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ife 생명 or 삶

life라는 영어 단어는 잘 알다시피 생명· 목숨뿐만 아니라 삶· 인생이라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치 heart의 의미가 심장에서 더 나아가 마음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동사 live vs 명사 life"는 한국어로 치면 "그리다 vs 그림"과 비슷한 호응 관계인데, 같은 맥락에서 "살다 vs 삶, 일생, (한)살이"가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배추흰나비의 한살이"처럼 '한살이'라는 단어도 있었는데 요즘도 쓰이나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 보니 아예 곤충의 일생 변태 과정만을 일컫는 전문 용어처럼 기재돼 있네..

생명을 갖고 있는 동안 누리게 되는 것이 삶· 인생이니 둘은 분명 별개의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동일 개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용어임이 틀림없다.
본인의 언어 직관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목숨· 생명은 '하나'뿐이라고 말하고(개체, 개수),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기간, 횟수).

기독교는 사후 세계와 혼의 불멸을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니면 지옥에서 시작되는 life after death라는 말도 있다. life가 오로지 이 세상에서의 생물학적 생명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런 용어가 모순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잠 4:23 issues of life를 좀 의학· 생물학적인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지금 흠정역 성경 번역처럼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 들어온다. 그러나 인문· 사회학적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인생의 온갖 얘깃거리 이슈들'...;;이라는 뜻도 들어오게 된다. 뭐, 그래도 저건 다의어 관계이지, 무슨 동물 염소와 원소 염소 같은 동음이의어까지는 아니겠다.

약 4:14에서 말하는 '한낱 수증기나 다름없는 너희 life'도 그런 중의성을 지닌다. 일단 저기 문맥은 "실컷 잘 먹고 잘 살아도 죽어 버리면 말짱 헛일이다"라는 마 16:26, 눅 12:19-20과 비슷하다. 혼과 직접 대응하는 건 생명이지만, 정말 수증기· 이슬처럼 짧고 덧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상으로는 인생이 적합해 보인다.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거듭나고 새로운 life를 얻는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찬송가 쌍이 존재한다.
하나는 그 유명한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다. 얘는 life를 생명· 목숨이라고 봤다. 작사자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의 작사자이기도 한 이 호운이며.. 작곡자는 오빠 생각, 제헌절 노래 등의 작곡자이고 포항제철 초대 회장과는 동명이인인 박 태준이다.

다른 하나는 “주님 품에 새 생활 하네”(John W. Peterson)이다. 얘는 아까 전자와 달리 외국곡 번역인데, 가사 내용을 보니 어째 life의 대응으로 '생활'이 쓰였다. 두 곡 다 과거의 죄악된 삶을 청산했다는 말과, "옛 것은 지나고 새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 인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전자는 관점이 관점이어서 멜로디가 좀 웅장하고 감격스럽고 씩씩한 느낌인 반면, 후자는 그 뒤의 지속적인 생활(지구력)을 강조해서 그런지 평안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2. 순우리말

뭍(육지 land), 얼개(structure), 고장(기계 고장 말고, 지역 region), 연모(도구), 까닭(이유), 미련하다, 미쁘다...
내가 초딩 꼬맹이였을 때 책에서 봤던 단어들인데, 21세기에 태어난 애들은 저런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안 쓰이고 사라지는 순우리말이 좀 더 있는 것 같다. 멸종 위기 동물처럼..

한국어에서 '짜장'은 짜장면의 재료가 아니라.. 원래 지금으로 치면 'indeed, 레알'에 가까운 부사였다! {... 그것은 짜장 그 손에 넘는 짓이니, “아 웬 궐련은 이래.” 하고 슬쩍 눙치며, “성냥 있겠나?” 일부러 불까지 거 대게 하였다.} 김 유정의 소설 <만무방>(1935) 중에서..
하지만 이제 짜장은 '자장면'의 현실화 표기로 바뀌었다. 부사 '짜장'은 '바이'(전혀 never)만큼이나 사어가 된 셈이다.

'물매'는... 내 기억이 맞다면 정말 의외로.. 정석 책에서 한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로 끝.. 다시는 출판물에서 저 단어를 접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일본 책 베꼈다는 논란이 있는 교재에서 만약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래도 번역 로컬라이징은 최소한의 신경을 썼다는 뜻이 되겠다.

참고로 '거리'도 순우리말은 street이고 한자어는 distance이다. 뭐, '거리'는 멸종 위기는 아니다.
'구조'는 structure과 rescue 모두 한자어임.
한편, '지레', '도르래' 같은 물리 장치는 어째 한자어 없이 순우리말이 정착해 있다.

3. 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말 중에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가 있다.
이 말의 진짜 의미가 대외적으로 심하게 왜곡됐다는 식으로 얘기가 많은데.. 이 글에서는 그런 뉘앙스 말고 단어와 관련된 얘기만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위의 말의 영어 원문은 1% inspiration과 99% perspiration이라고 한다. 즉, 1%가 99%보다 먼저 언급되며, 후자도 직접적인 의미는 노오오력이라기보다는 땀이다. (뭐,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또한, 한국어 번역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두 단어가 -spiration이라는 라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땀이라 하면 sweat밖에 모르는 본인 같은 사람에게 perspiration은 좀 생소한 단어이다.

말이 나온 김에 관련 썰을 좀 더 풀자면..

  • : ‘포카리스웨트’는 마치 애니콜처럼 영어권 본토인이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명이라고 한다. 맑고 시원한 이온 음료의 이름에다가 하필 더럽고 찝찝한 느낌이 드는 땀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말이다. 교회의 이름이 누룩 교회,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이름이 버그 소프트, 블루스크린 시스템즈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ㅡ,.ㅡ;;
  • 영감: 내가 지금까지 들은 영감이라는 단어를 들은 곳은 (1) 저 에디슨의 격언, (2)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우사미짱이 눈깔 모양이 변하면서 쿠마키치를 범죄 용의자로 잡아내는 영감, 그리고 (3) 딤후 3:16이 말하는 성경의 영감 정도이다. ㄲㄲㄲㄲ

4. 영어 어휘

다음으로, 영어에서 좀 므흣하게 느끼는 면모를 개인적으로 발견한 걸 더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학창 시절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toward와 towards의 차이는 과연 뭘까? 신기하다. 하는 일은 거의 같고 어감상의 차이만 존재하며, 비슷한 예로는 upstair / upstairs 쌍도 있다! 마치 한국어에서 도트와 닷이 나뉘는 것 같은 현상이 영어에서 저런 게 아닐까 싶다.
  • gold는 그 자체가 금속 명사와 금색/금 재질이라는 형용사가 되지만, golden이라는 말이 또 따로 있다. silver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황금도끼 고전 게임이 golden이라는 단어를 크게 대중화시켰다. 방향에도 east+ern, north+ern 같은 형용사 바리에이션 쌍이 존재하는 게 인상적이다.
  • behalf, sake 같은 단어는 for the sake of, for one's sake 이런 식으로만 쓰이는 게 한국어 문법 용어로 표현하자면 영어의 의존명사나 다름없는 물건으로 보인다.
  • shall은 뭐.. should/will과 비교했을 때 고어체로 치부되면서 거의 죽어가는 게 확실하고.. 현재로서는 shall I/we 같은 의문문에서나 쓰이는 불완전동사처럼 돼 간다.
  • behind는 '바하인드'라고 읽히는 경우가 굉장히 잦은 것 같은데 사전에 딱히 반영돼 있지는 않아 보인다. 정관사 the는 굳이 모음이 아니어도 '더'가 아닌 '디'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다른 언어를 공부해 보면 영어처럼 정관사가 더/디 바리에이션 정도밖에 없는 건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양반이란 걸 알 수 있다.

5. company

영어로 '기업, 회사'를 나타내는 단어 company는 "빵(pany) 을 함께 나누다(com-)"라는 어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알 만한 분들은 아실 것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이스트 인디아 컴퍼니 등..

쉽게 말해 저 com은..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코뮤니스트, 베트'콩',
경성 '콤'그룹(일제 말기 때 만들어졌던 공산주의 성향 항일 비밀결사 단체) 할 때 그 '콤'과도 같은 어원이다.

난 컴퍼니의 어원이 저렇다는 것을 먼 옛날에 오 성식 생활영어 교재에서 처음 접했다.
'빵'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저분이 원래 외대 포르투갈어 전공 출신이기도 하니 어원이 더욱 쉽게 눈에 들어왔지 싶다.
지금처럼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으로 넘쳐나지 않던 옛날엔 그런 소소한 팁이나 유래 잡학, 외국 경험담도 희귀했었다.

상표명인 '꼼빠니아'는 동일 어원의 단어를 스페인어식으로 읽은 것인데, 회사뿐만 아니라 영어로 companion에 가까운 '동반자'라는 뜻도 있다. 저 상표가 의도한 의미는 '동반자'이다.

성경에 행 2:42,46을 보면 회사가 아니라 초대 교회 지체들이 company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게 한 빵을 떼어서 같이 나눠 먹었다고 나온다. 본문의 주변 문맥을 보면, 이때는 공교롭게도 교회도 일면 사회· 공산주의스럽게 재산을 전부 한데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이건 체제 전복 혁명 과업, 인민 해방 이러는 흉악한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건이었다.

아무튼, 인류 역사에서 회사· 기업이라는 조직의 첫 시작과 취지· 이념은 교회나 공산주의 만만찮게 "함께 빵을 나누는 조직"이었다. ㅎㅎ 한국어의 '식구'와 비슷한 개념이다.

6.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구분하지 않는 것

  • give vs 줘/내놔: 강도가 피해자를 털 때는 "돈 내놔"라고 하지, "돈 줘"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전자는 더 적극적으로 강압적으로 빼앗겠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 wear vs 입다 쓰다 신다 끼다 착용하다: 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한국어로는 다 똑같지만 영어로는 먹는 독 poison과 동물에게 물려서 주입된 독 venom을 구분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화상을 입어도 불에 데이는 burn과 물에 데이는 scald를 구분해서 표현한다.

7. 외래어

집에서 바깥과의 경계가 벽이 아닌 난간으로 구성돼 있고, 장판이 아닌 타일이 깔려 있고 집안이라기보다는 반쯤 바깥인 그 공간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베란다와 발코니가 정말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는 것 같다. 원래는 둘은 어묵과 오뎅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념을 가리키는데 말이다. 발코니가 더 영어에 충실한 단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베란다가 더 자주 들었고 더 친숙하다.

하긴, 가방· 담배· 구두조차도 원래는 외래어라는 게 놀랍기 그지없다. 껌은 영어 어원이 분명하니 외래어라는 인식이 있지만, 비슷한 단어인 빵은 외래어라는 인식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외래어라는 것도 의외로 별것 아니고 정하기 나름인 개념일 뿐인 건지도 모르겠다.

8. 틀리기 쉬운, 혹은 틀린 채로 굳어져 버린 외래어 표기

  • algorithm: 어쩌다가 '-듬'이 '-즘'이라고 바뀌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음악 용어 리듬을... 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 basic: 원어 발음엔 Z 소리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스펠링 그대로 '-식'이 맞는데 현실에서는 '-직'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 message, sausage: 스펠링이 A여서 좀 혼동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만.. '-세-'가 절대 아니고 '-시-'가 맞다. 메시지, 소시지.
  • super-: 원어 발음엔 반모음이 들어있지 않다. 슈퍼마켓, 슈퍼맨..이 아니라 원래는 그냥 수퍼마켓, 수퍼맨이 맞는데 저건 흠..
    비슷한 예로 비젼이 아니라 비전, 캡쳐가 아니라 캡처, 쥬스가 아니라 주스(juice), 죠스가 아니라 조스(jaws)이다.

자음이 ㅈ 소리로 바뀌는 구개음화라는 건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일본어는 더해서 TR 소리조차 츄리닝 츄레라 같은 식으로 바뀌어 왔다.
쿵 퓨리에서 히틀러가 "전화기 내놔" 이럴 때 give me the phone을 "더 폰"이 아니라 "저(ze!!) 폰"이라고 발음하던 게 생각난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0/05/20 08:35 2020/05/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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