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삼이라는 시인이 1971년에 발표했다는 <민간인>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본인은 먼 옛날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아주 어렴풋이 이런 시를 접했던 기억이 있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시의 제목부터가 군인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에서 '민간인'이라고 지었던 것 같은데..
얘는 읽어 보면 정말 섬뜩하고 비극적인 내용임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헤밍웨이가 즉석에서 지었다는 6단어짜리 비극 소설이 곧바로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다.;;; 분위기가 완전 비슷하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용 중고 신발 판매. 사용된 적 없음)


원래의 시에서 언급하는 시기인 1947년 봄은 아직 남한 단독 총선거를 하기 전이고, 북한이 자체적인 애국가와 인공기를 제정하기도 전인 완전 초창기였다. 하지만 남북 분단은 갈수록 굳어지고 남북 왕래가 어려워지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황해도 해주는 서쪽이 아니라 남쪽이 바다로 뻥 뚫려 있었다. 그러니 배 타고 전방의 바다를 향해 조금만 나아가면 38선 이남으로 갈 수 있었다.

빨갱이 치하에서 살 수는 없겠다 싶어서 이 지역 주민들 약간명이 모여서 탈북을 시도했다. 감시를 피해 보트 타고 해상으로 몰래 야반도주 중이었는데..
갑자기 아기 울음 소리 때문에 자기들의 존재가 노출되고 들킬 위험에 처했다. 그러자 아기의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아기를 바다에 던져 버리게 됐다.

이게 바로 시가 묘사하는 상황이다. 시인은 어쩌다 보니 그 쪽배에 동승해서 이 사건이 벌어지는 걸 목격했던 모양이다.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이건 1947년 이후로 1970년대가 될 때까지 20년이 넘게 잊혀지지 않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인간이 너무 굶주려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자기가 죽을 지경이 되면... 인륜이고 천륜이고 인간성이고 다 없어져서 거의 동물로 퇴화해 버린다. 그래서 자기 친자식이라도 잡아먹거나 노예로 팔아 버릴 수 있다. 이런 건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런데 목숨 걸고 어디를 탈출해서 몰래 피난 가고 도망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아기 울음 소리를 억제하지 못해서 걔를 불가피하게 버리게 되는 비극은.. ㅠㅠㅠㅠ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렇게 도망치다가 들키게 생긴 상황에서는 부모가 자기 한 몸만 희생함으로써 어차피 자녀라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게다가 어영부영 하다가는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남까지 다 죽이게 되니까.. 도저히 답이 없다.

게다가 이런 사례가 역사적으로 드문 것도 아니다.
위의 '민간인' 스토리의 해상이 아닌 육로 버전도 존재한다고 한다. 38선을 넘어서 일가족이 야밤에 월남을 시도했는데, 공산군 초소 부근에서 아기가 우는 바람에 엄마는 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허나, 위기를 모면하고 확인해 보니 아기는 그 사이에 질식사한 상태였다고..

1907년 평양 대각성--은사주의 논란은 일단 논외로..-- 당시엔 길 선주 장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는데.. 그때에도 한 여인이 10여 년 전, 청일 전쟁으로 인한 피난 중에 자신의 아이를 죽게 했다며 참회했다고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기가 너무 우는 바람에 근처의 나무에다 걔를 부딪쳐서 죽게 했다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고 독소 전쟁 당시의 온갖 끔찍 잔혹한 회고가 가득한 회고록이 있다. 여기서도 어느 애엄마가 적군에게 들킬 위험에 처하자 결국 울음 소리를 없애기 위해 자기 아기를 우물에 던졌다는 얘기가 나온댄다. 우물 속에서 울음 소리가 완전히 멎어 버리자 주변 사람들은 죄책감과 절망, 멘붕에 빠져서 침묵하고 만다.

성경에도 대환란 중의 피난 상황에서 "임산부와 산모에게 화 있으리로다" (마 23:19)가 괜히 기록된 게 아니었겠다 싶다.
아 하긴,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부모가 생후 겨우 3개월이던 모세를 더는 몰래 키우지 못하고 버리기로 결심한 주 이유도 울음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출 2:2-3). 그래도 그 울음 덕분에 이집트 사람의 동정심을 사서 살아남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울러, 울음 소리 때문에 아기를 죽인 것보다는 덜 비극적인지 모르겠지만 6 25 사변 초기에 이런 믿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멀쩡한 남자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곧바로 모병관 일행에게 붙들려서 군대로 납치에 가깝게 끌려가는 지경이었는데.. 어떤 4살배기 딸의 아버지는 징집을 피하려고 잘 짱박혀 숨어 있었다.

그런데 징집관이 그 아이에게 먹을것도 주면서 꼬드겨서 “네 아버지 혹시 어디 계신지 아니?” 이렇게 물었는데 애가 순진하게 아버지가 숨은 곳을 발설해 버렸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징집되어 끌려갔고,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됐는지를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옛날에 어디에서 들은 얘기인데 지금은 출처를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테 죄를 물을 수 없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장병을 징집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모병관을 비난할 수도 없다.
이런 것도 전쟁이 야기한 너무 슬픈 비극이다. 오로지 자기 권력욕을 위해 동족상잔을 추진한 이북 수뇌부들이 개XX일 뿐일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18 08:35 2022/11/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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