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서 ‘남산’은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의 경계가 모호한 단어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남산이 여러 군데 있다. 경주에도 남산이 있고 서울에도 남산이 있다. 그럼 애국가 2절 가사에 있는 남산은 특정 남산일까 아니면 보편적(?)인 남산을 가리킬까?

서울의 남산은 용산구와 중구, 정말로 서울의 정중앙에 있는 산이다. 그렇게 크거나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한때는 국가의 첩보 기관이 이 근처에 있었던지라 남산에 끌려갔다는 말은 코렁탕 같은 단어와 연관되어 무척 무서운 말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이다.

대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고 또 그렇게 크지도 않은 산이다 보니, 교통 편의를 위해 이 산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터널이 진작부터 뚫렸다. 그것이 바로 ‘남산 n호 터널’이라고 알려진 터널들이며 이때 1<=n<=3이다. ‘제n’ 대신 ‘n호’라고 번호가 붙은 게 좀 특이한 작명 컨벤션이다. 혼잡 통행료가 징수되는 터널로도 알려져 있다.

세 터널은 모두 길이가 1.3~1.6km에 달하여 한강 다리보다 길이가 길며, 간격이 좀 긴 지하철 역간 거리 정도 된다. 이들 터널이 건설되던 시절에는 광폭 터널 같은 기술은 없었기 때문에, 크고 아름다운 서울 도로를 주행하다가 겨우 2차선 나부랭이의 좁고 낡은 터널로 들어가면 좀 놀라게 된다.

가장 먼저 건설된 남산 1호 터널은 용산구 한남동에서 중구 필동을 거쳐서 명동과 종로 2가로 그대로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한남 대교와 경부 고속도로로 직결. 그야말로 강남과 종로를 잇는 핵심 교통축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왕복 2차선 터널 하나만 있다가 나중에 터널을 하나 더 건설하여 왕복 4차선이 되었다. 그래도 오늘날의 교통량을 감안하면 여전히 좁다.

남산 2호 터널은 1호 터널과는 반대 방향으로 남산을 X자로 관통한다(물론 양 터널끼리는 입체 교차하며 만나지 않음). 중구 장충동과 용산구 이태원동을 연결하는데, 북쪽 방면에서의 진입로는 큰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즉, 접근이 좀 불편하다.

2호 터널은 남산 터널들 중에 가장 길지만 4차선이 아니라 여전히 2차선이고, 유일하게 혼잡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1호와 3호가 ↖ 선형인 반면, 2호만 ↗ 선형인 것도 특징이다. 2호는 나머지 둘과는 달리 경유하는 시내버스도 전혀 없다. 2호는 아무래도 명동 같은 도심과 직접 맞닿아 있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끝으로 남산 3호 터널은 남쪽은 2호와 비슷한 용산2가동에서 시작하여 중구 회현동 내지 명동으로 간다. 북쪽으로는 서울 시청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반포 대교를 따라 고속버스 터미널, 예술의 전당(남부 순환로)과 우면산 터널까지 쭉 갈 수 있다. 1호와 비슷한 위상이며 1호 터널의 역할 분담을 위해 건설되었을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요컨대 남산 터널들 중 2호만 위상이 좀 다르다.

난 정말 21세기엔 남산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철도도 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 특히 신분당선은 강남 역에서 한남 대교와 남산 1호 터널의 선형을 따라 광화문까지 연장돼야 하는데 웬 엉뚱하게 용산으로 가게 됐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용산 미군 기지와 남산을 피하느라 강북의 선형이 굉장히 이상해졌고 1호선과 어정쩡하게 중복 노선이 되어 있다.

2호를 제외한 남산 터널들은 비록 통행료를 걷는다고 하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시설 이용료라기보다는 서울 중심부에 대한 불필요한 통과 교통의 억제가 목적이기 때문에, 차에 3명 이상만 타고 있으면 면제이다. 그리고 밤 9시 이후와 오전 7시 이전 사이에는 통행료를 걷지 않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1/08/23 19:25 2011/08/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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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08/24 18:45 # M/D Reply Permalink

    그러게요.. 남산을 통과하는 철도는 하나도 못봤고.. 차라리 남산 밑으로 통과하는 철도 좀 생겼음 좋겠네요.
    차만 다니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땅덩어리에다 도로까지도 아깝고..
    도로만 넓히기에는 이 나라 토지가 부족하죠.

    1. 사무엘 2011/08/25 07:30 # M/D Permalink

      본문에 나와 있듯이 신분당선만 딱 남산 1호 터널대로 강남과 도심을 이으면 짱입니다.
      용산 미군 기지만 아니었으면 지하철 4호선이 남산을 직선으로 이으면 됐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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