, 32비트용은 95라고 불렸다.
아래아한글은 국내 최초+유일의 Win32s 기반 32비트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었고 MS Word는 연결 고리 없이 95부터 곧바로 32비트로 넘어가 버렸다면, 훈민정음은 나름 16비트와 32비트를 따로 만든 셈. 한 소스에서 별 잡음 없이 두 에디션을 만들 정도로 프로그램을 잘 짰던가 보다.
여담이지만, MS가 역사상 동일 버전의 제품을 16비트와 32비트로 따로 만든 것은 비주얼 베이직 4가 유일했지 싶다. 이는 이 자리에서 자세한 내역을 다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비주얼 베이직의 제품 성격의 특이성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주얼 C++은 그냥 32비트용 4.0과 16비트용 1.52를 묶어서 배포했으니 동일 버전 제품은 아니니까 말이다.
또 덧붙이자면, MS는 Win32s를 만들어 놓고는 정작 자신들은 Win32s 기반 프로그램을 (전혀) 만들지 않았었다.
MS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중에 MFC 사용하는 건 극소수인 것과 비슷한 맥락. -_-;;
지속적인 버전업이 되지 못하고 곧 망해 버린 여타 마이너 국산 워드 프로세서들과는 달리, 훈민정음은 삼성 기반이라는 탄탄한 돈줄 덕분에, 상업성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꽤 오래 살아남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 건희 회장이 훈민정음에 애착을 꽤 두고 있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자기 회사가 한글 처리 기술 및 워드 프로세서 개발 기술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특별한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는데.
IMF 시절, 아래아한글이 MS에게 잡아먹혀서 ㅈ망할 뻔 했을 때(아래아한글 개발 중단 및 소스 인계-_-를 조건으로 MS로부터 자금 투자), 평소 한컴 및 아래아한글의 행보를 비판해 온 사람들은 차라리 이 기회에 아래아한글이 완전히 망해 버리고 훈민정음이 1인자로 등극했어야 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동작 방식이 아래아한글과는 완전히 다른 워드 프로세서에 국민들이 과연 그렇게 쉽게 호응과 적응을 할 수 있었을까? -_-
훈민정음은 1990년대 말까지 정음 오피스, 어린이 훈민정음, 남북 통일 워드 프로세서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다가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나오고 또 정음 Global 같은 솔루션으로도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삼성 컴퓨터에 번들로 공급되지만 패키지 소프트웨어로도 아직까지 나오는 것 같다. 워드 프로세서의 핵심 개발 인력이 넥스소프트로 독립해 나가고, 그 중 넥셀은 지금 완전히 한컴으로 넘어갔을 텐데 아직까지 삼성 내부에 개발팀이 있기라도 한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