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협동체와 광동체
철도에는 잘 알다시피 궤간(케이프/협궤 1067, 스티븐슨/표준궤 1435 등)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런데 여객용 비행기에도 기체의 폭(그리고 크기도 덩달아)을 구분하는 간략한 잣대가 존재한다.
바로 협동체와 광동체.
객실에 복도가 한 줄로만 존재하는 기체는 협동체이고, 두 줄 존재하는 기체는 광동체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육상 교통수단들은 버스든 열차든 선택의 여지 없이 복도가 한 줄만 존재하는 협동체이다. 차로의 폭과 궤간의 제약에 곧장 걸리기 때문이다. 2-2가 가장 무난하고 보편적이며, 우등 고속버스나 KTX 특실 정도만이 2-1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우리나라 철도엔 2-3짜리 아주 불편하고 열악한 객차도 있긴 했는데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이다.
배야 그런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넘사벽급의 대형화가 가능하니 논외이다.
그 반면 비행기는 폭에 관한 한, 둘의 중간 위상에 속하는지라 한 줄 아니면 두 줄이라는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협동체는 2-2 또는 끽해야 3-3이 보통이다. 그러나 광동체는 2-4-2, 3-3-3, 3-4-3 등의 좌석 배치가 가능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항공 교통 시장이 커지고, 한번에 승객을 최대한 많이 태우는 비행기가 개발되어야만 했다.
허나 비행기는 무슨 열차처럼 길이를 무한정 길게 할 수 없다. 비행기를 무슨 굴절 아코디언 버스 같은 형태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체가 너무 길어지면 택싱 때 활주로의 최소 회전 반경에 걸리고 공항 격납고 같은 주기(駐機) 시설의 크기에도 부담을 끼친다.
그럼 높이는 어떻냐는 발상이 나온다.
육상 교통수단 중에는 2층 버스도 있고 국내엔 열차 중에 ITX-청춘 같은 2층 열차가 있다.
더구나 활주로 같은 공항 시설들도 위쪽은 뻥 뚫린 하늘이니, 비행기의 높이를 살짝 높이는 것은 항공역학적인 문제만 없으면 현실적으로 가장 제약이 덜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은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드디어 실제로 에어버스 A380 같은 2층 여객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옛날에는 비행기에서 2층 객실은 전좌석의 비상 탈출구 설치 요구조건을 만족할 수 없어서 이마저도 여의찮았다.
민항기에는 “비상시에는 인근의 비상구를 이용하여 기내의 모든 승객이 90초 안에 밖으로 탈출이 가능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최근의 아시아나 항공 소속 여객기의 착륙 사고(추락 사고가 아니다)를 통해서도 이 규정의 중요성이 잘 부각되어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객실이 2층이 되면 이게 쉽사리 가능해질까?
그러니 길이와 높이 다음으로 비행기의 몸집을 미묘하게 더 키우기 위해 폭이 고려되었으며, 그 결과 한 줄에 10명 정도를 실을 수 있는 광동체 여객기가 개발되었다. 비행기는 무슨 열차 수준으로 폭을 꽉 맞춰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비행기의 실질적인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날개의 폭이나 수직미익의 높이 같은 극단적인 요소이다. 그런 규격을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동체의 크기만 살짝 키운 것은(나머지는 엔진의 성능 같은 걸로 보강?) 기존 공항이나 격납고에서의 운용에 별다른 문제를 끼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역사상 최초로 상업용 양산에 성공한 ‘광동체’ 여객기는 그 이름도 유명한 보잉 747이다. 그러고 보니 인텔의 80x86 CPU만큼이나 보잉도 그냥 숫자만으로 제품명을 정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경쟁사인 에어버스는 앞에A자라도 붙이는데.. (에어버스가 그럼 AMD인 거냐!)
보잉 747은 에어버스 A340, A380과 더불어 엔진이 4개 달린 얼마 안 되는 비행기이기도 하다. (외형을 보면, 날개 하나에 팬이 2개 달려서 총 4개. 단, 엔진들이 양 날개에 균일한 간격과 위치에 놓여 있지는 않은 듯.)
자동차 엔진도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2000cc만으로 30년 전의 3000cc 이상급 엔진의 출력을 내는데,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
물론 A380은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에 응당 4엔진이다. 보잉 747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2. A380
747은 1등석-비즈니스석을 없애고 전부 이코노미로 개조할 경우 520여 명이 탈 수 있다. 일본은 실제로 그렇게 개조를 한 뒤 747을 국내선에다 굴리고 있다.
일본은 신칸센 열차를 5분 간격으로 지하철처럼 굴리고, 지하철도 출퇴근 시간엔 좌석을 접고 모든 승객을 입석으로 만들어서 굴리기까지 하는 콩나물 시루 같은 나라이다. 비행기도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닐 듯.
그런데 A380은 800에서 무려 1000명까지도 탑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진짜 KTX 수준이다. 그 인원을 태우고 선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아음속으로 하늘을 난다니..;; 747은 조종석과 특실만 2층이지만, A380은 아까도 말했듯이 실제 2층 객실이 있다.
3. An-225 화물기
그럼, A380보다 더 큰 비행기가 설마 있을까?
항덕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안토노프(Antonov) An-225라는 수송기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이다.
이건 크고 아름다운 걸 추구했던 구소련 시절의 산물이다. 냉전 시절에 차르 봄베라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핵무기를 만들어 실험용으로 터뜨린 동네도 저기이다.
An-225는 1988년에 단 한 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명물이다.
저 정도 크기면 탱크, 우주왕복선 등.. 무거운 기계류들을 못 실을 게 없었을 것이다. 정작 미국은 거대한 자기네 우주왕복선을 747 개조 수송기로 날랐는데 말이다.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 An-255는 엔진이 무려 6개가 달려 있다!
활주로에 끼치는 무게 부담을 줄이려고 랜딩기어는 7열로 늘어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행기가 한번 착륙하고 나면 어지간한 공항의 활주로는 열과 충격 때문에 남아나질 못했다고 한다. 이륙하는 데도 3km가 훨씬 넘는 긴 활주거리가 필요하다.
저게 우리나라에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An-225급의 비행기가 무사히 뜨고 내릴 수 있는 공항은 국내에서는 인천 공항의 4km짜리 제3활주로밖에 없다고 한다. 원래 이 광활한 활주로는 A380을 모시려고 만들어진 신설 활주로이다.
4. 비행기 조종 면허
자동차의 운전 면허 체계는 최소한의 유동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형차 면허는 소형차 면허도 덩달아 포함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면허는 차체의 크기뿐만 아니라 차량의 성격(개인용/영업용),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승차 인원수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1종 보통 면허로 승합차는 15인승까지밖에 못 몰지만, 트럭은 대형 버스급의 11톤까지도 몰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은 그렇지 않다. 소형이든 대형이든 무조건 단일 기종만 몰 수 있다. 747로 면허를 딴 파일럿은 오로지 747만 조종할 수 있지, 비슷한 급의 광동체 여객기라고 해서 787이나 767 같은 건 조종할 수 없다. 그렇게 조종 면허를 상호 호환시키기에는 비행기의 내부 구조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영세/저가 항공사들은 보유 기종을 무조건 보잉 737 같은 식으로 통일하는 게 필수이다. 다양한 기종이 존재하면, 골치 아파지는 게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민항기 시장에 신규 업체가 진출하려면 “자사의 기체는 보잉 xxx 면허와 완전 호환” 이런 식으로 선전을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과거에 에어버스가 처음 끼고 들어올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