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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질과 근원

  •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
  • 돈이 나쁜 게 아님. 돈을 사랑하는 게 나쁜 거다.
  •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게 아님. 사람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훨씬 더 더럽다.

아멘. 이렇게 본질을 보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다.
(단, 술은 총과 같은 급으로 중립적이거나 필요악 같은 물질은 아니라고 생각됨..)

그리고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거다. 성경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신학이다.
그런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7. 지나친 의로움

지나치게 의로운 건 신자의 바람직한 자세가 절대 절대 아니다.
"오직 예수 이름에만 구원" 이런 걸 부정하라거나 수위를 낮추라는 게 아니고, 예를 들어 요런 것 말이다.

(1) 난 오로지 주님하고만 같이 있으면 되니 보상· 상급 같은 건 없어도 돼요~~
(뭔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부당한 고난· 손해· 희생 같은 걸 한 번도 감내한 적이 없나 보구나~)

(2) 주여, 성장하고 싶으니 제게 어서 고난과 환란을 마음껏 주시옵소서
(주님이 너한테 쪼끄만 고난 하나 허락하시면 넌 곧바로 "왜 나한테만 그래요!!!!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하면서 삐칠 거 같은데??)

(3) 이 세상 따위 더 빨리 타락하고 망조 들고 심판이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 환경에서 너는 열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셈.. 비슷한 논리로 나는 조선인들은 좌빨 정권에서 싹 다 망하고 거지 돼 봐야 정신 차린다는 극언 악담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내가 내리는 결론은, 크리스천이 원래 지는 십자가와 고난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배부른 한가한 소리가 나온다는 것..
더 나아가 구원 취소와 상실(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부정), 교회 대환란 통과 등등의 오류가 나오는 이유도 이와 거의 같다고 본다.

8. 균형 잡힌 적용

(1) 엡 2:8-9 "너희가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걸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우리는 그분의 작품,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 이런 말씀을 간과하고 소홀히 여기기 쉽다.

(2) 요 8: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쳐라"
이거에만 꽂혀서 온갖 죄를 양비론으로 퉁치고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데 써먹는 이상한 사람들은.. 그 다음 11절에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라는 명령도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알 리가 없다.

(3) 마 7:1-2 "판단하지 말라, 니가 그 잣대로 판단받을 것임"
여기에만 꽂혀서 정당한 판단과 권면까지 일축하고 제멋대로 사는 방탕한 인생들은 그리 멀지도 않은 15절부터 '거짓 대언자(선지자)를 조심하라' 이런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건 어떤 놈이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 판단부터 해야 실천할 수 있는 명령일 텐데 말이다.

(4) 그 유명한 빌 4:13 "내게 힘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도..
'우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대!'라고 들뜨기 전에 앞의 12절을 포함한 주변 문맥을 좀 보도록 하자.

그 구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말은.. 돈 왕창 벌고 대박 내고 출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는 못 하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것,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궁핍 중에도 만족하는 걸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너무 시시하고 김 빠지지?? ㅋㅋㅋ
하나님이 내가 구하는 걸 뭐든지 들어 주신다는 말 앞에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단서가 먼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 말씀은 지 꼴리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제발 시기와 대상을 분별하고 균형 있게 총체적으로 머리에 입력하고 적용하도록 하자~!

9.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

(1) 나는 예수 믿고 성경 읽고 교회 댕긴다는 사람이 구원 확인 질문을 귀찮아하거나 불쾌해하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신자(?)도 넘쳐나는 와중에, 교회에 그 어떤 행실 이상한 개독들이 우글거린다고 해도 난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다.

(2)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공산당이 싫어요”를 불편해하거나 정치 발언(?)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지 정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왜, 클레멘타인 영화를 봤더니 암세포가 암에 걸려 죽었다고 그러잖는가..? 이런 비정상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니 나도 15~20년쯤 전에 반일정신병 초기로 들어가려던 게 싹~ 자가치료가 돼 버렸다.

친일파보다 훨씬 더 위선적인 놈, 나라에 훨씬 더 큰 해를 끼치는 놈들이 우글거리는데 아직도 친일파 타령이나 하고 있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위의 둘을 영적으로 거의 동급의 이상한 현상으로 취급한다.

10. 개인적인 원수와 인류의 원수

개인과 인류의 차이는..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명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고, 또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 나 개인의 구원자라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처럼 개인적인 '원수'와 보편적인 '원수 마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개인적인 원수는 일곱 번에 일흔 번(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한 반면, 원수 마귀와 마귀의 자식들은 싸워 무찌르라고 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지, 인류의 원수 내지 민족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류에 빠져서 이를 거꾸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꼭 저런 영적·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말이다. 개인적 원한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자들이 북괴와의 평화(?), 김 정은과의 화해는 어쩜 그렇게 쉽게 입에 담는 걸까?
성경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성경을 자신에게 맞추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1. 죄 또는 정신 질환

(1) 고의로 짓는 추악한 죄를 무슨 연약함 내지 질병 정도로 치부하며 합리화하는 건 아주 아주 잘못된 짓이다.
특히 자기가 잘못해서 벌받는 걸 박해, 시련 연단 따위로 포장하는 거 완전 극혐.. 대가리 깨뜨려 버리고 싶다.

(2) 하지만 반대로, 진짜로 정신질환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망상, 집착, 불면증 우울증, PTSD 트라우마 등등에 시달리는 건 죄와는 전혀 무관하며, 성경이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대놓고 복음을 거절하는 게 아니고 성경 말씀을 믿는다는데도 저러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 마귀야 물러가라"...를 외치면서 환자를 잡을 게 아니라, 그냥 정신꽈 치료를 받게 하고 약 먹이고 주사 놔야 될 것이다.

목사는 그런 사람까지 감당하는 직업이 아니다. 혼과 영을 괜히 구분하는 게 아니니까..
본인도 지난 10여 년 동안 (1)은 왕창 파고들면서 비판하고 까는 편이었지만.. (2)에 대해서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 무슨 사도의 표적이 존재하는 시대도 아닌데 역할 분담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기도 응답으로 아주 가끔 난치병이 치료되는 것은 개인마다 케바케일 뿐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환자 누구에게든 손만 얹어서 바로 나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 단, 어떤 사람의 증상만 보고는 이게 위의 (1) (2) 둘 중 어느 상황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다.
  • 성경에 교만을 정죄하고 까는 논조는 차고 넘치는데.. 반대로 교묘한 인격 비하 말살인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다루는 게 있는가..?? 문득 궁금해진다. 일단 내가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6 08:35 2022/06/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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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거 없이 믿어야 하는 것, 그 대신 논리적으로 성립하는 것

뭐 이미 여러 번 했던 말이지만, 나는 이 맛에 성경 읽고 예수 믿는다. 이 정도의 합리성을 갖춘 하나님을 믿는다.
증명이 불가능하여 일단 믿어야 되는 게 있지만, 그 대신 성립하는 논리 체계가 있다.

(1) 인간에게 절대로 공평해야 하는 건 정말로 공평하다. 상대적인 것, 본질적이지 않은 여건들만 제각각이고 불공평하다. (재산, 신체 능력, 지적 능력..) 인간이 구원받는 것에 그런 불공평한 요소들이 개입하는 일은 일절 없다!
인간이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면 신은 모든 인간이 선행을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여건을 절대적으로 공평하게 마련해 줘야만 한다. (그건 훗날 천년왕국 시절이지, 지금은 아님!)

(2) 일한 댓가로 뭔가를 받는 게 아님. 먼저 구원부터 받고 안식부터 한 다음에 일한다. 그 다음에 훨씬 더 수준 높은 보상을 받는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 개인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를 모를 뿐이다. 그 대신, 내가 구원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거나, 신의 존재 여부가 불가지론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3)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이,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무조건 천당 간다. 죄성이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런 특례가 적용되는 애들은 유아세례 내지 침례의 대상도 아니며, 살아 있는 동안 체벌이라도 불사하는 의의 훈육이 필요하다.

(4) 인간이 잡범급 불순종 죄를 지어서 타락하고 자연 세계가 저주를 받고 후손들까지 낙원에서 쫓겨났을 정도라면.. 루시퍼는 더 옛날에 아예 정치범급 반역죄를 지어서 자기네 세상/왕국이 송두리째 멸망했었다.
이 비례 관계를 생각하면 간극 재창조는 하~~~나도 이상할 것 없고 오히려 아주 합리적인 교리인 걸 알 수 있다. (그 이전 세상이 어떤 형태였겠는지 디테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

(5) 탈북자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대한민국 교도소에 갇히지, 북으로 도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영원히 보장이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니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상적인 고난이나 시련, 박해를 겪을지언정, 하나님의 진노인 야곱의 대환란을 겪지는 않는다.

(6) "그때에 성경 역본 세계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가 선호하는 번역을 취사선택하였더라"... 처럼 되지 않고 절대 기준인 말씀이 있다.

2. 신앙 생활의 유불리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자면..

(1) 인간에게 유리한 것: 믿음만으로 구원받고, 구원부터 먼저 받은 다음에 헌신하고 섬기고 일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이건 인간 직장으로 치면 월급부터 먼저 받고 나서 일하는 것과도 같은 정말 파격적인 조건이다. 세상 다른 종교에서 사람들이 얻으려고 죽어라고 노력하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먼저 받고 나서 그 다음에 더 고차원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2) 인간에게 불리한 것: 개인의 미래를 알 수 없으며, 특히 죽을 타이밍은 절대 알 수 없음. (죽기 직전에만 믿고 구원받겠다는 잔머리 봉쇄) 이건 학교 선생이 시험 문제를 학생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신의 권한이고 재량의 영역이다.
또한 기도 응답도 꼭 인간이 원하는 때에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온다는 보장이 절대 없는 것 역시.. 일면 답답하며 불리한 점이다.

합법적으로 알 방법이 없다고 돼 있는 걸 귀신이니 무당이니 점 굿 이상한 예언기도?? 동원해서 알려고 하고,
명백하게 답이 나와 있는 건... 그렇게 믿는 걸 교만이니 어쩌구 하는 것이.. 인간의 뒤틀린 심보이다.

신앙 생활에는 인내와 기다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남과의 상대적인 비교, 외형적인 간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극적인 것만 쫓아가는 것.. 이런 것과는 완전 상극이다.
하지만 내가 성경을 통해 접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인간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다. 권리와 의무가 같이 있지, 오로지 의무만 있는 종교 노예가 아니다. 헌신을 명목으로 신앙 열정페이 착취 같은 것도 없다.

3. 죽음과 관련된 가치관

(1) 귀신 이야기: 죽은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서 현 세상과는 영원히 격리된다. 죽은 사람 흉내를 내는 극소수의 더러운 영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와 함께 살았던 바로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이렇게 이상한 형태로 나타날 일은 절대 없다. 다윗은 "나는 그에게 가려니와 그는 내게 오지 않을 거다"(삼하 12:23)라고 정확하게 통찰했었다.

(2) 영혼 결혼식: 결혼 제도는 사람의 사후에는 의미나 효력이 없다. 이게 현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성경에서 “부활이란 게 있다면 이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이건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나름 굉장히 머리를 굴려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었다(마 22:28).

(3) 죽은 동물에 대한 추모: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불멸의 혼과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대로 소멸되고 끝이다. 물론 그 동물들 '종'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과거에 인간과 그런 경험과 기억을 교감했던 바로 그 동물 개체는 영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죽은 사람이나 죽은 동물을 기억하면서 슬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며, 어차피 죽으면 끝인 동물을 마음껏 학대해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나야 개인적인 감정만 생각하자면 동물이 아니라 아예 죽은 호박 식물까지도 추모하고 싶다.
하지만 추모도 정도껏 하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을 갖고 정신줄 놓을 정도로 엉엉 꺼이꺼이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논어 11편 11장.. 공자)

"내가 땅의 것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말하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12)


"난 그런 건 몰라" vs "답을 뻔히 알려 줘도 니들이 못 받아들이는구나"
이게 바로 인간이 저술한 책과 신이 저술한 책의 관점 차이이다.

성경을 읽으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성격이 얼마나 다르며 사후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관념은 우주나 외계인, 외계 생명 같은 것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친다.
본인은 비록 100% 단정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우주의 규모와 인간의 과학 기술을 감안할 때, 인간이 지구 밖에서 다른 지적 생명체와 마주친다거나 지구 밖의 다른 행성에 정착해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4.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 한자에 양 양(羊)를 부수로 아름답다(美), 의롭다(義) 등의 추상적이면서 굉장히 좋은 뜻의 글자가 굉장히 '뜬금없이' 들어있다.
    개인적으로 무슨 한자에 숨겨진 창세기 같은 설을 다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배 선(船)짜의 8이 노아의 가족을 상징한다는 식의 끼워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저게 훨씬 더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다.

  • 강물은 하류로 갈수록 점점 짜워지지 않는다. 강과 바다가 경계가 있어서 바다에서부터 탁 짠물이 시작된다. (기조력 때문에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는 건 논외)
  • 달과 태양이 하필 지구에서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다.
  •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라는 것도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꽥꽥뷁뷁으로부터 파싱에 스택이 필요할 정도의 복잡한 문법이 저절로 도출되기란..

  • 하필 기원전 5xx~4xx년대부터 중국 대륙에 공자를 비롯해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뜬금없이 출현했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불교의 창시조차도 얼추 이 시기이다. 남유다 왕국의 멸망과 유대인 바빌론 포로기하고 정말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잠언과 전도서의 전파)

세속 세계사의 관점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상하리만치 존재감이 별로 없다. 그러니 모세가 홍해를 갈랐는 것이, 솔로몬 왕 때 정말 그렇게 금과 은이 넘쳐났었는지, 이것들이 진짜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선뜻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세계사에서는 유대교나 기독교와는 별로 접점이 없고 오히려 대척점에 있었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 같은 나라의 문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러나, 그러나.. 기원전 5xx~4xx년대의 저 트렌드는 유대인 내지 성경적인 배경을 토대로 형성되었던 것 같다. 내 느낌상으로는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아 당연히... 이런 증거들은 신의 존재나 지적설계 창조에 대한 '심증'일 뿐이지, 물증은 아니다.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난 구글 지도 상으로 아라랏 산 정상에 방주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돼 있고 예수님이 직접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믿을 뿐이다.;;
논리를 통해서 믿어야 할 게 있고, 증명 없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염두에 두고 믿어야 할 게 따로 있다.

군대가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제한된 대상에게 살인이 허용되는 조직이고,
첩보기관이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악으로 악에 맞서고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를 실천하는 곳이듯..
종교는 아주 제한된 초월적인 영역에 대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와 원천봉쇄의 오류, 진영논리가 허용되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5. 거리 설교 노하우

끝으로.. '복음 선포, 거리 설교'에 대한 자료를 이 블로그 말고 html 고정 페이지에다가 올렸음을 알리며 글을 맺겠다. (☞ 보러 가기)

이건 지금으로부터 5년쯤 전에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비공개 private 자료이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 아니고, 신자들의 일반적인 신앙 생활과 관련된 내용도 아니다.
신자가 불특정 다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불신자의 반응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면 좋을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같은 아이템들을 서술한 매뉴얼이다. 이런 글을 읽을 만한 독자층이 매우 좁으니 굳이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오랫동안 봉인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만들어서 혼자 갖고 있어 봤자 지금까지 제대로 활용할 곳도 없었고, 이 내용 갖고 생산적인 토의를 할 만한 상대도 없다 보니.. 이제야 그냥 봉인을 해제하고 글을 html 형태로 편집해서 개인 홈페이지에다가 올리게 됐다.
A4 7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며, 여러 모로 블로그보다는 영구 박제 자료 아카이빙 형태가 바람직하다.

-- 복음 자체야 고전 15에 매우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 믿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전에 불신자가 이해 내지 동의하지 못하는 전제조건과 배경 설정을 말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이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함을 느꼈다. 신의 존재, 내세의 존재, 그 근거인 성경의 신뢰성, 정확하게 믿어야 하는 대상 등을 소개하다 보면 내용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 이는 마치 교육과정과도 비슷하다. 거리설교에 시간은 한정돼 있고 청자의 집중도도 매우 제한돼 있다. 마냥 자기 성경 지식이나 인생 간증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불신자의 입장에서 교육학적으로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논리적으로 개연성을 갖춘 순서대로 조리 있게 편성할 필요를 차츰 느끼기 시작했다.

-- 범죄 경력 없이 그냥 하루하루 돈 벌고 남 하는 대로 적당히 유흥 즐기고,
“기독교는 다 좋은데 너무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자기 안 믿으면 다 지옥이라고 그러니 싫다.”
“죽으면 다 끝이거나 혹은 어찌 될지는 죽어 봐야 알겠지.”
“성경은 도덕 경전 수준의 내용은 있겠지만 일부 설화나 고증오류도 있고 잔혹한 내용, 요즘 시대에 안 맞는 내용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통계상으로 가장 평범한 전형적인 불신자를 설정했다.

-- 필요 이상으로 세상의 악한 풍조 책망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악한 원인에 의한 결과일 뿐이므로 거리설교에서는 원인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음란방탕이나 동성애 같은 거창한 사회 이슈를 책망하기에 앞서 각 개인 단위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 죽으면 다 끝이다” 이런 것부터나 반박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템을 모으다 보니 챕터가 0부터 13까지 무려 14개나 나왔다.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분이라면 제각기 자기만의 거리 설교 레퍼토리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본인은 이 우한 괴질 시국에서도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손수 선포의 어리석음(고전 1:21)을 실천하고 계시는 이 땅의 복음 전도자들을 응원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3 08:35 2022/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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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를 부정 당하고 있는 IE 브라우저

지난 2010년대 초는 IE6을 작정하고 퇴출시키려던 시기였다. 그 뒤, 2020년대 초는 IE를 통째로 퇴출시키려는 시기가 됐다. 그 전에 플래시와 ActiveX부터 먼저 퇴출됐고 말이다.
그럼 지금은 키보드 보안이나 특수한 암호화 같은 게 필요하면 DLL 형태인 ActiveX 대신, EXE 실행 파일로 다 바뀐 건지? 그럼 요즘은 크롬에서도 인터넷 뱅킹이 가능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뭔가 잘 안 돼서 PC에서 금융 거래를 할 때는 아직 "Edge + IE 모드"에 의존한다.

Media Player는 더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레거시로 남았을지언정 일부러 없애지는 않는 물건이다. 그러나 IE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웹 프로그래밍 플랫폼이며 보안에 민감한 놈이다. 그래서 마소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없애려는 중이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쯤이었나? Windows 10의 어느 버전인가 업데이트를 설치한 뒤부터는 이제 Internet Explorer가 대놓고 실행되지 않게 됐다. 그냥 꺼져 버리고 Edge가 대신 뜬다.
과거 Windows Me가 여전히 도스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9x 커널 기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만 도스로 부팅하거나 도스로 돌아가는 기능을 없애 버린 것과 비슷한 조치 같다.

그러나 IE라는 껍데기 말고, IE가 사용하는 그 트라이던트 웹 렌더링 엔진과 윈도우 컨트롤은 사실상 Windows 운영체제의 일부나 마찬가지이다. 얘에 의존해서 돌아가는 기존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에 그걸 통째로 없앨 수는 없다.
마치 Visual Basic 6처럼 말이다. 얘는 마소에서 21세기 이래로 줄기차게 없애고 .NET으로 대체하려 애썼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Office 제품군의 매크로 언어인 VBA가 여전히 재래식 VB 기반이니.. 이것 때문에라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IE 엔진이 여전히 쓰이는 대표적인 분야는 도움말이지 싶다. 특히 HTML 도움말(*.chm) 말이다. 얘는 이미 10년 이상 전부터 추가적인 개발과 지원이 끊겼으며, 마소로부터 사실상 완전히 버려진 자식 신세이다.
그런데 마소에서 지난 2010년대부터는 '로컬 오프라인 환경에서 열람하는 도움말/문서'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송두리째 폐기한 것 같다. IE나 HTML 도움말만 없앤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메모장을 띄웠을 때 F1을 누르면.. '메모장 도움말'을 Bing에서 검색한 결과가 뜬다.;;; 이렇게 무심할 데가..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현재의 Windows 10/11은 로컬 도움말이란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이젠 Windows\help 디렉터리가 거의 텅 비어 있다. 거기 그나마 들어가 있는 건 뭐 nvidia 제어판이나 개발 관련 듣보잡 문서이지, Windows 자체에 대한 일반 사용자용 도움말이 아니다.

개발툴도 예외가 아니어서 Visual Studio 2010/2012를 즈음해서는 1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msdn Document Explorer가 없어졌고.. 이제 내장 도움말 컨텐츠 다운로드 같은 것도 없어졌다.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는 chm이 아니어도 자기들만 쓰는 html + IE 엔진 기반의 개발 문서 조회 시스템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걍 단순 정보 조회는 구글로, 문제 해결 정보는 Stack overflow를 뒤지라는 뜻인 듯..

안 그랬으면 HTML 도움말을 IE 대신 크로뮴 엔진 기반으로 다시 만드는 지원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것조차 없다.
근데 현실적으로는 다른 대안이 있나? Windows용 앱 내부에서 뭐 최신 반응형 웹 따위 바라지도 않고, 간단히 html 렌더링해서 표시하고 싶은데 IE ActiveX 컨트롤보다 더 간편한 방법이 있을까? 그건 의문이 든다.
아무리 웹이 기존 앱의 영역을 많이 잠식하긴 했어도, 그래도 앱 내부에서 웹페이지를 표시할 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점은 웹페이지의 인쇄이다.
내 경험상.. 당장 이 블로그 웹페이지를 같은 pdf 드라이버로 인쇄해 보면 IE는 그럭저럭 최적화된 형태의 pdf가 만들어진다. 그 반면, 크롬은 훨씬 더 bloat된 이상한 형태로 pdf가 생성되며, 인쇄하는 데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무작정 IE를 없애 버리기에는 제대로 된 대안· 대체제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2. 이상하게 바뀐 메모장

올해 초쯤에 Windows 11의 업데이트를 설치하고 나자.. 프로그램 창의 ‘최대화’ 버튼의 동작이 살짝 달라졌다. 마우스로 얘를 가리키면 고전적인 전체 최대화 외에, 좌우 1:1:1 등 어느 레이아웃으로 최대화할지 고르는 타일 메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Windows 7에서 창을 마우스로 화면 좌우상하 구석으로 끌었을 때 그렇게 배치하는 기능이 처음 추가되긴 했는데, 그게 13년쯤 뒤에 저렇게 강화됐다. 요건 뭐.. 나쁘지 않아 보이네.

그런데 그것 말고도 마소가 꽤 큰 사고를 쳤더라. 세상에.. 메모장이 메트로 UI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다.
본문이 운영체제 기본 에디트 컨트롤이 아니라.. 워드패드와 동일한 리치 에디트 기반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이거 완전 비호감이더라. 메모장은 단순한 앱의 상징 마지노 선으로 봉인 좀 시켜 놓지, 왜 저런 짓을 했나 모르겠다. 사람들이 메모장이 기능이 많아서 애용하는 줄 아는가??

그런 주제에 UTF-16랑 KS X 1001 인코딩의 파일이 열리지 않고, 우클릭 컨텍스트 메뉴에 알파벳 단축키가 먹히지 않는다. 예전에 되던 것이 안 되니 새 버전을 사용하기가 매우 꺼려지게 된다.
저런 쓸데없는 걸 건드리지 말고, sihost.exe가 CPU 다 쳐먹으면서 폭주하는 버그나 좀 고칠 것이지.. 그 문제는 여전한 걸 보고는 더 좌절했다.

난 지금까지도 솔직히 Win10이랑 11의 차이를 모르겠다. 업데이트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10에서는 작업 표시줄을 우클릭해서 바로 작업 관리자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11에서는 못 하고..
정말 필요한 기능이 아니라 그냥 괜히 바꾸기 위해서 바꾼 게 많다. 이럴 거면 걍 10의 업데이트나 낼 것이지 왜 11이라고 차별화를 한 걸까?

난 멀쩡히 잘 돌아가는 기능들에다가 쓸데없이 자꾸 메트로 UI를 도입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현실에서 멀쩡한 길거리 인도 보도블럭을 쓸데없이 교체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 그래, 25년쯤 전에 마소에서 Windows UI 셸을 전부 IE4 Active desktop으로 도배하려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1 08:36 2022/06/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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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기 기관과 컴퓨터

20세기 중반에 전자식 컴퓨터나 그 전신뻘의 물건이 최초로 개발되어서 수행했던 임무는 탄도 계산이나 암호 해독 같은 군사 관련 일이었다. 게임이나 무슨 수학자 덕질 같은 용도가 아니었다. 인터넷도 맨 처음엔 생각보다 굉장히 군사· 안보 상의 목적과 필요 때문에 개발되었다는 것을 알 만한 분은 아실 것이다.

그리고 옛날에 증기 기관이란 게 최초로 개발되어서 투입된 용도는.. 기억하시는가? 무슨 군사나 교통수단이나 면직물 가공 기계가 아니라, 탄광 내부에 찬 지하수를 빼내는 펌프의 가동이었다. 즉, 자신이 석탄을 소모하면서 역으로 석탄을 캐는 일을 도와줬던 것이다. (물론 자기가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석탄을 캐는 걸..)
그렇게 태동했던 기계가 하나는 산업 혁명을 견인했고 다른 하나는 정보화 시대라는 걸 만들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2. 도트 프린터와 비트맵 폰트

21세기, 2020년대를 찍고 있는 요즘은 자그마한 종이 쪼가리에 찍혀 나오는 영수증이나 카드 명세서, 승차권/탑승권, 주문 번호표, 관공서 차례 대기 번호표조차도 다 열전사 같은 비충격식 프린터로 인쇄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쌍팔년도의 잔재인 찌익~ 찍 도트 프린터의 출력 결과물을 아직까지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은행이라 하겠다. 독보적이고 유일하다. 이게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흥미롭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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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의 책장을 넘겨가며 거래 내용을 인쇄한다거나, 혹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은행 특유의 각종 양식 문서의 일부란에 문자와 숫자를 찍는 용도로는 재래식 도트 프린터가 여전히 유용한가 보다. 물론 전자 통장, 전자 문서 때문에 예전에 비해서 필요성이나 활용 빈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트 프린터가 독특한 이유는 찍혀 나온 글자의 자형, 즉 폰트부터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트 프린터는 해상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겨우 본문용 크기에서 산돌이니 윤디자인이니 하는 상업용 폰트를 보기 좋은 퀄리티로 찍을 수 없다. 그 대신 그 저해상도에서 그럭저럭 보기 좋게 특화된 전용 비트맵 명조/고딕 같은 폰트가 쓰인다.

지금 Windows의 굴림/바탕/돋움 같은 폰트만 봐도, 대략 19포인트까지는 이런 비트맵 버전이 쓰이다가 20포인트부터는 일반적인 윤곽선 버전이 투입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게 저해상도 프린터에서는 인쇄용으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저해상도 비트맵 폰트를 종이 인쇄를 통해 볼 수 있는 곳은 은행이고, 화면 형태로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각종 LED 전광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도 해상도와 색상이 증가하면서 윤곽선 폰트(= 출판물용 고퀄 폰트)로 대체돼 가고 있다.

아날로그 숫자 카운터가 원래 주유소 주유기, 테이프 재생기의 구간, 자동차 계기판의 거리계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가 지금은 싹 다 사라지고 수도· 전기· 가스 검침기에서나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 같다.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멸종 급으로 자취를 감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공중 전화처럼 말이다.

나 역시 비트맵 폰트의 끝물 마지노 선을 지키는 프로그램을(날개셋 편집기..) 보유하고 있는 관계로.. 이런 비트맵 폰트를 주위에서 보면 괜히 반갑다. 컴퓨터라는 게 처음 등장하던 시절에 쓰였던 투박한 추억의 폰트들을 최대한 복원해서 내 프로그램에서 재생해 보고 싶다.

그나저나, 요즘은 민증이나 면허증 같은 신분증들도 온통 전산화됐기 때문에 실물의 필요성이 많이 없어졌다. 잃어버렸을 때의 타격도 많이 덜하다.
하지만 현물 실물의 중요성이 여전히 가장 크고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개인 증서는 아무래도 여권이지 싶다. 당연히 외국 나가 있는 중에 말이다. 신원 조회라는 게 전국구 급으로는 수월하게 되지만 그게 세계구 급으로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무슨 음모론자들의 주장처럼 세계 단일 정부로 가는 건 말처럼 호락호락 쉽게 가능하지 않다.;;

여권도 카드가 아니라 통장 같은 수첩 형태이고, 도트 프린터로 찍은 기록들이 덕지덕지 추가될 것 같은데 그래도 얘는 통장보다는 인쇄 스타일이 옛날식이 아닌 것 같다.

3. 일반인 소비자가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

(1) 증기 같은 외연 기관은 교통수단의 동력원으로는 진작에 퇴출됐다. 허나, 외연 기관 자체는 증기 터빈의 형태로 지금까지도 엄연히 현역이다. 지금 세계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압도다수는 증기 터빈 발전기를 돌려서 생산된 것이다. 화력이든, 원자력이든.

(2) 선박은 비행기에 밀려서 대륙 간 장거리 여객 교통수단으로는 완전히 퇴출됐다. 그러나 화물을 살펴보면?? 선박이 없이는 세계 물류가 돌아갈 수 없다. 운하가 하나 틀어막히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얼마 전에 목격한 바 있다.

(3)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으로 정보 전송이 가능한 것은 압도다수가 인공위성이 아니라 해저 케이블 덕분이다.

(4) 8비트 CPU는 성능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다루는 PC나 게임기용으로는 수십 년 전에 진작에 퇴출됐다. 그러나 그 정도로 높은 성능이 필요하지 않고 최소한의 제어만 하면 되는 기기들.. 밥솥, 자판기, 전광판 이런 데서는 저렴한 가격에 낮은 전력 소모 등 유용한 구석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임베디드용으로 세계에서 여전히 수십억 개씩 생산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다 비유해 보면 거의 척추동물(PC)과 무척추동물(임베디드..)의 개체수 차이와 비슷할 정도이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니고 어중간한 16비트가 콩라인이 됐을 뿐..

(5) 오늘날 카세트 테이프는 컴퓨터에서나 오디오에서나 모두 한물 가고 퇴출됐다. 그러나 테라/페타바이트 급의 초 거대 용량의 백업 보관용으로 가장 우월한 저장 매체는 여전히 자기 테이프이다. 물론 이런 건 일반인이 가정에서 취급하는 급의 물건은 아니다.

(6) 컴퓨터의 통신 수단으로서 구닥다리 전화선과 모뎀은 진작에 퇴출되었다. 하지만 서류를 주고 받는 용도로 전화선 기반의 팩시밀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디지털이나 인터넷과 동떨어져 있지만 고유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게가 지금 영업을 하는 중인지 알아보는 제일 쉽고 확실한 방법은 카톡이고 이메일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그냥 전화를 걸어 보는 것이듯이 말이다.;;
복사기, 스캐너, 팩스, 프린터는 종이를 다루는 복합기로 싹 통합해 버리기에 딱 좋아 보인다.

4. 저렴해지는 것, 비싸지는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랜저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3~4천만 원대인 걸 아시는가..??
배기량과 가격만 비슷하지 엔진 성능이나 효율, 편의 시설은 30년 전과 지금이 쨉이 안 될 것이고, 물가 상승도 쨉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지내냐고 누가 물었을 때 그랜저로 답하기가 지금이 훨씬 더 쉬워진 셈이다. 물론 그 대신, 그랜저보다 더 비싼 고급차가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1990년대 초엔 486 컴터 한 대가 3백~5백만 원이었다. 당연히 그 시절 물가 기준으로. -_-
버스비, 우유· 라면처럼 원래부터 소액이던 것은 가격이 몇 배로 무섭게 뛰었지만, 옛날에 왕창 비쌌던 고급 기계는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거나 더 싸졌다.

컴퓨터는 CPU뿐만 아니라 메모리도 Windows 95가 처음 나왔던 시절에 4MB를 추가로 장착하는 데 십몇만 원 이랬었다.
이러니 PC 환경에서 16비트 도스를 좀체 졸업할 수 없었다. 가상 메모리를 구현하고 현대적인 32비트 운영체제를 돌리려면 메모리를 관리하는 데 드는 메모리도 필요하고 도스보다 훨씬 고사양의 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x86이 구닥다리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조밀조밀 CISC 방식으로 만들어진 건 메모리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사이에 메모리가 갑자기 64, 128, 256MB 이렇게 순식간에 뻥튀기 되기 시작했다. CPU 클럭 속도만 뻥튀기 된 게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메모리가 값싸고 풍족해진 덕분에 그 당시 Windows 9x 계열의 퇴출이 더욱 앞당겨지고 2000/XP 같은 NT 계열이 대세가 될 수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의 본좌인 삼성 전자에서 그 당시에 갑자기 외계인 고문과 공밀레를 열나게 시전해서 기술 혁신을 이뤄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무어의 법칙뿐만 아니라 황의 법칙도 거론될 정도였으니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동안 외모처럼, 어떤 분야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격이라는 것도 있는가 보다.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5. 멀티미디어 기능

옛날에 PC가 성능이 뛰어나지 못했을 때는.. 텍스트 모드에서 한글· 한자를 찍기 위해서(!!!), 부동소수점 연산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 '삑삑'이 아닌 레알 사운드를 듣기 위해서 별도의 카드를 꽂고 애드온을 컴퓨터에다 장착해야 했다. 뭐, 상당수는 쌍팔년도 얘기이지만 1990년대 초중까지만 해도 동영상 재생 정도는 별도의 MPEG 카드를 꽂아서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 그래픽과 사운드는 기본적인 수준이야 CPU 메인보드에 이미 다 기본 내장됐다. 저 분야에서도 SoundMAX인지 인텔 비디오인지 하면서 Intel이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했다.
  • 이제는 동영상 재생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부드럽게 녹화할 때에나 캡처보드 같은 별도의 카드가 필요한 듯하다. 물론, 평범하게 컴터를 다루는 모습이 아니라 복잡한 게임 장면을 녹화하는 것 말이다.
  • 아니면 GPU까지 빡빡 혹사시키는 high-end급 온라인 게임을 할 때, 머신러닝을 시킬 때..

  • TV 수신 카드는 요즘도 수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 모니터와 텔레비전이 모두 디지털에 LCD 기반으로 바뀌다 보니, 오랫만에 켰을 때 과거의 브라운관 수상기처럼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고 상이 커지는 모습도 볼 일이 없어져 있다. 이런 모션은 이제 프로젝터를 켤 때에나 가끔 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08 08:35 2022/06/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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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자연 세계가 성경이 말하는 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가 인지하는 생화학이라는 분야의 과학 관찰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길고(창5, 사 65:20) 육식동물들도 초식을 했을 거(사 65:25)라는 건 좀 고전적인 이야기이다. 더 생각해 보면...

(1) 식물이 더 빨리 쑥쑥 큼직하게 잘 자랐을 것이다.
힘들게 밭 갈고 잡초 뽑고 약 치지 않아도, 유전자 다양성과 면역력을 몽땅 삼싸먹으며 마개조 학대에 가깝게 품종개량을 하지 않아도.. 식용 열매가 큼직하게 많이 잘 맺혔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호박이 자라는 걸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니 이 생각이 절실히 들더라.

(2) 동식물에 지금 같은 원인 모를/악질적인 병충해가 없었을 것이다.
식물의 적은 식물이고 서로 견제하고 말려 죽이고 독을 만들어서 내뿜고.. 우한 괴질 같은 이상한 바이러스가 생긴 걸로도 모자라서 자꾸 이상한 변이가 생겨나는 거 말이다.
이런 메커니즘의 과학적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것도 성경적으로는 응당 죄의 저주가 야기한 결과이다.

(3) 모기가 흡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난 예수님은 성육신했던 당시에 더운 여름에도 모기에 물려서 피를 빨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4) 인간 포함 동물의 배설물이 지금 같은 끔찍한 외형과 악취를 내뿜지 않고, 시종일관 그냥 태변과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다.

(5) 인간 포함 동물의 사체가 지금 같은 끔찍한 외형과 악취를 내뿜지 않고, 그냥 죽은 식물이 말라 비틀어져 분해되는 것과 별 차이 없이 분해됐을 것이다.

그래서 만해 한 용운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똥, 그보다 더 더러운 건 시체.. (+ 그보다 더 더러운 건 네놈들의 마음)"라고 그랬었다. 이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모두 굉장히 잘 통찰한 발언이다!

이 정도면 혈액도 그렇고.. 뭔가 단백질의 분자/원자 구조 차원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나님이 3천여 년 전의 옛날 사람인 욥이 아니라 양자역학과 DNA 분자생물학을 아는 현대의 물리학자 생물학자 등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욥기 38~41장 사이의 배틀을 뜬다면 어떤 질문을 하실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내가 태초에 공간의 중심을 중성자로 채웠을 때 넌 어디에 있었느냐? 알고 있다면 말해보아라. 중성자의 붕괴는 전자와 양성자를 낳고 원소를 생성시키는데 그 중성자 붕괴의 반감기는 누가 정했느냐?" 아마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올 테니까.. =_=;;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막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탄적인 생각 이런 식으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정도까지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진화론은 무신론보다는 죄의 저주를 받은 이 자연 세계에서 존재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과 죽음을 관찰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고, 그 관찰 자체는 과학적으로 명백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 말고 생명의 "분화" 말이다.

지금 자연에 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지적설계의 산물 "만" 있는 건 절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모기의 흡혈은 말할 것도 없고..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다 남의 알을 밀어내고 자기 알 슬쩍 낳는 습성도 그럼 하나님이 처음부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일까?
마냥 적대시하고 대립할 게 아니라, 그림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 문제 접근 방식이라 여겨진다.

그럼 다음으로, 위의 (1)에서 논했던 식물의 생산력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인간은 4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식물의 몸체나 과육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 공업을 위한 석유, 물, 희소 화학 원소뿐만 아니라 저런 농작물 종자도 전략 안보 물자인 게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은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식량 생산이 획기적으로 늘었으며, 지구에서 50억을 넘어 80억 인구를 부양 중이라고 그런다. 질소 합성법을 개발하고 오랫동안 어마어마한 품종 개량까지 한 덕분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인간의 욕심이나 정치·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지, 절대적인 식량 생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난 도시 촌놈 농알못이다 보니, "그럼 열매 먹고 남은 씨 중에 큼직하고 소금물 아래로 가라앉는 걸 아무거나 심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일부 곡물은 종자 회사가 특단의 생산력 마개조 최적화를 한 종자를 매년 구입해야 된댄다.
그 최적화는 당대에만 유효할 뿐, 후대로 유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걔가 맺은 과육 안에 들어있는 씨를 또 뿌려 갖고는.. 원래 종자와 동등한 양과 질을 지닌 열매가 절대로 맺히지 않는다.

인간들이 도대체 식물에다가도 무슨 짓을 하길래..???? 그냥 비료 주고 약만 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렇다고 종자 회사가 악의적으로 종자에다가 터미네이터 락을 건 것은 아니고.. 단순히 유전적인 특성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한다.

군견이나 경주마 같은 건 체력 좋은 우수한 놈이 대대로 계속 나오도록 혈통을 특별히 보존한다고 하는데 옥수수 종자는 어떻게 관리되나 모르겠다.
이 품종 개량이라는 게 죄로 인한 땅의 저주를 근본적으로 완전히 풀어 버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조건부로 일사적으로 우회· 회피만 했을 뿐이다.

각종 산기슭이나 강변의 공원 공터에 '무단 경작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남의 사유지라면 당연히 무단 경작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차피 누구의 땅도 아니고 야생 자연을 재현해 놓은 곳에다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을 좀 심어서 가꾸는 게 왜 문제이고 금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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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차도 현재 세상의 자연이 에덴 동산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관상용 꽃, 풀, 나무 따위를 심는 게 아니라 먹을 만한 열매를 얻기 위한 작물을 심으려면, 주변 환경을 있는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절과 변형을 많이 가하고 물과 온도, 영양분 튜닝을 많이 해야 한다.

냄새 나는 퇴비를 잔뜩 뿌려야 하고,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비닐 등 각종 구조물을 설치해야 하고, 병충해 대비를 하느라 심지어 독한 농약도 쳐야 한다. 게다가 작정하고 이런 식용 작물을 재배하는데 겨우 한두 그루만 심지는 않을 테고..
결국은 작은 텃밭이라도 농작물이 자라는 곳은 천연 자연과는 다른 장소가 되어 버린다. 이는 공원의 설립 취지를 망치므로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과육을 많이 내는 쪽으로 품종개량된 작물은 야생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집돼지가 멧돼지에 비해 야생에서 제대로 생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온통 시퍼런 식물들로 가득한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정글이 정작 '녹색 사막'이라고 불리며 광합성 산소 공급 이외에 실질적인 인구 부양은 못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땅에 임한 천연 자연에 대한 저주의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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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농사의 특성이 자연의 특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감을 잡았다면..
강가나 공원 등, 적당히 흙 밟을 수 있고 수풀 우거진 곳이라고 해서 각종 음식물 쓰레기--그것도 축축하고 냄새 나는 것--를 함부로 버리거나 파묻고, 심지어 방뇨까지 하면서 “어차피 다 거름이 될 거니까 괜찮다” 이러는 게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쓰나 배설물이 썩고 분해되면 물론 거름이 되기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하루 아침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흉측한 비주얼과 악취, 벌레, 위생 문제 뒷감당은 어찌 하려고?
거름을 만들 거면 자기 텃밭이나 뒷간, 아니면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서나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공공장소에서는 자제해야 한다.

심지어 천연 퇴비 말고 화학 비료도 마찬가지다. 화학 비료는 당장 공기 중에서 악취를 풍기거나 세균과 벌레를 꼬이게 하지 않는다.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 아니며, 중금속이나 농약 같은 유독성 물질도 아니다.

얘는 흔한 편견과 달리, 성분 자체가 식물이나 인체나 환경에 해로운 게 아니다. 단지,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이 일부만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문제이다. 그래서 잉여 분량이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물에 씻겨 들어갔을 때 부영양화를 야기해서 수중 생물을 공멸시킨다.

다시 말해 얘는 환경에 문제를 끼치는 방식이 다른 여느 인공 화학 물질과는 좀 다르다. 어찌 보면 식물계의 정크푸드 인스턴트 식품인 건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싼 가격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하고 효과도 있지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고 건강이나 환경을 해칠 위험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식물계의 도핑 약물까지는 아니고 가공식품에 가까운 듯.. ㄲㄲㄲ

이런 이유로 인해 농지가 아닌 공원이나 텃밭 수준에서는 농약과 마찬가지로 화학 비료의 사용도 금지된다. 허나, 현실에서는 이런 걸로 영양을 팍팍 주입하지 않으면.. 농사에 들인 노력 대비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과육이 풍부하게 많이 맺히질 않는다. 병충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식량을 생산하는 논밭은 평범한 자연과는 형태가 좀 다른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이다.
잡초 및 병충해와 싸우며 힘겹게 자라고 있는 텃밭의 호박이나, 새끼들 데리고 산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멧돼지들이나.. 다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롬 8:22) 사례에 속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인간들이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건 성격이 약간은 다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05 08:35 2022/06/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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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카낭의 비극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50년 부근에 우리나라의 '축구' 역사는 정말 가난함, 배고픔, 눈물 젖은 빵, 필살의 투혼, 처절함 그 자체였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가까스로 출전했을 때는 16강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스웨덴에게 0:12로 대패했다.

1954년 FIFA 월드컵(스위스)에 첫 참가할 때는 지역 예선에서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과 맞닥뜨리게 됐는데..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본한테는 죽어도 절대 질 수 없다는 불굴의 투지로 일본을 꺾고(1차전 5:1, 2차전 2:2) 본선 진출까지 이뤘다.

이전의 런던 올림픽이야 전쟁이 끝난 직후였고 일본이 전범국 명목으로 반성하고 찌그러져 있느라 참가를 아예 못 했던 상태였다. 허나, 저 때는 세월이 흘러 그런 버로우가 풀렸기 때문에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일전도 존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일본을 꺾긴 했지만, 본선에 가서는 헝가리에게 0:9로 지고, 터키에게도 0:7로 져서 탈락했다.
스코어만 보자면 이거 무슨 축구가 아닌 야구의 처참한 콜드게임 스코어 같다. 그러나 이것도 최악의 여건 속에서 홍 덕영 골키퍼가 스코어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슈팅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막아낸 덕분에 얻은 결과였다. 그래서 유럽의 축구 팬들이 한국 골키퍼에게서 싸인을 받아 갈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뭉클한 "졌지만 훌륭하다"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반면.. 비슷한 시기에 지구 반대편의 중남미 브라질에서는 일명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처절한 흑역사가 만들어졌다.

때는 1950년 7월 16일.. 우리나라는 저 때 전쟁 나서 대전까지 빼앗기네 마네 하던 상태였으며, 조지 리비 중사, 김 재현 기관사 이런 분들도 딱 이 시기에 전사했다.
허나, 그때 브라질에서는 FIFA 월드컵이 개최 중이었다. 브라질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매 경기마다 압도적인 대승과 함께 결승에 진출했으며(스웨덴 7:1, 스페인 6:1), 마지막 우루과이를 상대는 꼭 이길 필요 없이 비기기만 해도 최종 우승이 예정돼 있었다.

브라질은 이 정도면 이미 다 이긴 경기라고 전국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자화자찬용 메달을 미리 만들어 놓고 우승 자축 연설문도 다 써 놓고.. 이 대회만을 위한 승전가까지 작곡하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우루과이에게 1:2로 통한의 역전패를 하고 말았다.
스코어가 1:0이었다가 1:1, 1:2로 바뀌니.. 무려 15만~20만 명이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던 관중석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싸늘하게 식어 갔으며, TV 카메라는 후반전부터는 관중석은 아예 비추지도 않기 시작했다.

우루과이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 버리자 브라질 관중들은 몽땅 넋이 나가 버렸다. 메달이고 자축 연설이고 승전가고 몽땅 다 나가리가 났다.
무려 17만 명이 넘게 모였었다고 하는 관중석은 파리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 태초의 고요 그 자체이다가.. 전국적으로 멘탈 붕괴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과 머리에 권총 쏴서 자살한 사람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우와, 을사조약이 맺어졌을 때의 조선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_=;;
우루과이 팀은 이기고도 이 분위기에 해코지· 봉변 당할까 봐 무서워서.. 시상식은 날림으로 대충 때운 뒤, 본국으로 줄행랑을 쳐야 했다.;;
그렇잖아도 브라질과 우루과이는 역사 배경 때문에 서로 사이가 꽤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경기는 반쯤 우리나라 한일전 같은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고..

그 다음날 브라질에서는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다.
선수들은 자국 축구 국대에서 영원히 퇴출되었고 어지간한 흉악범 이상으로 평생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축구 경기에서 진 걸 갖고 사람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 브라질 축협에서는 그 선수들의 유니폼을 대신 다 수거해서 싹 불태워 버리고, 유니폼의 도색까지 바꿨다. 원래 흰색이다가 지금 같은 노랑 상의+파랑 하의로 그때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 대한 항공이 1983년의 비극적인 007편 격추 사고를 계기로 지금 같은 형태(하늘색)로 기체 도색을 바꿨듯이 말이다.

저 경기 당시에 브라질 측의 골키퍼였던 '모아시르 나시멘투'(1921-2000)는 잘나가던 유능한 선수였다. 이 경기에서도 딱히 실수 때문에 두 골을 실점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패배로 인해 그야말로 역적으로 몰리고 커리어가 완전히 꼬여 버렸다.
길거리에서 "어, 엄마, 저 아저씨는 누구야?" / "응, 우리 국민들을 절망과 불행의 나락으로 몰아넣은 원흉이야" 이런 소리를 듣기도 했댄다.

그에게도 이게 평생의 한이 됐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는 "우리나라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징역 30년이 최대인데, 난 그 경기에서 한번 졌다는 이유로 50년을 죄인 취급을 당했다"란 말을 죽기 전 유언으로 남겼을 정도였다.

1950년, 마라카낭에 있었던 브라질 선수들 중, 그나마 이때 예비 선수 명단에만 올랐고 실제로 경기는 단 1초도 뛰지 않았던 선수 한 명(니우통 산투스의)만이.. 1952년부터 월드컵 국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건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축구 3· 4위전 때 홍 명보 감독이 병특 혜택을 주기 위해 경기 종료 직전에 김 기희 선수를 딱 4분 설렁설렁 뛰게 해 준 것과 비교되는 면모이다.

한편,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골을 넣었던 우루과이의 '알시데스 기지아'(1926-2015) 선수는 역시 비슷한 시기인 2000년경, 늙은 노인이 된 상태로 한번 브라질을 방문했었는데..
입국장에서 새파랗게 젊은 20대 여성 세관원조차 저 사람을 바로 알아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 경기에서 역전골 넣었던 분이군요~!"
"아.. 아니, 그건 50년 전 일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사건을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 정도면.. 브라질에서 마라카낭은 이스라엘에서 마사다 내지 아우슈비츠 정도의 트라우마가 걸린 이름인 것 같다..;;
도대체 축구 하나에 얼마나 뼈를 묻었길래..!!

이런 홍역을 치른 브라질이었지만, 쟤들은 그로부터 64년이 지난 2014년에 다시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했을 때는 마라카낭을 능가하는 흑역사 비극을 또 창조하고 말았다. 이름하여 미네이랑의 비극. 7월 8일에 실시된 준결승전 경기에서 브라질은 아시다시피 독일에게 무려 1:7의 스코어로 참패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 올림픽(2012년이 아님!)에서 0:12로 진 게 역대 최다 점수차였던 반면, 쟤들은 저 때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을 갱신했다.

얼마나 민망한 광경이 벌어졌으면, 해설자와 캐스터조차 브라질을 은근슬쩍 동정하고 응원하면서 "아~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브라질이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될 텐데요..! ㅠㅠㅠㅠ" 이럴 정도였고..
서양에서는 방송에서 스코어를 기재할 때 7이 1의 오타가 절대 아님을 인증하면서 밑에다 seven이라고 써 줄 정도였다.

이 경기가 끝나고 다음날, 브라질의 일부 신문은 1면을 그냥 백지로 내걸면서 멘붕하기도 했다.
스코어와 결과 자체는 미네이랑이 과거의 마라카낭보다 훨씬 더 처참하지만, 그래도 이때는 진작부터 패배가 예상됐던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패닉이나 심장마비· 자살 같은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상이다.
2014년 월드컵 때는 우리나라 국대도 굉장한 졸전과 함께 탈락해 버려서 홍 명보 감독의 커리어에도 오점이 남았을 정도인데.. 브라질도 만만찮은 상태였던 셈이다. 세상 어느 분야건 영원한 강자란 건 없거나 극히 드물다고 하겠다.

※ 여담

  • 축구의 각종 경기장 규격과 룰이야 50여 년 이상 전의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바뀐 게 없겠지만, 그래도 옛날 경기들이 요즘 경기보다 스코어가 좀 더 큰 편이다. 국가별 실력과 기량이 지금만치 상향평준화되지 않았고 작전이랄지 전략이 다들 비슷하게 수렴진화도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 축구 경기 때 맨날 클리셰로 흘러나오던 BGM "올레 올레 올레~! name of the game.. football!!" 이건 1986년 멕시코 FIFA 월드컵 때 처음으로 소개된 곡이로군...!

Posted by 사무엘

2022/06/02 19:36 2022/06/0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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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야 맹수가 전멸했고 생태계가 단순하다 보니, 야생 동물 때문에 인간이 골머리를 썩는 게 고라니나 멧돼지 정도에 불과하다. 지리산 반달곰..?? 이건 뭐 등산객에게나 해당될 것이고 실제로 잘 지내는지도 난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일본의 북부 홋카이도 지방에서는 호랑이도 아니고 곰에게, 사람이 봉변 당하는 일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근현대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개척되면서 인간의 거주지와 기존 동물의 서식지가 충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농작물이나 가축만 털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공격 받아서 죽거나 다치고, 심지어 곰에게 잡아먹히기까지 한 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내 블로그가 전문적인 잡학 위키는 아니니 모든 사건을 미주알고주알 언급하지는 않지만..
여러 사건들 중 1915년 말에 벌어진 (1) '산케베츠 불곰 사건'은 일본 역사상 단일 맹수에 의해 발생한 가장 끔찍한 재앙이었다. (☞ 링크)

불곰 한 마리가 몇 번 사람들에게 쫓겨나더니 그 다음엔 작정하고 흑화해서 주변 사람들을 몇 차례 공격한 것이다. 그래서 총 6명 + 태아 1명이 목숨을 잃고 3명이 다쳤다.
이 곰은 이전에도 살인에 심지어 식인을 저지른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사건 현장을 계속해서 집착해서 맴도는 습성 덕분에 엽사에게 금방 발견되어 사살도 됐다.

훗날 이 지역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모형과 피해자 위령비를 세웠는데, 흥미롭게도 가해자인 곰에 대해서도 위령비를 만들어 줬다. 곰도 인간의 무분별한 개척 때문에 서식지를 빼앗긴 피해자라는 정황을 참작했기 때문이다.

2005년 4월에 발생한 후쿠치야마 선 전철 탈선 사고를 생각해 보자. 이때도 사고를 낸 서투른 기관사가 같이 사망했지만, 1주기 행사 때는 기관사를 제외한 승객 사망자 106명만 공식적으로 추모했던 게 같이 떠오른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의 집단주의 국민 정서상, 가해자를 추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사고는 기관사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지나치게 빡빡한 스케줄과 가혹한 벌칙, 징벌적 똥군기를 강요했던 JR 서일본 조직의 총체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법적 판단이 바뀌었다. 그러니 지금 관점에서는 이 사고 역시 기관사도 실드와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나저나 저 때 불곰이 실내에 쳐들어왔을 때, 어떤 남자는 넘어진 자기 부인을 밟고 천장 근처 대들보로 양상군자-_- 마냥 올라가서 곰을 피했던 모양이다. 아이고~~
다행히 남자도 살고 부인도 살았지만.. 그 뒤로 이들 부부 관계는 당연히 완전 파탄 나 버렸다고 한다. 무슨 대놓고 불륜 바람이 아닌 범위에서 가히 최악의 대형 사고이지 않은지?

산케베츠 불곰 사건은 피해 규모가 큰 사건이었고, 그 다음으로 본인이 하나 더, 자세하게 언급하고 싶은 사례는 (2) 1970년 7월 말에 벌어졌던 “후쿠오카 대학 반더포겔(자연인 내지 산악활동) 동아리 불곰 습격 사건”이다. 이건 사건의 진행 과정이 굉장히 처절하고 임팩트가 크다. (☞ 링크)

일본 혼슈의 완전 남서쪽 끝인 후쿠오카 대학에 다니던 혈기왕성한 20살 남짓 남자 대학생들 5명이 홋카이도까지 원정 가서 산맥 횡단 등산을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산 중턱 공터에서 텐트를 치고 자연을 즐기며 한가롭게 쉬기 시작했는데.. 이때 문제의 야생 불곰(암컷)과 처음으로 마주쳤다.

그 곰은 처음에는 사람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텐트 밖에 놓여 있던 배낭들을 뒤적이면서 짐 속의 음식만 털어 가려 했던 것 같다.
허나, 곰알못이던 대학생들이 어설프게 라디오 틀고 금속류를 부딪히고 모닥불을 피우면서 그 곰을 쫓아냈다. 그리고 곰이 보는 앞에서 배낭을 도로 회수했다.

그 곰은 처음에는 순순히 물러가는 듯했지만.. 해가 떨어진 당일 밤 9시쯤 다시 나타나서 텐트의 한쪽 벽면을 앞발로 툭 쳐서 구멍을 내고는 “돌아갔다.”
그리고는 이튿날 새벽 4시 반쯤에 “또” 나타나서 텐트를 잡아당기고 안으로 들어가려 들었다. 결국 이 애들은 텐트를 버리고 반대쪽으로 도망가야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대놓고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한번 시작된 그 곰의 집착과 찝적거림과 뒤끝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큰 야생동물의 근처에 있으면 콧김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거나 느껴지는가 보다.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 동화에도 묘사돼 있음..)

이 사람들은 일단 곰으로부터 무사히 도망치고 산에서 아침을 맞이하긴 했다. 이때 짐이고 산 정상이고 다 포기하고 깔끔하게 하산했으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이때는 다른 대학 산악팀 일행과 마주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개인 여행 가족 여행이 아니라 동아리의 활동 실적 홍보 경쟁 중이어서 등산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여러 대학생들이 오랫동안 알바 뛰며 돈 모아서 굉장히 고생해서 홋카이도까지 원정 갔으니 말이다.

그들은 다른 곳에 가서 텐트를 수리하고 이젠 상황이 완전히 종료됐다고 생각하고 둘째 날 야영을 시작했는데.. 어제 만났던 곰이 거기까지 또 따라와서는 이번엔 1시간씩이나 텐트 곁에서 죽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사라졌다.

이들은 그제서야 더는 안 되겠다는 걸 느끼고 밤길에 무리해서 하산을 시작했는데.. 어느 땐가 맨 뒤의 멤버가 등골이 오싹해져서 뒤를 돌아보니 이런 제기랄, 그놈의 불곰이 살금살금 쭐래쭐래 따라오고 있었다!

얘들은 혼비백산해서 줄행랑을 쳤지만, 곰에게 직접 쫓기게 된 1명, 그리고 근처의 다른 산악팀이 버리고 떠난 텐트로 홀로 도망친 1명. 총 2명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연락이 끊겼다.
이런 상태가 되니 나머지 3명도 마냥 하산할 수 없어져서 이젠 곰을 피해 근처 험준한 암벽에서 밤을 지새웠다.

셋째 날 아침엔 나머지 2명을 찾다가 포기하고 멘붕 상태에서 진짜 하산을 다시 시작했는데..
해가 떴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시야가 불량한 상태에서 이번엔 바로 코앞에서 또 그 곰과 마주쳐 버렸다. 꺄아악~!

1명은 곰에게 쫓기면서 아웃.. 결국 원래 멤버 5명 중 2명만이 근처의 댐 공사장에 간신히 도착해서 구조 요청을 했다.
각개격파 당하면서 곰에게 쫓긴 2명은 말할 것도 없고, 혼자 텐트에 숨어 있던 1명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텐트 안에서 한숨 잠도 자고 이튿날 아침을 맞이하긴 했지만, 사람 냄새를 감지한 곰이 거기까지도 찾아간 것이다.

그는 텐트 안에서 나름 시간대별 일기도 남겼는데.. 곰이 거기 반경 수십 m를 떠날 생각을 안 하고 맴돌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워서 와들와들 떨었으면, 일기의 끝부분은 글씨체도 완전 날림으로 일그러졌다. JAL123 추락 사고 때 승객이 여권 쪽지에다가 남긴 유언 같은 느낌이다.

그 곰은 대학생 생존자들이 하산한 뒤에도 거기서 계속 얼쩡거리고 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엽사에게 사살됐다. 곰의 사체를 부검해 보니 사망자들을 잡아먹지는 않았고 그냥 사지를 분지르고 공격만 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공포 영화 소재로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걸..;; ㅠㅠㅠ

저 대학생들이 새끼곰을 건드린 것도 아니었고, 곰이 배가 심하게 고픈 거나 대놓고 악한 성격인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곰의 습성을 모르는 채로 (1) 곰이 관심을 보이던 물건을 도로 회수해 간 것, (2) 곧바로 하산하지 않은 것, (3) 패닉에 빠져 등을 보이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 것 같은 실수가 이 정도의 참극을 만들었다.

하다못해 프랑스에서 제보당의 괴수가 날뛰던 시절엔(1765년!!) 어떤 어린애들 여섯 명이 숲속에서 그 괴수와 마주쳤는데, 정말 침착하게 대처를 잘 해서 살아 돌아온 적이 있었던 걸 생각해 보자. 겁 먹고 울고불고 도망치다가 몰살 당한 게 아니라, 다같이 손을 한데 맞잡고 간격을 넓혀서 덩치를 부풀린 뒤 한꺼번에 괴수를 똑바로 째려봤던 것이다. 그러자 놈도 한참을 움찔 하다가 꽁무니를 뺐다~! 저 불곰 사건도 바로 이런 재치와 기지가 아쉬운 구석이 있다고 하겠다..;;

맹수를 상대할 때는 기싸움에서 밀리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곰이 한번 집적대기 시작한 타겟은 인간이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곰을 만났을 때는 죽은척 하고 있으면 안전하다”가 아니라는 것은 정말 확실한 사실 같다. 등을 보이고 도망쳐서도 안 되고, 납작 엎드려서도 안 되고 참..ㅠㅠㅠ
이런 곰에 비하면 우리나라처럼 겨우 멧돼지 정도는 그냥 양반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31 08:35 2022/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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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기들의 표시 방식

자동차의 계기판에 표시되는 계기 중에 엔진 회전수를 나타내는 타코미터만이 일체의 보정이나 오차 없이 현실을 즉시 100% 반영해서 보여준다. (뭐, 옛날차들은 타코미터가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속도계는 타이어의 지름의 변화로 인해 미세하게나마 오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과속을 억제하기 위해 실제 속도보다 아주 약간이나마 더 큰 값으로 표시되는 경향이 있다. 보정이 없는 진짜 정확한 속도는 GPS를 기반으로 내비 화면에 찍히는 속도이겠지만, 얘는 업데이트 주기가 길어서 신속하지 못한 게 흠이다.

연료계와 냉각수 온도계(수온계)는 곧이곧대로 수위나 온도를 표시하는 게 아니며, 생각보다 훨씬 더 둔하게 동작하게 돼 있다. 눈에 띄는 유의미한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바늘이 가능한 한 움직이지 않는다. 일종의 '버퍼링'을 하는 셈인데, 이는 운전자의 주의를 쓸데없이 끌지 않기 위해서이다.

연료계는 일정 시간 동안 연료 수위의 평균값이 표시된다. 그래서 기름을 넣어도 바늘이 움직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며, 기름을 다 넣고 나서 시간이 더 지나야 바늘의 상승이 멈춘다. 그리고 주행 중에 기름통 안의 기름이 진동으로 좀 출렁거리거나 경사 때문에 한쪽으로 쏠린다고 해도, 호락호락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자동차 연료계의 정상적인 동작이다.

그리고 수온계도..
엔진 과열이 차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현상이긴 하지만, 냉각수의 온도가 너무 낮은 것도 차의 시동과 주행에 좋지 않다. 그런데 어지간한 차들의 수온계는 오로지 고온에서의 과열 경고만 할 뿐, 너무 낮은 온도 또는 적당한 온도에 대한 표시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좀 아쉽게 생각하는 면모이다.

하긴, 연료계와 수온계가 뭔가 판단과 보정을 하는 게 없이 아주 단순무식한 계기이던 시절, 1980년대의 엄청 옛날 자동차들은 시동을 꺼도 이들 바늘이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고 24시간 제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동을 꺼도 동작하고 있는 게 더 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건 똑똑하게 동작하는 게 아니었다.

비슷한 예로, 창문만 해도 수동식 닭다리 크랭크일 때는 시동이 꺼져 있을 때도 개폐가 가능했지만 요즘처럼 전동식 파워 윈도로 바뀐 뒤부터는 off는 물론이고 acc 상태일 때도 조작을 할 수 없게 됐다. 반드시 on까지 가야 조작 가능하다.

2. 휘발유 승용차의 속도계 눈금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승용차인 포니와 브리사의 속도계에는 눈금이 180km/h까지 찍혀 있었다. 이 전통이 프레스토, 엑셀과 쏘나타의 초기 모델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엔진 출력을 레드존 극한까지 짜내야 속도가 150~160 정도 나올까 말까이던 시절이니, 저건 수긍이 가는 상한이었다.

단, 기함급 고급차인 그랜저는 초기 각그랜저부터 200까지 숫자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뉴 엑셀도 속도 최대값이 200으로 올라갔다.
이때쯤 DOHC와 터보 같은 기술의 도입으로 배기량 대비 엔진 출력이 크게 향상되자.. 스쿠프와 엘란트라는 최대값이 220으로 더 상향되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현재는
(1) 엑센트, 베뉴 같은 소형 차급은 220,
(2) K3, 코나, 투싼, 아반떼 같은 준중형 차급은 240,

(3) 그 뒤 K5, 싼타페, 쏘나타 같은 중형 이상의 차급은 바늘이 260까지 찍혀 있다. 그 이후의 그랜저, 제네시스 등 모두 동일하다. 여기부터는 똑같이 시속 200으로 달리더라도,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힘겹게 시끄럽게 무리해서 내느냐, 아니면 평범한 엔진 rpm으로 부드럽고 조용하고 여유롭게 내느냐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참고로 경차를 살펴보면.. 티코는 초기형이 안습하게도 140까지 찍혀 있었다.
후기형은 160으로 약간 상향되기는 했지만.. 140~160은 레드존=_=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참고로 얘네들은 타코미터가 없다.

그러다 요즘은 마티즈와 모닝이 180, 레이는 200까지 찍혀 있다.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경차의 배기량 상한이 800cc에서 1000cc로 상향된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3. 경고등

자동차 계기판에 달려 있는 여러 표시등· 경고등들은 성격과 중요성에 따라서 초록/노랑/빨강으로 색깔이 나뉜다. 가령, 연료 부족은 노랑이지만 냉각수, 브레이크 경고등은 빨강이다.
그런데 자동차의 기계적인 상태와 전혀 무관하면서 가장 심각한 빨강으로 당당히 깜빡거리는 거의 유일한 경고등은 바로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등이다.

2010년대 이후부터 나온 차들은 법적 의무 사항이 강화되기라도 했는지, 운전석뿐만 아니라 조수석도 체크하며, 뒷좌석은 처음에 채워졌다가 주행 중에 풀리면 경고등이 켜질 정도로 더 똑똑해졌다. 경고등만으로는 탑승자의 귀차니즘을 자극하기에 충분치 않은지 귀에 거슬리는 경고음도 나며, 그것도 옛날 차들처럼 수 초 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무려 2~3분 동안 지겹도록 난다.

장내건 장외건, 운전 면허 시험을 칠 때는 벨트를 안 하고 출발하면 감점이 아니라 바로 실격이다. 주차 브레이크를 깜빡 잊고 안 내리면 감점이지만 벨트는 대접이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자동차 업계에서는 안전벨트를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셈이다.
자동차에 운전자의 음주 상태를 자동 체크하는 기능이 들어간다면, 알코올을 감지했을 때 음주 경고등도 이런 식으로 시뻘겋게 켜지면서 시동과 주행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8 19:35 2022/05/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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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영이라고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똑똑하고 재능 많고 본업인 음악뿐만 아니라 온갖 잡학에 관심 많고 머릿속이 복잡다단한 4차원 구조인 사람 같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는 요 몇 년 전부터는 종교 쪽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는 중임을 공개적으로 티를 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자신의 구도(?) 과정을 긴 간증문으로 써서 공개하고 영상도 올리는 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불호가 갈린다.

먹고 사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성공했으니, 그 다음으로 신이나 내세 같은 분야의 지적 욕구가 생긴 것 같다. 하긴, 예전엔 이 병철 삼성 창업주조차도 늘그막에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이 어째서 이 모양 …” 이런 부류의 수십 개에 달하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했던 바 있다.

나도 종교 분야를 어린 시절에 진작에 입문하지 않고 아재 꼰대 나이가 돼서야 관심이 생겼다면.. 박 진영 씨처럼 혼자 여기저기 찾아보고 기웃거리다가 왕창 마이너 특이한 델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ㄲㄲㄲㄲㄲㄲ 지금도 이미 충분히 마이너한 델 갔지만..

본인은 정작 저 사람이나 저 사람 곡을 잘 모르며, 간증문을 제대로 다 읽어 보지도 않은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힌다.
허나,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생각하는 기독교 교리는 어느 교파의 관점에서 봐도 다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일부 주장은 극단적 세대주의를 띄는 게 있어서 좋은 까일거리 먹잇감이 된 듯하다. 신약 교회 신자는 바울 서신 말고 다른 성경책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걸 넘어서 아예 필요하지 않다느니.. 이 정도면 윤 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북을 선제공격할 것이고, 최저임금도 없이 주 120시간 로동 착취를 시킬 것이고 의료보험을 몽땅 민영화시킬 거라네 하는 헛소리 급이다.

심지어 구원파 영향을 받은 말도 있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난 솔직히 말해서 구원파의 교리 자체도 잘 모른다. 그냥 자기가 구원 받은 날짜에 너무 집착하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회개할 필요 없고 마음껏 죄 짓고 살아도 된다고 설마 "정말로 그런 정신나간 주장을 하나?"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바의 전부이다.

저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박 진영의 간증 내지 신앙관은.. 온건 세대주의 기반인 독립 침례교회 쪽 진영에서도 논란이 많다. 무작정 호의적이지 않다.
내가 파악한 게 맞다면.. 저 사람은 머리 좋고 해골 내부 구조가 복잡하고 이것저것 탐닉한 게 많다 보니, 복음까지도 너무 복잡하게 접근하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기미가 보인다. 나는 다른 낭설들 말고 바로 그게 우려된다.

내가 내 자유의지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영접하고 믿어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구원을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다. 이렇게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을..

  • "내가 억지로 힘들게 믿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받는 거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아야 한다"
  • "뭘 깨달아야 구원받는다" (회개의 선행 조건으로 내가 죄인인 걸 깨닫긴 해야 하는데, 저기서는 그 말을 하는 게 아님)

뭐랄까, 맞는 말 같으면서도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초신자를 더 갈팡질팡 헷갈리게 하는 식으로 워딩을 하는 것 같다. "주여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 (막 9:24) 상태인 초신자들이 이것 때문에 거의 공황 수준의 혼동을 겪었다고 한다.

난 박 진영의 글 때문에 '믿음'이라는 벡터의 방향과 출처에 대한 키배와 논쟁이 굉장히 심하게 벌어졌었다는 걸 뒤늦게야 들었다.
겨우 이 따위 게 논란거리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었는데..
faith가 아니라 believe여야 한다느니(둘 중 하나를 have faith 내지 belief로 바꿔야겠지... 품사부터 좀 동기화시켜야..)
faith of Jesus Christ를 받아야 한다느니 그런 말이 나돌더라.

흠정역은 우리말 성경들을 통틀어서 롬 3:22 / 갈 2:16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엥? of니까 원래 '의'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of는 생각보다 굉장히 중의적이며,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이다. 다른 성경들은 전부 '를'이라고 돼 있다. 차이점이 뭔지 아시겠는가?

이건 킹 제임스니 변개니 하는 내용 차이 이슈가 아니라, 단순 번역 이슈이다. 게다가 이거.. 내가 알기로 흠정역의 주 번역자인 정 동수 목사 본인의 소신보다도 다른 여러 목회자들의 강력한 권면과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를' 대신 '의'가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말보회 한킹 진영에서는 흠정역의 번역 때문에 저렇게 "믿어야 구원"이 아니라 "믿어져야 구원"이라는 오류가 생긴 거라고 비판하니..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다. 참고로 말보회는 야고보서와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세대주의를 굉장히 강하게 지지하는 진영이다. 쟤들은 '믿어져야 구원' 이걸 오히려 칼빈 예정론과 결부시켜서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일단 난 흠정역의 번역에는 크게 토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예수님이 믿음의 창시자이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뭔가를 믿는 본을 보이신 것 자체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님께 믿음을 구하고 새 믿음을 공급받는 것은 구원받고 나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이건 박 진영 씨도 부디 앞뒤 순서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예수 영접을 위해서 맨 처음부터 예수님의 믿음을 받아야 된다는 논리는.. 순환논리이고 궤변처럼 들린다. 압축 유틸리티를 설치하기 위해서 압축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압축 유틸은 바로 실행 가능한 exe/msi 형태로 배포하는 게 상식입니다~~)

박 진영 씨가 그저 종교 지식 덕후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서 구원까지 받았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단지, 이 사태를 보니 인간은 같은 글에 대해서 역시나 다들 자기 관심사와 자기 진영 논리대로 남을 즐겨 판단한다는 것 절실히 느껴진다. 극단적 세대주의 탓, 흠정역 번역 탓.. 예시를 보면 명확하지 않은가?

난 그런 교리 노선을 떠나서 누구든 복음의 단순함을 왜곡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 뜰 수 있는지.. 유체역학 항공역학 물리 법칙을 하나도 모르고 수학적으로 증명을 못 해도,
"이 비행기는 중간에 추락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날아갈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믿고 비행기를 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안 믿어지면..? 옛날에 북한 김 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외국 나갈 때도 평생 열차만 타고 육로로만 다녀야 되는 거다.

"아~ 해외여행을 5년쯤 다니니 어느날 갑자기, 이제야 믿음이 생겨서 비행기를 안심하고 편안하게 탈 수 있게 됐어!!"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개인 간증으로서는 좀 드라마틱한 일일 수 있지만, 5년 동안 불안불안하게 탔던 자기만 집착이 심한 비정상이었던 것일 뿐이다. 그런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적인 교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결국은 자기가 안 믿은 걸 갖고 하나님 쪽에서 믿음을 안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탓"이 나와서는 심히 곤란하다. ㅡ,.ㅡ;;;

내 경험상, 어설프게 영어 성경 읽으려고 애쓰기 전에 국어 공부부터 해야 될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역으로 성경을 별 오류 없이 분별하면서 제대로 읽을 정도가 되면, 세상 학문을 할 지적 능력도 이미 크게 갖춰져 있게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6 08:36 2022/05/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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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라는 건 어째 2차 세계 대전 전범국인 일본과 독일이 잘 만든다고 전통적으로 호평이 자자하다. 도요타, 벤츠, BMW 등..
하지만 세계 최강의 과학기술 선진국인 미국도 이들 만만찮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단지, 땅 넓고 물자가 풍족하고 내수 시장도 크다 보니, 오랫동안 한국 같은 외국의 사정에 맞는 차를 수출형으로 굳이 잘 만들지 않았을 뿐이다. 가령, 미국이 유럽 같은 급의 고효율 디젤 엔진은 그냥 '안' 만든 거지, 못 만든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캐딜락 엘도라도. 이런 큼직한 머슬카가 아메리칸 스타일 자가용의 상징이었다. 1950~60년대엔 저게 얼마나 하이테크 디자인의 최첨단 문명의 이기였을까..??? ㄲㄲ)

가만히 생각해 보니 미국 자동차는.. 제조사 이름과 자동차 브랜드 이름이 많이 헷갈리는 형태인 것 같다. 이는 그 브랜드의 자동차를 만들던 회사를 다른 회사가 인수 합병해서 그렇게 된 것도 있다.
미국의 3대 메이저 자동차 제조사는 GM, 포드, 크라이슬러이다. 나머지 캐딜락, 쉐보레, 링컨, 뷰익 같은 건 브랜드 이름이다.

그런데 이런 자동차 제조사들이 너무 거대해지면서, 시장을 독점하고 동일 업종의 경쟁 기업을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과거에 스탠다드 오일(정유)이라든가, 20세기 말의 마소 IE 웹브라우저 끼워 팔기처럼 말이다. 이런 게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룡 자동차 제조사, 그리고 어쩌면 공룡 정유 회사들까지 교묘하게 로비를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들 한다.

1.
노면전차를 없애 버렸댄다. 미국은 극소수의 대도시를 제외하면 1950년대 이후부터 대중교통이란 게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같은 작품은 그때 이후로는 더 나올 수 없다.
꼴랑 중학교 졸업하고는 면허를 따야 되고, 마트를 가거나 햄버거 가게 알바 출퇴근을 위해서라도 차가 없으면 안 되는 지경이 됐다. =_=

프리웨이의 중앙 카풀 전용 차로는.. 버스나 승합차 전용도 아니고 꼴랑 2인 이상만 타도 이용 가능하거늘.. 그 막히는 출퇴근 시간대에도 텅 비어 있다. 이런~~!! 전부 그 큰 차에 혼자 타고서 길바닥에다 기름을 뿌리고 있다.

2.
1990년대에 일찍이 친환경 전기차가 개발되고 있던 것도 잘근잘근 없애 버렸댄다. EV1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도 저기는 한국하고는 상황이 다르다 보니, 성능 좋은 유사휘발유가 개발되고 있는 것을 잘근잘근 없애 버린 사례는 없는가 보다. (차량에 악영향, 환경 문제, 세수 확보 애로사항)

3.
사실, 위의 1과 2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식의 근거 부족 음모론에 가깝다. 전기차나 노면전차는 그 시절 그 기술만으로는 대기업 로비가 아니었어도 다른 이유로 인해 어차피 몰락이 어느 정도 예상돼 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성 자동차 제조사가 과거에 '터커 모터스'라는 스타트업을 (사실상) 교묘하게 잘근잘근 밟아 없앤 것은 음모론이 아닌 것 같다.

설립자인 '프레스턴 터커'는 모터 스포츠부터 자동차 정비와 제조까지 정말 뼛속까지 자동차에 미친 덕후, 자동차밖에 모르는 바보 공돌이였다.
그때 기록에 따르면 1948년에 '터커 48 톨피도(어뢰)'라고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성 자동차들보다 성능과 연비가 훨씬 더 뛰어나고 안전벨트와 브레이크 같은 안전까지 지금 관점에서 10~20년은 시대를 앞섰던 마법 같은 승용차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투자를 더 받아서 이걸 대량생산해서 미친 가격으로 판매하려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앙에도 헤드라이트가 달려 있어서 좌우 핸들을 틀면 불빛의 방향도 바뀌는 거.. 우와 완전 참신한걸..??????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어느 자동차 덕후가 회사 차리고 미군 지프를 조립해서 시발 자동차를 겨우겨우 만들었는데, 천조국에서는 자동차 덕후가 포니 같은 고유 모델 승용차를 뚝딱 만들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랬는데 '터커 48'이 매스컴을 탄 지 얼마 되부터, 은행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이 회사에 갑자기 대출을 안 해 주기 시작했다. 오히려 빌려 간 사업 자금을 상환하라고 압박했다. 그리고 언론 보도도 싹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이 사람은 버티질 못하고 경제사범 사기꾼으로 몰려서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들게 됐다.
비록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는 건졌지만, 그는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원대한 꿈을 다 펴지도 못한 채, 스트레스와 지병으로 인해 5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놓고 드러나는 물증은 없지만, 이런 사건의 배후에는 자기들의 나와바리를 위협하는 강력한 라이벌인 터커 모터스를 교묘하게 말려 죽이려는.. 기성 자동차 회사들의 알력이 있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터커 48'은 겨우 수십 대밖에 생산되지 못했으며, 심지어 터커 모터스를 짓밟았던 포드 사에서 설립한 자동차 박물관에도 한 대 전시돼 있다. (☞ 링크)

하긴.. 공돌이의 천국인 천조국에서조차도 라이트 형제가 20세기 초에 비행기를 처음 발명했을 때는 기득권층들로부터 시기 질투와 음해를 왕창 받았다. 당사자들은 불필요한 고생을 잔뜩 해야 했고, 오죽했으면 비행기 양산 공장을 자국이 아닌 외국에 먼저 짓게 됐다. 그 과정에서 제조 기술이 외국으로 알음알음 유출되기까지 한 건 덤..

더 옛날 1700년대엔 미국에서 실용적인 증기선이 처음으로 발명됐다. 이를 만든 존 피치는 뼛속까지 공돌이에 불세출의 기계 천재였으며, 증기선 덕분에 발명가로서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하지만, 이 사람 역시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말년엔 아편 중독으로 인한 자살을 당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디젤 엔진 발명자의 최후와 비슷한 최후인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다른 나라가 아니라 그나마 천조국이니까, 혹은 서양이니까 공돌이들이 그 옛날부터 저 정도라도 꿈을 실현했던 것 같다.
생각하는 방식이 뭔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어서 개척자 정신· 기업가 정신이란 게 있고 기술자가 존경받았으니까. 그리고 과학기술 자체뿐만 아니라 상업 교류를 하고 경제 제도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비록 걔네들도 하는 짓이 다 선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조차 남해 회사인가, 주식 투자 잘못해서 현재 시가 기준으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말아먹은 적이 있었다. 그는 기가 차서 "내가 우주 천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법칙도 발견했지만, 빌어먹을 사람의 심리와 돈의 흐름은 도저히 기술이나 예측을 못 하겠다" 라고 디스했다고 전해진다.

서양엔 겨우 1700년경, 조선에서 병자호란 끝나고 영조 탕평책 이러던 시절에 벌써 기업이란 게 있고 저런 경제 제도가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최소한 "기술이나 배운 쌍것들 에헴" 선비질을 하지는 않았다.

전에 얘기했던가..?? 조선은.. 상상을 초월하는 미주알고주알 기록덕후 관료제 국가였다.
조선왕조 실록이 나름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고, 수원화성도 지금 실물이야 1도 역사적 가치가 없지만 제작 과정이 너무 상세하게 잘 기록돼 있었던 덕분에 역시 세계 유산으로 등재됐다. 지금 실물도 오리지널과 동급의 가치가 있음이 인정된 것이다.

근데, 그런 나라에서 장 영실(기술), 김 정호(지도) 같은 한 분야 전문가 덕후가 생몰년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냐? 임진왜란 때 도자기 기술자들 잔뜩 유출시킨 건 어떻고..??
이게 관점이 글러먹었다는 거다. 미국처럼 기업들끼리 비열한 싸움이나 담합, 독점이 벌어진 걸 비판하는 단계로 갈 여지조차 없이 그 앞단계에서 막혔다~!!

* 여담

(1) 미국에서는 이미 19세기부터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같은 사람이 있었던 반면, 우리나라에서 뭔가 기업다운 기업은 해방 후 박통 때 1960년대에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더 옛날 일제 시대에 한국인으로서 기업을 경영한 사람들은.. 참 존경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 일한 회장은 너무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2) 기업 얘기는 아니다만.. 저 1940년대 말, 터커 자동차가 있던 시절에.. 미국에서는 전쟁이 끝났으니 군대를 대폭 칼질하고 덩치를 줄이게 됐다.
태평양 전쟁 시절 같은 거대한 규모의 해군이 필요하지 않게 됐고, 이제 막 공군다운 공군이라는 게 태동해서 기존 육· 해군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고, 바다에서는 전함 대신 항공모함을 띄워서 함재기끼리 싸우게 하면 되겠고..

이때가 뭔가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격변기였다. 그래서 군 수뇌부에서는 독립된 군종으로서 해군과 해병대를 통째로 없앨 생각까지 했었는데.. 이건 컴퓨터로 치면 마치 2000년대 중반에 IE6이 고인물 썩은물이 돼서 마소에서 브라우저 팀을 없애고 Windows 팀으로 통합하려는 생각을 했던 것, 2010년대 초반에 Windows 8에서 시작 메뉴를 앲앴던 것과 비슷한 발상인 것 같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대중교통도 전멸하고 설마 해군도 전멸할 수 있었던 걸까? 물론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며, 미군이 세계를 제패하는 원동력은 여전히 해군이다. 해군 해체설이 제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1950년대엔 대형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의 동력원에 원자력이라는 치트키도 등장했다. 그렇게 기술은 발전해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3 08:35 2022/05/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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