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답사기: 남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의 너무 중심에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 등산 대상에서 아오안이었던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산. 물론, 옛날 그 사대문의 안 좁디좁은 한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남쪽이라는 얘기다.
서울 남산이라 하면 케이블카와 거대한 타워가 상징이지만, 그것 말고도 남산 일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참 많이도 변해 왔다. 과거에 여기 일대는 한양 도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예 수련을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신궁'이라는 커다란 신사가 여기 기슭에 만들어졌다.

해방 후에 신사는 당연히 곧장 철거됐다. 그 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통이 들어선 1961년부터는 남산에 잘 알다시피 코렁탕 시설인 중앙정보부 청사가 들어섰다. "남산에서 왔습니다."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 지경이었대나. 이북에서 온 간첩만 벌벌 떨어야 하는데 무고한 시민들까지 떨었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잠시 설명충 기질을 발휘하자면,
남산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5년까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와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 반면 남영동 대공분실은 치안 본부, 즉 오늘날의 경찰청 관할이다.
그리고 서빙고 대공분실은 군 소속이었다. 국군 보안 사령부, 지금의 기무 사령부 관할이다.
그러니 똑같이 코렁탕을 제조하는 곳이어도 소속이 제각기 모두 달랐다.

공 병우 박사는 세벌식 글자판을 주장하다가 정부 정책을 건방지게 비판하는 죄로 1970년대에 중정 요원에게 연행되어 남산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중정과 안기부의 흑역사는 많다.
5공 시절에 김 근태, 박 종철 같은 사람이 고문을 당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며, 이 근안 역시 경찰 출신이니 여기서 활동했었다.
그럼 박통을 암살한 김 재규는? 10. 26 사태의 수사권이 아무래도 전땅크 아래의 보안 사령부에 있었던 관계로, 그는 서빙고로 끌려가서 자기 옛 부하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신사는 전부 공원(특히 안 중근 의사 기념관. 중앙 기준 10시 방향)으로 바뀌었으며, 과거의 중정/안기부 건물은 다 유스호스텔, 방재 센터 등 다른 평범한 건물로 개조됐다(11~12시 북쪽 방향). 남산 기슭은 그린벨트 지대인지라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철거를 하면 했지 더 증· 개축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김 영삼 정권 때는 조선 총독부 청사만 헐린 게 아니라 남산의 외관을 가리던 외인 아파트도 폭파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 식물원이 조성돼 있다. (5시 남쪽 방향)

그러니 지금은 과거에 비해 남산이 그나마 자연 본연의 모습을 정말 많이 되찾은 셈이다.
사실, 남산은 본격적인 산행의 대상이 되기에는 시내와 너무 가깝고, 산 높이도 너무 낮은 관계로 진작부터 관광지 내지 공원 컨셉으로 꾸며져 왔다. 그래서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전국에서 최초로 생겼다. 정상에 도달해도 "남산 무슨봉 해발 262m" 이런 표지석 같은 건 없다.
뭐, 단순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나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여기도 도보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 코스가 없는 건 아니다.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다. 교회 친구들과 함께 주일 저녁에 남산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간 적은 있었지만 거기를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으며 케이블카도 못 타 봤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운동삼아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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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회현 역에서 내려서 남산 쪽을 향해 골목길을 오르니 남산 공원 입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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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은 경치가 좋고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산이 있다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공원에는 독립 운동가 김 구와 안 중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넓은 공터는 이름부터가 '백범 광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안 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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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는 윤 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더니 여기에는 안 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자체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세련된 건물로 새로 만들어진 건 201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안 중근 의사는 뜻을 결의하면서 왼손 약지의 앞단을 절단한 행적이 워낙 임팩트가 강한지라, 안 중근 하면 그 "대한국인 손바닥" 그림이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그나마 열 손가락 중에서 제일 덜 중요한 부위이니까.
이분은 무예에만 강한 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사상적인 배경도 무척 심오했다. 처음부터 요인 암살 같은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거 정말 좋게 가지고는 씨알도 안 먹히고 동양의 평화가 이뤄질 수가 없어 보이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생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당시의 상황, 고인이 사용한 권총 등 어지간한 자료는 다 전시돼 있다.
사소한 사실이다만, 안 의사는 교수형을 당해서 순국했다. 총살을 당한 건 윤 봉길이니 혼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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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울 타워(N타워?)가 보이는 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옆에는 가림막을 치고 성벽을 다시 만드는지 뭔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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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이런 식으로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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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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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 도착. 적당한 아침에 도착하니 타워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청 많았다.
맨 먼저 봉수대가 보이기에 등산 인증샷은 봉수대에서 저렇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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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를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서 기념 촬영. 그리고 건너편 봉우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이 있어서 또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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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동쪽으로 버스들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했다. 남산은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포장된 차도가 있긴 하지만 일단 관광버스나 노선버스 전용이다. 아무나 자가용을 끌고 올라갈 수는 없다. 차라리 엔진 없는 자전거는 허용된다.
어쨌든, 이 차도에서 또 도보 등산로가 갈라져 나가는 곳이 있어서 본인은 응당 그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역시 남산에도 돌계단뿐만 아니라 더 자연 친화적인(?) 등산로가 있었다.

하산을 계속하니 등산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합류했으며, 본인은 결국 국립 극장이 있는 쪽으로 나와서 장충단로라는 큰길에 이르렀다. 그리고 길 바로 건너편에는 '한국 자유 총연맹' 본부가 있었다. 남산 공원에는 김 구 동상이 있더니, 자유 총연맹 내부에는 이 승만 동상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동대입구 지하철역까지는 좀 멀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버스 승강장을 찾지 못해서 결국 그 거리를 다 걸어서 갔다. 3· 1 운동 기념탑, 유 관순 열사 동상, 제2 남산 터널을 몽땅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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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국민대, 성균관대), 안산(연세대)처럼 어째 대학교 구경과 함께 등산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동국대 차례가 됐다.

단, 이번 산행에서는 남산을 동서 위주로 횡단하다 보니 남북으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구경하지 못했다.
남쪽의 식물원이라든가 북쪽의 남산골 공원, 타임캡슐 광장 같은 건 못 봤다.
금수저를 위한 초등학교라고 옛날부터 유명하던 '리라 초등학교'도 남산 북쪽 기슭에 있다. 대성동 초등학교만큼이나 특이한 학교인 걸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8 19:32 2016/07/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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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서 ‘남산’은 보통명사와 고유명사의 경계가 모호한 단어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남산이 여러 군데 있다. 경주에도 남산이 있고 서울에도 남산이 있다. 그럼 애국가 2절 가사에 있는 남산은 특정 남산일까 아니면 보편적(?)인 남산을 가리킬까?

서울의 남산은 용산구와 중구, 정말로 서울의 정중앙에 있는 산이다. 그렇게 크거나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한때는 국가의 첩보 기관이 이 근처에 있었던지라 남산에 끌려갔다는 말은 코렁탕 같은 단어와 연관되어 무척 무서운 말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이다.

대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고 또 그렇게 크지도 않은 산이다 보니, 교통 편의를 위해 이 산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터널이 진작부터 뚫렸다. 그것이 바로 ‘남산 n호 터널’이라고 알려진 터널들이며 이때 1<=n<=3이다. ‘제n’ 대신 ‘n호’라고 번호가 붙은 게 좀 특이한 작명 컨벤션이다. 혼잡 통행료가 징수되는 터널로도 알려져 있다.

세 터널은 모두 길이가 1.3~1.6km에 달하여 한강 다리보다 길이가 길며, 간격이 좀 긴 지하철 역간 거리 정도 된다. 이들 터널이 건설되던 시절에는 광폭 터널 같은 기술은 없었기 때문에, 크고 아름다운 서울 도로를 주행하다가 겨우 2차선 나부랭이의 좁고 낡은 터널로 들어가면 좀 놀라게 된다.

가장 먼저 건설된 남산 1호 터널은 용산구 한남동에서 중구 필동을 거쳐서 명동과 종로 2가로 그대로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한남 대교와 경부 고속도로로 직결. 그야말로 강남과 종로를 잇는 핵심 교통축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왕복 2차선 터널 하나만 있다가 나중에 터널을 하나 더 건설하여 왕복 4차선이 되었다. 그래도 오늘날의 교통량을 감안하면 여전히 좁다.

남산 2호 터널은 1호 터널과는 반대 방향으로 남산을 X자로 관통한다(물론 양 터널끼리는 입체 교차하며 만나지 않음). 중구 장충동과 용산구 이태원동을 연결하는데, 북쪽 방면에서의 진입로는 큰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즉, 접근이 좀 불편하다.

2호 터널은 남산 터널들 중에 가장 길지만 4차선이 아니라 여전히 2차선이고, 유일하게 혼잡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1호와 3호가 ↖ 선형인 반면, 2호만 ↗ 선형인 것도 특징이다. 2호는 나머지 둘과는 달리 경유하는 시내버스도 전혀 없다. 2호는 아무래도 명동 같은 도심과 직접 맞닿아 있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끝으로 남산 3호 터널은 남쪽은 2호와 비슷한 용산2가동에서 시작하여 중구 회현동 내지 명동으로 간다. 북쪽으로는 서울 시청으로 가고, 남쪽으로는 반포 대교를 따라 고속버스 터미널, 예술의 전당(남부 순환로)과 우면산 터널까지 쭉 갈 수 있다. 1호와 비슷한 위상이며 1호 터널의 역할 분담을 위해 건설되었을 거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요컨대 남산 터널들 중 2호만 위상이 좀 다르다.

난 정말 21세기엔 남산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철도도 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 특히 신분당선은 강남 역에서 한남 대교와 남산 1호 터널의 선형을 따라 광화문까지 연장돼야 하는데 웬 엉뚱하게 용산으로 가게 됐다고 하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용산 미군 기지와 남산을 피하느라 강북의 선형이 굉장히 이상해졌고 1호선과 어정쩡하게 중복 노선이 되어 있다.

2호를 제외한 남산 터널들은 비록 통행료를 걷는다고 하지만 고속도로 통행료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시설 이용료라기보다는 서울 중심부에 대한 불필요한 통과 교통의 억제가 목적이기 때문에, 차에 3명 이상만 타고 있으면 면제이다. 그리고 밤 9시 이후와 오전 7시 이전 사이에는 통행료를 걷지 않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1/08/23 19:25 2011/08/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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