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이, 현금, 베리칩

옛날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사무 자동화(OA)라는 말이 등장하고 재택 근무, 그리고 종이 없는 사무실이 대세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2020년대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기업의 분위기가 그 정도로 파격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또한 많은 서류와 문건들이 전산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와 별개로 종이는 여전히 건재하며, 소모가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한다.

다만, 그런 종이 말고 현금은 옛날에 비해 확실히 보기 힘들어진 것 같다. 카드로도 모자라서 스마트폰으로 금전 거래가 곧장 되니 평소에 아예 지갑조차 갖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런 신분증과 카드 따위가 궁극적으로는 신체 내부에 통째로 이식될 것이고, 그것이 짐승의 수 666에 이마의 표 베리칩이 될 것이고 어쩌구...는 이미 1980년대 정보화 시대 운운할 때부터 일각에서 많이 떠들던 사항이었다. 바코드 음모론하고 같이 덩달아서 말이다.

글쎄, 저것들이 정말로 신체에까지 들어갈까? 난 단정적으로 예측하지는 못하겠지만 좀 회의적이다.
물론 난 과거에 "블로그가 있는데 굳이 SNS가 필요할까? 디지털 카메라를 쓰면 되지 왜 휴대전화에다가 어설프게 카메라를 달아?" 이랬을 정도로 극도로 고지식한 사람이기 때문에 미래를 보는 안목은 별로 없다. 그러니 내 예측이 딱히 믿을 건 못 되겠지만, 난 겨우 저런 게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게 실제로 등장할 가능성도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2. 삐삐와 팩스

난 지금은 주류에서 밀려난 1990년대의 과도기적 문명의 이기(?)들 중에 삐삐와 팩시밀리는 제대로 접한 적이 없다.
삐삐는 그 당시에도 좀 노는 애들(?)은 10대 나이에도 썼던 것 같은데 본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물건이었다.

팩스는 그 시절에 직장 생활을 안 했으면 더욱 접할 일이 없고.. 요즘은 스캐너, 프린터, 복사기 복합기가 많지만 그 시절에 사무용 복합기에는 프린터와 팩스 복합기도 응당 포함돼 있었다. 아래아한글 도스용에는 문서를 팩스 발송용으로 인쇄하는 기능이 전화번호부 기능과 연계하여 존재했었다.

일본에서는 가정에도 팩스가 많이 보급돼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서 어디로 팩스를 보내려면 동사무소 같은 데라도 가야 했다. 요즘이야 이메일로 pdf를 보내면 끝이지만.. 전화선 기반의 올드 아날로그 레거시인 팩스도 마치 모스 부호 전신· 전보만큼이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고 있다.

3. 과거의 문명의 이기

(1) 요즘은 군대 내무반에서조차 에어컨이 설치된다고 하지만, 본인은 학교 교실과 기숙사 수준에서 딱히 에어컨 구경을 못 하고 학창 시절을 마쳤다. 교실 천장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던 천장 설치형 선풍기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다만, 혼자서 대중교통을 활발히 이용한 것은 21세기의 대학교 입학 이후이다. 버스와 열차, 지하철 따위에는 모두 에어컨이 장착되어 있었다.

(2) 대학교 기숙사의 경우, 내가 딱 졸업하고 난 뒤 이듬해부터 조금씩 에어컨이 설치됐다고 들었다. 그리고 10Mbps이던 네트워크 속도가 연구실부터 100으로 증속됐는데, 이 역시 기숙사에는 본인이 졸업한 뒤부터 소급 적용되었다.

(3) 본인은 컬러 레이저 프린터라는 걸 가정에서 실물로 보는 날이 올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 않았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레이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기계들이 얼마나 비쌌던가? 레이저 프린터, CD writer 따위.. 그랬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 이것들이 경이로울 정도로 가격이 내려가고 흔한 물건이 됐다.

4.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공간의 확장

21세기에 들어서면서..

  • 유니코드 문자 영역은 16비트 공간이 부족해져서 대략 21비트 남짓한 크기의 확장 평면이 등장했다. 확장 평면 영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문자는 한자와 이모지이다.
  • 컴퓨터 메모리는 4GB라는 32비트 공간이 부족해졌고 64비트 CPU로 물갈이됐다.
  • 인터넷 주소는 역시 IPv4라는 약 40억 개에 달하는 32비트 공간이 부족해져서 이를 대체하는 128비트짜리 IPv6가 등장했다. 하지만 IPv6는 등장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PC에서는 보급이 더디며(그냥 공유기로 기존 주소를 유동적으로 쪼개서 쓰는 편법..), 모바일에서나 주로 쓰이는 중이다.

IPv6의 도입은 마치 유니코드의 도입만큼이나 매우 fundamental한 변화이며, 15년쯤 전의 x64 CPU와 비슷한 물건처럼 느껴진다. IPv6의 지원을 위해 재래식 소켓 API에서 각종 구조체나 함수가 바뀐 부분들은 마치 64비트 지원을 위해 PE 실행 파일 포맷의 각종 필드가 확장된 것, Windows API가 일부 확장된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님하의 브라우저는 HTML5를 모두 지원합니까?" 테스트 사이트가 있는 것처럼 "님하의 컴퓨터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IPv6을 지원합니까?" 테스트 사이트도 있다.

IPv4 시절엔 주소를 구성하는 숫자를 무조건 10진법으로 적었던 반면, IPv6에서는 그런 것 없고 16진법으로 적는다.;; 그런데 원래 포트 번호를 구분할 때 쓰던 콜론을 왜 주소 번호의 구분자에다가 도입해서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약간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사람이 직접 취급하는 번호인 자동차 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도 공간이 부족해서 난리이다. 자동차 번호의 경우, 자가용 승용차에 지역 표기가 생략되면서 공간이 더욱 부족해졌는데, 결국 앞자리 번호가 3자리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휴대전화 번호는 일명 국번이라고 불렸던 앞자리 번호가 진작부터 4자리였지만, 접두사가 010으로 몽땅 통합되면서 공간이 더욱 부족해져 있다.

5. 인터넷 속도와 동영상의 화질 향상

오늘날은 컴퓨터의 속도가 1990년대만치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은 무선화 후에도 무슨 약을 빨고 이렇게 속도가 사기적으로 빨라져 왔는지 경악할 지경이다. 물론 이런 속도는 로컬 말단에 있는 컴퓨터의 CPU, 램, 디스크의 속도도 받쳐 준 덕분에 실현 가능해진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요즘 노트북들은 광학 드라이브를 기본 장착하지 않고 있는데, 심지어 유선 이더넷 단자조차 생략하는 추세이다. 그냥 무선 와이파이만으로 충분하다고.. 요즘 승용차들이 스페어 타이어를 생략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 같다.

가로 해상도가 1000을 넘어가는 고화질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날이 올 줄 감히 상상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요즘은 해상도만 올라간 게 아니라 초당 프레임 수까지 모니터의 주사율에 근접하는 60hz에 달하는 동영상도 올라오고 있는데.. 화면이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게 곧바로 티가 난다. 심리적으로 좋은 인상을 준다.

사운드에다 비유하면 해상도가 올라가는 건 단위 시간당 sampling rate가 올라가는 것이고, 프레임 수가 올라가는 건 샘플링의 정밀도 자체가 겨우 8비트이던 것이 16비트나 그 이상으로 올라간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옛날에 아날로그 필름 기반의 영화는 100여 년 전에 정해졌던 초당 24프레임을 벗어난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난 들어 본 적이 없다.

6. 켈빈의 빗나간 추측들

오늘날 '켈빈 경(남작?)'이라고 불리는 윌리엄 톰슨(1824-1907)은 전기와 열역학 쪽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영국의 수리물리학자이다. 절대온도의 단위인 켈빈(K)이 바로 이 사람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본명이 아닌 작위의 이름이 단위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훗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오류 내지 단견으로 판명된 비관적인(?) 어록을 유난히 많이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마 제일 유명한 건 "공기보다 무거우면서 하늘을 나는 기계라는 건 절대로 존재 불가능하다"이지 싶은데, 알고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다.

왕년에 맬서스라는 사람이 인류가 앞으로 식량 부족에 허덕일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켈빈 경은 아예 인류가 산소 부족으로 인해 멸망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이제 나올 게 다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실험 측정값의 소수점 아래를 다듬는 보정밖에 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산소 부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어록들은 딱 20세기 초에 비행기가 발명되고 양자역학이란 게 태동하면서 전부 버로우 타게 됐다. 마치 생물학이 분자생물학이란 게 등장하면서.. 예전처럼 생물들 생태를 관찰하고 종류 분류나 하던 시절하고는 완전히 딴판의 학문으로 변모했듯이 말이다.

나중에 비행기나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 대해서도 발전 전망과 활용 가능성에 대해 굉장한 단견(..)을 남긴 유명인사들이 등장했지만 켈빈은 그런 것까지 보지는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그런 것 관련 어록은 없다.
아, 비행기의 경우, 아까 같은 존재 가능성 말고.. 그 다음으로 "그게 군사용으로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 같은 거 말이다.

그렇게 단견을 남긴 사람들도 그 시절에는 다 왕창 똑똑하고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켈빈은 여느 과학자 이상으로 유난히도 "내가 나루토를 보고 있는데 느낀 게...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스러운 포스가 느껴진다.;; =_=;;

7. 창작물

지금까지는 인류가 이룩한 무시무시한 기술 문명에 대한 회고와 찬사 위주로 글을 썼는데, 그럼 다음으로 그 기술을 기반으로 인류가 만들어 낸 각종 문화 컨텐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다. 영화, 게임, 음반 같은 것 말이다.
과학 기술에 대해 이제 나올 거 다 나왔다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돌았던 것만큼이나, 일각에서는 문화 컨텐츠에 대해서도 그 이상으로 이제 나올 것 다 나왔다는 회의론을 제기한다.

본인은 그 관점에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동의한다.
1990년대, 그리고 길어야 2000년대까지가 뭔가 중흥기였고, 그때 이후로는 분야 불문하고 이렇다 할 명작이란 게 나오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냥 기존 명작 히트작의 리메이크만 할 뿐이다.

게임은 딱 세기말에 나왔던 스타(RTS), 둠과 퀘이크(FPS)를 능가할 작품은 나올 것 같지 않고 이젠 나올 수도 없어 보인다. 그 장르 자체가 많이 쇠락했으며, 고인물 썩은물이 됐다.

SEGA, id, 블리자드 등 어느 개발사들을 살펴봐도 8-90년대를 풍미했던 왕년의 스타 개발자가 2010년대 이후까지 계속해서 스타인 경우는 없다. 특히 요즘 블리자드가 이렇게도 많이 망가지고 몰락할 줄은 몰랐고 개인적으로 놀랐다.
이 업계는 그만큼 기술의 상향 평준화 속도와 컨텐츠의 소모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가히 개발자의 무덤이 된 것 같다. 이 교착 상태를 어찌 돌파할지 게임 개발사의 경영자들의 고민이 클 것 같다.

앞으로 타이타닉, 라이온 킹,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급의 명작 영화가 또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여명의 눈동자, 태조 왕 건 같은 명작 드라마가 또 나올 수 있을까?
특별히 우리나라는 2000년대가 국산 영화의 중흥기였다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일반 음반은 잘 모르겠지만 CCM 분야는 딱 90년대가 중흥기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1990년대가 완전 리즈 시절이었고(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면, 1800년대 말~1900년대 초에 유럽이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빅토리아 시대니, 벨 에포크, 스팀펑크 세계관이 하는 말이 나돌았는데..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00년대 말~2000년대 초에 대해서도 비슷한 향수와 회상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약간 옛날인 1980년대에 대한 회상은 이미 ‘쿵 퓨리’가 너무 병맛스럽게 해 놓았고 말이다.

8. 미래에 대한 불가지론

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직접 겪었던 사건들 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생활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아서 never be the same again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것은 다음 셋이라고 본다.

  • IMF(1997~98): 정리해고, 구조조정, 노숙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9· 11 테러(2001): 온통 장밋빛 꿈으로 가득하던 21세기가 이렇게 시작될 줄 누가 예상했겠나? 그 뒤 이라크 전쟁,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강화된 항공 보안..
  • 코로나바이러스(2020): 올림픽 연기, 오프라인 예배 반토막.. 가히 전무후무하다.

저 셋보다는 임팩트가 덜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사건들은 2010년대에 있었다.

  • 일본 천황과 로마 교황의 이례적인 생전 퇴위 선언: 20세기 히로히토(쇼와)의 존재감을 능가하는 천황이라든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임팩트를 능가하는 교황은 앞으로 글쎄.. 가까운 미래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시기를 거의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바꿔 버린 대통령 탄핵 소추 파면 사건
  • 2차 세계 대전 이후 거의 처음으로 강대국들의 군사력을 한데 단결시켰던 ISIL 집단. 그래도 얘들은 허세 부리던 것과 달리 다행히 다 소탕· 토벌된 모양이다.

“인간이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같은 말은 반박되었다. 그러나 “21세기쯤에 인류는 달이나 화성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해 있을 것이다”는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거야말로 소설에서나 가능한 요원한 일이다.
그것처럼 세상일은 정말 알 수 없고 인간은 한 치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것 같다. 198, 90년대에 2020년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소설을 썼던 사람들, 세기말에 온갖 종말 음모론을 주장했던 정치 진영 종교 진영들이 이런 상황을 과연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앞으로 또 무슨 기막힌 과학 연구 성과가 나오고 무슨 발명품이 등장할지,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궁극적으로 어찌 될지, 북한 김 정은이 언제 죽을지, 도쿄 올림픽이 내년에라도 개최 가능할지 아니면 질질 끌다가 결국 제일 안습하게 취소로 귀착될지, 그것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견해를 골자로 하는 '불가지론'이라는 종교관이 있다.
뭐, 본인이야 성경을 믿기 때문에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를 두고 고민하지는 않는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야말로 확실하게 불가지론이 성립하는 영역인 듯하다.

그러니 세상 소식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말세다 말세"라든가 "요즘 젊은것들은 말야"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고(저런 말은 무려 몇천 년 전부터 나돌았던 드립!) 그 대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 맞아,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정말 그랬어. 세상이 다 끝나는 줄로만 알았어~!" 같은 영원의 관점에서 큰 그림을 떠올리며 사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성경적인 기독교 세계관은 그런 관점의 형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31 08:33 2020/05/3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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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타자연습의 새 버전이 나왔다.
한글 입력기의 32비트 배포 패키지가 드디어 날개셋 타자연습보다도 덩치가 더 커졌다.
타자연습이야 게임의 리소스와 MFC 라이브러리의 오버헤드 때문에 큰 편이었는데 입력기는 정말 순수하게 내가 작성한 코드와 내가 준비한 데이터만으로 덩치가 이렇게 커졌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라는 걸 만들어 온 게 고3과 대학 시절 이래로 어언 20년이 됐다. 내 인생의 20대, 30대 나이와 함께했다.
한글 입력기뿐만 아니라 한글 글꼴도 새로운 걸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입력기만 너무 오래 끌었다. 그래도 덕분에 옛날에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입력기를 더 발전시키기도 했다. 10.0을 찍고 나니까 이제는 너무 터무니없이 거창한 것 말고는 프로그램을 만들 만치 충분히 다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1.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에 문자열 자동 완성

지난번 개발 근황글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10.0 버전에서는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에 후보 문자열의 뒷부분 자동 완성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 입력 도구가 수행하는 기능이 무엇인지를 감안한다면 진작에 들어갔어야 할 기능인데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 입력 도구가 처음 도입된 건 2년 전의 9.3부터!!)

자동 완성 단축키는 tab/shift+tab 계열, 또는 ctrl+space 이렇게 두 종류이다. Windows와 유닉스 계열의 명령 프롬프트에서 경로/파일을 자동 완성해 주는 tab 키, 그리고 Visual Studio 개발툴에서 명칭을 자동 완성해 주는 ctrl+space 이들의 동작에서 모티브를 따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동작이 구현되었다.

후보 목록에 다음과 같은 문자열이 있고, 사용자가 a 또는 aa까지 입력했다고 치자.

aabbccccc
aabbdd
aabbddee

이 상태에서 ctrl+space를 누르면 후보 목록들의 공통 접두사인 aabb까지가 자동 완성된다. 이런 공통 접두사가 없는 상태에서 또 ctrl+space가 들어오면 그냥 맨 앞 또는 선택막대가 가 있는 문자열이 자동 완성된다.
물론 aabb 상태에서 d를 수동으로 입력한 뒤 ctrl+space를 누르면 dd와 ddee가 순서대로 완성된다. 즉, ctrl+space의 관점은 순차적인 진행, 전진이다.

그 반면, aa까지 친 상태에서 tab을 누르면 곧바로 맨 앞 항목인 aabbccccc가 자동 완성된다. 또 tab을 누르면 aabbdd, aabbddee의 순으로 순환하게 된다. shift+tab은 역순으로 순환한다.
tab/shift+tab의 결과로 인해 입력 중인 문자열이 달라지고 후보 목록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 상태에서 ctrl+space를 눌러서 추가적인 전진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보 목록은 알파벳 순서뿐만 아니라 타자 길이가 짧은 것도 우선시해서 출력되는 반면, 이 tab 순환은 전전으로 사전 순으로만 진행된다.

사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영단어나 한자 새김 입력 정도만으로는 자동 완성 기능이 그렇게 막 유용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자동 완성을 하느니 후보 목록에 n순위로 뜬 항목을 번호로 곧장 선택하는 게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입력 도구에서도 명령 프롬프트(터미널)나 개발툴 에디터 같은 정도의 최소한의 편의 기능은 있어야겠다는 논리적 당위성 때문에 이 기능이 구현되었다.

참고로 자동 완성은 '새김으로 한자' 또는 '영단어' 입력일 때만 가능하다. '한글 단어를 한자로' 변환은 유일하게 자동 완성 기능이 전혀 지원되지 않는다. 입력한 한글보다 더 긴 길이의 한자어를 제시하는 동작이 없는 관계로, 자동 완성이라는 걸 제공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2. 한자 관련: 한글 독음 표시

UI에서 한자의 훈과 음을 표시할 때, 호환용 한자(독음의 바리에이션)에 대해서는 원래 한자의 음이 같이 병기되게 했다. '요'뿐만 아니라 '이, 인, 여, 노, 난, 열' 같은 글자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결과를 볼 수 있다. 한국어의 두음법칙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므로 외국 사이트 같은 데서 한자를 입력할 때는... 이 글자보다는 가능한 한 {}로 둘러싸여 있는 음에서 동일 모양의 글자를 찾아 입력하는 것이 권장된다. 호환용 한자는 마치 UTF-8 텍스트의 BOM만큼이나 장기적으로는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 deprecated 요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이미 잔뜩 구축된 호환용 한자들과 기존 한글 IME들의 동작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들이 호환용 한자들을 알아서 정규화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먼 옛날 KS X 1001 상용 한자에서 서로 다른 독음에 대해서 똑같은 한자를 중복 배당한 것부터가 편법이고 원죄이긴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게라도 해서 한자에 담긴 독음 정보를 보존해야 할 필요 또한 있었다.

그런데 金의 경우 도대체 왜 '성 김'이 본가이고 '쇠 금'이 호환용 한자로 연결되었는지, 不도 왜 '부'가 본가이고 '불'이 호환용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날개셋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마소의 데이터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가'에 대해서 家부터 먼저 시작하는 마소 특유의 한자 빈도수 데이터부터가 출처가 무척 궁금해진다.

3. 부수로 한자 입력

(1) '부수로 한자 입력' 도구가 "한중일 통합 한자 확장 B, C, D"에 있는 U+20000 ~ U+2B81D 사이의 약 47000자에 달하는 한자들의 부수까지 추가로 조회해서 입력할 수 있게 했다. 단, 우클릭 메뉴에서 옵션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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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음으로 한자를 입력하는 건 기본적으로 4888 상용 한자만 가능하고, 편집기 계층에 있는 '확장 한자 옵션'을 선택하면 BMP 영역 것까지 모두 가능해진다.
그 반면, 부수로 한자 입력은 기본적으로 BMP 영역이 가능하고, 별도의 옵션을 선택하면 확장 평면 것까지 사용 가능해진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 확장 평면 한자는 짙은 초록색으로 표시된다. 지금까지는 이 색깔을 볼 일이 거의 없었지만 앞으로 "부수로 한자 입력 도구"에서 이 색깔을 적극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용 룡(龍) 자가 4개 붙은 그 극악의 64획짜리 한자(U+2A6A5)도 드디어 입력할 수 있다.

물론 확장 평면 한자들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엔진이 공식 지원하는 한자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자들은 훈과 음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내가 보아하니 저 많은 확장 평면 한자들은 출처가 대체로 옛 문헌들인 것 같다. 기괴한 모양의 글자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그렇다고 간체자 스타일의 획이 그려진 글자는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로 CJK 확장 한자가 벌써 E, F, G에까지 도달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아직까지 추가할 게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처음으로 확장 평면이란 걸 개척하면서 무려 4만 자가 넘게 한꺼번에 추가됐던 확장 B가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C와 그 이후 영역들은 B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으며, 수백~수천 자씩만 추가되고 있으니 말이다.

한중일 통합 한자 확장 E, F, G 따위도 데이터가 공개돼 있으니 지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 영역은 당장 Windows 10에서도 글꼴이 기본 제공되지 않아서 글자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으니, 내 프로그램에서도 지원할 필요를 아직 느끼지 않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한글 입력이 전문이지 굳이 이런 '부가적인 기능'을 운영체제보다 더 앞서 지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중에 데이터 파일만 업데이트 하면 프로그램 코드를 수정하지 않아도 D 이후의 확장 영역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게 준비는 시켜 놓았다. 지원하는 확장 한자의 전체 개수를 하드코딩해 놓지 않고 파일로부터 값을 런타임으로 얻는 변수 형태로 처리했다는 뜻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모지 문자표도 이번 기회에 데이터 파일을 수정하면 동물, 자연, 음식, 활동 같은 카테고리까지 확장 가능하게 구조를 수정했다. 이모지도 마치 한자처럼 새로운 게 계속 추가되고 있는 영역이니 말이다.
이모지 문자표 내지 입력기를 제대로 만들려면.. 얼굴 이모지에서 피부색 바리에이션을 선택하는 UI도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건 현재 그냥 생략하고 있다.

(2) 확장 한자 지원 얘기가 좀 길어졌다만, 깨알 같은 변화가 하나 더 있다.
현재 얘는 부수를 클릭했을 때 보다시피 근처의 총획수가 동일한 부수들이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기능이 진작부터 존재했다. 그런데 현재 선택된 부수와 동일한 부수 소속인 글자들은 획수와 무관하게 하늘색으로 더 먼저 구분되어 표시되게 했다. 예를 들어 己를 선택했다면 巳와 已, 田을 선택했다면 由, 申, 甲, 그리고 4획의 王을 선택했다면 5획의 玉도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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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하늘색으로 흩어져서 표시된 그물 망 제부수자들을 볼 것)
적용해 보니 굉장히 편리하다. 이런 동작을 왜 지금까지 생각을 못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간체자까지 생각하면 획수가 다른 동일 부수 바리에이션이 더 많이 존재한다.
이 기회에 오리지널 제부수자보다 획수가 적은 제부수자들의 획수가 잘못 기재되어 있던 것들도 바로잡았다. 15년~20년 전 유니코드 DB에는 데이터가 잘못돼 있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같은 한자의 획수 세는 방식도 절대 고정불변이 아니라 한국 중국이 서로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1획으로 볼지 2획으로 볼지 굉장히 모호한 획 말이다.
중국이 대체로 획수를 더 적게 세는 쪽으로 바뀐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간체자로 형태가 완전히 바뀐 것 말고 동일한 한자가 말이다.

4. 허용 한글 범위 제약 기능 관련

(1) '현대 한글만 허용'이라는 간단한 기능이 추가됐다. 현대 한글 자모는 미완성 한글 형태라도 입력을 허용하지만, 초중종 중 어디라도 옛한글이 포함된 채로 두 성분 이상 결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옛한글 낱자는 단독으로만 입력과 결합을 허용한다. 언뜻 보기에 간단하지만 기존 오토마타나 다른 제약 기능을 이용해서 쉽게 구현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져서 이것만 직통으로 수행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2) '지정된 파일에 들어있는 한글' 기능에 지금처럼 데이터를 파일 경로로 지정하는 외장형뿐만 아니라, 데이터 자체를 직접 갖고 있는 내장형으로도 동작하는 옵션을 추가했다. 그래서 이름도 '지정된 파일' 대신 더 범용적인 '지정된 데이터'로 바꿨다.
입력을 허용하는 한글의 수가 수십~수백 자 수준으로 아주 적거나 "현대한글 + 아주 소규모의 옛한글" 이런 식이어서 데이터가 작다면.. 번거롭게 외부 파일을 준비할 필요 없이 내장형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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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편집기의 색상 구성표

편집기에서 텍스트 편집창의 색상을 설정하는 UI에.. 다음과 같이 다양한 색상 구성표들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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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호박색, 터미널 이렇게 어두운 그룹은 과거에 흑백 모니터를 사용하던 경험을 고스란히 재현해 줄 것이다. 날개셋 편집기는 그렇잖아도 옛날 추억의 한글 글꼴들을 한데 구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색깔까지 복고풍 configuration을 제공하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도스용 에디터, 칠판, 아래아한글 1.x 색상은 오래 전부터 제공되고 있었다. 외국에서는 아래아한글이 인지도가 없으니 영문 명칭은 무의미한 HWP 1.x 대신 그냥 시원한 바다색 Ocean이라고 바꿨다.

그리고 밝은 그룹인 레몬, 연보라, 베이지는 쌩 white보다 눈부심이 덜하고 편하기 때문에 역시 쓸모가 있을 것이다. 요 색깔들은 macOS의 터미널에서 제공되는 색상을 차용한 것이다.
이런 색상들을 간단히 가져와서 쓸 수 있는 것은 날개셋 편집기의 활용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6. 외부 모듈에 보정 옵션 추가

바로 며칠 전에 어느 사용자께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Windows Terminal이라는 메트로 앱에서 조합 중인 글자가 자꾸 덧나면서(ㄱ가ㄴ나ㄷ다 같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버그 신고를 하셨다.
이미 존재하는 보정 기능으로는 “ㄱ가나다”까지는 바로잡을 수 있지만 첫 글자가 덧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프로그램도 IME로부터의 문자 입력 접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버그가 있다. 조합을 끊어서 전하든 기존 조합을 늘이고 옮겨서 전하든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아무 차이가 없는 게 맞는데.. 한편으로는 마소 IME는 괜찮은데 또 내 프로그램만 저러는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과 통신하는 방식에 옵션이 하나 더 추가됐다.

예전부터 있었던 A 방식과 B 방식은 “연속 입력”에 대해서 기본 방식 또는 대체 방식을 지정하는 것이었다.
이번 10.0에서는 “최초 입력”에 대한 방식도 세분화됐다. Windows Terminal의 오동작을 해결하려면 두 입력에 대해 모두 “대체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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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타자연습과 세벌식 파워업

입력기는 그야말로 0.1 이상으로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뀐 반면, 타자연습은 작년 여름에 나온 3.9 이후로 바뀐 것이 거의 없다. 입력기 10.0과 함께 타자연습도 4.0으로 같이 올라가면 참 좋았겠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타자연습은 3.91이 됐다.

타자연습과 세벌식 파워업은 딱 한 가지... 무조건 주 모니터에서 창이 뜨는 게 아니라 자신을 실행시킨 GUI의 모니터를 기준으로 뜨도록 수정된 것이 전부이다.
지난 2017년~18년 사이엔 이들 프로그램이 고해상도 dpi를 제대로 지원하도록 수정되곤 했는데, 그 다음으로 multi-모니터를 제대로 지원하도록 수정이.. 참 굉장히 늦게=_=;; 행해졌다.

이상이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있고 한글 같은 문자, 알파벳만치 마냥 단순하고 가볍지 않으면서 한자만치 무겁지도 않고 조합을 글자 단위로만 만들면 되는 단순한 문자가 있을 때.. 이런 문자의 입력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고 모든 형태로 실현 가능한 소프트웨어--이것이 지금까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 목표였다.

이제 앞으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 치명적인 버그 수정이나 자잘한 기능 추가 같은 유지보수 말고.. 기상천외한 기능이 새로 추가된다거나 프로그램 내부 구조가 바뀐다거나 하는 변화는 당분간 없지 싶다.
2020년대부터는 한국어/한글 정보 처리 쪽으로든, 철도 쪽으로든 내 인생이라는 연극의 다음 장, 다음 막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변함없이 사용하고 성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말을 이렇게 써 놓으니 내가 무슨 시한부 인생이라도 살고 있고 앞으로 날개셋 개발 다시는 안 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만.. 이런 글 올려 놓고는 또 두어 달 뒤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10.01 정도는 또 자잘한 버그 수정과 개선 명목으로 또 나올 수도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0/05/28 08:35 2020/05/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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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고향 주변의 공원 풍경

1. 청담 도로 공원

서울의 올림픽대로에서 한강과 탄천이 딱 합류하는 구간.. 그렇다고 강변은 아니고 상행과 하행 도로의 사이 공간에는 '청담 도로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정원과 산책로가 있다.
이게 운전자들에게는 휴게소 역할을 한다. 차가 없더라도 인근 주민은 굴다리를 통해 여기로 드나들 수 있다.
단, 올림픽대로에서는 종합운동장 방면에서만 진출입 가능하고 김포공항 방면에서는 접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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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있는 정자의 2층으로 올라가서 찍은 풍경임)

이 공원은 1980년대 5공 시절에 진행되었던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완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내부에는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본인은 대한뉴스 영상을 보다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는 개인적으로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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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종합 개발 사업은 의외로 위키에 단독 항목이 개설돼 있지 않고 인지도나 존재감이 별로 없다.
새마을 운동이나 경부 고속도로가 박통의 상징이라면, 전대갈 시절 토목 공사의 상징은 이거나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이전의 박통 때는 한강에서 각종 섬이 메워지고(난지도, 뚝섬..?), 교량들이 잔뜩 건설되고 팔당댐이 만들어지고 잠실 쪽의 선형이 바뀌는 등, 치수 사업과 강남권의 개발을 염두에 둔 개발이 진행됐다.
그 뒤 전대갈에 와서는 한강 바닥을 더 파서 수심을 더 올리고 주변에 시멘트 제방을 쌓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고수부지 내지 둔치라고 불린 한강 공원이라는 것을 곳곳에 조성했다.

또한 강변북로의 남쪽 버전 명목으로, 서쪽의 김포 공항과 동쪽의 잠실 경기장을 직선으로 잇는 자동차 전용 도로인 올림픽대로를 건설했다. 이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 지금 우리가 아는 한강의 모습이 이때 얼추 완성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전에는 한강 강변도 무슨 바닷가처럼 온통 모래 뻘밭이고 홍수가 나면 수시로 범람하고.. 선형이 더 무질서하고 제멋대로이고 지금보다 자잘한 하중도도 더 많이 있었다. 먼 과거에는 사람들이 별 부담 없이 한강물에 뛰어들어 물놀이도 했지만 가까운 과거에는 지금보다 물이 훨씬 더 더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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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
전대갈 각하... 나쁜놈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세상엔 전대갈보다 훨씬 더 나쁜놈들도 많아서 돈과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고 있음을 실감하며 지낸다. 내가 오죽했으면 몇 년 사이에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
그러니 전대갈 각하 정도면 만수무강하시면서 그런 나쁜 간첩 반역자들을 계속해서 도발하고 어그로를 끌어 줬으면 좋겠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 놓고 말이야" 라고 조롱도 좀 해 주시고..

"아이가 살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담화에다가.. 살인 없이 강간 재범 누범만으로 가정파괴범 명목으로 사형 집행을 해서 사회 정의를 실현했던 그 강렬한 포스를 나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칭송할 것이다. 이런 건 서 정주 시인이 지은 오글거리는 송시에도 언급돼 있지 않은 것 같다.;;

2. 이촌 한강 공원

현재 한강 공원에는 4월부터 10월까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부 구간에 한해 풀밭에서 텐트를 치고 놀 수 있다. 이건 2019년 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정책이다.
아마 2010년도 중반인가 텐트가 처음 허용됐을 때는 밤 9시까지 허용이었고, 11월부터 3월 기간에도 저녁 6시까지는 텐트를 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규제가 더 강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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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예방한다는 구실로 4월까지도 계속해서 텐트가 금지되어서 개인적으로 답답했다.
그러다가 5월이 돼서야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이 완화되고 텐트도 허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인도 2020년 이래로 처음으로 한강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오랜만에 ‘한강면’도 시식하며 지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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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봄비가 내리다가 그친 상태였다. 아직 하늘이 흐리지만 선선하고 나들이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나저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면은 은박지 그릇에 담겨 나왔다. 뜨겁기 때문에 다른 마분지 같은 걸 덧대어서 쥐어야 했는데 요즘은 방열 방수 성능이 뛰어난 동그란 종이 그릇으로 바뀌었다. 이런 것 기술도 발달하는 게 느껴진다.

3. 포항 송도 해수욕장

5월 황금연휴 때 고향을 방문해서는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가서 회를 먹고, 근처의 송도 해수욕장을 방문했다. 단, 이 날도 하필 흐리고 비가 내려서 맑은 풍경은 구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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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라는 이름의 해수욕장이 부산뿐만 아니라 포항에도 있다.
포항 송도 해수욕장은 과거에 피서지로 굉장한 인기를 누렸지만 수질 악화와 모래 유실 문제로 인해 2007년부터 사람의 입수가 금지되고 그냥 산책용 해변 공원으로 전락했던 이력도 있다. 그러다가 복원 공사를 거쳐서 2012년부터 재개장 했다고 한다.

송도 해수욕장에서는 저 멀리 포항제철 공장이라고 해야 하나 부두가 보인다.
여기 말고 또 포항 시가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해수욕장으로는 더 북쪽의 ‘영일대’ 해수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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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수욕장의 중앙 입구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평화의 여신상”이라는 석고상이 세워져 있다. 처음 봤을 땐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검색해 보니 이건 무려 1968년 7월부터 건립되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왜 무슨 사연이 있어서 무엇을 모티브로 따서 이런 걸 만들었는지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게다가 원래 있던 동상은 너무 낡아서 폐기 처분했고, 지금 것은 2015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저 여인은 나체..는 아니고, 수영복이나 레오타드를 걸친 모습인 듯하다. 옛날 사진을 보면 한때는 저 월계수 가지가 사라지고 없던 적도 있었다.

4. 경주 황성 공원

작년 가을 추석 때 풍경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재탕한다. 여기는 경주 최고의 쉼터인 것 같다. 딱히 신라 시대 유물과 관계가 없고 산이나 강변도 아닌 넓은 부지가 어떻게 숲과 공원으로 조성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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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짱박힐 곳이 많다. 개인적으로 여기 으슥한 곳에 들어가서 돗자리 깔고 침낭 덮고 노숙을 해 봤다. 이곳은 이른 새벽부터 산책과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즐비하니, 노숙을 할 거면 눈에 안 띄게 잘 짱박혀야 한다.

서울의 청계천, 중랑천, 한강 공원만큼이나 여기도 북천과 형산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와 넓은 풀밭(고수부지? 둔치?)가 만들어져 있다. 특히 형산강 둔치의 풀밭은 정말 넓고 주차도 걱정 없어서.. 본인이 언젠가 저기서 텐트 치고 야영을 할 거라고 단단히 작정을 한 상태이다.

이상. 공원 답사만으로 또 긴 글이 완성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25 19:33 2020/05/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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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조(바탕체) 이야기

바탕체, 명조라고 불리는 한글 서체는 우리가 책의 본문에서 수십 년 동안 무수히 접해 온 친숙한 글꼴이다. 요즘이야 맑은 고딕, 함초롬바탕, 나눔명조 같은 여러 본문용 글꼴 때문에 존재감이 작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화면보다 더 보수적인 출판물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신명, 윤디자인, 산돌 등) 오리지널 명조가 여전히 본좌이다.

명조도 다 같은 명조가 아니다. 모니터나 프린터의 해상도가 낮고 컴퓨터의 메모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획 모서리의 세리프만 어설프게 흉내 내고 전반적인 자형은 굉장히 투박하고 엉성한 야메 명조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 한계가 없어지면서 디자이너의 아날로그 원도와 별 차이 없는 미려한 명조체를 볼 수 있게 됐다.

1. 한글

PC에서는 아래아한글 2.x(전문용)와 Windows 95를 통해 한양 시스템 신명조가 가장 널리 퍼졌었다.
1993년에는 아래아한글 2.1이 출시되었는데, 이때는 한양 시스템뿐만 아니라 휴먼 컴퓨터에서 개발한 서체들이 대거 도입되었다. 그 중 '휴먼옛체'는 워낙 개성 넘치고 큰 인기를 끌었던 서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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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샘체, 팸체, 안상수체처럼 한글에 가변폭 글꼴이 등장한 것도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1990년대에는 안상수체 같은 글꼴이 꽤 참신한 미래지향(?) 서체라고 각광받아서 간판이나 책 제목에 종종 쓰이곤 했다.
이런 것들을 PC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최초로 선보였던 아래아한글은 실로 대단한 일을 해냈었다. 비록 그 시절 물가로 거의 30만 원에 육박했던 전문용 에디션 한정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서체들에 비해, '휴먼명조, 휴먼고딕'은 아무래도 기존의 신명조, 중고딕(한양 서체)과 외관상 거의 분간이 안 되니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래도 한양 서체와 휴먼 서체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으며, 미세하게 차이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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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따지자면 휴먼명조가 한양 신명조보다 '약간 덜' 미려하고 완성도가 낮았다. 하지만 어차피 깨알같은 본문용 글자의 크기와 해상도에서 그 차이는 일반인에게 거의 분간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휴먼명조는 그 대신 크기가 더 작고 래스터라이즈 부담이 더 적으며 저해상도 출력에도 더 최적화돼 있었다. 그래서 위의 그림에서도 작은 크기에서 휴먼명조의 '명, 조, 맥' 같은 글자가 한양보다 미세하게나마 더 깔끔하고 획이 균일하다.

애초에 한양 신명조는 한 글자씩 일일이 그린 완성형으로 2350자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면, 휴먼명조는 조합형 구조여서 한글 11172자 전체를 표현할 수 있었다. 똠 햏 뷁 같은 글자를 표현하려면 싫어도 휴먼명조를 써야 했다.
이 정도면 그 당시에 휴먼명조의 존재가 충분히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휴먼명조만 해도 Windows 3.1 시절의 투박한 바탕체(큐닉스..)에 비하면 훨씬 더 미려하고 외형과 성능을 모두 잡았었다.

그런데 1994년의 딱 아래아한글 2.5 (+ 어쩌면 그 다음 3.0까지도)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한양 신명조가 아예 빠져 버리고, '신명조'를 고르건 '휴먼명조'를 고르건 무조건 '휴먼명조'가 선택되곤 했다. 즉, 목록상으로는 두 글꼴이 모두 있지만 둘의 차이는 나지 않는 것이다.

둘은 외형도 비슷하고 모든 글자들의 폭도 어차피 동일하니 일반인들이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모를 것이다. 그 시절에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양 신명조와 휴먼명조는 다시 구분이 생겨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지, 한양 신명조가 잠시 누락된 적이 있었던 것은 본인의 기억에 확실하게 남아 있는 역사 팩트이다....라고 썼는데,

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물증이 있다.
아래아한글 2.5의 예제 문서를 열어 놓은 스크린샷이 굴러다니는데, 저 때는 아예 대놓고 '휴먼명조 = 신명조'라고 쓰여 있다! 내 기억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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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문

신명조에는 한글뿐만 아니라 그와 어울리는 영문 서체도 있다. 아래아한글에서 신명조, 그리고 Windows가 깔린 컴퓨터에서 '바탕'만 고르면 볼 수 있는 그 익숙한 서체 말이다.

그런데 얘는 미국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즐겨 쓰이는 서체는 아닌 것 같다. 걔네들은 책 본문은 Times Roman이 압도적인 본좌이며, 거기에다 Bookman, Century, Palantino (Book antiqua와 아주 비슷)가 가끔 꼽사리로 끼는 정도다. 그럼 '영문 신명조'는 원조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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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실물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과거에 미국에서 여권을 발급받으면 이렇게.. “미합중국 여권만 있으면 (지구상에 못 가는 곳이 없고) 세계가 몽땅 님하의 것입니다!”라는 캐간지 안내문이 딸려 나왔다.
그런데 저렇게 천조국의 위상을 자랑하는 문구의 서체가 통상적인 유럽풍이 전혀 아니고 완전 빼박 한국 신명조 바탕인 적이 있다는 게 난 너무 신기했다. 바로 저거 말이다. 기울여 쓴 게 이탤릭도 아니고 오블리크다.. 설마 진짜 '바탕'을 써서 인쇄한 걸까? (지금은 딴 서체로 바뀐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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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1990년대 초반까지 옛날 미국 컴퓨터 잡지 같은 출판물을 보면 이런 신명조 풍의 서체를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었다.
본문 기사보다는 저렇게 광고 문구에 더 많았던 것 같다. 위의 그림은 잡지 제목은 기억 안 나고 워드퍼펙트가 Windows용으로 처음 출시됐다는 광고이니 시기가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영미권에도 저런 서체가 분명 있긴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게 한글 신명조와 pair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저건 누가 만든 무슨 이름의 서체일까? 본인은 아직 정보가 없고 궁금하다.
그 흔해빠진 명조 하나 갖고도 얘기할 게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23 08:33 2020/05/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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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ife 생명 or 삶

life라는 영어 단어는 잘 알다시피 생명· 목숨뿐만 아니라 삶· 인생이라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치 heart의 의미가 심장에서 더 나아가 마음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동사 live vs 명사 life"는 한국어로 치면 "그리다 vs 그림"과 비슷한 호응 관계인데, 같은 맥락에서 "살다 vs 삶, 일생, (한)살이"가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배추흰나비의 한살이"처럼 '한살이'라는 단어도 있었는데 요즘도 쓰이나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 보니 아예 곤충의 일생 변태 과정만을 일컫는 전문 용어처럼 기재돼 있네..

생명을 갖고 있는 동안 누리게 되는 것이 삶· 인생이니 둘은 분명 별개의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동일 개념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용어임이 틀림없다.
본인의 언어 직관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목숨· 생명은 '하나'뿐이라고 말하고(개체, 개수),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기간, 횟수).

기독교는 사후 세계와 혼의 불멸을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니면 지옥에서 시작되는 life after death라는 말도 있다. life가 오로지 이 세상에서의 생물학적 생명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런 용어가 모순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잠 4:23 issues of life를 좀 의학· 생물학적인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지금 흠정역 성경 번역처럼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 들어온다. 그러나 인문· 사회학적 편견을 갖고 접근하면 '인생의 온갖 얘깃거리 이슈들'...;;이라는 뜻도 들어오게 된다. 뭐, 그래도 저건 다의어 관계이지, 무슨 동물 염소와 원소 염소 같은 동음이의어까지는 아니겠다.

약 4:14에서 말하는 '한낱 수증기나 다름없는 너희 life'도 그런 중의성을 지닌다. 일단 저기 문맥은 "실컷 잘 먹고 잘 살아도 죽어 버리면 말짱 헛일이다"라는 마 16:26, 눅 12:19-20과 비슷하다. 혼과 직접 대응하는 건 생명이지만, 정말 수증기· 이슬처럼 짧고 덧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상으로는 인생이 적합해 보인다.

사람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거듭나고 새로운 life를 얻는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찬송가 쌍이 존재한다.
하나는 그 유명한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이다. 얘는 life를 생명· 목숨이라고 봤다. 작사자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의 작사자이기도 한 이 호운이며.. 작곡자는 오빠 생각, 제헌절 노래 등의 작곡자이고 포항제철 초대 회장과는 동명이인인 박 태준이다.

다른 하나는 “주님 품에 새 생활 하네”(John W. Peterson)이다. 얘는 아까 전자와 달리 외국곡 번역인데, 가사 내용을 보니 어째 life의 대응으로 '생활'이 쓰였다. 두 곡 다 과거의 죄악된 삶을 청산했다는 말과, "옛 것은 지나고 새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 인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전자는 관점이 관점이어서 멜로디가 좀 웅장하고 감격스럽고 씩씩한 느낌인 반면, 후자는 그 뒤의 지속적인 생활(지구력)을 강조해서 그런지 평안하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2. 순우리말

뭍(육지 land), 얼개(structure), 고장(기계 고장 말고, 지역 region), 연모(도구), 까닭(이유), 미련하다, 미쁘다...
내가 초딩 꼬맹이였을 때 책에서 봤던 단어들인데, 21세기에 태어난 애들은 저런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안 쓰이고 사라지는 순우리말이 좀 더 있는 것 같다. 멸종 위기 동물처럼..

한국어에서 '짜장'은 짜장면의 재료가 아니라.. 원래 지금으로 치면 'indeed, 레알'에 가까운 부사였다! {... 그것은 짜장 그 손에 넘는 짓이니, “아 웬 궐련은 이래.” 하고 슬쩍 눙치며, “성냥 있겠나?” 일부러 불까지 거 대게 하였다.} 김 유정의 소설 <만무방>(1935) 중에서..
하지만 이제 짜장은 '자장면'의 현실화 표기로 바뀌었다. 부사 '짜장'은 '바이'(전혀 never)만큼이나 사어가 된 셈이다.

'물매'는... 내 기억이 맞다면 정말 의외로.. 정석 책에서 한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로 끝.. 다시는 출판물에서 저 단어를 접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일본 책 베꼈다는 논란이 있는 교재에서 만약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래도 번역 로컬라이징은 최소한의 신경을 썼다는 뜻이 되겠다.

참고로 '거리'도 순우리말은 street이고 한자어는 distance이다. 뭐, '거리'는 멸종 위기는 아니다.
'구조'는 structure과 rescue 모두 한자어임.
한편, '지레', '도르래' 같은 물리 장치는 어째 한자어 없이 순우리말이 정착해 있다.

3. 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말 중에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가 있다.
이 말의 진짜 의미가 대외적으로 심하게 왜곡됐다는 식으로 얘기가 많은데.. 이 글에서는 그런 뉘앙스 말고 단어와 관련된 얘기만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위의 말의 영어 원문은 1% inspiration과 99% perspiration이라고 한다. 즉, 1%가 99%보다 먼저 언급되며, 후자도 직접적인 의미는 노오오력이라기보다는 땀이다. (뭐,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또한, 한국어 번역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두 단어가 -spiration이라는 라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땀이라 하면 sweat밖에 모르는 본인 같은 사람에게 perspiration은 좀 생소한 단어이다.

말이 나온 김에 관련 썰을 좀 더 풀자면..

  • : ‘포카리스웨트’는 마치 애니콜처럼 영어권 본토인이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명이라고 한다. 맑고 시원한 이온 음료의 이름에다가 하필 더럽고 찝찝한 느낌이 드는 땀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말이다. 교회의 이름이 누룩 교회,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이름이 버그 소프트, 블루스크린 시스템즈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ㅡ,.ㅡ;;
  • 영감: 내가 지금까지 들은 영감이라는 단어를 들은 곳은 (1) 저 에디슨의 격언, (2)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우사미짱이 눈깔 모양이 변하면서 쿠마키치를 범죄 용의자로 잡아내는 영감, 그리고 (3) 딤후 3:16이 말하는 성경의 영감 정도이다. ㄲㄲㄲㄲ

4. 영어 어휘

다음으로, 영어에서 좀 므흣하게 느끼는 면모를 개인적으로 발견한 걸 더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학창 시절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toward와 towards의 차이는 과연 뭘까? 신기하다. 하는 일은 거의 같고 어감상의 차이만 존재하며, 비슷한 예로는 upstair / upstairs 쌍도 있다! 마치 한국어에서 도트와 닷이 나뉘는 것 같은 현상이 영어에서 저런 게 아닐까 싶다.
  • gold는 그 자체가 금속 명사와 금색/금 재질이라는 형용사가 되지만, golden이라는 말이 또 따로 있다. silver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황금도끼 고전 게임이 golden이라는 단어를 크게 대중화시켰다. 방향에도 east+ern, north+ern 같은 형용사 바리에이션 쌍이 존재하는 게 인상적이다.
  • behalf, sake 같은 단어는 for the sake of, for one's sake 이런 식으로만 쓰이는 게 한국어 문법 용어로 표현하자면 영어의 의존명사나 다름없는 물건으로 보인다.
  • shall은 뭐.. should/will과 비교했을 때 고어체로 치부되면서 거의 죽어가는 게 확실하고.. 현재로서는 shall I/we 같은 의문문에서나 쓰이는 불완전동사처럼 돼 간다.
  • behind는 '바하인드'라고 읽히는 경우가 굉장히 잦은 것 같은데 사전에 딱히 반영돼 있지는 않아 보인다. 정관사 the는 굳이 모음이 아니어도 '더'가 아닌 '디'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다른 언어를 공부해 보면 영어처럼 정관사가 더/디 바리에이션 정도밖에 없는 건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양반이란 걸 알 수 있다.

5. company

영어로 '기업, 회사'를 나타내는 단어 company는 "빵(pany) 을 함께 나누다(com-)"라는 어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알 만한 분들은 아실 것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이스트 인디아 컴퍼니 등..

쉽게 말해 저 com은.. 공산주의를 가리키는 코뮤니스트, 베트'콩',
경성 '콤'그룹(일제 말기 때 만들어졌던 공산주의 성향 항일 비밀결사 단체) 할 때 그 '콤'과도 같은 어원이다.

난 컴퍼니의 어원이 저렇다는 것을 먼 옛날에 오 성식 생활영어 교재에서 처음 접했다.
'빵'은 포르투갈어에서 유래된 단어이며, 저분이 원래 외대 포르투갈어 전공 출신이기도 하니 어원이 더욱 쉽게 눈에 들어왔지 싶다.
지금처럼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으로 넘쳐나지 않던 옛날엔 그런 소소한 팁이나 유래 잡학, 외국 경험담도 희귀했었다.

상표명인 '꼼빠니아'는 동일 어원의 단어를 스페인어식으로 읽은 것인데, 회사뿐만 아니라 영어로 companion에 가까운 '동반자'라는 뜻도 있다. 저 상표가 의도한 의미는 '동반자'이다.

성경에 행 2:42,46을 보면 회사가 아니라 초대 교회 지체들이 company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게 한 빵을 떼어서 같이 나눠 먹었다고 나온다. 본문의 주변 문맥을 보면, 이때는 공교롭게도 교회도 일면 사회· 공산주의스럽게 재산을 전부 한데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이건 체제 전복 혁명 과업, 인민 해방 이러는 흉악한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건이었다.

아무튼, 인류 역사에서 회사· 기업이라는 조직의 첫 시작과 취지· 이념은 교회나 공산주의 만만찮게 "함께 빵을 나누는 조직"이었다. ㅎㅎ 한국어의 '식구'와 비슷한 개념이다.

6.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것과 구분하지 않는 것

  • give vs 줘/내놔: 강도가 피해자를 털 때는 "돈 내놔"라고 하지, "돈 줘"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전자는 더 적극적으로 강압적으로 빼앗겠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 wear vs 입다 쓰다 신다 끼다 착용하다: 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 한국어로는 다 똑같지만 영어로는 먹는 독 poison과 동물에게 물려서 주입된 독 venom을 구분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화상을 입어도 불에 데이는 burn과 물에 데이는 scald를 구분해서 표현한다.

7. 외래어

집에서 바깥과의 경계가 벽이 아닌 난간으로 구성돼 있고, 장판이 아닌 타일이 깔려 있고 집안이라기보다는 반쯤 바깥인 그 공간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베란다와 발코니가 정말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는 것 같다. 원래는 둘은 어묵과 오뎅만큼이나 서로 다른 개념을 가리키는데 말이다. 발코니가 더 영어에 충실한 단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베란다가 더 자주 들었고 더 친숙하다.

하긴, 가방· 담배· 구두조차도 원래는 외래어라는 게 놀랍기 그지없다. 껌은 영어 어원이 분명하니 외래어라는 인식이 있지만, 비슷한 단어인 빵은 외래어라는 인식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외래어라는 것도 의외로 별것 아니고 정하기 나름인 개념일 뿐인 건지도 모르겠다.

8. 틀리기 쉬운, 혹은 틀린 채로 굳어져 버린 외래어 표기

  • algorithm: 어쩌다가 '-듬'이 '-즘'이라고 바뀌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음악 용어 리듬을... 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 basic: 원어 발음엔 Z 소리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스펠링 그대로 '-식'이 맞는데 현실에서는 '-직'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 message, sausage: 스펠링이 A여서 좀 혼동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만.. '-세-'가 절대 아니고 '-시-'가 맞다. 메시지, 소시지.
  • super-: 원어 발음엔 반모음이 들어있지 않다. 슈퍼마켓, 슈퍼맨..이 아니라 원래는 그냥 수퍼마켓, 수퍼맨이 맞는데 저건 흠..
    비슷한 예로 비젼이 아니라 비전, 캡쳐가 아니라 캡처, 쥬스가 아니라 주스(juice), 죠스가 아니라 조스(jaws)이다.

자음이 ㅈ 소리로 바뀌는 구개음화라는 건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일본어는 더해서 TR 소리조차 츄리닝 츄레라 같은 식으로 바뀌어 왔다.
쿵 퓨리에서 히틀러가 "전화기 내놔" 이럴 때 give me the phone을 "더 폰"이 아니라 "저(ze!!) 폰"이라고 발음하던 게 생각난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0/05/20 08:35 2020/05/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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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한 UI 옵션들이 가득하다.
사용자의 취향과 컴퓨터의 성능을 고려하여 처음에는 옵션으로 도입됐다가 나중에는 그냥 '답정너 무조건 적용'이나 다름없게 바뀐 옵션의 대표적인 예는 "마우스로 창의 위치나 크기를 변경하는 것을 즉시 반영"이 있다.

마우스가 움직일 때마다 큼직한 창을 매번 다시 그리는 건 198, 90년대의 PC 사양으로 감당하기에는 계산량과 부하가 버거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XOR 연산으로 그려진 반전 윤곽선만 마우스 궤적을 따라 그려 주다가 왼쪽 버튼이 떼어졌을 때 실제로 반영하는 형태로 move/resize 기능이 구현되었다. 이 동작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다가 Windows 95에 와서야.. 그것도 Microsoft Plus!라는 확장팩을 설치한 뒤에 '즉시 반영'이 옵션 형태로 추가됐다.

그리고.. Windows XP에서는 타이핑을 시작했을 때 마우스 포인터를 화면에서 잠시 감춰 주는 자잘한 옵션이 추가되었다. 이건 딱히 성능하고 관계가 있는 옵션은 아니다만.. 텍스트 편집 기능을 자체 구현한 프로그램이라면 운영체제 차원에서 저 옵션이 켜졌는지 여부를 확인해서 저 동작을 지원해 줘야 할 것이다.

운영체제 제어판의 프로그래밍 버전 역할을 담당하는 함수는 SystemParametersInfo이다. SPI_GETMOUSEVANISH를 주면 포인터 숨기기 옵션이 켜졌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저 함수가 제공하는 거의 100가지가 넘는 옵션 상수들을 살펴보면 Windows의 UI의 변천 내력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에서 논하려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자잘한 UI 옵션 중의 하나인 UI state이다.

마소에서는 사용자에게 온갖 정보를 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정보를 가능한 한 숨기고 꼭 필요할 때만 표시하는 것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한 듯하다.
그래서 사용자가 키보드 타이핑을 할 때는 마우스 포인터를 숨기고, 반대로 마우스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일 때는 키보드 조작과 관련된 시각 요소들을 숨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키보드 조작과 관련된 시각 요소라니?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메뉴나 대화상자에서 Alt 단축키를 나타내는 글자 밑의 밑줄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키보드 포커스를 나타내는 점선 사각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것들은 없는 게 시각적으로 깔끔하며, 사실 맥OS에는 저런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걔네들도 키보드 조작에 도움을 주는 정보이니 하루아침에 싹 없애 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 절충안은.. 일단 숨겼다가 필요할 때만 표시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하긴, 메모장이나 날개셋 편집기처럼 운영체제의 표준 메뉴를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파일(F) 편집(E)" 같은 항목에서 F, E에 쳐진 밑줄도 평소엔 보이지 않다가 사용자가 Alt를 눌렀을 때에만 표시되는 걸 볼 수 있다. 뭐, 요즘은 아예 메뉴가 통째로 보이지 않다가 사용자가 Alt를 눌렀을 때만 표시되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래아한글은 대화상자의 단축키들이 Alt를 누르고 있는 동안만 잠깐 보이고, Alt에서 손을 떼는 순간 사라진다.
MS Office 프로그램은 문서 편집 화면에서 Alt를 단독으로 눌렀다가 떼면 리본의 기능들에 할당된 단축키들이 표시되는데, 이건 대화상자보다는 메뉴의 단축키 동작을 흉내 낸 것에 가깝다.

UI state는 저런 것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태와 동작을 다룬다.
Windows에서 돌아가는 모든 윈도우들은 UI state라는 숫자 형태의 속성을 갖는다. 이걸 얻어 오려면 자기 윈도우에 대해서 WM_QUERYUISTATE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그럼 운영체제가 답변해 준다(wParam, lParam 없음. 리턴값만 확인하면 됨). 딱히 우리가 customize할 필요가 없는 메시지이니, SendMessage 대신 그냥 DefWindowProc에다가 바로 줘 버려도 된다.

리턴값은 비트 플래그 형태이다. 포커스 테두리를 그리지 말 것을 지정하는 UISF_HIDEFOCUS (1), 그리고 단축키 밑줄을 그리지 말 것을 지정하는 UISF_HIDEACCEL (2)를 살펴보면 된다.
Windows XP부터는 UISF_ACTIVE (4)라는 것도 추가됐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나 용도를 전혀 모르겠다. “A control should be drawn in the style used for active controls.”라는 설명만 봐서는 이해가 잘...

static/label 컨트롤은 자체적인 포커스가 없으니 Alt 단축키 밑줄만 신경 쓰면 될 것이고, 아이템을 표시하는 리스트박스, 트리 컨트롤 같은 물건은 포커스 테두리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그에 비해 버튼(push, radio, checkbox 모두)은 단축키 밑줄과 포커스 테두리를 모두 관리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에디트 컨트롤은 저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고..

포커스 테두리야 DrawFocusRect 함수를 이용하면 간편하게 그릴 수 있고, &가 섞인 문자열에 대해서 단축키 밑줄을 같이 그리거나 생략하거나(DT_HIDEPREFIX) 심지어 단축키 밑줄만(DT_PREFIXONLY) 그리는 건 DrawText의 여러 플래그들을 사용해서 간편히 구현 가능하다.

그런데 사용자가 대화상자에서 alt나 tab(포커스 테두리) 같은 글쇠를 누르면 그 대화상자 내부의 컨트롤 윈도우들은 감춰 놨던 보조 요소들을 표시하도록 UI state가 바뀌게 된다. tab은 포커스 테두리만 건드리지만 alt는 포커스 테두리와 단축글쇠 밑줄을 모두 건드린다. 한번 표시된 보조 요소들은 다시 숨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UI 상태가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메시지는 바로 WM_UPDATEUISTATE이다. 얘는 우리가 생성하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가 보내 주는 메시지이다. 어떤 플래그가 켜지거나(UIS_SET) 꺼졌는지(UIS_CLEAR)를 wParam 값을 통해 알 수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검색해서 구체적인 스펙을 찾아보면 된다.

이 메시지를 DefWindowProc에다가 넘겨 주면 우리 윈도우의 UI state값이 그렇게 변경되며, 동일 메시지가 우리의 child 윈도우들로 전파된다. 다시 말해 WM_QUERYUISTATE의 리턴값은 WM_UPDATEUISTATE를 DefWindowProc에다 요청하기 전과 후가 서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 우리 윈도우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윈도우의 외형 중에서 그런 UI state의 영향을 받는 게 있는 경우 해당 부분을 다시 그리는 것이 전부이다. 해당사항 없으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alt와 tab이야 대화상자에서의 공통 단축글쇠이다. 이때 윈도우의 UI state를 변경하는 것은 IsDialogMessage 함수가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것 말고 우리 윈도우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UI state를 변경해 줘야 할 때가 있다. 사용자가 화살표 키 같은 걸 눌렀을 때 말이다. 이때는 WM_CHANGEUISTATE라는 메시지를 나 자신에게 보내면 된다. wParam에다가는 WM_UPDATEUISTATE와 동일한 스타일로 변경된 플래그를 주도록 한다.

DefWindowProc에서는 이 메시지를 부모 윈도우로 보낸 뒤, 최상위 윈도우에서는 메시지를 WM_UPDATEUISTATE로 바꿔서 자식들로 다시 전파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서 대화상자에 있는 모든 윈도우들의 UI state가 동기화된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UI state를 인식해서 동작하는 컨트롤을 직접 구현하고 싶은 경우, WM_QUERYUISTATE를 호출하면 자신의 UI state 값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WM_UPDATEUISTATE가 왔을 때 적절히 화면을 다시 표시하면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UI state를 변경하고 싶은 경우, WM_CHANGEUISTATE를 보내면 된다.

모든 윈도우 메시지들은 DefWindowProc으로 가도록 하면 된다.
대화상자의 경우, 마우스 클릭으로 명령을 내려서 연 경우 저런 보조 요소들이 숨겨진 상태로 시작하며, 그렇지 않고 키보드로 열었다면 이들이 표시되어 있다.

이런 UI state 변경 메시지들과 관련 기능들은 Windows 2000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9x/ME/NT4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layered window, 마우스 포인터 아래의 그림자, fade out되며 사라지는 메뉴도 다들 2000에서 도입된 기능이다. 2000이 XP 같은 테마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바뀐게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동작은 SystemParametersInfo(SPI_GETKEYBOARDCUES)에 값이 설정돼 있을 때만 행해진다. 제어판에서는 "Alt 키를 누를 때까지 키보드 탐색에 사용할 문자 숨기기"라는 이름의 옵션으로 존재한다. 이게 꺼져 있으면 UI state는 언제나 0으로 고정되며, WM_UPDATEUISTATE 같은 메시지가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얘의 명칭이 SPI_GETMENUUNDERLINES이었다. 하지만 보다시피 단축키 밑줄뿐만 아니라 포커스 테두리 같은 요소도 추가되면서 명칭이 더 범용적인 'keyboard cue'라고 수정되었다.

이 기능 내지 API와 관련된 본인의 생각을 두 가지 정도 첨언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라틴 알파벳처럼 음소 풀어쓰기 형태이고 키보드 글쇠와 글자가 일대일 대응하는 문자라면.. 간단하게 해당 문자를 곧장 단축글쇠로 지정해서 아래에 밑줄을 쳐 주면 된다. 하지만 한글· 한자 같은 문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문자열 뒤에 단축글쇠를 별도로 추가해 줘야 한다. 파일(F) 편집(E)처럼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단축글쇠를 숨기려면 밑줄만 숨기는 게 아니라 (F), (E)를 통째로 감춰 버리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문자열의 내용과 길이를 통째로 변경해야 하니 좀 난감할 수도 있다. 단축글쇠 영역이 기존 UI 문자열의 폭을 건드리지 않도록 별도로 돌출된 툴팁 같은 데다 표시해야 할 것이다.

2.
지금까지 글을 읽은 분이라면 눈치 채시겠지만,
UI state라는 건 앞서 언급했던 라벨, 버튼, 리스트 같은 공용 컨트롤이나 그에 준하는 물건을 새로 구현하지 않는 한.. 프로그래머가 접하거나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는 개념이다.
한 대화상자 아래에서 컨트롤들이 UI state가 제각각 달라야 할 일도 없고, 사용자가 WM_***UISTATE 메시지를 DefWindowProc에다가 전달하지 않고 동작을 override해야 할 일도 없다.

사용 패턴이 뻔히 정해져 있고 자주 쓰일 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메시지가 안 그래도 공간이 부족한 시스템 메시지 영역에 3개나 들어가 있는 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좀 낭비인 것 같다.
UI state는 그냥 GetWindowLongPtr 함수로(GWL_UISTATE) 얻게 해도 되고, WM_CHANGEUISTATE는 메시지 대신 함수가 담당하게 했어도 될 것 같다. 아니면 그 메시지조차도 SetWindowLongPtr로 대체하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메시지 형태가 꼭 필요한 건 WM_UPDATEUISTATE뿐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17 08:32 2020/05/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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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러 메시지의 친근성

먼 옛날 도스 시절에는 명령 프롬프트에서 파일 이름이나 명령을 잘못 입력하면 갖가지 에러 메시지들을 볼 수 있었다. 제일 흔한 건 Bad command or file name... 아무말이나 입력하고 엔터 누르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 Windows의 명령 프롬프트에서 XXXX is not recognized as an internal or external command, operable program or batch file이라고 정말 길고 정황하게 나오는 그 메시지가 옛날에는 저렇게 간결하고 무뚝뚝하게 나왔던 것이다. bad가 뭐냐 도대체.. ㅡ,.ㅡ;;

유닉스 계열만 해도 XXX: command not found 내지 XXX: no such file or directory로 나뉘어 있으나.. 도스는 그 특성상 파일 실행과 명령의 구분이 없는 관계로, 단일 메시지에 파일과 명령을 모두 포함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문장 한 줄만 뜨고 아무 뒤끝 없이 프롬프트로 돌아오는 에러와 달리.. 어떤 에러는 Abort? Retry? Ignore? 이러면서 사용자를 물고 늘어지고 놔 주질 않았다. 이게 초딩 시절엔 굉장히 무섭고 강압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무서운 에러는 디스켓과 관련해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드라이브에 디스켓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A: 같은 드라이브 변경을 시도했거나.. 아니면 디스켓 파일을 복사하던 중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도 저런 사태가 벌어졌다. 디스크 에러와 데이터 에러라는 게 있었는데, 둘의 차이는 지금 생각해 봐도 오리무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도스/Windows 9x vs 오늘날 NT 계열 Windows에서 각각 디스크 없이 FDD 드라이브 전환을 시도했을 때의 에러 메시지의 모습이다.
아 옛날에는 ignore이 아니라 fail이었구나... 아무튼 저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디스켓이 거의 복불복 지뢰밭 수준으로 오류가 잦았으며, 일반 프로그램이 파일을 읽고 쓰다가 지뢰를 밟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표면 검사를 해서 bad sector 기입을 해 주는 게 필수이기도 했다.

사실, 시스템 전체의 관점에서는 에러가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게 효율적이다. 무작정 실패 판정만 내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디스켓을 집어넣을 기회를 다시 준다거나, 오류를 무시하고 일단 더 진행한다거나.. 그러는 게 더 유도리가 있으며, 사용자 친화적이기까지 하다. 사용자가 모든 경황을 아는 전문가라면 말이다.

하지만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저런 말이 뜨면 뭘 해야 할지를 모르고, 그냥 다 끄고 명령을 내리기 이전 상황으로나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저놈의 메시지는 Ctrl+C고 ESC고 뭘 눌러도 없어지질 않고.. UI 측면에서 좀 미스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말들이 표현이 아주 세고 기계적이고 부정적이다. Abort는 무슨 약속 예약 취소 같은 걸 넘어서 하던 걸 다 때려치우고 철회, 중단한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낙태라는 뜻까지 있다. Ignore도.. 무시, 묵살, '씹기', 생까기 같은.. 절대로 좋은 어감이 아니다.

물론 어떤 장애물에 부딪혀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그냥 포기하거나, 한번 더 시도하거나, 그 장애물을 일단 제끼고 넘어가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존재하며 필요하다.
DOS가 없어지고 Windows로 바뀐 오늘날까지도 본인이 프로그래머로서 저 패턴의 메시지를 보는 것은 디버깅 중인 프로그램이 뻗었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assertion failure가 났을 때이다. Retry가 디버거 실행과 연결된다.

Windows 2000/ME에서는 Abort/Retry/Ignore(중단/다시 시도/무시 MB_ABORTRETRYIGNORE) 대신, Cancel/Try again/Continue(취소/다시 시도/계속 MB_CANCELTRYCONTINUE)라고 말이 다소 부드럽게 바뀐 메시지 박스가 등장했다. 기존의 표현이 바뀌지는 않았으며, 새로운 플래그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만 새로운 표현을 볼 수 있다. 사실, A/R/I라는 단축키가 도스 시절 이래로 아주 익숙하며, 새로운 표현은 CTC로 이니셜이 겹치기도 하니 말을 일괄적으로 변경해 버리는 건 좀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MessageBox의 리턴값까지도 IDRETRY와 별도로 IDTRYAGAIN을 추가하고 IDIGNORE뿐만 아니라 IDCONTINUE도.. 이름뿐만 아니라 값까지 서로 별개로 추가해 버린 것은 의외이다. 두 쌍은 용도가 완전히 동일한데도 말이다.
참고로 MessageBox의 후신격인 TaskDialog에는 표준 버튼으로 '재시도 try again'만이 도입되었고, ignoer/continue는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의 확인/닫기/취소 등으로 보편적인 의사결정은 다 표현할 수 있다고 간주한 듯하다.

지금이야 Cancel/Try again/Continue가 첫 등장한 지도 20년 가까이 지났다. 컴퓨터 대신 PC, 디바이스라고 하고 응용 프로그램도 그냥 앱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이제는 전통적으로 무뚝뚝함과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이던 패닉 BSOD화면에도 이모티콘과 한글 메시지가 표시되는 세상이 됐다. press any key의 번역은 "... 누르십시오" 대신 "... 누르세요"로 바뀌었다. 여러 모로 격식이 없어지고 말이 친근하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C/C++ 프로그램의 디버그 빌드에서 assertion failure가 났을 때, 무식한 A/R/I 메시지박스와 함께 "Press Retry to debug this application"이 뜨던 건.. 깔끔한 task dialog로 바뀌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end user는 볼 일 없고 어차피 개발자들이나 보는 메시지이니 아무도 신경 안 쓰려나? =_=

2. 반응성과 존재감

어떤 소프트웨어가 인터페이스 내지 반응성 관점에서 사용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자잘하게 뻗는다거나 화면 잔상이 생기는 버그가 없어야 하고, 키· 마우스 입력에 대한 반응이 신속해야 할 것이다. 반응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스레드 같은 것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어지간해서는 5초 이상 반응이 없어서 '응답 없음' 판정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마우스로 창 크기를 변경했을 때 너무 굼뜬다거나, 화면 전체가 지워져서 번쩍거리면서 그려진다거나 하지도 않아야 한다. 새로 그리는 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있으면, 스크롤 내지 크기 변경 중에는 뼈대만 간략하게 그렸다가 키보드· 마우스 버튼이 놓였을 때 다시 그려도 좋다.

그런데.. 이런 것들과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고 백그라운드에서만 몰래 돌아가는 프로그램에도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
사용자가 직접 명령을 내려서 실행된 게 아닌 서비스, 업데이트 체크 같은 부류의 프로그램이라면 정말 절대적으로 사용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컴퓨터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티를 절대 내지 말아야 한다.
요즘 컴터는 코어가 많으니 한 프로그램이 코어 하나를 다 점유한다고 해서 당장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컴터를 열받게 할 수 있고 배터리 소모를 증가시킬 수 있고, 냉각팬이 쓸데없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노트북에서 말이다.

업데이트를 받더라도 무슨 당장 안 받으면 컴퓨터가 악성 코드에 감염되어 박살나기라도 하는 울트라 초특급 필수가 아니라면 아주 쉬엄쉬엄 찔끔찔끔 받도록 하고, 네트웍 상태가 안 좋아서 발생하는 딜레이가 UI의 딜레이나 CPU 쳐묵 대기 상태로 절대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는 음악회에서 넘돌이 넘순이(페이지 터너..;;)가 연주자보다 더 돋보여서는 안 되고, 무슨 집회에서 통역사가 연사보다 더 돋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곳에서 Windows Update 서비스라든가,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software report tool이 도대체 뭔 짓을 하느라 CPU 코어를 다 쓰면서 날뛰고 있었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요 둘이 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n초 이상 응답이 없으면 저렇게 다운 의심 판정을 받게 되고, 운전자는 교차로에서 파란불 신호를 받고도 n초 이상 응답 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뒷차로부터 경적 세례를 받고 욕 먹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서로 비슷한 양상의 현상인 것 같다.

3. 이식성

로터스 1-2-3, dBase III+ 같은 프로그램은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명품 업무용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도스에서 Windows로 넘어가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도태해서 사라졌다.

내가 듣기로는 이 두 프로그램은 긴 짬밥답게 주요 코드가 쑤제 어셈블리어로 한땀 한땀 작성됐다고 한다. 덕분에 1980년대에 컴퓨터가 느리고 비싸던 시절에는 잘 최적화돼서 쌩쌩 돌아갔겠지만, 훗날 이 코드는 구조 확장이나 유지 보수가 도저히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dBase가 말이다.

이래 가지고는 Windows로 포팅은 물론이고 같은 도스에서 32비트로 갈아타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하드웨어에서 돌아가지만 시간이 그 상태 그대로 멈춰 버린 코드는 그야말로 오늘만 사는 죽은 코드나 다름없다.

운영체제 중에서 Windows 9x야 저사양 똥컴 x86만 겨냥한 특이한 변종이니 어셈블리어 최적화가 없으면 안 됐고.. OS/2도 잘 만들어진 32비트 OS이긴 하지만 이식성이 부족했다. 훗날 64비트니 ARM이니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 버렸다.

그러나 유닉스처럼 C/C++을 처음부터 주력으로 사용한 Windows NT는 비록 처음에 나왔을 때는 너무 무겁고 느리다고 욕 먹었을지언정, 결국 여러 아키텍처들을 거쳐 오늘날까지 천수를 누리는 운영체제 커널이 됐다. 미래를 대비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이런 게 이식성의 힘이다. 다만, 이 2020년대에는 이제 x86 계열과 ARM 계열 말고 또 획기적으로 새로운 컴퓨터 아키텍처가 설마 등장할 일이 있을까 싶다. ARM은 전력 효율이 x86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x86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로 범용적인 성능이 좋은 건 아니다. 그러니 결국 이 두 아키텍처가 64비트 형태로 끝까지 갈 것 같다.

4. Windows와 맥이 추구한 가치의 차이

과거에 비해 텃새랄까 격차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사과가 그려진 맥OS 컴퓨터는 예술, 출판, 디자인 업계에서 오늘날까지도 Windows보다 강세이다. UI 비주얼이 간지 날 뿐만 아니라, 같은 글꼴을 써도 글자의 렌더링이 정말 고퀄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분야 말고 게임은.. 특히 모바일용 말고 PC용은 맥 진영이 절대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Windows가 강세이다.

물론 게임은 애초에 특정 업계 종사자만 쓰는 업무용 생산성 앱이 아니며, Windows는 게임을 즐기는 end user 고객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운영체제이다.
오늘날의 결과만 놓고 보면 저런 점유율이 당연히 저절로 이뤄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먼 옛날에 IBM 호환 PC라는 물건은 동시대의 다른 컴퓨터들에 비해 사용자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기술에는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한때 Windows 같은 멀티태스킹에 하드웨어 추상화가 갖춰진 복잡한 환경에서 현란한 게임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PC용 게임은 하드웨어 자원의 독점이 가능한 도스용으로만 나왔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Windows 95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출시되었다.
빌 게이츠는 가히 목숨을 걸고 Windows를 게임과 멀티미디어에 최적화된 홈 엔터테인먼트 운영체제로 만들려고 애썼다. 구닥다리 WinG로는 성이 안 차고 OpenGL은 그 시절엔 아직 업무용에다 NT의 전유물이었으니.. 거기서도 하드웨어 직통 액세스가 가능한 DirectX를 만들고 게임 개발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했다. Doom을 만들어 냈던 이드 소프트웨어를 인수할 생각까지 했던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마소 진영에 비해, 맥은 클래식 시절이건 OS X의 개발 초창기이건 잡스 아저씨가 저렇게 게임에 눈독을 들였다거나, Doom을 자기 맥OS에서 꼭 구동하고 말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빌처럼 가정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방법,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기를 쓰고 연구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천재적인 감과 괴팍· 고상한 취향을 따라 제품을 만들었다. 다수의 보편적인 소비자보다는 소수의 골수 매니아 애플빠를 양성하는 노선을 추구한 듯하다.

5. 설치/배포 패키지

Windows Installer (msi)라는 기술이 개발된 게 20여 년 전 1999~2000년 사이의 일이다.
소프트웨어의 설치와 제거라는 게 '파일 열기/저장 대화상자'만큼이나 응용 프로그램들이 공통으로 요청하고 수행하는 기능이니, 이를 위한 공통의 API를 정의하고 만든 것은 일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얘는 2009~2010년 정도까지 버전업이 되었다가 그 뒤부터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것 같다. 2010년대부터는 마소에서도 Office나 Visual Studio 같은 제품을 배포할 때 msi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설치/제거 시스템을 개발하기라도 한 것 같다.

통상적인 배포 패키지 시스템이라면 프로그램의 구성요소들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지금 당장은 사용자가 원하는 부분만 설치하고, 설치하지 않은 기능은 나중에 언제든지 추가 설치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의 배포 패키지 시스템이라면 적어도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지원해야 할 것 같다.

(1) 먼저, 웹을 통한 설치이다. 지금 로컬 installer 실행 파일에 내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지정된 주소를 통해 서버로부터 데이터를 받아서 설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2) 요즘 프로그램들의 거의 필수 기능이 된 최신 버전 체크 및 자동 업데이트와의 연계이다. 현재 버전과 최신 버전을 비교하여 부분만 자동 업데이트가 가능한지 판단하고, 꼭 바뀌어야 하는 분량만큼만 다운로드를 한다.
설치 후에 마이너 버전이 바뀐 것은 '프로그램 추가/제거' 목록에도 당연히 반영된다.

Windows Installer가 웹 연계 내지 자동 업데이트까지 고려하여 개발되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싶다.
통합된 API가 없으니 Visual Studio고 아래아한글이고 다 독자적인 설치 및 업데이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업데이트를 시켜 보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설치 관리자 자체부터 업데이트 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저건 뭐 한번 만들어 놓고 나면 버전 체크, 파일 설치 등등 끝.. 처음에 한번 안정적으로 잘 만들어 놨으면 바뀔 일이 없어야 하는 시스템이지 않은가? 그런데 뭐 이리 자주 바뀌나 모르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분야도 운영체제 차원에서의 통합 솔루션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10~20여 년 전에 시대를 풍미한 배포 패키지이던 InstallShield는 요즘도 잘 먹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6. 각종 약관 동의 화면

웹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할 때나 응용 프로그램을 처음 설치할 때는 사용자에게 뭔가 법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계약 안내문이 표시되는 것이 관례이다. 사용자가 그 내용에 대해 명시적으로 yes라고 동의 의사를 밝혀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경우라면 안내문의 내용은 주로 저작권과 관련된 것이다. 마소에서는 이 안내문의 명칭을 EULA(end-user license agreement)라고 붙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상업용 소프트웨어에는 불법 복제 금지와 관련된 경고문이 으레 들어가지만 그것 말고도 해킹이나 리버스 엔지니어링 금지 같은 조항도 있다.
한편으로 웹사이트 회원 가입이라면 개인 정보 수집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 꼭 포함된다.

아울러, 요즘은 응용 프로그램도 사용권 계약과는 별개로 사용자의 사용 패턴 데이터나 오류 정보를 수집해서 개발사 서버로 보내도 되겠는지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걸로 사용자 개인을 식별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물론 이건 동의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런 약관이나 법적 주의사항 고지 문구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까지 일일이 어려운 단어와 장황한 문장으로 미주알고주알 열거하면서 길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걸로 악명 높다.
뭐 이건 온갖 애매한 상황까지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방어해서 갑 쪽의 법적 책임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말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계약서는 아니지만.. 망토 하나를 만들어도 소송을 피하기 위해 “주의: 이걸 목에다 두르고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마시오” 경고문까지 들어가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 하도 재미없으니 갑이나 을이나 텍스트를 꼼꼼히 제대로 읽지 않는 건 마찬가지 같다. 그러니 한 10여 년 전이었나? “본 약관이 해지되는 순간 뼈와 살이 분리됩니다”던가? 개드립이 들어간 약관이 복붙 되어서 여러 웹사이트들에서 그대로 쓰인 게 뉴스에까지 방영되곤 했다.

약관과 관련된 말이 좀 길어졌는데..
본인이 이걸 표시하는 소프트웨어 UI와 관련해서 굉장히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건.. 아니, 이건 나만의 불만도 분명 아닐 것이다.
안 그래도 재미없고 귀찮아서 안 읽는 긴 약관을 너무 작은 크기의 텍스트 셀에다가 집어넣고는 창의 크기 조절도 안 되게 해 놓으면.. 사용자는 읽고 싶은 생각이 더욱 멀리 달아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쪼금 생각을 한 곳에서는 약관을 plain text가 아니라 서식을 적용한 텍스트로 제공하고, 인쇄 기능 정도는 갖다놓았다. 하지만 이걸 인쇄까지 해서 보는 사람도 과연 얼마나 될까?
그냥 화면에서 창 크기 조절과 본문 검색 정도만 가능하게 하는 게 제일 좋아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14 08:36 2020/05/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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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운길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이 산은 국립공원이나 각종 둘레길 같은 브랜드가 없고, 딱히 군사 시설이나 역사적인 사연도 없는 아주 평범한 산이었다. 구조도 흙산이어서 정상 부근에 거대한 바위 같은 것 역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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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어쩐 일인지 넓은 전망대가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본인 말고도 다른 등산객 일행이 서너 명가량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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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본인이 세팅한 숙소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 헬리패드와 함께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의 주변에 고맙게도 이런 평상이 3개 정도 있었던 덕분에 거기에다 간편하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텐트를 지고 힘들게 산을 오른 보람이 있었다.

본인은 여기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 묵었다. 예빈산, 갑산 새재고개에 이어 운길산까지.. 남양주 남부에 있는 산의 정상이나 능선에서 야영 기록을 연달아 남기게 됐다.
이불만 덮으니 밖은 전혀 춥지 않고 지낼 만했다.

4. 국도 45호선과 대성리 유원지

한숨 잘 자고 나서 텐트를 걷고 산을 내려갔다. 이른 아침에 국도 45호선을 타고 북한강을 따라 북쪽 가평 방면으로 이동했다. 안개가 자욱히 껴 있는 시원하고 한적한 시골길을 주행하는 기분은..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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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의 첫 목적지는 대성리 역 근처에 있는 북한강변의 넓은 풀밭이었다. (그 전에 대성리 역 화장실의 도움을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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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전반적으로 흐리고 우중충한 잿빛으로 찍혔지만 지내기는 이때가 덥지 않고 무척 좋았다. 주변엔 저 멀리 자전거 타거나 산책하는 사람만 가끔 지나가고, 이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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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기서 돗자리 깔고 있으면서 폰과 노트북의 남은 배터리를 모두 소모했다.
아직 일반적인 식당이나 카페가 문을 열기에는 좀 이른 오전이었지만, 그래도 아침 9~10시쯤 되니 민간 카페(?) 말고 브랜드 체인점 카페는 문을 연 게 있었다. 거기서 또 2시간이 넘게 있으면서 음료와 전기를 보충하고 인터넷 확인도 했다.

5. 청평댐과 지방도 391호선

아침이 지나고 낮이 가까워지자 해가 뜨고 날이 급격히 더워졌다. 그리고 도로에는 이전보다 차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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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을 받은 뒤엔 이제 어디에 갈지가 고민됐는데.. 마침 신청평대교 아래의 강변에 아주 넓은 풀밭과 함께 한낮부터 텐트들이 잔뜩 보였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저 멀리 댐 같은 것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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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본인은 옳다구나 하고 그리로 내려갔다. 낮에는 또 여기서 텐트를 치고 지냈다.
자세한 내역을 적지는 않지만 이 날 카페와 텐트 안에서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코딩 작업도 많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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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일과를 진행하니 오후 3시쯤이 됐다.
이제 가평 쪽으로 탐험을 더 계속할지, 아니면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끝에.. 이번 여행의 공세종말점(?)을 감안했을 때 신 청평대교를 건너서 유턴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강 건너편의 지방도 391호선 강변 구간도 어차피 몽땅 미지의 영역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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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어느 근사한 카페에서 전자기기들을 추가로 충전하며 마지막 보급을 받았다.
391번 지방도는 마냥 평지에서 강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가끔 경사와 커브가 아주 급한 산길 형태로 돌변하기도 했다. 운전이 꽤 다이나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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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날이 슬슬 저물고 있다. 여기는 아마 양평과 가평 경계의 어느 카페촌이었지 싶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지도를 펴서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도 있겠지만.. 귀찮아서 생략한다.
이 당시 서종대교 위로 60번 고속도로는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상· 하행 어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6. 강변 오토캠핑

그리고 저녁 6시 반쯤, 가평을 벗어나 양평 서종면 구간에서 드디어 텐트들이 즐비한 넓은 캠핑장을 발견했다. 캠핑장은 보통 '수상레저'라는 상호가 붙은 곳에 같이 있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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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텐트... 취미 성향이 이런 쪽인 남자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낚시에도 재미를 붙일 법하지만.. 그러고 보니 본인은 어제와 오늘 동안 자덕들은 많이 봤어도 낚시꾼은 거의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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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 바로 코앞에다 텐트를 치고 강 구경 하면서 밤을 보내니 이것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산에서 보냈던 어젯밤과도 비교되고 말이다. 한강 공원이나 팔당호 주변의 강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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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친 모든 사람들이 야영을 하지는 않았다. 해가 떨어지니 상당수는 돌아가고 텐트는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래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어제는 등산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지 눈을 감자마자 곧장 기절했지만, 이 날 밤은 덜 피곤하고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면서 몸이 시동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게 컴퓨터 작업과 독서를 반복하다가 그제서야 잠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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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어제와 거의 같았다. 어제와 비슷하게 아침 드라이브를 즐기며 귀가했다. 길거리 사진은 이것 하나만 올리지만, 여기 도로 주변 풍경이 전반적으로 다 이런 식이었다.

남한강 합류 지점이 가까워지자 강폭이 커지고 주변에 갑자기 울타리와 철조망이 둘러지면서 “상수원 보호 구역” 표지판이 곳곳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걸 보니 여행이 끝났다는 게 벌써부터 느껴졌다.
이렇게 휴가 여행을 마쳤다. 그러고 보니 경기도조차 벗어나지 않은 단거리 투어가 됐지만.. 새로운 장소들을 개척하면서 자연인· 자유인 체험을 잘 하고 왔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0/05/11 08:34 2020/05/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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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 석가탄신일, 근로자의 날, 주말, 어린이날이 거의 일렬로 쭉 이어지는 황금 연휴가 있는 편이다. 일본은 4월 29일이 쇼와의 날이라고 해서 자기네 리즈 시절이었던 히로히토 일왕을 기리는 공휴일인데.. 한국은 석가탄신일이 얼추 비슷한 시기에 공휴일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성탄절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1970년대에야 추가된 종교 공휴일이 나름 봄철의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이 기간 동안 너도 나도 외국으로 나가느라 인천 공항은 터져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더러 외국으로만 나가지 말고 내수 경제도 좀 살려 달라고 나라에서 고속도로 톨비도 면제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것 없다. 천재지변 급의 재앙 때문에 하늘길이 꽁꽁 묶여 버렸다. 인천 공항은 재작년에 평창 올림픽에 맞춰서 제2 여객터미널까지 당당히 개장했는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 안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국내는 다행히 전염병이 기세가 많이 꺾였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도 완화되었다. 그러니 본인은 이 연휴 기간 동안 하계 휴가에 준하는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컨셉은 "2020년 춘계 황금연휴를 이용한 자연인 체험 -- 북한강변을 중심으로"가 됐다.

생각했던 것만치 멀리 나가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답사했던 적이 없는 장소를 다니면서 자연을 즐기고 왔다. 특히 "하루는 산에서 자고 하루는 강가에서 자기"를 목표로 설정하여 잘 달성했다.
딱 하나 미스는 처음에 떠나는 길에 시간대를 잘못 선택해서 극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린 것이었다. 역시 이 시국에 나만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아침 시간대가 아니라 새벽 같은 다른 시간대를 선택했어야 했다.

사고 하나 없이 오로지 차량과 분기점 병목만으로 길이 이 정도로 막히는 건 굉장히 오랜만에 봤다.;; 팔당대교 진입로에는 2~3km에 달하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명절 귀향· 귀경길이 아닌 상황에서 차 내비 화면에 "2시간 연속 주행하셨습니다. 좀 쉬었다 가세요"가 뜨는 걸 보니 자괴감이 들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건 마치 우주 로켓이 1단 엔진을 가동해서 지구 대기권을 빠져나가는 것과 같았으며,
서울 교외에서 남양주든 양평이든 가평이든 어디든 가는 건 지구 저궤도에서 3단 엔진을 가속해서 달이든 화성이든 가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서울-남양주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일단 서울을 벗어난 뒤부터는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1. 중앙선 구 능내 역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는 바로 남양주 조안면에 소재한 중앙선 능내 역이었다. 이 역은 중앙선 복선 전철화와 선형 개량(=대대적인 선로 이설)으로 인해 2008년 말에 폐역했지만, 역 주변이 통째로 공원 내지 관광지로 보존 처리되었다.
본인은 다산 유원지는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저기는 지금까지 가 본 적이 없었다. 다산 유원지와 이 정도로 가까이 있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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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내부와 승강장은 지난 2월에 답사했던 화랑대 철도 공원과 여러 모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단, 여기는 "자덕들의 성지"라는 점에서 화랑대 철도 공원과는 차이가 있었다. 반포 한강 공원이 자덕의 성지인 것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선과 경춘선은 모두 복선 전철로 개량되면서 많은 구간이 이설됐는데, 기존 구선로 구간, 특히 강을 따라 달리는 구간은 상당수 자전거길로 리모델링 됐기 때문이다. 능내 역은 이 과정에서 특혜를 입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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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철도 공원이 그렇듯이, 저기 보이는 객차 안에도 카페가 있다. 하지만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역시 코로나 크리 때문에 영업이 중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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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에서 역 건물을 바라본 모습이다. 이 시선의 후방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나란히 놓여서 자전거들이 씽씽 지나갔으며, 근처에는 자전거 대여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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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근처에는 선로와 자전거 도로, 주차장이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2. 물의 정원

능내 역을 답사한 뒤, 다음으로 본인은 북한강을 따라 가평 방면으로 올라가다가 '물의 정원'이라는 강변 공원을 발견하여 거기를 들렀다.
팔당 물안개 공원 같은 곳이 남양주의 북한강 구간에도 있었구나. 다만, 규모는 이게 훨씬 더 작다. 그리고 여기가 팔당 물안개보다는 먼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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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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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좋고.. 아무 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근사한 풍경화가 나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넓은 풀밭을 자유롭게 거닐다가 벤치에 앉아 쉬거나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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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에는 이렇게 섬 같은 곳을 드나드는 다리가 있었다. 섬 안이나 밖이나 면적은 비슷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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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장면 남긴다. 본인은 여기서 2시간 남짓 머물면서 신선놀음을 하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등산을 시작했다.

3. 운길산

등산 대상은 큰 고민 없이 의외로 금방 정해졌다.
운길산은 본인의 여행 경로와 가까이 있고 산 중턱의 수종사 부근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 근처에 평상까지 준비돼 있으니 가히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본인은 첫째 날은 여기서 텐트 치고 잤다.

마침 이 날이 석가탄신일이기도 해서 수종사 주변의 주차장 공터엔 불자들이 등산객 이상으로 아주 많았다. 절과 운길산 역을 오가는 셔틀버스(소형 승합차..)도 다닐 정도였다.
산을 올라간 다음에는 다음날 아침에 내려올 예정이니 본인은 여기서 오늘의 마지막 보급을 받았다. 음료수를 보충하고 전자기기들을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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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를 지나고 나니 주변에는 절 방문객이 아닌 등산객만 남고 주변이 썰렁해졌다.
거기서 정상까지 명목상 이동 거리는 800m 남짓에 불과했지만, 고도는 거의 300m 가까이 상승해야 했다. 즉, 등산로가 꽤 가파르고 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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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물의 정원' 쪽을 내려다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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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저 멀리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모습이다. 산에서는 이런 넓은 전망을 볼 수 있으니 좋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08 08:33 2020/05/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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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원초적인 성경 계보와 종교 비교 얘기를 좀 하겠다. ㄲㄲㄲ
종교 개혁 개신교 진영에 킹 제임스라는 고전 영어 성경이 있다면, 가톨릭(천주교) 진영에는 듀에이-림즈(Douay-Rheims)라는 고전 영어 성경이 있다.

개신교 쪽 성경 중에 제네바 성경처럼 인명이 아니라 지명을 딴 역본이 있듯, 듀에이와 림즈는 프랑스의 지명이다. 원어인 프랑스어 스타일로 읽으면 “두에 렝스”라고 한다.
프랑스는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개신교 쪽의 종교 개혁이나 성경 번역과 관련해서는 언급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 대신 천주교 성경이 저 동네에서 번역되었던가 보다.

공교롭게도 킹 제임스와 듀에이-림즈는 나온 시기가 굉장히 비슷하다. 전자는 어명에 의해 1604년에 번역 위원회가 조직되고 번역이 시작됐으며, 1611년에 전서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한편 후자는 전자보다 약간 더 전부터 더 오랫동안 번역되어서 1582년에 신약, 1609년에 구약의 순으로 나눠서 출간됐다. 그래도 시기가 상당히 비슷한 건 사실이다.

1582년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여(100의 배수해의 윤년 여부) 현재까지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달력인 그레고리력이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저 때가 교황청에서 나름 성경도 만들고 달력도 고치는 등 여러 일을 했던 때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쟤들은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 개혁을 저지하고, 교황의 권위를 다시 강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먼 옛날 헨리 8세 때부터 이미 교황으로부터 결별하고 자체 교회를 운용하였으며, 자국어로 성경 번역도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킹 제임스 성경의 출간 목적 중 하나는 성경 역본을 통합하여(비숍, 제네바) 그런 영국 교회(성공회, 청교도)를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천주교에서, 특히 휘하 조직인 예수회에서 뜬금없이 영어 성경을 내놓은 목적은 개신교 진영에서 시작된 자국어 성경 번역 트렌드에 맞불을 놓고(counter-) 자기네 교리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안 하던 짓을 어쩔 수 없이 한 셈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오늘날 천주교 성경에서도 수용하지 않는 오글거리는 왜곡 번역이 좀 있다. 본인이 아는 건 딱 두 가지이다.

  • 창 3:15에서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거라는 예언을 “여자”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거라고 바꿨다.
  • 눅 1:28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는 말은 원래 “큰 은총을 입은 자여”(피동)라는 요지인데.. 그걸 “은혜가 가득한 자여”(능동)라고 바꿨다.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번역을 저렇게 한 것이다. 저 시절에 저렇게 뜯어고치는 건 우리로 치면 일제 시대에 손 기정 선수 사진에서 복부의 일장기를 뽀샵질로 일부러 지우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은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로서 천주교는 성경을 금지하고 없애고 신자들을 죽이고 성경 변개에 일조한 집단 정도로나 알고 있었다. 자기 교리를 위해서 말을 버젓이 뜯어고친 듀에이-림즈 역본이야 더 볼 것도 없는 부패한 성서이고 말이다.

지금도 그 신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총론을 넘어 세부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런 성경에도 의외의 면모가 있다는 것을 근래에야 발견했기에 몇 가지 예를 완전성 차원에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듀에이-림즈(DRB)는 만들어진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킹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고어체이며 thou, thee, -eth 같은 대명사와 접사를 볼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는데.. 가장 먼저 골 1:14를 펴 보자.
변개된 역본에서는 “그분의 피로 through his blood”가 삭제되었다고 킹 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으시대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remission of sins:

본인은 눈을 의심했다. 존재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through his blood가 DRB에서도 살아 있었다. 아니 이거, 마리아 숭배를 조장하던 그 역본이 맞나?
오히려 개신교 계열이며 천주교에서 과거에 시신을 부관참시했고 오늘날까지도 싫어하고 이단시하고 있는 위클리프.. 그 사람이 만들었던 옛날 성경(WYC)에는 through his blood가 없다.

in whom we have again-buying and remission of sins.

그건 이해가 된다. 위클리프 성경은 DRB보다 200년 가까이 전, 이 성계가 살아 있고 조선이 건국되었던 1390년대에 그 시절 여건의 한계상 ‘변개된 본문 계열’인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에서 번역됐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요 1:18도 찾아봤다. 무려 초대 교회 시절 오리겐 때 ‘독생하신 아들(son)’이 ‘독생하신 하나님(God)’으로 바뀌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 the only begotten Son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declared him. (DRB)
… but the one begotten Son, that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told out. (WYC)

어라? 위클리프와 듀에이 모두 ‘아들’이라고 돼 있고 결과적으로는 KJV와도 일치한다. 오히려 개역, NIV, NASV 같은 20세기 역본들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뭔가 혼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For three be, that give witnessing in heaven,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be one. (WYC)
And there are Three who give testimony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DRB)

혼란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요일 5:7이었다. “하늘에서 증거하는 세 분이 계시니…”라고 KJV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구절, 원래는 없었다가 후대에 첨가된 거라고 잔뜩 공격받는 그 구절이 위클리프와 듀에이에 모두 버젓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서로 죽고 죽이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양 진영에서 각각 내놓은 성경이 진술이 이 정도로 일치한다면 이건 완벽한 교차검증 성공이지 않은가? KJV를 만들 때 성공회 팀과 청교도 팀이 눈에 불을 켜고 상호 검증하던 것을 뺨치는 수준이다.

따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DRB는 사 14:12에 루시퍼도 남아 있고 계 2:13에서 사탄의 왕좌 대신 자리라고 KJV 스타일로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DRB만 욕하기가 민망하고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래서 뭐든지 양쪽의 말을 다 들어 보고 팩트 확인을 꼼꼼히 해야 되는구나..

뭐 그래도 벧전 2:2에서는 서로 제 갈 길 가는지 DRB는 변개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이고, WYC는 어째 KJV에 더 가까운 스타일로 번역되었다.

As newborn babes, desire the rational milk without guile, that thereby you may grow unto salvation. (DRB)
as now born young children, reasonable, without guile, covet ye milk [of full teaching], that in it ye wax into health; (WYC)

다시 말해 골 1:14와 벧전 2:2를 비교해 보면 KJV는 OO, 개역 NIV 따위는 XX인데.. DRB는 OX요, 위클리프는 XO인 셈이다.
본인은 세상의 모든 성경은 OO 타입 아니면 XX 타입이지, OX나 XO 타입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런 중간형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어찌된 일일까? 이런 사실은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5분만 관심을 갖고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나도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뭐, 킹 제임스 지지자건 반대자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회색지대 영역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위의 사실은 가톨릭 쪽이든 개신교 쪽이든, 성경이 필사되고 전수된 과정이 모 아니면 도 하나로 언제나 딱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게 그나마 긍정적인 쪽으로(OO) 크게 교통 정리가 된 건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 정립이다. 그리고 이를 대적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쪽으로(XX) 크게 교통 정리가 된 것은 19세기 말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과 RV 역본이다.

16세기에는 요일 5:7에 실제로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세 분”이 기록돼 있었나,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이 진짜로 기록돼 있었나 하는 것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래로 본문비평이라고.. 성경 변개를 학술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수작 하에서 근현대에 와서야 제기된 낭설이다.

종교 개혁으로 인해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반목과 대립이 심하던 16세기에 진짜 중요했던 것은 “성경에 외경--가톨릭에서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을 넣을 것인가? 넣는다면 구약의 일부로서 embed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록으로 별도로 넣을 것인가?”였다. 천주교 식이라면 토비트, 유딧, 에스드라, 마카베오 같은 책도 구약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에스더기는 10장 3절 이후로도 계속되어 무려 16장까지 있게 된다.

킹 제임스조차도 당대의 관행과 종교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외경이 포함되어 나왔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절대 아니고 구약으로부터 분리된 부록 형태로 수록되었다. 그 시절엔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신의 한 수 파격이었고 교황 추종자들로부터 밉보일 짓이었으며, 최악의 경우 번역자들이 신변의 위협을 겪고 암살 당할 수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출처) 1611년도 KJV 원판에서 외경의 한 페이지이다. 보다시피.. 에스더기만 해도 10장 4절부터 시작되는 외경 영역은 완전히 분리해서 수록하지 않았는가? The rest of the chapters of the book of Esther, which are found neither in the Hebrew, nor in the Calde라고 말이다. 세상에 그 어떤 천주교 성경도 에스더기 뒷부분을 이딴 식으로 편집해서 수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가톨릭 정신이 너무 투철한 일부 사람들은 KJV도 외경이 들어갔기 때문에 친가톨릭 성경이라고 비판하고 1611년판이 아니라 1655년인가 뭔가 외경이 완전히 제외된 KJV가 진짜 KJV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건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며, 별 영양가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얘기가 길어졌으니 슬슬 정리를 하겠다.
본인은 KJV 유일주의자로서 가톨릭이 성경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기여를 한 것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독립된 분야로 요약하겠다.

1. (과거) 가장 먼저 옛날에야 일반인들에게 성경의 소지를 금하고 번역도 금하고.. 자기들 말고는 성경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실물을 불태웠다.
차라리 이단도 생기고 온갖 교단 교파들로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수많은 지역 교회들이 잡초처럼 생겨나는 것이 성경적이지, 저기 같은 피라미드 중앙 집권 체계는 성경적인 교회 모델이 아니다. 뭐 지금이야 시대가 바뀌어서 쟤들도 물리적인 박해는 못 한다.

2. 오리겐 같은 옛날 사람들이 조금씩 독소를 넣고 변개해 놓은 일명 알렉산드리아 원문을 토대로 변개된 라틴어 본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 자체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 당시엔 본문 변개의 여파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DRB에도 올바른 다수 사본의 영향을 받은 맞는 표현도 여럿 등장했던 것이다.

3. 구약 성경에다 외경을 추가해 넣고, 십계명을 고쳤다. 이건 오늘날 개신교 쪽의 변개된 성경에서도 따르지 않는 사항이니 골 1:14, 벧전 2:2 같은 변개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다.

4. (과거) 한때 DRB 같은 마리아 숭배용 엽기적인 역본도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은 천주교 성경에서도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지는 않으니 저건 흑역사가 되었다.

5. 그리고.. 옛날 성경에서 O를 확실하게 X로 몽땅 바꾼 개정판을 만들고, 20세기 이래로 모든 성경들의 번역 트렌드가 이걸 따라가게 만들었다. 2에다가 학문적인 근거(?)를 추가해서 그 영향력을 소위 기독교계 전체에 파급시킨 것이다.

본인은 이번 리서치를 통해서 2와 5를 더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요일 5:7이 원래는 없다가 후대에 추가됐네 이딴 소리들은 2가 아니라 5의 산물인 것이다. 그놈의 후대라는 건 도대체 정확하게 언제쯤 후대를 가리키는 걸까?

사실, 논리를 더 명확하게 세우려면 천주교에서는 DRB 이후로 어떤 영어 성경을 사용해 왔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개신교계가 KJV를 300년 가까이 사용하다가 갑자기 19세기 말부터 RV, ASV의 순으로 부패가 시작됐는데 저쪽도 DRB를 천주교계의 KJV마냥 수백 년 사용하다가 성경이 바뀌었는지?

1970년대에 나온 천주교용 NAB (New American Bible)은 이미 변개된 XX 스타일로 다 바뀌었다. 개신교가 이미 변개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는데 가톨릭에도 그런 변화가 없었을 리가 없다.
사실 본인은 공동번역 성서가 나오기 전에 한국 천주교에서는 무슨 성경을 사용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설마 개신교 쪽 성경을 봤을 리는 없을 테고, 아니면 아예 성경 없이 교리문답서만 보고 살았는가?

적장은 적장을 알아본다고 가톨릭은 오늘날도 위클리프나 루터나 틴데일이나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는 당연히 절대로 호의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지금이 옛날 같은 종교 재판, 이단 심문 같은 게 존재하지는 않으며 다들 평화니 화합이니 하고 있지만.. 결국 교리와 믿음이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그 차이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두 버전으로 주셨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둘 다 옳을 수는 없다.

가톨릭의 듀에이-림즈는 현재 가톨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이지만, 기독교의 킹 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말씀 보존 약속을 이행해 주신 바로 그 실물이다. 아멘.

  • 종교 개혁의 불모지이고 예수회의 본산지이던 스페인에도 그래도 ‘레이나-발레라’라고 바른 계보의 성경 역본이 있다. 요일 5:7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얘는 누가 언제 어떤 계기로 번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국은 1990년대가 돼서야 바른 계보 번역 성경이 나왔는걸..;;
  • 우리 진영 교회사에서는 맨날 사악한 가해자, 거의 공산주의자 급의 종교 공작원이라고 묘사되는 예수회가 일본에서는 박해받은 ‘기리시탄’이라고 불렸다는 게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중세 일본에서 사용했던 예수쟁이 식별법 중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굳이 걸려들지 않았을 방법도 있다. 형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05 08:35 2020/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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