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등학교 때 컴퓨터를 처음으로 접했고,
중학교 때 PC 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과 이메일,
대학교 때 휴대전화와 개인 홈페이지를 순서대로 접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순서가 아주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고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은 무려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뒤, 2012년 11월에야 장만하게 되었다. 대수로는 제5대째이다.
물론 이것은 어지간한 여타 사람들에 비해서는 시기적으로 굉~장히 엄청나게 늦게 도입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을 안 쓴 이유는 딱히 없었다.
이게 일부 분야에서 매우 편리한 물건인 건 사실이지만, 난 이미 PC로 필요한 정보 처리와 프로그래밍은 다 하고 있으며 이미 쓰는 전화기를 만족스럽게 쓰고 있고, 스마트폰이 그저 남들이 다 쓴다는 군중 심리만으로 그 가격을 투자하면서까지 쓸 가치가 있는 새로운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른 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또한 스마트폰은 기존 PC와 본질적으로 거의 동일한 기능이 좀 더 작은 기계에서 돌아간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 과거에 컴의 성능이 16비트에서 32비트로, 단색에서 트루컬러로 바뀌던 것처럼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정도의 신기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자를 빨리 못 입력하는 게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찌감치 컴퓨터를 썼던 경험이, 지금은 오히려 유행에 대한 반응을 둔감하게 만든 셈이다.
그러다가 기존 전화기가 고장이 나면서 스마트폰을 도입하게 됐다. 시대가 시대인데 피처폰을 굳이 수리까지 하면서 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스마트폰이 특별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면모는 다음과 같다.
- SNS 앱 연동
- 지도 + 길/장소 찾기
- 어디서나 부담없는 크기와 무게의 기기로 무선 인터넷 접속. 노트북은 WIFI에 붙는 것만 가능하지만 폰은 자기가 직접 연결을 할 수 있다.
- 유용성뿐만 아니라 그와는 별개로 일단 품위와 간지
태생적인 한계이겠으나, 피처폰이든 스마트폰이든 모바일 기기는 문자 입력이 제일 불편한 건 변함없다. 제조사의 특성상 입력 방식이 천지인밖에 없다. 골수 나랏글 유저인 본인에게 천지인은 직관적이지 않아 너무 불편하고, 두벌식 쿼티는 각각의 버튼이 너무 작아서 오타가 잘 난다.
쿼티라 해도 그 작은 기기에서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하는 타자 따위는 기대할 수 없으며, 검지-엄지의 독수리 타법의 부활이다. 역시 문자 입력은 PC를 따를 기기가 없음을 느낀다.
카카오톡을 깔고 나니 “오오, 사무엘 님 드디어 카톡 들어오셨어요?” 인사가 막 들어오는데.. 타자가 불편해서 카톡질은 오래 못 하겠다. 카톡이 있으니 PC뿐만 아니라 폰으로도 인스턴트 메신저가 하나 더 생긴 거나 다름없는 반면,. 나의 폰타는 PC에서의 세벌식 타속에 비해 고작 1/4~1/3밖에 안 된다. ㄲㄲ
또한, 쿼티 배열을 쓴다 하더라도 나오는 배열은 1~3단으로 국한이지 4단은 없다. 그래서 모바일에서는 숫자와 기호를 섞어 쓰는 것조차도 매우 심하게 불편해진다. 인터넷 URL 내부에 무심코 들어있는 숫자가 유난히도 입력하기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지는 건 PC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경험이다.
내가 예전에도 잠시 글로 썼듯이, 스마트폰에서는 두벌식 세벌식 논쟁도 PC에서와 같은 의미는 사실상 없다. 마치 유니코드 앞에서 조합형 완성형 논쟁이 김이 확 빠지고 의미가 없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어차피 열 손가락으로 제대로 된 타자를 할 수가 없고 장타도, 모아치기도 필요 없으며, 세벌식은커녕 두벌식을 집어넣기에도 화면이 부족한 공간에서 굳이 세벌식에 연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은 두벌식이고 세벌식이고를 떠나서, 두벌 세벌 논쟁의 주 무대이던 타자기 식 글쇠배열 패러다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어떻게든 글쇠를 구겨 넣어서 스마트폰에서도 “도깨비불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원론에 충실한 한글 입력 방식이 좀 있긴 해야 할 것 같다. 신세벌식 같은 글쇠 중첩은 확실히 이런 데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직업병이다 보니 문자 입력 얘기가 또 길어져 버렸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굉장히 아쉬워진 것 중 하나는 역시나 배터리 용량이다. 하루를 놔 두니까 진짜 배터리의 절반이 싹 소모되어 버린다. 매일 충전 안 하면 못 견딜 것 같다.
과거의 피처폰은 송· 수신 안 하고 가만히 놔 두면 이틀을 놔 둬도 세 칸이 그대로 유지되었었다.
지난 가을에 회사 야유회로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 본인은 전화기를 완전히 충전시켜 놓은 채로 그대로 가져서 2박 3일을 잘 버티고 돌아왔다. 별도의 충전기를 챙겨 가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가서 딱히 전화질을 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쓰는 다른 사람들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숙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틈만 나면 자기 전화기를 충전하려고 방의 콘센트마다 난리가 났었다. 멀티탭을 챙겨 다녀야 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스마트폰 세상에 끼어든 이상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난 휴대전화는 모름지기 통화 품질 좋고 배터리 오래 가고, 충격에 강하고 튼튼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통화 품질은 모르겠지만 고가의 컴퓨터와 디스플레이와 네트워크 장비를 내장하느라 내구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배터리 많이 먹는 방향으로 변화한 게 틀림없으며, 그건 나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아무튼, 난생 처음으로 써 보는 스마트폰은 내 삶의 양상도 앞으로 적지 않게 바꿔 놓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앱을 본격적으로 만드는 날이 과연 올지는 모르겠다. 현실은 PC에서 윈도우 8 메트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
내가 비록 PC는 맥북을 갖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 계열이 선택되었다. 요즘 IT 트렌드를 잘은 모르겠지만, 스티브 잡스 옹의 별세 이후 애플이 잡스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중이라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지인 중에는 아이폰 쓰다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안드로이드로 갈아타는 사람까지 있다.
차라리 애플 계열의 모바일 제품은 더 나중에 아이패드를 써 볼까 싶은데, 이건 언제쯤 지르게 될지 아마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ㅎㅎ
그나저나, 스마트폰을 장만한 뒤에도 KT를 사칭하는 스마트폰 교체 광고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온다.
재고 단말기들을 처분 못 해서 이 인간들이 정말 난리인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