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 내지 이에 준하는 여타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2장에서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등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며, 남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범죄· 이적 행위· 반역을 조장하거나, 다른 자유 이념과 모순을 일으키는 자유는 자유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회· 도덕 시간에 배운다.

이런 자유들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한 게 아니다. 선조들이 피흘려 쟁취한 소중하고 고귀한 이념이다(대표적으로 6· 25!). 또한 이것은 충분한 경제력과 심지어 과학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옛날에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절에는 사회 보장 제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뭐 하나 잘못 사고 쳤다간 집안이 쫄딱 망하고 처자식이나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만 수습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누가 무슨 짓을 할지 상대방을 믿을 수도 없는 긴급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모든 자유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는 명목상 미국의 사회· 정치 제도를 벤치마킹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했으나, 휴전선 너머 북한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비열한 해코지로 인해, 완전히 이상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완전 폐쇄적인 선군정치 최적화 병영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다 개방되어 있는 자유로운 국가가, 서로 인구와 경제력이 비슷하고 다른 변수가 없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간첩을 침투시키고 유언비어 퍼뜨리고 심리전을 전개하기가 쉬울 것이며, 무력 충돌이 벌어졌을 때 누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을까?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관련해서는 불가피하게 기본권을 법으로 크게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21세기에까지 국가 보안법 같은 구시대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21세기에까지 우리나라 체제를 부정하고 김씨 부자에게 이로운 짓을 하는 구시대 악인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법에 저촉되어 잡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일이 아무리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나치 및 히틀러와 관련된 매체 표현은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며, 누가 길거리에서 팔 뻗쳐서 “하일 히틀러!”만 외쳐도 잡아 가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정상적인 독일 국민 중에 그걸 보고 무슨 국민 기본권 침해라고 징징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 여기서 표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18조와 21, 22조는 개념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든다고 여겨진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표현의 자유라는 게, 사상과 종교의 자유에 동급으로 매우 중요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크리스천에게 거리 설교 같은 복음 전파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역사하는 신앙이다. 표현의 자유를 배제하고서 사상과 종교의 자유만으로 크리스천 신앙을 다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둘을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은,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의 보장이 이미 넘치도록 충분히 아주 잘 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체제에 대해 고맙게 여긴다. 지금까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내가 믿는 프로파간다를 주변에 알리거나 교회에서 거리 설교를 하면서 공권력으로부터 구금· 체포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다. 심지어 정치인들 비판도 아무 문제 없이 했다.

이 명박 정권 때부터 분야별로 온라인 검열이 강화된다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 그러나 난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난 일단 신앙과 관련된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유감을 느끼며, 그것만 보장해 준다면 심지어 독재 정권이라 해도 별로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가 너무 많아서 그걸 오· 남용 하는 부류들이 더 문제라고 난 생각한다.

북한 관련 표현이야 나라에서 하지 말라면 좀 참고 안 하면 되고, 음란물· 성인물이야 어차피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니.. 나라에서 그런 규제를 가하는 사정을 오히려 이해한다. 그런 규제가 무슨 북한 같은 수준의 검열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론들이 너무 오버를 하고 네티즌들을 막 선동했다.

글쎄, 난 이런 점에서는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의 어찌 보면 좀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난 그게 성경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난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같이 싸우겠습니다.”


그래서 특히 진보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이 말을 자기 블로그에다가도 많이 걸어 놓고, 많이 떠받드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양심적으로 저렇게는 못 하겠다.
나더러 그저 소수이고 박해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병역 거부하는 인간들, 동성애자들, 낙태 합법화, 사형 폐지론자들의 말할 권리를 위해 같이 싸우자고? 못 한다. 물론 그들은 어차피 요즘 대한민국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천으로서 그런 사람들을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해코지하는 것에야 물론 동참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죄의 가시밭길을 가다가 혼자 망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면 지적했지,
그들의 표현의 자유의 보장을 위해 싸운다거나 기도해 준다거나(?) 하는 일은 난 할 수 없다. 난 볼테르 같은 대인배가 아니다. 아니, 난 하나님보다 더 대인배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저렇게 '행동하는 양심'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도 유명하다.
물론, 정치적 무관심을 풍자하는 건전한 메시지가 핵심이며, 평소에 선을 많이 행해 놔야 내가 위급할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 정도는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사회민주당원, 노조, 유대인?
그 무엇이 됐든 아무튼 내가 신념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그룹이 먼저 쓸려 나갈 때, 내가 굳이 먼저 그들을 위해 같이 나서야 할 필요는.. 솔직히 난 못 느끼겠다.
그들이 남아 있다고 해서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의 '신앙'을 방어해 주는 데 기여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오히려 크리스천은 그런 상황에서 마 10:17-20 같은 말씀을 더 떠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글쎄, 배가 침몰한다거나 화재가 났다거나 해서 사상이고 종교고 나발이고 없이 다같이 죽게 됐을 때야 인간으로서 서로 도와야 한다. 그거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사상과 종교 자체만이 사람을 가르는 요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라면서 이런 내 생각이 앞으로 또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교리에 명백히 어긋나지 않는 범위 하에서 세상사의 참여에 굉장히 호의적이며, 각종 사회 운동이나 심지어 파업· 데모에 대해서도 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실 집회와 결사의 자유 자체가 헌법에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에 대한 이견과 논쟁은 이 세상이 어차피 제도적으로 성경대로 손쉽게 살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 같다.

끝으로, 자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 얘기를 좀 하고 글을 맺겠다.
한쪽에서는, 미국이 점점 법이 바뀌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반기독교 성향으로 가고 있다고 엄청 걱정한다.
거리설교를 했다간 잡혀 가고, 학교에 성경의 개인적인 반입이 금지되고, 교회나 신학교계에서도 이제 동성애를 당당히 반대했다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특히 흑인 대통령이 부임하면서 그런 추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그런다.

그러나 크리스천 중에서도 좌성향이 더 강한 다른 한쪽에서는, 저런 것보다는, 여전히 미국의 메이저 교회들이 저지르는 병크와 비리, 그리고 특히 정치 종교 결탁 행위만을 비판하느라 바쁘다. 그런 것들이 나라에서의 크리스천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양 극단 중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모든 면모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가 힘든 나라인 한편으로, 대형 교회들의 폐단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차이 없다는 걸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13/03/25 08:38 2013/03/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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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물 2013/03/25 18:05 # M/D Reply Permalink

    전철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전도하시는 분들, 주위에서 조용히 해 달라고 해도, 옆에 자는 사람이 있어도, 사람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도 나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더군요

    맨 위에 적힌 파란 글 처럼 남에게 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자유가 뭔지 이해 못하는 사람들 진짜 많습니다.

    1. 최재길 2013/03/25 22:19 # M/D Permalink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2. 삼각형 2013/03/25 22:54 # M/D Reply Permalink

    오랫만입니다. ^^ 저 계몽주의 사상가의 말은 한 안티크리스찬 진보성향의 블로거의 슬로건이기도 하지요. 요즘은 잠잠한 듯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로마서 13장이 답이 되겠네요.(롬 13:1~7)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절대 어떤 경우라도 정부와 싸워서는 안됩니다. 이 땅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해 이 땅의 악을 통제하고 징벌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 운동, 자유를 위한 혁명 따위가 그다지 성경적인 일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천주교나 사제단 따위가 나와서 그렇게 민주화 운동에 열열한 지지를 보냈지 신실한 개신교 목사들은 그렇게까지 지지하지 않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경찰권이라는 게 각종 작고 큰 범죄를 최대한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법 기관이이 그들의 범죄에 대해 합당한 형을 내리고 집행하기 때문에 이 땅의 죄를 사라지게까지는 못하지만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막는 역할은 충분히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각종 혁명, 시위, 쿠데타가 난무하면 이런 기본적인 치안이 깨지는건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그 증거가 아프리카나 이슬람 국가 같이 정부의 힘이 약한 곳에서는 사상적 자유 따위는 둘째 치더라도 치안이 끔직하게 안좋죠.

  3. 사무엘 2013/03/25 23:08 # M/D Reply Permalink

    삼각형: 정부가 비성경적인 행위를 강요할 경우, 그에 대해 비폭력 소극적 불순종으로 맞서거나, 아예 피신을 할 수는 있죠. 그러나 그 이상 수위로 대적하는 것은 우리까지 비성경에 대해 비성경으로 대응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공권력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는 신약 서신서들은 기독교가 박해 받던 시절에 쓰여졌다는 것, 삼각형 님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 부조리와 부정부패는 있었을지언정, 제아무리 군사 독재 장기집권(?) 대통령 하에서도 예수 믿는 데 아무 지장 없었고, 용공 이적 행위만 안 하면 생존에 필요한 자유를 행사하는 데 문제는 애시당초 전혀에 가깝게 없었습니다. 소위 민주화 운동이라는 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겠지만, 무슨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이나 6·25 참전 급으로 원론적인 자유를 쟁취했다거나 위대한 일을 해낸 건 아무리 봐도 아닙니다.

    다물: 당연한 말이니 제가 굳이 뭘 더 첨언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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