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성경 번역 이슈

1. '-시니라'의 시제

한국어 성경은 개역성경의 선례 덕분에 '-느니라, -도다, -소서' 같은 고어체가 여전히 현역이다.
그런데 창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거는 시제가 현재일까 과거일까?
'하시니라'는 형태· 통사론 상으로는 당연히 현재 시제이다!! '하셨느니라'가 과거이지 '하시니라'가 도대체 어떻게 과거 시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더 상위의 의미· 화용론 레벨에서는 '하시니라'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모두 포함하는 시제로 오랫동안 구분 없이 뭉뚱그려서 사용돼 왔다.
개역, 한킹, 흠정역 어느 역본도 모든 구절에서 철두철미하게 용언 형태소 차원의 시제 구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 악의적인 변개나 오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다.
우리말이 단· 복수나 정· 부정관사 구분을 별로 안 하고,
초록과 파랑을 별 구분 없이 '푸르다'라고 표현하고,
"A와 B의 C"만으로 "A의 C" + "B의 C"를 모두 표현한 것과 비슷하게...
그냥 한국어 한국 문화권이 시제를 엄밀하게 따지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그게 성경 번역에도 반영됐던 거다.

차라리 현대어 어미를 썼으면 '창조하셨다, 숨을 거두셨다'라고 시제가 더 분명히 구분됐을 텐데, 고어체 어미가 시제 구분이 불분명했던 편이다.
'-함, -음'도 생각해 보자. 엄밀히 따지면 '-했음, -갔음'이라고 써야 과거가 되지만 통상적으로는 일일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감, 밥을 먹음" 그냥 이렇게 써도 문맥에 따라 과거라고 통용되는 편이다.

그래서 뒤늦게 창 1:1을 "창조하셨느니라"로 바꿔야 된다느니, 기존의 "창조하시니라"만으로 충분하다느니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령, 말보회 한킹의 경우, 처음에는 '시니라'이다가 나중에 '셨느니라'라고 바뀌었다.
흠정역은 6일 창조 이전의 과거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영이다 보니 저기 시제는 절대 바꿀 생각이 없는 상태이고. (허나, 요 1:1 하나님이셨느니라 이거는 과거 시제로 개정했음)

영어 문장대로 용언의 현재 과거 시제를 철저하게 해 준 최초이자 현재 유일한 역본은 바로 바로...... 표준역이다.
가령, 요 19:30은 고어체로 번역된 우리말 성경 중에 유일하게 표준역만 '숨을 거두셨더라'이고 딴 역본들은 '거두시니라, 돌아가시니라' 등이다.
그 반면, 2장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영킹이 saith 같은 현재 시제를 쓴 곳에서는 '하시니라'이다.

이거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말 성경 번역이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개선돼 나가야 할 점인 것 같다.
마치 요한일서의 beloved를 마치 dear XXX처럼 "사랑하는 자"라고 쓰던 것을 더 엄밀하게 "사랑받는 자"라고 바꾸듯이 말이다.

우리말도 영어 영향을 받아서 100년 전보다는 단· 복수나 능동· 피동 구분을 더 엄밀하게 따지면서 하지 싶다. 그게 마냥 번역투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엄밀하게 따지지 않던 옛날 성경이 악의적인 변개나 오역을 저질렀다고 판단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2. 무엇을/어떻게

의문사 무엇(what)과 어떻게(how)는 지칭하는 영역이 언어 품사 차원에서 다르다. "이건 뭘 표현한 거야?" /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어떡하다'라는 굉장히 미묘 므흣한 단어가 있다. 그래서 같은 의문이지만 영어로는 what으로 시작하는 반면, 우리말로는 how에 가까운 뉘앙스로 표현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발생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유명한 행 16:31의 바로 앞 절.. 30절 감옥 간수의 질문을 보자.
개역, 표준, 한킹 같은 우리말 성경들은 모두 "어떡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킹 이후에 등장한 킹 계열 역본.. 흠정역 내지 표준역만이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what을 직역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문제나 위기가 생기고 난감한 상황이 됐을 때 한국어 화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이를 어쩌면 좋지? 어떡해야 하지?"이다. "뭘 해야 하지"가 아니다. 예전에 월급값 못 한 여경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오또캐스트라' 드립을 생각해 보자.
"뭘 해야 하지"는 그건 자기 신변과 무관한 업무를 인계받으면서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죠?" 아주 객관적으로나 할 만한 말인 거다.

영어는 명사 지향적이고 체언을 꾸미는 관형어가 발달해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동사 지향적이고 용언을 꾸미는 부사어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있다"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 많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영어로는 what(무엇을 명사)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말로는 how(어떻게 동작)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방문 용건을 묻는 질문조차 "어떻게 오셨습니까?"("무슨 일로"가 아니라)라고 묻는 경우가 있고, 그걸 마 동석이 어느 영화에서 "봉고차 타고. 내비 찍고 왔어"라고 동문서답 개드립을 치지 않았던가.

이게 한국어다. 이것 말고도 영어로는 come인데 우리말로는 정황상 '가다'라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고, 부정의문문의 대답도 대놓고 yes/no의 번역이 갈리곤 한다. ㄲㄲㄲㄲ

3. 챔피언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필리스틴) 장수 ‘골리앗’은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정말 유명하다. 스타의 테란 메카닉 유닛의 이름으로도 쓰였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무엘상 17장을 읽어보면 성경 기자, 아니 하나님은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다. 거의 다 ‘그 블레셋 사람’, ‘그 블레셋 사람’ 일색이다.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이건 의도적인 서사이다.
성경의 진술 방식에서 이름 언급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누가복음 “부자(익명)와 나사로”, 룻기 “보아스와 아무개(익명..)”, 그리고 다니엘서 풀무불 씬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친구 이름들의 등장 빈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곳곳에 미주알고주알 명단들이 나오는 거다. 하다못해 로마서 16장 안부 인사 대상자 명단처럼 말이다.

그 대신, 성경은 골리앗이.. 그냥 평범한 파이터, 글래디에이터, 워리어 따위가 아니라 ‘챔피언’이었다고 언급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champio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삼상 17이다. 우리말로는 대체로 ‘투사’라고 번역됐다.

오늘날이야 챔피언은 무슨 개인 단위 게임이나 스포츠의 전국 단위 우승자, 1등 타이틀 보유자..라는 뜻이 강하다. 바둑 챔피언, 20xx년도 탁구 챔피언.
그래서 “세상에서 너무 챔피언이 되려 애쓸 필요 없다. 성경에서 챔피언은 부정적인 인물인 골리앗에게나 쓰였다” 이렇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겠다만 그건 “성경에서 그림(pictures)이 민 33:52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니 각종 영화 산업들도 영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들이다~ 영화사들도 다 OOO pictures이잖아?” 와 비슷한 급으로 아주 간접적이고 영적인 적용이라 하겠다.

챔피언은 원래는 자기 고용주나 VIP를 대신/대표해서 전투나 결투에 나가서 싸우는 직업 싸움꾼..이란 뜻에서 출발했다. 성경의 용례도 1차적으로는 이거지 싶다.
골리앗 저 시절에 “블레셋 대왕배 특전사 격투기 대회 우승 타이틀”이라든가.. 무슨 태평양 전쟁 일본군마냥 100인 참수 시합 같은 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언무언가를 지키고 수호하는 사람한테도 챔피언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그 대상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친환경 전기차를 운전하는 당신은 환경 챔피언입니다” 이렇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전기차가 진짜로 완벽하게 친환경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기아 니로 CF에 나오는 환경전투사 같은..;;
글쎄, 싸이의 노래 가사처럼 음악에 미치면서 인생을 즐기는 건 무슨 챔피언인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말이다.

물론, 지키고 싸우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반인들보다 더 힘 좋고 체격 좋고 잘 싸울 것이다. 골리앗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래서 우승자라는 의미가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직업이 챔피언인 사람은 지위 내지 실력도 챔피언일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말보회 한킹은 챔피언을 그냥 투사가 아니라 ‘최고 투사’라고 번역했더라. 저런 번역은 한킹이 유일하다. 원래 의미에다가 나중 의미까지 저렇게 넣고 싶었던가 보다. 한킹은 전반적인 번역 스타일이 영킹 직역뿐만 아니라 ‘나중 의미’도 더 살리는 쪽이다 보니.. 일면 수긍이 간다.
또한, testament를 그냥 언약이라고만 옮기기는 아까워서 흠정역이 ‘상속 언약’이라고 번역한 것과 비슷한 워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킹은 testament는 그렇게 번역하지 않음)

4. 은과 돈과 재물

행 8:20 말이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네 돈과 더불어 망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행 8:20)
여기서 ‘네 돈’ 부분을 ‘돈’ 대신 ‘은’이라고 번역한 역본이 생각보다 여럿 있다. 당장 개역성경도 그렇고, NASV나 NRSV도 그렇다.

궁금해서 잠시 조사를 해 보니, 이건 원문 변개 이슈는 아니다. 변개된 계보의 성서 중에도 ‘돈’인 역본 또한 많기 때문이다.
같은 헬라어가 문맥에 따라서 은도 되고 돈도 되는 것 같다. 즉, 이건 번역에서의 바리에이션이다.
베드로는 금과 은이 아니라 유독 은과 금이라는 말을 썼는데, (행 3:6, 벧전 1:18) 이때의 은과 저기서의 돈이 같은 단어이다.

우리 한자어에서는 현금, 등록금, 계약금 등.. 금을 돈과 비슷한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금에 앞서 은이 먼저 화폐로 널리 통용됐다.
오죽했으면 돈을 보관하는 기관의 이름도 ‘은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은전 한 닢'이라는 유명한 수필도 있다. ㄲㄲㄲ

성경에 등장하는 화폐들도 거의 다 은화이다.
주님의 몸값부터 시작해서 요셉의 몸값, 사도행전 19장에서 불태운 주술 서적의 가격.. 은이다.
서양의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동양의 중국도 이런 은본위제 국가로 유명했으며, 아편 전쟁 당시에도 은이 거래됐었다.

‘네 돈’ 말고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돈’은 앞의 돈/은과는 다른 헬라어이다. 용어 몇 개를 찾아보니 이건 보편적인 ‘부, 재물’과 비슷한 맥락으로서 돈을 의미하는 것 같다.

베드로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한낱 은이나 금과 견줄 바가 아니라는 요지의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아무쪼록, 우리 같은 헬알못(?) 일반인은 은이니 돈이니 재물이니 이런 게 알쏭달쏭하면 우리의 모국어, 아니면 최소한 영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최종 권위인 킹 제임스 성경이 규정해 준 원어의 뜻을 따르면 될 것이다.

하긴,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시편 8편에서 “인간을 천사보다 약간 낮게 하시고”에 '천사'가 히브리어로 그냥 엘로힘.. 하나님/신들과 같은 단어라고 한다. 돈/은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 신, 천사 모두 가능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_=;; 하지만 이건 문맥상 하나님일 리가 없고, 신약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헬라어로 천사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들었다. 저기서의 의미는 당연히 천사가 돼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여러 주제의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성경 읽을 때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번역본을 참고하면서 다양한 의미와 다양한 관점을 학술적으로 섭렵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그런 면모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닥치고 익숙한 단일 모국어 역본만 철썩같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골수에 새겨서 "암송"하고, 일상생활에서 곧장 그 말씀이 떠오르게 하는 거.

이 둘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으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단순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헛똑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적사기 말장난 기만을 싫어한다.
이솝 우화던가? 당장 고양이가 쫓아오는데, 똑똑한 쥐는 탈출하는 방법 100가지 중에서 뭐가 지금 가장 효율적일지 짱구 굴리면서 고민만 하다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나 닥치고 달리기인지 개헤엄인지 방법을 하나밖에 모르던 평범한(?) 쥐는 자기가 아는 방법 하나만 X나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아는 건 많은데 지혜가 없고 분별력이 없고, 어느 게 나에게 당장 필요한 진리인지를 모르는 건 영적으로 바람직하게 성장한 상태가 아니다.
전자가 오히려 혼동을 야기하면서 후자의 활동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 세상에 100%라는 건 없다" 이건 유한한 자원에서 최대의 가성비를 찾는 공학 같은 세상 학문에서나 통용되는 특징이다.
그 반면,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최종 권위는 이건데 그래도 추가로 참고적으로 요렇게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도 생각하긴 했다" 이렇게 중심 절대값부터 잡고 나서 부가설명 액세서리를 참고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다. 교리에 대한 문자적 해석부터 한 다음에 영적 교훈을 넓고 다양하게 적용하듯이 말이다.

성경 말씀이나 찬송가 가사 같은 건 책을 보고 있지 않아도, 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아도 일상생활 중에 튀어나오고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찬송가라고 해서 맨날 군가 아니면 중세 장송곡 같은 식상한 멜로디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거 뭐 악보를 읽기도 어려울 정도로 정도로 박자가 너무 복잡한 2000년대 이후 CCM은..;; 과연 어렵고 힘들 때나 성령 충만할 때 누구나 쉽게 떠올려서 그대로 부를 수 있을까? 세월을 안 타고 모든 성도들이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 될 수 있을까?

그것처럼 그 좋은 영어 성경도 말이다. 영어 성경에 Believe in the Lord Jesus Christ, Rejoice in the Lord 같은 쉬운 문구만 있는 게 아니다. 성막이나 성전 설명을 영킹으로 바로 읽고 알아듣고 머리에 외울 수 있겠는가?
영어 영어 하다가 자기한테 본질적인 걸 놓치지도 말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3 08:35 2024/08/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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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보회 한킹

말씀 보존 학회는 우리나라에서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성경이라는 걸 최초로, 가장 먼저 개척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킹이라는 성경도 면류관, 천국, 예수님 대신 예수, 길 대신 도(사도행전) 등 옛날 성경 용어가 남아 있어 좀 정겨운(?) 느낌이 든다.

얘들은 한킹을 다른 교회· 교단들에다가 전파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교회· 교단을 개척하려는 성향이 더 강했다.
모바일 생태계에다 비유하자면 애플의 맥이나 아이폰이 완전히 자기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일체형인 걸 생각해 보시라. 이 송오 목사는..

  • 성경침례교라는 아이폰을 만들었고,
  • 그 하드웨어에서 돌릴 한킹이라는 iOS의 개발을 주도했다.
  • 그 뒤 그는 말씀 보존 학회라는 앱스토어를 만들었고,
  • 이를 토대로 세대적 진리, 럭크만 주석서 같은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 이런 조직과 교회, 성경, 서적을 통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여러 앱등이들을 양성했다.

이런 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가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사석에서나 직장 상사로서는 X나 X랄맞은 인성과 싸가지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 송오 목사도 이런 쪽으로 아주 악명높았었다.

쟤들은 자기 조직, 자기 교리 노선, 성경, 교회를 완전히 통합 일체형으로 본다. 사고방식이랄까 포교 전략이 저렇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저렇게도 독단적으로 구는 거다.

그래서 심지어 30여 년 전엔 자기들(만)이 대한민국 최초의 진정한 성경적인 신약 교회라는 드립을 쳤던 건 유명한 일화이고, 반대급부로 자기 교회에 있다가 나간 사람을 배교자라고 그렇게도 욕을 해댔다.
진짜로 순수하게 진리를 전하다가 부당한 박해와 배척 받는 거랑 그냥 혈기 깽판 부리다가 간증 잃고 욕 쳐먹는 걸 구분을 못 하고.. 심지어 탈퇴자한테는 자기네 성경을 쓰지 말라는 어이 안드로메다 급의 미친 소리까지 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진짜 중요한 사항인데..
한킹은 킹 제임스라는 영어 성경을 중역했기 때문에 '킹'이라는 명칭이 붙은 게 아니다.

400년 전 잉글랜드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쓰였던 그 바른 원어 원문(TR 공인 본문, 정통 맛소라)을 갖고,
마치 영킹을 만들듯이 우리말 성경을 만들었다..!! 도착어만 다르지 출발 원문이 영킹의 그것과 같다는 뜻에서 '한킹'인 것이다. ㄲㄲㄲㄲㄲㄲ

어, 써 놓고 보니 약간 진화론 얘기 같네..??
현대 진화론에서는 인간(한킹)이 원숭이(영킹)로부터 진화(번역)한 게 아니라..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공통조상(히브리 헬라 원어)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말하니까 말이다! 딱 그 모양새이다!!!

한킹은 신약은 TR 원어 원문 기반(시민권)에다가 영킹 용어(이스터, 순교자 등)를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오히려 구약이 영킹 중역(로뎀나무가 아니라 향나무)에다가 맛소라 히브리어 본문 용어(음부, 아세라)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후대의 그 어떤 성경도 채택하지 않은 특이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_=;;

일각에서 모함하는 것처럼 "한킹은 킹 제임스 성경이 아예 아니다"는 당연히 아니다. 단지, 성서 초등학교 애들을 도롱뇽 소년이 아니라 개구리 소년이라고 불러도 문제 없는 거, 구치소 얘기이지만 교도소 일기라고 웹툰 제목을 붙인 거,
그리고 복음 전할 때 예수 안 믿으면 불못이 아니라 지옥 간다고 말하는 거(정작 영원히 있게 되는 곳은 불못인데)..

이런 관계일 뿐이다. 별개가 아니고 어차피 그게 그것인 관계이기 때문에 좀 더 인지도 높고 대중적인 명칭을 썼을 뿐이다. 차이라고 해 봐야 영킹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을 묘사했다면, 한킹은 그게 결국 이런 뜻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정도가 대부분이다. (자유-생활방식 → 시민권, 긴장하다 → 거르다, 작은숲 → 아세라)

1980년대에 이 송오 목사가 TR을 기반으로 코리언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는 건 그 당시 미국의 KJV 옹호 진영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피터 럭크만 같은 강성 영킹 유일주의자도 그에 대해서 "당신 왜 영킹에서 성경을 번역하지 않아?" 같은 문제 제기는 하지 않았다.
말보회 교회를 직접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교회 조직이나 성경책에 대해서 이렇게 애플에, 진화론에, 개구리 소년 비유까지 동원하면서 진지하게 깊이 고찰해 본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_-;;;;;

2. 표준역

표준역은 2020년대에 정말 젊은(나보다도 어린..!) 신학도가 과감한 영킹 중역을 표방하면서 편찬한 성경 역본이다.
우선 칭찬부터 하고 시작하자. 몇몇 일부 단어나 표현은 참신한 시도이거나 잘 번역한 것 있다.

- (가령, seek와 find를 찾다/발견하다 라고 구분해 준 것, win을 쟁취라고 시도한 것,
행 5:30을 단순히 "나무에 매달아 죽인"이 아니라 "죽여서 나무에 매단"이라고 옮긴 것.. 이런 건 잘한 거다.)
기존 타킹 쓰는 진영에서는 표킹의 이런 면모까지 다 무시하면서 밟아버리려는 듯이 감정적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 영킹 직역이라지만 일부 표현은 말보회 한킹의 번역을 따른 게 있다. grave, walk 등.. 단지 원어를 참조한 게 아니라 영어에도 그런 뜻 있다고 웹스터 사전을 들이댈 뿐.

- 그러나 몇몇 접속사나 관사 복수형을 일일이 다 살려서 넣은 건 무리수이다. 영어의 모든 관사가 정확하게 수효를 한정짓는 용도로 쓰이는 게 아니다. 그냥 다음에 오는 단어가 형용사나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는 것만 명시하는 용도로 습관적으로 붙는 것도 있으며, 그런 건 한국어로 옮길 때 굳이 번역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번역이다!
저런 번역 스타일만으로도 논란이 되는데 하물며 그렇게 하지 않은 타 역본을 변개 삭제라고 까는 거는.. 무리수를 넘어 누워서 침 뱉는 자충수이다.

- 같은 뜻인데 단순히 영문학상 패러프레이징 하느라 유의어를 동원한 것을 굳이 우리말로 무리해서 다 다르게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령 행10의 kill '잡아먹다'과 11의 slay '도살하여 먹다')

- '비둘기 그녀, 지혜 그녀'는 좀 다시 생각했으면..? 영킹은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아기도 it이라고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표킹도 아기를 '그것'이라고 옮기지는 않았더구만? 영어 대명사랑 우리말 직역이 어차피 대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 마케팅 방식이 적절치 못했다. 그렇게도 영킹 직역 성경을 내고 싶었으면 차이점만 나열하고 자기 것이 뭐가 좋은지만 얘기를 하면 됐는데 무슨 타킹들이 변개하고 삭제했다는 소리는 그 뒤로 욕을 십자포화로 얻어먹어도 실드를 칠 수 없다.
누가 정말 순수한 의도로 정당하게 성경 번역 새로 해도 기득권들로부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욕 먹고 비방 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거는 부당한 욕이 아니라 욕먹어도 싼 짓을 해서 욕먹는 거다.

- 영어 본문을 갖고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썰을 풀면서 어그로 끌었던 것도 이 바닥의 금도의 도를 어긴 거다. 일부 목사님들로부터 미운털 단단히 박힌 꼴이 됐다.

그러니 표킹에 대한 내 생각을 세 줄로 요약하면

  • 일부 영킹대로 잘 캐치하고 잘 번역한 표현
  •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번역 스타일
  • 적절하지 못했던 마케팅

정도다.
참조용으로 고려할 만은 하다. 나도 처음엔 '다시 채우라'와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언'이 모두 살아 있고 it came to pass를 다 번역했다고 해서 아주 긍정적으로 봤으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아직은 무시 못 할 지경인 것 같다. 일부 장점이 아니라 성경의 전반적인 번역 퀄리티나 저 진영의 인성의 퀄리티가 아직 검증이 덜 된 것 같다. 더 지켜봐야지.

"이제야 우리 민족에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 앗싸!" 이렇게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을지는.. 글쎄? 표킹 쓰고 싶거들랑, 한참 더 교열 보고 다듬는 일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 사람만 그 진영으로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성경으로 예배드리고 싶거들랑 혼자 조용히 교회 옮기면 된다. 기존 교회 목사를 비방하고 딴 초신자들 꼬드겨서 우르르 나가고 분탕질 치지는 마시라. 그건 무식하고 덕이 되지 않는 짓일 것이다.

3. 흠정역 (+ 근본역)

그리고 그 이름도 유명한 '흠정역'은 한킹의 뒤를 이은 2인자로 시작했지만.. 말보회의 삽질 뻘짓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받으면서 지난 20년 동안 점유율을 꾸준히 올려 왔다. 안티오크 권위역의 용어와 번역 이념을 많이 계승한 한편으로, 영킹의 표현을 말보회 한킹보다 더 많이 반영했다.

말보회가 애플이면 흠정역은 기기의 제조사가 다양한 안드로이드 진영이기라도 한 걸까? 흠정역 진영은 성향도 더 개방적이었다. 교리 노선이 번역자와 다른 기성 개신교회나 독립 교회들에게 자기 성경을 널리 보급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 대신 흠정역 쓰는 교회들은 영어와 원어 사이의 관념부터 시작해서 세부 교리의 파편화가 말보회 계열보다 더 큰 편이다.

그래서 흠정역 진영이 한킹 진영을 완전히 대체했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리 되지 못했다. 이쪽도 단점과 한계가 있고, 공과 과가 모두 생겼다.
세월이 흐르고 세력이 커지면서 성경 번역자 개인이 분별력이 흐려지고 흑화하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방식만 다를 뿐 절대값은 별 차이 없었다. 허나, 말보회 쪽은 교리 노선이 확고하고 탄탄해서 성경과 성경 번역자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는 반면, 흠정역 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흠정역은 번역자의 독특 내지 이상한 신념이 들어가서 성경에 예언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다. 그리고 창조과학회 영향을 받아서 세대적 진리에서 간극 재창조는 별 이상한 근거를 들면서 거부하는 등 교리 노선이 예전부터 많이 삐그덕거렸다.
10년 전에는 "원어로 너스레 떠는 목사 격퇴하기" 하면서 영킹을 강조하다가 지금은 원어 의존도가 훨씬 늘었다.
10년 전에는 "바른 성경을 믿어서 이단 소리 들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다가 지금은 "우리는 이단 아니다. 성경 선택권을 보장하라"...;;;

차라리 한 교리 노선에 일관되게 단호박이면서 탈퇴자 뒷담화만 거하게 하던 원래 동네가 더 나아 보일 지경이다.
이 와중에 최신 마제스티판은 딤전 6:5 '이익이 경건'을 이상하게 고쳐서 이전 판보다 개악되었고, 이것 때문에 학을 떼는 사람과 이것도 별 상관없다고 실드 치는 사람이 갈라져서 싸우는 촌극이 벌어졌다.

말보회에서는 지금도 흠정역이 짝퉁 가짜 성서라면서 비방 험담하느라 여념이 없다. 근데 쟤들은 상대방의 동태에 대해 공부를 하긴 할까? 욕할 거면 진짜로 물어뜯기 좋은 이런 아이템을 갖고 물고 늘어져야지, 책 제목 같은 별 쓰잘데기없는 걸 갖고 참 수준 낮게 트집 잡고 제 얼굴에 침 뱉더라.

그 와중에.. 2020년대에 근본역이라는 게 성서 침례교회 진영에서 만들어져 나왔다. 이건 예언 같은 몇몇 단어만 빼면 흠정역과 아주 비슷하다.
다만 판이 올라갈 때마다 정오표를 만들어서 수정 내역을 정직하게 공개해 주고(!!!!), 개인이 아니라 위원회 명목으로 판권 없이 오픈소스 정신을 반영해서 출간하고.. 딱 3판까지만 만들고 영원히 관두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번역보다는 번역 방식 면에서 참신한 시도를 한 것 같다.

이상이다.
이 2020년대 대한민국 땅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왕짜가 들어간 성경을 쓴다면서 정작 왕이 없는 판관기(사사기) 말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완전히 압도하고 대체· 흡수하지 못하고 전부 찢어져서 각자도생 중이다. 다양한 번역본들이 서로 장점을 합쳐서 하나로 수렴을 못 하고 혼란만 더 커지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각 진영의 번역자들을 골방에다 몇 달 가둬 놓고 한킹의 교리 체계에다가 흠정역 정도의 문장 구성, 거기에다 표준역의 일부 잘 캐치한 표현들을 집어넣어서 단일 역본을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만.. 그런 기적적인 통합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_-;; 애초에 정교분리 세속 국가에 제임스 왕 같은 중재자도 있을 리 없으니까.

어느 거 하나도 선뜻 못 고르겠으니 "역시 영킹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군.." 이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아주 짧고 단순한 구절이야 영어가 임팩트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엄청 길고 복잡하고 꼬인 영킹 구절도 술술 읽고 암기할 수 있겠는가? =_=;;

이 와중에 "이거는 이 번역이 맞고, 저거는 저 번역이 맞는 거 같다" 식으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입맛대로 판단하는 교만이나 지적사기는 정말 위험한 짓이다. 내가 저런 짓을 하기 싫어서 킹 진영으로 왔는데, 한국어 한정으로는 그 진영 안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게 됐구나. -_-;;

본인은 오랫동안 흠정역을 쓰는 교회를 다니다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교회를 옮길 일이 생겼다. 이 참에 예언이 있고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창 22:8)가 있는 성경을 쓰고 싶어서 진영을 옮겨 봤다. 유의미한 단점이란 게 "영어가 아닌 TR 번역이다"밖에 없다면.. 그게 뭐 어때서? 영어와 TR의 차이점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하고 공부 중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는 대한 성서공회만이 성경 번역을 독점하는 동네가 결코 아니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30년 뒤엔 3rd-party 성경의 점유율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참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30 08:35 2024/07/30 08:35

우리말 성경 번역 이슈

1. 혼을 얻는 자

잠 11:30 he that winneth souls is wise.
통상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호의를 얻고 마음을 사서 다들 자기 편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다~~ 이런 뜻이다. 그러나 좀 더 영적으로 들어가면 이건 '전도'하는 거.. 복음 전해서 남을 회개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끌어 온다는 뜻이 된다. soul winning.

말씀 보존 학회의 한킹은 저 구절이 동사가 win이라는 이유로 "혼들을 이겨 오는 자"라고 정말 단순무식 투박하게 번역했다. =_=;;
"우리 교회는 거리설교를 통해 매년 수십 명의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 오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말도 저렇게 전투적으로 한다. 옛날 개역성경의 "강하고 담대하라"처럼 언어에 대한 비표준 확장이라고 봐야 할지.. ^^

당연한 말이지만 저건 win a prize(상을 탄다/받는다) 할 때의 win이다. 경쟁 상대를 꺾거나 제쳐서 이긴 것은 beat라고 한다.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예시이다만, "1994년 올해의 명작 게임이라는 영예를 차지하고(win) 싶은 작품이 있다면 먼저 Doom부터 제쳐야/능가해야(beat) 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세상을 이기거나 마귀를 이기는 것도 아니고 혼들을 이기는 건 뭘까.. =_=;;
그렇다고 평범하게 get obtain acquire과 아무 차이 없이 얻는다고만 하면 성이 안 차니.. '쟁취'라는 말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했다.
오, 근데 유일하게 표준역이 저기서 쟁취라고 번역했구나. 우리말 성경 중에서는 첫 사례인 것 같다.
표준역이 논란이 많은 역본이긴 하지만.. 저기서는 단어를 잘 고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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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not a prize to be won! 나는 무슨 남자들의 전리품이 아니라구요! (디즈니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의 대사. Prince Ali 노래가 끝나고 얼마 뒤에..ㄲㄲㄲㄲㄲ)

2. 강하고 담대하라?

우리말 국어에서는 형용사 뒤에 명령문이 바로 오는 게 잘못됐다면서 여호수아의 저 유명한 말 "강하고 담대하라"라든가 예수님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비문(문법에 어긋난)이라고 비판이 제기되곤 했다.
그런데 기껏 대안이란 게 훨씬 더 길어지고 장황해지고 거추장스러워진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해져라"이면.. 어떡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벧전 1:16) 같은 구절도 있다. 표준어를 준수했다는 최신 우리말 성경들도 이 구절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놔두고 있다.
'거룩하다'도 형용사인데? 동사가 아니기 때문에 '거룩한다'라는 말이 없는 거다. 쉽게 말해 '거북하다'(불편하다)와 완전히 동일한 품사이다.

하지만 '거룩하라'라는 말이 너무 간결하고 잘 와 닿는다. "거룩해져라, 거룩하게 살아라" 이렇게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고, 저걸 그대로 그냥 성경 언어적 허용이라고 정착시키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난 그렇게 본다.
우리말은 '맞다/틀리다/맞는/알맞은'처럼 근본적으로 형용사와 동사의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새로 번역되는 우리말 성경은 현행 언어 규범을 가능한 한 따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만 절대적으로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한킹은 흠정역 같은 후대의 역본 대비, 개역성경 스타일의 간결함이 있어서 더 잘 읽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가 더 간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울나라 헌법도 생각해 보자. 1987년 개헌 이후에 맞춤법이 개정되는 바람에 지금 관점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문장(..."투표에 붙이다")이 생겨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헌법을 호락호락 또 수정하지는 않는다. 그건 개헌이라는 엄청난 과업이 되어 버리며, 헌법에는 무슨 위키백과 같은 '사소한 수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이 그러한데 하물며 성경 본문에도 그런 정도의 권위와 무게감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싶다.

3. help meet for him

한국어 '맞다'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드물게 형용사-동사 품사통용이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meet.
옛날 영어에서는 '만나다'가 뭔가 '만족시키다, 충족시키다' it meets the requirement으로 확장되고, 그게 '-에 적합한, 알맞은'이라는 형용사로 더 확장된 듯하다.

그게 바로 창세기 2:18에서 아담을 위한 합당한 조력자(help meet for him)라고 번역되었다. meet는 형용사이므로 "help meet - for him"이 아니라 "help - meet for him"이라고 끊는 게 바람직하겠다.

근데 저 문맥에서 조력자란 곧 '배우자'이지 않은가?
이게 얼마나 임팩트가 컸으면 helpmeet라는 한 단어가 생겨서 배필, 배우자라는 뜻이 됐고.. helpmate라는 말까지 파생돼 나왔다. 이거는 마치 비키니에서 모노키니가 나온 것처럼, 어원상 관계는 없지만(meet ≠ mate) 걍 비슷한 조어가 튀어나온 것으로 보인다.

즉, help가 먼저이고 helpmeet는 후대의 해석 내지 파생 의미이다. 그러니 성경 번역을 helpmeet로 미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력자/도우미가 1차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help는 굳이 helper이라고 하지 않아도 help만으로 어느 정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얼추 들어있는가 보다. 물론 반대로 helper이라고 해서 굳이 사람일 필요가 없고 사물, 기계가 모두 가능하다.
게다가 help me라고 외치면 "사람 살려!!"가 되니.. help가 생각보다 인간적인 단어인 것 같다.

4. God forbid? The LORD forbid?

성경에는 그냥 No를 넘어서 천부당만부당, Absolutely not이나 May it never be 같은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관용구가 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이를 God forbid라고 번역했다.
성경에서 이 표현을 제일 많이 사용한 책은 로마서이다. "그럼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하리? ㄴㄴ 절대 그럴 수 없음" 이런 패턴으로 말이다.

그래서 킹 제임스 진영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반드시 God을 살려서 '하나님이 금하시리'라고 번역해야 한다" vs "아니다, 저기서 God은 원어에도 없는 그냥 영어의 관용 어휘일 뿐이다~ 저거 한 덩어리 전체가 '절대 안 됨'이라는 뜻이다" 갖고 치고 받고 싸우는 일이 많다.
본인은 이런 소모적인 논쟁에 진지하게 가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뭔가 가타부타 의견을 내려면 다음 경우도 생각해서 일관되게 적용 가능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성경엔 God forbid뿐만 아니라 God save the king (국왕 폐하 만세 vs 하나님이 울 국왕을 보우하시리)라든가 God speed (축복 인사. 요즘으로 치면 God bless you에 가까운..)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전자는 구약 성경 역사서에서 두루두루 나오는 편이지만, 후자는 요한이서에서만 딱 두 번 등장하는 희귀 관용구이다.

(2) 짤막한 God forbid 감탄사뿐만 아니라 "God forbid that ..." 이런 문장도 있다. 창세기 44장에서 요셉의 형들이 "저희가 감히 파라오님의 술잔을 훔쳐 가다니요~ 저흰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최초로 이 문장이 쓰였다. God forbid를 '하나님이 금하시리라'라고 옮기려면 창 44:7이나 창 44:17도 그렇게 옮길 수 있겠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3) 그리고 끝으로.. 성경엔 God forbid만 있는 게 아니라 the LORD forbid도 구약에 있다. "주가 금하신다"..이고, 개역성경 용어로는 "여호와가 금하신다"이다. 단, 이건 단독 감탄사는 아니고 문장 형태만 있다.
삼상 24:6, 26:11에서 다윗이 사울 왕을 해코지할 수 없다고,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람에게 내가 감히 손을 댄다니~~~ "절대 그리할 수 없다"라고 말할 때 쓰였다.
그리고 왕상 21:3에서 나봇이 아합 왕에게 조상 대대로 살아 온 땅을 처분한다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할 때도 이 표현이 쓰였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말 성경들이 God forbid의 문장형은.. "결코 그럴 수 없다"라고 옮긴 반면, The LORD forbid의 문장형은.. "주께서 금하신다"라고 옮겼다는 것이다. 개역성경 이래로 표킹을 제외한 킹 계열 역본들이 모두 동일하다. (표준역은 '하나님이 금하신다'를 첫 시도했음)

이렇게 LORD forbid와 God forbid의 번역이 달라질 만한 이유가 원어 차원에서나 다른 이유로 인해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하긴, 우리말에도 딱히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식하지 않는 "하나님맙소사" 이런 말도 있고, 영어 Good-bye도 god be with you에서 유래되기는 했다고 들었다. 재채기 인사인 Bless you도 그렇고..
그리고 예전에 영국에서 찰스 3세 국왕이 즉위했을 때 국가적으로 참 오랜만에 God save the king 인사가 울려퍼졌고.. 그게 자막에서는 우리말 애국가 가사 "하나(느)님이 보우하사"처럼 번역돼 나갔었다.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지금이야 우리말 '만세'는 hooray banzai-_-라는 평범한 감탄사로 많이 쓰이지만, 원래는 국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할 때만 쓰이는 아주 존귀한 단어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 만세를 국왕 폐하가 아니라 자기 나라에다가 끌어다 쓴 삼일 운동이 정말 파격적이고 민주적인 발상이었으니 말이다.
이를 감안하면 God save the king을 "국왕 폐하 만세"라고 옮긴 건 더욱 적절한 용례인 것 같다. 영어의 God이 우리말의 만세에 대응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5. 하루살이를 걸러내나, 모기에 긴장하나

성경의 마 23:24는 대략 "이 눈깔이 썩은 가이드놈들아. 니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잘도 꿀꺽하네?" 이런 의미의 책망 구절이다. ㄲㄲㄲㄲㄲ
개념적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같은 구조이다. 그리고 본질적이지 않은 디테일에는 왕창 목숨 걸면서 진짜 큰 잘못은 슬쩍 답습하고 넘기는 부조리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저 구절에서 후반부, 낙타를 삼킨다는 말은 지구상의 모든 성경 역본들 간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전반부, strain at a gnat은 역본마다 번역이 좀 갈리는 편이다.

먼저 gnat이 하루살이냐 모기냐를 갖고 갈리는데, 이건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음 strain가 진짜 문제다. "힘주다, 끙끙대다, 애쓰다, 신경 곤두세우다"인지 아니면 '걸러내다'인지가 갈린다. 참고로 현대에 strainer라고 하면 주방에서 쓰이는 걸러내는 동그란 체를 뜻한다.

거의 모든 성경들.. 심지어 킹 계열이라는 한킹, 근본역 표준역까지 다 "하루살이/모기를 걸러낸다"라고 옮겼다. 비킹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딱 하나.. 흠정역만이 유일하게 "모기에 긴장하고"라고 옮겼다. 뭐, 이것도 '대언'과 마찬가지로 안티오크 권위역에서 처음으로 유래된 번역이다.

서로 자기 번역이 맞다고 스트롱 성구 사전이 어떻고 웹스터 영영사전이 어떻고 심지어 원어 사전이 어떻고 막 떠드는데, 내가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이렇다.

strain out도 아니고 strain at이라면
뭔가를 '걸러 내는(out)' 것보다는 '-에(at) 신경이 곤두선다, 긴장한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흠정역 측의 견해에 일면 동의한다.

하지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보자.
모기한테 왜 긴장하는데? 왜 눈 부릅뜨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난리인데?

모기가 무서워서 긴장할 리는 없다. 쬐끄맣지만 성가신 놈이 있으니까, 잡으려고, 걸러내려고 저러는 거다.
불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짜증나는 앵앵~ 소리가 들릴 때.
잡가시가 왕창 많은 생선살을 씹어먹으려 할 때.. 그 심정 말이다. =_=;;

이런 차원에서 "모기한테는 긴장하고"라는 말이 결국은 "모기를 걸러내고"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긴장하고'는 표면적인 동작이고, '걸러내고'는 본질적인 의미이다.
"선물은 넙죽넙죽 받으면서"라는 의미를 "선물만 보면 입 헤 벌리면서", "선물만 있으면 손 잘도 내밀면서"라고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키?

피터 럭크만이 저기서 at은 out이라는 뜻과 다를 바 없다고 얘기까지 했다는데.. 당연히 문법적으로야 at이 on도 아니고 어떻게 out이랑 같을 수 있냐? 저 구절에 한해서 화용론적으로 동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킹의 영어 표현을 존중해서 "모기에 긴장하고"라고 번역을 하려거들랑, 여기 긴장이 최소한 무서워서 쫄아서 긴장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옆의 성경 교사가 보충 설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저 표현이 '걸러낸다'라는 의미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두 동작을 합쳐서 "기를 쓰고/눈 부릅뜨고 걸러내면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 win을 "쟁취하다"(이겨서 얻음)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한킹이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게 아니라고 비판받는 다른 여러 표현들도 이런 식으로 해명이 가능하다.
작은 숲(외형) vs 아세라(정체, 실체)라든가, 생활방식 vs 시민권 따위 말이다. 결국은 같은 뜻이다.
차라리 의역이 지나치다고(?) 비판할지언정, 최소한 오역이나 변개는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3/24 08:35 2024/03/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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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권

말보회 한킹에는 영어 KJV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민권' citizenship이라는 단어가 두 군데 나온다.
하지만 1600년대에 그런 직접적인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그 문맥에서 그 단어의 실질적인 의미는 시민권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 로켓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에 로켓을 'NASA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 개발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먼저 빌 3:20이다.
conversation은 단순히 '소통/대화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행실이라는 뜻으로 신약에서 쓰였다. 베드로전/후서에서 타인에게 모범이 될 만한 것의 사례로 특별히 자주 쓰였다.
쉽게 말해 찬송가 가사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망령된 '행실'을 끊고"에서 저 '행실'이 conversation과 개념적으로 정확하게 대응한다.

그런데 딱 하나 빌 3:20 "우리의 conversation은 in heaven 하늘에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건 우리의 영적 지위 얘기이다. 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행실 문맥이 절~~대로 아니다. 아무리 "conversation = 행실" 영어 직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래서 한킹을 제외한 나머지.. 먼 옛날의 권위역부터 시작해 흠, 근, 표.. 모두 이 단어를 "생활 방식"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방식'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는 거의 다 manner에 대응한다. 즉 저 말을 영어로 역번역하면 오히려 manner of conversation이 된다.

그럼 어차피 빌 3:20의 conversation은 벧후 3:11이나 벧전 1:15 같은 행실이 아닌데.. 여기서만 예외적으로 '생활 방식'이라고 새로운 말을 만들 바에야 '시민권'이 뭐가 대수인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에 90일 관광비자만 받고 놀러 와 있는 사람이랑.. 아예 미국 영주권· "시민권"이 있고 거기 정착해서 직업도 갖고 있는 사람은 미국 땅에서의 "생활 방식"이 당연히 서로 완전히 다르다. 이런 관계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빌 3:20 말고 또 시민권이 등장하는 곳은 바로... 행 22:28이다. 성경 스토리 좀 들어 본 분이라면 다들 아실 스토리 되시겠다.

-- 로마군 사령관: 난 돈 왕창 많이 갖다바쳐서 로마 시민권을 간신히 취득했는데..
-- 바울: 난 모태 로마인이오.

영킹은 이 부분이 시민권이 아니라 '자유' freedom이라고 돼 있다.
이건 그냥 옛날 성경과 현대 성경의 용어 차이이지, 변개 이슈가 아니며 KJV만의 교리적으로 우수한 번역이라고 간주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KJV 이전 계보의 영어 성경들도 다 freedom이라고 옮겼기 때문이다.

왜냐고? 이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근대적인 시민 계층, 민주주의, 상비군, 국가 체계 같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로마인이면 로마인이지, 로마 시민권자??? 이런 개념이나 용어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천적 로마인"으로서의 권한과 혜택을 freedom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영어 freedom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거잖아~~" ㅇㅇ 그렇긴 하다.
그런데 이 본문이 교리적으로 무슨 갈라디아서 4장 같은 문맥인가? free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한 종 노예인가? 저 사람은 무슨 땅거지 노예였다가 극적으로 해방된 걸까?
그 당시에 로마 시민이 아닌 유대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은 사회적 신분이 전부 창세기의 하갈 같은 처지였을까? 그렇지 않다.

로마 시민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고, 당장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지 않았으며.. 재판 받다가 억울하면 항소해서 로마에 직접 가서 재판 받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중죄 반역죄를 지어도 십자가형으로 처형 당하지는 않았다.

로마인이 아닌 사람은 저 정도의 권한이 없고 생활이 다른 제약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로마 제국 내에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비참한 사람은 아니다. 그게 아니어서 저 사령관이 밑바닥 노예에서 해방된 거라면, 평민이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과연 어떻게 요즘으로 치면 대령~준장 급의 고위급 군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1600년대 당시에 영킹으로 행 22:28을 읽었던 영어권 화자나, 지금 우리가 한킹으로 행 22:28을 읽으나 결국 그 말이 그 말, 로마 시민권을 떠올리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절 1600년대 영어 언어 문화에서는 freedom이 최선의 번역이었고, 지금 우리 언어 문화에서는 시민권도 전혀 문제 없는 번역이다. 이걸 최소한 오역이나 변개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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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ice Guarantees Citizenship "군복무 하시면 시민권 무조건 드립니다~!!" (옛날 공상과학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에 나오는 유명한 선전 문구 ㄲㄲㄲㄲㄲ)

세상에서는 어느 강대국의 Citizenship을 얻으려면 행 22:28처럼 돈을 왕창 내거나, 아니면 저 영화에서처럼 군복무라도 하면서 나라에 기여하고 왕창 고생해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순서가 반대다. 먼저 하늘나라 Citizenship부터 얻고 나서 롬 12:1처럼 Service, 아니 reasonable service를 실천한다.
'시민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유일한 우리말 킹 제임스 성경을 보시는 분이라면 이 점을 잘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계시록 4:11에 나오는 스물네 장로들의 찬송을 보면.. 여느 성경들은 "주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피조물들은 주의 '뜻'에 따라/의해/뜻대로 창조되었다"고 나와 있다. by your will, because of your will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은 특이하게도 이 부분을 주의 '기쁨을 위하여/인하여' for thy pleasure 라고 번역했다. 말보회 한킹은 도로 '뜻'이라고 옮겼다.

그리스어 '델레마'는 다른 모든 구절에서는 그냥 '뜻, 의지, 의도'를 의미한다. (논리 용어 딜레마와는 무관한 단어)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에서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요한복음 "나를 보내신 분의 뜻", 살전 5:18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내가 찾아본 바로는 전부 이 단어이다!

(1) KJV 이전에 계 4:11을 thy will 대신 thy pleasure라고 옮긴 역본은 내가 아는 한 비숍밖에 없다. KJV는 이 구절에서 비숍과 제네바 중, 비숍의 번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일단 본문 자체 변개 문제는 아니고, 그 다음의 번역의 차이점 문제이다.
(비숍은 바른 본문 기반이긴 하지만 전 11:1 "빵을 젖은 얼굴 wet faces 위에 놔둬라"처럼 자신만의 튀는 오역이 존재하기도 했던 역본이다. ㅎㅎ)

(2) '뜻'과 '기쁨'이 모두 나오는 엡 1:5 같은 구절도 있다.
여기 말고도 여러 구절을 찾아보니, 기쁨을 뜻하는 원어는 원래 당연히 따로 있다.

(3) 계 4:11이 혹시 히 12:10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그걸 비교해 봤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가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했거니와" 이거야말로 '자기 마음대로/뜻대로'와 '자기 기분 좋을 대로'가 상호 교차 가능하지 않겠는가? 참고로 구약에도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셨음이니이다" (욘 1:14) 같은 표현이 있으며, 이 역시 '자기 마음대로, 뜻대로'와 다를 바 없는 의미라 하겠다.

하지만 히 12:10에서 쓰인 원어는 계 4:11과의 접점이 의외로 전혀 없었다.
물론, "기뻐하는 대로(= 멋대로 마음대로라는 뉘앙스) 징계"와 "숭고하고 심오한 기쁨을 위해 창조"는 어감과 심상 자체가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건 감안할 점이다.
그러니 이쯤 되면.. 사람마다 어떤 언어관 성경관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판정이 달라진다.

(1) 그냥 평범하게 원어 원문이나 헬라어 사전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KJV가 혼자 특이하게 번역했거나 심지어 오역을 했네~ 헬라어로 보니 '뜻' will이 맞네?"라고 말하고 코웃음 치며 간단하게 넘어간다.

(2) 그게 아니라 킹의 번역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는 그냥 뜻이 아니라 기쁨이 수반된 뜻이기 때문에 킹이 일부러 다르게 번역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영킹은 어린 시절부터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일상적으로 팠던 미친 석학들 47명이 각자가 성경을 전부 번역한 뒤, 그걸 서로 대조하고 14번이나 검토하는 식으로 왕창 빡세게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 보시길..)
마치 빌 4:1 '나의 기쁨'처럼 피조물들이 창조되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창조를 하셨고 실제로 기쁨을 얻으셨다.

(3) 그런데 '뜻'이라는 원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짜 오로지 영어 KJV의 표현 for thy pleasure만 보면..
좀 의역 내지 확장된 해석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사명.. 아니 하나님 기쁨조의 사명을 띠고 창조되었다"처럼 된다.
빌 4:1이 아니라 군인은 자기 상관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딤후 2:4 같은 논리가 된다. 이쯤 되면 원래 '뜻'이라던 그리스어하고는 꽤 멀어지는 것 같다. ^^

당연히 교리적으로야 우리는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아기가 갓 태어나서 부모가 기쁜 것하고, 그 애가 커서 효도해서 부모가 기쁜 건 조금 다른 차원인 것도 사실이리라. 계 4:11은 무슨 기쁨을 말하는 걸까?

계 4에서 장로들의 찬송은 그렇잖아도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얘기하는 문맥이다. 그러니 "뜻대로 창조" 1, 2번이 일면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정말 원어를 생까고 영어 킹에서만 발견되는 계시와 교훈을 찾자면 3까지도 확장 가능하다. 영어 전치사 for, in, of 따위는 무진장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단어이니까.

킹 빌리버들의 믿음에 따르면, 성경엔 문맥에 벗어난 말도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 있다. 시편 12편에서 온통 경건한 자, 가난한 자, 학대받는 자, 이스라엘 백성 얘기를 하다가도 끝에 갑자기 말씀을 영원히 온전히 보존한다는 얘기가 뜬금없이 나올 수도 있을 정도니까.

이런 구절에서 킹을 단순히 잘 번역된 성경,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성경 정도로만 아는 사람과.. 아예 원어를 초월하는 계시가 담긴 더 뛰어난 성경(!!!)이라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_=;;

3. 기뻐하라 / 세굿빠

고린도후서의 끝부분인 13:11 말이다. "끝으로 형제들아.. finally, brethren" 다음에..
어떤 성경은 "안녕히 계세요, 바이바이, 잘 있으라"(farewell, goodbye)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성경은 "기뻐하라"(rejoice)라고 되어 있다. 영어 KJV는 전자인데, 한킹은 후자를 택했다.;; 어찌 된 일일까?

이 역시 원어로 '카이로'.. '기뻐하라'와 같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살전 5:16의 그 유명한 "항상 기뻐하라", 그리고 기쁨이 넘치는 옥중서신 빌 4:4의 "기뻐하라"..
심지어 같은 고린도후서 13장의 바로 앞 9절의 "기뻐하라"와도 같은 단어이다. 하지만 KJV는 거기서 이미 '기뻐하라'가 나왔으니 또 '기뻐하라'일 것 같지는 않아서 작별인사를 선택한 것 같다.

이건 역사적인 근거도 아까 계 4:11보다는 더 갖추고 있다. KJV 이전의 틴데일, 그레이트, 비숍이 다 farewell이었다.
심지어 NIV, NRSV 같은 일부 변개된 계보의 성서도 farewell이고 우리말 공동번역 성서도 아마 의역하다 보니 작별인사로 옮겼다. 그러니 이건 변개나 오역 문제가 아니다.

다만, 9절과 11절에는 perfection(온전함)이라는 말이 공통으로 나온다. 그래서 11절에서도 '기뻐하라'를 써 주면 9절과 11절이 모두 '기뻐하다'와 '온전함/온전하라'가 나와서 뭔가 호응이 이뤄진다.
그리고 11절은 어차피 live in peace.. 말 그대로 "평안히 지내라"라는 작별인사 의미가 따로 들어있기도 하다는 점 역시 참고할 사항이다. ㄲㄲㄲㄲㄲ

(1) 여담으로.. 행 23:30은 편지를 인용하는 부분의 결말부인데.. 여기서도 킹 제임스 성경만이 끝인사 farewell이 붙어 있다.
고후 13:11과 행 23:30을 보면.. KJV 번역자들은 farewell이라는 작별인사를 좀 좋아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사도행전 구절은 그냥 원문 계보의 차이라고 한다. 변개된 본문에서는 그리스어에서부터 기뻐하라고 나발이고 끝인사 자체가 빠져 있다. 그러니 고후 13:11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이런 걸 강경 영킹주의자가 발견하면 farewell과 관련하여 원어가 아니라 영킹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진리~ KJV의 우수성~ 어쩌구 하면서 얼마든지 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야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르지만 그 바닥을 오래 경험해 봤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식으로 주장을 하는지 패턴을 안다.

(2) 끝으로 NIV의 경우, 1984년판 NIV 첫판은 "형제들아, good-bye"였다. 그러다가 2011년판 개정 NIV는 "형제 자매님들, 기뻐하십쇼~!"로 바뀌었다. 형제가 '형제 자매'라고 바뀌고, 저 단어를 '기뻐하라'라고 옮기는 게 요즘 번역 트렌드이기는 한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3/11/05 08:35 2023/11/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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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의 원천

우리나라엔 그 이름도 유명한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라는 출판사가 있어서 한글 킹 제임스(이하 한킹)라는 이름의 성경을 출간· 판매하고 있다. 내년이면 발간 30주년이 된다. 이 단체는 전국 각지에 '성경 침례 교회'라고 자기네 성경을 사용하는 침례 교회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성경을 번역했다면 자기네 성경을 써 줄 기존 교회· 교단을 물색하거나, 아니면 자기들이 직접 교회· 교단을 개척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네 성경을 인용해서 독자적인 내용의 책도 많이 내면서 세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그 성경 역본은 현실의 기독교계에서 쓰이지 못하고 그냥 듣보잡 군소 번역으로 전락한 채 사라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말보회는 딱 이 전략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성경은 한킹을 밀고, 이를 기반으로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를 잔뜩 출간한 것이다.

말보회는 대외적으로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고, 이 때문에 이상한 이단 소리를 들었다. 물론 순수하게 성경관 신념 때문에만 이단 소리를 들은 건 아니고, 그들 고유의 간증 상실 삽질과 흑역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진짜 중요한 논란거리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말보회에서 내놓은 한킹은 정작 같은 킹 진영 내부에서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KJV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왜 그렇냐 하면 한킹은 언뜻 보기에 KJV의 영단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듯한 표현과 어휘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허나, 한킹 측의 입장을 변호해 보자면 걔들도 할 말은 있다. 기계적인 직역을 안 했을지언정,

  • grave 무덤 // 음부 (문자적인 무덤 묫자리가 아니라 구약 시대의 지하 사후세계 자체를 나타낼 때. 낙원+지옥 통틀어)
  • 환난 (일상적인 역경 고난) // 환란 (미래의 유대인 대환란)
  • 나라 // 왕국
  • 위하여 (for sinner) // 인하여 (for sin)
  • 육체 안에 // 육신으로
  • 심지어 그리스(Greece) // 헬라(Greek) 등등

이런 걸 나름 자기 원칙대로 임의로 구분을 많이 해 놨다. 영어로는 같은 단어인데. ㅎㅎ
저런 거 말고 루시퍼, 갈보리, 이스터, 다시 채우다(창 1:28), 순교자, 말씀의 젖으로 자라라(벧전 2:2),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창 22:8).. 이런 건 한킹도 당연히 영어 KJV의 번역을 그대로 따랐다. 애초에 한킹의 존재 의의가 저런 걸 공론화하고 한국어로 반영한 거의 최초의 우리말 성경이니까 말이다.

한킹의 번역 방침 내지 스타일에 공감되지 않아서 한킹을 안 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변개 오역이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어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게, 최소한 아무 이유 없이 제멋대로 의역을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영킹이 아니라 영킹의 번역 원천인 원어를 좀 참고한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점을 알면 한킹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한킹은 이름과 실체의 관계가 웹툰 '교도소 일기', (작가가 실제로는 구치소에만 갇혀 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대구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사건 (실제로는 애들이 도롱뇽을 잡으러 갔다가 실종되고 살해당한 거지만)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구치소나 도롱뇽 대신 더 친숙한 교도소나 개구리를 썼다고 해서 저 타이틀이 독자를 심각하게 악의적으로 기만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타이틀이 무엇이건 간에 "범죄자가 수용되는 국립호텔은 이런 험악한 시궁창이다" 내지 "초딩 꼬마들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러 나갔다가 안타깝게 실종되고 살해당했다"라는 게 본질이고 핵심이니까 말이다.

마치 C++ 이후로 얘처럼 무식한(?) #include #define 전처리기나 다중 상속을 몽땅 구현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결코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한킹 이후의 소위 KJV 계열 역본 중에 한킹의 저런 독자적인 용어와 번역 스타일을 답습한 역본은 결코 다시 등장하지 않지 싶다.

게다가 한킹은 재판관기(사사기)처럼 일부 책 이름을 통째로 바꾸기도 했으며, 인명과 지명 표기도 ㅋㅌㅍ 음운을 첨가해서 자기 스타일로 많이 바꿨다. (스카랴, 스테판, 카나안 등)
이런 걸 한킹 말고 후대의 어느 진영이 수용하겠는가? 말보회는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서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역사에 한 획을 긋긴 했다.

글쎄,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영킹은 변개되지 않은 원문에서 번역을 가장 잘한 역본 정도가 아니다. 원어 원문 성경보다도 더 뛰어난 계시이다~!!! 히브리어 그리스어의 중의성을 해소하고, 원어에 없던 미세한 뜻 변별과 운율까지 다 살려 줬다~!!" 이런 급이라면 한킹의 번역 스타일은 의미가 다소 퇴색할 것이다.

이 정도로 영킹을 극도로 지지하는 영어 순수주의자(?)가 보기에는 한킹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나온 흠정역조차도 순수(?) 영킹 번역이 아니며 100% 만족스럽지 못하다. 2020년대에 출간된 표준역은 그런 순수주의자 성향을 더 반영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 대신 다른 쪽으로 논란거리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한쪽에서는 상대방을 보고 "맨날 수시로 잠수함 패치되어 온 성경이 무슨 놈의 최종 권위냐"라고 까고, 거기서는 이쪽을 향해 "한번 주어진 영감이 쭉 전수되고 보존되는 거지, 번역본에 무슨 영감이 이중 삼중으로 임하냐" 이러면서 맞받아치는 일이 되풀이된다.

이건 내가 보기엔 그냥 영감이나 최종 권위라는 단어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정의가 달라서 벌어지는 말장난이다. 자기네가 번역한 우리말 성경에다가 차마 최종 권위라는 말은 못 붙이니, 거기서도 그래도 이게 perfect 하고 온전 완전하다면서 같은 용도의 다른 수식어를 붙일 뿐..
내 공식 입장은 "아무나 이겨라"다. -_-;; 그럼 다음으로 최종 권위라는 개념에 더 자세히 얘기해 보고자 한다.

2. 최종 권위

옛날에.. 과학계에서는 1킬로그램의 정의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을 그대로 1kg이라고 한다" 이러던 시절이 있었다.

진짜배기 원기는 세계에 단 하나만 존재해야 했고, 워낙 귀하신 몸이니 함부로 여기저기 움직이고 활약할 수 없었다. 평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화학적으로 극도로 안정한 금고 안에 짱박혀 있는다.
취급 부주의로 인해서 원기에 이물질이 묻거나 생채기가 생겼다간 얘의 질량이 0.1 마이크로그램이나마 달라지게 되고, 그랬다간 전세계 과학계에서 참조하는 킬로그램의 정의가 달라져 버릴 테니 말이다... 그러면 정밀 실험의 결과값이 달라질 것이고, 같은 금의 거래 가격이 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원기를 아주 정교하게 복제한 레플리카가 수십, 수백 개 만들어져서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다.
세계 각국엔 자기들의 표준 과학 연구원에 상당하는 기관이 있고, 걔들은 그 레플리카를 기준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저울, 무게추의 품질을 측정하고 실험의 정확도를 판정해 왔다.

그리고 그 기관에서는 수 년 간격으로 그 레플리카 원기가 질량이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오리지날' 원기와 대조해서 보정· 시정 조치를 취했다.
지금이야 1kg의 정의가 플랑크 상수 어쩌구 하면서 어렵긴 하지만 자연 실험으로 재현 가능한 객관적인 방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게 옛날 일이 됐다. 허나, SI 단위 중에서 질량 단위가 원기 의존 정의를 제일 늦게 벗어났다. 이 질량이라는 게 생각보다 난해하고 오묘한 물리량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의 권위라는 것을 말할 때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 우리가 영어알못이고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어 KJV만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건.. 영킹이 바로 저 "오리지날 킬로그램 원기"와 같다는 차원에서이다.

평소에 일상적으로 영킹 읽어서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성경은 지금도 계속 교열하느라 난리인 반면, 영어 성경 본문은 불변 고정된 지 400년이 넘었다.
한국어 성경들을 교열 보고 비교할 때 기준이 영킹인 거다. 이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영킹이 최종 권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보회에서 말하는 "자기네 한킹이 최종 권위"라는 건.. 실제로 개인이 읽고 묵상하고 교회에서 낭독하고 설교하고 믿고 실천하는 그런 권위라는 얘기이다. 실생활에서 다른 저울과 무게추를 판정할 때 쓰이는 레플리카 원기가 킹왕짱이라는 말과 같다. 뭐, 그냥 최종 권위도 아니고 '믿음과 실행에서의 최종 권위'라고 말하니 그쪽 논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허나 오리지날 원기가 평소에 맨날 금고에 짱박혀 있는다고 해서 아무 짝에 쓸모없는 무용지물인 게 아니고, 레플리카들이 오리지날 대비 믿을 게 못 되고 아무 권위가 없는 게 절대 아니다. 각자 역할과 쓸모가 있을 뿐이다.
kg원기의 경우, 저런 물리적인 여건의 한계가 있는 거고, 영어 성경의 경우 언어 장벽으로 인한 접근성 한계가 있는 거지.
그래서 내가 양측이 생각하는 '최종 권위'의 정의가 서로 다른 거라고 진단한 것이다.

C 코드로 비유하자면
const BIBLE my_final_authority = 한킹;
이 아니라

BIBLE *const my_final_authority = &한킹;
인 거라고 생각하자. =_=;; (가리키는 위치만 불변이고 거기에 들어있는 값이 바뀌어도 무관)
그러고 보니 Java는 키워드의 이름부터가 const가 아니라 final이긴 하다. 그리고 '값 변경 불가'뿐만 아니라 '더 상속 불가, 오버라이드 불가' 같은 다양한 봉인 용도로 이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 ㄲㄲㄲㄲㄲㄲ

이상이다.
본인은 20여 년 전에 흠정역을 통해 처음으로 KJV 유일주의에 입문했다.
그러나 짬이 좀 찬 지금은 흠정역 쪽의 약점도 그럭저럭 파악해서 알고 있고, 반대로 한킹이 더 잘 번역한 부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특히 한킹은 지금까지 출간된 우리말 성경들 중에 서문이 제일 고퀄-_-인 것 같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읽어보면 그야말로 피가 끓을 것 같다. 영적 전쟁에서 성경이란 게 어떤 존재이며 아군과 적군이 무엇인지를 딱 칼같이 정의한 뒤, 이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한 이유, 목적, 배경, 번역 방법론과 기대되는 효과를 일목요연하게.. 논문에 가까운 스타일로 잘 써 놓았기 때문이다.

첫 시작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했는데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뒤, 우리나라 킹 진영은 너무 찢어져 있다. -_-;;
너도 나도 성경 번역하겠다고 나서서 인구 1억도 안 되는 고립어인 한국어에 영킹을 번역했다는 역본이 과장 좀 보태면 10종 가까이 난립해 있다. (군소 마이너까지 포함해서)
물론 역본이 수백 종에 달하는 영어 성경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영어는 세계에서의 인지도가 한국어 따위와 비교를 불허하는 넘사벽이니 처지가 다르다.

이렇게 성경 역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더 나은 성경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냥 분열과 혼란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30년, 50년 뒤에 우리나라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KJV 계열 역본 원조라 할 수 있는 말보회 한킹을 다시 살펴보니 감회가 새롭다. ㄲㄲㄲㄲ 다음 시간에는 한킹의 특이한 번역 내지 표현에 대해 조금 논하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3/11/02 08:35 2023/11/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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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 스타일의 차이

이 글에서는 KJV 유일주의자가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인 교리 분야의 텍스트 변개가 아니라, 그냥 번역 스타일의 차이(이역)에 더 가까운 주제들을 다루었다.

1. 비인격적(?)인 표현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은 현대에 번역된 성경들에 비해 뭔가 덜 인격적인(?) 대명사를 써서 번역된 구절이 좀 있다.

(1) 먼저 떠오르는 건 열왕기상 3장의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 장면.
영어를 잘 읽어보시면 문제의 갓난아기를 전부 it으로 가리키고 있다. 아기의 성별이 뭔지 모르는 문맥인 것도 아니고, 두 여인이 나름 아들이라고 거듭 거듭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e/him을 쓰지 않았다.

아기 예수, 그리고 창세기에서 베레스와 세라(창38:27-29)의 출산처럼 다른 곳에서는 갓난아기에게 성별을 부여한 인칭대명사를 얼마든지 사용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도 솔로몬의 재판만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히브리어 원어가 그렇게 쓰여 있어서? 아니면 진짜 엄마가 나서기 전까지는 왕이 아기를 진짜로 물건 취급하고 divide it, slay it 이런 명령까지 내렸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2) 성령님의 기도 중보를 말하는 유명한 롬 8:26에서 the Spirit을 itself라고 가리킨 것도 유명하고 심지어 오역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성령은 물이나 불, 바람, 기름 같은 무생물로 예표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하나님의 삼위 구성원이고 인격적인 존재이다. 그런데도 himself가 아닌 itself라고 번역된 것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원어가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3) 예수님 관련 예언인 눅 1:35에서는 다른 거의 모든 성경은 the Holy One (거룩한 이, 거룩하신 분)이지만 KJV만은 아예 the holy thing (거룩한 것)이다.
KJV를 번역했다는 흠정역조차 오래 전 초창기에는 '거룩한 이'라고 의역을 해서 출간됐었다. 그러다가 "우리 통념상 어색하더라도 KJV를 번역했다면 닥치고 KJV 단어에만 충실하게 옮겨야 합니다" 이런 설득과 권면이 받아들여져서 지금처럼 번역이 수정됐다.
그 예언은 예수님의 육신, 생물학적인 단백질 덩어리 몸만을 가리키는 문맥이기 때문에 thing이라는 것이 이쪽 진영의 입장이다.

사실, KJV는 요즘 영어처럼 하나님/예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시하는 처리조차도 돼 있지 않다. 그런 관행 자체가 후대에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2. 더대오? 렙배오?

마 10:3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 제자들 명단의 일부이다.
다른 모든 성경들은 “빌립, 바돌로메, 도마,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 그리고 다대오(Thaddaeus)”라고 돼 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은 다대오가 그냥 다대오가 아니라 “다대오라는 별명을 가진 렙배오(Lebbaeus)”라고 돼 있다. 이 렙배오라는 명칭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본인은 KJV 유일주의에 입문한 지 어언 20년 가까이 돼 가지만, 이런 차이가 있는 건 꿈에도 몰랐다.;; 사실은 다대오가 가룟 유다와 동명이인인 제자 유다를 가리키고, 요 14:22에서 질문을 한 그 사람이란 것도 지금까지 별로 인지를 못 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사실을 내가 원래 다니던 교회가 아니라 여친 교회의 설교에서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개역개정 쓰는 일반 기성교회)
이분들도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모르시는 건 아니구나. 한 수 배웠다.

사실, KJV 유일주의 진영에 들어오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하나님이 육체 안에 나타나셨고” 같은 교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더 자극적이고 치명적인 차이점/변개 내역에 대해서 자주 듣지, 저런 단순 정보 전달 쪽의 성경 번역 차이에 대해 들을 기회는 생각보다 드물다. (압살롬의 반역 본문에 나오는 40년 vs 4년 같은 것도..)
렙배오인지 랩배틀인지 저것도 뭐.. 루시퍼, 갈보리, 이스터처럼 유명한 명칭은 아니니까 말이다.

야고보와 유다는 신약 성경에서 헷갈리는 동명이인이 굉장히 많은 명칭 중 하나이다. 저 다대오 유다는 가룟 유다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하고도 다른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나저나 다대오의 영어 스펠링을 보니.. 옛날에 애니매트릭스의 첫 에피소드 “오시리스의 마지막 비행”에서
Good bye, Thadeus / Good bye, Jue / Fly baby, fly!
대사가 떠오르는군..;; 매트릭스가 아예 삼위일체도 나오고 이것저것 성경에서 모티브를 딴 명칭이 여럿 있었던 걸로 내가 기억한다.

3. 한킹(말보회)과 흠정역의 차이는?

번역자의 인성과 자질 논란 같은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를 몽땅 배제하고..! 순수하게 텍스트만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흠정역은 이집트, 페르시아, 에티오피아처럼 세속적으로 통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책 이름과 고유명사 외래어를 개역성경과 동일하게 표기했다. 한킹은 그렇지 않다 '스카랴/슼, 판관기(사사기) 등'
  • KJV, 그리고 흠정역, 개역성경 등은 인용을 나타내는 여닫이 문장부호가 없다. 하지만 한킹은 어째 따옴표를 임의로 넣었다. 하나님/예수님 가라사대 같은 인용문들을 볼 것.

  • 흠정역은 번역 방침과 번역자의 신념으로 인해 KJV에서만 튀는 단어를 티 안 나게 최대한 보수적(?)으로 번역한 반면, 한킹은 튀는 쪽으로 번역했다. 창 1:28 replenish가 한킹은 '다시 채우다'이지만 흠정역은 그냥 '채우다'이다.
  • 한킹은 창 22:8 God will provde himself a lamb을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비하실 것이다"라고 번역한 유일한 역본이다.
  • 흠정역은 노아의 흑역사, 잠 23의 극딜 같은 극도로 부정적인 상황이 아닌 한, wine을 몽땅 '주'가 아닌 '즙'이라고 번역했다. 그래서 요한복음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 대신 포도즙이 등장하는 유일한 역본이기도 하다. 한킹은 그렇지 않음.
  • 흠정역은 구약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 우상 숭배 장소인 grove(창 21:33)를 그대로 '작은 숲'이라고 번역했지만 한킹은 타 성경 같은 '아세라 목상'도 아니고 그냥 '아세라'라고 번역했다. 고증과 교리 특성상 그렇게 했다고 당당히 해명을 하고 있다.
  • 반대로 흠정역이 고증(?)을 이유로 달리 번역한 단어 중 하나는 candlestick이다. 한킹은 촛대, 흠정역은 등잔대임. (그 시절에 파라핀 양초가 존재했었느냐의 여부..)
  • 한킹은 신약의 경우, 영어 KJV가 아니라 TR 본문을 따라 번역한 곳도 있다. 이 점은 초판 서문에도 명시돼 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고후 13:11 잘 있으라, 바이바이(farewell)를 뜬금없이 '기뻐하라'라고 옮겼다.

  • 흠정역은 2011년에 나온 제5판 400주년 기념 에디션이 최신이고, 조만간 마지막 6판 개정이 계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킹은 2010년대 더 나중에 또 개정된 것이 있지 싶은데.. 이건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요즘 나오는 한킹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킹은 한글 본문에서 고유명사를 고딕체로 표기하지 않아서 읽기 좀 불편한 감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0/21 08:36 2021/10/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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